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짓 존스의 일기와 오만과 편견 인물 비교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몸매도 뚱뚱하고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지도 못하는 노처녀인 Bridget Jones가 노처녀신세를 벗어나기 위해 남자친구를 구하는 과정에서 Daniel과 Darcy라는 두 남자를 만나고 두 남자의 첫 인상과 본성이 같지 않음을 알고 처음 만났을 때 생겼던 오해를 풀고 결국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남자와 사랑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마지막에 Bridget의 사랑을 얻는 남주인공의 이름이 Darcy인 것만 봐도 오만과 편견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영화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또 마지막 Darcy집안의 파티장면에서 Darcy집 벽에 걸려있던 수많은 초상화들은 감독이 의도했던 것이든 나 혼자 느낀 것이든 Pemberly 저택을 나타내는 것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2005년에 나온 오만과 편견이라는 영화가 따로 있는데서 알 수 있듯이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고전 소설 오만과 편견과는 다른 점이 있다. 이 차이점들은 주인공 남녀의 편견이 서로의 애정을 멀어지게 하다가 결국에는 편견이 풀리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는 주요 줄거리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이것을 풀어가는 인물들이 19세기가 아니라 현대 영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대부분 나타난다. 그래서 여기서는 오만과 편견에서 나타나는 19세기 영국 인물들과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주인공인 현대 영국인들을 비교해보고자 한다.1. Elizabeth와 Bridget Jones소설과 영화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와 브리짓 존스는 영화에서 가장 많이 바뀐 캐릭터이다. 원작과 영화가 다른 부분은 대부분 브리짓 존스가 엘리자베스와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둘 사이의 차이점을 알아보면 소설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의 특징은 분별력이라는 단어로 나타낼 수 있다. 엘리자베스 본인이 특히 분별력을 강조하고 스스로에 대해서 분별력이 있다고 자신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으며 다시나 제인, 가디너 부인 등이 엘리자베스의 분별력을 인정하기도 수 있다. 영화 오만과 편견에서는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언니 제인보다 훨씬 예쁘게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브리짓은 남들보다 똑똑하지도 않고 일을 잘하지도 않는다. 첫 번째 직장이던 출판사에서 개최한 파티에서 사회를 맡은 브리짓은 긴장해서 마이크 키는 법도 까먹고 사회 멘트조차 버벅거린다. 다니엘과의 사이가 멀어진 후 새 직장을 얻기 위한 면접에서도 브리짓은 번번히 퇴짜를 맞고 그나마 구한 새 리포터 직에서도 그녀는 실수를 연발한다. 외모도 엘리자베스 만큼 좋지 않다. 소설에서 엘리자베스의 몸매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지만 날씬한 몸매를 강조하는 요즘 사회에서 브리짓의 몸매는 뚱뚱한 편에 속한다. 본인도 자기가 남들보다 뚱뚱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몇 번에 걸쳐 다이어트를 시도하지만 의지도 약해서 번번히 실패하고 만다. 취미에서도 두 주인공의 차이가 드러난다. 엘리자베스는 남는 시간에 주로 편지를 쓰거나 책을 쓰는 반면 브리짓은 소파에 누워서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시면서(혹은 둘 다 하면서) 티비를 보는게 고작이다. 이런 차이는 소설과 영화가 추구하는 목표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소설 오만과 편견은 작가인 제인 오스틴이 생각하는 올바른 결혼관에 대한 이야기이며 엘리자베스 뿐만 아니라 리디아, 제인, 샬롯 등의 결혼을 통해 어떤 결혼이 올바른 결혼인지 독자에게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보고 많은 사람들이 마치 내 이야기인 것 처럼 느낄 수 있도록 가볍게 만든 영화이다.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가 당시의 순종적인 대부분의 여성들과 달리 분별력 있고 돋보이는 존재라면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브리짓은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여성들과 비슷하거나 어쩌면 좀 더 못난 인물이다. 실제로 브리짓의 몸무게는 당시 미국 여성들의 평균 몸무게를 바탕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브리짓의 뚱뚱한 몸매와 일과 연애에서 번번히 실패해고 혼자 쓸쓸히 티비를 보는 모습은 관객들의 여자가 남자와 결혼을 해서 집안 살림을 맡아 하거나 결혼을 하지 못하면 가까운 인척의 집에 머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엘리자베스는 요리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지주집안의 딸이고 요리는 집안의 하인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브리짓 존스는 뛰어나게 능력이 있지는 않지만 스스로 돈을 버는 여성이다. 첫 번째 직장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되자 스스로 두 번째 직장을 찾아 나선다. 또 일뿐만 아니라 요리도 잘 못하지만 어쨌건 스스로 해보려고 노력한다. 특히 이런 시대적 차이는 여주인공이 사랑을 쟁취하는 모습에서 가장 크게 드러난다. 엘리자베스는 19세기의 다른 여성들과 같이 무도회에서 남성이 자신을 선택해주기를 기다리고 다시가 자신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엘리자베스가 위컴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때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무도회에 최대한 신경써서 옷을 입고 가고 무도회장에서 그를 찾아보는 것 정도가 엘리자베스가 한 구애를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결혼에 대한 희망도 소설에서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나마 가장 크게 드러낸 부분은 엘리자베스가 펨벌리 저택에 갔을 때 ‘내가 이 저택의 안주인이 될 수 있었을 텐데’하고 후회하는 부분 정도이다. 하지만 브리짓은 다르다. 그녀는 자기가 노처녀인 것을 못 참아 하고 남자친구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다니엘을 유혹하기 위해 짧은 치마와 속이 비치는 블라우스를 입고 오기도 하고 영화 마지막에서는 집을 나간 다시의 편견을 풀기 위해 속옷만 걸치고 길거리로 나오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다른 캐릭터와 비교해봤을 때 엘리자베스와 브리짓은 가장 공통점이 적은 캐릭터이다. 하지만 소설과 영화의 목적과 시대배경에서 두 주인공의 성격에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한가지 같은 점이 있다. 바로 못났건 잘났건 간에 당당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누가봐도 완벽한 신랑감인 다시의 고백을 매정하게 거절해 버리고 브리짓은 바람둥이 상사를 향해 독설을 연기한 남배우가 BBC판 오만과 편견에서 다시역을 맡은 Colin Firth라는 점을 봐서는 더욱 그렇다. 다시캐릭터는 영화와 원작이 크게 바뀌지 않았는데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19세기의 계급제도가 현대에 와서는 없어졌기 때문에 다시가 신분상으로 다른 인물보다 우월하지 않고 영화에서는 브리짓의 애정을 쟁취하는데 긴장을 높이기 위해서 다시의 라이벌인 다니엘(소설에서 위컴)의 비중을 비교적 높이고 다시가 일방적으로 위컴 보다 우세한 입장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만과 편견에서 피츠윌리엄 다시는 혈통상으로도 귀족의 혈통이고 경제적으로도 연 1만 파운드의 수입에 더비셔에 으리으리한 저택을 가진 넘볼 수 없이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이다. 태생부터 롱본가나 메리튼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는 무도회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오만하게 대하고 깔보는 태도를 취한다. 그에 비해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마크 다시는 인권변호사로서 경제적으로 모자람이 있는 인물은 아니지만 라이벌인 다니엘이나 다른 사람에 비해 특출 나게 돋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19세기 영국과 달리 태생이 큰 의미를 갖지 않기 때문에 마크 다시는 근본적으로는 브리짓이나 다니엘과 다르지 않은 한 사람일 뿐이다. 계급의 문제와 더불어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다시와 다니엘의 관계도 소설에서 관계와 약간 달라진다. 소설에서 위컴은 다시의 아버지 밑에서 청지기 일을 하던 Mr. 위컴의 아들이다. 태생적으로 다시보다 열등한 계급의 자식이고 다시의 아버지가 위컴에게 남기기로 했던 목사직의 추천권이 다시에게 있었기 때문에 오만과 편견에서의 다시는 위컴보다 우월하고 관대한 인물로, 위컴은 다시보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열등한 인물로 나타난다. 하지만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다니엘은 출판사를 경영하는 다시 못지 않게 경제적 능력이 있는 남자인데다가 여자를 다루는데 있어서도 능숙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다시보다 나은 남자로도 묘사된다. 결정적으로 둘 사이에 적대적 관계가 생기게 된 사건이 다니엘이 다시의 약혼녀를 빼앗은 기의 남성상과 21세기 남성상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다시는 소설과 영화에서 가장 변화가 적은 캐릭터이다. 근본적으로 과묵하고 그 정도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오만하며 오해를 받기 쉬운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또 소설의 줄거리에 따라 처음에는 다시가 엘리자베스와 브리짓에 대해 좋지 않게 평가하는 말을 하고 여러 가지 소문과 오해를 통해 서로 편견을 가지고 싫어하다가 최후에는 오해가 풀려서 진실한 사랑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동일하다. 또 여주인공의 마음을 바꾸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다시의 도움을 받는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오만과 편견에서 다시는 리디아와 위컴의 결혼을 성사시키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줘서 엘리자베스의 감사하는 마음을 얻어내고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다시는 브리짓 본인의 기삿거리를 제공해서 큰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위컴이나 다니엘과 달리 여주인공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점에서 소설, 영화를 해피엔딩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3. Wickham과 Daniel소설에 비해서 영화에서 비교적 입지가 높아진 캐릭터는 Daniel이라고 할 수 있다. 오만과 편견에서 위컴의 직업은 군인이지만 이 직업도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위컴은 습관적으로 빠지는 도박을 끊지 못하고 금전적으로 항상 모자란 생활을 하는 인물로 나오며 Miss King을 만나는 사건등을 볼 때 애정보다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여자를 만나는 캐릭터이다. 그래서 다시 아버지의 사후 다시에게 경제적인 원조를 받고 소설의 막바지에서도 리디아와의 결혼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와 베넷씨의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 캐릭터로 나온다. 하지만 브리짓존스의 일기에서 다니엘은 마크 다시와의 경쟁을 위해서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으며 능력도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다니엘의 직업인 출판사 사장은 마크 다시와 비교해도 크게 모자라지 않으며 오만과 편견과 달리 다시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도 않는다. 한술 더 떠서 다시의 약혼녀를 빼앗는 모습까지 한다.
믿음으로 이어진 가족이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블라인드 사이드를 보고윤리교육과2007073001김성엽이 영화는 실제로 볼티모어 레이븐즈에서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마이클 오어 선수의 실화를 다루어서 화제가 된 영화이다. 주인공인 마이클 오어는 어렸을적에 마약중독에 빠진 진짜 어머니와 강제로 이별을 하고 여러 가정을 전전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어디 한군데에서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190cm가 넘는 큰 키에 발달한 운동신경이 미식축구 코치의 눈에 띄어서 상류층 사립학교로 전학가게 되지만 거기에서도 이전 학교의 성적 미달 때문에 운동은 커녕 학교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게 되고 무엇보다 하루하루 잠자리를 걱정하는 생활을 유지한다. 추수감사절 전날 밤 오어는 추운 날씨에 반팔 티 한 장만을 걸치고 체육관에서 잠을 자기 위해 가고 있던 중 오어의 인생을 바꾸어줄 리 앤과 만나게 되고 리 앤은 오어가 잠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 바람을 피하고 가게 해 주고 추수감사절을 함께 보낸다. 처음에는 그저 하룻밤 머물게 해 줄 생각에 오어를 데려왔지만 오어의 순수한 성격과 딱한 사정을 알고 난 후 확고한 성격의 리 앤은 결국 오어와 함께 살기로 하고 딸 콜린스와 아들 SJ의 도움과 결정적으로 리 앤의 적극적인 신뢰 아래에 오어는 학업 뿐만 아니라 미식축구에서도 크게 성장하게 된다. 오어는 어렸을 적 가정을 떠맡고 부양해야 하는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적성검사에서 자기보호본능 98%라는 매우 독특한 기록을 내는데 리 앤은 이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켜서 오어가 미식축구 선수로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길러낸다.영화에서 정확한 설명은 없지만 대강 보아도 리 앤의 가족은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백인 가정의 모습을 보인다. 양부모 모두가 백인이고 그들의 자식들은 상류층 학교에 다니며 집도 꽤 크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어보인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오어와 함께 다니는 모습을 보면 언뜻 보아도 편견이 생길 수 밖에 없다. 190cm가 넘는 큰 키에 덩치까지 큰 오어가 이들과 같이 다니면 뭔가 좋지 않은 이유가 있을 거라는 의심을 받기 십상이었다. 영화에서도 특히 딸 콜린스와 오어가 함께 다니니 조심하라는 주위사람들의 충고가 잦았다. 물론 리 앤도 처음에는 오어가 집에서 사고를 치지는 않을지 경계하는 마음을 놓지 않았지만 다행히 오어는 리 앤의 신뢰를 버리지 않았다. 또 백인 사회의 편견도 오어를 입양하는데 문제가 되었다. 리 앤의 이웃 여자들과 함께 커피를 마실 때 리 앤이 흑인을 입양한다는 이야기를 하자 대부분의 이웃이 이에 반대하거나 어떤 사람은 흑인에 대한 백인의 사죄를 하려는 것이냐고 묻지만 리 앤은 이에 대해 자신이 동정심에서 오어를 거둬들여서 오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어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리 앤은 또 오어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던 능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오어가 미식축구의 룰을 잘 이해하지 못하자 미식축구의 각 포지션을 가족들에 비유하면서 그가 할 일은 아들 SJ의 포지션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자 그제서야 오어는 경기의 규칙을 이해하게 되고 또한 리 앤은 보호본능 영역에서 98%의 높은 수준을 보이는 오어의 성격특징을 미식축구에서 적극적으로 살리도록 후원한다. 리 앤이 무작정 오어를 거둬들여서 단순히 밥과 먹을 곳을 제공했다면 오어도 여느 흑인과 다를 바 없는 성인으로 성장했겠지만 리 앤의 저런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오어만의 장점을 살려서 성공적으로 사회에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면 리 앤은 자기 원래 자식들 보다 오어를 더 챙기는 것 같기도 했다. 실제 경기에 나가서도 오어는 고비를 맞게 되는데 원래 연약한 심성을 가진 오어였기 때문에 거친 경기인 미식축구에서 상대편에게 몸으로 들이박는 태클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었다. 게다가 오어의 성격을 아는 상대편의 고의적인 도발로 실전에서 첫 번째 고비를 맞지만 오어를 당시의 자리에까지 올라오게 해 준 것이 가족이듯이 그를 위기에서 구해낸 것도 가족이라는 말이었다. 나의 팀은 나의 가족이라는 생각을 갖고 게임을 하라는 리 앤의 조언과 실제로 가족같이 오어를 대해주는 팀 코치의 배려는 위기의 순간에 팀과 오어를 승리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진심이 담긴 배려는 언젠가 그 보답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Forest gump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인 포레스트는 아이큐가 75인 지체 장애아이다.게다가 포레스트는 몸까지 좋지 않아서 다리에 철로 만든 보조기에 의지해서 걸어야 했고 허리도 물음표모양으로 휘어져 있다.이런 포레스트의 어머니는 열성적인 남부 여자였는데 그녀는 장애가 있는 아들에게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교육의 주기를 위해 장애인 학교가 아니라 일반학교로 아들을 입학시키기 위해 교장과의 말싸움도 아랑곳 하지 않는 성격이다.영화의 끝에 포레스트가 자신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보면 남보다 더 뜻 깊은 인생을 살게 되는데 그 밑바탕에는 이런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포레스트가 일반학교에 입학 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몸과 마음 모두 남들과 다른 포레스트는 다른 학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데 이런 중에서 홀로 포레스트를 감싸주는 ‘제니’를 만나게 된다.포레스트의 어머니가 포레스트의 인생에 밑받침과 같았다면 제니는 후에 포레스트의 인생의 목표나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또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중에 자신이 달리기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장기를 살려 고등학교에서는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을 하게 되고 대학교에서도 역시 미식축구를 하게 된다.이즈음 어릴 적 포레스트의 단짝이었던 제니는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하다 자신의 꿈인 포크송 가수가 되기 위해 대학교에서 제적을 당하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히피무리에 끼게 된다.청년이 된 포레스트는 대학졸업 후 베트남전에 참전하게 된다.베트남전에서 미군의 성과는 알다시피 끔찍했다.포레스트가 있던 부대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과 실전이 계속되던 중 부대가 적군의 공격을 받아 전멸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장기인 빠른 다리를 살려 부대원들을 구해내는 공로를 세우고 제대할때는 훈장까지 받게 된다.적의 공격을 받았을 때 포레스트 역시 약간의 부상을 입는데 이때 국군병원에서 심심풀이로 하던 탁구도 포레스트 특유의 무식한 집중력을 발휘해서 상당한 실력을 얻게 되었는데 여기에서의 경험을 갖고 탁구선수로 활동하여 미국 탁구팀의 중국방문 경기에 참가하기도 한다.여기에서 IQ75에 다리까지 불편한 장애인 포레스트가 이렇게까지, 영화후반부에서는 더 대단하게 인생을 사는 이유 중 하나를 알 수 있었는데 하나는 포레스트가 삶의 긍정적인 면만을 본다는 것이다.앞서 나열된 포레스트의 인생에서 어떻게 본다면 긍정적인 시기란 한번도 없다고 할 수 있었다.어린 시절에는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받았고 자신의 단짝이었던 제니는 히피족이 되어서 다른 남자와 만나고 있었으며 전쟁에 끌려가서 동료들의 대부분을 잃고 자신은 부상을 입고 국군병원에 입원해 있었다.하지만 포레스트는 괴롭힘을 받던 중에 자신의 달리기실력을 알았고 전쟁중에도 전쟁의 끔찍한 기억보다는 거기서 만났던 동료부대원들과의 좋은 기억만을 가지고 있었다.국군병원에서의 생활에서도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하던 포레스트였기에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지 않나 싶다.이후의 포레스트는 부대 동료들의 소원에 따라 새우잡이 사업을 시작해 백만장자가 되었다.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온 포레스트는 사업에 성공해 본 돈을 주위에 나누어주고 제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지만 그녀는 아이를 가졌지만 에이즈까지 걸린 피폐한 삶을 살고 있었고 포레스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이런 그녀를 기다리기 위해 포레스트는 3년 동안 무작정 앞으로 달리기만을 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고 결국 제니는 포레스트를 찾아내어 그를 받아들인다.
자크 마리땡(Jacques Maritain, 1882-1973)1. 약력자크 마리땡은 프랑스 여건으로는 예외적으로 프로테스탄 가정의 배경에서 태어나 솔본느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회의주의적 분위기에 휩쓸려 사회주의에 빠지기도 하면서 사상적 방황을 하던 중 카톨릭 학자인 베르그송(H. Bergson)과 레옹 볼로와(L. Boly)의 영향으로 카톨릭으로 개종하여 토마스 신학(Thomism)의 전문가로서 탁월한 신학과 깊고 순수한 신앙이 조화된 휼륭한 신자생활을 하였다.그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조명하였으며, 60권 이상의 저서를 남겼다. 세계 인권 선언의 주요 초안자 중 한 사람이다.2. 주요 도덕교육 이론)마리땡은 실증주의와 과학주의의 전성기에 소르본느 대학에 입학하여 자연주의적 기계론과 현상학적 이론이 팽배한 분위기에 강한 불만을 품고 인간 내부의 실재를 인식하여 인간의 정신적 능력을 강조하는 베르그송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 심취하였다.· 기독교적 인간관 : 마리땡은 유신론적 항존주의 철학의 대표 격으로 인간교육을 기독교적 인간관 위에 두고 있다. 인간다운 인간의 형성을 지향하는 교육을 위해 심리학적 습관, 조건, 반사, 감각, 기억 등을 취급하는 동물훈련과 같은 교육을 지양하고 지성과 의지에 의해 스스로를 유지하는 인격체로서 그리고 하나의 전체이며 독립적인 절대적인 인격으로서의 인정을 그 근저에 두고 무엇보다도 정신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사회와의 관계 : 인간을 육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와의 건전한 관계를 맺음과 동시에 의지를 올바르게 키우고 정신적 자유를 얻게 하는데 있다. 인간 교육은 사회단체와 관련되어야할 것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그 사회 안에서 그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어야 한다.· 교육의 역동성 : 교육 작용에서 역동적인 요소를 거론하자면 우리는 자연히 모든 학습은학습자에게 이루어지는 것이지 교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지식이란 인간의 영혼 속에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교사의 대행자적 역할에 의해서가 아닌 차원의 것이다. 그러므로 교사는 학생의 관심은 그가 이미 알고 있는 차원에로 환기시킬 뿐인 것이다. 이것은 학습자를 존중하는 소크라테스적 교수법을 가진 플라톤의 사상이라 할 수 있겠다. 회초리에 의한 교육은 확실히 좋지 못한 교육방식이다. 혹 이것을 역설적 사랑으로 부터 나온 교육행위라고 보아 옹호한다면 인간이 지닌 자발성의 원리는 말살되는 것이다.3. 마리땡 도덕교육 이론의 시사점마리땡은 교육의 목적을 인간 영혼과 정신의 자유로 보고 아동 안에 있는 정신적 능력을 신뢰함으로써 기존의 기계론적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한다. 기계론적 교육은 교육의 과학화에 기여하였지만 목적보다 수단의 중시, 인간에 대한 존중의 결여 등의 문제점을 낳았다. 마리땡의 교육관은 이러한 기계론의 문제점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4. 결론아동의 학습에 대한 역동성, 학습에서 교사의 역할, 체벌의 반대 등 마리땡의 교육관은 기존의 단순주입식 교육에 대한 반성과 학습자 위주의 교육관 등 현재의 교육관과도 부합하는 바가 있다. 그러나 마리땡이 교육내용으로 보았던 중세기때의 7과목은 현대 교육관과 현대 지식 발전에 맞추어 재편성할 필요가 있다.헤어 (Richard Mervyn Hare, 1919-2002)1. 약력)리처드헤어는 영국 섬머셋 지방의 블랙웰에서 태어나 1937년 옥스퍼드 대학 발리올 컬리지에 입학하였다. 그는 평화주의였지만 영국 포병에 자원하여 1942년부터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일본의 전쟁포로로 있었다. 이 때의 경험이 이후 그의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다른 사람을 도덕적 존재로서 살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는 그의 관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2. 주요 도덕교육 이론)헤어의 도덕철학은 규정주의(prescriptism)로 알려져있다, 규정주의는 도덕성과 도덕교육의 형식과 구조를 강조하는 대표적 윤리사상이다. 헤어는 도덕언어도 일반 언어가 갖는 형식과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여 “도덕언어는 일종의 규범적 언어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도덕 언어는 사실적 지식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규범적 해답을 제공한다는 뜻이다.)헤어는 도덕언어는 규정성과 더불어 보편화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비슷한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에 도덕언어는 보편성을 갖게 된다. 도덕언어의 보편화가능성으로 인해 우리들은 타인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여 그에게 도덕적 행동을 요청할 수 있게 된다.도덕판단의 보편화가능성이란 그 판단의 내용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도덕판단이 내려졌을 때 그 판단은 그 판단 속에 사용된 표현들을 지배하는 논리규칙(의미규칙)에 의하여 보편화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며, 도덕판단의 규정성이란 그 판단의 내용을 행동으로 옮길 것을 촉구하는 의미가 도덕판단 속에 들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바로 도덕판단이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에 바탕을 둔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숙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적용이 가능하고 실천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도덕판단의 논리적 특징인 보편화가능성과 규정성이야말로 도덕적 사고의 이성적 측면에 대한 윤리학적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는 단서가 된다는 것이다.· 도덕 판단과 행동의 관계 : 도덕교사는 그가 표방하고 있는 도덕 원리에 따라 진지하게 살려고 애써야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은 언행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어느 경우에도 언행의 불일치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도덕교육의 효과는 감소하게 될 것이다.· 도덕원리 채택의 이유 : 도덕교육의 결과로서 아동이 일련의 도덕원리들을 채택할 수 있어서 하나의 생활양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 도덕적 행위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왜 해야 하는가 하는 이유는 모를 수 있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면 도덕적 행위를 한다하더라도 도덕적으로 교육받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장자공자의 유가 사상이든 장자의 도가든 사상가들의 생각을 배우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공자와 장자에게서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그래서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직접 장자를 읽어보기로 했다.물론 장자 원본을 한문 그대로 읽기에는 내 능력이 모자랐기 때문에 원문과 함께 한글 번역이 된 책을 찾았다.그렇게 찾은 책이 이강수, 이권 번역의 장자1 이었는데 책을 다 보고나서야 안 것이지만 내가 본 1권에서는 장자 내편을 번역해 놓았고 2, 3권이 나온다면 외편과 잡편을 다룰 듯 했다.장자를 읽기 전에는 알아야 할 것도 이것저것 많았다.우선은 책 이름이 장자라고 해서 장자가 모두 저술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장자 내편은 대체로 장자 본인이 저술한 것으로 보이고 외편과 잡편은 그 후학들의 작품으로 장자학파의 논문집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또 대개 장자를 내·외·잡편으로 나누는데 이것을 분류한 사람과 그 기준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란이 있다고 한다.장자를 분류한 사람에 대해서는 대표적으로 곽상, 유향, 유안 설이 있고 분류 기준에는 다루는 내용에 의한 분류, 저자에 의한 분류 등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마지막으로 알아야 할 것은 장자가 쓰여진 문체인데 다른 사람과 사물의 입을 빌려 주장을 펴는 우언, 당시 존중받던 사람들에게 의탁하여 주장하는 중언, 꽉 차면 기울고 텅 비면 치켜서는 술그릇 치?와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치언이 있다.본 내용에 들어가지 앞서 이런 알아야 할 것들과 함께 장자의 주석본을 만든 곽상, 성현영, 육덕명의 장자서序 가 있었는데 장자에 대한 세 사람의 같은 듯 하면 서도 조금씩 다른 견해들은 책을 읽는데 좀 더 객관적이고 다양한 방향에서 보는 눈을 가지게 해 주었다.장자 내편은 소요유, 제물론, 양생주, 인간세, 덕충부, 대종사, 응제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먼저 소요유는 소요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이다.소요의 뜻은 곽상의 설과 지둔의 설 두가지가 있는데 곽상은 소요를 만물이 서로 다르지만 그 분수에 맞는 요구하여 매미와 비둘기를 깔보지 말며 매미와 비둘기는 보다 월등한 삶이 있음을 알되 각자 자신의 주어진 능력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이상이 소요에 대한 곽상의 해설이라면 소요유 마지막에 나오는 열자의 이야기는 그것도 초월한 지둔의 해석이라 할 수 있다.구만리를 나는 붕새든 바람을 타고 다니는 열자든 모두 위대하게 보이지만 사실 바람에 의지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매미와 붕새, 열자와 보통사람들은 크고 작음의 표면적인 차이는 있으되 어느 곳이든 의지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소요할 수 없다.붕새의 예 다음에는 쓸모없음에 대한 장자와 그의 말벗 혜시의 대화가 나오는데 나는 이 부분을 읽고 나서도 이 무용無用과 소요가 무슨 상관이 있는 지에 대해 계속 고민했다.그렇게 해서 조심스럽게 내려 본 결론은 무용이 소요의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이다.무용해서 쓰여 지지 않는다면 구속받지 않고 홀로 자유로울 수 있다.혜시는 크기만 컸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박과 가죽나무를 장자의 철학과 같다고 하는데 사실 혜시의 생각은 내가 가졌던 생각과 같았다.도무지 이 장자는 현실성이란 하나도 없이 그저 벌려놓기만 벌려놓고 끝맺음이 없는 것 같았다.그러나 장자는 나와 혜시에게 그것이 무용의 미덕이라는 것을 가르치면서 ‘현실에서 쓸모 있는’ 이라는 전제가 잘못되었다고 한다.무용한 것은 현실에서 쓸모가 없기 때문에 자유로우며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소요, 무기라 할 수 있다.두 번째 제물론은 소요유와 함께 장자에서 가장 중요한 편이라고 한다.장자는 자신이 상기우喪其瑀, 자기 자신을 잃었다고 하며 제물론을 시작한다.이어 장자는 만무의 차이에 대해 인뢰, 지뢰, 천뢰의 예를 들어 설명하는데 인뢰는 피리, 생황같이 바람이 인간이 만든 악기를 통하면서 내는 소리이다.또 지뢰는 나무 구멍이나 다른 땅에 있는 구멍을 통해 나는 소리이다.그렇다면 그 인뢰와 지뢰를 나게끔 하는 바람은 무엇을 통해서 소리를 내는가?천뢰는 인뢰와 지뢰와 달리 의지함이 없이 인 도추道樞에서 만물을 바라본다면 구분이 없어질 것이다.도추道樞라는 말에서 장자 사상의 큰 스케일을 느낄 수 있었는데 장자는 유가와 묵가의 시비가 한쪽이 옳다고 하는 것을 반대가 그르다 하고 반대가 옳다고 하는 것을 한쪽이 그르다고 하는 일종의 순환으로 보았다.그러므로 그 순환의 고리에 해당하는 도추의 입장에서 사태를 본다면 만물을 하나로 볼 수 있다.당시에는 명가에서 손가락은 손가락질 되지 않는다指非指, 흰 말은 말이 아니다白馬非馬 라는 명제로 논쟁을 했는데 장자는 이렇게 개념과 사물을 서로 분리하여 보는 것이 불필요한 구분이라고 생각했다.그는 명과 실實사이에서 어떤 것을 중시하냐 하는 입장보다 이러한 시비에서 초탈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었다.그래서 말하기를 天地一指也 萬物一馬也, 즉 천지만물이 사실은 하나라고 했다.그렇다면 구분이 없고 언어가 없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옛 사람들은 처음에 물物이 없는 경지를 알았다고 한다.그 다음으로 물은 있으나 경계가 있은 적이 없는 세계를 알게 되었고 다음으로 시비가 없었던 세계를 알고 난 후에 마침내 시비가 밝아지고 도가 일그러졌다고 한다.이에 대해 재미있는 설명이 있었는데 “천지만물이 나와 하나이다”라고 말한다면 그 언어 속에 천지만물과 나라는 구분이 있기 때문에 둘이 되고 셋이 되어 끝없이 분할된다.또 시간 면에서 시초가 있었다고 한다면 무시無始를 묻게 되고 끝없이 거슬러 올라간다면 무조차 없는 무무無無를 끊임없이 묻게 된다는 설명이었다.또 어떻게 해야 제물할 수 있을까이에 대해 성인과 요·순의 대화, 설결과 왕예의 문답, 자신의 꿈 등 여러 예를 통해 제물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먼저 제물할 지혜를 가진 성인은 언어의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논변하지 않으며 능력을 과시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다.또한 요임금과 순임금의 대화에서는 제물이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물은 그들의 타고 난 성향에 의해 스스로 놔두어야 한다.설결과 왕예는 시비판단의 기준에 대해 문답하고 있다.미꾸라지에게 좋은 잠자온전히 보전하는 원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이 장에서는 사상의 기본이 되는 원리와 이치보다는 그 원리를 기본으로 해서 실제로 실천하는 방법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그런지 다른 장에 비해 내용이 짧고 명확했다.목숨을 온전하게 보존하는 방법은 먼저 중간을 지키는 것이다.선을 행해서 명성을 가까이 하지 않고 악을 행하여 형벌에 가까워지지 말아야 하고 세속적인 가치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이런 생각은 일반적으로 유가, 묵가나 다른 사상에서 보이는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선을 행하지 말라니, 그러나 선악 역시 인간세의 구분임을 감안한다면 초월해야 할 대상일 것이다.중도를 지키고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며 사물의 자연스러운 결을 대하면 목숨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다고 한다.물론 양생주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다른 장을 읽으면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싸맸던 것에 비하면 양생주는 너무나 쉬운 장이었다.하지만 정말 장자가 단순히 오래 살기 위해 이 장을 썼을까.양생주는 양생하는 방법 그 자체보다 양생한다는 의미나 그것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한 장이었다.인간세에서는 이제 사회에서 처세하는 방법에 대해 논하고 있다.속세의 가치들을 덧없다고 여기는 장자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는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이번에는 공자와 그의 제자 안회가 흉폭한 군주와 처세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한다.안회가 유가의 가르침대로 단정하고 겸허함으로써 독단적이고 포악한 군주를 교화시키러 간다고 하자 공자는 그가 분명히 화를 입을 것이라고 한다.왜냐하면 아무리 도덕이 두텁고 깨끗하더라도 억지로 인의법도를 가지고 남을 가르치려는 것은 뽐내는 것과 다름없으며 오히려 군주의 교묘한 변론에 현혹될 수 있기 때문이다.이에 안회가 군주를 교화시킬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하자 공자는 안회가 여전히 자기 마음을 스승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그를 감회시킬 수 없다고 하며 심재心齎를 가르친다.심재란 눈과 귀 같은 인간의 감각기관을 닫고 텅 비어서 모든 사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으로가 잘리는 형벌을 받았다. 애태타와 인기지리무신은 외모가 정상적이지 않다.이들의 공통점은 불구가 있다는 것 외에도 그 덕이 본받을 만하여 사람들이 그를 따른 다는 것이다.왕태는 비록 다리가 없지만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그 근본을 알고 있는 인물이다.장자에는 덕충부 뿐만 아니라 곳곳에 불구가 된 사람에 대한 일화를 찾을 수 있는데 자신이 가르친 대로 정말 사람의 외형에 대한 미련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한다.6장 대종사는 가장 으뜸이 되는 스승을 말한다.장자는 그러한 스승으로 도와 진인眞人을 제시하였다.진인은 좋고 싫음에 대한 인위적인 구분이 없고 자연에서 받은 천성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다.그는 자연의 원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태어나도 기뻐하지 않고 죽어도 슬퍼하지 않는다고 한다.이런 진인의 덕목에 비추어 본다면 유명한 백이와 숙제, 기자 등은 남에게 의지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군자라 할 수 없다.일화 중에 자사, 자여, 자래, 자리라는 진인으로 보이는 네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 네 명은 자연의 조화를 깨달았기 때문에 죽음에 가까워져서 몸이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진인들의 일화에서는 특히 이들이 삶과 죽음에 초연한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이 장에서는 장자 수양론의 정점인 좌망坐忘이 제시되었다.안회가 공자에게 말하기를 인의와 예악을 잊고 마침내 자신마저 잊는 좌망을 하게 되었다고 하자 공자가 그의 뒤를 따르겠다고 한다.학자들 가운데는 대종사가 내성內聖의 도를 밝히려는 장인데 좌망은 내성에 있어 최고의 수양이기 때문에 대종사가 여기서 끝나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마지막 장 응제왕은 장자가 지금까지 개인의 수양과 처세에 관심을 두었던 것과 달리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의미한다.지금까지 무용과 비움과 명예의 가치 없음을 주장하던 장자가 왜 정치에 대한 내용을 서술했는지 의아했지만 그 내용을 알고 나니 수긍이 갔다.유가에서는 천하를 인의仁義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장자에 따르면 먼저 통치자 자신의 마음을 비워 바르게 한 후에 일체의 사심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