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제도가 지향해야하는 바(독일과 한국의 대입제도를 바탕으로)독일의 학생들은 초등교육을 졸업하면 일반고(김나지움)와 직업학교(레알슐레), 육체적노동직업학교(하프트슐레)중에서 진로를 선택하게 됩니다. 대학진학을 위한 학교는 김나지움으로, 우리나라의 중·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합니다. 이곳에서는 9년 동안의 교육을 받습니다. 유급되거나 전학을 가지 않고 고학년으로 진급한 학생들은 고등학교 졸업·대학 입학시험인 아비투어를 치르는데, 바로 이 아비투어가 우리나라의 수학능력시험과 같은 개념의 대학입시제도입니다. 이는 12-13학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아비투어는 필기시험(필수1, 선택2)과 구두시험(필수1)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필수과목과 선택과목의 점수 배정 차이입니다. 필기 3과목 중에서 필수 1과목의 배점이 100점이라면, 선택 2과목의 배점은 400점입니다. 즉, 선택과목의 점수가 필수과목보다 2배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잘 할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하고, 그 재능이 다른 무엇보다도 높게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는, 능력별 평가를 통해 개인이 존중된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또한 필기시험방식은 중앙통제나 자치제 모두 시험결과를 동등하게 인정한다고 합니다.반면, 현재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는 정형화된 기준에 학생들을 끼워 넣으려 합니다. 독일의 아비투어와는 다르게, 개개인의 특기나 적성을 살리기 보다는 내신이나 수학능력시험 등 교과목에 대한 학습능력만으로 학생들의 성적을 매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적은 학생의 개인 환경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잠재력을 정확히 측정하지 못합니다. 독일의 아비투어가 개인의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입시제도라면, 우리나라의 수학능력시험은 개인의 소질발휘에 제약을 가하는 입시제도하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에는 다양한 학과가 있고 그 학과들이 요구하는 적성과 능력은 서로 다른데도 단편적인 성적만으로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은, 개인의 특기나 재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수학능력시험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12년간 받은 교육의 종합적인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그만큼 근시안적이고, 따라서 비효율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학생들은 이렇게 측정된 순위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소질을 개발하기보다는 교과목의 학습능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결국은 사교육의 증가라는 개연적 모순 속에 빠지게 됩니다. 최근 입학사정관제도가 확대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공정성 부분에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합니다. 학생의 잠재력과 소질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기존의 입시제도보다 더 나은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거부하는 낯선 이야기- 한유주의「달로」Ⅰ. 서론Ⅱ. 본론1. 수사의 묘미2. 낯설게 하기 - 서사를 거부한 끝없는 독백3. 언어에 대한 절망Ⅲ. 결론Ⅰ. 서론한유주, 그녀는 1982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얼마 전 서울대 대학원 미학과를 수료했다. 2003년「달로」로 제 3회『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으로 등단, 2006년 첫 소설집『달로』를 출간했다.문학계에선 거의 막내벌인 그녀는 20대의 젊은 작가다. 이미 수많은 거짓과 진실이 여러 작가들에 의해 발가벗겨졌으나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사유가 분명히 있다. 독자들은 더욱 더 청신하고 기발한 소설을 원하고, 시대는 바야흐로 읽히기 위한 글쓰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조용히 한유주가 등장한다. 혹자는 그녀의 소설이 난해하여 독자와의 소통에는 전혀 무관심하다는 평을 한다. 혹자는 그녀의 소설이 빛바랜 낡음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게 할 것이라고 한다.지금부터「달로」를 통한 한유주식 글쓰기, 그리고 그것이 독자에게 가져다주는 메시지와 예술적 가치에 대해 러시아형식주의의 방법으로 고찰해보자.Ⅱ. 본론1. 수사의 묘미숨이 막혔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듯, 한유주의「달로」는 그렇게 시작했다. 달로 간 사람의 이야기에서부터 달의 이야기, 경계 지어진 도시, 강과 기억의 이야기, 우주와 일상의 이야기, 모든 행간의 의미가 쏟아지는 비였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비를 피해 달아나야 하는지 그칠 때까지 맞고 있어야 하는지 고민할 틈조차 갖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온 몸으로 초여름의 소나기를 삼켜내야 했다.「달로」의 첫 장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뉠 것이다. 밥에 돌이 섞여있을 때, 뱉거나 혹은 묵묵히 씹어 넘기거나 하는 식의 말이다. 생경함, 그것은 차고 넘치는 Ctrl+v, Ctrl+c의 시대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다.그녀의 공식은 의외로 간단해 보였다.…… 혀끝에 문자의 감각만이 남았다. 그러면 그들은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혼자 무언가를 먹고 있는 사람들 혼자 무언가를 먹고 먹고 무언가를 먹고, 흐트러진 채로 휘발된 글자들은 공기 속을 떠돌다가 바다로 갔다. 그곳에는 지구의 모든 소리들이 음성을 잃고 당도해 있었다. 소리들은 햇빛이 부서뜨리는 바다의 하얀 포말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고요함은 때때로 바닷바람을 타거나, 비구름에 묻어 육지로 되돌아갔다. 육지 위에는 곳곳마다 도시가 누워 있었고, 이 모든 이야기를 나는 어디선가 전해 들었고, 도시는 항상 밤이거나 낮이었다. 고요함은 빛이거나 어둠이었다. 생활의 잊혀진 틈마다 빛처럼, 어둠처럼 고요함이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베개 속에 얼굴을 파묻고도 고요함의 긴 울림을 떨쳐낼 수 없었고, 아침이면 태연하게 드러난 간밤의 흔적에 진저리를 쳤다.)단어와 단어의 만남, 의미와 의미의 만남이 그것이었다. 결코 연결고리가 없는 앞과 뒤. 인과관계사 성립되지 않는 지금과 다음. 그러나 문장 하나하나가 다른 듯 끊길 듯 하면서도 이어지는 것은, 결코 겉돌지 않는 이미지의 융화 때문이다. 다음의 나열은 위 본분을 예로 문장의 긴밀함과 진행 방향을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혀 끝, 문자의 감각, 무언가를 먹는, 글자들, 바다, 소리, 고요함, 바닷바람, 육지, 도시, 밤과 낮, 빛이거나 어둠, 베개, 울림, 간밤의 흔적. 이러한 연산작용은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끝도 시작도 없는 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섣불리 갇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끝도 시작도 없는 것, 그것이 ‘말’ 즉 언어이고, ‘언어’ 즉 말에 대한 끝없는 절망감을 이보다 더 잘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공식은 간단하다. 그러나 복잡하다. 멈춰 있는 우리들의 뇌를 끊임없이 빠른 속도로 곱씹으며 생각, 또 생각하게 해주지 않는가.공식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반복과 반복, 말줄임표와 쉼표의 다발적 사용, 시적 형상화가 그것이다. 그녀의 소설은 차라리 시이거나 암호이다. 해독해야 하고, 분석해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감상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으나, 가볍게 읽어버린 당신은 소설이 끝남과 동시에 모든 언어를 망각하고 말 것이다.교묘하게 비틀린 시간의 바닥부터 고요함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고, 그 키는 어느 날 작은 집들의 지붕과 전신주가 이리저리 걸쳐 멘 검은 전선들을 넘기 시작했고……아직도 베어지지 않고 남은 유달리 키 큰 나무들과……을 넘어서서……했고, 십구 층 아파트와 이런저런 높은 건물들을 넘어서서……사람들은 그 안에 깊숙이 갇히고 말았다.)지겨운 이야기들, 처음의 몇 페이지를 넘기기 어려운 이야기들과 빛바랜 수사와 다닥다닥 붙은 행간들이 버섯의 몸이 되어주었다. 몸, 몸들, 몸, 몸에서 돋아나 몸을 먹어치운 입, 입들, 입, 입으로 삼켜져 다시 몸이 된 몸, 몸들, 몸, 몸에서 몸으로 많은 이야기를 전해준 입, 입들, 입, 입이 탐했던 몸, 몸이 탐했던 입, 입들, 입과 몸, 몸, 몸들에게서 나는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이러한 광적인 반복들, 분장부호의 남발은「달로」를 통해 그녀의 상징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여기까지. 습관이 되어서는 곤란하겠다. 개성이란 것은 결코, 습관이 빚어낸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만이 빛낼 수 있는 고유의 특성, 우리는 그것을 좇아야 한다.2. 낯설게 하기 - 서사를 거부한 끝없는 독백독자는 원한다. 자동화되지 않고 타성화되지 않은 그 무언가를 원한다. 그렇다고 꼭「달로」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소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야기는 달로 간 사람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니, 달로 간 사람을 만나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아니, 결국은 ’나‘ 도 아니고 그저 말하는 사람, 화자로부터 시작한다 아니, 이야기는 시작된 적이 없으며 끝도 없다. 그저 ’말‘ 이 있을 뿐이다. 그 ’말‘은 나의 말이기도 하고, 그의 말이기도 하고, 그녀의 말이기도 함과 동시에 당신의 말이기도 하다.아무도 강 건너를 꿈꾸지 않았다. 무수한 물방울들이 모여 수면을 이루고, 세월이 지나고 수면이 쌓여 강의 깊이를 더해가는 동안 누구도 강을 건너가거나, 건너오지 않았고, 강은 거대한 물의 덩어리 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잊혀지고 말았다. 나는 가끔 그 강으로 다가가서, 물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고는 했다. ……모호한 얼굴이었다. 이런 얼굴의 윤곽을 더욱 흐리면서, 한 방울의 물과, 이 강과 저강, 머나먼 어느 강에서 흘러 들어온 강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흘렀고, …… 머나먼 어느 강의 물을 마시면 영원한 안식을, 가는 비에 씻기는 듯한 죽음을 소유, 하게 된다는, 그런 강과 강들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흘렀다.)이러한 독백과, 또 독백. 그 속에서 우리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내가 사는 도시의 모습을 발견하고, 세계의 모습을, 우주의 모습을, 무수한 말들 속에서 스러지고 허물어지는 이 시대의 모습을 발견한다.최초의 사진은 은을 입힌 판 위에서 나타났다. 두꺼운 은판을 공을 들여 문지르고, 요오드 증기를 씌운 다음 사진기의 구멍에 갖다 대고 얼마간을, 조금 오래, 기다린다. 피사체 또한 긴 시간을 인내해야만 한다. 은판 위에 상이 맺히고 나면, 그 밑에서 수은을 달인다. 가장 밝은 곳으로 수은 증기가 모여들고, 소금물에 담겼다가 꺼내지면, 잠상의 양성 반응이 나타난다. 가장 은밀한 기억의 순간들은 이렇게 가장 세밀하게 보존되었다. 오래되어도 상하거나, 변해버리지 않았고, 다만 아득하고 덧없는 그리움이 더해갈 뿐이었다.)작자는 결코 생각나는 대로 뇌까린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앞서 말한 문장부호의 효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말줄임표는 방황하는 무수한 언어를 상징적으로 나타냄과 동시에 독자들이 채워 넣을 수 있는 여백의 효과를 탄탄히 해내고 있다. 또한 쉼표는 독자가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사유할 수 있는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자칫 흐르는 대로 읊어 놓은 문장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 행간의 느낌을 살려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것, 상실감이나 공허함이나 절망감, 일상의 배치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 계산된 것이라는 것이 그녀에게 빠져든 독자들을 전율케 한다.‘작품은 저자의 독백이 아니라는 형식의 모티프’를 무시한, 서사의 거부. 그것이 한유주가 선택한 방법이다. 이야기 없이 쓰여진 소설. 무수한 소설들 속에서 그녀가 유난히 튀는 이유. 그러나, 그녀가 이야기를 거부했는지 이야기가 그녀를 거부했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3. 언어에 대한 절망세상에는 무수한 말들이 존재하고, 언어는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지금 이 시각에도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소음들이 우리의 밤과 낮을 지배하고 있다. 어떤 말은 너무 가볍고 어떤 말은 너무 슬프고 어떤 말은 너무 지루하다. 작가는 이런 언어에 대한 절망감을 은유와 환유를 통해 나타내고 있다.달은 아마도 차가울 것이다. 달의 뒷면에는 앞면보다 아름다울 무수한 바다가 있고, 많은 시인과 소년들이 그곳에 발을 담그고 싶어 했지만, 발아한 문장들은 너무 무거웠고, 소년들은 너무 어렸으며 나이를 먹은 후에는 어느 순간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 다음부터는 모든 일들이 타박이기만 했다.)함구하라, 옛날 옛날을 살던 착한 첫째 공주는 말을 할 때마다 꽃과 보석이 쏟아져 나왔고, 마음씨 나쁜 둘째 공주는 말을 할 때마다 뱀과 개구리와 벌레와…… 우리는 함구해야 한다, 는 이야기를 나는 어디선가 전해 들었고…… 수치스러운 역사와 치기 어린 독백들과 밤낮이 열 네 번 오가는 동안에 씌어진 문장들이 그런 식으로, 책꽂이가 놓인 바닥으로 흘러넘쳤고, 마른 후에는 더러운 얼룩으로 남았다. 그런 책들을 집어 들었던 사람들은 물에 부풀어 솜처럼 풀어진 종잇장 속에서 긴 헤엄을 쳤다.)
메밀꽃 필 무렵1. 작가 이효석(1907~1942)에 대하여- 강원도 평창 출생으로 제일고보를 거쳐 경성제대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28년《조선지광》에 단편〈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 이어 경향적인 여러 단편들을 발표하면서 친우 유진오와 더불어 동반작가라는 평을 받는다. 1930년 학교를 졸업한 그는 결혼 후 생활을 위해 한 달쯤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서 근무하나 개인적 회의와 주위의 질책으로 사직, 처가가 있는 함경북도 경성에 내려가 농업학교 영어교사가 된다.1933년《조선문학》창간호에 단편〈돈〉을 발표하면서 그는 초기 경향성에서 벗어나 자연 귀의의 자연주의와 심미주의의 문학세계로 전환해 간다. 1934년 평양숭실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평양으로 이주, 이후〈메밀꽃 필 무렵〉,〈산〉,〈들〉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그의 성숙한 문학세계를 펼친다. 1940년 부인 사망 후 차남까지 죽음을 당하자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 중국, 만주 등지를 여행하고 돌아오지만, 건강이 악화되면서 1942년 36살의 나이로 요절했다.2. 이효석의 작품세계- 초기 이효석의 작품들은 동반자 작가적인 성격이 강했다.〈도시와 유령(1929)〉,〈행진곡(1929)〉,〈노령근해(1930)〉등과 같은 초기의 작품들은 도시의 빈민층과 상류사회와의 격화된 갈등과 대비를 통한 사회적 모순의 고발 또는 노동자, 기생 등 하층민들의 전락과 빈궁한 삶을 그리고 있다.그러나 30년대를 들어서면서 그는 종전의 문학적 경향에서 전향, 뛰어난 서정적 자연묘사를 보여준〈돈(1933)〉,〈산(1936)〉,〈들(1936)〉,〈메밀꽃 필 무렵(1936)〉,〈산정(1939)〉등의 작품을 발표한다. 그의 자연주의는 반사회적, 반문명적, 반도시적인 의미의 자연으로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문명이나 사회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감으로 인해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루소의 자연주의사상과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효석의 자연에 있어 한계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자연이 인간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궁극적인 원리나 가치가 아니라, 다만 자연은 개인적인 현실 도피의 수단이나 은둔의 귀의처로 추구되어 심미적인 감각이나 감정의 대상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이효석 문학의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에로티시즘이다. 그의 문학에서 가장 핵심적인 모티브라 할 수 있는 것은 애욕의 예찬이다. 이는 물론 그 바탕에 있어 자연주의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의 에로티시즘 역시 자연주의와 마찬가지로 사회로부터의 도피가 근본동기일 뿐이다. 이러한 에로티시즘의 한계는 그 사상적 바탕이 되는 자연주의에 대한 성찰이 결여되어 있는데 그 근본원인이 있다고 하겠다.이효석 문학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언어와 문체의 서정적 미학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문체는 기존의 작가들이 이룩한 문체미학을 거부하는 독자적이고, 개성적인 문체로 30년대 가장 수준 높은 문체로 평가된다. 더구나 시적 정서의 표현을 도입, 그것을 서정적 미학의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3.〈메밀꽃 필 무렵〉의 줄거리- 장돌뱅이 허생원은 하룻밤의 정을 나누고 헤어진 처녀를 잊지 못해 봉평장을 거르지 않고 찾는다. 장이 끝나고 술집에 들렀던 허생원은 어린 장돌뱅이 동이가 충줏집과 어울려 놀고 있는 것을 보고는 화가 치밀어 따귀를 갈겨준다. 그러고 나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동이가 달려와 나귀가 발버둥치고 있음을 알려주고, 허생원은 자기를 외면할 줄로만 알았던 동이의 마음씀에 고마워한다. 그날 밤 허생원은 조선달과 동이를 동행하여 다음 장이 서는 대화까지 달빛 밝은 밤길을 가게 된다. 길을 가면서 허생원은 자연스럽게 ‘괴이한 인연’으로 만났던 어느 처녀 이야기를 들려준다. 봉평장이 선 날 밤, 허생원은 개울가에 목욕하러 갔다가 물방앗간에서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치게 되고 집이 파산한 처녀의 한탄을 듣다가 관계를 맺게 된다. 그 다음 날 성서방네 처녀는 제천으로 떠나고 허생원은 처녀를 찾아다녔지만 찾지 못했던 것이다. 허생원은 낮에 있었던 일을 사과하던 끝에 동이의 집안 얘기를 듣게 된다. 자신은 아비도 없는 처지고, 어머니는 달도 차기 전에 자신을 낳고 집에서 쫓겨났다는 것이었다. 동이로부터 어머니의 고향이 봉평임을 확인한 허생원은 발을 헛디뎌 개울에 빠지고 동이가 그를 부축해 업는다. 그리고 허생원의 눈에 동이가 왼손잡이임이 들어온다. 허생원은 예정을 바꿔 대화장을 보고 나서 바로 동이의 어머니가 산다는 제천으로 가기로 결정한다.4.〈메밀꽃 필 무렵〉의 문학사적 의의- 이 소설은 1936년 10월《조광》지에〈모밀꽃 필 무렵〉으로 발표했다가, 후에 제목을〈메밀꽃 필 무렵〉으로 바꿔 실었다.〈메밀꽃 필 무렵〉은 이효석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문학사의 대표작으로 손꼽힐 만큼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람들에게 고향이 느껴지게 하는 시골 정경들과 장돌뱅이들의 유랑적인 삶의 모습들, 그리고 지식인 계층이 즐겨 쓰던 관념어가 거의 배제되고 생활에 밀착된 토속어가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어 작품의 호소력을 더해주고 있다.이 작품은 남녀간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친자 확인이라는 두 가지 이야기가 기본 줄기를 이룬다. 이 이야기가 겉과 속을 이루면서 미묘한 운명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길'이 등장한다. 이 길은 낭만적 정취를 듬뿍 머금은 달밤의 산길이다. 물론, 그 길은 허생원 일행에게는 생업의 길목이지만, 괴로운 인생사의 현장이기보다는 삶과 자연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세계이다. 온갖 각다귀, 잡배가 우글거리는 장터의 산문적인 현실과는 격리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 들리는' 운문적인 몽환의 세계이다. 여기에 사랑과 추억과 인연의 끈질김이 어우러지면서 한 늙은 장돌뱅이의 애환이 드러난다.
Report-『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과『바리데기』를 읽고 -■ 현 인류의 이름, 노마드 바리‘노마드(nomad)’란 유목민, 유랑자를 뜻하는 용어로 현대에 들어오면서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공간적인 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불모지를 새로운 생성의 땅으로 바꿔 가는 것, 곧 한 자리에 앉아서도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뜻하고 있다.『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과 『바리데기』는 이러한 시각에서 인간을 조명하고 있다. ‘유목(이동)’이 가지고 있는 힘을 새롭게 인식하여, 열악한 환경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노마드의 생존전략과 적응양식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의 궤도와 같다는 것을 보여준다.자크 아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출현 이후 5백만 년의 인류사를 노마드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동남아프리카의 어느 나무에서 뛰어내려와 주변을 둘러보다가 돌아다니게 된 것을 시작으로 하여 60억 인구 중에서 10억이 출장, 관광, 이민 등을 이유로 이동하게 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노마디즘을 인간 진보의 주요 동인으로 보고 있다. 호기심 때문에 또는 사냥감을 찾아 조금씩 더 멀리 가게 된 인간은 방목 또는 교역을 위해 좀 더 조직적으로 이동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문명의 발전에 기여한 중요한 문물들 대부분이 유목민들에 의해 발명된다. 불, 사냥, 언어, 농경, 목축, 신발, 옷, 연장, 제식, 예술, 그림, 조각, 음악, 계산, 바퀴, 글씨, 법, 시장, 야금술, 승마, 항해, 하다못해 신과 민주주의까지도 유목민들의 발명품이다. 한편 1만 년 전 수렵인 중 일부가 농경과 목축에 종사하기 시작하고 4천 년 전에는 정주화로 인해 노마디즘에 제동이 걸린다. 정주가 시작되면서 권력이 생겨나고 노마드의 유산은 부정된다. 토지를 매개로 한 봉건제는 상인, 선원, 순례자, 학자, 예술가, 탐험가, 거지 등 돌아다니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것은 국가, 세금, 감옥, 무기를 만들어낸다. 18, 19, 20세기 세 차례에 걸쳐 세계화에 대한 거부현상이 있었는데 이는 상업적 노마디즘이 정착민의 세력보다 우세해질 때 나타났다. 일례로 전체주의가 노마드를 없애고자 했던 야만적 반응중의 하나이다. 오늘날의 노마디즘은 주류로 부상했다. 5억 명 이상이 이민자, 망명객, 노숙자, 이주노동자이며 매년 10억 명 이상이 여행을 한다. 사람뿐 아니라 제도, 가치, 사랑, 가족, 일, 이데올로기, 명성 등이 모두 불안정하고 임시적인 것이 됐다. 자크 아탈리는 시장, 민주주의, 이슬람이라는 세 가지 노마드 제국의 향배를 가늠하면서 새로운 세계는 노마드적인 동시에 정착민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누구든 노마드이면서 정착민이 되어야 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한편 황석영은 위와 같은 이론을 바탕으로 주인공 바리의 인생역정을 통해 ‘이동과 조화’를 표현하고 있다. 북한 청진에서 지방 관료의 일곱 딸 중 막내로 태어난 바리는 숲 속에 버려지지만, 흰둥이 덕분에 생명을 건진다. 이후 북한의 경제사정이 급속히 나빠지자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가족을 찾아 나섰으나 수없이 굶어 죽는 사람들을 목격한 바리는 중국으로 넘어가 발 마사지 업소에 취직해 안마를배운다. 그곳에서 만난 중국인 샹 부부와 다롄에서 안마업소를 개업하지만 결국 샹 부부의 빚 때문에 영국행 밀항선을 타게 된다. 밀항선에서 생지옥을 경험하고 런던에 도착했으나 샹은 성매매 업소에 팔려가고 바리는 잠시 식당일을 하다가 발 마사지 업소에 취직한다. 빈민가 연립에서 살게 된 바리는 그곳에서 만난파키스탄인이자 무슬림인 알리와 결혼한다. 생활이 다소 안정되는 듯했지만 미국에서 9·11테러가 터진 뒤, 알리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떠난 동생을 찾아 나서면서 둘은 기약 없는 이별을 한다. 홀로 딸을 낳았지만 샹의 잘못으로 딸이 죽게 되고, 바리는 식음을 전폐하고 꿈속에서 생명수를 찾아 나선다. 그 후 오랜 포로생활 끝에 돌아온 알리와 함께 새로운 희망을 품고 둘째 아이를 임신해 안정을 되찾는다. 그러나 그 즈음 도로 한가운데서 버스와 지하철 폭발사고가 터지는 등 시국은 또다시 불안정해진다. 바리는 울면서 뱃속의 아가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바리는 청진에서 중국을 거쳐 런던, 그리고 무의식의 상태에서 아프리카,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을 여행하는 노마드적 행보를 보인다. 버려진 아이, 탈북 소녀, 밀항자, 불법체류자로 처지가 바뀌면서 세계사적인 사건을 온몸으로 겪는다.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인신매매가 활개를 치는 중국, 불법체류자 단속과 테러의 공포에 떠는 영국, 9?11 테러 등 지옥 같은 운명은 바리를 어디에도 뿌리내릴 수 없는 신자본주의의 변방을 떠도는 유목민으로 만들어 버린다.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이후 인간은 ‘세계적 존재’가 되었다. 미국에서 금리가 0.5%만 올라도 한국에서는 실직하는 노동자가 속출한다.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세상을 떠돌아야 하는 새로운 유목사회에서는 기아와 전쟁의 참상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지옥 같은 곳에서 인간은 어떻게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가 바로 『바리데기』가 암시하고 있는 점이다. 이런 세상에서 다 같이 살아가려면 다른 생각, 다른 음식, 다른 외모, 다른 문화를 용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탈북한 바리와 9?11테러 이후 설 자리가 좁아진 무슬림 알리를 결합한 것이 바로 그 방법, ‘이동과 조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