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양자제도에 대하여 선택한 이유?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가족제도란 존재하며 어느 나라이던지 구성하는 기본이 되는 요소는 가족이 되기에 이를 보충해주는 요소인 양자제도에 대해 리포트를 작성하기로 했다. 또한 양자제도는 인간의 생활이 기록되어있던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였기에 이 또한 자료조사 하는데 자료양이 풍부할 것이라 판단하여 이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2. 양자란 무엇인가?양자란 혈연적으로 부모자식관계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법률적으로 자식의 자격을 얻은 자를 일컫는다.양친자 관계는 양친과 양자가 서로 친자관계를 맺겠다고 합의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과거 한국에서는 양자 제도가 조상의 제사와 가의 계승을 위한 "가문를 위한 제도"일 뿐이었으나, 현재는 부모 없는 자녀에게 부모를 주고, 자녀 없는 부모에게 자녀를 주는 "자식 또는 부모를 위한 제도"로 전환되었다. 2012년 입양특례법 개정에 따라 그 전까지 민간 입양기관이 국가의 개입 없이 입양을 주선할 수 있었다가 가정법원의 허가가 있어야 입양이 가능하도록 바뀌어 입양을 공적인 영역에서 맡게 되었다.과거 민법에서는 사후 양자, 유언, 양자, 호주 상속 양자, 서양자, 호주가 된 양자의 파양 금지 등 "가를 위한 제도"가 잔재하였으나 현행 민법에서는 이를 모두 삭제하였다. 즉, 자와 부모를 위한 제도라는 것이 기본 정신이므로 성년자이면 누구나 남녀, 기혼· 비혼에 관계없이 양자를 들일 수 있다. 자녀를 두고 있는 사람도 양자로 될 수 있고, 부부도 공동으로 입양을 할 수 있다. 양친자 관계는 입양을 통해 발생하고, 그 입양의 취소 또는 파양을 통해 소멸된다.파양이란 양친자 관계를 해소시키는 것을 파양이라고 한다. 양친자 관계는 양친과 양자의 관계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친족과 관련되는 것이므로 사망에 의해서는 해소되지 않는다. 파양은 당사자의 협의에 의한 경우와 재판에 의한 경우로 나뉜다. 협의 또는 재판에 의해 파양이 이루어지면 입양이 취소된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때부터 양친자 관계는 소멸한다.3. 우리나라 양자제도의 역사적 변화(1) 삼국시대우리나라의 양자제도에 관한 자료는 대부분이 고려시대 이후의 것이기 때문에 이전의 시대에도 양자제도가 존재하였는지의 여부 혹은 존재하더라고 구체적으로 그 양자제도가 어떤 목적과 내용을 가졌던 것인지 현재로서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하지만 우리나라는 농경정착생활을 지속하여 왔고 노동력증가를 위해 가족구성원의 다수화가 필요하였고, 가계의 존속 및 국가적 체통의 불완전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서 삼국시대에 이미 대가족 제도가 시작되었으며, 대가족제 하에서는 혈통과 제사의 계승을 위한 양자제도가 대부분의 경우 필연적으로 요청된다는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삼국시대에 이미 제사와 가산의 승계를 목적으로 하는 혈통승계의 수단으로서 양자제가 존재하였을 것이다. 즉, 가계의 계승은 친자가 하는 것이 원칙이나 친자가 없는 경우에는 타인의 자를 자기의 자로 입양하여 가문을 승계시킴으로써 가계의 지속을 이루려고 하였을 것이다. 다만 삼국시대에 양자제도가 존재 하더라도 당시는 중국의 유교적영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기 때문에 외손에 의한 제사 등이 허용되었을 것이며, 또한 가내 노동력의 증강을 위하여 때로는 노비를 얻는 수단으로서 양자제도가 이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2) 고려시대고려시대에는 아들이 없으면 부계친족 중에서 형제의 아들을 양자로 삼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따라서 세대가 맞지 않는 친족은 양자로 삼는 것을 금하였다. 하지만 부계자손이 없는 경우에는 외손도 양자로 맞아들이는 것을 허용하는 규정이 있었다.또한 중국수양자제도를 받아들여 형제의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친인척이 아니더라도 3살 이전에 유기된 아이를 양육하여 아들로 삼고 자기의 성을 따르도록 허용하였다. 이와 같이 입양한 아이는 친아들과 같이 취급되어 가계와 제사를 상속하며 양친을 위해서 3년상을 입도록 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아들과 형제의 아들이 있으면서 이성을 양자로 삼는 것을 일체 금한다는 규정이 있는 것으로 보아 3세 이전이 아닌 이성의 양자도 존재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이와 같이 고려 초기부터 아들이 없을 경우 부계친족을 양자로 삼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부계가 없을 경우에는 외손을 양자로 삼도록 규정하여 대상을 혈족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을 가계와 재산을 상속하는 것을 양자제도의 주요기능으로 생각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유교적 친족제도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와 같은 양자가 실제로 널리 일반화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고려말에 와서는 유교적 제도에 따라서 양자는 반드시 부계친족 중에서 택하고 또 적자와 서자를 차별하여 적자가 없을 경우에는 친족 중에서 양자를 들여서 가계를 상속하도록 강조하기도 하였다.(3) 조선시대조선시대는 고려시대 양자제도를 이어 가계상속을 위한 양자제도가 보다 발전되었다. 조선시대의 양자제도는 세종 대에 그 기준이 성립됬다. 1437년(세종 19))에 의하면, 가계를 계승할 아들이 없을 경우에 같은 부계친족 중에서 가계를 계승할 양자를 택할 때 세대가 맞지 않는 존속이나 형제는 양자로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또한 입양할 경우에는 반드시 아버지의 승낙을 받아야 하며, 만약 아버지가 없을 경우에는 어머니가 허가를 받아서 할 수 있었다. 입양한 뒤의 모든 권리 의무는 친부자와 같으며 이성은 입양하더라도 가계를 계승할 수 없었다. 즉, 가계계승을 위한 양자는 반드시 부계친족으로 하며 외손과 이성은 가계계승을 위한 양자가 될 수 없었다.그러나 양자제도는 반드시 규정대로 시행된 것은 아니며 현실적인 제도는 법적인 제도와 괴리가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독자가 가계를 계승할 사람이 없으면서도 남의 양자로 들어가고, 먼 친족 중에서 양자를 들인 경우도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때로는 항렬에 구애되어 아들 항렬에 해당하는 사람이 없고 손자항렬에 해당하는 사람만이 있을 경우 이미 죽은 그의 아버지를 양자로 삼음으로써 그 손자항렬에 해당하는 사람을 데리고 오는 백골양자라는 관습도 있었다. 이런 현상들은 가계계승을 강조하던 조선시대의 가족제도와 관계가 있다.한편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같이 3세 이전의 아이는 이성이라도 가계계승을 하는 양자로 삼는 것을 허용하였지만 경국대전에 의하면 3세 이전에 양자로 한 것을 수양자라 하고 수양자에 따라 제사, 재산 등을 계승하고 상속하는데 차등을 두는 것에서 고려 시대와 차이가 났다.이러한 시양자 제도는 가계계승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서 유기된 아이를 양자로서 양육한다는 의미에서 사회복지적인 양자제도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현실에서는 노동력을 취하기 위해서 양자를 양육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이러한 시양자 제도가 있었기는 하였지만, 조선시대의 양자제도는 유교적인 친족제도의 정착과 함께 가계계승을 위한 양자제도를 중심으로 발전되었다. 뒤의 양자제도역시 대체로조선시대의 그것을 근간으로 하고 있었다.(4) 일제시대우리나라가 일본에 합병되던 1910년에 긴급칙령을 발표하고 1912년 3월에는 민사에 관한 기준법령으로 일본 민법중 일부가 한국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친족, 상속에 관한 규정은 활용되지 않았고 당시 조선에 고유한 관습법에 의한다고 규정하였다. 따라서 일제시대의 양자제도는 조선시대의 양자제도가 대개는 그대로 적용되어 조상의 제사를 받들고 가본위의 양자제도에 입각하고 있었다.4. 세계 속의 양자제도(1) 로마의 양자제도로마의 양제제도는 조상제사의 지속은 로마전체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여겼기에 친자가 없을 경우 가장의 지위를 상속시키고자 양자를 삼아야만 했다. 로마에 있어서 양자제도는 큰 의미를 지녔으며, 그 종류로는 자주권입양과 타주권자 입양이 존재했다.자주권자 입양은 자주권자가 다른 자주권자의 양자로 되어 그 가부권에 복종한다는 양자제도이다. 이 경우 양자의 가문의 제사는 단절되고 그 가족은 가장과 함께 입적되므로 국가에도 영향을 끼치는 이유가 있어 단순한 합의에 의하는 행위가 아니고 국가가 관여한다. 이 양자제도는 전술한 목적 외에 가문에 속하는 자를 양자로 하여 자기의 민족을 계속 장대하게 할 정치적 의미 및 노동력 증가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반면 타주권자 입양은 큰 의의를 가지 못하므로 개인적인 행위로서 이루어지는데, 그 효과면에서 볼 때 양친의 친생자와 같이 되는 완전양자와, 생가와 완전히 인연을 끊지 않는 불완전 양자로 나누어진다. 하지만 완전양자는 유스티아누스 때 모순이 있다 하여 금지하고 불완전양자만이 인정되었다.(2) 근대 프랑스의 양자제도 및 영향프랑스의 양사제도는 혁명 당시입법의회에 의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양자제도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고 양자는 부의 무산자에게로 분할이라는 합목적적 구상 등이 나타났던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지만 이 사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그 후 양자법은 19세기에 고대 로마의 사회관행과 프랑스 혁명이 내결었던 주도적 이념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하여 복합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각국의 통일법전 편찬으로 결실을 맺었다.
1. 이 글을 쓰며IT산업는 사회속의 모든 분야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자민주주의의 구현, 전자정부, 전자상거래, 전자정보 교육 등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 곳곳에서 적용되고 다양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전자상거래의 활성화는 경제 분야에서의 IT산업의 활용을 가장 뚜렷하게 볼 수 있는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가지 않아도 집에 편안히 앉아서 내가 원하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으며, 단순히 그냥 보고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품에 대한 정보와 실제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을 보고 꼼꼼히 따져가며 나에게 가장 적합한 상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정보기술의 발전은 컴퓨터와 인터넷, 뉴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고 이미 우리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우리의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하는 등 수 많은 장점을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글을 통하여 IT기술의 활용사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2. IT산업의 현황 및 효과IT 기술개발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발전방향 제시로 IT 산업의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고 경제성장의 핵심엔진으로 부상경제성장의 중심이 대기업에서 벤처기업으로 옮겨가고 있고, IT벤처기업이 전체 벤처기업의 대부분을 차지그로 인한 지속성장과 고용창출을 위한 핵심 기술개발과 고급 전문인력의 양성이 국가적 과제로 등장하였다.3. IT산업의 활용(1). 오프라인 기업사례한진택배: 한진택배는 택배 산업 내에서 대한통운, 현태택배, 우체국 택배 등 기존 택배업체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의 택배업체들의 시장진출 증가, 오토바이 택배서비스인 퀵서비스 등 같이 대체될 수 있는 경쟁업체들의 증가 등으로 산업 내에서 도태될 위기에 있었다.이러한 경쟁상황에서 한진은 기존의 낙후된 택배정보 시스템을 개선시켜 디지털택배정보 시스템인 e-Hanex를 완성하여 활용하고자 했다. 전자상거래의 활성화에 따라 택배의 중요성은 더욱 증대되고 있는데 그에 따라 고객들의 서비스욕구가 다양화되고 고급화되고, 택배회사가 갖추어야 할 여건은 점차 까다로워지고 있기에 경쟁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새로운 택배정보 시스템인 ‘e-Hanex'를 1999년 11월 완성하게 됐다. e-Hanex는 전국의 택배영업장을 인터넷으로 네트워크화 함으로써 실시간 정보파악은 물론 인터넷 혹은 PDA를 이용하여 실시간 서비스내용 조회 및 택배예약, 배송확인 및 화물추적, 견적서비스, 영업장 안내서비스 등을 제공할 수 있게 해 주는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또한 B2B, B2C등 전자상거래 업체와 연결할 수 있도록 e-mail, EDI등 다양한 물류 연결채널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한진택배의 메인 시스템으로 이용되었으며 이 시스템을 통해 물류센터에서의 입출고, 재고관리도 가능하여 고효율의 물류관리를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e고객센터를 두어 고객서비스 개선 및 의견수렴과 함께 고객의 증가를 유도하였다. 또한 파트너쉽 센터를 설치해 협력업체들과의 신뢰성 및 유대감을 강화하여 원활한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고객만족도가 향상되고, 인터넷 택배예약이 대폭 증가하는 등의 효과를 얻었다. 유형의 효과로는 총비용이 16억 4100만 원이나 절감되었고, 무형의 효과로는 온라인 마케팅을 통한 판매채널 증대, 업무프로세스의 단축으로 업무효율화 증대, 효율적 인력관리와 신상품 개발기간 단축 등 셀 수없이 많은 이익을 들 수 있다.그리고 더 나아가 더욱 발전한 택배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GIS/GPS 시스템, 경로계획을 구축하여 향상된 모바일 택배서비스 시스템을 도입하여 택배운영의 효율성을 기하려 하고 있다. 게다가 기존 오프라인 물류인프라와 온라인을 결 합하여 전사적으로 전 사업을 통제하는 첨단 택배기업으로 발전하려고 하고 있다.(2) 온라인 기업사례싸이월드: 싸이월드는 다음, 네이버 등 알려진 포털 사이트와 커뮤니티 사이트 등과의 경쟁관계에 놓여 있다. 싸이월드와 함께 세이클럽과 같은 채팅사이트나 프리챌과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 등이 대체 가능한 것으로 존재한다.싸이월드는 순수한 온라인 기반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의 성공사례이다. 인간 관계,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지식을 마케팅의 근간으로 활용 이를 온라인 가상공간에 서비스하여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하였다. 지금까지의 포털 사이트의 경쟁력과 순위결정에 있어서는 무료 이메일, 채팅, 클럽, 블로그, 미니홈피로 이어지는 커뮤니티 서비스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실제로 다음의 한메일 유료화로 네이버에 고객들을 빼앗기기도 하였고 이러한 가상공간에서의 인적 네트워크 구축과 사회적 상호작용에 대한 욕구를 파악하고 사업화한 벤처기업이 바로 싸이월드이다. 싸이월드는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들의 서비스와는 차별화된 서비스인 ‘나’를 중심으로 인맥을 형성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싸이월드가 초기에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서비스가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들과 차별화되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서비스에서 클럽 서비스로 전환되는 반면 싸이월드는 인맥을 형성, 그것을 중심으로 사회적 상호작용이 이루어진 능동적 모델을 제시했다. 초기에는 제대로 된 수익모델이 없었으나 환경의 변화를 잘 감지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어내게 된다. 창업 이후 초기 솔루션 서비스 모델로 패키지 형태의 판매, 자사의 웹사이트에서 사용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기획에서 구현까지 해결해주는 컨설팅이 결합된 서비스 모델이 그 수익모델이다. 기업 고객의 수요가 많지 않아 오래가지 못했지만, 그 이후 싸이월드 성장의 일등공신인 미니홈피를 선두로 선물가게, 미니룸 서비스, 유료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인 뮤직샵을 오픈함으로서 수익모델을 완성하게 된다. 또한 싸이월드에서 거래 활성화에 기여한 요소는 전자현금 ‘도토리’이다. 단순한 화폐 개념이 아닌 싸이월드 내 모든 서비스를 하나의 틀로 묶을 수 있는 수단으로 기능하며 네이트닷컴 포털 사이트 내의 다른 서비스와의 통합을 위한 수단으로서도 기능한다.싸이월드는 SK와 합병 이후, 유무선 연동 서비스 제공을 시작으로 유무선 통합 모델로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그것이 바로 모바일 싸이월드 서비스이다.이러한 싸이월드의 성공요인을 종합해보면, 싸이월드가 환경변화에 대해 신속히 반응한 것과, 이름을 클릭하는 것으로 거미줄처럼 복잡한 인맥을 연결하여 회원 충성도를 강화한 것과, 서비스와 자본, 그리고 기술이 결합한 SK의 인수에 따른 시너지 효과로 볼 수 있겠다.이처럼 싸이월드는 환경변화에 따라 사업성공을, 벤처그룹 의로써 성공을 거두웠다. 하지만 현재는 과거 다른 커뮤니티들이 겪었던 과정과 똑같이 빠르게 변화하는 모바일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여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외산 SNS에게 그런 혁신의 자리를 내준 형편이다.4. 이글을 마치며
강릉단오제 참관기201531840 임찬열본 참관기는 2015년 월 일에 한국 강릉에 위치한 전통축제인 강릉 단오제에 참관하고 행사의 특징을 소개하고자 한다.강릉단오제는 민중이 참여하는 축제의 성격이었다. 강릉단오제는 조선시대 당시 관에서 주관하고 민중들이 참여한행사이며 무속신앙을 믿는 민중들이 함께 하던 조선조 축제의 원형으로 대부분의 행사는 일제에 의해 훼손되고 파괴되었지만 단오제만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이 행사는 일제시대에 강릉시내에 있던 대성황사가 헐림으로서 관민공동의 행사였던 강릉단오제의 내용이 심각하게 훼손되었지만 강릉중앙시장 상인들을 중심으로 명맥을 잇게 되고 유교식 제사와 무당굿으로 국사성황신을 모시는 제의, 단오의 각종 민속놀이와 난장이라는 기본 요소는 전승되었다. 1967년 국가로부터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어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축제로 인정받으며 1975년부터 민간단체에서 주관, 민중의 축제로 자리잡게 된다. 최근 한국사회가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민속문화가 쇠퇴함에 따라 강릉단오제는 전통문화 전승의 통로이자 체험적 교육현장으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2005년 유네스코에 의해 ‘인류구전 및 무형 문화유산 걸작’으로 선정되며 세계적인 전통문화 축제로 우뚝 서게 되었다. 현재 강릉단오제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복합적으로 볼 수 있는 가장 한국적인 축제로 여겨지고 있다.내가 갔을 때의 단오제는 과거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사건과 천안함폭침 사건 등으로 행사규모가 수축되고 불꽃놀이가 취소됐던 과거와 달리 완전히 회복하여 진정한의미의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일단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주와 떡을 만들어 참여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신주빚기 라는 행사를 볼 수 있고 산신제를 지내고 국사성황신을 모셔오는 행사가 벌어진다. 나팔과 태평소, 북, 장고를 든 창우패들이 무악을 울리며 무당패들 수십 명이 말을 타고 가고 그 뒤에는 수백 명의 마을 사람들이 제물을 진 채 대관령 고개를 걸어 올라가는 대관령산신제, 국사성황제를 볼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위의 문화재지정행사 외에도 국?내외 초청공연, 민속놀이 그리고 각종 문화행사들이 국?내외 관광객의 발길을 잡는다.그 외에 단오제의 장단점을 말해 보자면 장점으로는 유네스코지정문화재로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게 하고 세계에 알리는데 이만한 행사는 없다 생각되고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식어가는 한류열풍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일본과 연계한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홍보하는데 더욱 노력해서 세계적인 축제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점으로는 단오장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식당가와 장사꾼들이 차별화 되지 못한 메뉴를 가지고 있다. 굳이 단오장이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는 음식들로 구성되어있었다. 옆 가게에서 하는 음식은 경쟁이라도 하듯 함께 팔고 있었다. 게다가 축제장답게 바가지요금도 존재했다. 또한 강릉에선 고래가 전혀 잡히지가 않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가게에서 고래 고기를 판매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