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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의 자연환경, 삶과 문화
    R E P O R T미국의 자연환경, 삶과 문화1. 서론2. 미국의 자연환경3. 미국의 기후4. 미국의 삶과 문화1) 정착유형2) 도시화3) 지역문화의 유형들5. 결론6. 참고문헌1.서론자연환경은 사람들의 행동방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문화 자체가 주어진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그 환경을 자신에게 맞게 변화시켜가는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다. 이러한 점에서 환경이라는 요소는 한나라의 문화와 삶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하지만 미국의 영토는 우리가 알다시피 매우 넓다. 이러한 넓은 땅에 대한 자연 환경과 문화에 대해서 이 레포트 하나로 요약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본인은 이번 레포트를 통하여 미국의 자연환경과 문화에 대한 세세한 설명보다는 미국이라는 큰 틀에서 간략하지만 전체적으로 미국의 자연환경과 문화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2.미국의 자연환경미국의 지형을 살펴보면 주로 남북으로 펼쳐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내륙 지역은 멕시코만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그리고 알래스카로 계속 뻗어 있는 방대하고 불규칙한 저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지형 전개에 관심이 있는 지리학자들은 이처럼 넓디넓은 평지와 부드럽게 굴곡진 언덕들을 지형학적으로 세 지역, 즉 대서양 및 멕시코만 연안의 평원, 내륙저지대(일부 학자들은 대평원과 내륙 평원으로 다시 나눈다), 캐나다 순상지 등으로 구분한다.대서양 및 멕시코만 연안의 평원은 동부 해안을 따라서 북쪽으로 올라가 뉴잉글랜드 남쪽 변두리까지 이어진다. 이 지역의 지표면 밑에는 단단하지 않으면서 침식되기 쉽고,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바위층이 놓여 있다. 이 암석층은 지질학상 최근에 수심이 낮아진 바닷물이 그 지대를 오가면서 축적된 것이다. 이러한 낮은 평원은 해수면 아래로 이어져 대륙붕을 형성하고 있으며 길게는 해안에서 4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까지 뻗어 있다.북쪽에 있는 내륙저지대는 해안 평야지대에 비해 확실히 언덕진 지형이긴 하지만 거친 곳은 거의 없다. 내륙저지대는 접시처럼 변두리 부분이 올라왔으며있던 캐나다 순상지에 자리잡고 있다.남쪽은 상대적으로 빙하 두께도 얇고 영향을 덜 받았으며, 고도가 높은 지형 때문에 빙하의 흐름이 바뀌었다. 가령 뉴욕주 중부에서는 모호크 강 남부에 있는 고지高地에 의해 빙하가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막혀버렸다. 하지만 모호크 강 지류가 흐르던 계곡에는 빙하가 조금씩 흐르면서 계곡을 점점 넓고 깊게 만들었다. 오늘날 뉴욕주의 깊고 좁은 호수인 핑거 호는 이렇게 빙하로 넓어진 계곡들을 채우고 있으며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빙하의 남쪽 끝부분에 위치한 지역과 그 너머 지역에서는 빙하작용 중 침식작용보다는 퇴적작용이 더 크게 작용했다. 내륙저지대의 대부분은 빙하가 운반하여 떨어뜨린 바위와 흙으로 구성된 표석점토로 뒤덮여 있는데, 표석점토의 두께는 1미터 이하에서 100미터 이상까지 다양하다. 빙하가 오랫동안 흐르지 않고 고여 있던 장소에서는 빙퇴석이라 불리는 높은 언덕 지역이 만들어졌다. 동부에 있는 스태튼아일랜드, 롱아일랜드, 마서즈비니어드 섬, 코드 곶 등은 빙하가 남동쪽으로 가장 멀리 뻗어나간 빙퇴석 지역의 끝자락에 있다. 오대호 남부는 길고 낮은 반원 모양의 빙퇴석 능선과 또다른 빙하 퇴적물 지형으로 수놓아져 있다. 반면 내륙저지대 가운데 빙하작용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이 있다. 위스콘신주 남서부 지역과 400킬로미터나 뻗어 있는 미시시피 강의 계곡 지역은 북쪽 슈피리어 고원이 장애물 역할을 하면서 미시간 호와 슈피리어 호의 깊은 계곡이 빙하의 방향을 바꿔 빙하작용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무표석점토 지역(driftless area)’인데, 무른 바위들이 천연 교각이나 아치 모양으로 울퉁불퉁하게 형성된 지역이다.빙하가 퇴각하면서 빙하가 있던 끝부분을 따라 거대한 호수가 만들어졌다. 대평원 북부에는 두 개의 거대한 호수(애거시 호와 리자이나 호)가 오늘날 오대호보다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빙하가 계속 퇴각하자 이 호수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노스다코타주와 더 북쪽으로 가면 컬럼비아-스네이크 분지가 있는데 이곳은 깊이 1천 미터 아래까지 용암으로 채워져 있다. 예나 지금이나 컬럼비아 강과 스네이크 강은 바위를 침식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형성된 지형은 콜로라도 고원지대와 비슷하지만, 콜로라도 고원지대의 침식퇴적암이 지니고 있는 세월에 깎인 계단 모양의 외관은 찾아볼 수 없다. 화구구 도 이 지역, 특히 오리건주 남부의 중앙부와 아이다호주의 스네이크 강 계곡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원지대는 북쪽으로 갈수록 점차 넓어져서 알래스카주의 유콘 강 언덕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알래스카 중앙의 대부분은 배수가 제대로 안 되는 넓고 평평한 저지대로 이루어져 있다.미국의 태평양 연안 지역은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두 개의 산맥이 있으며 그 사이에 저지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코스트 산맥의 캘리포니아 남부 쪽은 매우 거대한데, 봉우리들이 3천 미터까지 치솟아 있다. 그곳에서 오리건주 경계선까지는 코스트 산맥이 낮으면서도 일직선으로 늘어서 있으며, 1천 미터 이상 솟아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이 지역은 또한 미국의 주요 단층지대로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캘리포니아-오리건 주경계선을 따라 위치하는 클래머스 산맥은 코스트 산맥보다 더 높고 길며, 굴곡도 훨씬 더 심하고 불규칙하다. 워싱턴주 북서부에 있는 올림픽 산맥을 제외하고 오리건주와 워싱턴주의 나머지 지역에 걸쳐 있는 코스트 산맥은 산악 지형이라고 하기엔 너무 낮고 언덕도 많다.태평양 연안에 있는 내륙저지대인 캘리포니아주의 센트럴밸리, 오리건주의 윌래멋 계곡, 워싱턴주의 퓨젓사운드 저지대 등은 서해안 근처에 있는 유일한 대규모 저지대이다. 이 저지대들은 상대적으로 질 좋은 토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태평양 연안 지역의 농업을 지탱해주는 밑바탕이 되고 있다.저지대 동쪽에는 시에라네바다 산맥과 캐스케이드 산맥이 있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은 동쪽과 서쪽 지형을 비교해보면 마치 단층 지괴로 구성된 거대한 땅덩어리가 아주 날카로운 얼굴로 동쪽을 바라보면서 위쪽으로 높이 치솟아있는 수분의 양도 줄어든다. 공기 냉각으로 인해 상대적인 습도가 100퍼센트에 다다르면 비가 내리게 된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는 수분이 비가 되어 떨어지고, 바람이 닿지 않는 반대쪽은 건조해진다. 북미에서 가장 습한 지역은 오리건주에서 알래스카주 남부까지 이어지는 태평양 연안으로 수분을 함유하고 있는 바람이 해변에 있는 산에 부딪치는 지역이다. 이 지역의 연간 평균 강수량은 200센티미터 이상이며 일부 지역은 300센티미터가 넘는다. 또한 산 은 기온을 온화하게 만드는 해양성 기후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데, 태평양 북서부 내륙 지역에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웨스턴코르디에라(Western Cordillera:알래스카에서 멕시코까지 뻗어 있는 북아메리카 대륙 서부의 산맥계―역자주)는 서해안의 해양성 기후 조건을 해안 지역에 가두고 있다. 협소한 지대에서 강우량과 기온이 엄청나게 차이 나는 미국의 지역 중 일부는 코스트 산맥의 서쪽과 동쪽 측면 사이이다. 서부의 중앙부와 북쪽 내륙 지역이 건조한 이유는 주로 남북으로 이어진 서부의 산악지대가 장애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반면 로키 산맥 서쪽에서는 지형이 강수량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동쪽 산들이 낮아서 이동하는 공기에 장애물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방해를 받지 않고 흘러오는 거대한 두 기단, 즉 멕시코만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기단과 캐나다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기단 사이의 충돌에 의해 내륙 지역의 날씨가 결정된다. 이 두 기단의 충돌로 인해 이 지역의 날씨는 종종 험악하게 바뀐다. 이것이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하고 복잡한 지리적 요소 중 네번째인 기단 특성과 풍향 체계이다. 미국의 날씨는 주로 차갑고 건조하며, 안정적인 대륙성 한대 기단과 따뜻하고 다습하며 불안정한 해양성 열대 기단의 대치에 의해 뚜렷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 한대 기단은 겨울이 되면 남쪽의 가장 아랫부분까지 내려오며, 열대 기단은 여름이 되면 북쪽의 가장 윗부분까지 올라간다. 미국 대부분 지역의 날씨 체계는 들이 주요한 개척지였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대부분의 경우 미국에 형성된 민족 구성 유형은 기회를 찾아 이주민들이 움직인 결과로, 처음엔 농업개척지에 기회가 있었고 나중에는 도시 지역에 기회가 더 많았다.이주자의 정착 유형에서 예외적인 부분은 미국 남부에 정착한 흑인들이다. 미국 남부의 플랜테이션 농장에 노예 노동력으로 강제 이주하게 된 이들은 아프리카에서 남아메리카 북동부 해안에 있는 카리브 연안과 미국 남동부로 이동한 대규모 집단의 일부이다. 아프리카인들의 이동은 인류 역사에서 유럽인들의 미국 대륙 이동에 이어 두번째로 규모가 클 것이다. 50만 명에 못 미치는 흑인들이 미국에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은 아프리카에서 직접 온 것이 아니라 카리브 연안을 거쳐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179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미국 인구의 20퍼센트가 아프리카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로 아프리카인이 이주한 일은 거의 없었으며, 이에 따라 흑인이 미국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줄어들었다.미국은 1920년대에 처음으로 이민을 제한하는 첫번째 주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런 법안과 함께 1930년대의 대공황, 1940년대의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이주민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1945년 이후 이주민의 수가 약간 증가했으며, 1960년대에는 규제가 대폭 완화된 이민법이 통과되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멕시코, 필리핀, 서인도제도에서 가장 많은 이주민들이 미국으로 건너왔다. 오늘날 미국은 매년 약 70만 명 가량의 합법적인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한편 불법체류 외국인들의 수는 매년 27만 5천 명 수준에 이른다.이주 정착지는 처음엔 작은 규모였으며 해안을 끼고 있었고 대륙보다는 유럽 쪽을 향해 있었다. 정착지가 해안에서 떨어진 곳에 만들어졌을 때도 여전히 수로를 따라 형성되었는데, 수로가 해안까지 무역항로를 연결시켜줌으로써 유럽과의 중요한 연결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국인들은 들쑥날쑥한 체서피크 만의 해안 지역과 그 지류를 따라 정착했으며, 뉴잉.
    생활/환경| 2019.04.09| 11페이지| 1,000원| 조회(1,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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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인의 이데올로기와 신화
    R E P O R T미국인의 이데올로기와 신화1.서론2.이데올로기의 정의3.미국의 이데올로기1)자유주의2)공화주의3)캘빈주의4.결론5.참고문헌1.서론사람들은 이념을 통해서 사고와 감정을 형성하고 공통된 통찰력과 행동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매우 강력한 힘을 지닌 어떤 특별한 신념, 혹은 이념체계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사회 전반에 걸쳐서 인간의 삶의 개선을 목표로 하거나 사회내의 권력이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념들로 구성되어 있다.미국은 오늘날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다방면에서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가장 크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초강대국이다.그렇다면 미국은 어떻게 지금처럼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강대국이 되었는가? 단순히 지정학적으로 유리한 위치나, 국가의 재정적 부유함, 혹은 인구의 급격한 증가가 초강대국의 지위를 보장해 주는가? 이것들은 초강대국에 부합하기 위한 조건이 될 수는 있어도 근본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가치는 될 수 없다.미국은 기존의 다른 국가와는 다르게 전통이나 역사적 산물로써 이어져 내려온 국가가 아닌 자유주의 이념과 프론티어 정신, 그로 인하여 명문화된 법 아래에 세워진 국가이다. 이러한 이념의 원동력 아래에서 그들은 미국인으로써 사람들을 결속시켜주는 강력한 힘을 지닌 행동지향적인 신념체계, 즉 ‘이데올로기’를 가지게 되었다. 이는 건국 때부터 미국인들의 이념, 신념체계를 구축해왔고 이것이 축척된 것이 오늘날의 미국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이 레포트는 미국의 이데올로기의 성립의 근간을 자유주의,민주주의 라는 2가지 관점으로 압축하여 살펴보고 이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2. 이데올로기의 정의이데올로기의 어원은 idea(관념) + ology(과학) 라는 개념의 합성어로서 직역하면 '관념의 과학' 즉 '사회에 관한 관념'이라는 뜻을 내포한 단어이다. 이는 인간과 사회에 관한 인지적이고 규범적인 신념 체계로서 내적으로 일관성 있게 지니고 있는 정치, 헌법 형성에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보는 포칵의 공화주의 합의 사학이 다시 강조되었고 또 이에 대해서 미국의 사상적 기초는 자유주의와 캘빈주의라는 디긴스의 반론 또한 제기되어왔다.사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개인주의와 사적 권리를 중시하는 로크의 자유주의는 17~18세기 영국 계몽주의를 주도한 이념으로 간주되었으며, 그의 저작은 18세기의 정치적 바이블로 대우받았다. 또 그의 사상은 18세기 영국 정치 사상을 지배하였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 아메리카 또한 그의 교화를 받은 문하생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다. 그래서 “위대한 로크는 곧 아메리카의 철학자” 였으며 미국 독립혁명의 대부인 제퍼슨의 사상도 영국인 존 로크의 사상을 단순 카피한 것에 불과하다고 여겨졌다. 즉 미국은 “로크와 더불어 시작되고 로크를 자신에 맞게 변형시켜, 로크와 함께있는 사회”로 규정되었고 만약 한 사람의 철학자가 어느 한 나라의 사상 전체를 지배했다면 그것은 곧 로크가 미국을 지배했다는 말이었다. 1950년대의 미국 역사학이 자유주의를 미국의 전통으로 간주하고 자유주의 합의 사학이라는 이론 사조를 정립한 배경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자유와 자유주의에 대한 미국 사람들의 도취와 환상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자유주의는 일상적이고 그리고 정치적인 영역에서 일련의 강력한 관념덩어리로, 그것도 검증되지 않은 일종의 가설 형태로 미국 역사에 개입해 왔다. 그 결과 유럽에서는 정당의 비전, 즉 정강에나 들어갈 내용이 미국에서는 정치적 일상과 현실 그 자체인 것처럼 당연시 되어 온 것이다. 독립혁명을 전후한 시기부터 오랜 세월에 걸쳐 미국은 무조건 자유의 이념을 구현한 것으로만 서술되었다. 즉 미국은 북미대륙 전체에 걸쳐 통째로 자유주의를 구현한 ‘자유주의와 역사적 화신’ 그 자체로 간주되었고, 미국인은 자유주의를 마치 하나의 물건처럼 소지한 국민으로 묘사되어왔다. 그래서 미국 정치사는 투표권 확대, 대의제도의 완비, 양당제의 구축을 중심으로 편집되었고, 경제사는 생산과 판학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미국 주류 역사학의 보편적 관행이었다.그러면 미국이 그토록 찬미하는 자유주의는 무엇인가? 자유주의가 포괄적인 이념으로 대두한 것은 물론 17세기 영국의 로크에서 부터다. 그러나 18세기 영국과 미국의 사상적 원천이 로크의 자유주의라고 보는 관점, 즉 미국의 정치가 로크의 사상위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하츠의 관점은 ‘로크의 원래 사상과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혼동 하고 있다. 원래 자유주의란 시민이 자기 삶과 이익을 추구하는데 대한 국가의 간섭을 엄격히 제한하려는 사상이다. 그래서 자유주의는 개인이 자신의 재산을 안전하게 확보할 권리를 중심으로 삼고, 왕과 귀족이 지배하고 있는 국가의 잠재적 위협을 경계하는 한편, 정부 권력에 대한 엄격한 제약을 핵심으로 하는 사상이다. 주지하다시피 로크가 말한 재산은 상품, 토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노동을 통해 원래 가치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게끔 자원을 가공·생산하여, 그 결과 자신의 몫이 된 것에 대한 권리, 자기 발전을 위한 개인적 자유와 제반기회까지 포괄하는 것이다. 정부의 존재 이유는 시민의 생명과 이러한 재산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는 것에 국한되어야만 한다. 그 이유는 정부는 계약에 의해서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정치적 자유주의’는 미국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즉 ‘경제적 자유주의’로 변질되었으며 자본주의적 자유주의를 뜻하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 즉 오늘날의 미국의 자유주의는 로크의 정치적 자유주의와 아담스미스의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를 섞어놓은 일종의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자유방임적 자유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변질했다. 미국의 토대이념으로서의 자유주의를 로크의 자유주의에서 찾을 때 바로 그 자유주의와 그 이후 변질된 현대적 의미의 자유방임주의를 혼동하기 쉬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2)공화주의공화국이나 공화정이라는 단어는 자주 사용하지만 정작 ‘공화주의’라는 말은 우리에게 낯설다. 이 공화주의라는 고대의 이데올로기가 근대의 미국 역사를 지배. 그래서 새로운 세대의 미국 역사가들은 식민 시대의 미국사를 ‘미국사 전체’로부터 분리시켜 하나의 독립주제로 삼기 시작했다.셋째, 밀러를 중심으로 한 식민 시대 종교사, 즉 퓨리턴에 관한 역사 서술이 등장했다. 밀러는 식민 시대 청교도적 행위의 근저에 있는 비밀을 탐구하여 식민지의 청교도들을 신과의 성약에 대한 믿음,‘공짜 은혜’에 대한 믿음에 사로잡힌 인간으로 새롭게 그려내었다. 그는 뉴잉글랜드 최초 이주민들이 캘빈주의자였음을 밝히면서 식민지의 정치적 전통이 자유주의와 배치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매사추세츠 성서 공동체를 이끈 회중은 전혀 근대적인 인간이 아니며, 식민지 종교 지도자들은 자연을 불신하고 자기 이익에 대한 믿음도 없고 또 기타 자유주의적 신념과도 배치되는 가치관을 갖고 있었음도 밝혀냈다. 그리고 종교적·도덕적으로 고상한 행위만 지향하면서 거기에 부합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타락으로 보는 경직된 사고가 식민 시대의 북아메리카를 지배했음을 발견했다.공화주의 합의 사학의 선구자인 베일린과 우드가 ‘미국의 자유주의의 신화를 배척하면서 18세기 미국인들이 ‘실제로 말한 것’을 분석하기 시작한 배경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리고 곧 그들은 미국의 건국 시조들이 가졌던 관념의 우주는 고대 정치를 그 모델로 삼은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공민적 덕성을 정치적 균형과 안정의 핵심으로 보는 고대 정치관은 기본적으로 ‘덕성’과 ‘타락’의 이분법적 대결을 설정한다. 또 자연 귀족 같은 엘리트 지도자들의 공민적 휴머니즘을 역설한다. 그리고 질병이나 기근, 폭정, 침탈과 같은 역사의 테러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해 주는 정치 세계를 이상적인 정치체계로 본다.공화주의는 일반적으로 군주제와 달리 인민이 통치자를 선출하는 제도로도 이해되고 칸트가 영구 평화론에서 말했던 것처럼 집행권과 의결권이 분리된 국가 권력 구조를 뜻하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원래 공화주의란 그리스 도시 국가의 정치를 지배한 고대 정치 사상이었다. 로마 제정 붕괴 이후 그 영향력이 약해졌다가 르네상사상으로 확립되었고 그것이 18세기 미국에 유입된 것과 마찬가지로, 퓨리터니즘 특히 퓨리터니즘의 여러 교파중에서 식민지 미국에서 그 영향력이 가장 강력했던 캘빈 교파의 퓨리터니즘은 식민지 아메리카에 유입된 이후 뉴잉글랜드 정치와 나아가서 후일의 ‘미국적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특히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요인에 의해 그 원형이 변형되기 쉬운 정치 이데올로기와 달리 종교적 이념은 변형가능성이 오히려 적다. 또 미국처럼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인 식민 시대부터 종교가 정치를 강력하게 지배한 경우라면 종교역시 하나의 정치 문명 양식이기 때문에 결코 빠트려서는 안 될 분석 대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캘빈주의 세계관, 예컨대 ‘천년왕국’ 사상이 영국에 대한 반란을 선동한 것이라는 식으로 주장해서는 안된다. 식민지 아메리카가 천년왕국 사상 때문에 인지 조례 등에 대해 반대한 것도 아니고, 연방헌법의 골격과 제도적 내용도 캘빈주의를 직접 반영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시의 식민지인들이 독립 혁명과 그 이후의 연방국가 수립에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알기 위해서는 정치적 삶과 일상의 삶을 함께 지배했던 종교적 신념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달리 말해서 정치적 세계를 보는 태도를 만드는 데 종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풀어내야한다. 종교가 미국 정치에 끼친 영향을 본격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한 이후 적어도 5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는데, 신학에 초점을 맞춘 종교사 분야에서는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종교적 신념이 세속의 문화, 정치 문화에 끼친 영향을 주로 조명해 왔고, 이념적 전통에 초점을 맞춘 지성사 분야에서는 초기부터 종교적 관념이 미국 정치 사상에 대해 끼친 영향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왔다. 그리고 근래에는 종교사와 지성사를 통합해서 종교와 세속을 일관하는 공통의 주제를 서술한 연구들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17세기 영국에서 공화주의와 함께 유입된 퓨리터니즘의 천년 왕국 사상이 독립혁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또 그것이 .
    사회과학| 2019.04.09| 9페이지| 1,000원| 조회(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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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우경화에 대한 한국의 대응과 미국의 역할
    일본우경화에 대한 한국의 대응과 미국의 역할I. 서론II. 본론1. 일본 우경화(日本 右傾化)의 과거와 현재(1) 일본 우경화의 정의와 원인(2) 보통국가론과 개헌논의(3) 자위대의 활동방향 변화 시도(4) 야스쿠니 신사(神社) 참배문제(5) 역사문제(6) 영토분쟁(7) 일본의 행동이 문제가 되는 이유(8) 향후 일본 ? 아베정부의 방향2. 일본 우경화에 대한 한국의 대응(1) 일본의 선택으로 딜레마에 빠진 한국(2) 일본과의 직접적인 외교관계 속 우경화에 대한 대응(3) 대일정책의 방향성(4) 구체적인 대안(5) 주변국과의 외교협력을 통한 일본 우경화에 대한 대응(6) 한 · 일 관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3. 일본 우경화에 대한 미국의 입장(1) 미국의 시각에서 보는 일본의 우경화(2) 일본의 군사적 보통국가화와 미일동맹 강화(3) 왜 미국은 일본의 우경화 문제에 개입하였나?(4) 미국의 일본 우경화에 대한 태도 변화의 이유(5) 미국의 목적 : ‘일본의 군사대국화의 경계’(6)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한·미 공조의 가능성과 한계점III. 결론※ 조원 개별 의견※ 참고자료I. 서론최근 아베를 필두로 한 일본의 우익세력의 재집권과 이에 따른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문제(예를 들면 교과서에 나타나는 역사왜곡, 종군위안부 등 제국주의 침략 과정에서 벌어진 문제들에 대한 사과와 배상 등)와 관련한 고노 담화의 재검증 문제로 동북아시아에서 한·중·일 간의 역사적인 문제가 붉어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이런 태도에 크게 반발하였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직후 미국 다음으로 중국을 국빈 자격으로 방문하면서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 직접적인 피해국으로써의 한·중의 동질감과 공동대처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일본의 이러한 행태에 대한 불편한 심기에 대해 여과 없이 드러내었다.한·미·일 동맹체제로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방문과 이로 인한 한·중·일 간의 외교판도 변화는 미국의 구상에서 다소 어긋나는 일임은 분명한정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경호대상을 원전으로 확대시킨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도쿄신문에서는 이러한 행위가 자위대의 활동반경 및 방위력 증강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 외 부록 1의 경우 또한 일본 자위대의 호전성을 드러내 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4) 야스쿠니 신사(神社) 참배문제일본은 공식적으로 헌법에 정교분리(政敎分離)가 명시되어있는 나라이다. 이는 과거 일본이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래로 일왕의 신성시를 통한 제국주의의 확산이 있고난 뒤 끝내 세계대전의 패배로 말미암아 개정된 헌법에서 등장하게 된 조항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극우정치인들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根康弘)를 시작으로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있다.먼저 신사참배 자체에 대해 논하기 전에 야스쿠니 신사가 과연 일본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본래 신사(神社)란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도(神道)의 사원이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일본의 고대 신화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그 유래가 깊다. 신사에는 일본의 신도가 다신교(多神敎)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음에 따라 수많은 신들이 전국 각지의 신사에 모셔져 있다는 것이 특징 중 하나이다. 이 중 문제가 되는 것은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가 된 사람들이다.일본이 개항을 한 것은 1853년이었고 공식적으로 해외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것은 1870년대, 그리고 국가차원의 침략전쟁을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은 1894년의 청 · 일 전쟁이다. 그리고 야스쿠니 신사는 청 · 일 전쟁 이래로 전쟁터에서 사망한 군인들을 기리는 신사이다.일왕을 제외한 의회의 최고 수장인 한 국가의 수상이 자신국가의 호국영령을 기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일본이 수행한 전쟁의 성격과 참배한 수상 및 정치인들의 성격이다. 1983년에 수상으로써는 최초로 야스쿠니 참배를 단행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이하 고이즈미와 아베에 이르기까지의 정치적 노선들은 모두 극우의 선봉 혹은 일본 극우를 대표하는 인물들이었다.이 과정에서 중국 해군이 전함을 파견하고 일본이 미국과 합동군사훈련까지 실시하는 등 군사적 충돌 기운마저 감돌았다.? 북방영토 문제1855년의 시모다(下田) 조약(러 · 일 화친조약)으로 치시마 열도에 관해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국경이 정해지고 1875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 결과 사할린은 러시아령, 치시마는 일본령으로 하는 내용의 교환조약이 체결되었다. 그 후 러시아는 소련으로 바뀌면서도 일본과 관계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대일전(對日戰)에 참전하면서 현재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북방영토를 모두 점령했다. 그 후 얄타협정에서 남쿠릴열도에 대한 소련의 영유권이 인정되었다. 그 후 일본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쿠릴열도를 포기했지만 1956년에 일 · 소 공동선언에서 남쿠릴열도의 4개 섬 중 2개인 하보마이와 시코탄을 반환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1960년에 미 · 일 안보조약이 개정됨에 따라 소련은 이에 반발하여 하보마이와 시코탄의 반환 불가를 천명했다.이에 따라 남쿠릴열도의 4개 섬에 대한 일본의 정책은 하보마이와 시코탄을 하나로 보고 쿠나시르와 이투루프를 하나로 엮어 별도의 협상을 통해 얻어내자는 것이 일본의 대체적인 외교전략이었고 또한 옐친과 고르바초프 등을 상대로 성과를 얻어내는 듯 보였으나 이러한 단계적인 접근법이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전 외무성 장관과 스즈키 무네오(鈴木宗男)간의 대립 속에서 폐기처분 되었다. 그 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들어서면서 양국 간 관계가 해소되고 일본이 남쿠릴열도를 반환받기 위해 새로이 제시한 면적 이등분론에 의거하여 일본이 영토를 반환받는 데에 대한 새로운 길이 열린 듯 보였다. 그러나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의 ‘불법 점거’ 발언으로 말미암아 반환은 다시 유야무야된 채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7) 일본의 행동이 문제가 되는 이유지금까지 언급한 개헌논의, 자위대 활동반경 확대, 신사참배, 역사문제, 영토 분쟁 등은 사실 일본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한 것들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문제는 다음의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우리가 일본의 국가주의적 선택을 얼마나 제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한국은 분명히 일본의 노골적인 보수우경화와 집단적 자위권 도입에 대해 앞장서서 반대하고 비판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고 또한 한차례 크게 당했던 전력이 있음으로써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잘못된 길이고 또한 한국에게 득보다 실이 된다고 판단된다면 한국은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이러한 선택은 한·일 관계를 다시금 차갑게 만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지금 추세로 볼 때 일본은 당분간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히 높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의 과거사 문제와는 별도로 한·일 관계 악화와 대화 실종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것인지에 대해 전략적으로 냉철히 판단해야 한다.둘째, 국제사회가 일본의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한국은 단순히 감정에 의존해서 외교노선을 결정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되며 그 대신에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객관적으로 읽어내고 그 속에서 한국이 일본에 대해 어떠한 외교노선을 취할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최근 미국은 일본과의 ‘2+2(외교안보장관)’ 회담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재검토 노력을 환영하며 일본과의 협력체제를 굳히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의사를 나타냈다. 이는 사실상 일본의 손을 들어 준 셈이다. 중국이라는 떠오르는 태양을 의식하는 미국은 ‘아시아 중시’ 정책에 따라 일본을 자신들의 대리 혹은 동맹으로 내세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일 동맹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또한 미국과 일본 사이의 외교적인 협력노선 천명뿐만 아니라 미국 내의 연방예산 자동삭감 조치와 연방정부 폐쇄 위기 등 국내적인 정책 역시 일본의 안보 역할론에 무게를 실어 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한국은 일본이 한국과 영토 및 역사문제에 있어서는 갈등요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교안보 차원에서는 적극적인 협력을 추구하려는 입장이기 때문에을 적절히 배합한 결과로 보인다. 미일동맹에 한중 양국이 대립하고 있는 듯한 인상은 최대한 피하면서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헌법해석 변경이라는 안보환경의 일대 변화에 대한 한중 간 물밑 공감대가 있다는 점에 대해선 일단 짚고 넘어가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시 주석 방한 이틀째인 4일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양 정상이 이틀간의 대화에서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적 태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집단적 자위권 확대까지 추진하고 있는 데 대한 우려를 공감했다고 전했다. 또 고노담화 검증을 통해 사실상 담화를 훼손하고 있다는 공통의 평가와 양국이 군대 위안부 문제와 관련 사료 공유 등 학계간 협력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고 설명했다.앞서 양측은 전날 가진 정상회담 결과와 관련해선 일본의 우경화 행보에 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정상회담 결과물인 공동성명에도 일본 우경화와 관련한 내용은 없었으며, 정상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두 정상은 이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두 정상 간 대화가 실제로 없었다기 보다는 한중 정상회담이라는 공식적 외교 틀 내에선 일본에 대한 한중 간 연대감을 표출하지 않는다는 의도가 깔려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즉 한중 간 밀착에 대해 불편해할 미국의 시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 정부의 외교적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특히 '미일동맹 대(對) 한중협력'이라는 대립 구도로 읽힐 가능성은 우리 정부로서는 매우 조심스럽다. 한미동맹 강화 속에서 중국과 전략적으로 협력해 나간다는 우리 외교의 대원칙이 흐려질 여지 때문이다.전날 기자회견에서 일본 우경화 행보에 일절 언급하지 않았던 시 주석도 실제로 이날 서울대 강연에선 대일 공동대응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양국 국민은 적개심을 품고 어깨를 나란히 해서 전쟁터로 나갔다", "20세기 상반기 일본 군국주의자는 중한에 대한 야만적 침략전쟁을 강행해 양국이 모두 큰 고난을 겪었다"고 말하는 등 일본의 우경화에 한중 양국의.
    사회과학| 2019.04.09| 32페이지| 3,000원| 조회(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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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작전 통제권 반환과 한미관계
    전시작전통제권 반환과 한미관계I.서론II. 본론1.전시작전통제권의 정의1) 군통수권2) 작전지휘권 및 작전통제권2. 전시작전통제권의 역사와 변천과정3. 한국군과 북한군의 전력비교와 주한미군이 지니는 가치1) 남북한의 군사력 비교2) 주한미군의 군사력과 남한에서의 위치4.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의 추진배경1) 참여정부의 전작권 반환 추진논리2)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와 새로운 한반도 군사정책? 미 군사전략의 변화? 미국의 새로운 한반도 군사정책5.전시작전통제권의 반환이 가지는 의의1)한국? 전작권의 독자적 행사로 인한 전·평시 통일전략 추진의 용이성? 전작권의 독자적행사로 인한 군사력의 즉각적이고 신속한 운용? 미국의 동맹국의 자립적 안보태세 구축의 롤 모델? 전작권 반환으로 외교의 자율권 행사와 국제부대에서의 지평 확장? 주한미군의 축소로 인한 방위비 분담의 감소2)미국? 미국의 한반도 방위비 지출부담 최소화? 전략적 유연성 강화? 무기 대량 판매? 정치 이슈화 차단6. 전시작전통제권 반환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유1) 한국의 정보전, 대북감시체계의 부족2) 미군의 한국방위의 주도적 참여에서 지원적 역할로의 입장변화3) 한국군의 독자적인 방위역량에 대한 의구심과 전력증강계획 완료 전까지의 공백기4) 한반도 내에서의 미국의 영향력 약화와 중국의 견제7. 전시작전권 전환에 대한 ‘연기론자’들과 ‘정상 추진론자’들의 충돌점들8. 전작권환수에 대한 찬성/반대에 대한 진보언론과 보수언론의 시각들1) 찬성입장2) 반대입장III.결론IV. 참고문헌I.서론대한민국 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발발된 6·25전쟁 당시 국가의 생존을 위해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작전지휘권을 이양한 이래 6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한국에 의해 온전하게 행사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참여정부에서는 작전통제권을 군사주권으로 간주하여 2012년 4월 17일 전시작전통제권(이후 전작권)을 한미연합사로부터 한국합참으로 전환하기로 미측과 합의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는 북한의 천우리나라는 주한미군에게 1년 동안 평균 9000억 원 가량의 돈을 투자하고 있으며 주한미군이 없어도 충분히 우리 스스로 북한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고 국제적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주한미군의 존재는 현실적으로 북한이 남한에 대한 선제공격을 시도 하지 못하는 가장 확실한 이유이며, 이러한 미군의 존재로 인해 FTX사업외의 여러 분야에서 미국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의 실정이다. 모든 일들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듯이 주한미군의 주둔도 예외일 수는 없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우리 국군에서 부족하다고 지적받는 공군력과 정보전, 첩보 분야에 대해서 우리는 미군의 지원을 많이 받아서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있지만 이는 동시에 국군이 해,공군력 정보 수집능력등의 독자적인 작전능력을 키우는 데에 있어서 별다른 시급성을 느끼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게 만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1) 남북한의 군사력 비교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이야기 하는데 있어서 먼저 남북한의 군사력의 격차에 대한 비교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북한군 우세론자들의 주장은 “한국은 북한에 비해 병사의 숫자나 무기의 숫자가 열세이기 때문에 북한군을 단독으로 이기기 힘들며 이 때문에 미군이 한국에 주둔함으로써 군사적인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 라고 하는데 이는 어느 정도는 맞지만 본질적으로는 틀린 말이다.일반적으로 북한군 우월론자들의 주장의 근거는 아래의 < 한국군과 북한군의 군사력 수치 비교 > 표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수치상으로만 보았을 때는 한국군은 감시통제기와, 훈련기, 헬기 전력을 제외하면 전 분야에서 북한군에 비해 열세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대전은 단순히 군사의 숫자와 장비의 물량만으로 하는 전쟁이 아니다.한국군과 북한군의 군사력을 정확히 비교 하려면 먼저 남한과 북한의 경제력의 격차를 비교해보지 않을 수 없다.현재 남한은 2014년을 기준으로 1인당 소득 28,739달러, 경제 규모는 1조 4,400억 달러의 세계 10위권 안의 경제대국이며, 북한은 201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미국 국방부는 QDR 보고서 발행에 맞춰 공개한 ‘탄도미사일 방어계획 검토보고서’에서 이런 ICBM 능력을 상세히 다뤘다. 이 보고서에 드러난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은 그간 한-미 간 공유해 온 정보를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북한은 지난 2007년에 이동식 발사대를 이용하는 사거리 3,000㎞ 이상의 IRBM(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실전 배치하였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그간 알려진 북한의 ICBM 개발능력과 SRBM(단거리 탄도미사일), IRBM을 공개 보고서에 재차 적시해 부각한 것은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미사일방어(MD)체계 당위성과 이에 한국의 참여를 유도하려는 의도라는 관측도나오고 있다.이러한 미국의 군사전략변화는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 당장 ‘전시작전권 전환’과 맞물려 주한미군의 해외재배치와 차출, 필요시에는 주한미군의 감축 및 철수를 가져올 수 있어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미 국방부는 수년 내 육군 병력을 44만∼45만 명 수준으로 줄이고 각종 군사장비도 감축해 나갈 계획이다. 그러나 이 같은 감축에도불구하고 주한미군의 경우 현행 병력을 그대로 유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이와 연계하여 2014년 3월 5일에 발표한 ‘2014 QDR 보고서’에서, 한반도 안보와 관련해서는 북한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을 4년 전보다 부각시켰다는 점이 먼저 눈에 띈다. 주한미군에 대해서는 충분한 규모를 유지할 것임을 암시했다. 지난번 2010년 QDR과 다른 어조다. 전시작전권전환 관련 언급은 없었다. 지난 2010년 QDR에서 2012년 전시작전권 전환을 명시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반도 안보공약의 강도는 4년 전보다 더욱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국방예산 부족에 따른 미 지상군의 감축 등 미군 운용에 대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2014 QDR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국방 및 군사전략이 바뀌는 과정에서 아직은 주한미군의 철수나 성격의 변화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내에서의 미국의 영향력 약화와 중국의 견제앞의 3가지 이유가 한국 입장에서 바라본 전작권 반환에 대한 반대하는 의견이었다면 이번 이유는 미국의 입장에서 바라본 전작권 반환 반대에 대한 이유가 될 것이다.미국이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하고 전작권 반환을 꺼리며 이번 전작권 반환의 무기한 연기에 동의한 이유는 중국의 견제를 위한 한반도에서의 미군의 주둔 당위성 보장과 영향력 확대를 위한 포석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실제로 미국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았을 때 북한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 역시 잠재적인 적성국가로 보고 있으며 특히 최근 경제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을 경계하고 있다. 앞서 나온 세계 군사력순위 표에서도 러시아와 중국은 나란히 군사력 부분에서 2, 3위를 차지하고 있고 이들 국가는 과거에 이념적인 관계로 인하여 미국과 적성국가였던 역사가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 두 국가를 견제 할 수 밖에없고 이를 위한 포위망 구축과 MD시스템의 구축을 위해서 미국은 주변의 국가들과 군사적인 동맹 및 자국군의 타국 배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미군이 전작권을 반환하고 한반도에서의 미군을 감축하면 한국의 지리적, 경제적 특성상 중국의 영향력을 무시 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의 영향력이 중국에 밀릴 수 있고 한국 내의 MD체제 구축에 있어 한국이 소극적으로 나올 우려가 있기 때문에 미국은 이번 한국의 전작권 연기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는 의견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7. 전시작전권 전환에 대한 ‘연기론자’들과 ‘정상 추진론자’들의 충돌점들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와 3차 핵실험을 강행함에 따라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 1일 전작권 전환을 계획대로 추진할 것을 선거공약에 명시하고 있으나 북핵, 미사일 위협을 둘러싸고 전작권 전환 재연기 논쟁이 재연(再燃)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연기론자들은 제향군인회와 성우회 그리고 동맹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자들인데 비해 전작권 전환 추진론자들은 전작권 추진 담당자들과 자주를 중시하는 진보주의자 아마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처럼 주한미군에 배치된 사드를 한국이 구매할 확률이 높다. 사드는 한국 돈으로 1조원의 비용이 든다. 여기에 미사일 한발 당 가격만 무려 110억 원이다. 사드 1개 포대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대략2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남한 전역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사드는 2~4개 포대가 필요하다. 미사일 비용만 단순 계산해도 4조원에서 8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미국은 사드를 한반도에 영구히 배치하겠다고 한다. 왜 전작권 환수조건에 한국이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충족되면’ 이라는 내용이 있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결국 한국은 전작권을 연기하는 대가로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이 돈은 고스란히 미국 무기상에게 갖다 주는 꼴이다.미국을 위해 중국, 러시아와 싸우겠다는 한국전작권을 연기하는 조건으로 미국은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게 됐고 한국은 천문학적인 돈을 주고 사드를 구입해야 한다. 우리가 여기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단순히 돈이 문제가 이날, 이제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다는 점이다.미국과 박근혜 정부는 전작권 연기가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사드는 한반도 방어용이 아니다. 미국이 자국 팽창주의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를 방어하기 위한 체제에 불과하다. 사드가 한반도에 배치되면 중국은 한국과 우호관계가 아닌 경제적 보복을 할 적대관계로 바꿀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본과의 영토분쟁이나 미국과의 군사력 경쟁에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드의 핵심 부품 중의 하나다 AN/TPY-2 고성능 X밴드레이어가 있는데, 이 레이더는 중국 탄도미사일(SLBM)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를 발사하는 여부 자체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 모두 한국에 사드 배치를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고 이는 당연한 결과다. 그들을 위협하는 무기가 이제 일본에서 한반도로 옮겨온 셈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은 사드 배치를 통해 국제법적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군사적 적대 행위를다.
    사회과학| 2019.04.09| 49페이지| 3,900원| 조회(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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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인에게 미국의 가치와 미국문화에 대한 선호
    한국인에게 미국의 가치와미국 문화에 대한 선호목차Ⅰ.서론Ⅱ.본론i. 우리가 바라보는 미국1.우리는 왜 미국을 좋아하는가ii. 미국 문화의 특성1.미국의 개인주의2.연방주의와 미국의 다양성3. 미국의 패권주의와 문화제국주의iii. 소프트파워와 미국 그리고 미국문화에 대한 수용과정1. 소프트 파워의 정의2. 소프트 파워와 미국1) 개요2) 미국의 분야별 소프트파워3. 미국적 가치와 문화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1) 해방기2)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3) 1960-19704) 1970-19805) 2000년대 이후4. 문화수용의 갈등요인1) 문화수용의 과정과 방법으로 인한 갈등2) 사회구조와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대립양상3) 한국의 사회적 상황이 문화수용에 미친 영향4) 미국과 한국의 열 가지 문화코드Ⅲ. 결론Ⅳ. 참고문헌Ⅰ. 서론대한민국의 건국이후 한국의 사회문화와 가치문화를 형성하는데 있어서 미국이 한국에게 미친 영향력은 부인 할 수 없다. 한국은 해방 이후부터 국가 형성의 단계에서부터 미국을 롤모델로 삼았고 미국 역시 미국적 사상의 전파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확산의 필요성, 그리고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세력의 견제라는 목적과 맞물려 한국에 지원을 하게 된다.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오늘날의 한국은 정치, 사회, 경제, 생활양식 등의 다방면 에서 미국의 제도를 본떠서 이루어지게 된다. 우리의 생활에서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은 부분은 이제 사실상 찾기가 힘들며 이러한 부분들은 앞서 말한 것들 외에도 좀 더 자세히 파고들어가서 우리의 교육제도, 소비패턴, 취미 및 여가활동, 사상에까지 영향을 주었다.그러면 과연 미국적인 사상과 문화, 그리고 미국적인 가치관들이 과연 우리에게 아무런 비판이나 반발적인 작용 없이 받아들여 질 수 있었는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미국에 의해 해방되고 미국의 지원으로 인해 자본주의의 체제를 형성하였으면서 왜 오늘날에 와서도 사회적 한편으로는 반미감정들을 지니고 미국적 가치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문화적인 갈등을 야기하는 것인가이러한 부분들한 결과이며, 형제나 부자간에 경제적 격차가 심해도 서로 심리적인 부담감이나 책임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정치문화- 개인의 평소의 생활태도와 경력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발휘하는 호소의 능력이다.- 자신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개진하고 다수결 원칙에 입각한 결정을 이상화한다.- 위에서 언급한 공정한 시합(fair play)의 정신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어떤 종류의 경쟁에서도 승자의 정당성을 중요시 여긴다.- 경쟁에서의 공정성을 얼마나 존중할 줄 아는가가 인격 평가의 일차적인 기준이다.- 법을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여기며,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해지는 정당하지 않은 방법이 모순된 평가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해주는 경우도 있다.종교, 인간관, 세계관- 기독교적 윤리에 의하여 약소국에 대한 원조와 다른 인종의 아이를 입양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청교도적 종교관을 기반으로 개인의 삶을 완성시키는 것이 곧 신의 소명에 부응한다고 주장한다.- 신에 의한 심판과 구원(redemption)에 의한 해방이 모든 신화와 전설의 모티브가 된다.- 세계를 자연과 초자연, 선과 악, 정과 부정 증의 상호 대립되는 요소로서 이루어지는 실체로서 파악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갖는다.예술 및 대중문화- 서구적인 전통보다는 일상성에 기반을 둔, 현실적이며 실험적인 문화이다.- 대중예술의 주제는 힘과 다이너미즘이다.- 젊음에 대한 동경이 크며, 노인들이 젊은이들의 유행을 모방한다.- 개척 당시 초기의 조상들이 젊은 연령층에 속하였으며, 미국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항상 젊게 살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이다.1. 미국의 개인주의미국은 어느 나라보다 개인주의적인 가치관과 ‘미국인의 꿈(American Dream)’이라 불리는 성공 신화의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다. 개인주의와 성공 신화는 미국을 강력하고 매력적인 나라로 만든 요인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반대로 미국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물들게 하고 미국을 혐오하게 만들기도 한다. 개인주의와 성공 신화를 쫓아서 각자가 최선을 다해 열심히혀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미국은 워낙 자국의 영토가 커서 원해 지리적 제국주의에는 별 관심이 없으며, 또 냉전 이후 이념의 경쟁자인 소련이 사라진 마당에 굳이 자기편이나 주변에서 힘이 되어주는 위성국가들을 거느릴 생각도 없기 때문에 스스로 제국주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그래서 떳떳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이러한 미국의 문화의 확산을 시키는 미국문화의 이유는 미국 사회가 다문화와 다인종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미국문화는 전 세계에 쉽게 받아들여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의 전 세계적 확산 역시 그러한 맥락과 일치한다. 문제는 미국은 그러한 현상을 ‘세계화 (glottalization)’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반면, 서유럽이나 아시아의 민족주의 국가들에서는 ‘글로벌’이라는 용어 자체를 ‘미국화’라는 의미로 생각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미국문화의 부작용이나 미국의 문화제국주의를 비판할 때마다 늘 등장하는 것 중 하나는 헐리웃 영화나 TV 드라마, 또는 CNN간은 미국의 미디어다. 그리고 그러한 미국의 전자 및 영상매체들은 문화연구자들이나 미디어 문화연구자들, 또는 문화과학자들이나 문화정치학자들에 의해 늘 혹독한 비판을 받는다. 기본적으로 좌파학자들인 그들의 기본적인 명제는 자본주의 문화상품과 시장경제, 그리고 상품의 생산과 제작과 배급에 관여하는 지배이데올로기의 조종과 개입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들은 대중문화를 지배이데올로기가 대중을 통제하고 기만하며 마비시키려는 도구이며, 후기자본주의 체제의 독점자본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대중문화 텍스트에서 그들이 찾으려하는 명제는 언제나 인종, 계급, 젠더, 정체성, 헤게모니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때로는 문학이나 문화에 대한 접근태도가 과도하게 정치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iii. 소프트파워와 미국 그리고 미국문화에 대한 수용과정1. 소프트 파워의 정의소프트 파워는 하드파워의 반대개념을 지칭하면서 생긴 말이며 이 개념은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조지프 나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정의을 얻을 수도 있지만 많은 자본을 투자하고 개발한 콘텐츠 상품이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여 외면 받게 되면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수평적인 통합을 통하여 다양한 콘텐츠 상품을 개발하는 등 문화콘텐츠 산업 고유의 특성인 불확실성을 제거해 나가고 있다.둘째로 각 문화상품은 과거에 동종업종 사이에서 경쟁을 하던 것과는 달리 현재는 문화상품 자체 내에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영화 안에서 멜로영화와 액션영화가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와 게임, 애니메이션 등 다른 문화콘텐츠가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통합된 콘텐츠 산업을 영위함으로써 만화영화에서 개발한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여 게임프로그램을 제작하고, 해당 만화영화 및 게임에 등장하는 사운드트랙 음반을 팔고 관련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등 산업 내에서 경쟁적 우위를 선점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으며 대중의 소비자들이 운영하는 생활세계의 각종 요소들과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단순하고 예측이 어려운 복합적인 문화시장의 성격에 대응하고 있다.셋째로 미국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이민자들로 구성된 국가이며 세계의 자본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자본개방성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즉 다양한 전 세계의 인력, 기술, 생산품, 자본이 참여하기 쉬우며 영어라는 강력한 정보수단과 함께 강한 국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문화콘텐츠 산업의 형태도 이러한 우위와 다양성의 장점이 반영되어 거대화되고 있으며 문화산업의 국적성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계적인 기업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③ 과학기술앞서 위의 두 가지가 우리의 생활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면 과학기술같은 분야들은 우리의 생활에 좀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분야들이다. 미국의 가장 큰 소프트파워는 과학기술에 기인한다. 이는 과학기술은 국경을 초월하는 만국의 공통의 분야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보여준 소프트 파워의 절정인 예로는 아폴로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인류를 소련보다 먼저 달에 착륙시키겠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아폴로었으나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된 1946년 5월 이후로는 보다 직접적인 대민(對民) 홍보매체로 변모되었다. 1946년 이후 집중적으로 편성된 '민주주의 해설', '군정청시간', '이승만 강연', '남로당 비판', '민족청년단 시간', '샌프란시스코 방송', 미국 문화정보국의 방송기구인 '미국의 소리'(VOA) 등과 같은 프로그램들은 미국의 정치이념과 미군정의 정책을 홍보하는 데 역점을 둔 반공선전용 프로그램이다. '스무고개', '똘똘이의 모험', '거리의 화제' 등의 오락성 프로그램 또한 대부분 미국식 상업프로그램을 번안한 것으로 당시 도시를 중심으로 이미 뿌리를 내려가고 있던 한국의 상업적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외에도 방송시간상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음악 프로그램은 주로 미국의 대중가요인 팝송을 방송했다. 당시 라디오는 처음 방송이 시작된 일제강점기 이후 이미 상당한 보급대수(1946. 8. 31 기준 28만 444대)를 확보하고 있었고, 당시 높은 문맹률로 제한되어 있던 인쇄매체의 파급력을 능가하는 문화·정보 매체로서 기능했다.역시 대표적인 문화산업인 영화의 경우에는 군정청 직할로 MPEA의 한국사무소인 중앙영화배급소를 설치해 영화계를 거의 독점했다. 1946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이 배급소는 당시 귀속재산으로 처리되었던 극장의 관리인들과 흥행수입을 반분하는 조건으로 직접 계약을 체결하고 할리우드 영화를 독점 배급했다. 이로 인해 미군정 기간 동안 한국영화는 연간 4~5편에 불과한 제작실적을 보였으나, 수입된 미국영화는 거의 100여 편에 달했다. 1946년 공보부가 확대·개편된 이후에는 차츰 뉴스 영화나 다큐멘터리 영화, 장편영화 등을 직접 제작, 배급했다.출판활동에 있어서 〈주간 다이제스트〉·〈농민주보〉·〈세계 뉴스〉 이외에 각종 포스터·표어 등을 제작, 배급했다. 1945년 10월부터 제작, 무료 배포된 〈주간 다이제스트〉는 처음에는 주당 4만 부였으나 12월 중순 이후는 8만 부로 증쇄되었다. 이 잡지의 내용은 주로 뉴,
    사회과학| 2019.04.05| 25페이지| 3,000원| 조회(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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