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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청준의 눈길을 읽고
    이청준,「눈길」을 읽고이 소설은 자식인 ‘나’의 관점에서 ‘나’와 어머니의 관계, 가세가 기울던 무렵의 일 등을 담담하게 풀어나간 글이다. 이렇듯 담담하다 못해 냉담하기까지 한 ‘나’의 시선을 따라 죽 이야기를 펼쳐 보고나니, 소설이 끝난 뒤 독자로 돌아왔을 때, 나도 이 작품 속 화자와 같이 부모님의 은혜를 외면하며 살고 있지는 않나 새삼 되돌아보게 되었다.이야기는 서울과 멀리 떨어진 한 시골의 단칸 오두막집에서 시작된다. ‘나’는 점심식사를 마치자마자 입 속에서 별러오던 말을 툭 내뱉는다. ‘내일 아침 올라가야겠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수저를 놓으며 묻는다. ‘이참에도 또 그렇게 쉽게?’ 이로 보아 ‘나’는 고향집에 내려올 때마다 매번 서둘러서 돌아갔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화자가 이렇게 급히 시골을 떠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어머니’ 때문이다. 도대체 어머니가 어쨌기에? 발단은 지붕 개량 사업이었다. 터를 닦아 성주부터 새로 올려야 할 큰일을, 어머니가 벌이고 싶어 하는 눈치였던 것이다. ‘나’는 그를 알아채고도 시침을 뚝 뗀다. 자신은 어머니에게 갚을 빚이 없다는 거였다. 이후로도 화자는 나와 어머니 사이의 ‘빚’을 계속해서 상기한다. 답은 같았다. 매번 그는 ‘나에겐 아무런 빚이 없다’고 결론을 지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화자의 이런 모습이 ‘그가 어머니에게 심적으로 빚을 지고 있구나’ 하는 점을 시사해주었다.「어머니의 마음」이란 노래가 있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이란 가사말의 어버이노래이다. 근본적으로 자식은 부모에게 빚을 지는 법. 이 글의 ‘나’ 역시 그를 알기에 외려 ‘나는 빚이 없다’고 말하는 것 아니겠는가. ‘노인과 나는 결국 그런 식으로 서로 주고받은 것이 없는 처지’였으므로, 어머니가 자식인 ‘나’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형편인 것처럼 ‘나’ 역시 그를 봉양할 입장이 되지 못한 까닭에 스스로 ‘나는 빚이 없어’라고 되뇌어왔던 것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화자는, 어머니의 체념한 듯 보이는 말투와 자신에게 아무런 소망도 원망도 내비치지 않는 모습에 조바심을 낸다.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가하면 다시금 ‘어머니와 나 사이의 빚’을 따져보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화자는 ‘공연히 그 지붕 개량 사업 쪽에다 애꿎은 저주를 보내’면서 마음 한편에 돌덩이를 얹어놓은 듯한 ‘불편한 심기’를 떨쳐버리지 못한다. ‘지열이 후끈거린다’라든가 ‘어디선가 무덥고 게으름 매미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표현 등은 그런 화자의 내면심리를 감각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그러던 중 화자는 차츰 ‘묵은 빚’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의 아내는 화자로 하여금 그 ‘묵은 빚’을 상기시키게끔 만든다. 아내의 채근으로 어머니는 가세가 기울던 즈음의 얘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큰 아들이 주채로 가산을 탕진하고 마지막 남은 집마저도 남의 손에 넘어갔을 때, 타지에서 이 소식을 들은 ‘내’가 고향을 찾는다. 어머니는 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이미 세간을 다 뺀 그 집에 들어가 부러 밥을 해먹이고 잠을 재운다. 다음날 새벽, 눈길을 따라 동구 밖에서 마을 뒷산 잿길로, 그 길에서 다시 신작로를 걸어 면소 차부까지 조금이라도 더 멀리 아들을 배웅코자 하였던 어머니의 이야기에서 ‘나’는 애써 잊으려 했던 ‘빚’을 떠올린다. 사실, 지금의 가난은 술독에 빠진 형 때문이지 어머니의 탓이 아님을 화자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늘 ‘나’에게 미안해하는 어머니를 보며, 또 아들에게 바라는 것 하나 없이 체념한 듯 말하는 모친의 모습이 화자로 하여금 못 견디게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독후감/창작| 2013.06.05| 1페이지| 1,000원| 조회(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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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수산의 침묵을 읽고
    한수산,「沈?」을 읽고이 소설의 첫 부분은 ‘모래가 날리면서’ 시작된다. 모래가 날리는 모습은 언뜻 사막을 떠올리게 한다. 그만큼 삭막하고 메마른 환경을 연상시키는 것이다. 첫 페이지에는 이런 표현도 나온다. ‘아파트 쪽에서 불어오고 있는 바람은 한순간 길바닥 위에서 회오리치다가 모래와 먼지들을 날리면서 쓸려가곤 했다’는 대목이다. ‘아파트’는 현대적이며 도시적인 풍경을 상징한다. 그런 아파트 쪽으로 ‘모래와 먼지’들이 날려 온다. 이 부분에서 나는 작가가 황폐화된 도시에 대해 말하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사건의 주체가 되는 인물들은 모두 아이들이다. 보통 ‘아이’하면, 순수함이나 밝고 명랑함 등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것들이야말로 ‘아이다움’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아이들을 보라. 모여앉아 일명 ‘똥꼬 사진’이라고 부르는 성인 잡지를 보면서, 그것을 목욕하는 사진이라고 믿고 싶어 했다가 다시 레슬링 하는 모습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모습 등은 아이다운 순수함과는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 ‘주일날 교회 안에서 바라보는 한 벌거벗은 남자(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고 부끄러워했다는 장면은, 거부감이 들 정도로 아이답지 않았다. 가정부 누나의 희뿌연 허벅지 안쪽을 들여다보며 입안이 메마르는 것을 느꼈다는 표현은 어떠한가. 아이들의 생각이라고 하기엔 너무 외설적이지 않은가. 뿐인가? 이 아이들은 병아리의 생사를 놓고 내기까지 한다. 태양이 핏빛으로 물들 무렵, 5층에서 병아리를 던지던 아이들은, 자신들의 ‘살아있는 장난감’이 죽은 것을 보고 실망하며 다시 내기를 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한 아이가 할머니에게 천연덕스레 ‘우린 병아리랑 놀아요. 친구한단 말예요.’라고 말하는 모습은 자못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은 옥상에 올라가 살아있는 생명을 마치 ‘몇 개의 돌멩이’ 던지듯 떨어뜨린다. 살아남은 병아리를 발로 차 죽이기도 한다. 나는 이 아이들의 잔혹성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묻게 되었다. 도대체 이 아이들은 어째서 이렇게 성장하였는가라고 말이다.우레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고 사라져간 벌판 위로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할 때 즈음, 한 아이의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한다. ‘이놈의 시멘트가 물을 이렇게 빨아 먹으니, 애들까지 배리배리해질까봐 큰일이군.’ 과연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정말로 아이들은 도시화가 진행되어가는 삭막하고 메마른 풍경 속에서 안으로 곪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또 이런 부분도 주목해볼만하다. 글을 보다 보면 ‘염색 물감을 떨어뜨린 것처럼 우리들의 집은 서로 비슷비슷해지기 시작했다’는 말이 나온다. 어머니가 아무개 집에서 욕조공사를 했다더라하면 금세 그것을 따라하고, 붙박이장을 붙였다더라 하면 또 그것을 곧장 제 집에도 들여오는 태도에 대해서 비꼬아 말한 것이다. 현대는 산업혁명의 산물이다. 그리고 산업혁명 이후 우리는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대량생산이란 또 어떠한가. 그것은 채플린의 ‘모던타임즈’에서 컨베이어벨트가 상징하는 것처럼, 개인을 개개의 유기체가 아닌 보편화된 인간으로 포괄한다. 결국 독자성을 잃은 인간은 마치 컨베이어시스템을 통해 찍어낸 것처럼, 무개성한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독후감/창작| 2013.06.05| 1페이지| 1,000원| 조회(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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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경린, 여름휴가
    전경린,「여름휴가」왕릉 앞에 서면 당연히 그 능의 주인인 ‘왕’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옛 순장풍습을 떠올려보자. 그 무덤 안에는 비단 임금뿐 아니라 그 왕의 비와 첩들도 함께 묻혀 있다. 그런데 아무도 왕과 함께 매장된 사람들을 기억해주지는 않는다. 가축이나 토기, 금은보화와 마찬가지로 비첩들 역시 왕의 소유물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이 소설에는 세 자매가 등장한다. 첫째인 ‘나’는 남편과 이혼한 뒤, 두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서 남편은 ‘묘정과 세상 사이를 가로막고 선 가늠되지 않는 높이의 벽’과 같았다. 또한 ‘압도적인 무게로 버티던 태산이었고, 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긴긴 울타리’였으며 오직 남편만이 그녀에게 있어 유일한 통로였고 희망이었다. 전적으로 ‘나’는 남편에게 의지하며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남편이 가장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면서 폭력으로 얼룩진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고, ‘나’는 결국 이혼을 하기에 이른다. 작품을 읽다보면 이혼녀인 화자가 호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온다. 아버지는 ‘나’에게 자신의 호적이 더럽혀졌다며 성을 낸다. 그는 화자에게 출가외인은 친정으로 되돌아올 수 없다고 말하며, 다시는 집을 찾지 말라는 이야기도 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과거 ‘호적’이 지녔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귀속된 딸이 결혼 뒤엔 남편의 밑으로, 남편의 사후엔 큰 오빠나 아들의 호적 아래로 들어가는 것. 즉 평생 여자는 남성의 울타리 안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현실에 대해 생각해보았다.둘째 여동생도, 막내 동생도 상황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이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면서 힘겹게 살아가는 둘째 여동생 역시 ‘나’처럼 얼른 이혼하고 자유롭게 되고픈 마음이 굴뚝같으면서도,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 섣불리 일을 벌이지 못한다. 소설을 읽다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폭력을 쓰는 남자들은 모를 것이다. 여자들이 그 한 대 한 대를 얼마나 잊을 수 없어 괴로워하는지를’이란 부분 말이다. 남편에게 맞으면서도, 아버지의 권위에 희생되어 이혼도 못한 채 살아가는 둘째의 모습. 이것 역시 화자의 처지와 마찬가지로 안쓰럽고, 또 한편으론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한편 막내 동생은 유부남과 연애 중이다. 상대 남자가 아내와 헤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덕적인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막내 동생은 처자식 있는 남자를 꾀어내서 한 가정을 깨뜨렸다는 멍에를 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세 자매가 처한 상황은 남성위주의 사회와 가부장적 잣대에 의해 희생당한 여성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독후감/창작| 2011.03.26| 1페이지| 1,000원| 조회(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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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완서, 엄마의 말뚝2
    박완서,「엄마의 말뚝2」이 소설에는 두 엄마가 나온다. 다섯 남매를 거느린 ‘나’와, 그런 ‘나’의 엄마이다. 글의 첫 부분에서 화자는 이런 말을 한다. ‘여태껏 우리 집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불상사는 하나같이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일어났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이 말은 그 뒤로도 표현만 바꾸어서 몇 번이고 나온다. 나는 이것이 엄마의 속마음을 잘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아주머니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은 나는, 그것과 비슷한 유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애들 크는 것은 금방이고, 키우는 동안에야 사건사고가 많아 고생도 무던히 했지만 그래도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재밌었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내 짧은 소견으로 보자면, ‘엄마’는 두 갈래의 마음을 가진 생물인 듯했다. 가족과 살림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과 언제까지나 ‘어머니’로서의 위치를 지키고자하는 마음, 이 모순된 감정을 가진 생물 말이다. 이 글의 ‘나’ 역시 그렇다. 집안일을 모두 잊고 앵두주에 취하는 가하면 식구들에게 ‘나만 없어봐라, 이 집안 꼴이 뭐가 되나?’하고 상투적인 공갈을 되풀이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유독 후자의 마음이 더 강조되었던 듯싶다.업어 키울 때와 자식들이 자립한 때와는 별 수 없이 모자간의 거리차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니 ‘식구들이 사고를 저지를 수 있는 무대는 이제 집안이 아니라 집 밖’이 되어버린 시점에서 ‘나’는 허전함이랄까, 일종의 상실감 같은 것마저 느꼈을 것이다. 이렇듯 ‘나’가 쓸쓸해하고 있던 중에 사고가 생긴다. 화자의 어머니가 다치게 된 것이다.화자의 어머니가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 헛것을 보는 부분이 있다. ‘이걸 이 모양으로 늘어놓고 잠이 와? 못된 것들’이라고 하면서 허공에 대고 빨래를 개키는 장면이었는데, 이때 나는 화자가 ‘나 없는 동안에 잘못된 건 …방구석에 쑤셔 박아놓은 양말짝이 고작이라는 게 오히려 섭섭할 지경이었다’라는 말과 오버랩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 나니 화자의 어머니 역시 가정과 살림을 돌보면서 자식과의 유대를 쌓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일이 터지고 만다. 6·25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 참혹한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그녀는 아들을 잃게 된다. 그 아들로 말하자면 제 어머니를 위해 산골을 얻어올 만큼 소문난 효자인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뜻밖에 그때의 일을 헛것으로 보는 모습을 보고 괴로워한다.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화자나 화자의 어머니나 똑같이 누군가의 ‘어머니’란 점에서 두 여성이 하나로 겹쳐보이고는 했다. 그런데 끝부분까지 읽고 나니 오남매 모두 온전한 ‘나’와, 아들을 읽고 딸 하나 남은 ‘나’의 어머니는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식구들에게 아무 일이 없어 섭섭하다던 ‘나’의 모습이 철없어 보였고, 아들을 잃은 모친의 고통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자식을 앗아가고, ‘나’로부터 오빠를 잃게 만든 것이 ‘6·25 전쟁’이란 점이 안타깝게 여겨졌다. 더 나아가 그 아들이 이데올로기의 싸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던 사람이었단 사실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독후감/창작| 2011.03.26| 1페이지| 1,000원| 조회(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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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네상스 궁정의 시인, 롱사르 평가C아쉬워요
    르네상스 궁정의 시인, 롱사르1. 위마니스트, 롱사르1543년 19세의 나이로 성직자의 길을 걷기로 한 롱사르에게, 의사이자 위마니스트이며 시인이었던 자크 펠르티에 Jacques Peletier 는 고대를 모방하고 시인의 삶을 살라고 권유한다. 그리하여 1544년 롱사르는 위마니스트이자 라틴어 시인이었던 장 도라 Jean Dorat 의 지도 아래, 뒤 벨레 Du Bellay 등과 함께 고대 그리스 시를 수학하게 된다. 이 시기 프랑스는 오랜 종교 개혁과 인쇄술의 발달, 이탈리아의 문예부흥운동에 힘입어, 중세의 기독교 전통으로부터 벗어나 고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는데, 그 최전선에 있었던 그룹이 바로 인문주의자들, 곧 위마니스트들이었다. 이러한 위마니스트들 속에서 롱사르는 호메로스로부터 핀다로스, 헤시오도스, 알렉산드리아의 시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대 시인들을 공부하였으며, 그 스스로도 고대 그리스의 신화를 차용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2. 롱사르의 작품 세계 :『오드』제1권, 제10편「미셸 드 로피탈에게 A Michel de L'Hospital」마치 자석이 자신의 힘을그에 인접한 쇠에 불어넣으면,끌어당겨진 그 쇠가 돌연또 다른 쇠를 끌어당기듯이.내가 라톤*의 착한 아들의정신을 황홀케 하면,그는 내가 불어넣어준 힘으로그대들의 넋을 황홀케 하리라.그러면 아폴로의 힘으로그대들은 성스런 시인들을 황홀케 하고,그대들의 능력을 입은 그들은어리석은 무리들을 황홀케 하여 놀라게 하리라.Comme l'Aimant sa force inspireAu fer qui le touche de pres.Puis soudain ce fer tire tireUn autre qui en tire apres.Ainsi du bon fils de LatonneJe raviray l'esprit a moy,Luy, du pouvoir que je luy donne,Ravira les vostres a soy.Vous par la force ApollineeRavivez les Poetes saints,Eux, de vostre puissance attaints.Raviront la tourbe estonee*라톤: 아폴론의 어머니 레토 Leto의 로마명칭. 즉 ‘라톤의 착한 아들’이란 말은 아폴론을 뜻하는 말임.이 시는 핀다로스 Pindare 의 오드를 모방한 작품이다. 핀다로스(B.C 518-438)는 운동 경기에서 승리한 선수들을 영웅이나 신들의 경지로까지 올려놓는 칭송시를 썼으며 그의 작품들은 고대에 이미 뛰어난 명작으로 손꼽힐 정도였다. 롱사르는 그러한 핀다로스의 칭송시를 모방, 변용함으로써 플레이아드 시인으로서 프랑스 시의 혁신을 꾀함은 물론, 자신을 총애하던 앙리 2세의 누이 마르게리트 Marguerite 부인의 궁정사무총장, 미셸 드 로피탈에게 감사의 표시를 전했다.한편 이 시에서는 16세기 프랑스의 위마니스트들에게 영향을 끼친 피생(1433-1499)의 신플라톤주의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마르실 피생 Marsil Ficin 은 플로랑스 아카데미 소속으로 플라톤의 서적들을 라틴어로 번역하고, 플로티노스 Plotin 의 신플라톤주의를 설파, 보급하였다. 위 시에서 영감을 뜻하는 ‘나’는 라톤의 착한 아들, 곧 아폴론의 정신을 황홀케 하는 존재이다. 아폴론은 자신에게 생긴 영감을 뮤즈들에게 전하며, 뮤즈들은 그 영감을 다시 성스런 시인들에게, 끝으로 신의 영감을 얻은 시인들은 시를 통해 ‘어리석은 무리들을 황홀케’ 하며 ‘놀라게’ 한다. 이는 플라톤의『이옹 Ion』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으로,『이옹』은 호메로스의 시를 낭송하던 음유시인 이옹과 소크라테스 사이의 담론을 기록한 책으로써,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석의 힘이 쇠사슬의 고리를 타고 끝없이 전달되는 것처럼, 시인은 신에게서 뮤즈로, 뮤즈에게서 다시 시인에게로 전달된 영감을 시로 적은 것일 뿐, 작가 스스로의 기법이나 생각으로 시를 쓰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보다시피 본디 이 책은 플라톤이 시인들을 비방하기 위해 쓴 것이었으나, 피생에 의해 여과되고 강조된 신플라톤주의는, 단순히 ‘신들의 통역사’에 불과하였던 시인들을, 신의 은총으로 영감을 얻은 ‘성스런’ 이들로 변모시킨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은 그대로 위마니스트들에게 전해져, ‘시적 영감’에 대한 롱사르의 생각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3. 롱사르의 작품 세계 :『연애시집』,「소네ⅩⅩ」내 간절히 원하네, 참으로 노오란황금 빗방울 되어 방울방울 떨어지기를,내 사랑하는 카상드르의 아름다운 가슴 안으로,그녀 눈에 졸음이 스며들 때에.내 간절히 원하네, 상냥한 소로변하여 마침내 그녀를 음험하게 사로잡기를,부드럽기 그지없는 풀밭 위를 그녀가매혹적인 수많은 꽃들과 떨어져 홀로 지나갈 때에.내 간절히 원하네, 고통을 달래기 위해나르시스가 되기를, 그녀는 연못이 되기를,아늑한 밤 그곳에 몸 담그고 싶기에.끝으로 간절히 원하네, 그 밤이 영원히지속되기를, 새벽이 얼굴을 새로 하고우리에게 다시는 빛 비추지 말기를.Je voudroy bien richement jaunissantEn pluye d'or goute agoute descendreDans le beau sein de ma belle Cassadre,Lors qu'en ses yeulx le somme va glissant.Je voudroy bien en toreau blandissantMe transformer pour finement la prendre,Quand elle va par l'herbe la plus tendreSeul al'escart mille fleurs ravissant.Je voudroy bien afin d'aiser ma peineEstre un Narcisse, & elle une fontainePour m'y plonger une nuict asejour :Et voudroy bien que ceste nuict encoreDurast tousjours sans que jamais l'AuroreD'un front nouveau nous r'allumast le jour.*『연애시집』초판(파리, 모리스 드 라 포르트, 1552, in-8°)속표지에 실린 롱사르와 카상드르의 초상이 시는 다나에 신화와 에우로파 신화, 나르시스 신화를 차용하여, 카상드르 살비아티에 대한 시인의 감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특히 비가 되어 카상드르의 가슴 안으로 스며들고 싶다는 시구나 소로 변신하여 그녀를 취하고 싶다는 내용의 구절들은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시인의 육체적 욕망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시인의 욕망은 고대 그리스의 신화로 채색되어 고결하고 성스러운 것처럼 묘사된다. 이러한 표현들은, 이전 작품인『오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이전 시집인『오드』가 핀다로스와 호라티우스의 영향을 받았던 반면,『연애시집』은 당대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했던 작가, 페트라르카에게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인문/어학| 2011.03.26| 3페이지| 1,000원| 조회(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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