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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태석 '태' 분석
    오태석, 「태」*목차*1. 작가 및 작품 소개2. 작품 분석 ? 행위소 모델 분석을 통한 갈등 구조의 파악3. 심화 분석 ? 1) 충돌과 혼돈의 세계2) 세조와 일산(박팽년의 아들)의 상징적 의미3) 작품의 알레고리적 성격4. 마무리 ? 1) 작품의 핵심적 메시지에 대하여2) 작품의 가치에 대한 판단-----------------------------------------------------------------------------1. 작가 및 작품 소개1940년, 충남 서천군 서천면 선암리 출생1963년, 희로 무대 창단 (~1965)1964년, 연세대 철학과 졸업1967년, 단막극 『웨딩드레스』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1984년 ~, 극단 목화 창단 및 대표 역임현재, 서울예술대학의 교수직 및 국립극장의 예술 감독직에 있음*꾸준한 창작활동으로 약 60여 편이 넘는 작품을 탄생시킴.* 「태」극작가 오태석의 작품. 1973년 9월, 드라마센터 극단에 의해 처음으로 공연되었음. 역사적 사실로서의 사건인 ‘단종 폐위와 세조의 왕위 찬탈’이 주요 줄거리를 이루고 있음.2. 작품 분석 ? 행위소 모델 분석을 통한 갈등 구조의 파악줄거리의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 ‘단종 폐위와 세조의 왕위 찬탈’ 인 만큼, 작품 속에 나타나는 갈등 구조는 이러한 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야기 속에서, 신숙주와 세조는 단종의 목숨의 향방을 판단함에 있어서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세조는 단종을 살리려고 하지만 신숙주는 그를 죽이려하는 것이다. 이를 행위소 모델화하여 더욱 자세히 알아본다. & 1) 세조의 행위소 모델살리고 싶은 마음협조자 없음신숙주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지킴세조단종충돌신숙주2) 신숙주의 행위소 모델왕권과 종사의 안정화죽이고 싶은 마음단종세조조신들우리는 작품 속에서의 주된 갈등이 어떻게 빚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등장인물들의 갈등이 있다면 대체적으로 그 결과로서의 승자와 패자가 나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물론 우리가 역사적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이 갈등 구조에서의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지 분석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그러한 인물상을 각자의 위치에 배치하기 이전에 주목해야할 지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세조의 행위소 모델에는 ‘조력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배운 바에 의하면, 어떠한 행동을 취하며 무엇인가를 이루고자하는 인물에게 조력자가 없을 때, 그 주체는 고립된다. 하여 그러한 이유 때문에 해당 주체가 이룩하고자하는 대상에의 접근은 조력자가 있는 주체보다는 훨씬 더 어렵게 된다. 이러한 바로써 생각 해 볼 때 위 갈등 구조에서 패배하는 주체는 세조가 된다. 결국 단종은 죽게 되는 것이다.물론 본인이 제시한바 외에도 이 작품에 있어서 갈등의 구조화를 가능케 하는 부분은 틀림없이 더 많이 존재한다. 하나 더 이야기 해 보자면, 박팽년의 아이의 생사를 결정하는 장면에서도 행위소 분석이 가능하다.살리고 싶은 마음박중림, 종, 여종세조자손이 온전히 자라도록 도와서 대를 이어가야함박중림손부의 태아누군가 나에게 굳이 행위소 모델의 구축뿐만 아니라 갈등 구조에서의 승·패자를 나눈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두 인물의 행위소 모델이 하나의 중심적 인물을, 그러니까 동일한 대상을 사이에 두고 충돌하는 형상이 인상 깊었으며, 나아가 그러한 구조화에 그치지 않고 그 충돌하는 모델들 사이에 도출되는 결과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3. 심화 분석 ? 1) 충돌과 혼돈의 세계작품을 여러 번 읽으면서 깨닫게 된 것 중 하나는, 이야기 속에 ‘충돌’의 형상이 만연하다는 것이다. 단종을 사이에 두고서 갈등을 빚는 세조와 신숙주, 조신들과 충돌하는 왕방연, 또 배 속의 아이의 생명에 관하여 갈등을 빚는 세조와 손부, 그리고 박중림 등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그러한 모습들은 이를 접하는 우리들로 하여금 일련의 불안감 및 공포감을 느끼게 만든다.이러한 바를 더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혼돈스러움’ 이다. 세조의 경우와 함께 생각 해 보았을 때,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져 있음을 의미하며 이는 우리들로 하여금 이야기 속 혼돈에 빠져들게 만든다.2) 세조와 일산(박팽년의 아들)의 상징적 의미앞서 나는 이 작품 속에 충돌의 형상이 만연하다고 이야기 했다. 충돌이라는 것은 서로 다른 무엇인가들이 부딪힌다는 말인데, 우리는 그 형상이 인물들의 갈등에 의해 나타나고 있음을 예의 분석을 통해 파악했다. 그러한 갈등의 근원에는 두 가지의 것들이 양분된 채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다. 바로 ‘죽임과 살림’에 대한 판단들로서 말이다. 이를 조금 더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한 단어로 바꾼다면 ‘죽음과 삶’ 이 되겠다.세조와 일산의 상징적 의미는 이 분석과 맥락을 같이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세조는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사육신을 비롯하여, 그들의 식솔들 또한 죽임을 당하거나 노비가 되었다. 또 세조는 박팽년의 아이를 가진 여인마저도 죽이려 했던 무서운 모습을 보였었다. 물론 이 작품에서는 세조가 자신의 혈육인 단종이 죽기를 바라지 않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여전히 그가 풍기는 죽음의 뉘앙스가 짙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여 세조는 ‘죽음’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겠다.반면에 일산은 그토록 짙게 드리워져있던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 ‘삶’을 취하게 된다. 죽음 그 자체로서의 뉘앙스를 풍기는 세조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상태로 탄생했을 뿐만 아니라(물론 애초에 그가 배 속에 있을 때의 죽임을 세조가 보류하기는 했지만), 다시금 세조를 맞이했을 때 살아갈 권리를 얻게 된다. 이렇게 생각 해 볼 때 일산은 죽음에 맞대응하는 ‘삶’ 의 상징적 인물이 된다.3) 작품의 알레고리적 성격세조를 어떠한, 막대한 권력의 상징으로서 여김과 동시에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생각 해 보면, 이 희곡은 ‘돌려 말하기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앞서 나는 이 작품이 1973년에 발표되었음을 이야기 했었다. 1970년대는 군부독재에 의한 유신정권 아래 사회 전반적인 탄압 및 압박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탄압에 있어서 극심히 고통 받았던 사람들은 사회 하층민들이었을 것이다.우리는 작품 속에서의 ‘여종’ 이라는 인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권력 논리의 최하층에 위치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의 자식을 ‘남에게 빼앗긴’ 것도 모자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과정을 밟고 나서, 실성한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은 그러한 인물이 겪고 있는 비극적 현실의 참혹함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누군가에게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며 극심한 정신적 핍박과 고통을 겪는 이 인물이 상징하는 바는 당시에 고통 받던 민중들로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그러한 여종을 괴롭히는 권력의 형상들은 당시 군부독재 유신정권의 폭압적 권력 논리로서 생각 할 수 있겠다.
    독후감/창작| 2016.05.05| 5페이지| 1,000원| 조회(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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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승자의 시에서 드러나는 리듬과 부정의식
    최승자의 시에서 드러나는 리듬과 부정 의식*목차서론본론1 - 본 평론에서의 최승자의 시 연구 방향본론2 최승자의 시 분석- 1. , 『이 時代의 사랑』, 1981年- 2. , 『내 무덤, 푸르고』, 1993年- 3. , 『내 무덤, 푸르고』, 1993年- 4. , 『연인들』, 1999年- 5. , 『쓸쓸해서 머나먼』, 2010年결론-----------------------------------------------------------------------------들어가며최승자는 대한민국의 여성 시인이다. 1952년 충남 연기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수도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1년에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 입학한다. 고려대 재학 중 교지 《고대문화》의 편집장을 맡게 된 최승자는 유신시대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다. 그 이유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다. 결국 졸업을 하지 못한 채 대학교를 나오게 된 최승자는 학교 선배가 주간으로 있던 의 편집부에 입사하게 된다.1979년에 《문학과 지성》에 「이 시대의 사랑」 외 4편의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시단에 등단하게 된 최승자는, 얼마 후에 홍성사를 그만두고 번역 문학가로 활동하며 시 창작 활동에 전념했다. 1981년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 과 1984년 『즐거운 일기』, 1989년 『기억의 집』, 1993년 『내 무덤, 푸르고』, 1999년 『연인들』, 2010년 『쓸쓸해서 머나먼』, 2011년 『물 위에 씌어진』 등의 시집들을 발간하며 작품 활동을 해 왔다.본론 1 - 본 평론에서의 최승자의 시 연구 방향본 평론에서는 최승자의 시에서 나타난 리듬과, 그녀가 나타내는 부정의식에 대하여 분석을 실시할 것이다. 그 분석의 근거로 바탕할 시 작품은 총 5편이다. 순서대로 1981년 『이 시대의 사랑』에 수록된 , 1993년 『내 무덤, 푸르고』에 수록된 , 와 1999년 『연인들』에 수록된 , 마지막으로 2010년 『쓸쓸해서 머나먼』에 수록된 이 되겠다. 필자는 위 5편의 시에 대한 분석의식에 근거한 능동적 움직임에의 희망을 하는 감정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2연의 내용은 1연의 능동적 행동의 범주를 넘어선, 파괴적인 행동에의 희망 상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내용은 부정의식에서 비롯한 화자의 파괴 의식과 현실 탈피 의식의 폭발적 발산이라고 볼 수 있다. 2연에는 동일 어구의 반복 뿐 아니라, 일련의 리듬 형성의 모습이 보인다. 글자 수의 점층적 변주로 인해 내적 리듬감의 형성을 자아내고 있다. 2연의 내용 진행에 따라 글자 수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깨고 - > 부수고 - > 울부짖고 등으로 2·3·4 ···의 식으로 ‘싶어’ 이전의 글자 수가 점층적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리듬감은 시적 긴장감을 야기하는 동시에 시 속의 분위기를 점점 고조시킨다.이러한 리듬감 외에도, 제목에서부터 시인의 부정의식이 드러난다. ‘자신의 시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시가 되고 싶지 않다‘라는 것은,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온 심정에 의해 서술된 존재의 부정을 의미한다. 결국 이러한 부정의식은, 자신을 둘러싼 현실에서의 탈피를 희망하는 부정과 동시에, 내면의 자아마저도 부정하는 시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시 속에 존재하는 시인의 내면 의식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시의 언어적 리듬에 의해 선명해지며, 그로인해 그 전달력이 강화되고 있다.콱 『내 무덤, 푸르고』, 1993年대기 속에서 무슨 비밀이 싹트고 있다.무슨 탐욕스런 꿈들이 꿈틀거리고 있다.지상과 허상을 연결하는저 수많은 통화들의 혼선.찍찍거리며 어디서나 떼지어달려다니는 저 욕망의 쥐새끼들.전화기에서 검은 욕망의 피가 흘러나오고티브이 화면에서 자본주의가 색을 쓰고신문지상에서 활자들이 혼음한다.오, 하느님. 나를 저 욕망의 사회적 최전선에배치해놓지 않은 것에 감사드립니다.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죽어서 콱꿈도 없이 콱부자도 빈자도 없이 콱주류도 비주류도 없이 콱극우도 극좌도 없이 콱에잇, 콱 콱 --- 콱!세계에 대한 최승자의 부정의식은 이 시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1연의 내용은 시적 이이야기를 상대방에게 전달함으로써 일련의 상호 소통을 이루어내는 수단인 것이다. 이러한 소통의 수단을 쥐새끼라고 말하는 것은, 그러한 인간들의 소통이 병균을 옮겨 다니고 생활에 해를 가하는 것이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3연은 이러한 부정의식에 근거한 사유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시인이 직접적 부정성을 띄는 어구를 사용해서, 전화기에서는 검은 욕망의 피가, TV화면에선 자본주의가 색을 쓰고, 신문지에서는 활자들이 혼음한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전화기를 비롯한 TV, 신문지는 인간 사회에서의 소통의 창구다. 이러한 창구에의 부정은 결국 인간 사회에 대한 부정의식을 표출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4연에서는 절대자인 하느님에게 자신을 그러한 욕망의 최전선에 두지 않았음을 감사한다. 화자가 말하는 욕망의 최전선이란 전화, TV, 신문과 근접한 위치에 있는 것을 의미하며, 그러한 것들과의 접촉의 부재를 희망하고 감사한다는 것은 ‘사회에의 거부’를 원하는 의식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마지막 5연에서는 가시적인 리듬이 드러난다. 5연의 2행에서부터 ‘···없이 콱’ 이라는 반복적 어구의 사용을 통해 리듬감을 형성한다. 4연과 연관지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죽어서 / 꿈도 없이 / 극우도 극좌도 없이’ 사라지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사라진다’ 라는 것은 세계에의 부정의식을 뛰어넘어, 자신의 존재마저도 거부하는 의식을 보여준다. 꿈이라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며 느끼는 어떤 정신적인 영역의 것이다. 또한 부자의 빈자, 주류와 비주류, 극우와 극좌는 사회를 구성하는 존재들이다. 시인은 ‘···없이 콱 ···’ 이라는 어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자신 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부정의식을 드러내고 있다.‘콱’ 이라는 단어는 무엇을 세게 쥐어 터트리거나, 혹은 세게 짓이겨 밟아서 터트릴 때 발생되는 소리다. 시인은 이러한 청각적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어구의 반복적 사용으로, 자신이 사유하는 부정의식을 독자의 내면에 더욱이 선명하게 새긴다. 이러한 파괴적인 모습을 연상시키는 어구의 반 삶의 요소를 버리고 떠나자고 이야기 한다. 3행부터는 ‘삶은 / 서울은 / 더러운 것’ 으로 그 내용이 행갈이 되며 나타나고 있다. 삶은 개인들의 생존 과정 전반을 의미하며, 서울은 그러한 삶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다. 의 분석과도 비슷하게, 이러한 2·3·4 글자 수의 점층적 변주는, 시인의 사유가 개인의 삶이라는 미시적인 부분에서 그러한 삶들이 모여 있는 서울이라는 거시적 세계에의 부정으로 나아가는, ‘의식의 확장’과 관련이 있다. 글자 수의 점층적 증가로 인한 리듬감의 형성은, 시인의 의식의 확장을 효과적으로 서술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2연에서는 동일 어구의 반복을 통해 화자의 부정의식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2연 1행의 문둥이는, 단순히 나병 환자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서울이라는 세계 속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부정의식에 근거한, 그러한 이들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제 상처를 핥으며 / 제 상처를 까발려 전시하며 / 생존을 구걸하는’ 의 서술을 통해, 서울이라는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삶은 ‘생존을 위한 구걸일 뿐’ 임을 이야기하며, 그들에 대한 부정의식을 표출해내고 있다.3연에서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1연의 내용 중 3·4·5 행이 다시 한 번 반복된다. 수미상관의 방법을 적용하여 안정적인 리듬감을 형성할 뿐 아니라, 그러한 리듬감에 힘입어 ‘세계에의 부정’의 의식의 전달에 완결성을 부여하고 있다.“그릇 똥값” - 『연인들』, 1999年노량진 어느 거리 그릇 세일 가게쇼윈도에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그릇 똥값”순간 충격적으로, 황금색으로활짝 피어나는 그림 하나.신성한 밥그릇 안에 소중하게 담겨 있는김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똥 무더기 하나,아니 쇼윈도 안 모든 그릇들 안에 담겨폴폴 향기로운 김을 피워올리는 똥덩이들.그 황금색의 환한 충격.입과 항문이 한 코드로 연결되듯밥과 똥이 한 에너지의 다른 형태들이니,밥그릇에 똥을 퍼담은들,밥그릇에 똥을 눈들 어떠랴,산다는 것은 결국 싼다는 것인데이 시에는 동일한 어구의 사용과, 비이가 있음을 느낀다.사실 그릇이라는 것은 우리들이 식사 시에 음식을 담는 그릇이다. 그러나 화자는 그러한 그릇 안에 인간의 음식이 아닌 똥덩이가 있다는 역설적인 표현을 행하고 있다. 이러한 화자의, 그릇의 본질적 기능에의 부정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3연에 나타난다.화자에게 있어서 입과 항문은 하나의 코드, 즉 장기로 연결된다. 밥과 똥은 한 에너지의 다른 형태들이다. 즉, 밥과 똥이 본디 갖고 있던 ‘에너지’는 동일하고, 그들의 차이는 식사와 배설이라는 것 뿐임을 말하고 있다. 3·4행에서 ‘밥그릇에 똥을’ 이라는 동일 어구를 사용하며 일련의 리듬감을 형성하고 있다. 밥 그릇에 담을 밥이나, 배설될 똥은 같은 에너지를 공유하니, 그곳에 똥을 담은 들, 그 안에 똥을 눈 들 차이가 없음을 리듬감의 형성과 함께 ‘자연스럽게’ 이야기 한다.마지막 행은 비슷한 소리를 공유하는 단어들을 사용해 리듬감을 형성했다. ‘산다’와 ‘싼다’ 는 비슷한 소리를 공유하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즉, 유음이의어의 사용으로 인한 리듬감의 형성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밥과 똥을 같은 코드로 분류하고, 그릇에 똥을 담는다는 것은 어떤 부분에서는 해학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허나 지금까지 분석한 시들과 같이, 이 시 속에서도 시인의 부정의식이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부정의식은, 리듬감의 형성으로 인해 그 이면에 숨겨져 있다.밥과 똥을 비교해보자. 밥이라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섭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밥은 인간이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삶’의 의미로 연관지을 수 있다. 반대로 똥이라는 것은 인간의 배설에 의해 발산되는 물질이다. 이 배설이라는 것은, 밥이 식도를 통해 내장기관으로 향하고, 그 내장기관에서 영양분을 흡수하고 남은 물질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활동이다. 따라서 똥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의 과정을 거쳐서 도출된, 영양분이 다 빠져나간 상태의 것이라는 점에서 ‘죽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밥과 똥은 ‘영양분의 흡수’ 라지 않는
    독후감/창작| 2015.09.29| 8페이지| 1,000원| 조회(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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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 의 진정한 문학사적 가치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의 진정한 문학사적 가치-소설이 보여주는 시대 관통적 성격과 관련하여-*************412341234*목차*Ⅰ. 서론Ⅱ. 본론 1. 당대의 사회적 현실과 P의 현 주소- 2. 전형성으로 이어지는 익명성- 3. 작품 속에 드러나는 P의 허영심- 4. 자아의 비겁함 인식에 따른 부끄러움- 5. 소설 속 이야기를 현대 사회와 연결 짓기21세기의 사회적 현실과 우리들의 현 주소우리들의 허영심과 비겁함에 대하여Ⅲ. 결론Ⅳ. 참고문헌Ⅰ. 서론채만식은 1902년 전북 옥구군 임피면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1922년 4월, 그는 일본 와세다 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했으나, 23년 9월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귀국했다. 그 다음 해인 1924년, 단편 「세길로」가 이광수의 추천에 의해 『조선문단』에 발표되어 등단했다.우리들에게 채만식은 풍자 소설 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렇게 이야기 할 때, 『탁류』, 『태평천하』,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논 이야기」, 「미스터 방」, 「맹순사」 등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그러한 작품 들 중, 「레디메이드 인생」 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볼 것이다. 레디메이드 인생의 뜻은 무엇일까. 이를 직역하면 기성품 인생이 된다. 기성품이란 일련의 공산품으로서, 그 수요자들에 의해 ‘사용되어지기’ 위해 만들어지는 상품들을 의미한다. 그러한 상품들은 누군가에 의해 사용되어질 때만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된다. 그렇다면, 레디메이드 인생이란 결국 누군가에 의해 수요 되거나 사용될 때 그 가치가 있는 인생 이라는 말이 되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존재가 됨을 의미한다.이 소설은 채만식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도 알려져 있다. 이에 논거를 더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 1924년 단편 「세길로」를 통해 등단한 이후 그는 1925년 7월 「동아일보」사의 정치부 기자로 입사하게 된다. 그러나 다음해 10월, 그는 동아일보사의 기자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당시 동아일보사에서는 사원 는 꽤나 먼 시간적 거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것이 담고 있는 이야기, 또 의미하는 바는 사실 현대의 이야기와 다른 점을 찾기 힘들다. 즉, 30년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소설 속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가 21세기의 현대의 우리들의 삶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이제 소설의 내용을 분석, 그것의 의미를 파악하고 현대의 사건 혹은 담론과 연결시키며 이야기를 진행 해 보자.Ⅱ. 본론1. 당대의 사회적 현실과 P의 현 주소여기에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나는 세계사적인 측면에 관련하며, 다른 하나는 당대 우리나라의 현실과 관련한 것인데 후자의 경우에는 소설 속 지문과 함께 서술될 것이다. 우선 세계사적인 측면에서, 1930년대에는 세계대공황이 발생한 것을 생각 할 수 있다. 이러한 공황상태는 삽시간에 전 세계 영역으로 퍼져나갔다. 당시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던 일본 또한 그러한 공황기를 피해갈 순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당대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일본에 의해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상태에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과 함께 생각 해 볼 때, 당대의 사회적 현실에 대하여 이야기 하자면 사회의 각종 기업들의 몰락과 함께 수많은 실직자가 거리에 나돌게 된 것을 말할 수 있다.“법률의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돈······ 돈이 있으면 무어든지 할 수 있다.”신흥 부르주아지는 민주주의의 간판을 이용하여 노동자 · 농민의 등을 어루만지고 경제적으로 유력한 봉건 귀족과 악수를 하는 동시에 지식 계급을 대량으로 주문하였다. 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 하서출판사, 2006.2.20., 12쪽1930년대 일본은 우리나라에 문화 정책을 펼쳤다. 그로인해 우리나라에는 신식 교육의 열풍이 들이닥쳤고, 그러한 현상은 이내 절정에 달하였다. 아래의 예시가 그 근거를 더해준다.“배워라, 글을 배워라······. 지식만 있으면 누구나 양반이 되고 잘 살수가 있다.”이러한 정열의 외침이 방방 곡곡에서 소스라쳐 일어났다.“가르쳐라! 논밭을 팔고 집 늘어가는 인텔리······. 뱀을 본 것은 이들 인텔리다. 위의 책, 14쪽인텔리가 아니었으면 차라리······ 노동자가 되었을 것인데 ···(중략)··· 무력한 문화 예비군 속에서 푸른 한숨만 쉬는 초상집의 주인 없는 개들이다. 레디메이드 인생이다. 위의 책, 14쪽지식인으로서 성장했지만 구직난에 시달리고 있는 P는 자신이 지식인이 된 것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그는 해 마다 천 여명씩 늘어가고 있는 수많은 인텔리 중 한명이었다. 그는 고학력자임에도 불구하고 궁핍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에 대해서 막연한 후회감을 느끼며, 차라리 노동자가 되어서 지금의 상황과는 다르게 생계유지에 문제없이 살았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인용문의 마지막 문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가 생각하기에 1930년대 당시의 현 인텔리들은 ‘초상집의 주인 없는 개’ 로 여겨진다. 이 말은 초상의 ‘상’, 집의 ‘가’, 어조사 ‘지’, 개 ‘구’ 인 ‘상가지구’ 라는 말에서 비롯한 것인데, 이는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끼니를 굶는다는 것을 말하며, 조금 더 나아가면 매우 수척한 행색을 하고 있는 사람 또는 초라한 행색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사람을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당대의 인텔리들은 밥 한 끼도 제대로 먹고 다니지 못하는 아주 궁핍한 행색을 보이는 이들이 가득히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되며, P역시 그러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2. 전형성으로 이어지는 익명성이제 우리는 당대의 사회적 현실과 주인공 P의 현 주소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다음으로 필자가 이야기 할 것은 ‘익명성’에 관련한다. 소설 속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이름들은 P의 아들 창선을 제외하고는 모두 영문자 이니셜로 표현되어 있다.K사장은 끝내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것은 무리가 아니다 위의 책, 7쪽복도에서 편집국장 C를 만났다. P는 C와 자별히 사이가 가까운 터이었다. 위의 책, 9쪽이 M과 H는 같은 하숙에 있는데 두 사람은 곧잘 같이 돌아다닌다. 위의 책, 23쪽이렇게 소설 속에서박 씨가 될 수도, 명 씨가 될 수도, 홍 씨 성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한 전형성에 그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무한하게 대입할 수 있게 된다.3.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P의 허영심이 부분에서는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P의 행동 양상을 분석, 그를 통해 그가 보여주는 허영심 가득한 모습을 비추어 볼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의 허영심에 대한 판단의 근거를 ‘이중적 성격’ 과 관련하여 본다. 여기서의 이중성이란, 쉽게 이야기하자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부정하는 것과 동시에 일련의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듯 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 말하겠다.P는 그 자기의 그림자를 콱 밟고 싶었다. 그러나 발을 내디디면 그림자도 그만큼 앞으로 더 나가곤 한다. 이 그림자와 자기 자신에서, 그리고 그림자를 밟으려는 자기 자신과 앞으로 달아나는 그림자에서 P는 자기의 이중 인격의 모순상(相)을 발견하였다. 위의 책, 15쪽그림자는 항상 ‘나’ 자신보다 앞서있다. 그것이 내 앞으로 나아가던, 뒤로 나아가던 결국은 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존재다. 반대로 나는 그림자에 비해 항상 정지해있거나 뒤처진다. 이것을 인간의 욕망과 현실의 측면에서 생각 해 보면, 현실(=나)는 멈추어 있지만 욕망(=그림자)는 항상 앞서간다는 사유로 이어진다. 위 예시문은 그러한 P의 이중적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그러나 P에게는 아직도 젊은 때의 야심이 있어 그러한 고식된 안정이나 명색없는 생활은 도리어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좀더 남의 눈에 띄며, 좀더 재미있고 그리고 자유로운 생활······. 위의 책, 17쪽P의 허영심을 단적으로 꼬집어 내는 부분이다. 그는 당장 자신의 월세를 낼 돈 조차 없다. 또한 그는 돈이 없어 끼니를 거르기 일쑤인 상황에 있다. 그러한 P에게 있어 현실적인 대안은 하루 빨리 어떠한 직업이라도 갖고서 그 돈을 악착같이 모으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그러한 삶은 말 그대로 ‘명색없는’ 것이다. 자신은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달라야 ······금 주고 가, 응.”“얼마나?”“암만도 좋아······. 오십 전도, 아니 이십 전도.” 위의 책, 32쪽위 예시문은 P와 M, H가 술집에 간 후, P가 한 여성과 성매매를 하게 되는 장면에서 가져온 것이다. 여기서, 여성은 자신의 정조를 20전에라도 팔고자 한다.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지고 있는 빚을 조금이나마 갚기 위해서일 것이다.계집애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P는 불에 덴 것같이 벌떡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그는 포켓 속에 손을 넣고 있는 대로 돈을 움켜쥐어 바닥에 홱 내던졌다. ···(중략)··· 내던지고는 P는 뛰어나왔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위의 책, 32쪽자신의 정조를 20전에라도 팔겠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P는 자신의 전 재산을 그녀에게 던져버린다. 그러고선 그 자리에서 뛰쳐나온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여기서 필자는 P가 자신의 비겁함을 인식했다고 본다. 1930년대의 우리 사회가 일본에 의해 지배받고, 또 그럼에 따라 일련의 서구 문물과 사고가 어느 정도 우리 사회에 주입되었을지는 몰라도, 우리나라는 유교적 가치를 그 뿌리에 깊게 틀어 내린 국가였다. 그 유교적 사상에서는 여성의 정조를 지키는 것을 중요시 해 왔다. 그러나 술집에서 만난 그녀는 유교 사상을 가진 한국 여성에게 있어서 어떤 정신적인 가치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정조라는 것을 헐값에 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P는 어떤가? 그는 온갖 허영심과 공상에 빠져있는 상태로, 말 그대로 자기 나름대로 지킬 건 지키면서 구직 활동을 해 오던 사람이었다. 자신이 만난 여성은 중요한 가치를 포기하면서까지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하지만 자기는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인식하고, 그에 따라 자신이 비겁한 삶을 살고 있다는 부끄러운 감정이 순간적으로 폭발하여 그 곳에서 뛰쳐나온 것이다. 그가 흘린 눈물의 의미를 이러한 맥락과 함께 이해할 수 있다.5. 소설 속 이야기를 현대 사회와 연결 짓기21세기의 사회적 현실과 우리들의 현 주소지금까지 우리는
    독후감/창작| 2015.09.29| 9페이지| 1,000원| 조회(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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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만식, <치숙> 분석 평가A좋아요
    욕망하는 두 주체의 충돌, 그 속에서 진짜 의미 찾기-채만식의 「치숙」을 바탕으로-2010260603 미디어문예창작학과182098*목차*Ⅰ. 서론Ⅱ. 본론 1. 주인공 ‘나’에 대하여2. ‘고모부’에 대하여표면적 해석당대 사회적 현실을 가미한 심층적 해석3. 충돌하는 두 주체와 그 의미Ⅲ. 결론Ⅳ. 참고 문헌Ⅰ. 서론소설가 채만식 (1902 ~ 1950) 은 193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서 알려져 있다. 특히나 그는 풍자적 성격이 강한 소설들을 창작한 작가로서 인지되고 있다. 1924년 이광수의 추천으로 단편 「세길로」 를 『조선문단』 에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한 그는 1934년 그의 자전적 소설인 「레디메이드 인생」, 희곡 「인텔리와 빈대떡」 등을 발표 했다. 3년 뒤인 37년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설 「탁류」 가 『조선일보』 에 연재되었으며, 38년에는 장편 「천하태평춘」이 『조광』에 연재됐다. 필자가 이야기의 주제로 삼고자 하는 「치숙」 은 이 때 발표되었다. 이후 그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50년 6월 11일, 미완성 소설 「소」를 남기고 별세 했다.소설 「치숙」을 읽어 본 사람들이라면 이 작품이 등장하는 두 인물을 동시에 풍자하며 비판하는 ‘이중비판’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두 주체는 주인공 ‘나’와 ‘고모부’ 이다. 이들이 표상하는 바는 ‘친일파’ 와 ‘사회주의자’ 이다. 기존에는 채만식이 이렇게 대립적인 인물들을 소설에 배치하여 이중비판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소설을 써 낸 것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필자는 그러한 해석의 방향을 떠나서, 텍스트에 숨겨진 어떠한 의미를 찾는데에 노력 해 보았다. 그것은, 이 소설 속에 서로 대립되는 어떠한 욕망을 추구하는 두 자아가 충돌하고 있는 양상과 함께 생각하게 되었다. 문학과 사회와의 관계적 측면을 중시하는 문학사회학적 비평론의 입장에서는, 문학이라는 것은 어떠한 사회적 분위기나 현상을 작가 스스로가 나름대로의 해석의 틀을 통해 재해석한 것이라 말한다. 그렇정과 결과를 모두 ‘일본식’으로 이루고 싶어 한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국가를 침범한 일본에 따르는 친일파임을 알 수 있다.르네 지라르에 따르면 욕망하는 주체는 그 스스로 무언가를 욕망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누군가의 개입으로 인해 그것을 욕망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나’가 욕망하는 바는 이름도 바꾸고, 일본식 의식주를 누리고 나아가 자식까지 나아 살고 싶다는, 철저하게 그 욕망의 대상이 자신을 일본인으로 만들기, 즉 ‘일본화’ 되기임을 알았다. 그럼, 다음으로 과연 그의 욕망을 중개하는 이가 누군지 알아보자.내가 일곱 살에 부모를 잃었지요. 그러고 나서 의탁할 곳이 없이 됐는데 그때 마침 소박을 맞고 친정살이를 하는 그 아주머니가 나를 데려다가 길러 주었지요. 위의 책, 48쪽우선 주인공은 일곱 살 때 부모를 잃어 고아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나’는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고모부의 부인인 아주머니에 의해 길러졌다. 이 지점에서, ‘나’는 어렸을 때 자신의 부모를 잃어버린 상태, 즉 자신이 성장함에 있어 어떠한 정신적 가치나 교육을 습득할 수 있게 도와줄 누군가가 부재한 상태로 성장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상태에서 그에게 일본화라는 대상을 욕망하게 한 중개자가 나타난다.그때 내가 나이는 어려도 두루 날뛴 보람이 있어서 이내 구라다상네 식모로 들어갔지요. 위의 책, 47쪽저어 서양 어디선가,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 몇 놈이 양지쪽에 모여 앉아서 놀고 먹을 궁리를 했더라나요. 우리 집 다이쇼가 다아 자상하게 이야기를 해 줍디다. 위의 책, 52쪽어린 ‘나’는 아주머니와 함께 서울로 오게 된다. 그러나 마땅히 밥벌이를 할 수단이 없어 일본인의 식모로 일을 하게 된다. 필자가 제시한 두 번째 예시문에 주목 할 필요가 있겠다. ‘다이쇼’란 ‘주인’을 뜻한다. 즉 집주인이 어린 ‘나’에게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인데, 여기에 두 가지 사항을 생각 해 보아야 한다. 첫째, ‘나’는 아직 신체적·정신적으로 집주인은 한국인인 자신을 ‘신용’한다는 점을 인지, 기뻐하는 듯 한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또 일본 정부가 펼치는 일련의 문화 정책에 대하는 태도를 볼 때 그의 욕망의 대상에 대해 그가 갖고 있는 잠재적 의식을 유추하게 만든다.그렇다면 그의 욕망의 대상을 매개하는 주체는 결국 ‘일본 세력’으로 표상되는 다이쇼(주인)이 된다. 1930년대 일본은 식민지 통치 방식을 잠시 동안 변경하여 한국인을 매혹시키려 노력했다. 기존의 억압적이고 탄압적인 태도를 잠시 벗어나고, 문화 산업에 힘쓰는 등의 ‘조선인 설득하기’ 의 방향을 선택했다. 이것이 바로 1930년대의 일본의 문화 정책인데, 이는 소설 속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라 유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필자가 제시한 두 번째 예시라고 생각한다. 아래는 소설의 주인공인 나의 개인적 욕망의 구조를 그림으로서 나타낸 것이다.일본화주인나지금까지 우리는 서술자인 ‘나’ 라는 인물에 대하여 알아보았고, 그의 욕망의 구조에 대해 이야기 해 보았다. 그러한 분석을 통해 알아낸 것은 ‘나’의 일본화라는 욕망의 매개자는 그의 생계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일본인임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사회적 의미라는 것은, 친일파로 표상되는 ‘나’의 욕망의 생성 구조를 통해, 당대의 친일파들의 확산 양식을 생각 해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본디 1910년 한일 합방 때부터 친일 활동을 펼친 사람들 외로, 그러한 인물들의 생성의 양상에 대한 하나의 층위를 알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도 그 의미가 있다.2. ‘고모부’에 대하여작품 속 고모부에 대하여 분석할 수 있는 방향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텍스트를 통해 그대로 읽어낼 수 있는 ‘표면적인 해석’의 방향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 역사적 현실을 가미한 보다 ‘심층적인 해석’의 방향이다. 첫 번째의 경우부터 살펴보자.표면적 해석우리 아저씨 말이지요. 아따 저 거시기, 한참 당년에 무엇이냐 그놈의 것, 사회주의라더냐, 막걸리라더냐, 그걸 하다 징역 살고 나와서 폐병으로 고모부는 대학교에서 경제를 전공한 듯하다. 그렇다면 그를 사회주의자로의 길을 걷게 만든 욕망의 매개자는 누구일까? 그것은 소설에 명백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우리는 고모부의 삶의 과정을 선상으로 그림으로써 유추 해 볼 수 있다.서울의 대학교에서 경제 공부 -> 일본 유학 -> ( ) -> 사회주의 운동 시작 -> 옥살이 -> 폐병을 앓는 상태로 나옴위의 괄호에 존재해야 할 것이 바로 욕망의 매개자와의 접촉일 것이다. 고모부는 경제학을 배운, 그리고 일본에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 엘리트 계층에 속해있다. 그렇다면, 그 매개자는 그러한 사람들이 모이는 ‘학회’에서 만난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가 우연히 공부하게 된 사회주의 서적이 될 수도 있다. 당대의 사회주의라는 개념을 접할 기회가 다분한 계층은 일반 서민보다 지식인 계층이라는 점을 생각 해 보면 고모부는 그러한 사상에 노출될 가능성이 농후한 인물이 된다.그날도 글쎄 잡지가 그 꼴이라 아예 글을 볼 멋도 없고 해서 혹시 망가나 사진이라도 있을까 하고 책장을 후르르 넘기느라니깐 마침 아저씨 이름이 있겠다요. 하두 신통해서 쓰윽 펴들고 보았더니 제목이 첫 줄은 경제, 사회······ 무엇 어쩌구 잔 주를 달아놨겠지요. 위의 책, 59쪽이것은 주인공이 우연히 학술지 또는 잡지에서 그의 고모부 이름을 발견했던 경험을 말하는 부분이다. 이는 그의 고모부가 나름대로의 학술적 활동을 자주 한다는 의미를 유추할 수 있게 만드는 소설의 장치라 판단된다. 이러한 장치는 필자가 언급한 위의 ‘사회주의 사상 접촉의 가능성’ 의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판단 아래서, 고모부는 외부적 활동 혹은 여러 서적들의 접촉을 통해 사회주의 운동을 하고자 하는 욕망에 눈뜨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의 욕망 생성 구조를 아래의 그림으로 표현 할 수 있다.사회주의 실현학문적 활동고모부당대 사회적 현실을 가미한 심층적 해석그러나 필자가 이 소설을 보았을 때, 단순히 고모부가 욕망하는 것이 사회주의 사상의 성격보다 ‘항일민족운동’의 성격이 컸다. 1919년 3·1 운동 이후에 항일 운동과 민족 재생의 방편 중 하나로 사회주의 운동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사상에 근거한 운동은 나라를 빼앗기고 매우 곤궁한 상태에 있는 조선 국민들에게 ‘모두가 평등한, 모두 일하고 나눠 갖는다’의 슬로건은 충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일본이 그러한 사람들을 탄압했던 이유는 그 사상의 확산이라는 것이 일본 정부로의 반발의식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옥살이를 하고 나온 고모부는 결국 일본에 대항하는 민족 운동을 펼쳤다는 것이 되고, 그에 대한 일본의 탄압의 결과로 병을 앓게 된 인물이 된다. 이러한 사유에 따라, 그것을 다시 구조화 해 보면 아래의 그림이 도출된다.민족 해방사회주의 운동고모부3. 충돌하는 두 주체와 그 의미지금까지 우리는 위의 본론 1, 2에서 ‘나’와 ‘고모부’의 욕망의 구조를 도출 해 보았다. 우리가 알다시피, 소설 속에서의 주인공 ‘나’와 고모부가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는 상반되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제 그러한 두 주체의 충돌 양상에 대하여 이야기 해 보자.그 양반이 한시바삐 죽기나 했으면 우리 아주머니는 차라리 신세 편하리다. 위의 책, 46쪽그러나마 그게 밥이 생기는 노릇이란 말인지? 명예를 얻는 노릇이란 말인지? 어쨌다고 그걸 끝끝내 하지 못해서 그 발광인고? 위의 책, 51쪽그놈의 것 사회주의인지 지랄인지는 온 세상을 뒤죽박죽을 만들어 놓고 나라를 통째로 소란하게 하니까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대요.용서라니! 나 같으면 그런 놈들은 모조리 쓸어다가 마구 그저 그냥······. 위의 책, 56쪽위의 분석에서 우리는 ‘나’라는 인물이 일본화를 욕망의 대상으로 하는 친일파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 고모부가 주장하는 사회주의라는 사상은 불온하기 그지 없다. 첫 번째 예시문에서, 자신의 친척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그가 고모부라는 인물에 대해 갖는 감정을 알 수 있다. 혹자는2쪽
    독후감/창작| 2015.09.29| 10페이지| 1,000원| 조회(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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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 감상문
    레디메이드 인생과 우리들의 삶목차서론K 사장의 말에 대하여몸을 파는 여자와 PP의 아들 창선에 대하여우리들, 그리고 레디메이드 인생결론* 들어가며레디메이드 인생, 직역하면 기성품 인생이라는 말이 된다. 기성품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시장의 소비자들에게 ‘이용되기’ 위한 물건을 뜻한다. 이는 결국 누군가에게 사용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쓸모가 없는’ 것을 의미한다. 레디메이드 인생이란, 하나의 인간이 누군가의 수요를 위해 ‘만들어지고 살아감’을 의미하는 것이 되겠다.소설에는 주인공 P가 등장한다. 이 주인공 P는 일제 강점기의 지식인이다. 그는 당대 사회에서 나름대로의 고등교육 과정을 거친, 소위 지식인 계층으로 나타나는 인물이다. 이러한 P는 지식인임에도 불구하고 취직을 하지 못하고 있다. K 사장에게 일자리를 얻고자, 그에게 일자리를 구해달라며 주인공 P가 부탁을 하는 장면으로 소설이 시작되고 있다.* K 사장의 말은 과연 터무니없는 말에 불과한 것인가?그러한 구직활동에도 불구하고 P는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가 원하는 일자리에는 그 잔여 좌석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지식인 계층으로 나타나는 P 라는 사람이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없는 것인가.당대 사회는 지식의 습득을 부추기는 계몽 운동이 계속해서 진행 되었다. 소설의 내용 중에서, “배워라, 글을 배워라 ··· 지식만 있으면 누구나 양반이 되고 잘 살수가 있다.”를 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러한 계몽 운동과,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개인적 욕망으로 인해 교육의 붐이 일어나고, 지식인 계층의 수가 이전에 비해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것이다. 이로써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에는 지식인 계층이 많아졌으나, 그들의 수를 감당할 구조적 차원에서의 부분이 현저히 미약했기 때문에 P와 같은 지식인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결국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의 증가 추세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K 사장의 말 중에, 농촌으로 가서 일을 하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누군가는, 그의 말이 현실적 상황을 전혀 고려치 못한 생각에서 나온 말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이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우선, 계몽 운동의 영향으로 도시, 농촌의 거주자 할 것 없이 모두 지식의 습득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도시에서의 풍족한 삶을 위해 배움의 길을 택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지식인들의 폭발적 증가와, 그들의 도시 유입으로 인해 농촌에 대한 사람들의 가치 판단은 이전보다 낮아졌을 것이다. 도시의 인구 수 과열화, 농촌의 인구 수 감소로 인해 농촌의 노동인구 수는 이전보다 꽤나 줄어들었을 것이다. 결국 도시에는 일자리를 찾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증가하고 일자리는 감소하는 반면에, 농촌에는 젊은이들의 수가 줄어들고 노동력을 요구하는 일자리는 계속해서 증가했을 것이다. 따라서 진실 되게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농촌으로 가라는 K 사장의 말은 합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P가 만난 몸을 파는 여자는, P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게 되었을까?P 가 만난 몸을 파는 여자는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P 는 당대 사회의 지식인이다. 해서 자신은 ‘배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일자리를 가져야 한다는 일련의 ‘자존심’ 같은 것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촌으로 돌아가 일을 해야 한다는 K 사장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콧방귀를 뀌었던 것이다. 따라서 P 에게 있어서 일자리를 구한다는 과정에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유가 깊이 내장되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P 는 몸을 파는 여자를 만나고, 그녀와 잠자리를 가질 뻔 했다. 허나 P 는 그녀와 잠자리를 갖지 않고, 돈을 던지며 눈물을 흘렸다. 필자는 여기서의 ‘눈물’ 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았다. 눈물, 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그를 생각해내기 위해서는 우선 몸을 파는 여자에 대한 사유가 진행되어야 한다.여성에게 있어 ‘정조’ 라는 것은, 유교 사회에 속하는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꽤나 중요한 개념이다. 그것을 여성이라는 존재와 동시에 개인적 자존감과 결부시켜 생각해보면 이는, 일련의 자존심으로도 볼 수 있다. 허나 이 여성은 생존을 위해 그러한 자존심을 버린다. 여기서, 지식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유지한 채 계속해서 일자리를 찾으며 생존에 있어 궁핍하고 결핍된 P 와, 여성으로서의 자존심을 포기하면서까지 생존에의 노력을 다하는 여자의 모습이 대비된다. 필자는 P 가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도망쳐 나온 이유는, 이러한 상황의 대비됨과 그로써 자신에의 문제를 발견함에 따른 것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P의 아들 창선, 왜 그만 구체적으로 이름이 제시되었을까?작 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대부분 이니셜로 표현되어 있지만, P 의 아들의 이름은 창선이라고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창선을 제외한 이들의 이름이 이니셜로 표현된 이유는, 당대 사회에 있던 사람들에 대한 일반화의 효과를 얻기 위함이라 사료된다. 즉, 당대 사회를 살아가던 인물들의 일반적인 모습을 소설 속 인물들의 ‘익명성’을 통해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허나 P 의 아들인 창선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이유는, 그가 일련의 미래 의식이 투영된 존재라 사유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당대 사회는 교육의 열풍이 불고, 그에 따라 지식인들의 양산화가 진행되었다. 그러한 과정에 있던 인간들에 대해서 ‘레디메이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사유가 작품 속에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P 는 그러한 기성품 인생을, 자신의 아들은 그러한 삶을 탈피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창선의 교육보다는 실제적인 재화를 벌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인쇄소에 맡기게 된다. 이는 창선이라는 인물이, 당대 사회에 만연하던 기성품 인생을 탈피하고,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되길 바라는 사유에서 진행된 것이라 생각한다.* ‘나’를 비롯한 우리들, 그리고 레디메이드 인생문학이라는 것은 예술의 한 장르다. 예술이라는 것은 소통을 그 근원적 요소로 여긴다. 채만식 작가가 써낸 레디메이드 인생은 1930년대에 쓰인 작품이지만, 약 8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아직까지도 우리들과 소통하고 있다.필자가 생각하기에 소통의 과정에는, 그 매개체의 전달자와 수용자 사이에 일련의 ‘교감 가능한’ 기제가 존재해야 한다. 작품의 수용자인 나에게 있어서, 레디메이드 인생은 그러한 소통의 기제가 확연히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다.그것은 바로 현재 우리들의 삶과,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삶이 비슷하다는 사유를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교육 열풍이 계속해서 심화되고 있으며, 그로인해 끊임없이 ‘지식인’들이 양산되고 있다. 현재 대학 2년에 재학 중인 필자도 그러한 지식인 계층에 속한다고 생각한다.그러나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과연 자신의 인생의 중대한 목표와 꿈을 찾아 학교를 다니고 있는가. 아니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좀 더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좀 더 좋은 직장을 갖기 위해 지금껏 힘 써왔던 우리들이 아닌가에 대한 생각을 한다.우리는 이 대학을 졸업하고, 멋진 삶을 살아가기 위해 대기업에 취직하려 노력하게 될 것이다. 유명한 대기업 삼성에서는 ‘SSAT’ 라는 자체적 시험을 통해 신입 사원을 채용한다고 한다. 매년 취업의 문은 좁아지고, 때문에 우리들은 그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경쟁해야 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매년 취업하기가 더더욱 힘들어진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사실 취업의 기회는 줄어들었기 보다는, 더욱 많아졌다고 말해야 한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분야가 탄생하고, 그 분야에서의 노동력을 요구하는 곳은 많아졌기 때문이다.그러나 왜 우리는 취업의 문이 좁아졌다고 하는가. 이는 레디메이드 인생에서의 P 와 같은 사유에 따른, 즉 ‘자존심’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이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이기 때문에, 비교적 높은 보수를 제공하는 대기업에 취직해야 한다는 일련의 고집을 부리는 문제에 놓여 있다. 때문에 그러한 규모에 반대되는 중·소규모의 회사에의 취직은 우리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해서 그러한 기업에는 가려고 하지 않고 대기업만을 고집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 그 한정된 그릇에 우리라는 내용을 계속해서 담을 수는 없다. 이는 레디메이드 인생이라는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증가하는 지식인을 수용치 못하는 사회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우리들 대부분은 작품 속 P 와 같이 기성품 인생을 살기 위해 이토록 매진했던 것이라 볼 수 있는데, 과연 계속해서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할까.
    독후감/창작| 2015.09.29| 4페이지| 1,000원| 조회(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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