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관람기10월 29일 간송미술관 전시회의 마지막 토요일, 나는 사진만으로도 나를 사로잡았던 조선 말기의 그림들(솔직해져 본다면, 혜원 신윤복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부푼 마음을 부여잡고 미술관을 찾았다. 간송미술관은 일 년에 단 두 번 개관하며 그 마저도 보름정도의 기간만 관람을 허용하고 있다. 미술관에서 소장하는 작품들은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선생님이 일제 강점기 당시에 우리 문화유산이 외국으로 약탈당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많은 미술품과 고서적들을 수집한 것들이다. 이번 전시는 풍속·인물화전으로 조선 전기 중국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과 겸재(謙齋)정선의 그림, 그리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많은 화가들의 작품들이 대부분 1층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었으며 2층에는 단원(檀園)김홍도와 그에게서 영향을 받은 긍재(兢齋)김득신과 혜원 신윤복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선 혜원 신윤복의 대표적 작품인 미인도를 비롯한 30첩이 넘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화제가 되었다.나 역시 그의 그림을 가까이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침 9시에 도착해서 약 2시간을 넘게 기다렸지만 그 시간 또한 즐거움으로 가득 찼었다. 전시의 마지막 주말이었기에 사람이 밀려있겠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렇게 오래 기다릴 줄은 예상치 못했다. 기다림도 즐거움이었다지만 육체적으로 피로가 밀려오다 보니 문득 무료로 개관하는 것도 좋다지만 우리나라 보물을 관람하는 건데 그에 상응하지는 못하더라도 일종의 관람료는 지불하되 모아진 관람료는 미술관 발전기금이라던가 우리나라 고 미술품 및 서적 수집에 기부 한다던가 그 외에 불우이웃 성금으로 기부를 해도 좋지 않은가. 그리하면 일 년에 단 두 차례만 그것도 15일만 볼 수 있는 가뭄에 콩 나듯 한 기회도 조금 더 많아 질 수 있겠고, 학교 숙제 때문에 억지로 끌려오는 중고생들의 작품에 대한 성의 없는 태도나 모욕도 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곧 미술관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아름다운 산기슭의 정취에 흠뻑 빠져 이내 ‘이 모든 잡생각들이 신윤복의 작품으로 떨쳐내어 지리라’ 라고 굳게 믿었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 생각을 떨쳐내기는커녕 제대로 관람조차 할 수 없었던 그 상황을 곱씹으며 언덕길을 내려오는 동안은 더욱 분통이 터졌다. 전시회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좁았고 (워낙에 시립미술관을 종종 가는 터인지라 그에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좁은 공간에 비해 그 멋진 작품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꼴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2층부터 전시하게 되었던 나는 누군가가 던진 ‘줄 서지 말고 보세요.’ 라는 한마디에 의존한 채 모두가 개미떼처럼 붙어있는 그림을 보기위해 까치발도 들어보고 총총 뛰어보기도 하며 안간힘을 썼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섰어도 유리 막 하나로 덜렁 가려진 그림은 그 유리마저도 왜곡되어 그림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다. 낑낑대며 어떻게 해서든 한 작품 한 작품 눈에 찍어 넣으며 둘러보았고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혜원의 작품에는 얼씬도 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머리만 들이민 채 그림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한번 머리가 끼이면 유리에 딱 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도저히 옴짝달싹도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도 끝까지 혜원의 작품을 감상하고 1층으로 내려온 나는 그나마 숨통을 틀 수 있었다. 2층의 작품들이 손바닥 크기만 한 그림들이었다면 1층의 작품들은 대형 그림들이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단연 나를 압도했던 것은 그림 속 요염하게 미소 짓고 있던 묘령의 여인, ‘미인도’였다. 그리고 ‘미인도’ 한 작품이 내 머릿속을 모두 지워버리고 넋을 빠지게 했다. 물론, 지금까지 관람했던 모든 작품들도 너무나 아름답고 감명 깊었지만 나를 지치게 하는 미술관 환경까지 덮어줄 만큼 제대로 보지 못했기에….혜원 신윤복은 8대에 걸친 세습 중인 출신인데 그 부친 일재 신한평이 화원 화가가 되었고 이를 뒤이어 신윤복 또한 화원화가로 진출하였다. 당시에는 친인척 간 동일한 부서 내에서의 활동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그의 부친이 화원에 출사하는 동안에는 부친과 상피하게 위해 공식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한 이유로 신윤복은 자연스럽게 그 시대의 일상적인 것들을 그리게 되었고 특히 조선 상류사회의 풍류를 그릴 수 있었다. 그의 그림에서 등장하는 선비들의 모습 대부분이 서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여인들에 수작을 걸거나 기생들과 풍류를 즐기는 모습으로만 비춰지는 것으로 보아 당대의 조선후기 현세를 알 수 있고 이는 그의 그림이 조선 후기의 상황을 잘 알려주는 좋은 척도로서의 큰 가치를 지닌다고도 할 수 있다. 반면,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림 자체의 크기가 작은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미인도(美人圖)는 단 한사람의 모습을 그 내면까지도 짐작케 할 수 있을 정도로 세심하게 그린 대작이다.추정컨대, 미인도(美人圖)에 그려진 인물은 조선후기의 풍류생활을 주도하던 여인 즉, 기생의 초상화일 것이다. 당시 사회제도상 양반집 규수는 외간 남자에게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고 또한 여인의 저고리 길이가 짧고 작은 것을 보아 이를 알 수 있다. 당시의 여인들은 저고리가 짧을수록 그리고 몸에 맞게 꽉 조여질수록 아름답다고 여겼다고 한다. 그녀의 저고리 안에는 젖가슴을 가린 흰 천이 둘러져 있는데 그 천의 매듭이 풀어져 길게 늘어져 있다. 또한 저고리의 고름도 풀어져 있다. 미인도에 사로잡혀있던 나는 옆에 있는 어떤 이가 하는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바로 이 풀어진 매듭을 보고 한 말이었다. “이 여인은 옷을 입는 중이었을까, 벗는 중이었을까?” 글쎄. 나는 교수님께서 이 그림이 사내들이 성적으로 흥분을 일으킬 수 있을만한 매력적인 그림이라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풀어져 있는 옷의 매듭이 여인의 옷을 그대로 흘러내릴 수도 있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옷을 입고 있는 중인지 아니면 벗고 있는 중이었는지 까지는 생각 하지 못했다. 그림을 보고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감흥은 참 신선했다. 풀어진 매듭 이외에도 나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풍성한 치맛자락 아래에 작게 나와 있는 하얀 버선발이었다. 작고 아름다운 버선은 인간의 가장 못난 부분을 아름답게 표현해 주는 역할을 한다. 즉 그림 속 여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름답다는 것을 말해준다. 거대한 그림 속 여인의 눈빛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묘사한 덕분에 마치 여인이 살아있는 듯 했다. 그 감흥을 증폭시켜주었던 것은 200년 전의 냄새까지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빛바랜 색감이었던 것 같다. 고혹한 여인의 자태가 전시장을 찾았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훔쳤을 뿐만 아니라 그윽한 그 눈빛은 이 여인을 그리고 있던 혜원 신윤복의 마음 또한 가져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미인도 이외에도 나를 사로잡았던 작품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 날 나에게 으뜸이었던 것은 혜원 신윤복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인도’였다.
방황하는 청춘의 인생 길 위에 선 영화 - My Own Private Idaho -"Have a nice day"Ⅰ. 서론이 영화는 1991년 개봉된 구스 반 산트(Gus Van Sant )) 감독의 작품으로 리버 피닉스(River Phoenix 1970-1993)와 키아누 리브스(Keanu Reeves)가 주연으로 등장하였으며 개봉 당시 각종 영화상을 휩쓴 수작이이다.) 그 내용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4세’의 제 1부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X 세대의 제임스 딘이라고 불리던 22세에 요절한 리버피닉스)의 리즈시절을 볼 수 있는 영화로도 화제가 된 적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히 회자되는 평이 좋은 작품이다.는 청춘들이 방황하고 절망하는 삶을 독특한 영상기법)으로 그린 삶의 ‘길’을 찾아 떠나는 영화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 그리고 적절한 중간쯤에 아이다호 혹은 포틀랜드로 가는 길 위에서 주인공이 그 끝을 바라보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자신의 삶을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삶의 ‘길’을 그린 영화란 것을 말해주고 있다.에서 그려지는 주인공들의 삶은 철학적이거나 사상적으로 무겁게 그려지지 않는다. 다만 확실히 불편한 구석이 있다. 15세에 처음 영화를 접했던 그 당시 리버피닉스라는 배우 하나만을 보고 영화를 봤기에 그저 지루하고 유치한 동성애 영화에 불과했었다. 그랬던 것이 영화의 주인공들과 비슷한 또래가 된 지금 다시 본 이 영화는 너무 많은 것들을 던져주고 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애정결핍, 노스탤지아, 우정과 사랑 사이, 친구의 배신, 동료애 그리고 돈과 같은 것들이 뒤섞여 나태한 청춘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그러한 일침을 털어내고자 주인공이 서 있는 ‘길’ 이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지, 주어진 삶에 굴복하여 사는 삶이 대변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 낼 가치가 있다. 길의 의미와 삶의 방향성을 말이다.Ⅱ. 불완전한 자아로 인한 내외적 갈등영화의 주인공인 마이크(리버 피닉스 분)는 창부였던 어머니와 형 사이에서 태 꿈도 목적도 없는 퇴폐한 인물로 그려진다. 또한 그저 주어진 삶에 끌려가는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 이런 그에게는 ‘기면 발작증’)이라는 병이 있으며 영화는 초반부터 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마이크는 유년시절의 어머니의 부재 등 불우한 성장배경 때문에 자아를 확립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는 영화 속 장면 중 노년의 남성에게 몸을 판 뒤 10달러만 더 달라며 자존심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 말하는 그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발작으로 인해 수면에 빠지는 순간은 과거 사랑받았던 자신의 모습이 현실의 자극과 교차 되는데 이것을 통해 퇴폐한 청춘인 마이크도 무의식속에서 자아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의 자극이란 어머니에 대한 추억의 조각 혹은 고향인 아이다호에서의 기억의 파편 등이 현실에서의 비슷한 모습으로 비춰질 때의 자극을 말한다. 한편, 그렇게 툭하면 기절한 듯 잠이 드는(중년 여성과 관계를 맺기 직전에 잠에 빠지기도 한다) 마이크를 도와주고 보살피는 스캇(키아누 리부스 분)이란 인물이 있는데 그 또한 부랑자들과 어울리며 몸을 판다. 다만 일생이 불우하여 내면 깊숙한 곳에서부터 자아의 상실을 경험하고 있는 마이크와는 달리 스캇은 포틀랜드 시장의 아들로 태어나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을 예정이지만 부친에 대한 반항심에 가출하여 방황을 하는 청년이다. 말 그대로 재미삼아 반항심에 몸을 파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의 내외면적 갈등은 마이크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마이크는 길에 쓰러져 잠들었다가도 허기가 지면 남창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여 돈을 얻어 배를 채운다. 뿐만 아니라 영화는 마이크를 통해 동성연애자들의 고충 혹은 남창들의 실태를 드러내는데 어린 청년들이 역겹고 힘들었던 자신들의 첫 경험을 이야기하는 장면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영화에서는 ‘밥’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데 모든 부랑자들의 수장 격으로 추앙을 받으며 사는 허풍스러운 인물이다. 한다. 언급한 이 장면에서 혹자는 ‘스콧과 망토를 두르고 밥과 친구들을 골려주는 장면은 인간적으로 너무나 유치하다’)라고 평하기도 했다.이러한 외면적 갈등에 더하여 마이크에게는 깊은 내면적 갈등이 존재한다. 그의 영원한 숙제인 어머니, 그의 고향 아이다호, 그리고 사랑이었다. 사실 그 외의 몸을 파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을 얼핏 드러내기도 한다. 중년 여성과 관계를 맺기 직전 기면 발작을 일으켜 쫓겨났던 마이크가 차를 타고 지나가던 한 남자의 ‘친구를 하자’는 제안을 거절하며 ‘변태자식’ 이라고 내뱉은 장면에서 그가 필요에 의해서만 몸을 팔며 이는 불완전하지만 자아를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영화 중반부에 들어서면 마이크는 고향에 두고 온 형을 찾아가 자신을 버린 어머니의 소식을 듣고 스캇과 함께 어머니를 찾아 떠난다. 그 내적 갈등의 소용돌이 가운데에서도 모닥불을 피워놓고 마이크는 스캇에게 수줍게 고백한다. 그를 친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했던 스캇도 마이크에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둘의 관계가 진전되는 것처럼 보이나 어머니를 찾기 위해 갔던 로마에서 스캇은 로마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이를 지켜봐야 했던 마이크의 내적 갈등은 고조가 된다. 게다가 로마에 있을 줄 알았던 어머니는 미국에 갔다는 소식까지 접한 터라 마이크의 내면적 혼란이 배가된 상황에서 스캇은 마이크를 버려둔 채 사랑하는 여인과 떠난다. 결국 혼자 포틀랜드로 돌아온 마이크는 다시 거리를 떠돌다 우연히 재산을 상속받고 로마의 여인과 함께 행복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와 마주친다. 그는 정신적 지주라 칭하던 밥과 가장 친한 친구였던 마이크를 외면했다. 마이크는 사랑도 잃었고 우정도 잃은 상황에 치달은 것이다. 그 상황에서 영화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난다. 밥이 죽고 스캇의 부친 또한 위독하여 죽게 되는데 여기서 감독은 둘의 장례식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하도록 설정하고 있다. 엄숙한 스캇의 부친 장례식과 대조적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장례를 치르는 마이크와 친구들의 모습을 교차하여 속은 상실감으로 가득 차 있다. 영화는 그렇게 마이크의 삶을 회복시키지 않는다.Ⅲ. 갈등 해소의 해답, 길는 어떤 영화인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을 찾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영화 속에서 ‘길’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영화의 시작과 끝, 그리고 정확히 그 중간에 같은 길이 세 번 등장한다.“내가 어디 있는지는 길 모양만 보면 알 수 있지. 여긴 전에 내가 와본 곳이야.” 영화가 처음 시작할 때 황량한 길 한복판에 마이크가 혼자 중얼거리며 서있다. 그리고 길 끝을 제한된 시야로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어딜 가 봐도 이 길과 똑같이 생긴 길은 없어. 단 하나밖에 없지. 어떤 사람의 일그러진 얼굴처럼.” 그리고는 기면 발작으로 쓰러지게 되면서 어머니의 모습, 노을 그리고 연어의 모습이 보여지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화의 중간부분에서는 마이크와 스캇이 오토바이를 끌고 여정을 떠났을 때, 스캇이 꺼진 시동을 켜지 못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 때 마이크는 말한다. “이 길은 전에 와 본적이 있어. 내 길이야. 일그러진 얼굴처럼 보여.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좋은 하루 되세요.” 시작과 같지만 둘이 함께 길을 본다는 점, 길이 그에게 좋은 하루가 되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는 점에서 마이크의 미세한 심리 변화를 읽을 수 있다.영화가 끝난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 시작과 같은 방식으로 마이크가 길 위에 서있다. 다시 발작을 일으키고 그가 쓰러지는데 그 사이 두 대의 차가 지나간다. 첫 번째 차는 그의 신발과 주머니를 뒤져가고, 두 번째 차는 그를 일으켜 안아 차에 태워 떠난다. 마이크는 항상 그 길 위에 서있다. 혼자였던 적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였던 적도 있었으며 자신을 약탈한 사람도 그리고 그렇게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자신을 구원해준 사람도 있었다. 그러므로 이 길은 보잘 것 없는 청춘이 서 있는 인생이라는 견해가 다수고 나 역시 그에 동의하는 바이다. 그 길이 삶의 통로 혹은 인생 그 자체라는 것에선 그 의견을 같이하나 그것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 우리는 마이크처럼 죽음과도 같은 마음의 고향을 향한 기나긴 여정이 ‘길’이라고 한다.) 또는 만큼 길을 모티브로 하여 상징으로 도입하고 있는 영화가 드물고 영화 속에서 마이크가 처음 와 본 길임에도 와본 적 있다는 듯 착각하는 것이므로 소위 전생체험이라고 할 수 있는 환각이라는 견해도 있다. 마이크의 눈에는 전생 혹은 저승으로 뻗은 길로 보였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그 외에도 마이크의 마음 속 고향인 ‘아이다호’는 정체불명의 기억들의 고향이고 불행한 삶에서 매달릴 수 있는 따뜻한 자궁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 따뜻함을 향해 가는 길에서 기면발작으로 자신이 위치한 곳을 모르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우리의 삶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에 비유하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양한 분석 중에서도 흥미로웠던 부분은 바로 길을 표현했던 마이크의 대사에 초점을 둔 것이었다. ‘찡그린 얼굴을 한 길’이 라고 말하는 것 같다던 마이크의 대사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명대사라고 꼽는 것 중 하나이면서도 영화를 보는 당시는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이크가 길 위에 쓰러져있을 때, 누군가는 신발을 가져가지만 누군가는 차에 태워 데려가기도 한다. 이는 삶의 앞은 알 수 없으며 다음에 처할 상황이 좋을지 나쁠지 알 수 없는 것 즉,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삶 가운데에서도 찡그린 얼굴의 길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라고 한다는 것은 서 있는 그 길이 어떠한 길도 될 수 있으며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긍정의 길이라는 분석이었다.)어머니를 찾지도, 고향으로 온전히 돌아가지고, 사랑하는 스캇과의 관계는 연인도 친구도 될 수 없게 되어버린 불행의 끝을 달리던 마이크는 무덤 앞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승화시키고자 하지만 결코 해소 되지 못했다. 그러나 마지막 길 위에서 비록 정신적으로 의지하던 스캇도, 육신을 의지하던 밥도 모두 떠나갔지만 새로운 구원의 손길을 만나 어쩌면 새로운 시작을 통해 그간 마이크가 겪었던 모든 내적 갈등이 그 길 위에서 한 번에 해소될지도 모른다.
영조의 탕평정치1. 탕평의 배경영조는 숙종 임금의 후궁 숙빈 최씨의 소생으로 노론 사대신 김창집의 당질녀인 영빈 김씨에게 양자로 들어갔기 때문에 왕자시절 노론에게 학예를 얻었다.몸이 쇠약하던 경종을 대신하여 영조를 왕위에 올리려던 노론은 영조를 왕세제에 책봉하게 하였으나 경종에게서 대리청정을 청하고 이에 소론이 대리청정을 환수하면서 일어난 신축환국과 이 때문에 김일경이 목호령을 매수하여 노론이 역모를 꾀한다고 고변한 임인무옥으로 대대적인 사화, 신임사화로 노론 인사들이 죽임을 당했다. 영조가 즉위 한 이후에도 신임사화에 대한 시비는 계속되었고 영조는 신임사화는 소론의 무고의 의한 ‘무옥’이라고 판정하는 을사처분을 내려 김일경과 목호령등을 부대시처참에 처하게 하여 역적임을 알리고 노론정권이 성립할 명분을 주었다. 그러나 노론 인사들은 영조가 펼치고자 했던 탕평에 따르지 않았고 이에 노론계 인사들 100여명을 파직하고 소론계 인사들을 등용하여 소론정권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영조 4년 이인좌, 심유현등이 소현세자의 증손인 밀풍군 탄을 옹립하려는 역모인 무신난(이인좌의 난)이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영조는 이를 사전에 진압하여 소론정권이 역란을 평정했지만 난을 일으킨 주요 인물들이 소론, 남인 출신이었기 때문에 소론의 열세가 불가피 했고 이에 영조의 탕평이 명분을 굳건히 하게 되는 배경이 되었다. 이미 숙종때부터 사림정치의 파탄이 시작되었고 세제시절 고통스러운 신임사화를 겪고 왕위에 오르고도 여전히 신임사화의 시비, 붕당의 싸움등이 이어져 영조는 왕권강화에 목적을 둔 탕평을 처음부터 쉽게 이뤄낼 수는 없었으나 이후 탕평정치를 위한 탁월한 정책으로 탕평정치를 이뤘다.2. 소론탕평기영조는 신임사화에서 소론이 옳고 노론이 그르다고 하여 소론의 입지를 굳혔고 정국 운용 방식으로는 이조판서에 노론을, 이조 참판에 소론을 두는 쌍거호대를 취하면서 둘 다 처벌하고 둘 다 면책을 하는 양치양해 방식을 채택했다. 정국 운용의 주도세력은 소론탕평파로 표장세자의 장인인 조문명을 주축으로 했다. 그러나 영조 15년 이후부터는 차츰 노론탕평을 추진하기 위해 영조는 부마를 노론계에서 간택하여 왕실 혼인을 통해 정권을 안정시키려 했다. (후일 척신 세력으로 인한 문제를 야기시키는 배경이 된다.)3. 노론탕평기영조 16년 부터는 신임사화가 다시 무옥으로 판정되고 노론탕평기를 이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