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강물 속에 존재하는 인간, 곰브리치 세계사를 읽고..책을 읽는 내내 B. 브레히트라는 독일 문학가의 유명한 시 한편이 머릿 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이라는 시인데,내용은 다음과 같다.성문이 일곱 개인 테베를 누가 건설 했던가? 책에는 왕들의 이름만 적혀 있다.왕들이 손수 바윗덩어리들을 끌고 왔을까? 그리고 몇 차례나 파괴된 바빌론 그 때마다그 도시를 누가 일으켜 세웠던가?건축 노동자들은 황금빛 찬란한 도시 리마의 어떤 집에서 살았던가?만리장성이 완공된 날 밤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위대한 로마에는 개선문이 많기도 하다. 누가 그것들을 세웠던가?로마의 황제들은 누구를 정복하고 개선했던가?끊임없이 노래되는 비잔틴에는 시민들을 위한 궁전들만 있었던가?전설적인 아틀란티스에서도 바다가 그 땅을 삼켜 버린 날 밤에 물에 빠져 죽어가는자들이 그들의 노예를 찾으며 울부짖었다.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시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적어도 취사병 한 명쯤은 데려가지 않았을까?스페인의 필립왕은 자신의 함대가 침몰 당하자 울었다. 그 말고 아무도 울지 않았을까?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말고도 또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역사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승리가 하나씩 나온다.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던가?십 년마다 한 명씩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그 비용은 누가 지불했던가?그 많은 사실들.그 많은 의문들.- Chris Harman의『민중의 세계사』첫머리에이 한편의 시가 곰브리치 세계사를 저술한 저자의 역사에 대한 핵심적인 인식과 궤를 같이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기존의 학술적이고 딱딱하게 서술된 역사서적과는 달리 마치 친할아버지가 무릎팍에 머리를 뉘여놓고 들려주시는 옛날 이야기 같은 서술에 읽으면 읽을수록 알 수 없는 매력에 이끌려 책을 읽어내려갔다.인류의 불의 발명이라는 딱딱한 역사적인 사실에 저자는 ‘아마도 인류 최초로 불을 발명한 사람은 사냥을 하던 남자였기보다는 대부분 살림을 꾸리던 여자였을 것이다’라는 구체적인 살을 붙여 읽는 이로 하여금 생생한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해준다. 또한 그리스의 역사를 서술하는 부분에서 그리스의 주민들이 살아가던 일상뿐 만 아니라 민족성을 정확히 짚어내면서 그들의 논쟁문화, 민주주의의 시초가 된 의사결정 방식 등을 분석하고, 그것이 현대에 어떤 의미로 남게 되었는지에 대한 부분까지 다루면서 글자로 된 역사에 생생한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다.저자는 대부분의 역사책에서 중심이 되는 정치사 뿐 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종교 등 인류 삶의 전방위적인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해당 시대의 큰 흐름과 세부적인 요소들을 놓치지 않고 맛깔스럽게 풀어내는 점에서 큰 차이점을 느꼈다. 특히 그림자료를 첨부하여 소개된 시대별 예술작품들을 보면서 저자의 문화예술적인 면모도 돋보였고, 다양한 지도, 사진 등을 통해 마치 세계역사여행을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자연스럽게 역사의 흐름과 세부적인 부분들을 짚어나간 점에 감명받았다.특히 각 시대별로 종교사적인 내용을 다룬 부분 중, 고타마 시타르타(부처)의 깨달음을 위한 삶과 예수의 고귀한 희생, 공자의 인‘(仁)’사상, 노자의 무위자연 사상, 중세 기독교와 종교개혁 등 이 부분만 따로 떼어 놓아도 한 권의 훌륭한 종교사 서적이 되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각 사상들에 담긴 스토리와 근간을 이루는 철학, 역사 등을 다룬 것으로 미루어 볼때,저자의 정신적인 수준의 탁월함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중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부처의 가르침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아무것도 바라는 바가 없는 상태가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는 불교철학의 진수를 담아놓은 부분이었고, 저자의 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라는 세심한 배려 역시 크게 돋보인 부분이었다.또한 역사에서의 전쟁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는데 단순히 전쟁의 원인과 경과, 승패 등의 사실만을 나열해 놓은 것이 아니라 해당 전쟁에 참여했던 구성원들의 개인적인 스토리를 비롯하여 해당 인물의 심리까지 고려하여 기술하려고 했던 부분이 돋보였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굉장히 재밌게 읽은 경험이 있는데, 이에 비하면 다소 간략하다고 할 수 있는 본 저서에서의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 이야기는 또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전쟁사 중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전쟁을 다룬 내용이었다. 기타의 세계사 서적들의 무미건조한 서술방식과는 달리 알렉산더 대왕 개인의 심리적 성향에 근거하여 역사상 위대한 정복으로 평가받고 있는 전쟁을 수행할 수 있었던 점, 그리고 공성전에서 가장 먼저 성벽에 올랐으나 사다리가 부러져 홀로 남게 되었을 때 홀로 성안으로 뛰어들어 적들을 맨몸으로 상대했다는 내용은 본 저서를 읽으면서 처음 알게된 내용이었다. 영웅 알렉산더라는 단순한 지식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알렉산더에 대해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