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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뿔소가 나타났다
    코뿔소가 나타났다-서울국제공연예술제 평론코뿔소가 나타났다. 코뿔소의 등장으로 평화로웠던 마을은 혼란에 휩싸인다. 사람들은 하나 둘씩 코뿔소가 되어간다. 마을 사람들 전부 코뿔소가 되고 결국 남은 건 베랑제 하나다. 코뿔소가 되는 게 현명한 일일까? 인간으로 남는 게 현명한 일일까? 마지막 남은 인간인 베랑제의 저항은 미미하지만 처절하다.는 세계적인 극작가로 부조리극의 기수라고도 불리는 외젠 이오네스크(1909-1994)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이다. 그는 전체주의 정권과 이데올로기를 비난하기 위해 를 썼으며, 작품에 나타나는 '코뿔소'는 당시의 괴물로 비춰지는, 살인과 폭력, 테러를 자행하는 'SS부대'를 나타낸다. 는 '괴물성'이라 불리는 사회악적 존재의 등장과 사회의 구성원이 사회악적 존재의 등장에 어떻게 행동을 하고 어떻게 영향을 받는 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비판하고 있다. 비단 작품이 쓰인 1950년대 후반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시대에든 지탄받아야 할 사회악적 존재는 있고, 그 사회악적 존재에 영향을 받는 구성원이 있다. 작품이 쓰여진 1950년대 후반에도 그러했고 지금 역시 그러하다.연극은 정장을 입은 여러 명의 남녀 구성원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장소는 로펌 회사. 하지만 로펌회사를 나타내는 무대장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무대장치는 흰 벽과 거울 벽, 정사각형 모양의 의자가 전부다. 관객은 배우의 의상과 소품을 통해 그 곳이 회사의 사무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 베랑줴에게 있어 일상은 그저 권태로움의 연속이다. 고집도 야망도 없고 그저 알콜만 삶의 낙으로 삼는 베랑줴를 쟝은 마뜩찮게 생각한다. 그런 쟝과 베랑줴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을 때, 그들이 소속된 사회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도심 한복판에 코뿔소가 나타난 것이다. 권태와 야망을 놓고 싸우던 쟝과 베랑줴는 이제 코뿔소의 뿔과 서식지를 놓고 싸우기 시작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스스로를 논리학자라 지칭하는 회사동료들이 의미 없는-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며 궤변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의미없는 논쟁과 의미없는 논리가 상충되면서, 연극은 부조리극의 무의미성을 한층 더 빛내준다. 흰벽과 유리벽, 하얀 의자가 이동하면서 장소가 바뀐다. 무대는 유동적으로 변한다. 이게 단순한 장치의 이동인지 무대의 변화인지 는 제대로 구분할 수 없다. 이는 부조리극을 제대로 표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연극을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조금 혼란스러운 면이 있다. 장소의 변화인지 장치의 변화인지 모를 변동이 자꾸 일어나고 등장인물은 코뿔소가 되어가고 있다 말한다. 이렇다 할 표시도 없는데 등장인물들이 코뿔소로 변했다 하니 우리는 등장인물의 대사에만 의지해서 상황을 파악할 수밖에 없다. 여하튼 등장인물들은 하나 둘 씩 코뿔소가 되어간다. 논리랍시고 궤변을 늘어놓던 논리학자들부터 열정과 야망으로 가득 차있던 쟝까지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코뿔소가 되어간다. 코뿔소가 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코뿔소가 되길 원한다. 모두 코뿔소가 되고 나니 남은 사람들은 사람의 삶보다 코뿔소의 삶이 더 낫게 느껴지는 듯하다. 여기서 우리는 소수자보단 집단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심리와, 집단에 소속되면 올바른 관념이 희미해지고 집단과 함께 행동하며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면죄받으려 하는 인간의 심리를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코뿔소로 표현되는 이 것은 이 연극이 만들어진 1950년대 후반에는 SS부대를, 현재는 다른 부조리한 집단을 의미할 것이다. 도심의 사람들, 회사 동료들, 친구인 쟝까지 코뿔소가 되었다. 사랑하는 데이지 마저도 왜 코뿔소가 되지 않으면 안되냐고 하며 베랑줴를 다그친다. 그렇게 모두가 코뿔소가 되어간다. 인간이길 포기하고 자연으로 되돌아간 그들은 원초적으로 행동하며 베랑줴마저 코뿔소가 되길 독촉한다. 이제 베랑줴는 인간으로 사는 게 맞는 건지 코뿔소가 되는 게 맞는 건지 판단할 수 없다.
    예체능| 2012.04.13| 2페이지| 1,000원| 조회(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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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기 소리없이 한 줌 5월이 지고
    저기 소리없이 한 줌 5월이 지고-‘에서 까지 80년 광주를 다룬 영화를 중심으로’ 평론 메타비평※본 메타평론은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이 벌어졌다. 국가의 명령을 받은 계엄군이 민주주의를 위한 항쟁을 벌이는 광주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무수한 민간인 희생자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얽혀있고, 이데올로기가 설켜 있기 때문이다. 그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본 평론의 말처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는 턱없이 부족하다.1. 국가폭력이 잠식시킨 개인; 과 최윤의 소설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영화화한 장선우 감독의 영화 과, 이창동 감독의 영화 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그 이후로도 한 개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영화 을 살펴보자. 소녀는 정처 없이 거리를 헤맨다. 척 보기에도 미친 것 같은 그 소녀는 무자비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진압의 불필요한 피해자이다. 이념도, 사상도, 정치적 견해도 없던 소녀는 국가 때문에, 어머니도, 오빠도, 저도 잃어버렸다. 은 5·18 광주의 상황 전반을 담아내지 않는다. 하지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한 피해자를 계속해서 조명함으로써 광주 피해자의 처참한 현실을 이야기한다.이때 장선우가 선택한 것은 소녀의 진실이며, 그것은 소녀의 영혼을 갉아버린 공포와 죄의식이다. 은 광주를 전면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그렇다고 우회하지도 않는다. 영화는 장 씨와 소녀, 군부와 광주를 성적폭력과 정치적 폭력의 이중울림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집단을 중심으로 했을 때 놓치기 쉬운 개인의 문제와 개인을 중심으로 했을 때 배제되기 쉬운 집단의 문제를 다 같이 담아내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에서 보여 지는 ‘강간’의 의미는 간명해진다. ‘광주=강간당한 소녀’라는 메타포의 확장이 그것이다. 결국 ‘우리들’이 찾으려는 것은 잃어버린 순수의 시절이고,말한다. 소녀에게 닥친 성적 폭력을 광주에 닥친 국가적 폭력과 동일선상에 놓고 봄으로서, 광주에 닥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재조명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과연 소녀에게 닥친 ‘성적 폭력’의 문제가 온전히 광주와 국가폭력을 대변하기 위한 메타포 역할만 할 뿐일까? 소녀에게 있어, 개인이 가하는 폭력은 국가가 가하는 것에 댈 것도 아니다. 소녀의 머리속에는 온통 국가가 가한 폭력,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가득 차 있다. 개인이 가하는 폭력은 국가 폭력 앞에서 모조리 지워지며, 오히려 국가 폭력을 상기시키는 촉매가 된다. 국가의 폭력이 트라우마로 남아 개인적인 폭력을 당할 때에 그 국가 폭력을 끊임없이 재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그게 다였을까? 영화에서 보이는 간명한 ‘강간’의 문제를 비롯하여, 계속해서 이어지는 소녀의 ‘자학’, 소녀의 정신을 괴롭히는 ‘검은 휘장’ 등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경험은 이렇게 다양한 이미지로, 수시로 소녀를 괴롭힌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가해진 국가폭력이 한 개인에게 미친 영향은 한 단어로 명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과연 본 비평처럼 ‘강간’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영화 속의 소녀와 광주를 대변해 내는 게 옳은 일일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연약한 소녀를 좀먹어 가고 있다. 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개인의 사적기억에 미친 영향은 이토록 지대하며, 영향을 받은 개인의 수 역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1999년부터 1979년까지 20년의 세월을 돌아가는 형식을 취한다. 1979년 순수했던 개인이, 1999년 최후를 맞이하는 한 개인으로써는 얼마나 추악한 삶을 살아왔는가에 대해 회고하는 형식의 이 영화는 국가가 한 개인을 얼마나 참혹하게 파멸시키는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국가폭력이 한 개인을 얼마나 잠식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순수한 개인이 폭력성을 띠기까지의 과정, 그 시작에 5·1. 이를테면 80년 광주에서는 우발적으로 총을 맞는 소녀의 모습으로, 운동권을 잡으러간 군산에서는 카페 여급으로, 그리고 김영호와의 마지막 만남에서는 애도하는 자의 역할로. 따라서 광주로 급파되는 영호와 면회 간 순임이 엇갈리는 장면은, 김영호의 강박증이 순임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설명하려는 상징적 장치이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광주를 거론하지도 단죄하지도 애도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애도하는 자로서의 여성주체가 강화되어버린 결과는 낳았다. 이렇게 은 냉랭한 공기가 맴도는 가운데 앞으로 나아가지도 역사적 배경 속으로 돌진하지도 못한 채, 한 인물의 굴절된 삶을 보여주고 그 원형에 80년 광주가 자리하고 있음을 제시할 따름이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말이다.이 역시 국가폭력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개인의 사적영향에 영향을 미친 경우를 영화로 나타낸 것이다. 영화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역사적 배경 속으로 돌진하지도 않는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굴절시켰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영화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사적기억이 개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개인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모든 영화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전반을 재조명하고 널리 설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관객은 바보가 아니다. 관객은 광주 속에 소속된 사람의 정신적 붕괴를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지만, 그것을 통해 경험과 아픔을 나눌 수 있다. 영화는 단죄하지도 애도하지도 않지만, 관객은 단죄하고 애도할 수 있지 않은가.2. 작전명 ‘화려한 휴가’, 그 날의 광주; 의 서사와 화법이 맘에 들지 않았어도 결국 용인할 수밖에 없었던 건, 그간 단 한 번도 작심하고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순차적으로 보여준 상업영화가 없었다는 점과, (5.18과 8.15를 혼동하는 시대에) 어찌됐든 많은 관객들에게 광주를 알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먼지처럼 많은 먹물들의 글과 영화가 해내지 못한 걸, 얕고 얇은 상업르고 가슴이 먹먹할지언정 그날 그 곳에서 벌어진 사건을 알지 못하고 살아온, 혹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방관하며 침묵으로 광주를 타자화시켜버린 자신의 과거를 채찍질하고 후벼 파는 가슴앓이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이 드민 시선, 즉 소녀를 통해 광주를 이야기하고 광주를 통해 소녀를 바라본 그 도저한 시선이, 이 소녀에게 벌어진 일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을 알기는 하느냐 라는 날선 눈초리가 에는 남아 있지 않다. 카메라는 무고한 시민이 어떻게 총을 들고 시민군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하여 필요 이상의 명분을 제공하려 애쓰며, 그들의 눈에 비친 진압군이 살육기계로 둔갑하는 동안 장엄하게 그러나 값싼 상업주의에 담보 잡힌 이미지들이 스크린을 뒤덮을 따름이다. 때문에 영화는 지나치게 잔인하지도 않고 쓸데없이 처절하지도 않은 대신 오히려 관객을 안심시키고도 남을 정도다. 역사의 단면을 보여주었으되 이미지의 과잉이 뒤바꿔버린 판타지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러한 안도감은 과거의 기록이자 박제된 역사라는 광주를 둘러싼 정치적 현실에 기인한다. ‘광주는 과거일 뿐이고 지금은 대화합의 시대가 아니냐고.’ 종결지어진 역사, 투쟁의 기록은 화해와 용서로 그렇게 서둘러 봉인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영화 속 광주는 더 이상 민주화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또 필자 역시도 본 평론이 말한 것처럼, 가 한 편의 매끈한 스펙터클에 치중하고 있는 상업성이 강한 영화라는 것에 공감하는 바이다. 영화는 그 무자비한 살육현장을 화려하게 잘도 이미지화하였다.그러나 그게 과연 이미지뿐일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 가 현실보단 판타지에 가까운 영화라 판단될 수 있다. 그러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재고해 보려 하는 관객의 눈에 비친 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현실성 있는 영화라 비칠 수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필자가 가 그 날의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잘 그려냈다고 말한 것은 비단 전남도청과 떻게 희생되었는지가 나타났다. 이 모든 뛰어난 현실묘사를 판타지성이 만연한 상업영화라는 이유로 덮어버리기에는 아쉬운 점이 너무 많다. 마지막 날 밤, 도청에서 계엄군과 시민군이 그들만의 전쟁을 벌일 때, 여주인공은 확성기를 들고 광주를 돌며 끊임없이 외친다.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 “광주를 잊지 말아 주세요.” 필자는 영화가 이러한 여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관객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구현해 냈다고 생각한다. 광주에 대한 관심환기와 사실고발. 비록 영화가 상업적인 측면이 많고 스펙타클한 액션을 추구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장점까지 간과해 버리면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전반과 그 속에 살았던 광주 시민들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서, 2000년대를 살아가는, 광주를 교과서로만 아는 관객들에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재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본 평론의 필자의 말처럼 ‘광주는 과거일 뿐이고 지금은 대화합의 시대가 아니냐고.’ 종결지어진 역사, 투쟁의 기록은 화해와 용서로 그렇게 서둘러 봉인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영화 어디에서 드러나는 지 궁금할 따름이다. 가 하고 싶은 말은, 대화합의 시대, 국가가 봉인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참혹한 역사를 우리는 재고하고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가 아닐까 싶다. 다른 영화를 옹호하기 위해, 지나치게 영화의 단면적인 단점을 부각시키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4. 당신의 ; 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5월의 투사들이 어떻게 저항하고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는지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아니다. 30년 전 그날로 되돌아가 열흘 동안을 복기하는 가운데, 광주가 살아남은 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보여주는 증언이다. 역사의 현장에서 외부자로 물러났던 여성, 남성에 의해 호명 받아 등장할 수 있었던 여성 혹은 애도하는 자로서의 여성을 현장의 전면으로 불러냈다는 점은 특별히 기억해야 한다. 이제 그들은 그날을 가슴에 품고 각자의 삶을 살아이다.
    예체능| 2012.04.13| 5페이지| 1,500원| 조회(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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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쾌하지 못한 당신의 시야를 블라인드
    유쾌하지 못한 당신의 시야를, 블라인드(Blind).언론매체는 연일 사회범죄에 관련된 내용을 보도한다. 살인, 실종, 성범죄, 기타 등등, 흉악한 세상이다. 블라인드는, 이제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 일련의 사건들을 영화에 담았다. 이 영화는 사회 속에서 일어날 법한 범죄를, 현실성 없는 방법으로 잔혹하게 표현해 보는 사람을 불유쾌하게 만든다.경찰을 꿈꾸던 유능한 경찰대생 수아(김하늘 役)는 사고로 동생과 시력을 잃는다. 그런 수아가 뺑소니범을 '목격'한다. 수아는 이 뺑소니범을 잡기위해 고군분투하고, ㅡ알고 보니 납치, 살인에 장기밀매까지 하고 있던ㅡ 이 범인은 자신을 목격한 수아와 또 다른 목격자 기섭(유승호 役)을 제거하려 한다.범인을 잡기 위한 주인공들의 노력과 주인공을 제거하기 위한 범인의 악행을 고스라니 담은 이 영화는 꽤나 잘 만든 스릴러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상식선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전개, 우연의 연속. 오직 스릴러(:관객이나 독자에게 공포감이나 흥취를 불러일으키 목적으로 만든 연극·영화나 소설 따위. ㅡ출처: 네이버 국어사전)만을 위한 스릴러 영화였기에, 이 영화는 관객을 불유쾌하게 하는 영화이다.자신의 실수로 시각과 동생을 잃은 수아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3년을 살았다. 안내견 슬기도 없이 자신이 자란 고아원을 찾아간 수아는, 원장어머니와의 트러블로 인해 안내도 보호도 없이 시각이 되어줄 그 어떤 것을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채로 밖에 나오고 여기서 장기밀매를 자행하는 범인의 차를 모범택시인 줄 알고 착각해 그의 차에 올라탄다. 상식선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다. 시각장애인이 자신의 시각이 되어줄 그 어떤 것도 없이 밖으로 나온다는 게 상식선으로 이해가 가능한 일인가. 이 영화에서 이런 장면은 수도 없이 많이 나온다. 범인은 '굳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자신의 신상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수아와 기섭을 '굳이' 제거하려 한다. 왜? 시각장애인인 수아는 범인의 차를 모범택시로 알고 있고 또 범인의 생김새도 인상착의도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하는데, 범인은 굳이 전화를 해 수아를 도발하고 굳이 쫓아가 죽이려 한다. 기섭은 그 일련의 뺑소니 사건에는 그닥 큰 관심도 없고 범인의 차가 외제차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게 없는 어쩌면 사건 외의 사람이었는데, 범인은 굳이 나서 기섭을 죽이려 들어ㅡ여기서도 충분히 죽일 수 있었는데 범인은 또 굳이 기섭을 살려둔다ㅡ 기섭을 사건으로 끌어들인다. 분명 극의 진행에는 필요한 상황이지만 억지스러운 감이 없지 않다. 지하철 장면도 역시 마찬가지다. 유동인구가 많은 오픈된 공간인 지하철에서 등장인물들은 칼부림을 서슴지 않는다. 범인은 자신의 신상이 노출되는 걸 꺼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들에게 스스럼없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CCTV가 있거나 유동인구가 있을 법한 공간에서도 주인공들을 제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가장 억지스러웠던 고아원 격투 장면, 범인은 기섭은 제쳐두고 오직 수아만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한다. 기섭은 안중에도 없다. 주인공들과 범인은 아무리 칼로 찌르고 불을 지르고 해도 끊임없이 살아나고 일어나서 서로를 제거하려 한다. 여전히 범인은 수아만을 노린다. 시각장애인인 수아는 벽돌로 범인을 내려친다. 몸에 불을 질러도 살아난 범인은 그제야 쓰러진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게 상식선으로 말이 되는 이야긴가 싶다.또 스토리의 진행은 대부분 우연히 이루어진다. 범인이 수아의 연락처를 알게 되는 것도 우연. 기섭이 또 다른 목격자인 것을 알게 되는 것도 우연. 지하철에서 범인이 수아를 따라다니는 걸 기섭이 본 것도 우연. 조형사가 범인을 발견한 것도 우연. 영화는 이러한 굵직하고 중요한 일련의 사건 외에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사소한 사건들까지도 우연에 의지한다.
    예체능| 2012.04.13| 2페이지| 1,000원| 조회(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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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안토니
    오! 안토니-연극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평론?일본 공연연극계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니나가와 유키오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라는 작품을 가지고 내한했다. 이미 일본과 서양에서 극찬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배우의 연기는 최고였다. 클레오파트라(아란 케이)는 초반에는 사랑에 빠진 그러나 적당히 밀고 당기기를 할 줄 아는 통통 튀는 여자로, 후반에는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이자 한 국가의 위엄있는 여왕인 역할을 충분히 잘 소화했으며 관객들에게 잘 보여주었다. 안토니(요시다 코타로) 역시 클레오파트라의 치마폭에 쌓여 국정을 잊었지만 권위만은 잃지 않은 사랑에 빠진 영웅으로써의 역할을 잘 해내었다고 생각한다. 연극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영웅적인 면모와 여왕의 면모보다는 깊은 사랑에 빠진 남녀로써의 모습이 더 부각되었는데, 이는 “나라의 운명을 뒤흔든 두 연인의 치명적 사랑”이라는 연극의 취지에도 잘 어울리는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노바버스(하시모토 준)와 이로스(니탄다 마사즈미) 캐릭터였다. 안토니에 대해 충성을 바치던 두 신하 이노바버스와 이로스는 다른 말로를 겪는다. 이노바버스는 안토니를 배신하지만 이를 후회하고, 이로스는 안토니를 끝까지 충직하게 보좌한다. 이 둘의 충절은 연극을 보는 내 가슴을 짠하게 만들었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 역시 왜 세계무대에서 극찬을 받았는지 단번에 이해가 될 정도로 훌륭했다.무대 연출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시간이 조금 넘는, 어쩌면 지루할 법도 한 연극에 중간 중간 개그 요소를 가미해 폭소를 터트리게 해주었다. 또 객석을 활용하여 좀 더 넓은 공간을 연극 무대로 이용하였다. 놀라웠던 것은 전쟁장면 이었는데, 각각 다른 군의 군사들이 각각 다른 방향에서 무대를 한 바퀴 뛰어 돌고 나가는 게 전쟁장면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전쟁장면이 꽤나 나오는 연극임에도 불구, 전쟁 장면은 잔혹하지 하지 않고 특색있었으며 신선했다. 역사적으로도 꽤나 긴 세월을 세 시간의 연극 안에, 관객이 이해하고 감정적으로 동요할 수 있도록 담아내었다는 것 역시 대단했다.그러나 아쉬운 면도 없지 않아 있다. 장점이자 단점이었던 연극의 시간이 첫 번째로 아쉬웠다. 긴 세월을 담을 수밖에 없기에 연극이 길어진 것은 어찌할 수 없다지만 지루한 것은 사실이었다. 대사는 길고, 빠르고, 일본어로 이루어져 있어 무대보다는 자막을 보기에 급급했다. 또 세 시간 안에 모든 내용을 다 담아내야 하기에 장면은 빨리 전환되고 이로 인해 감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의아했던 장면은 시저(이케우치 히로유키)와 옥타비아(나카가와 안나)의 형제애였는데, 시저와 옥타비아의 형제애가 마치 연인의 사랑과도 같이 느껴져 조금 괴리감이 느껴졌다. 이게 일본의 정서일까, 서양의 정서일까 싶기도 하고. 성급하게 보편화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인인 나는 공감할 수 없는 형제애였다. 관객이 몰입해야 하는 장면에서 어설픈 연출, 혹은 어설픈 연기를 해 관객이 폭소를 터트렸다는 점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토니가 죽어가며 클레오파트라에게 가는 장면에서, 쓸 데 없이 객석과 계단을 활용해 안토니를 옮기는 역할을 하는 배우들이 이동 도중에 휘청거렸고 그로 인해 1층의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안토니가 죽기 직전, 절절한 감정신이 나와야 하는 그 장면에서 그런 상황이 연출되자 이입된 감정이 재빨리 사라진 기분이었다. 클레오파트라의 자살 후, 인형 뱀이 무대 위를 기어나가는 장면 역시 관객들이 폭소하게 만들었다. 처음에 독사랍시고 뱀을 꺼냈을 때 인형 뱀이 나왔을 때도 우스웠는데, 그 우스운 뱀이 무대를 혼자 기어나가니 더 우스웠다. 왜 하필 인형 뱀을 사용했을까? 좀 더 리얼한 모형 뱀을 사용했더라면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리지 않지 않았을까? 굳이 인형 뱀을 빼지 않고 뱀이 사라졌다는 가정 하에 연극을 진행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무대에 설치된 흰 벽은 장면 변화에 따라 정사각형도 됐다가, 사다리꼴도 됐다가 하는 등 자유롭게 변화한다. 그 위에 그림이 덧씌워지는데 이는 조명으로 주는 효과인 듯하다. 이집트와 로마, 전쟁터 등 다양한 장면을 한 무대 위에서 연출해야 하기 때문에 이 같은 연출은 탁월한 선택이라 말할 수 있겠다. 장면 변화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이집트는 스핑크스, 로마는 사자상 등 장면을 상징하는 상징물을 매번 갖다 놓았는데, 많은 무대장치 없이 거대 상징물 하나로 장면변화를 표현해 내었다. 장면 변화가 잦은 연극이기에 이렇게 상징물을 이용해 장면변화를 알려주는 것은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장면변화가 잦은 연극인데 부피가 큰 상징물을 계속해서 사용한다는 것은 조금 쓸데없는 시간 소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연출가가 장단점을 고려하여 단점보다 장점이 더욱 커 선택한 방법이겠거니 했지만, 그래도 상징물이 조금 작았으면 더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수적으로 연못, 꽃 장식, 강 등을 부직포 등으로 제작해 간결하게 표현해 필요할 때마다 사람이 빠르게 갖다놓는 식으로 연출이 되었다. 이 역시 잦은 장면변화에 맞추어 간단하게 제작된 듯 했지만, 이건 거대 상징물과는 다르게 너무 간결하게 만들어져서 또 아쉬웠다. 강과 꽃은 부직포로 제작이 되어 언뜻 보아도 학예회 수준이구나 하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3층에서 봐도 허술해 보이는데 좀 더 가까이서 봤다면 더 허술했겠다 싶기도 했고. 디테일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더 좋은 재료로 섬세하게 무대 도구를 제작했다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체능| 2012.04.13| 2페이지| 1,000원| 조회(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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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역사적 아방가르드와 네오 아방가르드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20080017 노수영1. 아방가르드의 개념아방가르드(Avant-garde)는 불어이다. 우리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전위(前衛) 혹은 최첨단(最尖端)이다. 군대용어로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종의 척후병이나 특공대 같은 것을 말한다. 즉 주력부대가 안전하게 진군할 수 있도록 앞서가며 진격로(進擊路)를 확보하는 전위부대를 가리킨다.'아방가르드'란 단어는 19세기 말경까지 군사적인 용어에 뒤이어 정치사회적인 용어로 사용되다가 20세기 초엽에 되어서야 미학적인 범주로서 범위가 확장된다. 하지만 미학적인 범주로서 아방가르드의 의미는 기존의 정치사회적 아방가르드와는 분명 변별성을 가진다.20세기에 와서 아방가르드의 개념은 어떤 한 분야에만 적용되기 보다는 사회적, 문화적, 예술적 현상들과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된다. 19세기 후반에 이 용어가 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위한 유토피아적 강령을 요구하는 진보적인 정치사회적 행위를 가리켰다면, 20세기 초반부터는 문화예술적인 측면까지 확장하여 기존의 미적 규범들을 일체 재고하는 일련의 급진적인 문화 움직임을 가리킨다. 아방가르드 미학에 권위자인 독일의 미학자 페터 뷔르거는 아방가르드의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어떤 하나의 사회적 실천이 돌연 전통적인 미적 규범과의 완전한 '단절(discontinuity)'을 성취하면서 전통을 송두리째 대처할만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식될 때, 그 '어떤 사회적 실천'을 페터 뷔르거는 아방가르드라고 정의하고 있다")그의 견해에 따르면 어떤 시대 어떤 사람들이 이전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사회적 실천을 통하여 과거와는 소통이 불가능한 혁명적 상황을 연출한 경우 그것을 아방가르드라고 정의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와의 연속성을 '단절'시키면서 새로운 차원의 미래를 열어가는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미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전통적으로 계승되어져 온 모든 가치체계를 전면 부정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언어를 창출해가는 일련의 사회적 실천을 의미한다.아방가르드가 예술적 성공을 거둔다면, 이미 그 아방가르드는 실패한 예술이 되고 만다. 이러한 역설이 아방가르드의 본질이 아닌가 한다. 아방가르드는 항상 기존의 질서와 규범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절대 주류의 위치에 설 수 없다. 만약 아방가르드가 주류의 위치에 있다면 이는 이미 아방가르드의 본질이 퇴색되어 버린 또 하나의 규범, 질서로 둔갑된 것이다. 그것은 곧 '과거'로서 또다시 '공격받아야 될 대상'인 것이다. 이처럼 아방가르드는 영원히 존재하기도,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아방가르드 개념 설정 기준에 따라서 예술작품 영역도 유동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방가르드 연극이라는 역사적 틀을 설정하고 그에 해당되는 작품을 연구하는 이유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전통과 단절된, 새로운 개념이 부상된 작품들이 뚜렷이 등장했기 때문이다.2. 역사적 아방가르드‘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는 경계가 제대로 구분지어지지 못한 개념이다. 이는 곧 포스트모더니즘과 네오아방가르드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우선, 아방가르드의 존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분명 모더니즘과의 관계를 따져봐야 한다. ‘전통과의 단절’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현된 아방가르드는 실상 20세기 이전 전통예술양식과는 확연히 구분되지만, 정작 시기적으로 동일한 위치에 있는 모더니즘 예술과는 그 관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모더니즘은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예술양식을 만들어낸 양식무대라고 한다면, 아방가르드는 1910년 경 미래주의와 그 보다 조금 뒤늦게 나타난 다다운동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개혁’이 아니라 전통과의 철두철미한 ‘단절’을 조장하고, 종래의 유효했던 모든 미학적 규범을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것에서부터 예술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탄생시켰다. 아방가르드의 시초가 되는 것은 19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 1873~1907)에 의해 이루어졌다. 1896년 12월 10일 파리의 테아트르 드 뢰브르에서 초연된 자리의 ≪위뷔왕≫(Ubi Roi)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세기 말 연극계에 하나의 북소리처럼 울려 퍼져 전대미문의 스캔들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로써 자리는 모든 다다주의자들과 초현실주의자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리고 그 후 그의 연극미학은 파리에 알프레드 자리극장을 세운 앙토냉 아르토에 의해 수용되었다.다음은 다양한 아방가르드 연극실험들의 특징을 말한다. 첫째로, 연극실험들은 조형예술과 아주 밀접한 관련 하에 발전되었다. 그것들은 다소 추상적인 연극의 시도로서 ‘오브제 연극’을 일관되게 추구하면서 오로지 빛, 색깔, 소리를 사용한 연극, 즉 무대 위에 인간이란 배우가 존재하지 않은 형상인물극을 발전시켰다. 이것은 결정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와 자연과 유기적인 것으로부터 기계적인 것과 구성으로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둘째로. 미학적 관습상 예술에 적합하다고 여겨지지 않았던 장르나 매체, 즉 서커스, 곡예, 스포츠, 바리에테, 필름, 사진투사, 신문과 속성화 등이 차용되어 고정 프로그램으로 조립되었다. 이런 프로그램은 도발적이어서 관습적인 예술수용에서 보여지던 정숙성을 깨는 극단적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셋째로, 일반에게 공개되는 행동들과 저녁공연을 연극화하여 헤프닝으로 표현했는데 실제 삶의 상황이 예술적 행위로 선포되었다. 미리 조작된 스캔들로 도전받고 자극받은 관객이 주인공이 되었다. 놀이성과 진지함의 차이와 대비가 지양되고 하나의 새로운 예술과 삶의 동일체가 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것은 무엇보다 종래의 예술에 대한 이해를 극단적으로 부인함으로써 관객을 아주 격렬하게 자극했던 연극적 행위예술 형식들이었다.이와 같이 아방가르드 공연예술은 전통과의 단절 그리고 단절로부터의 새로움을 통해 관객과의 새로운 의사소통 체계를 만들어갔다. 물론 정신적인 측면에서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의 유사성은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단지 극히 부분적인 것으로서 그 본질에 있어서는 분명 다른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다음 인용문은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의 관계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글이다.결론적으로 ‘아방가르드 공연’은 모더니즘과 그 이전의 텍스트 중심 재현주의 예술과 비교분석을 통해 그 개념 지을 수 있다. ‘아방가르드’의 개념은 언어를 사용한 정제된 깔끔한 단일문장으로서 정의할 수 없다. 그것은 ‘아방가르드 정신’을 기반으로 탄생된 수많은 예술현상들의 공통적인 ‘특성’, ‘양상’, ‘성질’, ‘소통체계’ 로서 대체할 뿐이다.또 이때 발생된 미래주의는 아방가르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미래주의는 20세기 아방가르드의 시발을 의미했다. 미래주의는 스캔들의 전략에 따르고 예술과 삶을 일치시킨다는 아방가르드의 요구를 철저히 실현시킨 군중연극의 형식들이었다. 미래주의의 저녁공연, 실내공연, 거리공연, 공개적 자기표현의 요란한 형식 등으로 나타나 굉장한 연극적 효과를 노린 대중집회로 이루어져갔다. 저항행위는 예술행위로 선포되었고, 스캔들은 재빨리 형성된 제의식 속에서 미화되었다. 매우 도발적이고 문화비평적인 선언문들의 낭독, 군중의 혼란스러운 소동, 즉 소음, 구타, 물건 집어 던지기를 이끌어내기 위한 행위전략, 과도한 변장, 투시화 내걸기, 연극적 행렬등이 제의화되었던 것이다. 거기에서 관객은 공동행위자가 되었다. 실제 삶의 상황이 모든 참가자들에게 바로 연극이었다. 이런 형식들을 다다운동이 받아들였고, 60년대 헤프닝으로 계속 발전되었다. 또 미래주의 연극의 특징은 조형물 특히 오브제의 활용을 살펴볼 수 있는데, 그것들이 무대 위에서 배우나 텍스트 그 이상의 권위를 부여받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빛, 소리, 음악, 조형물을 강조시켜 기호학적 해석보다는 물질 그 자체로 물질성을 강조하는 표현방식에 이른다.이후에 나타난 다다역시 아방가르드 연극에 영향을 미쳤다. "다다는 용기, 경멸, 우월, 혁명적 지향, 지금까지 지내해 온 논리와 사회적 계급의 타파, 역사의 부정, 완전한 자유, 무정부주의, 시민의 타파를 의미한다.”라고 베를린에서 취리히로 온 다다이스트 리하르트 휠젠벡(Richard Huelsenbeck, 1892~1974)이 얘기했다. 다다운동은 유럽국가의 반대적 성향을 띤 지식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전쟁의 발발로 엄격한 검열이 행하자 유럽지식인들은 망명을 택함으로써 각자의 조국에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에서 벗어났다.3. 네오아방가르드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구분이 그러하듯, 아방가르드와 네오아방가르드의 개념에 대한 연구도 학자들의 시각에 따라 시시각각 상이하다. 네오아방가르드를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모방에 불가할 뿐이라고 아류로서 치부해 버리는 입장과, 반대로 네오아방가르드는 표면적으로 역사적 아방가르드를 모방하지만 그 본질은 다르다고 주장하며 생산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긍정적인 입장이다.
    예체능| 2012.04.13| 4페이지| 1,000원| 조회(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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