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스페셜 ‘결혼의 미래’에 대한 소고- 결혼 물음표로 던지다 -21세기 정보화시대를 맞이하여 사회의 다양성 및 개방성과 함께 결혼에 대한 기본적 가치와 관점들이 변화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전통적 결혼생활의 유지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만 유럽을 중심으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성소수자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져가는 추세에 있다. 최근에는 결혼율의 감소와 이혼율의 증가 및 독신자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비 결혼가구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어 크나 큰 사회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SBS스페셜 ‘결혼의 미래’를 시청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결혼생활을 접하고 여기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과 나의 생각을 적어 보기로 한다.첫 번째는 세계에서 최초로 동성결혼을 허용한 네덜란드 출신의 동성부부에 관한 내용이다. 동성부부인 신디와 펨카는 사랑으로 부부의 연을 맺고 주위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어느 이성부부 못지않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리고 있다. 더군다나 신디의 남자친구가 정자제공을 하여 인공수정을 통해 타이먼을 출산하였고 아기의 양육을 위해서 혼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가 있었다. 우리나라 민법은 자연법에 따라 이성간의 혼인만 허용하고 있음에 비하여 유럽, 북중미, 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에서 여러 국가들이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법제화를 시행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법률을 채택한 바 있다.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우리나라 성소수자들도 그들만의 단체를 결성하고 동성결혼 허용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지는 반면, 일부 보수단체에서는 사회규범과 자연 질서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맞불집회를 벌이면서 사회문제로 이슈화 되고 있다. 동성 간 결혼이 허용되면 자녀도 입양이 가능해짐에 따라 일반적인 이성부부와 그들의 자녀들처럼 똑같은 법적권리와 법제화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된다. 무엇보다도 전통적 유교사상이 매우 강한 우리나라는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반대가 매우 심한편이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회적 타협의 계기를 하루빨리 만들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다.두 번째는 직장에서 상사로 만난 8살 연상녀와 결혼하는 조형준(26)에 관한 내용이다. 친구들에 비해서 제일 빨리 결혼을 선택하게 된 조형준은 고등학교 때 부터 결혼을 꿈꾸어 왔다고 한다. 결혼하는 이유가 ‘같이 있으니까 행복하고 평생의 반려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소감을 밝히고 있다. 가끔 연상연하커플 연예인들의 결혼발표로 일반인들을 놀라게 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제 사회전반에 걸쳐 이러한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대체로 우리 부모 세대에서는 부부의 나이 차는 2~3살 정도가 최적의 부부조건이라고 생각하는 반면에 요즈음은 이러한 기준선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세 번째는 결혼 적령기가 한참 지난 41살의 노총각이 36세의 노처녀와 만나서 가정을 꾸려 나가기 위해 결혼하는 사례를 볼 수 가 있다. 이들이 생각하는 결혼에 대한 핵심적 가치는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여기며, ‘태어나서 결혼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당당히 밝히고 있다. 부모님의 입장에서 늦게 결혼하는 자식들을 보면서 얼마나 마음 조였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결혼 적령기를 놓치는 이유가 짝을 찾지 못하거나 개인적 사회생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그 중에서 경제적 사정 때문에 결혼이 늦어지는 안타까운 일들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인 것 같다.네 번째는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싱글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비혼 모임을 통해 그들의 소신을 당당히 밝히면서 사회적 성취감과 일에 대한 욕심 등 싱글로 성공하고 싶어 한다. 결혼이란 엄청난 결정이고 신비로운 생각이다. 편하게 혼자 산다는 사고방식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의무와 테두리의 합법적인 굴레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들의 논리이다. 이러한 싱글로 살아가겠다고 하는 사람들 영향으로 우리나라 결혼률은 최근 20%나 감소하는 추세라고 한다.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사회적 경제적으로 그들 나름대로 역할을 담당하고 있겠지만 국가의 미래관점에서 볼 때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저출산은 인구가 감소하고 국가 경쟁력이 낮아지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싱글이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결혼률 저하는 이를 더욱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다섯 번째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결혼생활을 영위하면서 엄연히 아내와 남편, 자식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연인관계를 인정해주는 폴리아모리(개방결혼)에 관한 내용이다. 미국에서 이러한 개방결혼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다. 이들은 결혼이란 평생을 같이 하는 것이 아니고 친구의 개념으로 수용하고 있다. 기존의 결혼생활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혁신적인 변화로 보인다. 동양적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현상이며,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면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사건으로 인식되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본다.여섯 번째는 대학 신입생 때 만나서 9년이란 오랜 기간 동안 연애를 한 후 결혼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결혼에 성공한 사례이다. 결혼식장까지 예약해 둔 상태에서 양가 부모의 의견충돌로 결혼이 취소되고 1년 후에 재결합하여 결혼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추측컨대 혼수 등의 문제로 1년 전에는 결혼식을 진행하지 못했던 것 같다. 결혼이란 두 사람의 사랑으로 맺어져야 아름다운 결혼생활의 기본이 될 수 있는데 주고받는 혼수의 문제로 결혼을 하기도 전에 파탄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혼수문제로 생긴 갈등으로 최악의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면,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고 이해하면서 대화로 해결해나가야 된다고 생각한다.일곱 번째는 재혼 부부의 이야기이다. 첫 번째 결혼생활의 실패로 이혼 후에 재혼을 하고 서로에게 지극한 애정과 배려로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아마도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는 과거의 전처를 밟지 않겠다는 서로의 의지가 강해 보인다. 이혼 전에 이러한 결혼생활을 유지했다면 결코 이혼은 없었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경제성장의 의미-저서명: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1. 들어가면서‘경제성장이 안되면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결과가 뻔한 이러한 질문이지만 그 내면에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일부는 경제성장만이 행복과 풍요를 가져준다는 맹신적 믿음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고도 성장속에서도 소외되는 다수의 계층들이 존재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최근 미국 월가의 금융자본가들의 탐욕스러운 이익 챙기기에 반대하는 소시민들의 목소리, 반값 등록금을 해달라고 소리높여 외쳐되는 수많은 대학생들의 울부짓는 소리, 평생 살아온 삶의 터전을 재개발로 인해 잃어버리는 우리의 이웃들은 고도 경제성장속에서도 결코 풍요를 느끼지 못할 것 같다.저자 더글러스의 저서을 통해 경제성장과 풍요를 어떻케 조명하고 해석하고 있는지 이에 대한 명쾌한 답을 찾고자 한다.2. 본문저자는 타이타닉호가 거대한 빙산에 침몰당한 것을 설명하면서 현실주의에 비유하고 있다. 타이타닉 현실주의를 거대한 세계로 묘사하면서 국가에서 부여하는 교전권과 군사권 등의 정치적시스템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한 사실과 20세기 온갖 문화와 자연환경을 파괴하면서 이룩한 경제발전은 큰 환경적 재난을 불러오고 있다는 역사적 현실을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20세기 역사적 현상을 확실히 인식한 기반을 바탕으로 21세기를 어떻케 만들것인가를 역설하고 있다국가에 부여된 경찰권, 처벌권, 교전권은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명분하에 대단위 인명을 앗아갈 수 있는 정당한 권리였다. 특히 20세기 들어와서 이러한 권리들은 국가간의 전쟁뿐만아니라 자국 국민들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근거가 되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 강대국과 일본은 근대화된 신식군대와 무기를 바탕으로 아프리카, 아시아 등 대부분 저개발 국가를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침략행위를 일삼았으며 식민지화 하였다. 이들은 상대국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를 말살하는 동시에 식민지 국민들의 목숨은 마음만 먹으면 빼앗아 갈 수 있는 폭력행위를 정당한 권리인양 행사하여 왔던 것이다.우리나라를 36년간 통치해온 일본의 경우만 보더라도 초기에는 헌병경찰이 즉석처벌권을 일본국가로부터 위임받아 강압적 통치행위를 행하였다. 당시에 대대적인 저항에 부딪혀 문화통치로 전환하였지만 이 또한 더 가혹한 통치행위를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였다. 종국에 가서는 민족 말살통치와 2차 세계대전중에 강제로 인력을 동원하고 심지어 어린 소녀들마저도 위안부로 끌고 가서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행위들을 저질러 왔다. 일본은 패망후에 아직까지 한번도 진심어린 사죄의 반성을 하지 않고 있으며 당시 정신대로 끌려갔다가 살아 남은 할머니들이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직도 비가오나 눈이오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심지어 일본은 독도마저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끊임없이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20세기 화려했던 국군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이러한 움직임이 감지되는 것은 패전국 일본이 자신들의 헌법에 명시된 자위권을 국제적 분쟁지역에 평화유지의 목적으로 참가하려고 개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표면적인 이유는 평화유지에 있겠지만 속내는 자신들의 군사적인 우위를 세계에 과시하고 점차적으로 교전으로 확대할 것이라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교전권의 정당한 권리행사는 20세기 중반부터는 미국에 의해 주도되고 유엔에 의해 합법화되고 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을 비롯해 이라크, 아프카니스탄 침공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일어나는 분쟁지역에 직접 전투력을 행사하고 유엔에 가입한 다수의 국가들이 이에 동조하여 군대를 파견하고 각종 살상무기를 지원하고 있다.이들이 행하는 폭력행위는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정당한 권리이자 세계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아프리카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치열한 권력투쟁과 권력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자국민에 대한 대량 살상행위가 지금 이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리비아 카다피가 40년간 수백만명의 목숨을 빼앗으면서 독재정치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국민들의 저항으로 몰락의 길로 빠져들었고 자신은 죽음으로 생을 마치게 되었다. 중동의 많은 나라에서 독재정치에 항거하여 민주화를 외치고 있음은 폭력행위를 정당화시키려는 이들에게 마지막 경고의 메세지가 아니겠는가?자국민에 대한 폭력행위가 비단 다른 나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수없이 있어 왔다는 사실이다.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이승만 독재정권이나 10월 유신등으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고 장기 독재를 구축한 박정희 정권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때 학생과 시민들을 억압적인 수단으로 무차별적인 린치를 가한 전두환 정권에서서는 폭력행위가 정당하게 미화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권력쟁취를 위한 합법적이지 못한 이러한 폭력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파국에 이른다는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건들이 말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20세기 경제발전은 자연환경을 파괴한 토대위에서 이루어졌고 이에 따른 대재앙은 지구온난화로 귀결되고 있다. 자연이 남아있다면 개발이라고 말 할 수 없을 정도의 파괴행위가 자행되었던 것이다. 강대국은 자신들의 경제적 대권을 차지 하기 위해 자국의 자연을 파괴하는 것도 모자라서 열대 원시림을 파헤치고 그곳의 원주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까지 경제성장을 이루려고 하였다. 이들은 경제성장을 통해서 모두가 부자가 되고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러한 논리의 허구성이 세계 곳곳에서 부정적 측면으로 발생하고 있다경제발전에 따라 자연환경 파괴뿐만 아니라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화되고 양극화 현상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불리는 미국은 빈부의 격차로 각종 범죄행위가 기하급수적으로 일어나고 있으며 최근에는 탐욕스러운 금융자본가의 제 몫 챙기기에 분노한 수많은 시민들이 이들을 원망하는 시위행위를 거의 매일 벌이고 있다. 이러한 시위행위가 도화선이 되어 세계 각국으로 전파되는 도미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또한, 유럽에서는 그리스를 비롯한 이탈리아 등에서 많은 부채 때문에 채무불이행 수준에 까지 이르는 단계에 있다. 임시방편으로 유로존 핵심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에서 긴급 자금을 지원하여 가까스로 그 위기를 모면하고 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를 지뢰밭을 걸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들 몇 개의 나라 때문에 전세계의 경제가 충격에 빠져들지도 모를 우려감이 팽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들에게 경제성장은 무슨 의미로 받아들여 질까? 국가 부도가 초래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수의 국민들은 긴축재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는 모습에서 경제성장의 휴유증에 대한 일면을 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