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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답사] 강릉향교와 문묘에 대해서
    文廟 · 鄕校목차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칭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고려는 중앙에 국자감을 설치하고 박사와 교수를 파견하여 향교에서 생도들을 교육시켰다는 기록이 있는데 , 이를 향학의 시초라 할 수 있다 . 한국건축사 문묘 ( 성균관 ) 향교 ( 강릉향교 ) 서원 ( 병산서원 ) 서당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 2. 문묘 문묘 명칭 고찰 서울 문묘에 대한 조선시대의 통칭을 보면 ‘ 증보문헌비고 ’ 서 제사공간을 칭할 때는 ‘ 문묘 ’ 또는 ‘ 문선왕묘 ’ 라 하고 , 교육기관 즉 학교를 설명 할 때는 ‘ 태학 ’ 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 반면 실록에서는 제사공간을 의미할 때는 문묘라는 명칭이 , 강학공간을 의미할 때는 성균관이나 태학이라는 표현으로 주로 사용하고 있다 . 이렇듯 여러 명칭이 혼재되어 사용된 것은 문묘자체가 ‘ 제사공간 ’ 과 ‘ 강학공간 ’ 이 결합되어 있는 특수한 건축제도를 가지고 있어 제사공간을 강조할 때와 교육공간을 강조할 때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렀던 것에 기인한다 . 문묘 = 제사 + 강학 한국건축사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 3. 향교 역사적 배경 향교는 조선시대에 공자와 그 제자들을 봉사하고 또 지방양반 자제들의 교육을 주로 담당하였던 곳으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유학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한 많은 향교가 설립되었다 . 특히 조선 태조 7 년에는 중앙에는 성균관을 , 지방에는 하급관학으로 향교를 두고 양반 자제를 교육하였다 . 한국건축사 전통교육기관의 관제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 3. 향교 향교의 기능 첫째 , 문묘 선현봉사 임무 . 둘째 , 교육기능 셋째 , 지역사회의 문화 발전 한국건축사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 3. 향교 유형과 배치형식 ㄱ . 전묘후학 제향공간은 전면 강학공간은 후면에 배치되는 형식을 말한다 . 이는 성균관과 동일한 배치형식이다 . ㄴ . 전학후묘 강학공간이 전면에 구성되고 그 뒤로 제향공간이 높이 는 것을 말한다 . 대부분의 향교와 서원에서 이러한 배치 를 하고 있어 전혁적인 배치형식이라 할 수 있다 . 한국건축사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 3. 향교 전묘후학 · 전학후묘 배치 한국건축사 전묘후학 – 성균관 전학후륜당 , 동무 , 서무 , 서재 , 전랑 , 재방 , 삼문 , 교직사 , 화장실 , 묘정비 , 협문 4 특기사항 : 강학영역과 제향영역이 모두 정방형이 아닌 약간 사다리꼴 공간 을 형성하고 있음 . 한국건축사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 4. 사례조사 강릉향교 입지 한국건축사 - 강릉형국도 - 강릉부지도4. 사례조사 강릉향교 배치 한국건축사 - 강릉향교 배치도 - 강릉향교 위성사진 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4. 사례조사 강릉향교 배치 한국건축사 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4. 사례조사 강릉향교 배치 한국건축사 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4. 사례조사 강릉향교 배치 한국건축사 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4. 사례조사 강릉향교 배치 한국건축사 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4. 사례조사 강릉향교 명륜당 한국건축사 - 명륜당 평면도 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4. 사례조사 강릉향교 명륜당 한국건축사 - 명륜당 하부 초석 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4. 사례조사 강릉향교 동재 · 서재 한국건축사 - 중정 전경 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4. 사례조사 강릉향교 동재 · 서재 한국건축사 22 평 - 동재 평면도 - 서재 - 동재 - 서재 내부 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4. 사례조사 강릉향교 동재 · 서재 한국건축사 - 중정 전경 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4. 사례조사 강릉향교 전랑 한국건축사 - 중정 전경 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4. 사례조사 강릉향교 대성전 한국건축사 - 데성전 전경 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4. 사례조사 강릉향교 한국건축사 - 데성전 평면도 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4. 사례조사 강릉향교 대성전 한국건축사 - 데성전 내부 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4. 사례조사 강릉향교 대성전 한국건축사 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4. 사례조사 강릉향교 대성전 한국건축사 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양식 - 공간 구성 4. 사례조사 - 강릉향교 5. 결론4. 사례조사 강릉향교 동무 · 서무 한국건축사 - 동무 평면도 - 동무 전경 - 서무 전경 文廟 · 鄕校 1. 전통 교육기관의 종류 2. 문묘 - 문묘 명칠 고찰 - 배치 및 공간 구성 - 한양 성균관 - 개성 성균관 3. 향교 - 역사적 배경 - 향교의 기능 - 유형과 배치}
    공학/기술| 2013.12.23| 41페이지| 5,000원| 조회(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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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그리스 로마 신화
    -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그리스 로마 신화 -이 책에서는 독자들이 흥미를 일으킬 수 있게 사진들과 설명, 그리고 지금 우리 일상생활 속에 여전히 살아남은 신화 속 이름과 인물, 상상력, 표현들을 이야기 하는데 초점을 두어 독자들을 위해 설명 하고 있다. 이렇듯 이 책은 신화 속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고 현재에도 의미 있는 이야기들로 되살려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게 했다. 천지개벽의 이야기부터 티탄족, 올림포스의 신, 제우스의 후손, 인간과 영웅의 이야기를 인물 위주로 담은 이 책은 주로 올림포스의 신들과 그의 자식들 이야기가 주가 되는데, 인간에게 불을 준 프로메테우스 이야기, 페르세포네를 납치한 하데스의 이야기, 제우스의 바람기와 헤라의 질투와 보복 이야기, 사랑의 신 에로스와 프시케 이야기,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태어난 포도주와 연극의 신 디오니소스의 탄생이야기, 그리고 헤라클레스의 탄생이야기, 트로이전쟁 이야기 등이 있다. 책에서 소개된 이야기 중에 나는 트로이 전쟁과 판도라 이야기 부분을 흥미를 느끼며 읽었다.트로이 전쟁은 위에서 말했듯이 트로이군과 그리스 군과의 전쟁이야기 이다. 이 이야기에서 사랑, 복수, 고통, 질투등 인간의 심리가 잘 나타나고 있지만, 인간뿐만 아니라 신들의 감정 표현도 나타난다. 신들이 인격화 되어 그리스 인들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즉 최고의 아름다운 신이 되기 위해 심판관 파리스를 유혹하는 모습에서 보면 신들과 인간의 심리 상태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트로이 전쟁을 통해 신들이 두 개의 편으로 갈린 모습도 보여 진다. 또 신들이 직접 전쟁에 도움을 주는 모습도 나타나는데, 이런 점에서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기독교의 신과 달리 인간 사회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함께 호흡하는 친근함을 가진다고 불수 있다. 그리스 신화의 신들은 인간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그 당시 그리스인들의 신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 신들은 경배하고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인들과 함께 삶에서 동화하는 존재로 느낄 수 있었다.또 다른 이야기인 재앙의 근원이 된 여자 판도라 이야기 이다. 프로메테우스에게 제우스는 가혹한 형벌을 내렸지만 제우스는 공범자인 인간에게도 직접 벌을 주기로 했다. 제우스의 명령으로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는 여신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여성을 만들었는데, 이 여성은 베짜는 기술과, 성적 매력과 거부할 수 없는 욕망과, 거짓말 하는 법등을 여러 신들에게 선물 받았다. 이리하여 이 여성은 온갖 선물을 받았다는 의미로 ‘판도라‘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며, 판도라의 실수로 인해 슬픔과 고통, 가난과 질병, 시기와 의심, 증오 등 온갖 재액들이 지상으로 흩어지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인간은 갖가지 불행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살게 되었다고 책에서 소개 되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았을 때 인간의 심리와 모습을 잘 분석하고 심리적 이야기 만든 점으로 보아 당시 그리스인들의 지성이 높은 수준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서양에서는 예로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가 깊은 문화의 전통을 형성했고 문화의 다양한 면에 녹아 있다. 그러다 보니 문학과 미술 즉 예술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지식을 전제로 만들어진 작품이 많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베르나르베르베르가 쓴 ‘신’과 영화 ‘타이탄’과 ‘트로이’등 여러 예술작품들이 그리스 신화에 영향을 받아 중요한 코드로 사용되었다.예전에 지인이 해주신 말 중에서 유럽인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신화를 읽어야지만 소통을 할 수 있다고 들었다. 이렇게 그리스 신화는 서양 문화에 깊이 영향을 끼쳐있어 서양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읽어야할 문학인 것이다. 그리스 로마신화는 서양 문화와 역사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그리스 로마신화 탄생 배경] - 그리스 문학은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시적 재능과 창조력을 결합하여 작품으로 승화 시켰다.[올림포스의 탄생] - 고대 그리스 인들은 신과 같은 절대자가 세계를 창조한 것이 아니며, 만물은 자연히 생성되어 자리를 잡고 신들도 나중에 생겨난 것으로 생각했다. 카오스로부터 어둠의 신인 에레보스와 밤의 여신 닉스가 생겼다. 시간이 흐르자 그 둘 사이에서 대기의 여신 아이테르와 낮의 신 헤메라가 태어났다. 그리고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생겼고 명계의 가장 깊은 곳에 타르타로스가 태어났으며, 사랑의 신 에로스가 카오스에서 스스로 생명을 얻어 최초의 신들이 생겨났다. 가이아는 혼자서 우라노스(천공)와 오레(산맥), 폰토스(바다)를 낳았는데 이렇게 해서 하늘과 땅과 바다가 갖추어 졌다. 가이아는 모든 신과 인간의 시초인 것이다. 가이아는 우라노스와 관계하여 단순히 신격화된 자연이 아닌 신들을 낳았다. 티탄신족12남매를 낳고 뒤를 이어 키클롭스와 헤카톤케이르를 낳았다. 그 후에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대립으로 인해 우라노스의 음부가 잘리는 일이 발생하는데, 우라노스의 피와 가이아의 대지가 만나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 자매와 거인족 기간테스 형제, 그리고 물푸레나무의 님프 멜리아스가 태어났다. 그리고 파도치는 바다에 떨어진 음부로 인해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탄생했다. 이로 인해 권력은 우라노스에서 자식 크로노스로 옮겨졌다. 크로노스는 누이 레아와 결혼하여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 제우스를 낳았다. 크로노스는 아버지에게 ‘너도 네 자식에게 세상의 지배권을 빼앗길 것이다’라는 예언을 받았기 때문에 자식들을 낳은 즉시 삼켜 버렸다. 레아는 막내아들 제우스 만큼은 지키기고 싶은 마음에 가이아와 힘을 합쳐 무사히 아들을 출산하였고 양육권을 가이아에게 맡기고 크로노스에게는 돌을 자식이라고 속여 건네 주웠다. 크로노스는 그 돌을 즉시 삼켰고, 후에 성인이 된 제우스가 크로노스에게 삼켜졌던 형제들을 구출하고 천상의 제일 윗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제우스는 형제들과 함께 테살리아 북부의 올림포스 산에 거처를 정하고 세력을 키워나갔다. 이산의 이름을 따서 그들은 올림포스 신족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 제우스 일행은 티탄신족과 세상의 지배를 둘러싼 장렬한 싸움이 시작됐다. 이 전쟁을 ‘티타노마키아’라고 하는데, 이는 ‘티탄들과의 싸움’이라는 뜻이다. 제우스의 일행은 티탄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그 후에도 괴물 티본과 기간테스와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되었는데 이 싸움에서도 승리하여 제우스 일족인 올림포스 신들의 지배권은 한층 확고해 졌다. 이 싸움 통해 제우스는 강력한 무기인 번개와, 포세이돈은 삼지창 ‘트라이아나’를, 하데스에게는 투구 ‘퀴네에’를 얻었다. 승리 후 제우스 3형제는 제비를 뽑아 제우스가 하늘을, 포세이돈은 바다를, 하데스가 지하 명계를 통치하기로 결정했으며 올림포스와 대지는 형제들의 공동 소유가 되었다
    독후감/창작| 2013.12.23| 2페이지| 1,000원| 조회(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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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전태일 평전
    조영래, “전태일 평전”Ⅰ. 서론여러 권의 책 중에서 전태일 평전을 선택하여 읽게 된 이유는 과제 1에서 결론에서 다뤘던‘노동과 권리’때문이었다. 전태일. 말만 들어봤지 책으로는 처음 접하였다. 하루 종일 일을 하여도 대접받지 못했던 그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업주들과 회사. 한사람의 옳은 소신으로 사회를 바꾸었다는 점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으며 자기반성을 하게 된 책이었다. 자신을 분신할 수밖에 없었던 처절했던 전태일을 생각하며 독후감을 쓴다.Ⅱ. 본론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전태일은 그리 행복하지 못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전상수씨의 사업이 몇 차례 실패를 맞았으며 집과 살림살이들로 빚을 갚았다. 그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버려둔 채 떠돌이 생활을 하였으며 노동자 생활로 생계를 이어가다 다시 가족들에게 돌아오곤 하였다. 이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였으며 대구와 서울 등으로 생활근거지를 옮겨 다녔고 그의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매질과 학대를 통해 고통을 주었다. 1954년 부산에서 소규모 양복 제품 사업을 하다가 장마로 인해 사업에 큰 타격을 받자 전태일 가족은 서울로 상경을 하게 된다. 어머니 이소선씨는 어린 자식들과 함께 서울역 근처에서 노숙과 동냥으로 하루하루 연명을 하다가 남편이 쥐어준 작은 돈으로 장사로 시작하여 후에 천막집 한 채에 재봉틀 한 대 살 만큼이 되었다. 그러나 4.19혁명에 그의 아버지가 브로커에게 사기를 맞아 천막집마저 다 팔아 빚을 청산하고 빈손으로 다시 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다행히 가게 주인이 그를 동정하여 이태원 근처의 산마루턱 판잣집 셋방을 얻어 주었으나, 그의 아버지는 한 동안 끊었던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으며, 어머니는 충격을 받아 앓아 누었다. 5.16 군사쿠데타가 나던 어느 날 무렵,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구두닦이로 1년간 방황을 하던 그는 예전에 살던 부산으로 향해 그곳에서 허기와 여러 고통을 받으며 우여곡절 끝에 대구의 가족과 다시 그의 외갓집에서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청옥고등공민학교에 입학하여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지만 그는 그 순간이 자기 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회상하였다. 그러나 일 년 채 안되어 아버지의 가혹한 명령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하는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그는 배움의 꿈을 위해 다시 가출을 결심하고 동생과 함께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지만 현실의 벽을 실감한 채 다시 돌아와 아버지의 학대와 매질을 당하였다. 더군다나 아버지의 폭음에 의해 어머니는 떠났고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더욱더 심한 고통을 주었다. 어머니가 보고싶다는 동생 순덕이를 업고 어머니를 찾기 위해 다시 서울로 상경하였다. 그는 여동생과 먹고 살기 위해 온갖일 등을 하였으나, 결국 동생은 보육원에 맡겨지고 그 또한 길바닥에 노숙하면서 돈 벌기에 바쁜 하루를 보냈다. 동생 태삼이 또한 집에서 나와 구두닦이를 하였고 결국 그들은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 어느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를 찾았고 돈을 모아 작은 판잣집을 마련하게 되었다. 그리고 동생 순덕이를 찾아왔고 여동생 순옥과 아버지 또한 다시 만나 한가족이 모여 서울에 살게 되었다.전태일은 17세가 되는 1965년에 처음으로 직장을 얻게 되었다. 비록 일은 힘들고 고되지만 미싱 기술만 익히면 편해진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버는 돈으로 배고픔에 벗어나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을 하였다. 그는 점차 기술을 배우면서 청년노동자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동생들을 편히 모시겠다는 꿈, 배움의 길을 뒤늦게나마 다시 걷겠다던 그의 꿈이 이루어지기 전에 동대문 평화시장의 처참한 노동현실이 그의 가슴을 압박해 왔다. 위생적이지 못한 작업공간과 주인아저씨가 사다준 잠 안 오는 약을 먹으며 전태일은 하루하루 생명을 팔며 지내고 있었다. 매일매일 겪고 있는 고통 그리고 동료 노동자들의 상황을 보면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지도 몰랐으며 해결할 여유는 당연히 없었다. 1966년 전태일은 통일사의 미싱사가 되었다. 때론 업주들은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작업을 시켰으며 야간작업까지 진행시켰다. 이렇게 자기의 자유하여도 받는 월급은 평균보다 조금 나은 월급을 받을 뿐이었다. 피땀 흘린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한 그는, 그의 억울함을 없애기 위해 미싱사 생활을 그만두고 재단사가 되는 길을 택한다. 그것은 그의 목숨을 걸게 되었던 고난에 찬 노동운동을 향한 첫 걸음이었다. 그는 재단보조공으로 들어가 매일 고된 일을 배웠으며 자신의 조수를 챙겨주었다. 그는 노동의 삶속에서 사랑이이란 감정은 사치라 생각되어 그 감정을 억눌렀으며, 항상 책을 보며 자신의 배움의 꿈을 계속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시다들의 노동 생활을 보며 항상 분개 하였다.“이간을 물질화 하는 세대, 이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지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재단사가 된 후 그는 배움의 꿈을 접고 노동조건을 위한 고민을 계속 하였다. 그렇게 생활하던 어느 날 한 여공이 주인에 의해 해고를 당하게 된다. 그 여공은 폐병3기였으며 가난한 살림살이를 돕기 위하여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지옥 같은 작업장에서 작업을 하고 쫓겨나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을 눈앞에서 본 전태일은 통곡과 분노 들끓었다.“죽어 가는 저 여공들을 살리자.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갉아먹고 삶의 모든 기쁨과 보람을 빼앗아가며, 우리를 비정한 현실의 쓰레기로 만드는 저 잔인한 노동조건을 내 힘으로 바꾸어보자.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기어이 해보자”그것이 비록 이루어질 수 없더라도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의 마음이 일어선 것이다. 주위의 말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에게서 노동운동에 관한 것을 들으며 근로기준법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었고 현재 노동운동의 실태를 알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말리고자 노동운동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었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전태일은 더욱더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1968년 말, 전태일은 동료들에게 근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재단사 모임을 만들었으며, ‘바보회’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전태일은 ‘바보회’회원들과 함께 노동조합으로 발전시키고, 재단사들의 모금으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이익을 적절히 배분하는 모범업체를 평화시장 안에 설립해보자는 참신한 아이디어 등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모범업체를 만든다는 것은 아직 헛된 이야기였지만 다른 제안들은 우선 실행하였으며 이것이 그들의 출발이었다. 그는 항상 근로기준법을 해석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그것을 통해 근로조건을 개선하고자 하였지만 그는 평화시장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그로인해 정부와 업주간의 결탁이라는 비참한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지만 그는 막노동을 하면서 힘겨운 투쟁을 혼자서 계속하고 있었다.1970년 9월 전태일은 평화시장에 다시 모습을 나타낸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평화시장에 돌아다니던 그는 때마침 재단사를 구하는 가게가 있어 취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예전의‘바보회’를 모으기 시작하였으며 신문사, 방송국 등을 돌아다니며 노동실태를 고발하였으며, 마음에 맞는 기자들을 마나면서‘바보회’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1970년 9월 16일 그들은‘바보회’를 ‘삼동친목회’로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출발하였다. 그들은 평화시장의 불법적이며 비인간적인 노동 현실을 세상에 폭로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들은 지난 과거에 있었던 일들과 현재를 분석하며 노동청장 앞으로‘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개선 진성서’를 냈다. 1970년 10월 7일 마침내 시내 석간신문에 평화시장의 참상을 다루는 보도가 실리게 되었다.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어린 여자들이 좁은 방에서 하루 최고 16시간 동안 고된 일을 하며 보잘 것 없는 보수에 직업병까지 얻고 있어 근로기준법을 무색케 하고 있다. 이들은 서울시내 청계천 5~6가 사이에 있는 평화시장 내 각종 기성복 가공업에 종사하는 미싱사, 재단사, 조수 등 2만 7천여 명으로 노동청은 7일 실태조사에 나서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업체는 모두 전부 고발키로 했다,,,.’그날 저녁 많은 노동자들이 삼동친목회 회원들을 찾아와서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싸울 것을 다짐하였다. 결국 불가능했던 이야기들손으로 평화시장의 비참한 현실을 개혁하였으며 다른 사람들까지도 같이 투쟁의 의지를 불타오르게 한 것이다.삼동친목회 대표들은 평화시장주식회사 측에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게 된다. 평화시작 20년 역사에 처음으로 녹음된 노동자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71년 대통령선고를 앞두고 여론에 민감했던 정부는 요구를 들어준다 하였지만 대선이후 그들은 180도 태도가 바뀌어 배짱을 내밀었다.삼동친목회 회원들은 격분하여 만장일치로 10월 24일 오후 1시에 평화시장의 국민은행 앞길에서 데모를 하기로 하였다. 약 5백 명 가까운 노동자들이 모이자 경비원들은 곤봉을 들고 해산시키려 들었으며, 형사와 회사측 사람들은 조롱되며 회유하기도 하였다. 전태일 등은 이 모습에 격분하여 다시 뛰어나가려고 하니 그때서야 그들은 ‘11월 7일까지는 선처해주겠다. 그때까지만 참고 기다려보라’고 약속을 하였다. 하지만 이 또한 지켜지지 않았다.전태일과 그의 동료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근로기준법 책을 화형하자고 제의했고, 13일로 날짜를 잡았다.‘이번만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결단코 물러서지 말고 싸우자’라고 동료들에게 말하였는데 이 말이 목숨을 던질 결심을 품고 그 자신의 마음을 다지는 말인 줄은 아무도 깨닫지 못하였다.결국 그렇게 전태일은 13일 분신을 하게 되었다. 그의 전신은 숯처럼 시커멓게 타고 살결은 화상으로 터지고 뒤집혔다. 그는 그 참혹한 몰골에서‘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며 울부짖었고, 죽어갔다.“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 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
    독후감/창작| 2013.12.23| 4페이지| 1,000원| 조회(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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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 세계사 다이제스트 100
    요약정리 [고대에서 중세까지...]인류는 약 200만전 전부터 출현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최초의 직립원인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이다. 인류의 발달과 더불어 두뇌의 진화로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동굴에 벽화를 그렸던 크로마뇽인이 등장하였다. 벽화의 이유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 할 수는 없지만 종교적인 의미로서 파악하고 있다. 약 1만 년 전, 빙하 시대가 끝나고 충적세가 되면서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바뀌었다. 신석기 시대의 변화를 거치면서 농경과 목축생활을 하였다. 정착 생활이 오래 계속되는 동안 혈연사회를 대신하여 거주하는 지역을 단위로 하는 지역 사회가 성립되었다. 각 지역사회에는 분배권을 쥔 권력자가 생겨나게 되었고, 그들이 모여 각지의 국가가 형성되었다. 이로써 인류는 문명 시대에 들어가게 되었다.세계에서 가장 일찍 문명의 빛이 비치기 시작한 곳은 (설형문자와 청동기, 수량의 단위인 60진법, 태음력, 각도시에 수혼신을 숭배)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상형문자와 태양력, 그리고 거대한 피라미드를 만듬)이집트의 나일 강, (벽돌 주택과 상형문자, 철제농기구를 사용)인도의 인더스 강, 그리고 (청동기와 갑골문자를 만듬)황하 유역이다. 이들 지방은 기후가 온화하고, 땅이 기름져서 일찍부터 농경이 행해졌으며, 교통이 활발하였다.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 많은 촌락들이 형성되었다. 큰 강 유역의 농경에는 협동심이 필요한데, 이와 같은 협동 작업이 문명을 추진하는 원동체가 되었고, 그것이 이윽고 각 강의 유역에 하나의 국가를 이루게 되었고, 권력 있는 왕에 의해 지배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농경은 문화의 기원이 된 것으로서, 영어로 문화를 가리켜 'Culture'라고 하는데, 이것은 원래 ‘밭을 간다’고 하는 의미이다. 이집트는 기원전 6세기에는 페르시아에게 정복, 그 후 기원전 332년에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되어 고대 이집트는 그 역사의 막을 내렸고,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기원전 1530년경에 서북방에서 공격해온 여러 민족에 의해 멸망, 그 후 수백 년 동안 분열과 혼란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인더스 문명 멸망은 수수께끼이지만 아리아 인 침입에 의한 멸망이다. 흥망성쇠 하듯 멸망하게 되었다.막을 내린 나라가 있다면 새롭게 만들어진 나라가 있다. 그리스국가 이다. 그리스에 등장한 그리스인은 도리아 족으로서, 그들은 철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무력에 뛰어났다. 에게 해를 그리스인의 바다로 만들었다. 그리스는 평야가 많지 않기 때문에 광대한 통일국가를 이루기에는 알맞지 않았다. 때문에 산으로 에워싸인 지역마다 많은 작은 나라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이와같은 나라를 ‘폴리스’라 한다. 대표적인 폴리스는 ‘아테네‘이다. 폴리스 상호 간에는 전쟁이 그칠 새가 없었기 때문에 중심이 되는 시가는 수비하기에 좋은 언덕 위에 만들어졌다. 이 언덕을 ‘아크로폴리스’라고 한다. 아크로폴리스 위에는 아고라라는 광장이 있었고, 여기는 폴리스의 심장에 해당되는 부분으로서 집회와 재판, 시민의 사교가 이루어 졌다. 이리하여 폴리스는 밖에서는 자유를, 안에서는 시민이 스스로 다스리는 자치체제로 번영하였다.그리스 인은 문학과 미술을 창조해 내는 한편, 예리한 이성의 눈으로 우주 만물을 신들이 창조해 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만물의 근원을 자연 속에서 탐구하였다. 페르시아 전쟁 후 아테네를 중심으로 민주정치가 전성기를 이루게 되자, 사람들의 사고 중점은 자연의 문제에서 인간과 사회의 문제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리스의 폴리스 가운데 아테네와 더불어 강력한 나라는 스파르타였다. 이 나라들을 비롯해 그리스의 각 폴리스가 나라의 힘을 키워 나가고 있을 때, 동방으로부터 페르시아의 세력이 소아시아에까지 뻗치게 되었고, 마침내 그리스와 페르시아는 전투를 하였고, 결국 승리하였다, 페르시아 전쟁에서 가장 공을 세운 아테네는 스파르타를 제치고 제일의 강대국이 되었지만, 스파르타 시샘하여 델로스 동맹을 이끌고 아테네를 공격하여 그리스는 내전에 휩싸였다. 내전은 끝없이 계속 되었고, 나라는 황폐해졌으며, 시민은 빈궁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조국을 지키는 시민을 중심으로 하여 성립되었던 폴리스의 구조는 밑동부터 무너지고 말았다.로마는 북방에서 알프스를 넘어 내려온 이탈리아 인 중 일파인 라틴 족의 도시 국가로 등장 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탈리아 반도를 정복한 로마는 마침내 카르타고와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이 전쟁을 포에니 전쟁이라 한다. 이 전쟁은 기원전264년에서 전 146년 사이에 총 3차에 걸쳐 일어났고, 제2차 포에니전쟁은 로마군이 패, 전쟁의 승은 로마의 것 이였다. 로마는 기세를 몰아 기원전 146년 카르타고를 함락하고, 다시 동쪽 나라들도 차례로 정복하고, 마침내 지중해를 내해로 삼는 대제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로마시대 때에 예수가 탄생하였는데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였다. 그는 유대의 북부지방인 갈릴리 지방에서 왔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운 것을 기쁜소식으로 알고 받아들이도록 설교하였다. 그러나 형식주의에 빠져 있던 유대교 지도자들에 대한 예수의 꾸중은 서릿발 같았다. 그것이 그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고,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곧 예수를 음모를 꾸몄다. 그러하여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숨졌고 예수의 제자들에 의해 부활 신상이 형성되어 예수는 예로부터 약속된 메시아가 되었고, 곧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가 형성되었다. 최초의 박해자 네로 황제(재위 54~68)를 비롯하여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재위 284~305)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독교인이 재판에 회부되고 처형 되었다. 기독교는 온갖 박해를 받으면서도 점차 널리 전해지며 그 세력이 커졌다. 마침내 콘스탄티누스 황제(274경~337)는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였다. 로마의 정치제도는 시대와 더불어 변해갔다. 최초에는 왕정이었고, 기원전 6세기 말에는 공화정이었으며, 그후 포에니 전쟁의 혼란과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으로 대표되는 노예의 반란을 거쳐 카이사르가 등장하면서 독재 권력을 확립하였다. 카이사르가 암살을 당하고 나서 옥타비아누스가 내란을 평정하고 제정이 시작되었다. 그는 원로원에서 그를 높여서 ‘아우구스투스(존귀한 사람)’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였고, 그는 40여 년에 걸쳐 정치에 많은 힘을 쏟았다.그리고 제국 쇠퇴기에 권력과 손잡고 로마 정신계를 통일한 기독교는 고전 문명과 융합하면서 가톨릭교회의 조직을 배경으로 하여 오랜 기간 동안 유럽 정신계를 지도했고, 서구 문명의 성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강대한 로마 제국도 4세기에 접어들면서 곳곳에서 말기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첫째가 반란이었다. 원인은 로마 지배층의 사치와 하층민에 부과된 무거운 세금, 하층민의 반항을 억누르기 위한 군대의 확장에 따른 것이였다. 원래 로마의 번영은 전쟁에서 치자하게 된 노예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노예를 더 이상 얻을 수 없게 되자 경제 전체가 막히게 되었고, 로마에 대한 게르만 족의 침입이 그치지 않았다. 로마제국이 날로 쇠퇴해가던 394년, 로마제국은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눠지게 되었고, 동로마는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하여 중세 말까지 이어졌으나, 서로마는 476년 게르만 인 용병대장 의해 멸망의 비운을 맞게 된다. 중세에 기독교는 둘로 분열되어 로마 가톨릭(공교회)과 그리스 오소독스(정교회)가 되었다. 그리스 정교회는 동로마 제국을 중심으로 발달한 반면, 로마 가톨릭교회는 프랑크 왕국과 손을 잡았다. 11세기에 들어 서유럽에는 봉건 영주의 지배가 안정되며 각지에 도시가 생겨났다. 교회 건축은 10세기에서 12세기에 걸쳐 로마네스크 건축이 유행하였다. 이는 로마 시대의 ‘바실리카’라고 하는 긴네모꼴 건물 양식을 말한다. 13세기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건축 양식인 고딕식이 북 프랑스에서 발생하여 서유럽 전체에 유행하였다. 또한 교황 우르반2세(재위 1088~1099)는 클레르몽 공의회(1095)를 열어 서유럽 제후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셀주크 투르크의 손에서 탈환해야하는 목적인 십자군(1096~1270) 원정에 참가하게 하였다. 십자군 전쟁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으나, 이 사건을 통해 서유럽에는 활기가 넘치게 되었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 문화의 중심지였던 도시들이 십자군 원정에 힘입어 동서 교통이 활발해 지면서 상업이 다시금 활기를 띠고 도시가 번성하게 되었다.감상문세계사 다이제스트100을 읽고 재미있는 부분은 역시 고대에서 중세까지라고 생각을 하였다. 과거 역사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 고대부터 출발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는 각 시대에 있었던 일들을 간단한 표로 표기해있으며, 글로써 요약한 부록 또한 있어 한눈에 알아보기 편했다. 또한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시간적 순으로 나열하여 각 시대에 있었던 대표적인 일들을 더 깊고 자세히 설명해준 책이다. 우선! 한번 읽고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 읽고 생각하니 책의 흐름과 패턴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에 모든 내용이 적혀 있진 않았겠지만, 몇 만년동안의 지구상에 있었던 일들을 내가 책 한권을 통해 다 이해하고 알려고 했던 것은 욕심이지 않았나 싶다. 이번 과제를 통해 세계사 책을 읽어본 결과 전반적인 흐름을 더 자세히 알게 되어서 좋았다.
    독후감/창작| 2013.12.23| 3페이지| 1,000원| 조회(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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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답사] 환기미술관에 대해서 평가D별로예요
    * 환기미술관Ⅰ. 김환기(1913~1974)우리나라 모더니즘 미술의 제 1세대로 “한국 추상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화가이며, 일찍이 동경에 유학해 1930년대 후반 일본화단의 전위적 단체인 자유미술가 협회전 창립에 참여함으로써 본격적인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했다. 해방 후 1947년에는 유영국, 이규상과 더불어 ‘신사실파’를 결성, 모더니즘의 계보를 형성하는 한편 서울대학 홍익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한국의 정서를 양식화한 독특한 예술세계를 확립한 김환기의 주요작품에는 , , 등이 있다.-론도 -산월Ⅱ. 개요위 치 :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 210-8대지면적 : 2,812㎡건축면적 : 593㎡건 폐 율 : 21.90%용 적 률 : 30.30%규 모 : 지하 1층, 지상 2층구 조 : (본관)철골조, (별관)철근콘크리트외 장 재 : 화강석, LCC, 고압벽돌설 계 : 우규승“미술관은 수화선생님의 정서와 예술에 어울리는 곳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산, 달, 구름, 바위, 나무 같은 자연과 어울리고 한국의 정취가 있으며 현대적인 세련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우규승Ⅲ. 설립 배경환기미술관의 설립 목적은 첫째, 수화 김환기 선생의 예술세계를 정리, 소개하여 작가의 빛나는 예술세계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이다. 둘째, 환기미술관은 김환기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 소개한다. 셋째, 환기미술관에서는 김환기 선생의 작품세계를 연구하고 책으로 퍼내기도 하고, 아트상품을 만들어 제공하고, 문화포럼을 운영한다.환기미술관은 전시와 행사, 교육 프로그램들은 특별히 유행이나 상업적 효과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함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앞으로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목적을 가지고 설립 되었다.Ⅳ. 주변 및 배치부지는 본관 건물 주변과 뒷산에 있는 전면도로와의 고저 차이가 8m 이상이 되는 급경사로 이루어져 있어 미술관에 들어가기에는 적합하지 않았고, 대지면적도 제한되어 있어 건물의 형태를 잡기에 복잡했다.미술관은 서울시 부암동 계곡에 동서방향으로 폭이 좁은 골짜기에 있으며, 북한산성과 인왕산이 보이는 곳이다. 미술관 건물이 언덕 위에 있고 주변에 주택들이 밀집해 있어서 도로에서 깊숙이 들어가야만 미술관이 보인다. 지리적으로는 관람자의 접근이 다소 불편한 편이다.본관 건물은 경사면의 방향에 맞추고 남쪽의 부속시설은 부지 경계에 맞추어서 축의 변화를 이루고, 진입부문의 별관은 축에 맞추어서 축을 균형적으로 엮도록 하였다. 축의 흐름 속에 각 건물은 크고 작은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남쪽을 향해있는 부지는 자연 녹지를 가지고 있으며, 상설전시 건물과 기획전시를 비롯한 지원시설 건물로 구분된다. 미술관 건물 전체는 부지의 높낮이가 다른 점을 고려해 공간을 수직적으로 쌓는 방법으로 표현했다.대문에서 본관 건물까지는 소나무를 중심으로 옥외공간이 형성되어 있고, 본관과 별관 사이에서 마당의 기능을 하고 있다. 본관 건물 중앙은 담 사이의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어 산책로로 이용된다. 산책로는 중간에서 전시공간으로 연결되어 있어 내부와 외부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연결되어 있다. 옥외공간은 한국의 전통적인 마당의 개념과 같이 외부이면서 내부인 공간으로 관람자에게 휴식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Ⅴ. 디자인 계획 및 공간 구성건물의 재료는 전통 한국 건축과 같이 땅에 접하는 부위는 조적의 의미를 가진 석재로 하고 그 위는 판재로 표현된 석재, 그리고 지붕은 납을 입힌 동판으로 처리했다. 별관은 외곽의 단과 함께 고압벽돌을 사용함으로써 본관의 특수성에 대비한 보편성을 표현했다.미술관의 내부 공간은 8m입방 공간을 중심(중정)으로 형성되고 있다. 이 공간은 전시실의 기능을 겸비한 다목적 공용공간으로서 도시의 중심 광장 같이 집합 및 인식의 중심역할을 하며 이 공간 주위를 감싸는 계단을 통해 각종 전시실이 연결된다.각 전시실과 중심 공간과의 연결 부위에는 접속공간의 영역을 설치하여 각 공간의 독립된 의미를 강조시키고 동시에 미술관에 필요한 동선, 수장과 설비시설들을 수용하도록 계획하였다.전시실 및 대부분의 내부 공간은 흰 벽으로 처리했다. 벽과 천정 모두가 동일 재료로 그 조형성은 크기와 형태를 통해서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전시를 위한 조명은 미술품의 보존 및 조명 조절이 용이한 인공조명으로 하고 드로잉 전시실을 제외한 각 층의 전시실들은 공간의 폐쇄감을 해소하기 위해 간접일광을 도입했다.- 환기 미술관 1층 평면도- 환기 미술관 2층 평면도- 환기 미술관 3층 평면도Ⅵ. 동선 분석환기미술관은 세 개의 건물로 분동이 되어있었으며, 각각의 역할로 본관(상설 전시실), 별관(기획전시실), 강좌실의 역할을 띄었다. 김환기 화가를 위한 개인미술관이여서 상설 전시장 공간 규모가 기획전시실에 비해 컸으며, 따로 분동되어 있었다. 이는 매번 여는 상설전시 와 그렇지 않은 기획전시의 동선을 구분한 것으로 느꼈으며, 관람객의 선택에 따라 전시장을 볼 수 있게 하는 배려로 생각하였다. 분리형으로 나누면 관리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1층에 안내실과 아트 샵이 위치하여 큰 어려움은 없을 듯 해 보였다.먼저 환기미술관에 갔을 때 미술관 site 밖에서부터 관람을 하였다. 미술관과 도로와의 경계에는 담으로 감싸져 있었으며, 하나의 재료로 이루어져 있어 그 담을 따라가다 보면 입구가 보였다. 또한 주출입구 외에도 부출입구(화물차량 입구)가 따로 있어 한눈에 사람의 동선과 차량의 동선을 나누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화물차량 진입 -담의 연속 -주출입구주출입구에 들어선 나는 화강암으로 된 계단과 벽돌로 된 별관건물을 보였다. 입구 주변에는 마땅히 본관이라고 할 수 있는 건물이 보이질 않아 계단을 자연스럽게 따라 올라 갔는데, 계단 끝에는 계단과 비슷한 재료들로 패턴이 나타나 있고, 안내판으로 본관 건물과 별관건물이 구획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안내판 -별관 입구 - 본관으로 가는 길본관의 전시장을 향하던 도중 수장고로와 연결되는, 앞에서 봤었던 화물차량 입구를 지나가면서 볼 수 있었다. 이는 본관과 별관 사이에 있었는데 두 건물에는 각각 전시실과 수장고가 있어 편리함을 느낄 수 있었다.입구와 본관 전시실은 다른 패턴의 바닥이 있었으며, 이는 전시실을 뺀 나머지 공간(계단, 홀 등)에서 확인 할 수 있었으며, 전시실은 나무로 된 바닥을 확인 하였다.-화물차량 입구 -본관 입구 -중첩된 공간오른쪽 사진은 입구에서 상설전시실(중정)을 향해 촬영을 하였는데, 커다란 그림이 있으며 밝은 곳으로써 나를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안내하였고 중정에 있는 작품을 감상 후 옆 전시실로 가서 작품을 보았다.본관의 안내원들이 사진촬영은 금한다고 하여 실내공간을 촬영 하지 못했지만, 중정을 둘러싸고 있는 계단과, 자연광을 유입하는 정방향 외벽 과 개구부(창) 등을 확인 할 수 있고, 개방된 느낌을 받았다.-1층 평면 -2층 평면 -3층 평면환기미술관에서 관람객 동선, 차량동선, 산책로 동선을 확인하였는데, 산책로 동선으로 추정되는 길은, 건물 외부를 둘러싸고 있었고 계단을 오르면서 주변 경치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양한 시각적 변화를 통한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며, 이 산책로는 뒷산과 연결되었고 본관 3층 외부 중정과도 연결 되어 전통적인 한국 건축 공간인 외부이면서 내부인 마당의 공간을 느낄 수 있었다.-본관을 감싸는 계단-뒷산과 연결된 산책로 -산책로의 연속성 -내부와 외부의 만남내부공간은 중정(전시실 1층)을 둘러 감싸고 있는 계단은 서로 교차하고 만나면서 관람객들이 움직이는 동안 동선을 선택할 수 있는 기능성을 제공하였으며, 1층부터 3층까지 같은 형식으로 공간이 나타난다.- 실내사진 1 -실내사진 2 -실내사진 3 -실내사진42층의 두 전시실은 윗 층의 외벽에서 반사되는 자연채광을 유도하였으며, 최상층의 전시실은 두 개의 볼트 사이를 통해 반사된 자연채광이 천정에 투영되도록 하였다. 사면의 외벽과 천정에서 내려오는 간접조명들은 공간의 폐쇄감을 해소하고 외부와 연계성을 가지며 내외부 교차동선과 함께 건축 재료를 내외부 구분 없이 사용하여 공간의 순환적 흐름을 의도하였다. (전시실 및 내부공간은 흰 벽으로 처리하였고, 외벽을 그대로 내부로 유입하여 공간의 연계성을 확보하였다.)* 미술관의 공간 체험 요소Ⅰ. 동선구성미술관에 있어 동선은 건물에 대한 전체적인 경험을 좌우하며 건물 전체의 평면 계획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또한 동선은 미술관을 관람하는 관람객들의 이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1) 연속 순로형식- 전시실을 연속적으로 접속시켜 차례로 관람을 하고 나가는 형식으로, 단순하고 공간의 이용률이 증가되므로 비교적 소규모 미술관에서 이용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많은 실을 선택권 없이 순서별로 통하여야 하는 불편이 있으며, 1실을 폐문시켰을 때는 전체 동선이 막히는 결점이 있다.(2) 복도 형식- 복도에 의해 각 실을 접속시켜 배치한 형식으로서, 복도가 중정을 둘러싸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전시실에는 각 실을 개별로 출입할 수 있고 필요시에는 자유로이 독립적으로 개폐할 수가 있으며, 복도의 일부도 전시장으로 사용할 수 있다.(3) 중앙 홀 형식- 중앙에 하나의 큰 홀을 두고 그 주위에 각 전시실을 배치하여 자유로이 출입하는 형식으로 중앙 홀에 높은 천장을 설치하여 고창으로부터 채광하는 방식이 많다. 이 형식은 부지의 이용률이 높은 지점에 건립할 수 있으며, 중앙 홀이 크면 동선의 혼란은 없으나 장래의 확장에 많은 무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결점이다.
    공학/기술| 2013.12.23| 8페이지| 1,500원| 조회(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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