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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황제들
    을 읽고우송대학교 중국학과 2학년200711516 김나영나는 개인적으로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까지 많은 책을 읽어왔고, 또한 그 장르가 다양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라는 책은 나에게 너무나 낯설은 책이였다. 명색의 중국학과라는 사람이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중국학과이기에 그 나라의 언어만을 이해하면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배우는 나라의 언어만을 이해하려 하고, 그 연대기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허울뿐 이라는 것을 느꼈다. 차례 뒷장 마지막 줄에 나온 것처럼, “중국에서는 아마 다른 어느 나라에서보다도 더 과거에 대한 지식이 현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일 것이다.”라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 , 나에게 이 책은 중국의 문화와 현대를 이해하는 첫 걸음마 였다.솔즈베리는 1949년의 중화인민공화국 탄생부터 1989년의 천안문 대학살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세밀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그려냈다. 처음에는 책을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라는 책은 시간적 흐름을 무시했다. 첫 페이지를 넘긴 나는 장제스와의 전쟁 때 마오쩌뚱의 전술(p.28~29)을 시작으로 마오쩌뚱이 국민당에게서 로부터 베이징을 되찾았다는 부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왜 전쟁이 시작됐고, 마오쩌뚱이 그때 어떤 인물인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글의 내용을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천천히 시간을 갖고, 다시 책을 읽었을 때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조금씩이라도 배워나갔다.이라는 이 책은, 총 8부작으로 제 1부에서 6부까지는 마오쩌뚱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제 7, 8부에서는 그 뒤를 이은 덩샤오핑을 야기했다. 국공내전과 공산당 승리에서부터 문화혁명, 마오쩌뚱의 죽음, 덩샤오핑의 복귀와 천안문 광장 대학살에 이를 때까지 생생하게 재구성 시켰다.나는 마오쩌뚱이 혁명가이자, 반란자, 정치가라는 타이틀만을 가진 어려운 사람인줄 알았다. 하지만, 책에서 ‘마오는 정치가일 뿐만 아니라 시인이기도 했으며, 논객일 뿐만 아니라 철학자이기도 했다.’(p.45~46)라고 한 것처럼 그는 예술가였다. 흥미로웠다. 솔직히 혁명가, 반란자, 정치가 같은 것은 모두 어려웠고, 관심가지 않는 분야라서 마음속으로는 그것뿐인 책이라면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예술가이면서 정치를 한다면 생각이 바뀐다. (p.89~91)에서는 혁명가로써의 마오쩌뚱도, 시인으로써의 마오쩌뚱도 있었다. 마오쩌뚱의 다방면을 고루 보게 된 것이다.난 솔즈베리의 중국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사실과 오류를 차별하고자 했던 많은 노력(p.11~12)이 마오쩌뚱이나, 덩샤오핑 못지않게 대단한 것 같다.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은 열정이 멋졌다. 솔직히 어느 누가 덩샤오핑의 심한 변비까지 알 수 있을 것인가(p.49). 일반적인 지식으로는 이러한 것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덩샤오핑의 변비는 정치적 영향과 비례한다는 것도 말이다. 솔즈베리가 이 책의 내용 전개의 근거로 삼아 쓴 것은 방대한 참조서, 인터뷰, 그리고 실제 자신이 목격한 것을 토대로 썼다. 그는 현대 중국을 기초를 닦은 사람이 마오쩌둥이며 현대 중국을 발전시킨 사람은 덩샤오핑이라고, 이들이 통치한 40년간을 황제 통치 기간으로 보았다.이 책속에는 우리나라와 관련된 일들이 서술되어 있었다. 그것은 남한과 북한의 전쟁을 말했다. 솔즈베리 그가 아무리 뛰어난 저술가라고 해도 그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가 한 인터뷰 중에는 소련에게 적의를 품고 있던 중국인들이 미국인인 그에게 소련이 한국전쟁 때 항공 지원을 약속했다가 배신했다고 증언했는데, 이 거짓 증언의 내용은 책속에 들어 있었다(p.180). 모든 일은 백짓장 한 장 차이라고 했던가? 한 번의 왜곡이 수많은 사람을 다시 왜곡한 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분명이 한국전에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 그는 왜곡된 진실을 믿게 되었을 것이다.1960년대 초반, 마오쩌뚱은 자신의 후계자인 류사오치가 경제 효율을 중시하자 류가 혁명과 공산주의를 배반했다고 상상했다. 이제 문제는 중국 내부에 존재하는 인민의 적대적 모순, 주자파의 타도였다. 더욱이 당시 전 세계적인 전쟁분위기 속에서 중국은 남쪽에서 미국, 북쪽에서 소련의 위협에 직면했다(p.335). 자신의 모든 성취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한 마오는 문화대혁명을 추진했다(제 5부 광란의 소용돌이中).마오쩌뚱이 서양의 압제로 고통 받는 중국인들을 해방시키고자 노력한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추악한 마음으로 변한 것은 실로 안타까웠다. 자신의 한 경호원이 자기 마음에서 가져온 당밀 껍질 투성이에, 쓴맛이 나고, 딱딱한 빵 한 조각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던 (p.266) 사람이 문화대혁명 희생자들을 비극적인 죽음으로 몰아세운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내장이 다 짓이겨지고, 수없이 욕과 구타 속에서, 음식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어 코에 큐브를 꽂아 음식물을 공급받았다. 죽은 사인조차도 거짓으로 덮어,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알몸으로 죽어가게 한 (p.396~402)갈수록 추악해지는 마오쩌둥에 대해서 한없는 떨림을 느꼈다.가까우면서 먼 나라 중국, 중국과 우리나라는 비슷한 경험이 많은 것 같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통일이 되지 않았지만 통일을 바라는 마음에 전쟁을 치렀고, 중국도 20여 년간의 전쟁을 통해 원하던 통일을 결국 이뤄냈다. 그리고 중국의 천안문 사건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광주학생운동이 그렇다.천안문사건, 그것은 중국 사람들의 민주화 시위를 중국정부가 무력으로 진압하며 일어난 유혈사건으로 사실 이건 민주화라고 하기 보다는 중국 정부의 개혁 시행 후에 쌓이고 쌓인 문제점이 터지게 된 것이다. 1989년에 급진 개혁주의자로 알려져 학생들의 추앙을 받던 호요방이 죽은 소식이 퍼지자 북경대 학생들은 보수파를 비난하는 홍보를 하고, 그의 장례식에 수십만 학생들과 시민들이 오면서 시위가 시작된다(p.611~615). 학생들은 단식투쟁에 들어가고 시민 백만 명이 모이는 시위를 벌였다(p.620~621). 얼마 후 리펑과 자오쯔양 사이의 균열을 눈치 챈 학생들은 단식투쟁을 취소하였지만, 덩샤오핑은 평화적인 해결을 거부하였다(p.625). 이로써 피의 일요일이라 불린 천안문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정부는 광장에서 죽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주장했지만, 나날이 희생된 인민 해방군의 숫자가 늘어가게 되어 아마 베이징에서 1000명~2000명, 천안문에서 300여명 정도가 죽었다고 추청했다(p.635). 그렇게 이 계엄령은 이로부터 7개월이나 더 지속되었다.
    인문/어학| 2011.10.11| 3페이지| 1,000원| 조회(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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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릉도원(레포트)
    1. 시인 도연명진(晉)나라 때의 대표적 시인으로 당나라 이후 육조(六朝A) 최고의 시인이라 불리는 도연명은중국문학을 통틀어 가장 조화 있고 원만한 특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데에 이론을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큰 벼슬을 지낸 적도 없고, 뛰어난 업적이나 권력을 잡은 적도 없고 그저 몇 편의 시와 산문이 있는 정도이지만 오늘날까지 빛나는 존재이며, 후대의 많은 시인묵객 들에게 가장 고귀한 인간성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생활 역시 시처럼 단순해서 보다 화려하고 복잡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외경심을 주고 있다. 오늘에 그가 차지하는 위치는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의 바로 그 모습이다.도연명은 특이한 중국 사람의 교양을 대표하고 있다. 육체적인 사랑도 지나치지 않게 절제하며, 또 그렇다고 금욕주의자도 아니며, 관능적인 아름다움과 고고한 정신적 향기까지 잘 어우러져 있다. 가장 이상적인 철학자는 여성의 모든 아름다움을 잘 알지만 무례하지 않고, 인생을 아주 사랑하지만 절제할 줄 알고, 세속적인 성공, 실패가 다 부질없음을 알아 초연하지만 그렇다고 속세를 무시하거나 적대시하지 않는 사람이다. 도연명의 인생은 그의 시처럼 자연스럽고 꾸밈이 없었다.여기 그가 관직을 사직하고 나오며 그 유명한 ‘귀거래사’를 지었다. 그 후 여러 번 관직의 권유도 거절하고 농사를 지우며 살아갔다. 그는 이렇게 근심 없고 슬픔 없는 평범한 농부처럼 세상을 살다 죽었다. 그가 남긴 몇 편 안되는 시나 산문을 보면 완벽한 자연스러움과 수속당하지 않는 자유로움에 도달한 조화 있는 삶을 볼 수가 있다.대표작으로 405년 평저 태수직을 그만두며 썼던 ‘귀거래사’에는 인생에 대한 위대한 사랑이 표현되어있다. 시 외의 산문 작품으로는 , 등이 있다.2. 무릉도원 줄거리동진(東晉) 태원 [동진의 9번째 왕, 효무제 (사마요)의 연호, 376-396]때, 시인 도잠(陶潛:자는 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어느 날 한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한참을 가다 보니 물 위로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오는데 향기롭기 그지없었다. 향기에 취해 꽃잎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앞에 커다란 산이 가로막고 있는데, 양쪽으로 복숭아꽃이 만발하였다.수백 보에 걸치는 거리를 복숭아꽃이 춤추며 나는 가운데 자세히 보니 계곡 밑으로 작은 동굴이 뚫려 있었다. 그 동굴은 어른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는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넓어지더니, 별안간 확 트인 밝은 세상이 나타났다.그곳에는 끝없이 너른 땅과 기름진 논밭, 풍요로운 마을과 뽕나무, 대나무밭 등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두리번거리고 있는 어부에게 그곳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으며, 얼굴에 모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어부가 그들에게 궁금한 것을 묻자,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우리는 조상들이 진(秦)나라 때 난리를 피해 식구와 함께 이곳으로 온 이후로 한번도 이곳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지금이 어떤 세상입니까?" 어부는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고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며칠간을 머물렀다. 어부가 그곳을 떠나려 할 때 그들은 당부의 말을 하였다. "우리 마을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그러나 어부는 너무 신기한 나머지 길목마다 표시를 하고 돌아와서는 즉시 고을 태수에게 사실을 고하였다. 태수는 기이하게 여기고, 사람을 시켜 그 곳을 찾으려 했으나 표시해 놓은 것이 없어져 찾을 수 없었다. 그 후 유자기라는 고사(高士)가 이 말을 듣고 그곳을 찾으려 갖은 애를 썼으나 찾지 못하고 병들어 죽었다. 이후로 사람들은 그곳을 찾으려 하지 않고, 도원경은 이야기로만 전해진다.3. 동양의 무릉도원 그리고 서양의 유토피아인간이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곧 이상향을 동양에서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 했지만, 서양에서는 유토피아라고 불렸다.무릉도원과 유토피아는 모두 ‘현실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를 일컫는다.
    인문/어학| 2011.10.11| 2페이지| 1,000원| 조회(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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