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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명이 기억- 프레스터 존 편 감상문 및 나레이션
    - 목 차 -1. 다큐 문명의 기억 제 3부 – 프레스터 존 편 나레이션(p. 2~5)2. 다큐 문명의 기억 제 3부 – 프레스터 존 편 감상문- 서론 p. 6- 본론 p.6~7- 결론 p. 8매 주말 마카오의 한 성당 앞에서는 포르투갈의 전통 춤 공연이 펼쳐집니다. 이 웅장한 성당은 500년 전 포르투갈인들이 지은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이국적인 문화를 가진 마카오, 그 이면에는 비극의 역사가 있습니다. 1553년 포르투갈이 마카오를 점령하므로써 유럽의 아시아 지배는 시작됐습니다. 아시아로 향했던 유럽의 역사, 그 것은 하나의 믿음에서 출발했습니다. 동방의 존이라 불리던 기독교 사제이자 왕이 있다는 믿음. 유럽은 그를 사제왕 존이란 뜻으로 프레스터 존이라 불렀습니다. 프레스터 존을 찾기위해 유럽이 그렸던 지도, 그 한장의 지도가 동양과 서양의 운명을 갈라놓았습니다.`봄이 되면 중국 남쪽 바다는 아시아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바다를 건너 이들이 가려는 곳은 메이저우도라는 작은 섬입니다. 이 섬은 바다의 수호신인 마조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많은 신도들이 찾아오는 이 날은 바로 마조의 탄생일입니다. 바다의 마귀를 물리치고 조난당한 항해자를 구출해낸다는 바다의 여신 마조, 중국의 뱃사람들로부터 시작된 마조신앙은 현재 아시아 전역에 퍼져있습니다. 오래 전 부터 중국인들은 마조여신이 자신을 지켜주리라 믿고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두려움없이 바다로 나아갔던 중국인들, 그들은 얼마나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을까요?변호사이자 고지도 수집이 취미인 류강씨는 틈만 나면 골동품 가게를 찾아 고지도를 들여다 봅니다. 십년 전 그가 산 고지도 한장이 세계적인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문제의 지도는 1418년 명나라 때 그려진 세계지도를 약 300년 후에 필사한 지도입니다. 천하전여총도라는 제목의 이 지도에는 의문스러운 점이 많습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에 아메리카 대륙을 그려넣은 세계지도, 지도의 비밀은 태평양 한가운데 숨겨져 있습니다. 600년 구세주라 여겼습니다. 유럽이 애타게 찾던 프레스터 존,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요?터키의 샨르우르파, 이곳에서 프레스터 존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샨르우르파는 하느님의 선지자인 아브라함의 성지로 알려져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슬람에서도 선지자로 추앙받는 인물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슬람 신자들이 성지순례를 위해 이 곳을 찾습니다. 이슬람 교도들은 이 동굴에서 아브라함이 태어났다고 믿습니다. 이 곳은 원래 기독교도들의 땅이었습니다. 이슬람 세력을 막는 기독교도들의 굳건한 요새였습니다. 그러나 1144년, 샨르우르파는 이슬람 세력에게 함락되고 맙니다. 유럽에는 공포가 휘몰아 쳤습니다. 샨르우르파 함락 후, 유럽에 프레스터 존의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가합창으로 유명한 이 수도원에 프레스터 존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수도원에는 한 사람의 뼈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수도원을 설립한 오토 주교입니다. 오토 주교는 동방의 사제왕 프레스터 존의 존재를 유럽에 최초로 알린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프레스터 존을 처음으로 언급했습니다. 책에는 샨르우르파 함락 후, 유럽이 충격에 빠져 있을 때 레바논의 주교가 교황청에 보고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방에 네스토리우스파가 세운 왕국이 있는데 그 나라의 왕인 존이라는 사제, 그가 예루살렘을 돕기위해 왔다가 티그리스 강에 막혀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사제왕 존, 즉, 프레스터 존이 네스토리우스파라는 사실은 유럽을 놀라게 했습니다. 네스토리우스파는 어떤 존재였을까요? 그 기억은 터키의 에페스에서 시작됩니다. 에페스는 성모 마리아가 생을 마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곳, 성모 마리아교회에서 네스토리우스파가 탄생했습니다. 431년 이 곳에서 기독교 역사상 가장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이 곳에서 열린 제 3차 공의회에서 당시 콘스탄틴 주교였던 네스토리우스는 마리아를 신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네스토리우스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이단으로 내몰려 파문당했습니다. 네스토리우스는 머나먼 동방으로 떠났.에티오피아의 신년 축제에는 전국 각지의 성직자와 신도들이 모입니다. 4세기경 시리아에서 건너온 기독교를 기반으로 에티오피아의 기독교는 시작되었습니다. 유럽과 단절된 상황에서 에티오피아는 그들만의 독자적인 기독교를 천년 간 지키고 있었습니다. 유럽은 바로 이 나라가 프레스터 존의 왕국이리라 믿었습니다. 프레스터 존을 찾는데 가장 먼저 앞장선 것은 이베리아 반도의 포르투갈이었습니다. 포르투갈은 이슬람과의 투쟁 속에서 탄생한 나라입니다. 이 수도원은 포르투갈 그리스도 기사단의 거점이었습니다. 유럽에서 기사단은 십자군 전쟁 때, 실제 전투에 나섰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수도사이자 전사로써 이슬람과의 투쟁에 앞장섰습니다. 이 그리스도 기사단의 단장이었던 엔리케 왕자가 프레스터 존 원정대를 꾸렸습니다. 엔리케는 바닷길로 프레스터 존에게 가기위해 포르투갈 땅 끝 사그레스에 전문적인 항해술을 배울 수 있는 항해학교를 세웠습니다. 항해에 동참할 사제, 선원, 지도 제작자등이 모여 탐험에 나서기 위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사그레스 항해학교에서 만든 최고의 걸작은 배였습니다. 큰 삼각돛을 단 범선, 카라벨 선이라 불리는 이 배는 아랍의 기술인 삼각돛을 달았습니다. 삼각돛을 달면 맏바람이 불때도 항해를 할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은 이 배를 타고 바닷길을 따라 프레스터 존을 찾고자 했습니다. 동방 무역으로 번영을 누리던 베네치아, 베네치아의 지도제작술은 당시 유럽 최고 수준을 자랑했습니다. 포르투갈은 지도 선진국 베네치아에 세계지도를 그려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베네치아의 한 수도사가 그린 세계지도, 베네치아의 모든 지식을 동원해 완성시킨 이 지도는 이 곳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수도사의 이름을 따서 프라마우로 지도라 불리는 이 지도는 남쪽을 위로 두는 아랍식 제작방식으로 그려졌습니다. 놀랍게도 위쪽에 그려진 아프리카에는 어떤 유럽인도 가보지 못한 남쪽 끝 모습까지 그려져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최남단 희망봉을 최초로 그린 유럽의 지도입니다.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동쪽 해안가 에티오피아여정이 이 한장의 지도에 모두 담겨있습니다. 최초의 근대 지도로 평가받는 이 지도는 탐험과 실측을 통해 대륙의 해안선이 정확히 그려져 있고 특히,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아시아로 들어갈 수 있는 바닷길이 자세히 그려져 있습니다. 포르투갈은 이 지도를 들고 인도양의 끝, 말라카까지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인도양과 태평양의 경계인 말라카는 동서교역의 관문입니다. 일찍이 중국의 정화의 함대가 말라카를 거쳐갔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떠나간지 100년 만에 포르투갈이 이 땅을 차지했습니다. 매년 12월 말라카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축제, 이 들은 500년 전 이땅에 들어온 포르투갈의 후손들입니다. 유럽은 아시아로 들어오는 길목인 말라카를 손에 넣음으로써 본격적인 대항해 시대의 막을 올렸습니다. 중국이 바다의 문을 걸어 잠구는 동안 동방의 기독교 왕을 찾아 바다로 나왔던 유럽, 그들이 탄생시킨 한 장의 지도가 결국 동서양의 문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문명의 기억 3부 – 프레스터 존 감상문>- 프레스터 존 전설이 낳은 유럽 정치.문화.경제과학적 산물의 결정체, 지도 -–사실 KBS 방송국에서 다큐 특집으로 방영된 4부작 다큐인 문명의 기억을 보기 전에 지도란 그저 지구촌 곳곳의 왕래를 용이하게 하는 하나의 도구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다큐를 보면서 지도의 존재에 대해 그 간 단순한 도구로써 바라봤던 내 자신이 은연 중에 부끄러워짐을 느꼈다. 현재 제3외국어를 학습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감상문의 소재 채택에 있어서 특히, 이 4부작 중 포르투갈의 대항해 시대 개척에 많은 초점을 맞춘 제 3부, 프레스터 존 편에 눈길이 갔던 점은 자명한 사실이었고 다큐를 보고나서 일말의 고민 없이 선택을 하게 되었음을 밝힌다.학교에서 교양 수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포르투갈. 브라질사에서는 단편적으로 포르투갈과 브라질을 중심으로 그 역사를 조명하므로 솔직하게 말하자면 다큐 감상 전, 내 머릿 속에는 프레스터 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했다. 이 전에 단순히 포르투갈이 이베리아 반도 끝자락에 여정의 기반을 닦은 또 하나의 중요인물인 포르투갈 해상 과학의 창시자 엔리께 왕자의 업적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엔리께 왕자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낸 사그레스의 항해학교는 당시 항해를 좀 더 과학적으로 하기 위한 천문학, 지도학, 항해학이 삼위일체가 되어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나침반을 이용한 지도라는 결과물을 도출해 내고 이 후 포르투갈은 한세기를 풍미한 강성대국으로 역사의 한자리를 장식하게 되었다. 이 나침반의 도움을 받은 전과학적 지도는 프레스터 존을 찾기위한 동방여정을 통해 아프리카 최남단의 희망봉을 거쳐 아시아로의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게 되고 실제 항해를 통해 얻은 측정기술로 지도는 이른바 지리과학사에 남을 만한 비약적으로 발전을 해 당시의 고부가 가치를 지닌 최고의 과학결정체로 진화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프레스터 존 전설을 과학적 지도의 창조에만 기여를 한 것일까? 필자는 확고하게 아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우선 포르투갈 내적으로는 항해로 인하여 국가 전반적인 가장들의 부재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그로인해 포르투갈 대표문화인 파두(Fado)가 탄생하게 된다. 멀리 떠난 남편, 연인을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인 파두(Fado)는 우리네의 망부석 설화에 견줄 수 있겠다. 또 외적으로는 비록 서양열강의 아시아 침략의 발단이 되었다는 점, 극단적으로 말하면 갑과 을의 관계로서의 교역이었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할 수 없지만, 포르투갈은 그간 지중해를 통해 동방무역을 독점하고 있던 이탈리아를 뒤로한 채 새로운, 좀 더 다양한 루트 개척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동서양이 이 전과는 달리 좀 더 빈번한 교류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지도와 프레스터 존의 존재는 단순히 경제, 정치적 측면 혹은 과학적 측면으로의 접근만 할 것이 아니라 문화적 측면에서의 기여도 역시 상당했다고 볼 수 있다. 단적인 예로 마카오의 독특한 문화는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좀 더 풍부한 문화의 다양성을 채감하게 해주었고, 포르투갈선단이 거쳐간 일본을 통해 한글에서는 빵(Pão)이
    독후감/창작| 2012.10.20| 8페이지| 2,500원| 조회(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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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죠다 악바르 감상문
    처음 ‘조다 악바르(왕의 여자)’라는 영화를 접하기 전에도 발리우드의 명성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으며 몇 몇 인도영화를 봐왔던 터라 영화감상을 하는데 있어 크게 거부감은 들지 않았지만 여타 인도영화가 가지고 있는 틀에 박힌 공식과도 같은 강한 뮤지컬적인 색채에 대한 선입견은 쉽사리 떨쳐낼 수 없었다. 영화의 스토리적 요소가 사실에 기반을 둔 역사를 다룬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러닝타임이 장장 3시간이라니, 대체 어떤 영화일까하는 호기심이 영화감상 전부터 크게 일어났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스토리에 빠져들어 러닝타임 전체를 몰입해 감상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 영화가 정말 대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렇다면 이 영화에 대해 어떠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나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에 걸맞게 문학도 그나름의 적합한 형태로 변화한다고 굳게 믿고있다. 이전 세대에 문학은 단지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혹은 구전을 통해서 전해 왔다면 요즈음엔 시청각적 요소가 가미된 영화, 드라마등의 영상물의 형태로 진화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로인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인도의 역사를 간결하게 그리고 임팩트 있게 독자들, 즉 시청자들에게 전달한 다는 점에서 영화 ‘조다 악바르’는 조다와 악바르의 사랑이야기가 스토리의 구심점이 된다 하더라도 영화 그 자체가 역사임과 동시에 픽션이라는 영화의 특징이 가미된 한편의 인도 무굴제국에 대한 역사소설의 축소판이라 볼 수 있다.영화는 무굴제국의 3대 황제인 악바르 대제가 14세의 나이로 즉위한 시기를 기점으시작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그리고 인도역사의 찬란한 역사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무굴제국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그 기원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당시 지구상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초강대국이었던 무굴제국은 중앙아시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몽골족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고 한다. 칭기즈칸 등장 이후 유라시아를 종횡무진하며 거대한 제국을 이루었던 몽골족의 세력은 14세기 중반에 이르러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이 후 중앙아시아 지역은 티무르 제국의 등장등 격변의 시기를 거치게 되고 분화된 토호국 중 하나였던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동부에 자리한 페르가나의 영주였던 악바르의 할아버지인 바부르가 무굴제국을 창건하게 된다. 역사상 그 어떤 창건주의 삶을 보아도 파란만장하지 않은 삶은 없었던 것처럼, 바부르 역시 12세에 즉위하게 되고 이 어린 영주의 땅을 차지하고자 하는 숙부뻘되는 수 많은 친인척들과의 마찰과 군소 전쟁을 겪게 된다. 하지만 바부르는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고 고군분투한 끝에 옛 티무르 제국의 수도였던 사마르칸트까지 점령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오래지 않아 산산조각 나게 되는데 바로 애써 점령한 사마르칸트도 빼앗기고 휘하 귀족들의 반란으로 고향인 페르가나까지 빼앗기는, 그야말로 ‘집도 절도’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렇게 뺏고 빼앗기를 거듭한 끝에 자신의 터전이었던 페르가나에서 조차 버티지 못한 바부르는 1504년에 군대를 모아 만년설로 뒤덮인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카불에 새로이 정착하게 되는데 카불은 당시 중앙아시아의 주요 무역로였기에 훗날의 무굴제국 건립을 하는데 있어서 상당히 안정적인 기반을 닦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사마르칸트로의 길이 막힌 바부르에게 인도로 향한, 과거 자신의 선조들이 차지했던 티무르 제국의 영토였던 인도로 눈을 돌리게 된다. 어쩌면 무굴제국의 건립,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아우르는 거대한 국가의 탄생은 파란만장한 바부르의 인생을 대변함과 동시에 정치, 군사적인 대립이 난무하는 중앙아시아에 다시한번 그 무질서를 종식시키기 위해 필연적으로 탄생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영화는 선대황제 바부르와 그의 아들 후마윤을 거쳐 갓즉위한 악바르 황제의 유년기에유부터 시작을 하게 되는데 영화 초반부부터 끊임 없는 힌두와 이슬람의 대립과 전투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북부인도를 점령했을 때, 힌두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었다.그리고 힌두인들 왕국의 연합공격을 줄 곧 받았는데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종교의 차이에 그 기저를 두고 있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조다와 악바르의 결합으로 대변되는 힌두와 이슬람의 융화가 아닐까 한다.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과 인도 북부지역에 걸친 거대한 영토를 수복하는 과정에서 당시 종교의 대립은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것 이상으로 심했음은 역사기록에 나와 있듯이 자명한 사실이다.영화의 주요 초점은 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는 영화이자 그 주인공이 무굴제국의 번영기의 황제였던 점을 감안해보면 당시 종교 대립과 악바르대제가 주창했던 정치 이념에 맞추어져 있다는 인상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 때 악바르는 북부인도를 되찾고 대다수 백성인 힌두교도의 지지를 받기위해 힌두교도에게만 내리던 인두세를 폐지하여 힌두교도들에게도 충성을 받아냈던 것이다. 당시 인두세는 힌두교도들의 나라에도 있었지만 다른 이슬람 국가들은 자신들의 종교인 이슬람교를 안믿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법이 아닌 그들의 법으로 통치했었다. 그것이 힌두인들에게는 차별로 보였음은 당연하지 않았을까? 그러한 종교적인 이유로 힌두인들과 이슬람인들의 결합은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진척이 없었고 악바르는 자신의 지배하에서는 이러한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야 했기 때문에 그 차별의 종식을 선언했던 것이다.그 결과 힌두인들의 충성까지 얻은 악바르는 중부 인도까지 무굴제국을 넓혀나갔던 것인데 한편으론 군사적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했던 힌두교도들을 소수의 이슬람 병사들로만으로는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악바르대제가 인정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당시 무굴제국의 정치형태는 철저한 봉건제로 지방의 제후국이 수백개나 되었고 그들은 무굴제국에 충성하는 댓가로 세금을 내는데 그쳤는데 그 이유는 세금만 내면 그들은 별도의 충성을 요구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철저히 자신들의 왕국에서 종교적 자유와 더불어 자치권을 인정받았던 것이다. 이것은 악바르가 인정한 제도였고 어떻게 보면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는 자신의 정치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던 것이다.이러한 악바르 대제의 종교적 융화 및 관용을 보여준 다른 하나의 사건이 바로 영화의 주 내용인 힌두교 부족국가 아메르의 왕이 자신의 딸 조다를 당시 종교적 이유로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던 이슬람의 무굴제국의 황제인 악바르 대제에게 시집을 보낸 것이다. 처음 아메르의 왕이 힌두동맹의 결속을 위해 같은 힌두교도인 황제 아크바에게 정략결혼을 시키려 했지만 자신의 아들이 왕위 찬탈을 위해 역모를 꾀하자 전쟁으로부터 그 자신의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결국 힌두 동맹을 깨고 악바르대제와 손잡는 대목은 분명 정치적인 이유에서의 정략결혼임은 마찬가지이나 조다 공주와 악바르 대제간의 혼전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악바르 대제는 조다가 내건 조건들을 수용하며 단지 정략결혼이 아닌 문화상대주의에 입각한 자신에게 걸맞는 포용력을 보여준다. 이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라 사료된다. 타문화 수용에 있어서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지금까지도 그리 이타적이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말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예를 찾는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남아 이주 노동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한 국가의 황제의 지위에 있으면서 힌두스탄이라 일컫는 방대한 지역의 통일을 꾀했던 악바르 대제가 정치적인 이유를 제외하고 무조건적인 문화 상대주의를 표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유가 어떠하건 상대주의적 견해를 가지고 그 이념을 실천했다는 점에서는 정말 대인배적 면모를 과감하게 보여준 사례라 생각한다.영화를 보고나서 좀 더 무굴제국에 대해 알고 싶어 여러 자료들을 찾아본 결과 악바르 대제는 이러한 종교적 관용의 실천 이외에도 광대한 제국의 통합 후 자신의 다재다능함처럼 여러방면에서 무굴제국을 흥성시키고자 했다고 한다. 군사, 정치, 종교적인 개혁뿐 아니라 바로 문화강국을 꿈꾸웠던 것이다. 그 자신이 예술가요, 장인이자 신학자, 발명가로서 능력을 발휘했는데 산스크리트 고전을 페르시아어로 번역하는 사업을 장려했고, 신하들에게 문헌 사본을 하사했으며, 예수회 선교사들이 가져온 유럽의 회화 작품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에 따라 궁정 화가들은 페르시아와 인도 양식에 투시적 원근법을 도입한 사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인 그림, 즉 무굴회화를 발전시키기도 했다.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무굴제국의 6대 황제인 아우랑제브가 그 전통을 타파하며 힌두세인 인두세를 부활시켰고 많은 제후국들이 무굴제국에 반항을 시작했다고 한다. 인두세와 종교적 자유에 대한 인도인들의 반항때문에 거대 제국, 무굴제국은 영국과 프랑스에 의하여 각개격파당하면서 해체되어 역사에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이러한 사실들을 추가적으로 알게 되면서 영화에서 그려졌던 악바르 대제의 선정, 두 종교간의 화합이 오랜기간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자손에 의해 그가 이룩한 거대한 제국이 폐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점이 정말 아쉬움에 남았다. 이를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불멸의 부귀영화란 존재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반대로 그 어떤 국가이던지 간에 칸트의 정반합의 논리에 의해 흥망성쇠의 거듭되는 순환 속에서 역사는 씌여지는 것이 아닐까한다.비록 Jodhaa Akbar라는 영화 한편을 본다하여 알 수 있는 무굴제국의 역사는 어찌보면 단편적이고 제한적일 수 있지만, 이를 통해 일부분일 지언정 해당 역사의 전반적인 개관을 파악하고 흥미를 갖는데에 러닝타임 3시간은 부족함이 없는 듯 했다. 내가 영화를 보고 무굴제국의 역사에 흥미를 갖게되어 그 부분에 대한 자료조사등의 공부를 했듯이 다른 이들도 그렇게 할 수 있지않을까란 생각이 들면서 그저 영화 한편이 아닌 때론 역사공부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전체요리가 될 수 도 있고, 때론 공부 도중 스트레스 해소겸 공부에 곁들일 수 있는 가니쉬도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개인적으로는 여지껏 관심 밖이었던 인도 역사에 대해 흥미를 갖고 미약하나마 해당 역사에 대해 지식함양을 할 수 있었던 유익한 계기였다.
    독후감/창작| 2012.10.20| 4페이지| 2,000원| 조회(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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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네카의 행복론 독후감
    세네카의 행복론을 읽고- 짧은 인생에 대한 고찰 -이 책은 스토아 철학파인 세네카가 인생을 바라볼 때 느끼는 의견을 집필한 수필 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짧음과 마음의 평정, 섭리 마지막으로 행복한 삶에 대해서 쓰는데 각 장을 통해서 세네카의 의견과 지혜, 비유 등을 엿볼 수 있었다. 신기했던 점은 세네카가 쓴 당시가 로마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시대에 책을 읽는 내가 그의 생각에 대해 크게 비판하지 않으면서 읽었던 점에 있다. 그의 생각이 지금 사람들에게도 깊은 의미를 줄 수 있다는 점, 지금 현대에도 적용할 수 있는 철학관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두리뭉실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말 때문에 그의 생각이 확실하게 무엇인지에 대해 짚는 것이 어려웠다. 또한 철학적인 딱딱한 내용과 더불어서 단조롭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난 세네카의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 삶에 대해 다시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인생의 짧음에 관해 얘기한 첫 번째 장은 내게 깨달음을 주었다. 학업에 치이고 또 앞으로 취업에 치일 내가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를 서술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세네카의 주장은 우리가 시간을 헛된 것에 쓰고 있고 또 그것에 대해 자각하거나 크게 아까워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나 또한 여태까지 인생을 살아가면서 전전긍긍하고 걱정했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이었고 실제로 걱정한 것에 비해 그 일이 쉽게 해결됐었음을 깨달았다.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사용한 시간보다 노력하지 않고 그저 걱정한 그 시간이 더 많았음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내 삶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세네카는 ‘인생을 너무 쉽게 보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세네카의 직업은 그저 생각하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철학자이기 때문에 생각을 하는 것이 곧 그가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돈을 벌어야하고 간절해야할 이유가 있었는데 그러한 것들은 간과했다는 생각을 했다.첫 번째 장 이외에 내게 깊은 인상을 줬던 장은 ‘행복한 삶에 관하여’ 저술한 마지막 장이었다. 다른 사람이 인생을 왜 사냐고 내게 물어보면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 라고 항상 대답해왔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 등이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네카는 행복한 삶에 대해 어떻게 저술했는지 관심도 가지게 됐고 주의 깊게 읽었다. 세네카는 다른 전형적인 스토아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자연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또한 자신의 본성을 따르고 자신이 가진 것을 즐기고 자기에게 맞는 것보다는 더 원하지 않기를 주장했다. 우리를 자극하거나 놀라게 하는 것을 몰아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런 것들은 저속하고 깨지기 쉽고 해로운 쾌락이라고 표현한다. 이번 장은 나의 의견과 세네카의 의견이 가장 불일치한 장이었다. 그것은 행복에 대해 주관적인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한 스토아의 의견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도, 반대의견을 갖지도 않지만 그 후에 세네카가 주장한 것들이 내가 느끼기엔 바보 같고 오히려 인생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짧기 때문에 자신의 분수보다 높은 것에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그런 것이 헛되다는 생각보다는 역으로 인생이 짧기 때문에 그것에 더 간절히 매달리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본다. 내가 원하는 것을 꼭 갖고 누리는 것만이 행복이 아니라 그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자체로도 내 삶이 행복해 질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독후감/창작| 2012.04.06| 2페이지| 1,000원| 조회(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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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란츠 카프카 변신 서평 및 독후감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독후감가정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본적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정은 ‘따뜻함, 편안함’ 이라는 단어로 생각이 될 것 이다. 가정은 사회적인 관계들로 인해 상처받고 지친 몸과 마음을 위안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계들은 ‘주고받음’이 분명한 이해 타산적인 관계가 대부분인 반면에 가정이란 계산 적인 관계가 아니라 맹목적인 사랑이 넘쳐나는 곳이다. 또한, 가정은 꾸밈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고 자신의 약한 부분이나 숨기고 싶은 모습들도 거리낌 없이 내보여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사랑받을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어떤 어려움이 생기면 제일 먼저 생각나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존재이며 어떤 보답을 바라지 않고 함께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것들이 가정에서 우리가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끼게 해준다.하지만 「변신」에서는 그 의미가 다르다. 이 책의 주인공 잠자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그의 욕구, 기분이나 건강보다도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빚을 갚는 힘든 생활 와중에도 여동생을 위해 음악학교에 보내려는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잦은 출장과 불규칙적이고 나쁜 식사, 지속되지도 못한 인간관계와 같은 일에 대한 여러 가지 불만사항이 있었지만 회사와 집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지도, 가지지도 못한 그에게는 오직 가족 뿐 이였다. 가족들도 이러한 그를 인정해주고 가장으로써의 대우를 해주었지만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되면서 소름끼치도록 달라졌다.가족들의 달라진 태도가 비련 흉측한 벌레라는 모습 때문일까? 그의 외형과 함께 그레고르의 어떤 것들이 달라졌길래 가족들은 그레고르를 죽음으로 까지 몰아가게 된것일까. 또, 그레고르의 가족들이 생각하는 그는 무엇이였을까? 가족들에게 그레고르는 그저 자신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었을 뿐이였다. 그저 그레그로이고 한 사람의 오빠, 한 부모의 자식으로써 인정받은 것이 아닌 그들의 생존을 위한 도구와 같은 위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외형이 변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 모습이 되버렸으나 그들은 그의 존재의 부재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자신들을 생각하기에만 급급했다. 결국 그는 가족들에게 더 이상의 소득을 얻지 못하게 되버려 사람 대우 조차 받지 못하는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창고가 되버린 그의 방안에서 매일매일 숨어지내며 자신을 향한 가족들의 원망을 들으면서도 그레고르는 가족들을 위해 희생한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의감은 커녕 끝까지 가족들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한다. 그레고르의 가족사랑은 그저 일방적이었던 것이다.그래도 이 것을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요즘 뉴스나 신문을 보면 돈을 위해 부모를 죽이고 자식을 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이것 또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가족, 사회내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그 존재로써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누군가의 딸이고 엄마고 누군가의 선생이고 학생이고 이런 것을 다 접어두고 무엇을 잘하고 해야 하고 이런 것들까지 다 제외한 후에도 나라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내 존재는 과연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가정이라는 의미조차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의무, 책임을 다해야만 내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라면 가정은 안식처가 될 수 없다.하지만 만약 그레고르와 가족들간의 대화가 가능했었더라도 그레고르가 죽게 되었을까? 이 소설에서는 그레고르가 변하게 된 후에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말을 다 알아듣지만 가족들은 그레고르의 행동이나 괴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러한 치국으로 까지 치닫게 된 것일까. 그가 가족들과 대화를 할 수있어 가족들에 대한사랑을 표현할 수 있었다면 가족들은 그를 가족으로 써 인정하고 그는 계속 사랑 받을 수 있었을까?왜 하필 그레고르는 벌레가 된 것인가. 흔히들 벌레는 거의 쓸모없고 혐오스러운 존재이며 가장 어둡고 지저분한 곳에서 생활하는 걸로 생각한다. 그레고르가 이러한 존재로 바뀜으로써 소설을 더 극단적인 형태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벌레는 그저 ‘그레고르가 괴물로 바뀌었다.’ 라는 의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현대인의 불안을 표면화시킨 것 같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미래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불만이나 불안을 느낀다. 혹시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지는 않은지, 나중에 그런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무엇을 잘하거나 못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이것은 현대인의 실존적 차원의 문제나 존재로써의 가치를 묻고 있는 것 같다.
    독후감/창작| 2012.04.06| 3페이지| 1,000원| 조회(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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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큐의 경제학 5판 제1장 연습문제 및 응용문제 풀이. 평가A+최고예요
    맨큐의 경제학제 1장“경제학의 10대 기본원리”복습문제&연습문제[Chapter 1]복습문제(Questions for review)1. 단기적으로 인플레이션과 실업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인플레이션과 실업 사이에는 단기적으로 상충관계가 있다.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서는 실업 증가라는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통화량을 줄이면 이에 대응하여 가격이 조정되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단기적으로 실업이 증가한다.2. 정책 담당자들은 왜 유인구조를 고려해야 할까?▶ 정책을 수립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정책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유인구조(incentives)를 고려해야 한다. 본문에 있는 안전벨트의 예는 정책 시행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인구조가 정책에서 매우 중요하다면 정책대안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사람들이 운전을 조심스럽게 하기 위해서는 운전대에 칼을 달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제안은 황당하지만 유인구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3. 인플레이션이란 무엇이며 그 원인은 무엇인가?▶ 인플레이션이란 한 경제의 전반적인 물가수준이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인플레이션은 통화량이 지나치게 증가하기 때문에 발생한다.4. 국가 간의 무역은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게임과 왜 다른가?▶ 국가 간 무역은 승자와 패자가 있는 게임과는 다르다. 양자 모두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능력에 따라 특화하면 그 나라 모든 사람들의 이득이 증가하고, 국가 간에 재화를 특화하면 두 나라의 이득이 모두 증가할 수 있다.5. 시장실패의 두 가지 원인을 설명하고 각각의 예를 들라.▶·시장실패란 시장이 자유롭게 기능하도록 맡겨둔 경우,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실패의 이유는 외부효과나 시장지배력이다. 예를 들어 오염물질을 방출하는 기업에게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는다면, 경제적 후생이 감소할 것이다. 또 산업 내에 독과점기업이 있다면 효능에 의해, 사회 전체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이다.10. 여러분이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중요한 상충관계 문제 세 가지를 들라.▶ 우리 생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상충관계의 예로는 ‘수학 공부를 할까, 국어 공부를 할까’ 또는 ‘공부를 할까, 놀러갈까’와 같은 시간의 이용에 관한 상충관계의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남은 용돈으로 피자를 사 먹을까, 경제학 원론 책을 살까’ 하는 돈의 사용에 관한 상충관계 문제를 들 수 있다.응용문제(Problems and applications)1. 최근에 미국에서는 생활보호자에게 지급하는 보조금 중 일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지급하는 급여는 2년 이상 지급하지 못하도록 법을 개정했다.a. 이런 법 개정은 사람들의 근로 유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사람들은 2년 내에 직장을 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즉 평생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경우보다 근로유인은 증가한다.b. 이러한 제도 변화는 어떤 점에서 효율성과 형평성의 상충관계를 보여주는가?▶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보조금을 주지 않으면 그들의 소득이 0이 되기 때문에 소득의 분배는 불공평해진다. 그러나 이들이 적극적으로 직장을 구할 가능성이 높아져 경제의 효율성은 증가할 것이다. 결국 이 제도는 형평성을 저하시키는 대신 효율성의 증가를 가져온다.2. 당신이 친구와 농구 경기 내기를 해서 100달러를 땄다고 하자. 지금 그 돈을 다 써버리거나 연 5%의 이자를 주는 은행에 예금할 수 있다면, 지금 그 돈을 다 써버리는 기회비용은 무엇인가?▶ 1년에 5% 이자를 받을 수 있는 투자 기회를 포기하고 지금 100달러를 다 써버린다면 당신은 내년에 105달러를 쓸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한다. 돈에 시간가치가 존재한다는 개념은 주식이나 채권 같은 금융상품의 가격을 분석하는 재무이론(finance)의 기초가 된다.3. 미국의 사회보장제도는 65세 이상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이들 중 별도의 소득이 있는 사람은 그 소득액에 비례해서 연금 혜택이 줄어든다.a용)이 증가할지 감소할지 알아봐야 한다.헤르미온느 : 먼저 생산량 증가 때문에 증가되는 매출액과 추가 생산비 중 어느 것이 더 큰지 비교해봐야 한다.▶ 해리와 론은 모두 생산 측면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수입 측면도 생각해야 한다. 한 기업이 이익을 증가시키려면 생산비와 판매수입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헤르미온느의 말이 옳다.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데 들어가는 추가비용과 추가된 생산물을 판매해서 들어오는 추가수입을 비교해서 추가수입이 크다면 당연히 생산량을 증가시켜야 한다. 헤르미온느는 바로 한계적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6. 당신은 지금 휴가여행을 떠나야 할지 여부를 결정하고자 한다. 교통비, 숙박비와 같은 여행비용은 대부분 금액으로 표시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휴가여행의 이득은 심리적인 것이다. 당신은 이득과 비용을 어떻게 비교하겠는가?▶ 휴가의 경우처럼 어떤 선택에 따른 이득이 심리적인 것이라면 이득과 비용을 비교해서 그 대안을 택할지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이득을 파악할 수 있다. 한 가지 방법은 내가 휴가를 가지 않는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려하는 것이다. 예컨대 휴가를 가지 않는 대신 새 스키 장비를 장만할 수 있다면, 휴가와 스키 장비 중 더 좋은 것을 선택하면 될 것이다. 다른 방법은 휴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내가 몇 시간 동안이나 일을 해야 하는지 따져보고 일을 하는데 따른 심리적 비용과 휴가를 통해 얻은 심리적 만족을 비교해서 휴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7. 당신이 경영하는 회사가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지금까지 500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한다. 최근에 영업부에서 보고 하기를 경쟁 제품이 출시되어 예상 판매량이 300만 달러로 감소했다고 한다. 100만 달러만 더 투자하여 신제품 개발이 완료 된다면 당신은 신제품 개발을 계속하겠는가? 신제품 개발을 완료하기 위해 당신이 지불할 수 있는 최대금액은 얼마인가?▶ 당신이 투자한 500만 달러는 더 이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것은 야 한다.d. 강의 준비를 얼마나 충분히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교수▶ 강의 준비를 통해 강의의 질을 높일 수 있지만, 그 시간에 다른 연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e. 대학원에 진학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대학 졸업생▶ 대졸자의 연봉에 만족해야 할지, 대학원에 진학하는 데 소요되는 학비와 그 기간 동안 소득 상실에도 불구하고 대학원 졸업자로서 증가될 전문 지식과 연봉을 받아야 할지 선택해야 한다.9. 룸메이트는 당신보다 요리를 잘하고, 당신은 룸메이트보다 청소를 잘한다. 룸메이트가 요리를 전담하고 당신이 청소를 전담하기로 한다면 각자 요리와 청소를 하는 경우보다 시간이 절약될까, 더 걸릴까? 이와 같이 특화와 교역을 통해 양측이 모두 이득을 보는 국가 간의 사례를 제시하라.▶ 각자 잘하는 일을 특화하면 일을 더 빨리 끝낼 수 있다. 청소도 반반씩 하고 요리도 반반씩 한다면 당신과 룸메이트는 잘하지도 못하는 일에 시간을 소비해야하므로 특화할 때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국가 간에도 특화하여 교역을 하면 양쪽 다 이득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스페인 사람들은 옷을 잘 만들고 프랑스 사람들은 포도주를 잘 만든다면, 스페인 사람들은 옷만 만들고 프랑스 사람들은 포도주만 만들어서 교역하면 양쪽 모두 이득이다.10. 미국이 계획경제 체제를 채택하고, 여러분이 경제계획 최고책임자가 되었다고 가정하자. 여러분이 내려야 하는 무수히 많은 결정 중에 CD를 몇 장이나 생산해야 하고, 어느 음악가의 음악을 녹음해야 하며, 누구에게 배분해야 하는지 등이 포함된다고 하자.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필요한 CD 산업의 정보는 무엇인가? 미국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 관하여 어떤 정보가 필요한가? 당신은 이 일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기획자가 할 일은 엄청나다. 적절한 가수를 선정하여 적정량의 CD를 생산하고 원하는 사람에게 공급하려면 막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일단 CD 산업의 생산 기술과 비용을 알아야 하고, 모든 사람들이 어떤 음악과 가수를 좋아하는지도 파악해야 한다.정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면 제안된 정책으로 인해 형평성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 경제의 구성원 각자가 조금이라도 많은 몫을 할당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많은 의료 혜택을 누리는 대신 다른 혜택은 줄어들 수도 있다.b. “근로자가 해고되면 다음 직장을 잡을 때까지 실업수당을 계속 지급해야 한다.”▶ 근로자가 직장을 잃으면 형평성의 관점에서 그 사람이 다른 직장을 구할 때까지 실업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이것은 이 사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혜택이기 때문에 일종의 사회보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실직자들이 장기간 실직 상태로 있으면 그만큼 경제의 효율성은 낮아진다. 그리고 실업수당은 사람들을 실직 상태로 더 오래 남아 있게 만든다. 따라서 효율성과 형평성의 상충관계가 발생한다.13. 여러분의 현재 생활수준이 부모나 조부모가 여러분 나이에 누리던 생활수준에 비하여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라. 이런 차이는 왜 생겼는가?▶ 미국의 평균임금이 지난 35년간 2배 정도 증가한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생활수준은 부모님 세대보다 나아졌다고(조부모님 세대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 할 수 있다. 주요 원인은 시간당 생산 가능한 재화와 서비스 양이 많아졌다는 것, 즉 생산성이 증가했다는 데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산성의 증가로 소득이 증가했고 생활수준도 높아졌다.14. 국민들이 더 많이 저축하기로 했다고 가정하자. 은행들이 이 저축된 자금을 기업에게 대출해주고, 기업들은 이 자금으로 공장들을 새로 건설했다고 하자. 증가된 저축이 어떻게 생산성을 증가시킬까? 생산성 증가로 혜택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이 결과는 공짜 점심과 같은가?▶ 저축의 증가가 새 공장의 건축으로 이어졌다면 근로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설비가 많아져 생산성이 증가할 것이다. 생산성의 증가로 근로자와 고용자의 이득은 모두 증가할 것이다. 근로자는 더 높은 임금을, 고용자는 더 많은 투자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다. 사람들이 저축을
    경영/경제| 2012.03.26| 8페이지| 2,000원| 조회(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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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22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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