청구영언목 차Ⅰ. 들어가며Ⅱ. 에 대하여1. 의 체제와 특징2. 청구영언의 이본3. 저자(작가)소개Ⅲ. 속 “만횡청류”1. 사설시조의 등장과 만횡청류2. 만횡청류의 의의3. 만횡청류의 내용Ⅳ. 기존 기출문제 분석과 문제 출제Ⅴ. 정리 및 맺음말국문학사 덕수궁 조국어교육과 2007066008 김덕수2007066031 정유진2007066032 정지훈2009066038 최현정2009066039 황현영Ⅰ. 들어가며조선 후기의 시조사에서 가집(歌集)이 지니는 의의는 매우 중요하다. 주로 여항인(閭巷人)들이 주도했던 가집의 편찬과 그로 인한 시조예술의 발흥은, 이전까지 사대부들이 주로 담당했던 시조의 창작 및 연행 문화와는 전혀 다른 문화적 배경을 전제하고 있다. 여항 예술인들은 시조의 내용과 형식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변화를 앞장서 이끌었고, 음악사적인 측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통해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주역이라 할 수 있다.시조사에서 이러한 움직임의 선두에 김천택이 편찬한 가집인 이 자리잡고 있다. 김천택 편은 현전하는 최고본(最古本)의 가집이며, 이후에 편찬되는 가집들의 전범으로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Ⅱ. 청구영언에 대하여1. 의 체제와 특징가집은 당대의 연행 현장에서 불리던 작품들을 곡조별로 배열하여 편찬한 것이다. 김천택은 다양한 형태로 유통되고 있던 가곡창의 노랫말을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곡조별 분류를 취하여 가집을 엮었다. 이미 보다 다양해진 가창 공간에서는 이전보다 더 많은 노랫말들이 필요했고, 당대의 가창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작품들을 모아 을 편찬했던 것이다.가집에는 비록 노랫말만 수록되어 있으나, 각 작품들은 음악적 표지가 제시되어 있어 가창자들에게는 연창(演唱)을 위한 하나의 지침으로 역할을 하였다. 역시 초중대엽(初中大葉)부터 가곡창의 각 곡조를 내세우고, 각 곡조마다 그에 해당하는 시조 작품들을 배열하여 수록하였다. 가집에 수록된 작품은 모두 580수로, 그 규모가 만만치 않다. 특히 가집의 마지막 부분에는 ‘만횡들을 배려하기 위한 고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제일 끝부분에 위치한 ‘만횡청류’ 항목에는 모두 116수의 사설시조 작품이, 그 유래와 특징을 논한 서문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서문에서는 이 작품들의 명칭을 ‘만횡청류(蔓橫淸流)’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으며 ‘그 유래도 이미 오래되었다(蔓橫淸流…然基流來也已久)’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사설시조인 만횡청류는 기존의 평시조와는 다른 양식으로 유통되었고, 김천택을 그 작품들을 모아 가곡창의 창법으로 부를 수 있도록 가집에 정리한 것이다. 편찬 당시에 이미 연행 현장에서 ‘만횡청류’가 실제로 불려졌기 때문에, 가집에 수용하여 그러한 실상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설시조는 의 편찬자인 김천택의 이러한 노력과 배려에 의해 시조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2. 청구영언의 이본의 ‘청구’는 본래 우리나라를 뜻하는 말이고, ‘영언’은 노래를 뜻한다(歌永言)는 말이다. 책명은 한글로 모두가 ‘청구영언’이지만, 한자로 쓰면, ‘靑丘詠言’·‘靑邱永言’·‘靑丘?言’ 등으로 표기된다. 우리의 노래가 구전으로만 읊어지다가 없어짐을 한탄하여, 기록으로써 후세에 전하고자 이 책을 편찬하였다고 한다. 이 책의 제1차 초고가 완성된 때는 1727년(영조3), 제1차 수보(修補) 완료는 1728년, 제2차 수보를 마친 때가 1732년으로서, 이때에는 상당한 시조가 증보된 듯하므로 실제 완성된 시기는 1728년으로 본다.은 책이름이 동일하지만, 제각기 특색을 지니며 내용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즉 에는 ① 진본(珍本, 吳章煥본), ② 홍재휴본(洪在烋本, 洪氏本) ③ 가람본(李秉岐본), ④ 연민본(淵民本, 李家源본), ⑤ 육당본(六堂本, 崔南善본), ⑥ 이희승본(李熙昇본, 一石本), ⑦ 일본인(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 후지타(藤田亮策))본 등의 이본(異本)이 있다.1) 홍씨본홍씨본은 몇 가지 특성을 보인다. 앞에 떨어져 나간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74면인데, 없어진 부분 일부에 가지곡목형용(歌之曲目形容)것이 많고 또 널리 수집한 때문에 시정의 음란한 말과 저속되고 더러운 말도 또한 왕왕 있으니 가곡은 지실로 작은 재주인데 또 이렇게 했으니 군자가 본다면 병통으로 안 여길까.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위의 인용문은 마악노초가 쓴 글이지만 내용은 남파가 마악노초에 발을 부탁하면서 남파가 염려하여 말한 내용을 마악노초가 쓴 것이다. 이 글로 보아서 남파는 자신이 가인이면서 청구영언 편찬의 의의를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염려되어 학덕이 높은 것으로 보이는 마악노초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마악노초 청구영언의 편찬을 해로울 것이 없다고 다음과 같이 답했다.「내가 이르건대 해로울 것이 없다...(중략)...시는 풍아 이후로부터 날로 예전과 등지고, 시를 배우는 자는 한갓 일관 말만 달리고 달려서 너러다고 생각하고 경치와 물건을 엮어서 공교롭다고 하고 심지어는 성과 병을 비교하고 글자 글귀를 연마하는 법이 나와서 정과 성이 숨어졌다. 아래로 우리나라에 미쳐서 그 폐가 더욱 심하지만 유독 가요 하나만은 조금 풍인에 가까워서 정에 따라 발하고 속담으로 인연했으니 읊는 사이에 유연히 사람을 감동시켜서 여항 노래에 이르러도 무릇 유쾌하고 질탕하고 애원하고 탄식하고 미치광이 같고 추솔한 정장능색은 각각 자연의 진기에서 나왔으니...(중략)...김천택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원컨대는 선생님께서 한 말씀을 주셔서 이 책을 빛나게 하여 주십시오 하니 내가 이르기를 그렇게 하마...(중략)... 천택은 사람됨이 청명하고 식해가 있고 시경 삼백편을 외우니 대체로 한갓 노래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위의 내용으로 보아 그 당시에 있어서 가객들은 대체로 유식한 사람이 드물었던 모양인데 남파는 시경 삼백편을 외울 수 있었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이러한 글을 쓴 것은 당대 부류인들은 흔히 한시만을 짓고 읊었을 것인데도 남파의 시조선집에 대한 집념을 높이 찬양한 것이다.또 청구영언 서에는 다음과 같이 써져있다.「남파 김군이 노래 잘 함으로써 한 나라를 울리고, 성률에 정밀하고 겸하여 문예를 을 일선에 주지시키려 하였다. 이와 같은 우리말 우리시에 대한 김천택의 뜻 깊은 태도는 청구영언 마악노초 발문에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김천택이 보여준 이루 시문학을 위한 또 하나 뚜렷한 공적은 우리말 우리 시의 정통성을 역사적 실증을 통해 확립했다는 점이다. 김천택은 시조 작품을 수집했을 뿐만 아니라 그 시인연구와 제작 경위를 말해 주는 가치 있는 부수적 진술을 눈 여겨 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청구영언 속에 그들의 연대를 밝혀 정밀하게 배열하여 놓음으로써 고려 말부터 김천택 시대에까지 약 350년간 우리 시문학이 걸어온 발자취를 한 눈에 조감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당시 표류를 계속하고 있었던 우리 고유 시문학의 근원을 명시하는 일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영광스러운 시인의 출현을 유도하는 우리 시문학을 위해 막중한 대역사였다. 김천택의 이러한 선구적 사업의 효력은 바로 후배이자 제자인 김수장을 비롯한 서민대중 시인의 출현으로 증명되었던 바이다.김천택은 역시 청구영언에서 작자미상은 작품을 주제나 소재별로 분류했다. 그리고 이것은 김천택의 경우 하나의 시방법론으로 원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김천택은 기존한 시조의 주제를 세분하고 그것에 따라 스스로의 창작 생활을 전개했음을 살필 수 있다. 이것은 방법에 의한 시의 제작이라는 측면에서 일단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이것은 역시 김천택 시작품의 특징이라 한계성이었다. 왜냐하면 김천택의 대부분의 작품은 그가 그러한 방법에 거의 안주해 버림으로써. 기문학의 이상인 새로운 시세계를 보여주지 못하고 게재한 작품의 재현이라는 인상을 불식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Ⅲ. 속 “만횡청류”1. 사설시조의 등장과 만횡청류조선 후기는 농업 생산력의 비약적인 증가와 상품 화폐경제의 발달로 인해 중세 사회의 해체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특히 농촌의 분해가 가속화되고 도시의 발전이 촉진됨에 따라 시정인들의 유흥 공간이 광범위하게 생겨난다. 조선 후기의 문학은 이러한 도시 유흥 공간을 중심으로 비약적으로 발게 문자를 써서 설명하는 양반층에 대한 일침으로 해석할 수 도 있다.이는 전문가객층의 신분상의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양반들의 전유물인 한문적 교양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해하려는 하층민들에게는 군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 자신보다는 신분적으로 우월한 양반들에게는 그들의 허위와 위선을 비꼬고 풍자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두터비 ㅍㆍ리를 물고 두험 위희 치ㄷㆍ라 안자것넌 山 ㅂㆍ라보니 백송골이 떠 잇거늘 가슴이 금즉ㅎㆍ여 풀덕 뛰어 내닷다가 두험 아래 바지거고모쳐라 ㄴㆍㄹ낸 낼싀만졍 에헐질 번 ㅎㆍ괘라→ 두꺼비 파리를 물고 두엄 위에 치달아 앉아건넌산 바라보니 하이얀 송골매 떠 있거늘 가슴이 섬뜩하여 펄떡 뛰어 내닫다가 두엄 아래 자빠졌구나아이쿠야 날쌘 나였기에 망정이지 피멍들뻔 하였구나지배층의 비리와 위선에 대한 비판의식이 두터비라는 동물로 의읜화하여 나타나고 있다. 두터비는 흉직스러운 외모로 말미암아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동물이다. 여기서 두터비는 피지배층인 백성들을 괴롭히는 인물인데, 양반 관료들과 그들에게 기생하며 부를 축적한 일부 중인계층을 나타낸다.지배층인 두터비는 백성인 파리를 물고 자신이 치부한 두험 위에 앉아 있다. 그러나 두터비는 파리에게는 강하고 백송골에는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강한 전형적인 비리 관리의 모습을 보인다. 백송골에게 놀라 자빠지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나이기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어혈질 뻔하였다”고 하여 이들의 위선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2) 강호한정으로의 귀의와 불화신분적인 한계로 인하여 현실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어던 중인들이 자신의 이상향을 실현할 곳으로 찾은 곳이 바로 자연이다. 현실 세계에서 더 이상 돌파구를 찾지 못한 중인층은 자연히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에서 음풍농월하며 자족하면서 살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을 갖춘 양반 계층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중인층이
1920 ? 30년대 사회주의 문학의 전개-신경향파와 카프제2기-목적의식기제 3전선파조명희「낙동강」-제2기작품논쟁대중예술론2차 방향전환론, 볼셰비키화제1기-자연발생기염군사 ? 파스큘라신경향파 문학카프결성내용형식논쟁1차 방향전환론제3기-볼셰비키화무산자파제1차 검거농민문학논쟁물논쟁제2차검거카프해산Ⅰ. 서론 : 1920년대 초반 사회적 상황과 문학에의 영향3?1운동 이후 1920년대 초반 우리나라는 일제치하의 특수상황 속에서 민족해방투쟁의 한 방편으로 마르크스주의가 들어오면서 노동자 계급의 형성과 노동운동?사회운동이 격화되고 있었다. 그 단적인 예로 1923년 진주에서 시작된 형평사의 형평운동과 후에 근우회로 집중되는 여성들의 사회운동이 연이어 일어났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문학 또한 사회주의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전의 감상적이고 퇴폐적이던 낭만주의 문예사조가 와해되고 이러한 경향의 동인지『백조』가 폐간되었으며 김기진의 「백수의 탄식」, 「한 개의 불빛」, 이상화의 「폭풍우를 기다리는 마음」,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같이 역사의 방향성에 대한 작품들이 등장하였다. 대외적으로는 프랑스작가인 앙리 바르뷔스의 클라르테 운동이 일본 프로문학잡지『씨뿌리는 사람』의 이론적 토대가 된 후, 국내에서도 문학적 사회주의 운동의 움직임이 일게 된다.Ⅱ. 제 1기- 자연발생기1. 염군사와 파스큘라문학적 사회주의 운동의 첫머리로 1922년 9월 이적효 ? 이호 ? 최승일 ? 송영 ? 김두수 ? 김영팔 ? 심대섭(훈) 등이 ‘해방문화의 연구와 운동’을 목적으로 염군사(焰群社)를 조직했다. 염군사는 문학보다 무산 계급 운동을 앞세워 공산당의 지하조직에 가담해 공작 사건의 연루되는 등의 사회?정치적 운동의 목적이 강하였다.1923년에는 박영희 ? 안석영 ? 김형원 ? 이익상 ? 김기진 ? 김복진 ? 연학년 등을 구성원으로 하여 본격적인 문학가 조직인 파스큘라(PASKYULA)가 결성되었다. 파스큘라는 일제의 억압에 대한 반작용에서 비롯된 점은 염군사와 유사하나 염군사보다 사 염군사와 파스큘라의 통합으로 이루어졌지만, 당시 새로운 창작경향을 내보이며 작품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한 조명희, 이기영, 한설야 등도 참여한다. 카프는 1926년 1월 기관지『문예운동』을 펴내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문단의 중심부로 진입한다.3. 내용?형식 논쟁1926년 12월, 학창 시절부터 카프 결성에 이르기까지 둘도 없는 친구로 붙어 지내던 김기진과 박영희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는데 이를 내용?형식 논쟁이라 한다. 이 논쟁은 자신의 신경향 사상을 창작 속에서 실험한 박영희의 「철야」?「지옥순례」에 대해 김기진이 『조선지광』의 「문예 시평」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곁들인 비판적 감상을 피력하면서 시작된다.“……그 결과 이 한편은 소설이 아니요, 계급의식 계급투쟁의 개념에 대한 추상적 설명에 시종하고 일언일구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만 사용되었던 것이다. 소설이란 한개의 건축이다. 기둥도 없이 서까래도 없이 붉은 지붕만 얹어 놓은 건축이 있는가?……어떤 한개의 제재를 붙들고서 다음으로 어떤 한 목적지를 정해 놓고 그 목적지에서 그 제재를 반드시 처분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붓을 들어 되든 안되든 목적한 포인트로 끌고 와 버리는 것이 박씨의 창작상 근본 결함이다.”프로문학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에 박영희를 비롯한 많은 문인을 사회주의 사상에 감염시킨 김기진이지만, 계급 의식만으로 도배된 일련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문학 작품에 적지 않은 회의를 느낀 것이다. 아무리 계급적 소설이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소설 형식은 갖춰야 한다는 김기진의 주장에 대해 박영희를 비롯한 카프 맹원들은 발끈한다. 그래서 박영희는 『조선지광』에「투쟁기에 있는 문예비평가의 태도」라는 제목으로 아직 투쟁기에 놓여 있는 상태에서 형식미에 얽매인 소설적 건축물을 만들려고 하는 예술가는 프롤레타리아 문예정신을 망각한 것이라며 김기진의 태도에 반격을 가한다. 몇 차례 반론이 오간 뒤 이 논쟁은 문단 외부의 급진적 사회주의 운동 세력의 압력으로 결국 김기진이 고개를 숙이면서 매듭을 짓게 된다.카논의가 조직적 차원으로 확산되고 1927년 9월 카프는 방향전환을 위한 임시총회를 열어 논강과 강령을 채택하고 조직을 개편한다. 그러나 겉으로 박영희의 주도로 보이는 제1차 방향전환 그 이면에는 일본에서 훨씬 체계적이고 급진적인 이론을 익히고 돌아온 이른바 제3전선파가 있었다.Ⅲ. 제 2기- 목적의식기1. 제3전선파제3전선파는 당시 동경에서 『제3전선』을 발간하던 조중곤, 이북만, 홍효민, 한식, 김두용 등을 일컫는 것으로 이들은 일본의 나프NAPF와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제3전선파의 중심 인물인 이북만은 ?예술 운동의 방향전환 이론은 과연 진정한 방향전환론이었던가?라는 글을 통해 초기 박영희의 방향전환론을 분석, 비판하며 “우리 앞에 놓인 전선은 다만 하나뿐인 전무산 계급적 정치 전선에 있을 뿐이다.”, “일체의 전제 세력과 항쟁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급진적 방향 전환을 시도한다.신진 세력으로 떠오른 이들은 카프동경지부를 결성하여 기관지 예술운동 을 발간하고 전국문학자대회를 열어 박영희?김기진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등 조직의 재정비와 강화를 강력히 추진하며 카프를 장악해나간다.2. 조명희「낙동강」-제2기작품논쟁1927년 7월 조선지광 에 발표된 조명희의 ?낙동강?은 신경향 소설로 보느냐, 프로소설로 보느냐 의견이 나뉘면서 카프 내 논쟁으로 발달한다. 김기진은 ?낙동강?에 대해 “이만큼 감격으로 가득 찬 소설이 있었던가. ……이것은 현재 1920년 이후 조선 대중의 거짓 없는 인생 기록이고 독자 대중의 감정 조작에 성공했으며, 또한 각 인물에 상응한 성격과 풍모를 부여한 점에서 재래의 공상적 행방 불명의 빈궁 소설에서 벗어나 제2기의 선편을 던진 작품”이라 극찬하였다. 그러나 제3전선파의 조중곤은 “자연 생장기의 수법으로 표현에는 성공했지만 제2기의 작품이라 칭할 수 없다”며 김기진에게 반박한다. 조중곤은 목적의식, 현단계의 정치투쟁적 사실만 문학에 주입되면 된다는 논리로 제2기 작품의 기준을 제시한다.제3전선파의 강력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무게 중심이 기 구체화시키지 못하고 강한 정치편향성으로 창작의 질식현상을 보이던 당시 카프에 비추어 보면 매우 날카로운 자기비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작품의 일반적 원칙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대중과의 관련 속에서 이것을 논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그러나 임화를 비롯한 카프 맹원들은 김기진의 대중 문학론을 반프롤레타리아 성향의 이론으로 보고 혹독하게 비판하고 나선다. 임화는 1929년 8월 조선지광 에 ?탁류에 항하여?라는 글을 발표하며 김기진을 상황에 따라 타협할 수 있는 개량주의자라고 몰아붙인다. 몇 번의 논쟁이 오간 후 임화?이북만이 일본으로 건너가 김남천?안막 등과 함께 더욱 강성한 볼셰비키 혁명 이념을 안고 돌아옴으로써 김기진의 주장은 물러나고 대중화 문제는 이후 새로운 군단인 무산자 그룹에 의한 볼셰비키화 대중화로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Ⅳ. 제 3기- 볼셰비키화1. 볼셰비키화 (제2차 방향전환)1927년 박영희의 방향전환론에 개입해 한동안 카프를 주도하던 제3전선파는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과격한 선동 임무를 띤 무산자파에게 주도권을 넘겨준다. 임화?이북만?김두용?윤기정 등과 카프의 동경지부인 무산자사에서 발행한 기관지 무산자 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김남천?안막?권환(권윤환) 등이 합류한 이른바 무산자파는 이전보다 훨씬 짙은 당파성을 띤 채 카프를 장악한다.볼셰비키란 다수파를 뜻하며 러시아 혁명을 주도한 세력으로 공산당의 전신이다. 그래서 모범적인 공산주의자 또는 과격한 혁명주의자를 흔히 볼셰비키라고 부른다. 무산자파는 볼셰비키 문예운동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며 아지(agitation)프로적인 문학을 내걸어 문학이 당시 노동운동의 진전에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즉 당시 카프는 문학의 차원 보다는 ‘좌파 이데올로기의 정치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책이었다.2. 카프 제 1차 검거일제는 1931년 좌우합작노선 신간회를 해산시키고, 볼셰비키화를 외치며 왕성한 의욕을 보이던 카프 조직에도 강력한 제재를 가한다. 임화 ? 강호 서도 해석에 근소한 차이를 보임 감옥 체험이 문제가 된 이 ‘물’논쟁은 몇 차례 더 이어지다가 카프 2차검거와 뒤이은 해체로 흐지부지된다.Ⅴ. 카프해산기1. 카프 제 2차 검거와 해산1차 검거 이후 일제의 무력적인 제압에 긴장한 박영희를 비롯한 일부 맹원은 전향의 조짐을 보인다. 1932년 카프 간부직을 사임한 뒤 박영희는 임화에게 계속 카프 해체를 건의하고 1934년 1월 동아일보 에 최근 문예이론의 전개와 그 경향 에서 “다만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상실한 것은 예술이다.” 라고 말하며 탈퇴의사를 밝힌다. 더불어 카프 중앙위원회에서도 자체 반성이 움직임이 일어나 다시 한 번 방향전환을 모색하기에 이른다.하지만 1934년 3월, 카프의 연극부서인 신건설사가 연극?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전주공연 도중에 선전 삐라가 발각되어 전주경찰서에서 카프 맹원 검거에 나서기 시작한다. 이 ‘신건설사 사건’이 확대되어 카프 동맹원 전체로 의혹이 향해지면서 6월들어 박영희를 비롯해 김기진 ? 이기영 ? 한설야 등 간부 23명이 압송되었다. 대부분의 카프 맹원들이 실형선고를 받았으며 주요 인물들은 전향 성명 발표까지 하면서 카프는 뿌리째 흔들린다.또한 일본에서 나프의 해체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임화, 김남천 등의 카프의 잔존 세력들은 마침내 해체를 결정한다.◎ 작품알아보기1. 신경항파 시백수의 탄식( 개벽 , 1924.6)김기진카페-의자에 걸터앉어시희고흰팔을 뽐내어가며라고 떠들고있는60년전의러시아청년이눈앞에있다……Cafe Chair Revolutionist.너희들의손이너무도희고나!희고흰팔을뽐내어가며입으로 말하기는60년전의러시아청년의헛되인탄식이 우리에게있다-Cafe Chair Revolutionist,너희들의손이너무도희고나!너희들은가고자하는농민들에게는되지도못한 味覺(미각)이라고는조금도 조금도 없다는말이다Cafe Chair Revolutionist.너희들의손이너무도희고나!아아60년전의옛날러시아청년의은味覺(미각)을죽이고 내려가 서고자하던전력을 다하던 전력을 다하던 탄식이었다Cafe
‘수면’과 ‘잠’에 관한 보고서황 현 영국어교육과20090660391. 들머리인간의 몸은 많은 개념을 이해하는 경험적 근거를 제공한다. 또한 필요에 따라서 사람은 새로운 어휘를 만들기도 하고 의미를 확장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정신적으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 경험을 기억할 수 있는 능력, 경험하지 않은 일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있다고 보았다.)그러므로 인간이 반복적으로 행하는 신체적인 경험이 언어를 통하여 실현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신체적 경험이 비록 과학적으로는 증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수천?수만 년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인간의 신체가 언어로서 이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이렇듯 반복적으로 행하는 신체적 경험은 인간의 언어에 그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므로 인간의 고유한 본성이라 할 수 있는 ‘잠’또한 인간의 언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발동했다. 그리하여 본 보고서에서는 삶에서 필수적인 ‘잠’이 인간의 언어에 미치는 영향을 국어의 어휘, 의미를 통하여 알아보고자 한다.2. ‘수면’에 대하여)인간은 태어나서 인생을 살면서 삼분의 일은 잠을 자며 보낸다는데, 이를 시간으로 계산해보면 평생 동안 침대 위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약 24년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루 수면시간이 세 시간에 불과했던 발명왕 에디슨은 “수면이란 원시시대부터 시작된 나쁜 습관이며 시간을 좀먹는 벌레다”라며 잠 자체를 아예 터부시했다.그러나 현대과학의 눈부신 발전 앞에서도 사람이 잠을 자는 이유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지구는 40억 년 전에 생겨나 자전하면서 밤낮이 규칙적으로 교차하므로 지구 위 모든 생물체들은 낮과 밤이라는 현격히 다른 조건에 적응하도록 진화해왔다’거나, ‘작은 온혈동물은 체온을 보전하기 위한 에너지 소비가 많기 때문에 잠이 필수적이다’, ‘면역체계와 방어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잠을 잔다’ 등의 확인되지 않은 일부 전문가들의 이론만이 잠자는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을 뿐이다.하지만 확실한 것은 잠은 세상의 탄생과 함께 옛날부터 존재했던 인간의 고유한 본성이며 생명을 유지하기위해서 뿐만 아니라 사고하는 힘과 기억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활동이라는 점이다.3. ‘수면’과 ‘잠’의 의미적 차이‘수면’과 ‘잠’의 사전적 의미는 각각 이러하다.)수면07(睡眠)「명사」「1」잠을 자는 일.¶ 수면 부족/수면을 취하다/그 밖의 신참들은 자다가 놀라 깨어나 눈을 비비고 그들의 수면을 방해한 울음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았다.≪송영, 선생과 황태자≫「2」활동을 쉬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수면-하다02(睡眠--)「동사」잠을 자다.잠01「명사」「1」눈이 감긴 채 의식 활동이 쉬는 상태.¶ 깊은 잠/잠을 설치다/잠을 청하다/잠이 모자라다/잠이 많다/잠에 빠지다/무슨 걱정이 있는지 남편은 잠을 못 이루는 눈치였다./아무리 잠을 쫓으려 해도 자꾸만 눈이 감겼다./전화가 왔다고 해도 동생은 잠에 취해 영 일어나지를 못했다「2」아직 각성되지 못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프리카는 잠에서 깨어나려는 노력이 한창이다.「3」『농업』누에가 허물을 벗기 전에 뽕잎을 먹지 않고 잠시 쉬는 상태.「4」『농업』((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누에가 허물을 벗기 전에 뽕잎을 먹지 않고 잠시 쉬는 횟수를 세는 단위.「5」여러 겹으로 된 물건이 부풀지 않고 눌려 가라앉은 상태.「6」『북한어』‘겨울잠’의 북한어.‘수면’과 ‘잠’은 문맥상 치환이 가능하며 개념의미가 동일한 상대적 동의어에 속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잠’보다 ‘수면’은 전문성을 더 가지고 있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근거는 첫째로 ‘수면’은 고유어 ‘잠’보다 격식이 높은 한자어이며, 의학적 용어 같은 전문어에 많이 쓰인다. 한편 ‘잠’은 고유어 합성어에 쓰이며 그 쓰임은 매우 일상적이고, 문학적이다.(예시1) 수면제 / 수면장애 / 수면시계 / 렘수면 / 수면무호흡증단잠 / 선잠 / 노루잠 / 멍석잠 / 갈치잠 / 새우잠 / 나비잠 / 낮잠 / 늦잠 / 새벽잠 / 풋잠 / 꽃잠둘째로 (예시1)처럼 ‘수면’은 ‘잠’에 비해 전문적 단어의 합성에 많이 사용되며, ‘잠’은 숙어나 관용어구로도 자주 이용된다.(예시2) 잠에 관한 숙어, 관용어)깊은 잠 / 잠을 설치다 / 잠을 청하다 / 잠이 모자라다 / 잠이 많다 / 잠에 빠지다 / 잠을 이루다 / 잠을 쫓다▶잠(에) 취하다『북』어떤 일에 매우 열중하다. ¶여직 일에 잠 취하여 알지 못했던 장딴지를 내려다보니….≪현대 조선 문학 선집, 선대≫▶잠을 깨우다일깨워서 정신 차리게 하다. ¶그 사람의 확신에 가득 찬 말과 행동은 안일함에 빠져 있던 많은 사람의 잠을 깨우기에 충분한 것이었다.▶잠도 자야 꿈을 꾸고 꿈을 꿔야 님을 만난다『북』「1」‘잠을 자야 꿈을 꾸지「1」’의 북한 속담. 「2」‘잠을 자야 꿈을 꾸지「2」’의 북한 속담.▶잠은 같이 자도 꿈은 다른 꿈을 꾼다=같은 자리에서 서로 딴 꿈을 꾼다.▶잠을 자야 꿈을 꾸지「1」=하늘을 보아야 별을 따지「1」. 「2」원인 없이 결과를 바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위와 같은 예시들에 따라 ‘수면’과 ‘잠’은 내포하는 뉘앙스와 쓰임에서 미세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따라서 사람들은 ‘수면’이 아닌 ‘잠’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잠’을 체험함으로써 얻는 지혜, 경험, 예측력 등이 분명 언어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말 속에 녹아있는 ‘잠’에 관한 숙어와 관용어를 중심으로 잠에 관한 과학적 검증으로 이르는 실마리를 제시해 보도록 하겠다.4. ‘잠’에 관한 관용어로 유추해 볼 수 있는 과학적 현상(예시2)에서 보듯이 우리말에는 ‘잠’과 관련한 많은 관용어들이 존재한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표현들은 매우 다양하며 그 수를 이루 말 할 수 없다. 이러한 잠에 관한 관용어들을 몇 가지로 분류해 보았다.▶잠을 깊이가 있는 용기에 담긴 ‘물’이나 ‘소(沼)’의 개념으로 보는 관용어깊은 잠 / 잠에 빠지다 / 잠에 취하다 / 잠이 쏟아지다 / 잠이 많다 / 잠이 모자라다 / 잠을 설치다▶잠을 ‘움직이는 물체’의 개념으로 보는 관용어잠을 깨우다 / 잠을 쫓다 / 잠이 달아나다▶잠을 소원이나 사랑같이 틀이 없는 ‘추상적인 물체’의 개념으로 보는 관용어잠을 청하다 / 잠을 이루다실제로 수면에 대한 연구 결과 수면은 깊이에 따라 5단계로 나눌 수 있으며, 크게 비렘수면이라고 하는 정수면(약 70~90분)고 렘수면이라고 하는 역설수면(약20~30분)의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정수면은 얕은 잠인 1~2단계와 깊은 잠인 3~4단계를 거쳐 마지막으로 역설수면 단계로 넘어간다.
예서기의 삶을 통해 본중국의 문화와 역사국어교육과2009066039황 현 영1. 들어가며친구를 통하여 빌린 린마을이야기의 첫부분 버나드 갈린의 서문과 머리말을 뒤적이면서 이 책이 중국남부 푸젠성의 샤먼시를 배경으로 쓰여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샤먼시, 이 곳은 나의 첫 외국인친구 황샤오원의 고향이기도 한 곳이다. 샤오원은 우리 학교에 온 중국인 유학생으로 중국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우리과로 와서 국어교육을 전공하고 있는 아주 똑똑한 학생이다. 그녀는 나와 그녀의 고향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샤먼시의 아름다운 바다와 넉넉한 마을사람들과유난히 쌍둥이가 많은 그녀의 가족들을 소개하며 추억에 젖곤 하였다. 그래서 책을 넘길 때마다 나는 이 린마을 이야기를 샤오원의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그 어느 책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그러나 ‘린마을이야기’라는 제목은 이 책이 담고 있는 중국 현대사의 심오함을 이야기하기에 매우 가벼울 뿐이었다. ‘어느 공산당 간부의 눈을 통해 본 한 중국마을의 변화’라는 소재를 보면 그제서야 이 책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 짐작이 가능한 것이다. 이 책은 린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관리인 예 서기의 상세한 인생사를 펼침과 동시에 주민들과의 면담을 통해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황 교수는 통찰력 있게 마을을 분석하였다. 이것은 그와 예 서기간의 대화로 서술되어 있어 리얼하면서도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 흥미로웠다.‘린 마을 이야기’는 중국 농민들이 토지개혁과 지주의 몰락, 빈농의 권력 장악,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그리고 중국 농촌에 실용적인 정책을 부활시키려는 최근의 노력 등을 겪으며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중국 사회에 대한 보다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이해를 다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데 의의가 크다. 지금부터 책을 읽으며 흥미로운 부분들을 소개하며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덧붙여 보고자 한다.2. 펼치며(1) 중국 농촌의 전통이야기는 내가 악질적인 인간으로만 보았던 예서기가 헐레벌의 중요성을 각인 시켜 주는 듯 했다. 전통적인 미신을 믿지 않았던 예 서기조차도 풍수 사상은 집과 조상 무덤의 기본 방위와 관련된 것이며 또한 자신들의 안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일상생활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 했다.풍수 사상 이외에도 마을 사원에서의 우상 숭배, 조상의 묘소에 가서 벌초를 하고 제사를 지내는 청명절 등 전통적인 관습들이 린 마을에는 여전히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전통을 ‘후진적’ 또는 ‘미신적’이라고 하며 탄압하였지만 농촌 마을에서는 전통적 관행들이 면밀히 보존되어 왔던 것이다.내 생각에 린 마을 사람들을 포함하여 중국의 농민들이 조화롭게 모여서 사회조직을 구성하고 자신들의 가족과 마을을 위해서 더 나아가 국가를 위해서 헌신하였던 것은 이러한 전통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유교 윤리에 바탕을 둔 전통적인 사상은 농민들을 정신적으로 하나로 결속시켰으며 자연스럽게 가족과 마을, 국가라는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에 대해 헌신하는 마음을 길러낸 것이 아닐까? 정치적인 엘리트들에게 있어서는 공산주의와 같은 이론과 혁명정신만이 중국의 발전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고 여겨졌을 테지만, 농촌 사람들은 전통적인 사상과 관습이 밑바탕을 이루었을 때 비로소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2) 1951년 토지개혁과 농촌“1949년 해방되었을 때 난 여섯 살이었어요.”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왜 이곳 사람들은 해방이라고 표현하는 것인가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해방, 그것은 지주와 부농이 가지고 있던 땅과 지위를 빼앗아 소작농과 농업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준 토지개혁을 수반한 것이다. 정부는 빈농들에게 권력을 쥐어 주었으며 예전에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했던 ‘계급의 적'으로 불리는 지주와 부농들은 온갖 수모와 학대를 받아야만 했다. 지주와 반혁명분자들에 대한 박해는 말할 것도 없었고, 부농들은 자신들의 계급 꼬리표 때문에 자식들이 더 나은 교육을 받거나 인민해방군에 입대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가질 수 없 또 다른 공포의 지배를 낳았고 내부에 증오의 씨앗을 뿌린 결과를 보았다. ‘계급’이라는 말이 남아 있는 한 한 쪽은 끊임없이 착취를 당하고 또 다른 한 쪽은 권력을 쥐고 다른 이들을 학대하면서 증오와 폭력의 악순환은 되풀이 되는 것이다.농민에 대한 계급분류는 남보다 똑똑하고 더 열심히 일하여 더 많은 재산과 땅을 축적한 사람들에게도 가혹한 벌을 내리는 한편 어리석고 게으른 사람들에게는 상을 주는 꼴이 되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일들을 보고 자라난 다음 세대들은 그릇된 관념을 지니게 됨으로써 장기적으로 볼 때 보다 밝고 혁신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없게끔 하는 것이었다.한낱 농촌 마을의 당 서기에 불과한 예 서기도 정부가 빈농에게 권력을 쥐어 준 정책만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이라는 관념, 그리고 농민을 다양한 계급으로 분류하려는 시도 자체가 정부의 근본적인 실수라고 생각하였다. 다행히도 중국 정부는 1978년 계급분류를 철폐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이러한 정책을 내리기 전에 앞서서 보다 깊이 그 정책을 검토해보고 그것이 국민들에게 끼칠 영향을 고려해보았더라면 그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희생당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3) 1958년 대약진운동과 농촌대약진운동은 인민공사가 농촌지역에 설립되면서 시작되었다. 사유지나 개별화덕은 사라졌고, 모든 생산수단은 공동소유로 전환되어야 했다. 모든 사람들은 공동소유토지에서 농업노동자로 일하고 공동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된 것이다. 인민공사의 공동식당에서, 심지어는 마을 유치원에서조차 흰 쌀죽과 이밥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었다.새로운 집체농업과 더불어 공업발전이 강조되었다. 정부는 모든 집체단위에게 소규모 용광로를 만들라고 장려했고, 농민들에게 철강생산량이 목표치에 도달하면 중국이 자동적으로 공산주의의 낙원으로 바뀔 것이라고 믿게 했다.농민들은 마오 주석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가졌고 당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였기에 사유재산을 기꺼이 포기하였고 당의 지시에 따라 열광적으로 국가에 헌신하정부의 근시안적이고 무모한 정책으로 말미암아 오랜 세월동안 굶주림 속에서 고통을 받아야 했던 것은 바로 순진한 농민들이었다. 단지 그들의 죄라면 정부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낙원으로 가고자 국가에 헌신한 것 밖에 없었지만 결국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복통과 부종을 동반하는 굶주림이었다. 자연의 재해가 아닌 인간의 과오가 초래한 대재앙이었다.(4) 1964년 사청(四淸) 운동과 농촌사청운동운동의 목적은 농촌 정부 단위의 무능력한 간부들을 재교육하거나 제거하는 것이었다. 이 운동은 대개 좋은 계급지위를 가지고 있고 교육을 잘 받은 청년활동가 집단을 선택하여 짧게 정치훈련을 시킨 다음 ‘공작대’로 조직하여 자기 출신 구(區)가 아닌 다른 농촌에 보내는 방법을 취했다. 공작대는 자신이 살고 있는 가정과 똑같이 먹고, 똑같이 자고, 똑같이 일하는 ‘삼동’(三同)을 실천해야 했다.나는 사청운동의 활동가들이 십대 후반 내지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는 점에서 문화대혁명의 홍위병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헌신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젊은이들이 노련한 정치가들의 꼭두각시가 되어 이용당하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게 느껴졌다.하지만 예 서기와 같이 성실하고 올곧은 공작대도 많았으나 종종 운동에 지나치게 열성적인 나머지 월권을 행사하는 공작대도 있었다. 이들은 새로 설립된 빈농협회를 부추겨서 이전의 지주와 지방 간부들을 공격하도록 함으로써 농촌 마을에 새로운 공포정치와 더 많은 갈등을 야기하였다. ‘원숭이를 겁주기 위해 닭을 죽인다’는 중국의 속담처럼 공작대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저항하려는 마음을 버리게 하고자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기도 하였다. 이렇게 야비한 공작대에게도 잘못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청운동 그 자체에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5) 1965년 문화대혁명과 농촌마오 주석의 주도 하에 1965년 가을에 일어난 문화대혁명은 중국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던 정치적?사회적 동란으로 알고 있으나 중국 농촌에서는 많은 다른 정치운동보다 더 큰 피해를 가져온 것은갈등과 증오가 사라지지 않는 한 끊임없이 되풀이되게 되어있다.예 서기는 문화대혁명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점들을 하나하나 바로잡아 주었다. 가난한 농민들에게 재교육을 받도록 고등학교 졸업생들을 농촌에 보내는 관행, 문화유산의 대규모 파괴, 대중들이 당 간부와 정부 관리들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심판하는 것 등이 모두 문화대혁명이 아니라 사청운동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전 운동에서 지방 간부들이 고통을 당했다면 문화대혁명 때에는 도시와 고위 간부들이 고통을 당했다는 것이 그 차이점이다.문화대혁명은 사회 내부의 갈등과 증오로 가득 찬 광란의 시기 중 하나로 그 정치적 광신은 전염성이 아주 강하였다. 끊임없는 파벌싸움으로 가득 찬 환경에서 살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도 잔인해지고 비합리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사청운동이나 문화대혁명과 같은 정치운동들이 이루어낸 것은 정치가들 자신의 이득만이 있을 뿐 중국 사회와 그 속에 속해있는 개개인들에게 있어서는 삶의 오점과 지울 수 없는 상처만을 남긴 것은 아닌가?(6) 농촌개혁정책1978년 ‘사인방’의 체포와 더불어 문화대혁명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실용주의적인 옛 간부들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 옛 간부들은 농촌에 좀 더 유연한 정책을 다시 실시하기 시작했다. 생산대대는 더 많은 자율권을 갖게 되었고, 농민들이 잉여농산물을 팔 수 있는 자유시장이 많이 생겨났다.이러한 시대 경향에 맞추어 예 서기는 인민공사에서 허락을 받고 생산대대에서 두 가지 실험을 하였다. 하나는 생산대에서 자유선거를 실시하는 일이었는데, 다섯 명의 생산대장을 생산대원이 1일 1표를 행사하는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산대에서의 선거는 농촌에 더 많은 민주주의를 허용함으로써 균형을 맞추는 것이었다.예 서기의 두 번째 실험은 보너스 제도였다. 이것은 장래 생산대장이 특별수당으로서 생산대에서 나온 잉여의 일정부분을 보너스로 보유할 권한을 가지고, 생산대장은 자신의 재량을 이용하여 열심히 일하는 생산대원들에게 이 보너스로 보상을 해줌으로
수업설계 개관1. 수업설계의 의미○ 수업설계란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일관성 있고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개발하기 위한 절차 체제이다. 수업설계는 창의적이고, 활동적이며, 반복적인 복잡한 과정이다(Reiser & Dempsey, 2002).○ 교수공학의 기본 영역으로서, 설계는 학습의 조건(conditions of learning)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설계의 목적은 프로그램이나 교육과정과 같은 거시적인 단계에서 그리고 레슨이나 모듈과 같은 미시적 단계에서 전략과 산출물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는 설계가 명세서를 만드는 일이라고 하는 최근의 정의와 같은 맥락이다. 교수체제설계는 전형적으로 철저함과 일관성을 요구하는 선형적인 동시에 순환적인 절차이다. 이 과정의 특성은 그 안에 속한 모든 단계가 완성되어야만 절차에 대한 점검과 균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교수체제설계에서 과정은 산출물만큼 중요하다. 왜냐하면, 산출물에 대한 신뢰성은 과정에 의존하기 때문이다(Seels & Richey, 1994; 김영수 외 역, 1995, pp. 52~53).○ 수업설계는 교수방법을 이해하고 개선하고 적용해보려는 데 관심을 둔다. 수업설계활동은 선정된 학습내용과 학습 집단에 알맞은 최적의 교수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결정해나가는 과정이다. 수업설계는 교수활동의 전개과정을 최적으로 조건으로 구성함으로써 교수효과를 증진시키려는 데 관심을 둔다(Reigeluth, 1983. pp7~9).○ 수업설계란 학습자의 필요나 요구 그리고 교수목적을 분석하고, 이러한 학습요구 및 교수목적들을 성취시키기 위한 교수실행 체제를 개발하는 일련의 활동으로서, 교수자료와 교수전개 과정의 개발뿐만 아니라 교수활동의 실행 및 수정 그리고 교수학습 평가활동을 포함한다(Briggs, 1977).○ 수업설계란 교수의 과정을 이해하고 개선하려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으며, 특히 학습자의 요구와 교수목표를 분석하고, 그러한 요구와 교수목적으로 효율적, 효과적으로 성취시킬 수 있도록, 수업관련 변인 및 요소있도록 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일반적으로 수업계획서나 내용 요약에 나와 있다. 수업계획서는 학생에게 관련 내용을 참고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학습전략에 대한 개요는 거의 없으며, 학생들에게 기대되는 성과를 측정 가능한 용어로 거의 표현하지 않는다.3.2 체제접근법과 전통적 방법의 비교체제접근법전통적 방법?목표는 일상 업무와 같은 외부 참조대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음?목표는 교과서나 강사의 지식, 전통적인 교과내용에서 비롯됨?교수전략은 그 효과가 경험적으로 인정된 증거에 기초해 개발됨?교수전략은 관행이나 강사의 기예, 활용상의 편의에 비추어 개발됨?목표와 평가준거는 개발 초기 단계부터 확정되어 있고, 학습자는 한 과정을 마친 후 무엇을 할 수 있게 될지에 대해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음. 따라서 학습결과에 대한 당혹감이 없음?학습자는 종종 바람직한 성취가 무엇인지를 추측해야하는 상황에 처함.?검사는 예상치 않은 뜻밖의 일로 여겨짐.?모든 학습자가 높은 수준의 성취를 수행할 것으로 기대됨?학습자의 성취수준은 매우 다양하며, 대체로 정상분포를 따름?학습자의 성취가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교정이 필요한 부분은 교수과정 그 자체에 있음.?학습자의 성취가 만족스럽지 못할 겨우, 학습자나 강사가 더욱 열심히 자신의 업무를 열심히 수행해야할 필요가 있음.4. 수업설계의 기본원칙첫째, 수업계획은 교수자의 가르치는 과정이 아닌 학생의 “학습 과정, 활동, 경험”을 촉진시키고 도와주는 데 초점을 두어야한다. 수업은 학생의 학습 촉진, 향상, 발달을 중재(intervention)하는 것이므로, 수업의 계획은 학습을 촉진시키는 방법과 절차에 초점을 두어야한다. 학생들의 학습을 촉진시키는 효과적인 수업 속에는 학생들이 수업을 통해 성취해야할 분명한 학습목적 또는 목표(objective)와 이 목표달성에 필요한 구체적인 학습경험과 활동(experience or activity=학습내용+학습방법: 학생들의 학습활동 속에는 배우는 내용과 방법이 같이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이어야 한다. 교육목적은 학생들의 능력을 이끌어내고 조직하는 데에 필요한 환경이 어떤 것인가를 시사하는 것이라야 한다. 교육목적이 구체적인 교육의 절차를 마련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또 이 절차가 교육목적을 검증, 수정, 확장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교육목적은 전혀 쓸모가 없다.3. 교육자는 이른바 일반적이고 궁극적이라고 하는 목적에 대하여 경계를 하여야한다. 물론 일체의 활동은 아무리 특수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여러 가지 다른 사물들로 끝없이 뻗어나가며, 따라서 그런 多岐적 관련 속에서 일반적인 성격을 띤다. 일반적인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그런 관련을 더 민감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며, 그런 만큼 개념은 일반적인 것일수록 더 좋다. 진정으로 일반적인 목적은 우리의 안목을 넓혀주고, 더 넓은 범위의 결과를 고려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곧 수단에 대한 관찰이 넓은 범위에 걸치고 융통성을 띠게 된다는 뜻이다. 구체적인 장면에서 행동을 할 때 우리는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행동을 선택해야 하지만, 그 사태에는 포괄적인 목적이 몇 개든지 상호 모순 없이 공존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포괄적인 목적은 동일한 사태를 보는 상이한 관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가. 수업목표란?수업의 계획에서 첫 번째로 결정해야할 것은 분명하고 명세적인 수업목표이다. 수업목표(학습목표, 수행목표 등)란 한 단위(학기)의 수업활동이 끝날 때 학습자들이 성취하기를 기대하는 학습 성과(learning outcome)를 명세적으로 선정하고 진술하는 것이다. 수업목표는 학습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what will be able to)에 대한 진술이며, 학습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기술한 도달점목표로서 재진술되고, 또한 최종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숙달해야하는 기초 기능으로서 하위목표들을 진술한다.수업의 결과 즉, 학습자의 학습된 결과를 예상하는 목표는 반드시 행동(외현적 행동과 정신적 활동) 또는 능력의 변화를 기대해야 한다. 특정 교과에 대한 내용에 대한 지식순히 기억하는 것(파지능력)을 넘어서서 배운 지식내용을 이해하고 활용하는(전이능력: 이해-적용-분석-평가-창안) 활동이 있어야한다. 따라서 의미 있는 학습은 지식을 기억-이해-적용-분석-평가-창안하는 과정 또는 활동을 통해 달성된다.학습성과 영역목표진술 예특징언어정보(VerbalInformation)수도인 도시의 목록을 보고 그 도시가 수도인 주의 이름을 말한다.언어정보 목적에서 학습자는 어떤 것을 진술, 나열, 설명한다. 학습자는 수업 동안 정보를 기억하고 시험을 칠 때 상기해낸다.지적 기능(IntellectualSkills)은행결산서와 수표책이 주어졌을 때, 수표책의 수입, 지출 및 잔액을 정산한다.지적기능은 학습자에게 어떤 인지적 활동을 요구하며, 개념 형성, 규칙 적용, 문제해결 등의 유형이 있다.심동적 기능(Motor Skills)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하고 작동시킨다.심동적 기능은 정신과 신체적 활동의 협력과 관련이 있는 것이며, 실제 근육운동을 해야 한다.태도(Attitude)평생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생활방식을 선택한다.태도는 특별한 선택이나 결정을 하는 경향으로 설명되며, 장기간의 목적으로서 단기간에 평가하기 어렵다. 태도목적의 성취여부는 직접 행위 하게 하는 것이다.2) 수업활동(학습활동)가. 수업활동의 의미와 성격수업활동(또는 수업방법/수업전략/수업절차/수업진행방식 등)이란 설정된 수업목표(학습목표) 달성을 위해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일련의 수업 사태(event) 또는 단계(stage)이다. 즉, 수업활동의 계획에는 “설정된 목표 달성을 위해 학생들이 수업의 무슨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학습해야하는가”에 대한 일련의 수업진행 방법, 전략, 절차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수업활동의 단계와 절차를 통해 학생들은 다양한 학습활동을 경험하게 되고, 설정된 학습목표에 도달하게 된다. 수업의 내용과 분리된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수업활동의 계획에는 수업의 내용(교과, 교과에 담긴 지식)을 학생들이 배우는 방법이 포함되며, 그 방법은 내용과 분리하여 습자의 주의를 유지시키며 제시한다.5. 의미의약호화5. 학습 안내/지도내용과 자료를 제시한 다음 학습자들에게 개별적인 학습안내와 지도를 제공한다.6. 반응6. 연습학습자들이 스스로 배운 내용을 연습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7. 강화7. 피드백 제공학습자들이 연습할 결과에 대한 수준이나 정확성 등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한다.8. 재생 단서8. 형성평가수업의 종결 시점에서 수업목표가 학습자들이 성취하였는지를 평가한다. 형성평가는 수업을 개선하기 위한 평가이다.9. 일반화9. 파지/전이의고양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지식, 기능)들을 학습자들이 지속적으로 기억, 활용할 수 있도록 요약-정리해주고, 다음 시간의 내용과 관련지어 준다.【일반적 수업진행절차】수업 전 활동Pre-instructionalactivities이미 배운 내용(지식)을 새로운 내용(지식)과 연결시켜줌으로써, 학습자의 정신 활동 활성화.동기 진작(Motivate Learner)목표 제시(Describe objectives)출발점 행동 확인(Describe or accessentry behaviors)수업내용 제시Contentpresentation새로운 개념을 정의하고, 개념들 간의 상호관련성을 설명해주며, 개념을 설명하는 실례의 종류와 유형 결정.학습계열 선정(Instructional sequence)내용 제시(Content)예 제시(Example)학습자 참여Learnerparticipation학습자에게 목표를 연습할 기회를 제공해주고, 연습의 결과에 대한 피드백(강화; 결과의 지식) 제공.연습 기회 제공(Practice)피드백 제공(Feedback)사정Assessment학습한 결과와 과정을 평가하고 사정함.출발점 행동 평가(Entry behavior test)사전 평가(Pretest)사후 평가(Posttest)추수활동Follow-throughactivities학습자의 기억과 전이 요구가 생겨났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전체 전략을 리뷰함.학습 파지 촉진(Memory aids for retentio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