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정권별 성패, 특징 및 시대적 정치경제 상황 분석강 의 명제 출 일학 번성 명■ 목차Ⅰ. 전두환 정부Ⅱ. 노태우 정부Ⅲ. 문민정부Ⅳ. 국민의 정부 이후1. 국민의 정부2. 참여정부Ⅰ. 전두환 정부(1981.3. ~ 1988.2.)1. 출범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사건을 수사하는 총책임자로서 실권을 잡은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노태우 육군 소장을 필두로 한 하나회 군인들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계엄사령관 정승화 참모총장 무력연행, 국무총리 최규하를 사주하여 대통령에서 하야케 하였으며, 1980년 8월 대의원으로 구성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1980.9.1)으로 정식 취임하였다. 개헌 후 1981년 3월 열린 제12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임기 7년의 간접 선거로 당선되었다.2. 특징1) 경제 분야? 대내외적 경제 악재전두환 집권 당시 이란의 이슬람 혁명으로 OPEC이 감축 선언을 하여 2차 오일쇼크가 발발했다. 동시에 세계적 스태그플레이션의 발생으로 글로벌 경제위기가 도래했고 1979~80년 한국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기에 이른다.? 치솟은 물가상승률 제동당시는 안정론과 성장론 사이에서 학계와 경제 관료들의 대립이 극화되는 상황이었다. 전두환 정부는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당시 姑 김재익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를 경제 수석에 임명했고,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한 안정정책으로 경제 운영의 기조 변경하였다. 또 경상수지 적자 감소책을 실시하고, 경제 구조를 개편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자료: 한국은행)? 경제적 성과전두환 정부는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을 거둔 정부로 평가된다. 전두환은 인플레이션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여 물가안정에 기여하였다. 이러한 물가 안정은 거시 경제 부문에 긍정적 효과로 나타났다. 순 채무국에서 벗어나 순 채권국의 지위를 획득(1986)하였고 호황으로 폭등한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기 시작했다.특히 주목할 점은 물가 안정 정책 기조를 선택했음에도 연 7% 이상의 고성장을 부동산값을 잡는 데 크게 기여 했다. 그리하여 전두환 정권은 유일하게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킨 정부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2) 행정 분야? 국민건강보험 제도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전두환 정권 하에서 대대적으로 확대 실시되었다. 의사 및 의료기관의 이윤을 포기하고 전 국민에게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여 가히 치적이라 할 만 하다. 세계적으로 의료시스템이 의료인의 이익이 아닌 일반 국민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구조를 가진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며, 이 시스템은 전두환 정권 때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의료복지로서 확립되었다.? 교육 개혁 시도21세기 들어와서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판결이 내려지긴 했지만 전두환 정부는 과외 금지령 선포로 서민 사교육비 부담 감소를 도모하고 바야흐로 돈에 의해 교육이 차별받지 않는 자율경쟁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실제 이 조치 이후 평소 서울대를 1,2명 보내던 평범한 지방 고등학교가 2-30명의 합격자를 배출하며 단숨에 명문고로 발돋움한 사례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전두환 정권 하에서는 본고사를 폐지하는 등 정책기조에 맞춘 교육개혁 정책을 시행했다.3) 기타 사회분야? 삼청교육대사회정화작업의 일환으로는 삼청교육대라는 교정기관을 설치, 운영하였다. 주로 폭력사범이 그 대상이었지만 죄질이 크게 불량치 않은 사람이나 정치범도 일부 고초를 겪었다. 수감자들이 비인간적 취급을 받는 등 윤리적인 문제는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범죄자들에게 큰 경각심을 주는 효과를 거둬 범죄율이 낮아진 성과를 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스포츠 산업 육성전두환 정부 시기는 대한민국 스포츠가 한층 발전하게 되는 중요한 시기였다. 태릉선수촌이 대대적으로 확장되었으며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출범하였다. 이 외에도 88서울올림픽의 개최권을 획득하는데 성공했고, 86아시안게임을 개최하는 등 명실상부한 스포츠 강국의 기틀을 닦았다. 하지만 3S 우민정책의 일환이라는 비판을 받고있다.3. 5공 총평땡전뉴스, 또순 조작으로 밝혀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4.13호헌조치가 촉매제가 되어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폭발했다. 결국 전두환 정권은 직선제 개헌을 양보하게 되었다. 6월 29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당사에서 국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내용의 6.29 선언을 발표하며 시국수습에 나서, 대통령 5년 단임의 직선제와 4년 임기의 국회 단원제를 기본으로 한 새 헌법이 1987년 10월 29일 공포되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등이 각축을 벌이는 유래 없는 대선구도가 벌어졌고, 끝내 단일화에 실패한 양김(兩金)을 누르고 1987년 12월 16일 집권당이던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1988년 2월 25일 제 13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3. 특징1) 정치 분야? 여소야대와 올림픽으로 대표되는 대내외적 정치상황1988년 제 13대 국회의원 선거인 4.26 총선에서 민주정의당은 총 299석 중 41%인 125석을 얻는데 그쳐 사상최초의 여소야대 국회가 구성되었고, 노태우의 민정당은 정권 시작부터 어려움에 봉착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변화로 말미암아 야당이 여당을 공식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힘을 얻었고, 국민들로 하여금 정보기관에 대한 두려움을 점차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5공 청산 노력김대중(평민당), 김영삼(민주당), 김종필(공화당)의 三金이 사실상 국회를 장악하면서 권위주의 청산을 위한 개혁에 목표를 같이하게 된다. 특히 5공 비리조사, 광주 민주화 운동 진상조사, 언론통폐합 문제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를 열게 된다. 5공 청문회는 군부 독재시절 억압되었던 국회 기능의 활성화, 밀실정치의 공개 유도나 대중의 정치참여 기회가 증가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지만, 증인들의 위증과 불성실한 태도, 그리고 청문회 이후 후속조치는 미흡했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3당 합당노태우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계속된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이른바 '보수대연합'을 비밀리에 추진하였다.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분을 내세움직임을 보였다.3) 외교/통일 분야? 북방외교민주화의 열의와 탈냉전의 국제정세라는 대내외적 요인에 따라 노태우 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외교정책을 펼치게 된다. 특히 이 시기에 적극적인 북방정책의 추진으로 러시아, 동유럽, 중국 등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과 정식으로 수교한다.? 대북정책(남북 평화무드의 정착)노태우 정부는 국제적인 해빙무드에 편승하여 많은 대북관계진전을 이루었다. 특히 89년 문익환 목사 방북과 전대협 대표 임수경의 평양 방문사건 등으로 통일열기가 고조되기도 하였다. 정부는 이어 9월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발표하였고, 서울에서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을 개최, 1992년 2월 평양에서 ‘남북 간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기에 이른다.?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1992. 2. 19)이는 남북분단 상태를 종식하고 평화적 통일로 가기 위한 실질적 이정표로 평가된다. 특히 남북관계에 관한 여러 가지 기본원칙을 천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이행을 위한 부속합의서와 담당기구 및 구체적인 이행방법까지 마련하도록 하는 실천적 지향을 담았다.4) 사회 분야? 통일운동 활성화재야세력은 87년 대통령선거 패배이후 침체를 극복하고 민족민주운동의 활로를 개척하고자 통일운동을 활성화한다. 특히 1988년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로 통일을 앞당기려는 조국 통일 촉진운동이 학생과 재야세력을 중심으로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활발히 전개되었으나, 서울대학교 김영환의 경우와 같이 공산당으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고 활동하며 미군철수, 연방제 통일을 지지하는 NL계열 운동권들의 문제는 컸다.? 시민(민중)세력의 조직화노동부문의 ‘민주노조’, 지역/업종별 ‘노동조합 전국회의’, 교사들의 ‘전교협’, 도시빈민 부문에서의 ‘서울철거민협의회’는 물론 중간계급을 기반으로 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등의 시민운동단체 등이 결성되며 시민세력이 구체적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하였다.Ⅲ. 문민정부(1993. 02. 25) 김영삼 정부1. 출범 배 없었다.2. 특징1) 정치 분야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신장되었고, 인권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고위공직자의 재산 공개가 의무화되는 등 사회가 보다 투명해졌으며, 정치군인들을 제거하며 5-6공의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또한 지방자치제를 부활시켜 국민의 손으로 직접 지자체 장을 뽑도록 하였다.2) 경제 분야? 신경제 계획김영삼 정부 하에서는 경제제도의 개혁보다는 경기 활성화에 역점을 둔 ‘신경제 100일 계획’을 실행했다. 금리 인하, 재정 조기 집행, 기업 투자 유인 등이 주 내용이었다. 이어 ‘신경제 5개년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경쟁체제 도입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 현상이 발생했다.? 금융실명제금융실명제란 은행의 가명계좌를 실명계좌로 바꾸는 전격적인 조치이며 반대에도 불구, 문민정부는 시행을 밀어붙인다. 이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금융시장이 위축되고 소규모 사업자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워지는 등 부작용이 나타났지만 장기적으로 경제개혁의 기초를 닦았다는 점에서 김영삼 정부 하에서 가장 성공적인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타결자유 시장경제 논리에 입각해 ‘보호무역주의의 철폐’를 골자로 한다. 이 협정으로 대한민국은 상품, 금융, 건설, 유통, 서비스 등 모든 분야에서 외국에 문호를 열어 대 개방 무역국가로 가는 기틀을 닦았다. 그러나 쌀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OECD 가입(1996.9.12)정부는 시장개방정책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서방 선진국 경제협력체인 OECD가입에 성공하며 낙후된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세계화’를 강조하였다. 이 시기 한국경제는 수출사상 처음으로 1천억 불을 돌파(1995.10)하기도 했다. 1996년 말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불을 돌파하여 선진국을 바짝 뒤쫓는 수준에 올라섰으나, 무역역조가 심화되고 경제성장이 둔화되어 1996년 경제성장률은 7%를 밑돌게 되었다.김영삼 정부시절 경제성장률(자료 : 통계청)1993199 분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의 문제에 관한 REPORT조속한 환수 및 그 적절성을 중심으로강 의 명제 출 일학 번성 명Ⅰ.서론Ⅱ.본론1. 현황2. 전시작전권 환수의 당위성1) 북한과 비교한 대한민국 국방력2) 전작권 환수로 인한 한미동맹 약화3. 나아가야 할 방향Ⅲ.결론Ⅰ.서론대한민국이 주권을 가진 국가로서, 한국군이 우리 군대에 대한 전시작전 통제권을 갖는 것은 매우 당연한 귀결이다. 2015년으로 3년 여간 연기 된 사항이지만, 우리 정부도 필요성을 인지하여 현재 주한미군이 갖고 있는 전시작전권의 우리 군으로의 이양을 합의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합의와 진행에도 불구, 우리 사회에서는 전시작전권의 이양과 관련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천안함 사태, 또 연평도 폭격사건 등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는 전시작전권의 이양이 한반도 안보의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전시작전권의 이양과 관련된 내용을 전면 재검토 해야 한다는 정부나 여당의 주장이 미 정부나 주한미군의 관계자들에게 개진하기도 하였다. 사실 우리의 전시작전권 환수에 대한 합의는 미국의 군사기지 전략변화에 따른 미군의 재배치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한국의 경제적 성장에 걸맞는 자주국방의 당위성과 맞물려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더 연기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전시작전권에 대해서는 미군이 계속 갖고 있어야 한다는 측과 조속한 환수를 추진해야 한다는 측의 입장이 맞서고 있다. 이에 본 저자는 확실한 우리 주권의 확인 선언을 위해 우리 군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며 전시작전권 환수에 반대하는 측의 논리를 우리 국방력의 수준, 한미관계 약화 등의 주장에 대해서 조목조목 반박하는 형식으로 전시작전권 환수의 당위성을 중심으로 설명한다.Ⅱ.본론1. 현황유엔군사령관에게 이양된 한국군에 대한 작전 지휘권은, 1950년 7월 14일에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에게 보낸 서한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 서한에서 이승만 대통령은‘한국의 육명 이후 한국군 일부 예비사단 및 공군특전사, 헌병대, 수경사 산하 경비단 등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한국군에게 이양되었으며,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무장공비 일당에 의한 청와대 습격사건을 계기로 대간첩작전의 통제권이 한국군에 이양되었다.1978년 전략지시 1호에 의거하여 한미 간의 연합작전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제도적 장치로 1978년 11월 7일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된 이후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 겸임)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보유하게 되었고, 한미연합사령관이 작전통제권을 행사할 때에는 한국군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했다. 그 결과 한국전쟁 이후 작전통제권을 행사해오던 유엔군 사령부는 정전협정의 관리자로만 남게 되고, 그 밖의 모든 권한과 기능은 한미연합사령부로 이양되어 우리 국군은 한미연합사령관의 작전통제 하에 놓이게 됐다.평시 작전통제권 전환 결정과 이에 관한 한미 간의 합의는 노태우 정부 하에서 이루어졌다. 노태우 대통령은 1987년 11월 당시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작전통제권 전환을 제시하였다. 미국정부 역시 1989년의 『넌-워너 수정안(nunn-warner amendnebt)』에 따라 작전통제권 전환 문제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한미연합사령관이 갖고 있던 작전통제권 중에서 1994년 12월 1일 전략지시 제2호에 의해 평시작전통제권이 한국합참에 이양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연합권한위임사항(CODA: Combined Delegated Authority)의 제정을 통해 평시작전권에 대한 일부 관여를 보장받았다. 즉 미군은 연합위기관리, 작전계획수립, 연합교리발전, 합동훈련 계획 및 실시, 연합정보관리, C4I 상호 운용성 등에는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2005년 9월 정례안보정책구상회의(SPI)에서 작전통제권 문제를 한국 측이 미국 측에 공식적으로 제의하면서 한미 간 환수 논의가 시작되었다. 2006년 3월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관련 로드맵 연구 및 보고를 위한 관련약정(TOR)을 체결하고 연합실무단을 구성하여, 긴밀한 협의 끝에 20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시점이 2015년 12월1일로 3년 7개월여 연기됐으며, 재 연기는 없는 것으로 두 정상이 합의했다.2015년 12월이 데드라인으로 결정된 것은 한국군의 대응능력 확보와 평택기지 이전의 완료 시점, 주일미군의 재배치 일정 등이 감안됐다. 하지만 천안함이 격침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전작권 연기에 대한 논란의 균형추가 급속하게 기울어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반도 위기 고조로 그 어느 때보다 북한의 위협에 맞선 한미공조의 필요성이 강조됐고, 더욱이 우리 군의 대응태세에 큰 허점이 드러나면서 전작권 전환이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우려 속에 한미 정상 간의 연기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2. 전시작전권 환수의 당위성전시작전통제권 환수라는 문제가 국가안보에 있어 굉장히 민감한 사안인 만큼 전시작전권 환수에 대한 의견들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환수 반대 측에서는 노무현의 2012년 전시작전권 환수 합의가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해서 내린 포퓰리즘에 빠진 결정이라며, 국가 안위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 주장한다. 전시작전권은 계속 미군사령관이 갖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보면, 우선 우리 대북정보력은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우리 군 전력이 아직 북한과의 전면전을 당해내기에는 부족하다는 등의 우리 군 능력부족 차원의 논거들이 있고, 또 북한은 핵무기를 거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우리 군 스스로 막는 것은 곤란하며 전작권 반환으로 미군이 철수하는 것을 막아야한다는, 미국만이 할 수 있는 독자적 능력의 방패에서 소외될지 모른다는 주장의, 크게 두 가지 군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주장들에 대해서는 하위 항목으로 반박을 하였다.1) 북한과 비교한 대한민국 국방력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가 북한군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은 피상적 자료만을 보고 하는 기우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피상적 자료란, 국방부에서 발간한 국방백서 등, 우리 군 스스로가 발표하는 대한민국의 대북 상대전력이다. 2009년 발간 국방백서를 보 수준으로 손꼽히는 K9 자주포, K21보병전차 등도 수십 기 운용하고 있다. 비단 보유하고 있는 우리 장비들을 제외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전차관련 방위산업은 연간 수십 억 달러의 수출실적을 기록하는 수준으로 해외시장에서 인기가 높은데, 이는 남한 전차의 수적 열세를 압도하는 현 상태를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그러면 공군력으로 넘어가 전력비교를 해보겠다. 항공무기체계 분야에 있어서 북한의 보유 항공기 중 많은 부분이 전술기이며, 수송기조차도 대부분 침투적 전지원(浸透作 戰支援)을 위한 것이다. 전술기종 가운데 신형기는 약 30%에 불과함으로써 북한의 전투기 대부분이 70년대 이전의 구형모델이며 전투기 유통기한이라 할 수 있는 경제수명이 20년 이상 지난 장비가 40%에 달하고 있다. 북한은 6.25 전쟁 때 사용되던 구세대 MIG시리즈를 아직도 전력화하고 있다. 심지어 베트남전에서 미국‘F-4 팬텀’,‘F86 세이버’에조차 전력상 열세를 확인할 수 있는 MIG-15 는 아직도 북한 공군에서 큰 비율을 차지한다. 그리고 북한 전투기의 60%의 작전반경은 37도 이북에 국한되어 있다. 특히 레이더, 항법장비 등의 전자장비 부분이 미미한 저질 항공기의 보유율이 65% 이상이나 됨으로써 전천후 항공작전에 크게 제약받고 있는 상황에 있다. 헬리콥터의 보유에 있어서도 북한은 특공대 침공 작전에 주로 쓰인다는 저성능 고정익 항공기만을 다수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북한도 최근 연평도폭격사건 등을 계기로 신형 MIG기 몇 대를 들여올 계획을 천명했고. 최신형 전투기가 아주 없지는 않다. MIG-23, 29 및 수호이 25기 등 우리 주력 전투기인 F15K 등과 비등하다고 평가되는 전투기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나, 그 숫자는 정말 손가락으로 셀 정도이며, 러시아에서 개발된 정품 수호이 기종보다 성능이 떨어진다. 또 연료가 없어 훈련을 못 하는 북한 조종사들의 수준은 숙련된 남한 조종사들과 비교해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한국의 공군은 F-15K, KF16무는 고속정들의 급간이 표보다 두 배 가량 많기 때문에 다 적을 순 없었고, 다량 보유하고있는 함정 순서로 적었다. 표에서 나타나듯, 중 경량급 모든 부문에서 한국의 해군력이 북한의 그것을 압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차례의 연평해전에서 우리 해군은 두 번을 합쳐 6명의 사망자가 나온데 비해 북한해군은 30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으며, 그 사망자 대부분은 참수리함의 포격을 받아 현장에서 즉사했다 한다. 그 이유로는 남한 해군함정만큼은 이지스함부터 말단 경비정까지의 자동화가 완료되었기 때문이란 것을 들 수 있다. 우리 해군은 전투가 시작되면 일제히 함 내로 들어가는데 반해 전력의 현대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북한 고속정의 경우, 전투가 시작됨과 동시에 모든 대원들이 갑판으로 나와야 했으므로 사망자가 많았다는 분석이다.)그리고 대북정보력의 대부분을 미군에 의존한다는 주장에 대해 보면, 주장이 거의 억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공군은 북한엔 한 기도 없는 정찰기를 56기나 보유하고 있고, 아리랑2호, 우리별3호위성과 같은 80cm급의 최첨단 위성들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우리 군이 보유한 백두금강 정보장비의 성능은 서울에 앉아서 신의주에 있는 학교 운동장에 떨어진 농구공 하나까지 인식할 수 있는 정도이다. 더군다나 국방개혁2020 사업의 일환으로 단 한 대면 북한 전역을 관찰할 수 있는 조기경보기도 4대 들여온다. 게다가 전작권이 환수되는 부분은 아래서 설명할 한미동맹 문제와는 무관한 것이다. 환수 전후 미군이 제공하는 정보 수준이 달라질 것이라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정보력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도 기우임이 틀림없다.2)전작권 환수로 한미동맹이 약화되지 않겠는가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 상, 주한미군은 아직 한국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 여러모로 대한민국에 이득이라 보는 것이 옳다. 그런데 지금 반대측에서 하는 주장은 오해할 소지가 있는 것은, 전시작전권을 한국이 가져오면 주한미군의 철수로 귀결된다는 가정을 깔고 있다. 전시작전권 환수에 관련된 문제와 주한미군.
독후감[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 (최수연, 2009)]강 의 명제 출 일학 과학 번성 명[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어떤 이는 자신의 천직에 평생을 바치며 행복을 찾고, 또 어떤 이는 부를 축적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고 행복을 좇는다. 필자 생각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후자에 속할 것이라 느낀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을 행복과 결부시키고, 또 궁극적으로 부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발표된 행복에 대한 연구 결과는 흥미롭게도 이와 극히 상반된 것이었다. 흔히 최빈국 중 하나라 일컫는 방글라데시, 부탄 등의 국민 행복 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라는 결과, 복권에 당첨되어 누구나가 꿈꾸는 부를 거머쥔 사람들의 다수가 말로가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는 내용들은 나로 하여금 ‘물질=행복’이라는 현대 사회의 공식에 회의를 품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러나 이 거대한 림보의 굴레 안에서 도저히 벗어날 자신이 없는 이유로 저런 내용들이야 나와 관계없는, 그저 흥미로운 글쯤으로 치부해버리고 다시 부모님,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물질문명의 미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에 「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고 이는 나의 초라해진 ‘회의’에 다시 불을 붙이고 행복에 관한 작은 희망을 간직하게 해 주었다.이 책은 저자가 지금까지 산동네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있었던 일화들을 담아 놓은 것 이다.저자 최수연님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써, 종교인으로서의 최고 명예직인 성직자(수녀)의 길과 결혼 적령기에 있는 모든 여성들이 그렇듯 결혼을 두고 혼란에 빠져 있던 시기에 "가난한 사람들이 받고 있는 고통을 외면하고 혼자만 안정이 보장된 공간으로 들어가 잘살 수 있겠느냐?" 라는 친구의 뇌리를 자극하는 말 한마디에 수녀원에 가려고 싼 짐을 풀고 부산의 산동네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감천동으로 들어가 공부방을 운영하기 시작하셨다.공부방을 운영하기에 앞서 다른 공부방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운영되는지 사전답사를 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생각했던 것과는 그 이상으로 힘들고 어려워 보여서 과연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에 잠시 방황도 했지만 저자는 초심으로 돌아와 공부방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저자는 몸만 감천동에 와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까지 감천동 주민이 되기 위해 소일거리로 부업부터 시작해서 생전 처음 해보는 파출부 일까지 도맡아 하며 그 곳에서 감천동 주민들과의 공통분모를 만들며 주민들 사이에 동화될 수 있도록 노력했고, 보통 사람들이 느끼기에 다소 귀찮은, 그러나 확실한 방법으로 공부방을 운영해나갔다. 오전에는 파출부일 오후에는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씻기고 먹이며 몸과 마음이 가난한 산동네 아이들에게 마음의 양식을 채워주면서 때로는 엄마가 되고, 선생님이 되어 주며 아이들의 인성교육을 바탕으로 삶의 지혜와 꿈을 지향하는 눈을 만들어 주었다.2011년의 나는 현재 사회봉사 수업 활동의 일환으로 일주일에 네 시간 씩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을 맡아 10명 남짓의 저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라 여겨 의욕 없이 시작했지만 활동을 하면서 본인 스스로가 조금씩 변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중에서 특히 뽑자면, 내가 세상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나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멘토 활동을 하기 전, 난 보통 길거리에서 만나는 아이들 중 깨끗하게 차려입거나 예쁘고 귀엽게 생긴 아이들 외에는 나와 눈길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불쾌한 듯 시선을 돌리곤 했다. 참 못된 짓이었지만 내가 가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라는 짜증스럽고 말도 안 듣는다는 일종의 편견이 그렇게 만들었고, 이 세상에는 지저분하고 울어 보채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고만 생각했었다. 물론 그렇게 아이들을 바라본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히 틀린 시선이라고 함이 무리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보다 열 몇 살은 어린 이 아이들과 자주 만나 얘기하다 보니 아이들에 대해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책의 내용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지만, 꽤나 충격을 받았던 부분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자기 미래를 그려보라 하니 자기 부인을 때리는 장면, 노인이 되어 혼자 쓸쓸이 방에서 죽어가는 장면을 그렸다는 것이다. 차마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가진 미래에 대한 생각이라고 느끼기엔 섬뜩하다. 저자도 이 대목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썼다. 아이들은 확실히 어른들의 거울이며 자화상이다. 유년기에 좋지 못한 것만을 보고 자란 아이가 정상적인 어른이 되어 사회를 짊어질 리 만무하다. 내가 맡은 반의 아이들도 대부분 부모가 저소득층이거나 이주노동자 자녀들로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 사교육 등의 혜택을 못 받는, 우리 사회 중심에서 조금 밀려나 있는 아이들이다. 저자가 책에서 쓴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본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이 겉으로는 명랑하고 쾌활하기 그지없지만, 책을 읽고 나니 저자처럼 아이들에게 자기 미래를 그려 보라는 주문을 한다면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떤 장면을 그릴지 조금 두려워지기도 한다.내가 아이들과 함께 있을 시간은 한 학기가 고작이다. 이 기간은 아이들의 인생에 미칠 영향에서 보면 별로 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짧은 기간이나마 내 능력껏 아이들에게 최대한 좋은 것, 밝은 것만을 보여주고 싶다. 그 아이들이 설사 가정폭력이 심하고 부모님이 술 취해 집에 나뒹구는 장면만 보아왔던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사는 것이 세상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어떻게 살아야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지, 앞으로 너희가 목표로 해야 할 지향점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윤곽이라도 잡아주고 싶다.산동네 사람들의 순박하지만 거친 말투나 힘겨운 하루하루를 노동으로 보내고 있는 사람들과 한 발 한 발 마음으로 다가가는 작가의 노력은 읽는 내내 나를 부끄럽게 했다. 내 방 청소도 힘들어 하고, 고작 열 명 남짓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시험공부하고 심지어 내 자신의 스펙을 쌓는 일로 힘들다며 하소연을 하기도 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자신과 아무런 인연도 없었던 아이들을 위해 파출부도 공장일도 마다하지 않고 씩씩하게 돈을 벌어 아이들의 간식이며 좀 더 나은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일을 보며 작가 최수연 님은 또 다른 감천동의 마더 테레사 수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인도의 정당정치 전반Report- 목차 -1. 인도 정치제도2. 정치문화의 특징3. 인도 정치제도 과정4. 인도 정당정치의 흐름5. 인도 정당의 종류6. 인도 정당의 특징7. 인도 정당의 문제점8. 현대의 흐름과 앞으로의 전망1. 인도 정치제도▣ 입헌 민주주의자유, 평등, 국민자치를 그 중심사상으로 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서 권력분립주의, 법치주의, 국민의 국법상의 평등을 중시하며, 의회제도나 국민의 참정제도를 통하여 국민자치 또는 국민주권주의를 구현하는 것이다.▣ 연방 제도인도에는 25개의 주와 7개의 연방 직할지가 있다. 중앙정부와 주행정부와의 관계는 어느 정도 독립된 관계 속에 있으나 국가적 이익이나 국제조약의 실시 예산보조 등에 관련한 연방정부가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헌법은 중앙 및 주 정부가 각각 가지는 권한과 공유하는 권한에 대해 자세히 명시한다. 만약 어떤 한 주의 상황이 통제 불능으로 여겨지면 중앙 정부가 권한을 대신 행사할 권리가 있지만 이 권리는 종종 논쟁의 도마에 오른다.▣ 의원 내각제정부의 성립과 존립이 국회의 신임을 필수조건으로 하는 정부형태이다. 내각책임제 또는 의회정부제라고도 한다. 대통령제와 함께 현대 입헌민주국가의 양대 정부형태를 이룬다.▣ 특징내각의 성립과 존속이 의회에 의존: 수상이 의회에 의하여 선출되고, 내각이 의회에 대하여 연대하여 정치적 책임을 지며, 정부불신임권과 의회해산권에 의해 입법부와 행정부 간에 권력적 균형 유지.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공화와 협조: 법적으로는 입법부와 집행부가 독립되어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두 기관이 밀접한 협조관계를 유지한다.행정부의 이원적 구조: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의례적, 형식적 권한을 가지며 행정권은 의회의 다수당에 의하여 구성되는 내각이므로 이원적 구조가 나타난다.장점적극적인 국정수행: 입법부와 행정부가 일체적이기 때문에 양부 간 마찰을 피할 수 있고 능률적이고도 적극적인 국정수행이 가능하다.책임정치의 실현: 행정부가 입법부에 대하여 책임을 지기 때문에 책획득을 위한 장소가 되어 정쟁이 격화될 우려가 있다.인도 및 영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 이스라엘, 아일랜드, 그리스, 오스트리아등의 국가에서 의원내각제를 채택▣ 의회상하 양원제로 하원은 록 써바, 상원은 라져 써바이다. 하원은 545명으로 구성되며 투표는 5년마다 한번씩 한다. 의회의 좌석 중 125개는 세듈드 카스트(불가촉 천민)와 부족민에게 배정되어 있다. 상원은 245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6년이고 상원의 1/3을 2년 마다 선출한다. 대통령이 상원 의원 중 12명을 임명하고 나머지는 주 의회들이 지역 할당제에 따라 선출한다. 대통령은 상하 양원의 주 의회에 의해서 선출된다. 선거는 5년마다 이루어지고 대통령은 수상이 임명한 장관으로 구성된 내각의 권고에 따라 행동해야 하며, 하원은 해산시킬 수 있지만 상원은 해산시키지 못한다.▣선거인도의 선거관리는 대통령의 직속기구로 선거관리위원회를 설치하여 선거에 관한 모든 사항을 감독, 지휘, 관리한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선거관리위원장과 위원을 연방의회에서 규정한 법률로 임명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시에는 지방 선거관리위원회를 설치하여 선거관리 위원회를 도와주도록 하고 있다.연방이나 각주에서 실시하고 있는 각선거구에는 단일의 선거인 명단이 있어 법적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만 18세 이상의 모든 국민에게 인종, 종교, 계급, 성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선거인 명단에 등록 할 것을 명문화하고 있다.상원선거 - 각 지방 의회에 의한 간접선거하원선거 - 소선거구제에 의해 단순다수, 직접선거대통령선거 - 연방 상하 양원과 주 의회에서의 비례대표에 따른 선거인단에 의해 선출부통령선거 - 연방 상하 양원에 의해 선출2. 정치문화의 특징▣ 다양성의 나라인도는 문화적으로 통합되었던 일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가능성이 적은 나라이다. 수평적으로 독자적인 언어와 역사 서로 다른 문화적 가치를 지닌 수많은 하위문화 집단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국가이다. 더불어 다양성에서 발생하는 수직적 탈피하지 못하고 있지만 사회 여러 분야에서는 교육 및 사회개혁, 취업기회확대. 의사결정과정의 민주화 등의 현대적 정치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인도 정치문화 혼란기인도에서는 정치적 평등과 같은 현대적 개념들이 인도라는 국가구조로 집약되는 것이 아니라 카스트, 종파집단, 지역주의 등의 전통적 구조의 정체성 확립에 이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일반적 기대와 달리 정치문화의 현대적 요소의 확산이 오히려 전통적 요소와 갈등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것이다.3. 인도 정치제도 과정1950년 인도 공화국 건국인도는 1947년 파키스탄과 분리되면서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하지만 관료기구나 군대제도 등 대부분의 것은 그다지 변경되지 않은 채 물려받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1950년에 시행된 헌법에 의하여 인도는 영국 국왕을 원수로 하지 않고 대통령제를 채택하였다.1952년 최초 보통선거 실시남녀평등권을 기초로 최초의 보통선거가 실시되었는데 이때부터 중앙과 각 주에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의원 내각제가 성립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체로 자유선거가 정기적으로 실시되었는데 그 결과 1977년과 1980년 2차례에 걸쳐 중앙정부가 바뀌었다.1947년~1967년 네루 총리그러나 독립 이후 대부분의 기간을 통해 총리의 자리는 불과 두 사람 네로와 그의 딸 인디라 간디에 의하여 이어져 왔다. 네루가 이rM는 국민회의파를 여당으로 하는 정부는 ‘사회주의형 사회’를 목표로 내걸고 5개년 계획 실시에 들어갔다. 그의 딸 인디라 간디는 여당인 국민회의파를 분열시켜 많은 원로정치가를 추방하는 등 아버지보다 더 개혁파적인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좌익의 여러 정당과는 분명하게 선을 긋고서 이들에게 봉쇄정책을 폈다.1966년~1977년, 1980년~1984년 인디라 간디 총리이 특징은 인디라 간디의 경우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연고지나 측근을 중용하면서 개인적 독재의 경향을 강하게 나타냈다. 특히 1975~1977년의 비상사태기간에 특징이 두드러졌다.독립한 거에서 국민회의당은 223석을 획득 가반수에는 미달했으나 제1당으로 집권하고 라오 총리가 지명되었다. 라오는 종전의 사회주의적 방법에서 벗어나 자유주의적 개방적 경제개혁을 단행하였다.1996년 다당 경쟁 체제1996년 4월과 5월 총선에서 인도인민당 196석, 국민회의당 140석, 인민당 마르크스주의파 공산당 등 좌파세력 13개 정당이 참여한 ‘국민전선 좌파전선’이 119석을 차지했다 정치적 안정을 찾지 못하자 총리는 고다에서 구즈달에게 또 바지파이에게 옮겨가는 불안을 나타내1999년 바지파이 총리1999년 10월 하원 총선에서 인도인민당이 승리하여 바지파이가 재집권에 성공하여 그는 23개 정당으로 제2차 연립정권을 출범시킨다. 바지파이는 몇 차례의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였고 미국 대통령 클린턴은 인도에 경제제재를 가하였다.2004년 인도인민당 참패2004년 5월 인도인민당은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라지브 간디 전 총리의 미망인인 소니아 간디 여사가 이끄는 야권 국민회의당의 지지율이 증가한 것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후 소니아 간디는 기독교인 최초, 두 번째의 여성 총리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경제학자 출신의 만모한 싱을 총리로 지명하였다. 재무장관을 지낸 경력을 지닌 싱의 등장으로 인도의 정치는 안정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인도의 경제성장과 개혁에 더 초점을 두게 되었다.4. 인도 정당정치의 흐름▣ 국민회의당 일당 우위 정당체계기1952년~1967년 식민지지배를 반대하던 민족주의 운동의 후신으로 유능한 정치 지도자 네루의 존재와 탈종교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를 융합한 인도의 민족주의로써 국민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마련했다.▣ 일당 우위 정당체계의 동요기1967년~1989년 1966년 인디라 간디의 정권 장악으로 나타난 ‘제도화의 이완 현상’은 국민적 요구를 수용하는데 실패하여 기존의 지지층들이 이탈하였다.▣ 다 당 경쟁 체계로의 전환기1989년~오늘날 1985년 라지브 간디의 정권 장악 이후 기회주의적 행태와 부정부패의 만연으로 민심의 이반이 가시화되었고 그 공백을 했다. 1959년 중국의 티베트 지배 정책 지지는 커다란 반감을 샀다.인도공산당 맑스주의파 CPI-M국민회의당과의 공조에 반대해 인도공산당에서 분리해 나왔다.인도공산당 맑스 레닌주의파 CPI-ML1970년대 토지 점거 운동에 반대하는 지도부에 반발하여 분리 돼 나온 정당이다.▣ 지역 정당쉬브 세나뭄바이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파시스트 정당이다. 1948년 간디 암살을 계기로 활동이 금지된 바 있는 파시스트 힌두 운동단체인 국민자원봉사단 RSS 과 세계힌두협의회 VHP 도 인도인민당의 주요지지 세력이다. 마하라쉬뜨라 주민에 의한 마하라쉬뜨라즘 건설을 주장하는 배타적인 색채를 띤 정당이다.아깔리 달주민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시크교도들의 이익을 옹호하려는 종파 정당이다.아쌈주의타지역 이민자들에 대한 경제적 종족적 반감에서 아쌈주의의 권익옹호를 표방하는 정당뗄루그 데삼당뗄루그 민족주의 슬로건으로 하는 정당이다.바후잔 사마즈카스트에 의해 소외되거나 차별받는 계층을 대변하기위해 만들어진 정당이다.6. 인도 정당의 특징▣ 인도 국민회의당 INC (Indian National Congress)별칭은 회의당이다. 1885년에 창설된 폭넓은 지지기반을 가진 인도의 정당으로 영국으로부터 인도의 독립운동을 얻어내기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1947~77년과 1980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집권하고 있다. 국민회의당은 영국의 지배 아래에서 영국의 후원을 받고, 영국과의 우호 촉진을 통해 인도인의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한 단체였으나 20세기에 들어와 영국의 통치에 의문을 가지고 인도의 자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인도국민회의는 반영민족운동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현대 인도의 사상을 말할 때는 마하트마 간디의 간디주의를 우선 내세운다. 간디주의는 인도 국민회의파를 선두로 하는 인도독립운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반 식민주의와 인간평등사상을 2대 특징으로 하고 있다. 완전자치(스와라지), 국산품애용(스와데시), 영국 상품배척, 국민교육의 4대 강령이 채택되어 추진다.
영국과 인도 의원내각제 비교 REPORT정치학개론Ⅰ.서론Ⅱ.본론1. 의회 및 정부형태? 영국의 의회 및 정부형태? 인도의 의회 및 정부형태2. 의원내각제 특성? 영국식 의원내각제 특성? 인도식 의원내각제 특성3. 정치체제 성립과정? 영국식 정치체제 성립과정? 인도식 정치체제 성립과정Ⅲ.결론강 의 명정치학개론제 출 일학 번학 과성 명Ⅰ.서론21세기, 현대사회에서는 다원화된 문화만큼이나 다양한 정치 형태가 등장해 흥망을 겨루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이 채택하고 있는 대통령제도 의원내각제와 더불어 입헌민주국가의 양대 정부형태를 이루고 있다. 대한민국이 대통령제도 하의 국가지만, 일각에서는 끊임없이 내각제로의 개헌움직임이 포착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본인은 의원내각제를 시행하는 두 국가를 선정해 그 차이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의원내각제라는 정치형태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의원내각제를 시행하는 국가 중에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인도 등이 있지만 이 중에서 영국의 그것은 의원내각제의 모태로 인식되는 만큼 두 비교대상국 중 기준점이 되는 국가로 정하였고, 한창 급부상하는 신흥경제대국의 정치에 대해서, 부수적으로는 본인의 전공지식의 확장을 가져올 목적으로 영국과 대비할 국가를 인도로 정하여 조사하였다.Ⅱ.본론1. 의회 및 정부형태? 영국의 의회 및 정부형태영국의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표회의 기구중의 하나로, 영연방에서의 의회구성은 양원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상-하원이 나누어져있으며 전반적으로 서로 다른 원칙으로 구성되나, 입법과정은 양원 모두에서 관할한다.우선 상원은 그들의 지위가 세습화된 작위가 있는 귀족과 정부가 업적을 존중하여 지명하는 종신귀족, 법관의원, 그리고 영국 국교의 성직자들로 구성된다. 원칙적으로 그들은 영국의 고위관료와 영향력 있는 귀족 등 다양한 그룹에서 선택된다. 1999년 상원법에 따라 92명의 세습귀족이 남겨졌으며, 그 대부분은 종신귀족이다.상원의 역할은 일반적으로 하원을 보완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고, 하원에서의 보다 중요하성했다. 그리하여 해럴드 윌슨 수상은 1974년 9월 총선에서 전체의석수의 50%를 상회하는 정도로 의석수를 증가시켰다. 이렇듯 근소한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노동당 정부는 1979년 선거가 있을 때까지 의 4년 반 동안 권력을 쥐었다.) 하원은 현재 개별선거구를 대표하는 659명의 의원이 있다. 659개의 의석 중 529개는 영국본토 의석이고, 40석은 웨일즈, 72석은 스코틀랜드, 그리고 18석은 북아일랜드로 배정되어 있다.영국의 정부형태는 오늘날에 와서 수상에게로 권한이 집중되었다고 하여 수상책임제, 또는 수상정부제라고 불리기도 한다. 영국은 의회정치의 모국으로서 의회의 다수파가 내각을 구성하는 고전적 의미의 의원내각제를 정치관행에 의해 성립시켰다. 하지만 그 후 내각의 지위가 계속 강화되어 내각책임제로 발전하였다. 오늘날 영국의 수상은 집중된 권력을 담당하는 주체로서, 내각뿐 아니라 의회와 정당에 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위와 권한을 갖게 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선출된 수상에 버금갈 만큼 그 권한이 막강해졌다.? 인도의 의회 및 정부형태인도는 세포이 항쟁으로부터 100여년, 간접통치기간을 합하면 35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영국에 의한 식민통치 하에 있었기 때문에 근-현대화를 진행하는 사회 전반에서 지배국인 영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다른 사회분야와 마찬가지로 인도의 의회와 통치형태를 정립하는 과정에서도 영국의 영향력은 컸다. 그에 따른 당연한 귀결로서 인도 역시 영국의 그것처럼 상하 양원제이다.인도의 하원은 ‘로끄 쓰바이’라 부른다. 하원은 545명으로 구성되며 투표는 영국처럼 5년에 한 번씩 한다. 다만 의회의 좌석 중 125좌는 Untouchable 카스트(불가촉 천민)와 부족민에게 의무적으로 배정되어 있다.인도의 상원은 ‘라져 쓰바이’라 부른다. 상원은 245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6년이고 상원의 1/3을 2년 마다 선출한다. 대통령이 상원 의원 중 12명을 임명하고 나머지는 주 의회들이 지역 할당제에 따라 선출한다.대통령은 상하 양원의 주 접선거하원선거소 선거구제에 의한 단순다수, 직접선거대통령선거연방 상하 양원과 주 의회에서의 비례대표에 따른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부통령선거연방 상하 양원에 의해 선출인도는 입헌국가이고 1949년 11월 26일 제헌의회에서 채택, 1950년 1월 30일에 발효된 헌법에 의해서 정치체제가 구성되고 있다.헌법상 대통령은 국가의 최고통치권자이며 연방행정부의 수반이다, 대통령은 헌법 제74조에 따라 총리를 포함한 내각을 구성하며 내각의 조언에 따라 국가를 통치한다. 따라서 국가의 실질적인 권한은 총리를 수반으로 하는 내각에 있으므로 인도는 내각제라고 보는 것이 맞다. 의회와 내각이 중앙정부를 구성하고 있으며, 25개주와 7개의 ‘지할(州)’에서도 저마다 각각 의회와 내각을 두어 지방정부를 구성하고 있다.2. 정치체제 특성? 영국식 의원내각제 특성영국은 어떤 국가들보다도 군주제의 전통과 관련 제도들이 잘 보존된 국가이다. 또한 영국은 과거 전통을 민주적 맥락에 맞게 재구성해 새롭게 표현했다.이러한 영국 정치체계에서 다른 나라와 구분되는 몇 가지 특성을 짚어보면, 우선 월터 베젓(Walter Bagehot)의 지적)에 따르면 ‘영국정부의 양면성’을 들 수 있다. 영국 정부는 군주, 상원으로 나타나는 상징적 부분과 수상, 각료 및 하원으로 나타나는 효율적 부분으로 갈라진다. 이론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영국정부의 모든 행위들은 군주의 권위 하에서 행해지며, 전통적인 귀족이나 성직자들은 상원을 담당한다. 국왕은 법률공포, 조약협상, 수상과 내각 지명, 다른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을 선택하여 사면을 허락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아무런 정치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징적 존재에 불과하다. 상원은 의회의 부분을 구성하지만 하원에 비해 상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 활동한다. 이와 같이 군주와 상원은 국가적 단결과 현재를 영광스러운 과거와 연계시키는 영국 국민들의 강력한 정서적 감정적 유대를 생산하는 중요한 정치적 상징이 된다. 반면 하원(+수상, 내각 등)의 경우는 영국의 정치체제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으로 일반국민의 민주의식, 언론자유의 보장, 관료제도, 군부의 중립성, 사법부의 독립 등 긍정적인 요인들과 카스트 제도, 종교간 대립, 빈부격차, 지방주의, 취약한 정당기반 등 부정적인 요인들이 있다.그러나 타국과 구분짓는 인도 정치체제의 특성은 정치권력의 세습화가 심하다는 것이다. 인도만의 독특한 종파주의에 의해 나타나는 문화적인 특성인데, 이는 힌두교집단 또는 힌두 조직의 의식과 기능이 다른 집단 또는 국가 전체의 이익에 위배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종파주의는 종파적 충성이 국민적 충성을 압도함에 의해서 근대국가의 필수요건인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도는 수백 년 동안 종파주의와 싸워온 대표적인 국가다. 잘못 귀결된 종파주의로 인한 참극이 인도에서는 여러 번 벌어졌다.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도 잠깐 나왔던 84년 시크 대학살사건,) 92년 벌어진 아요데야 사건), 93년 델리 폭탄테러 등은 인도사의 비극으로 남았다. 인도는 유별나게 가족, 종파 간 정치권력의 세습이 보편화되어있다. 만모한 싱 현 인도총리 이전 수십 년간 총리직을 역임했던 사람들은 거의 직전 총리의 딸, 아버지, 부인 등이다. 집권당이 바뀌지 않는 한 권력 세습은 계속되었다. 이러한 성향은 지방정부에서 특히 강하며, 촌 단위로 내려갈수록 더욱 심하게 일어난다.최근 인도의 종파주의는 힌두 근본주의 운동으로 옮겨가고 있다. 힌두 근본주의자들은 힌두스탄(인도)은 순수한 힌두의 나라가 되어야 하고 인도에서 힌두교도가 아닌 사람들은 힌두교를 존경하고 오직 힌두 민족에 완전히 종속되어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힌두 근본주의를 표방하며 아요데야 사태를 일으킨 인도 정당인 BJP는 90년대 이후 집권당에 이은 제2당으로 올라섰다.3. 정치체제 성립과정? 영국식 의원내각제 성립과정일찍이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의회에 모든 영국인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영국제국의 최고의 그리고 절대적인 권력은 영국제국을 대표하는 의회에 놓인다. 위해 의회 해산권을 갖고, 새로운 선거를 통해 새로운 다수를 형성하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국왕과 의회 간에 억제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내각은 국왕과 의회의 쌍방에 책임을 지게 되었다.이후 국왕 조지4세 시대에 이론적으로 국왕 대권은 그대로 최고성이 유지되었으나 조지3세 때와는 달리 실질적인 지도권은 국왕으로부터 내각으로 이행되었다. )이원적 의회주의 이후 19세기에 와서, 다시 의회주의적 민주주의(parliamentary democr acy) 또는 민주주의적 의회주의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내각 우위의 현대적 의원내각제의 유형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수상이 권력구조에 있어서 내각, 하원, 정당의 중심적, 주도적 역할을 하는 핵심적 지위에 있는 것을 특색으로 하는 이른바 수상정부제(Prime Ministrial Government)라고 불리 우는 새로운 형태로 변질되었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크다. 이러한 내각통치 하에서 수상의 지위의 강화는 국가기능의 확대에 따른 행정권에의 권력의 집중현상을 키웠다. 또한 국가적 경향에 따른 수상의 통합적 기능의 강화현상은 수상의 지위와 권한을 크게 신장했으며, 나아가 권력구조에 있어서 내각, 하원, 정당의 관계를 변질시키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수상은 권력구조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내각, 하원, 정당의 주도적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인도식 정치체제 성립과정인도는 1947년 파키스탄과 분리되면서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하지만 관료기구나 군대제도 등 대부분의 것은 그다지 변경되지 않은 채 물려받아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1950년에 시행된 이른바 모자이크헌법)에 의하여 인도는 영국 국왕을 원수로 하지 않고 대통령제를 채택하였다. 식민지지배를 반대하던 민족주의 운동의 후신으로 유능한 정치 지도자 네루의 존재와 탈종교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를 융합한 인도의 민족주의로써 국민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마련한 국민회의당의 일당독주체제가 1952년부터 시작되었다.1952년 남녀평등권을 기초로 최초의 보통선거가 실시되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