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사한국 현대문학사 작가 조사국어국문학과200816279윤채린신채호(申采浩, 1880년 12월 8일 ~ 1936년 2월 21일)본관은 고령, 호는 단재(丹齋)·일편단생(一片丹生)·단생(丹生)이다. 필명은 금협산인·무애생·열혈생·한놈·검심·적심·연시몽인 등이 있고, 유맹원·박철·옥조숭·윤인원 등을 가명으로 사용하였다1 생애1.1 생애 초기1.1.1 출생과 성장신채호는 1880년 12월 8일(음력 11월 7일)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어남리 도림리에서 신광식과 밀양 박 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8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 신성우를 따라 족향(族鄕)인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 고두미 마을로 옮겨와 할아버지의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9세에 자치통감을 배우고, 14세에는 사서삼경을 모두 마쳐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삼국지와 수호지를 애독하고 한시를 읊을 정도로 한문 실력이 높아졌다. 1895년(16세)에 첫 번째 부인 풍양 조 씨와 결혼하였으나 1909년에 어린 아들 신관일(申貫日)이 죽자 사실상 이혼하게 되었다.1.1.2 성균관 수학신성우는 친구이자 구한말 관료였던 신기선에게 신채호를 소개해 주었고 신채호는 신기선의 서재에서 많은 서적을 읽으며 개화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1898년(19세)에는 신기선의 추천으로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독립협회 활동을 하여 투옥을 당하기도 하는 등 이 무렵부터 애국계몽활동을 시작하였다. 1904년에는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성토하는 성토문이 성균관 유생들에 의해 작성되자 이에 연명하기도 했다.1.2 애국계몽운동1.2.1 언론 활동1905년, 신채호는 성균관 박사에 임명되었으나 다음날 사직하고 단발을 결행한 뒤 낙향하여 계몽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때 장지연이 신채호를 발견, 황성신문의 논설위원으로 위촉되어 다시 상경하였다. 11월 20일, 장지연이 을사늑약에 반대하는 시일야방성대곡을 발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신채호는 시일야방성대곡의 집필을 도왔으며 장지연이 투옥되자 그를 대신해서 황성특징을 1) 현실 지향과 점진성, 2) 평등, 포옹, 반귀족주의, 3) 미래지향열과 인습, 제도의 배제를 들 수 있다.이러한 김형원의 시작경향을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제재, 형식에서의 개방성. 그는 민주문예를 표방하고 왕후장상, 귀공자, 귀부인의 전유물이던 시를 서민에게로 이끌어오고자 했다. 서민에게 시를 끌어내리기 위해 그가 내세운 것이 제재나 형식의 개방성이었던 것이다. 2) 개성의 적나라한 표현이 되게 작품 쓸 것. 김형원은 낡은 문학의 속성으로 위선, 과장, 거드름 등을 들었다. 그는 본래 인간의 참모습은 숨김없이 자신을 제시하는 쪽에 있으므로 스스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어야 좋은 시가 된다고 생각했다. 3) 시인으로서 삼라만상의 대표자 구실을 할 것. 김형원은 시가 그 자체로서 존재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적어도 시는 해묵은 것을 지양, 극복하고 새 국면과 새 지평을 타개하는 길잡이가 될 게 요구되는 양식이었다. 이러한 새 지평을 타개하기 위해 그는 시인은 당연히 서민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새 시대의 시인, 곧 민주문예의 실천자는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예찬, 대변하는 작품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출처 네이버 오픈백과5 저서《석송 김형원 전집》출처 네이버 지식사전, 네이버 백과사전안확 (安廓, 1886년 2월 28일 ~ 1946)호는 자산(自山). 운문생(雲門生)이란 필명과 팔대수(八大搜)라는 호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우대마을(서울 성내의 서북쪽에 위치하는 지역, 곧 인왕산과 가까운 지역)의 안씨(安氏)집안 태생으로 중인 출신이다.1 생애1895년 서울 수하동 소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교육받고, 1896년 독립협회가 만민공동회를 개최할 때 그 모임에 참여하여 연설지도를 받기도 하였다.소학교를 마친 뒤 당시 유행하던 서구 문명을 소개하는 책들을 보며 사상적 기반을 다져나갔다. 특히 유길준(兪吉濬)의 『서유견문(西遊見聞)』과 양계초(梁啓超)의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을 통해 서구 문물과 서양의 정치사 소장으로부터 5·10 총선거를 관리하기 위한 중앙선거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다.고려대 총장 재임 중이던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납북되었지만 이후 북조선에서의 공식적인 활동 기록은 없으며, 1950년 9월 황해도에서 미군 폭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행방을 알 수 없던 1953년 3월 25일 고려대학교에서 《조선유학사》로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이는 국내 대학 최초의 박사 학위 수여 기록이다.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현상윤의 손자이다. 현재 그의 유해는 평양시 룡성구역에 있는 '재북인사의 묘'에 안장되어 있다.2 사후?친구야 아느냐? 등의 그의 초기시는 4?4조의 음수율을 기조로 하는 개화가사형의 작품들이다.그 주제의식은 다소 주정적이고 개아적인 것들로, 시상을 어느 정도 내면화시켰다는 특징을 지닌다. 후기로 가면서 그의 시는 ?웅커리로서? 등에서 볼 수 있듯 정형률을 벗어나 점차 자유시형에 가까워져 간다. 즉 그의 후기시는 1920년대에 본격화되는 자유시에 이르는 과도기적 성격을 지니는 것이다. 이 밖에 그는 러시아 산문시의 영향으로 산문시를 쓰기도 했고, 때로는 시조형의 시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의 소설 역시 장르적 관점에서 의미있게 검토될 수 있다. 특히 문제될 수 있는 것은 1914년에 발표된 단편소설 ?한(恨)의 일생?인데, 김동인의 단편보다 앞섰다는 점에서 소설사적 의미를 띤다.이 작품은 3인칭 관점과 주인공의 행동이 기능적으로 짜여 있어 단편으로서의 구성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즉 신문학 초기에 있어서 단편소설이라는 장르개념과 관련하여 일정한 의의를 이 소설에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3 약력- 평양육영학교- 대성학교- 보성중학교- 일본와세다대학교 - 사학- 고려대학교 총장 역임4 작품『한국유학사 (韓國儒學史)』출처 위키피디아 백과 사전이익상 (玄相允, 1893년 ~ ?)1893년(고종 30)∼? 독립운동가·교육가.1 생애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났다. 보성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니혼 대학 신문과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일본 유학 전에 잠시중국 북경대학교 - 사회학- 독립운동단체 의열단 활동1934 신조선사 근무- 중외일보 근무- 조광사 근무- 인문사 근무4 작품〈청포도〉〈절정〉〈광야〉《육사시집》〈꽃〉출처 위키피디아 백과 사전, 네이버 백과 사전이용악 (李庸岳, 1914년 11월 23일 ~ 1971년)1914년 11월 23일 함북 경성 출생.1 생애1914년 11월 23일 함북 경성 출생. 1936년 일본 조치대학(上智大學) 신문학과에서 수학했다.1935년 3월 ?패배자의 소원?을 처음으로 『신인문학』에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같은 해 ?애소유언(哀訴遺言)?, ?너는 왜 울고 있느냐?, ?임금원의 오후?, ?북국의 가을? 등을 발표하는 등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했다. 1937년 첫번째 시집 『분수령』을 발간하였고, 이듬해 두번째 시집 『낡은 집』을 도쿄에서 간행하였다 그는 초기 소년시절의 가혹한 체험, 고학, 노동, 끊임없는 가난, 고달픈 생활인으로서의 고통 등 자서전적 체험을 뛰어난 서정시로 읊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 체험을 일제하 유이민의 참담한 삶과 궁핍한 현실로 확대시킨 점에 이용악의 특징이 있다. 1946년 광복 후 조선문학가동맹 시 분과 위원을 역임했으며 『중앙신문』 기자로도 활동하였다. 이 시기에 시집 『오랑캐꽃』을 발간하였다.한국전쟁 때 월북하였으며, 북한의 『조선문학』에 시 ?석탄?, ?어선 민청호?, ?위대한 사랑?, ?격류한다 사회주의에로?, ?기발은 하나?, ?꼰스딴짜의 새벽? 등을 발표하였다. 1968년에 ?날강도 미제가 무릎을 끓었다?를 발표한 이후로 더 이상 시작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월북 이후에도 30편의 작품을 발표한 것으로 보아 북한에서도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시를 계속하여 창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시는 주로 강한 의지력, 침통한 정조, 예민한 감수성과 풍부한 사상성을 겸비한 점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한편 1956년 『평남관개시초』를 제작하고 1963년에는 김상훈과 함께 『역대 악부시가』를 번역?발간하는 등의 활동도 펼쳤다. 1971. 1949년에 아문각에서 1938년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장편 <제3의 노예>를 발간하였다.3 약력1934 보성전문학교 - 법학- 동아일보사에 근무- 해방공간에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4 작품고향 사람들(-)출처 네이버 백과 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강경애 (姜敬愛, 1907년 4월 20일 ~ 1943년)1907년 4월 20일 황해도 송화 출생.1 생애5세 때인 1911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라났으며, 이 시기에 겪었던 심리적?경제적 곤란은 그의 작품경향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1921년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동맹휴학에 가담한 관계로 1923년에 퇴학 처분을 받았다. 1923년, 문학강연회를 계기로 양주동(梁柱東)과 만나게 되어 이듬해 서울로 함께 올라왔으며, 동덕여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1년간 수학(修學)했다 양주동과의 관계가 파탄에 이른 1924년 9월 귀향하여 야학운동?신간회 등 여러 사회운동에 투신하였다. 1931년경 간도를 여행하고 귀국한 후 작품을 창작하였으며, 문단 등단작은 1931년 『조선일보』 ‘부인문예’란에 발표한 ?파금(破琴)?이다. 같은 해, 장하일과 결혼하여 다시 간도로 이주한 후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면서 안수길(安壽吉)?박영준(朴榮濬) 등과 함께 동인지 『북향(北鄕)』에 참여했다.1939년에는 『조선일보』 간도 지국장을 지냈고, 이듬해부터 건강이 나빠져 1942년 남편과 함께 귀향했으나 1943년 세상을 떠났다.2 작품 성향강경애는 박화성(朴花城)과 더불어 당대에 “프로문학 진영의 두 수준 있는 문학작가”라는 평을 받은 작가이다. 그는 카프 조직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지 않으면서도 식민지적 갈등과 모순에서 계급 문제를 읽어내고 그것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해 낸 특이한 작가로 꼽히며, 특히 간도 체험을 기반으로 하여 많은 작품을 창작했다는 점, 계급 문제를 드러내되 관념보다는 체험에 의지했다는 점에서 최서해(崔曙海)의 경향을 이은 작가로 평가되기도 한다.농민들의 곤궁한 생활을 보고 충격을 받은 한집이다.
현/대/문/학/사한국 현대 시 조사국어국문학과200816279윤채린● 최남선 : 해에게서 소년에게.1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2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내게는, 아무 것, 두려움 없어,육상에서, 아무런, 힘과 권을 부리던 자라도,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서는.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3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지금까지, 없거든, 통기하고 나서 보아라.진시황, 나팔륜, 너희들이냐,누구누구누구냐 너희 역시 내게는 굽히도다,나하고 겨룰 이 있건 오너라.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4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조그만 산(山)모를 의지하거나,좁쌀 같은 작은 섬, 손뼉만한 땅을 가지고,그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부리면서, 나 혼자 거룩하다 하는 자,이리 좀 오너라, 나를 보아라.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5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나의 짝될 이는 하나 있도다,크고 길고, 너르게 뒤덮은 바 저 푸른 하늘.저것은 우리와 틀림이 없어,작은 시비 작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조 따위 세상에 조 사람처럼,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6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저 세상 저 사람 모두 미우나,그 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담 크고 순정한 소년배들이,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오너라 소년배 입맞춰 주마.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1908년 에 발표된 이 시는 신체시의 대표작이다. 이 시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 형식의 과도기성, 불안정성과 내용의 계몽성에 있다. 형식면에서 볼 때 이 시는 한 연 단위로는 내재율에 지배기 때문에 세상 도처에서 님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님은 처음에는 발자취만 보이다가 얼굴을 보이며 서서히 시인에게도 다가온다. 마침내는 입김을 느낄 수 있고 시인의 노래가 귓가에 울림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그러나 사랑이 어디 그렇게 쉽기만 한가. 사랑은 저녁놀처럼 장엄한 모습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비록 저녁놀에서 시인은 남의 시를 느낄 수 있지만 님은 어둠 속에 잠긴,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나오는 침묵하는 님으로 바뀌는 것이다. 님이 침묵하고 있는 이 기막힌 현실에서 시인은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인 희망을 느낀다는 데에 이 시의 가치가 있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듯이, 님의 침묵과 님의 부재는 역설적으로 님의 웅변과 님과의 만남으로 바뀌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님이 침묵하고 어둠 속에 묻혀있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시인은 느끼는 것이다.그리고 이러한 희망은 비록 약하지만 어둠을 지키는 등불로 표현될 수 있다. 희망이 있고 님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시인은 어둠을 물리치는 등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주어진 비극을 희망과 사랑으로 바꾸어 버리는 놀라운 느낌을 한용운은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이런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실린 시들은 절창이 된다. 세상이 비록 험악하고 가진 것을 모두 잃고 있지만 님은 온다는 간절한 희망, 이 희망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용운의 님은 잃어버린 조국이 될 수도 있고, 떠나버린 애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부정을 통해 더 큰 긍정을 얻는 변증법적인 논리를 한용운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용운 시는 다른 독립과 관련된 저항시와 다르게 너무 연약하고 아름답다.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그냥 시 자체로 많이 아름답다고 해야할까. 자기 자신을 약한 등불이라 표현한다. 이게 제일 느낌있게 와 닿는다.여운이 남는 시랄까 많은 사람들이 한용운의 시를 보면 참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칠고 큰 비석 위새벽 별이 그대들의 이름을 비출 때,현해탄의 물결은우리들이 어려서고기떼를 좇던 실내(川)처럼그대들의 일생을아름다운 전설 가운데 속삭이리라.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 바다 높은 물결 위에 있다.출전 : 『현해탄』 (1938)이 시에서 '현해탄'은 단순한 바다의 명칭이 아니다. 즉 이 시는 단순히 바다를 노래한 시가 아닌 것이다.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처럼, 여기서의 바다는 근대 문명의 통로를 상징한다. 하지만 근대화 초기의 '현해탄'은 서구적 근대 문명이 들어오는 통로일 뿐만 아니라, 일본으로 대표되는 제국주의적 만행이 들어오는 통로이기도 했다.하지만 시인은 끝내 현해탄 콤플렉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민족의 자생적인 힘과 능력을 발굴하고 거기에 의지하기보다는 결국 현해탄 너머로부터 배워 오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자신들의 '운명'이라 여기고 있는 것이다.오늘날 우리 역시 서구의 지식과 문명을 배우기 위해 해외 유학을 가는 한편, 강대국의 여러 가지 압력에 민족적 자존심이 훼손당하는 걸 느끼며 살아간다.이 시는 1930년대 후반 식민지 지식인의 정신사적 단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현해탄'은 조선의 근대화와 독립이라는 민족사적 과제 앞에서 당대의 지식인 청년들이 처한 모순과 연관되어 있다. 즉 근대화를 이루자던 현해탄 너머의 세계를 받아 들여야 하고, 독립을 이루자면 그 제국주의적 본성과 맞서 싸워야만 하는 것이다. 이 시 마지막 부분의 '우리는 아직도 이 바다 높은 물결 위에 있다.'는 그러한 현실 인식을 분명히 보여 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신석정 :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어머니,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깊은 삼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좁은 들길에 야장미(野薔薇) 열매 붉어.멀리 노루새끼 마음놓고 뛰어다니는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어머니,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굴로동시에꼭들어온다.?거울속의나는내게미안한뜻을전한다.?내가그때문에영어되어있드키그도나때문에영어되어떨고있다.4내가결석한나의꿈.?내위조가등장하지않는내거울.?무능이라도좋은나의고독의갈망자다.? 나는드디어거울속의나에게자살을권유하기로결심하였다.?나는그에게시야도없는들창을가리키었다.?그들창은자살만을위한들창이다.?그러나내가자살하지아니하면그가자살할수없음을그는내게가르친다.?거울속의나는불사조에가깝다.5내왼편가슴심장의위치를방탄금속으로엄폐하고나는거울속의내왼편가슴을겨누어권총을발사하였다.?탄환은그의왼편가슴을관통하였으나그의심장은바른편에있다.6모형심장에서붉은잉크가엎질러졌다.?내가지각한내꿈에서나는극형을받았다.?내꿈을지배하는자는내가아니다.?악수할수조차없는두사람을봉쇄한거대한죄가있다.오감도는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작품이다. 원래는 30회를 목표로 연재를 시작했으나 연재가 시작되자마자 공무국에서는 오감도(烏瞰圖)라는 것은 조감도(鳥瞰圖)의 오자가 아니냐고 물으러 오기도 하고 "미친놈의 잠꼬대냐?", "그게 무슨 시란 말인가", "당장 집어치워라", "그 이상이란 자를 죽여야 해!", "무슨 개수작이냐", "그게 대체 어쩌자는 시냐." 등의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쳐 더 이상 연재를 할 수 없어 15회에 중단되고 말았다. 이 때 조선중앙 학예부장으로 있으면서 오감도의 연재를 기획했던 이태준은 독자들의 항의 때문에 사표를 써서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15회까지 연재를 밀고 나갔지만 더 이상 계속하지 못하고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일화가 있다.오감도 연재를 마치면서 이상은 "이천점(자신이 쓴 시)에서 30점을 고르는데 땀을 흘렸다. 31년 32년 일에서 용대가리를 떡 꺼내놓고 하도들 야단에 배암꼬랑지커녕 쥐꼬랑지도 못 달고 그만 두니 서운하다. 깜박 신문이라는 답답한 조건을 잊어버린 것도 실수지만 이태준, 박태원 두형이 끔찍이도 편을 들어준 데는 절한다. 철―이것은 내 새 길의 암시요 앞으로 제 아무에게도 굴하지 않겠지만 호령하여도 에코―가 없는 무인지경은 딱하다. 다 목이 젖은 새,참아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제 피에 취한 새가 운다.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이 시는 세 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연에서는 임의 떠남, 제2연에서는 못다한 사랑의 회한, 제3연에서는 귀촉도의 한맺힌 울음을 제시하고 있다.임이 가신 ‘서역 삼만 리’나 ‘파촉 삼만 리’는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세계를 뜻한다. 이승과 저승의 거리는 먼 것이어서 ‘삼만 리’로 표현되었을 터인데, 이것은 실제의 거리라기보다는 정서적인 거리감을 나타낸다고 보아야 하겠다.임의 죽음에 대한 여인의 회한은 제2연에서 잘 드러나 있다. 화자가 여인이라는 점은 ‘은장도’로서 짐작이 간다. 그러나 ‘은장도’는 화자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임에 대한 정절의 표현이기도 하다. 화자는 그 은장도로 ‘부질없는 이 머리털’을 베어서 먼 길을 가는 임의 신이나 삼아 드릴 걸 그랬다고 후회를 한다. 머리털이 ‘부질없는’ 것이라는 말은 임이 죽은 지금 누구에게 더 이상 예쁘게 보일 필요가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치렁치렁한 머리털은 여인에게는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다. 간음한 여자의 머리털을 잘라 버리는 풍습도 이에 근거한 것일 터이다.마지막에서 그토록 사랑하던 임이 귀촉도의 울음으로 되살아 온다. 귀촉도는 동양의 시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미지로서, 임을 그리워하다 죽은 넋으로 이해된다.제1시집 화사집(花蛇集) 에서 보여 주었던 ‘보들레르’의 악마주의적 경향에서 벗어나 동양적 사상에로 접근, 영겁(永劫)의 생명을 추구하는 생명파 시인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한 제2시집 귀촉도 의 표제시가 된 이 시는 사별한 임을 향한 애끓는 정한과 슬픔을 처절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귀촉도’란 흔히 소쩍새 또는 접동새라고 불리는 새로, 이 작품에서는 촉제(蜀帝) 두우(杜宇)가 죽어 그 혼이 화하여 되었다는 (杜宇死 其魂化爲鳥 名曰 杜鵑 亦曰子規 ; 成都記) 전설을 소재로 하여 죽은 임을 그리워하는 비통함을 표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귀촉도’는 말 그대로 ‘촉
현/대/문/학/사한국 문학 독서록국어국문학과목차[ㄱ]● 김승옥 : 무진기행● 김정한 : 사하촌● 김학철 : 균열[ㄴ]● 남정현 : 분지[ㅅ]● 서정인 : 강[ㅇ]● 염상섭 : 삼대● 윤흥길 : 장마● 이광수 : 무정● 이기영 : 고향● 이문열 : 사람의 아들● 이상 : 날개● 이청준 : 병신과 머저리● 이태준 : 농토[ㅈ]● 조명희 : 낙동강● 조세희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ㅊ]● 채만식 : 논 이야기● 채만식 : 치숙● 채만식 : 태평천하● 최명익 : 장삼이사● 최서해 : 탈출기● 최인훈 : 광장[ㅎ]● 현기영 : 순이삼촌● 홍명희 : 임꺽정● 홍석중 : 황진이● 황석영 : 무기의 그늘● 황석영 : 삼포가는 길● 김승옥 : 무진기행1 줄거리윤희중은 오래만에 고향인 무진으로 내려 간다. 무진은 안개가 많고 특징이 별로 없는 조그마한 항구 도시이다. 그가 고향에 가게 될 때에는 항상 무엇엔가 쫓길 때였다. 이번에도 처가에서 운영하는 제약회사의 주주총회에서 전무로 선출되기 위해 잠시 머리를 식히려고 오는 길이다. 모든 일은 장인과 처가 알아서 해 줄 것이다.밤에 그는 동기인 세무서장 '조'와 모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박 선생과 같은 학교 음악 선생인 하인숙과 술자리를 같이 한다. 술자리에서 가곡이 아닌 유행가를 부르는 여선생에게 연민 비슷한 정을 느낀다. 술자리에서 파하고 나오는 길에 그는 후배인 박 선생이 하 선생을 좋아한다는 것, 그런데 하 선생은 출세한 세무서장인 '조'를 좋아한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하인숙과 단둘이 귀가하는 도중 그녀는 자기를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다음날 윤희중은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어머니의 묘에 성묘를 하고 오는 길에 방죽에서 자살한 술집 여자의 시체를 보며 연민의 정을 느낀다. 여인의 주검을 보며 젊었을 적 무진을 탈출하려고 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오후에는 그는 세무서장 '조'를 찾아간다. 그는 다소 자랑스러운 듯이 윤을 대한다. 윤희중은 '조'에게 하인숙과 결혼할 예정이라며 하인숙을 대수롭지 않게 번갈아 가며 더듬다가 대학생 김씨를 데려 오라 한다. 대학생이라는 말에 호기심을 갖고 김씨 방에 찾아온 작부는 옷도 벗지 않고 골아 떨어진 김씨의 넥타이와 바지를 벗겨 정돈해 놓고 남포 속으로 바람을 불어넣는다. 밖에서는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다. 그녀의 발자국을 하얗게 지우면서.2 감상?강?은 1968년 3월 창작과 비평 9호에 발표한 단편 소설이다. 이 작품은 현실에 좌절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줄거리 자체보다는 주제 의식에 비중을 두고 환상적인 수법으로 묘사한 전지적 작가 시점의 소설이다.서정인의 작품 세계는 야단스럽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단단한 주제 의식, 치밀하고 엄정한 문체 빈틈없는 구성과 성격 묘사, 생생하고 재치 있는 대화 등으로 고전적인 단편 소설의 모범을 보인다.그의 초기 작품들은 실체를 상징 또는 환상으로 포착하면서 자의식의 분열을 추적한다. 그리고 진실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지식인의 고민을 단아한 문장과 정확한 구성력으로 분석하여 삭막하고 답답한 현대인의 삶을 비극적 인식에서 묘사하였다. 그러나 후기의 작품들은 삭막한 풍경 속에서도 해학과 관용, 넉넉한 인간적 교감을 보여준다. 그리고 프티 인텔리의 속물화와 좌절의 분위기에 인간 관계의 순환론을 도식화함으로써 생기 넘치는 인물과 발랄한 대화로 그의 단편 문학 세계를 펼쳐나간다.이 소설은 개인의 내면 세계를 환상적이고 심리적인 기법으로 묘사하여 담담한 비애의 모습으로 안정시키고 있다. 이러한 안정감은 이 소설의 핵심을 이루는 여행이라는 형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여행은 숨가쁜 일상에서 벗어나 사색의 분위기와 공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여행은 잊혀져 버린 자신의 과거와 현실 생활의 의미를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이러한 의미가 있는 여행 중에 이 작품의 등장 인물들은 삶의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는 눈 내리는 차창 밖의 풍경과 함께 쓸쓸함과 좌절의 슬픔을 형상화하여 애정과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킨다.3 의의와 평가이 작품의 주제는 소외된 삶의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는 노파를 데리고 평양으로 가지만 그녀를 찾지 못하고 돌아온다.학교에 출근한 형식은 배명식의 계교에 학생들에게 기생을 만나러 평양에 다녀 왔다는 것에 대한 조롱을 받고 학교를 나와 버린다. 학교에서 돌아온 형식은 집에 찾아온 우선에게 돈을 꾸어 영채의 시체를 찾으러 떠나려고 한다. 그때 김장로의 집에서 보낸 사람이 선형과의 약혼을 승락하라고 한다.선형과 약혼하고 싶은 열망의 마음을 가졌으나 영채로 인해 주저하는 형식에게 신우선은 영채는 이미 죽었으니 약혼을 승락하라고 한다. 형식는 김장로의 집으로 가 약혼을 하고 성례는 유학 후에 하기로 한다.한편 영채는 자결할 결심으로 평양에 가는 중, 병옥이라는 일본 유학생을 만나게 된다. 영채의 사연을 들은 병옥은 영채에게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부모의 결정으로 결혼하는 구습 때문에 죽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영채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유학을 같이 하자고 제안하며 영채와 동경으로 유학을 간다.형식이 선형과 함께 미국유학을 위해 탄 부산행 기차 안에서 선형의 학교 선배인 병옥과 그의 동행인 영채를 만나게 된다. 형식이 결혼을 하고 미국유학을 간다는 말을 들은 영채는 배신감을 느끼는 동시에 마음이 흔들린다.영채에 대해 들은 형식이 선형에게 영채와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영채가 탄 차실로 영채를 만나러 간다. 영채를 만난 형식이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하자 영채는 자신이 걱정시켜 미안하다고 한다. 선형이 있는 차실로 돌아온 형식은 지키고 있던 우선에게 미국가는 것을 중단하고 영채와 혼인하겠다고 하지만 신우선은 영채도 유학을 하러 가는 입장이니 서로를 위해 그러지 말라고 권한다.한편 형식이 영채를 만나러 가자 선형은 질투를 느끼며 형식의 인간됨을 의심한다. 하지만 순간 추악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빈다. 형식이 자는 체하는 선형에게 돌아와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자 선형은 그에게 애증을 느낀다.다음 날 삼랑진 역에 닿았을 때 홍수가 난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형식, 선형, 영채, 병옥은 수재민을 돕게되 버리지 않은 자들이 같이 천국에 간다는 것은, 진정으로 부당하지 않은가!그러나 이 소설이 신에 관한 목마른 의문을 완전히 해갈시킨 것은 아니다. 또한 거의 30년 전에 쓰여진 작품이긴 하지만, 문체가 메마르고 남 경사가 등장하는 한국에서의 이야기 진행이 너무 상투적이었다. 마지막 부분에서 조동팔은 자신들의 신의 경전을 만들려다 다시 '우리 주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간 민요섭을 살해했다는 것이 뒤늦게 발견된다. 결국 신에게로 돌아간 주인공의 모습은 씁쓸함을 안겨주기까지 한다. 새로운 신에 대한 설명도 너무 적었고, 무언가 미흡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어찌, 우리 인간들이 이 세계의 전체성에 대한 명쾌한 결론을 내릴 수 있겠는가. 천국은 어쩌면 아름다울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생이 더 아름다우리라 믿는다. 나는 이 곳에서 눈물과 쓰라림이 있는 천국을 발견하리라.● 이상 : 날개1 줄거리“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육신이 흐느적흐느적 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니코틴이 내 횟배 앓는 배 속으로 스미면 머리 속에 으레히 백지가 준비되어 있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패러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증할 상식의 병이오.구조가 흡사 유곽과 같은 집- 그런 집들 속에 여러 가족이 살고 있는데, 내 방은 아내의 방을 거쳐 미닫이를 열어야 들어설 수 있다. 내 방은 항상 음침하다. 나는 밤낮 잠을 잔다. 아내에게는 매일같이 손이 온다. 아내가 외출을 하면 나는 그 틈을 타서 아내 방을 구경할 뿐 이다.내가 잠을 자고 있으면 아내는 손이 두고 간 돈 중에서 은화 한 푼을 내 머리맡에 놓고 간다. 어느 날 나는 아내가 사다 준 벙어리에 모아 둔 돈을 몽땅 변소에 던져 버렸다. 벙어리에 돈을 넣는 것이 권태로왔기 때문이다.하루는 나는 거리로 나갔다. 번화한 거리를 걸으니 곧 피곤했으므로 생각하는 일조차 힘겨워 곧 되돌아왔다. 아내의 방문을 열어 보니 손이 와 있었다. 죄의식이 휘몰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작가의 말이 작품 속에 직접 노출되는 결함을 보이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지 않은 느낌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과거의 행적을 작가가 요약적으로 추려 전달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처리되고 있어 자연스런 흐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 작품은 사회 의식적 주제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의도가 앞선 나머지 예술적 형상화에는 미흡했다고 보여진다.● 조세희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 줄거리난쟁이인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와 영수, 영호, 영희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도시의 소외 계층이다. 실낱 같은 기대감 속에서 천국을 꿈꾸지만 통장으로부터 재개발 사업으로 인한 철거 계고장을 받는 순간 비극은 시작된다.영수네 동네인 낙원구 행복동 주민들 역시 야단법석이다. 어느 날, 철거는 간단히 끝나 버리고, 그들의 손에 아파트 딱지만 주어진다. 입주권이 있어도 입주비가 없는 마을 주민들은 시에게 주겠다는 이주 보조금보다 약간을 더 받고 거간꾼들에게 입주권을 판다.그 동안 난쟁이 아버지가 채권 매매, 칼 갈이, 건물 유리 닦기, 수도 고치기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였으나, 어느 날 병에 걸려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어머니는 인쇄 제본 공장에 나가고 영수는 인쇄소 공무부 조역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나간다. 영호와 영희도 몇 달 간격으로 학교를 그만둔다.투기업자들의 농간으로 입주권의 값이 뛰어 오르고 영수네도 승용차를 타고 온 사나이에게 입주권을 판다. 그러나 명희 어머니에게 전세값을 갚고 나니 남는 것이 없다.영희는 집을 나간다. 영희는 승용차를 타고 온 그 투기업자의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러다가 그에게 순결을 빼앗긴 영희는 투기업자가 자기에게 했듯이 그의 얼굴에 마취를 하고 가방 속에 있는 입주권과 돈을 가지고 행복동 동사무소로 향한다. 서류 신청을 마치고 가족을 찾으러 이웃에 살던 신애 아주머니를 찾아간다. 아버지가 벽돌 공장 골뚝에서 자살.
幹略 目次1. 서론 : 손자병법 서평 동기2. 본론 : 2-1. 손자병법의 전제와 의의2-2. 손자병법 13편3. 결론孫子兵法 書評1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손자병법』 하면 흔히 떠올리는 문구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겨루어도 백 번 승리한다는 내용은 단순한 병법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 문구의 의미가 현대의 일상을 살아가는 지금의 인류에게도 선사하는 것이 큰 까닭이다.무슨 일을 행할 때에 그 대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비로소 어떤 일을 시행할 바탕을 갖게 된다. 그리하면 앞으로의 길을 모색함이 수월해지고 갈피를 잡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병법뿐만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적용이 되는 이야기이다.나는 『손자병법』을 통해서 인생의 처세술을 낱낱이 배우리라고 확신했다. 앞서 말한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내용이 좁게는 군사학, 넓게는 인생에 영향을 끼친다면 그 내용이 수록된 책에는 다른 주옥같은 삶의 지침이 더 많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2-1『손자병법』은 기원전 6세기경 춘추 전국시대의 병법가 손무가 집필한 군사학 명저이다. 책은 13편의 각기 다른 카테고리로 나누어 병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시계, 작전, 모공, 군형, 병세, 허실, 군쟁, 구변, 행군, 지형, 구지, 화공, 용간. 손무는 개전(開戰)하기 이전도 병법에 포함하여 준비함에 소홀함이 없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가장 하책(下策)도 전쟁에서 큰 손실 없이 백성에게 이로울 수 있으면 선택해야 한다고 논하고 있다.춘추 전국시대라면 아비규환의 시대이다. 전쟁의 범람 속에서 손무는 전쟁을 결정하는 일이 중대한 일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전쟁이 혼돈을 종결짓고 평화를 이루기 위한 것임을 전제로 하고서 병법을 깨우쳐야 한다는 것이다.크게 공감 가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전쟁은 1차적으로 그 목표가 득실(得失)이 아닌 평화로 설정되어 진행되어야 한다. 막대한 인명 ? 재산 피해를 낳는 장기전은 소기의 성과를 얻는다고 해도 전쟁의 본질을 해치는 것이다.그러므로 전쟁은 피할 수 있으면. 또 땅의 지형을 잘 살피어 그를 전쟁에 알맞은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 장수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는 전쟁을 통솔하는 인물이니 지혜 ? 믿음 ? 어짐 ? 용맹 ? 위엄 어느 하나 부족함 없이 균등하게 지니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법은 군의 조직을 짜임 있게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군대라는 집단을 원만하게 해야 전장에서 적과 맞부딪혔을 때에도 승리를 거머쥐게 될 것이다.이 오사(五事)는 칠계(七計)에도 포함된다. A와 B가 전쟁을 한다고 가정할 경우 A / B 중 어느 편이 도를 지니고 있는지 장수는 어느 편이 유리한지, 어느 편이 천지를 활용할 줄 아는지, 법령 시행은 어느 편이 수월한지, 그 외에도 사병의 훈련 정도와 상과 벌을 주는 것은 어느 편이 더 확립 되어있는지가 칠계이다.오사와 칠계는 승리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런데 전쟁이라는 실전에서 이 기초적인 항목들 외에도 능수능란하게 이용해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속이는 수단’이다. 이 대목에서는 나는 갑자기 의아심이 들었다. 속임수는 정당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손무는 이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용병하는 것이 비록 인의에 근본한다고 하지만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궤사를 써야 한다. …(중략)… 따라서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온갖 수단을 다하여 적을 현혹시켜야 한다.” 이것은 내가 앞에서 동의한 전쟁의 전제와 관련지을 수 있다.전쟁의 피해를 축소하는 방편은 지략으로써 전쟁의 결과를 앞당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임수란 “능력이 있으면서도 능하지 못한 체 하거나”, “쓰고 있으면서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능력이다. 이를 써서 적에게 “이롭게 해서 유인하고”, “혼란시켜 가지고 취하는” 것은 전쟁의 큰 피해를 예비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내용이 적에게 발설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물론이다.제대로 싸우기 이전에 훌륭한 전략으로 승리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시계를 등한시해서는 안 될 이유이고 속임수라도 대의를 위해 사용해야할 까닭이 된다.두 번째 작전 편에서는 전쟁을 니라.”상병은 최고의 전술이라는 뜻으로 벌모-적의 계략을 치는 것-는 미연에 전쟁의 승리를 얻을 수 있다. 서희의 외교담판은 벌모의 좋은 예이다. 그 다음이 친교를 맺고 있는 배경을 쳐서 항복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병(兵)이니 적을 친다는 것이고, 마지막의 공성은 성을 공격하는 것이니 가장 마지막에 선택해야 할 일일 것이다.모공 편에서는 전쟁 전에 성패를 예측하는 다섯 가지를 귀띔해주고 있다. 첫째, 싸워야 할 때와 싸우지 말아야 할 때를 능히 아는 것. 둘째, 군사를 많이 쓰고 적고 쓰는 것의 방법을 아는 것. 셋째, 장병이 아랫사람과 생사를 함께 하는 것. 넷째, 유비무환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 다섯째, 군대의 수뇌부의 행동함에 있어서 군주의 제약이 없는 것.세 번째 편에 나와 있는 내용으로 적을 알 수 있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는 모공 편에 수록되어있다.네 번째가 군형 편이다. 군형편은 싸움에서 적이 이기지 못하도록 군의 형태를 만들고 그런 다음에 적에게서 이기기를 기다린다, 라고 말한 손자의 병법이 제시된 편이다. 손자병법의 해설에서는 “선전의 요결은 먼저 불패의 땅, 즉 남이 이길 수 없는 불발의 위치를 차지하고 그런 후에 적의 패형을 포착하여 기회를 잃지 않고 일시에 파고든다. 이것이 승리의 제일의 비결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군형 편에서는 전쟁을 이미 시작한 후에 공격하고 수비하는 것에 대해 논하고 있는데 이 또한 잘 짜인 계획 아래 시행되어야 한다. 요지를 점령하고 적의 공격에 대비할 때에 승산이 높아지는 것이다.그렇기에 손자는 “이기는 군사는 먼저 이긴 뒤에 싸움을 구하며, 패하는 군사는 먼저 싸운 뒤에 승리를 구한다.”라고 하였다. 이 또한 손자병법에서 많이 인용되는 구절이다. 이 구절에서 나 또한, 미리 준비하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 실감하였다. 지난날의 나는 이기는 군사보다는 싸우고 나서 요행을 바라는 불온한 군사에 가까웠다. 예가 마땅치 않겠지만 곧 다가올 중간고사도 마찬가또 힘의 움직임 즉, 세를 몰아 순간에 승리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다.여섯 번째는 허실 편이다. 허는 빌 허(虛)이고, 실은 가득 찰 실(實)이다. 곧 허는 빈틈이고 틈이 없는 것은 실이다. ‘병의 요결은 실을 피해 허를 치는 데 있다.’라는 정칙도 있다. 책에서는 허를 치고 도망갈 때에는 신속하게 해야 수동적 입장에서 벗어나 주도적 입장을 회복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상대방의 허실을 밝히고 나의 허실을 감추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상대편은 나의 허실을 알지 못해 종잡을 수 없을 때에 나는 상대의 허실을 꿰고 집중할 수 있다. 상대편 힘이 분산되어 내 10분의 1이 되면 나는 상대편의 10배에 달하므로 이쪽은 그만큼 여력이 생긴다.그러므로 내가 상대의 허실을 알고 싸움의 주도권을 획득한다면 이미 판세가 이쪽으로 기울었다고 할 수 있다. 수동적 입장에서는 갖출 것이 많으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니 자연히 패할 수밖에 없다.병사를 나타내는 극치가 무형일수록 좋은 것이다. 허실을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얻어낸 승리는 거듭하지 않아야 한다. 불변의 법칙은 없는 것을 명심하고 끝없는 변환을 해야 할 것이다.일곱 번째는 군쟁 편이다. 군쟁은 군사를 써서 승리한다는 것으로 손자 왈 군쟁보다 어려운 것이 없다고 하였다. “적과 대치했을 경우 기선을 다투는가 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없다.”는 것이다.군쟁 편을 읽다가 병법에 심리적인 요인이 접목되어 있던 것을 보고 놀라웠다. 이 기선을 다투는 방법 중에 하나는 기운을 잘 다스리는 것이다. 그 예가 “아침에는 병사들의 기운이 항상 충실해서 기운차 있고, 낮이 되면 아무래도 늘어지기 쉽다가 저녁이 되면 하루일이 끝났으므로 안심하게 된다. …… 아침의 날카로움은 되도록 피하고, 대낮이나 저녁때 기분이 늘어져 게을러졌을 때를 노려서 습격하는 것이다.”라는 대목이다.바로 위의 부분처럼 기운을 잘 다스려 군의 질서를 지키고 통일시킨 상태로 적의 어지러운 마음, 허를 치면 기선을 제어할 수 있다. 또한 편안한 위치에서 멀이다. 그러므로 이번 구변 편에 대한 태도는 비단 전쟁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적용된다고 보아야 한다.또 구변 편에서는 변형에 대한 탐구와 임기응변을 요구하고 있다. 정석을 따라야 하겠지만 상황에 따라 그 정석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지혜로운 자의 생각은 반드시 이해와 함께한다.” 라는 것 역시 이 논리에 힘을 보태고 있다.이 구변 편에서 유명한 구절이 하나 있다. “고(故)로 용병지법(用兵之法)은 무시기불래(無侍其不來)하고 시오유이대야(侍吾有以待也)라. 무시기불공(無侍其不功)하고 시오유소불가공야(侍吾有所不可功也)니라. : 그런 까닭에 군사를 쓰는 법은, 그 오지 않는 것을 믿지 말고, 내가 기다림이 있는 것을 믿는다. 그 공격하지 않는 것을 믿지 말고, 내게 공격하지 못하는 점이 있는 것을 믿는다.”적의 상황에 의존하여 판단하지 말고 나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언제든지 좋다-라는 자세로 임하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는 이런 태도가 언제나 녹아있어야 한다. 무엇이든 녹록치 못하며, 생각하는 것만큼 원만하게 흘러가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언제나 무뎌있지 말고 주체적으로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아홉 번째는 행군편이다. 앞서 나왔던 것들과 달리 ‘행군’은 어딘지 익숙하다. 군대에서의 훈련 과정인 ‘행군’을 인지하고 있어서일까. 행군 편에서 손자는 각 지형의 행군법과 적정 정찰의 요령을 일러주고 있다.행군의 지형에는 산과 물, 평지, 소택지가 있는데 각 지형마다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그 지침이라는 것에서 자연에 순행하는 태도가 엿보인다. “대체로 군은 높은 곳을 좋아하고 낮은 곳을 싫어하며, 양을 귀하게 여기고 음을 천하게 생각한다.” 이 글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이 자연 순행적인 손자의 태도는 요컨대 이런 것이다. 승에 주안점을 두되, 자연이라는 불변의 요소를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고 자연의 성질에 맞는 정찰 요령을 계획하고 실행한다는 것이다.이 ‘행군 편’에서는 단순한 행군 지침서를 제공하는 것 외에도 병법을 세워야하는 자가 행군
대중문학문화론대중문화 광고를 말하다.30초의 미학, 광고■ 목차 ■Ⅰ. 서론Ⅱ. 본론Ⅱ-1. 대중문화란 무엇인가Ⅱ-2. 광고의 정의와 그랜저 광고Ⅱ-3. 그랜저 광고에 담겨있는 사회인식Ⅲ. 결론30초의 미학, 광고Ⅰ. 서론국문학이 좋아 입학하였지만 진로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제 눈에 띈 것은 광고였습니다. 짧고 단순한 문장, 그 간결함 속에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광고에 큰 흥미를 느꼈습니다. 광고의 매력에 매료되었지만 광고는 다른 대중문화들과는 차별화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래의 다른 대중문화들이 순수 문화에서 비롯되어 대중성을 지니게 된 것이라면 광고는 그 반대의 과정에 있습니다. 즉, 상업성 대중성에서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러서 예술성을 고려하게 된 것입니다.그렇기 때문에 광고를 예술의 범주에 넣어야 하는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창의적이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제작된 광고이니 예술이다, 예술성이 결핍된 자본주의의 결과물이라는 두 주장이 충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레포트에서 다루고자 하는 바는 ‘광고는 예술이다’에 대한 명제가 아니라 광고를 통한 대한민국의 의식 실태와 광고계의 현황을 살펴보는 것입니다.단순히 판매자에게 어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써의 광고가 아닌 사회 기저에 만연한 인식을 반영한 대중문화로써의 광고를 탐구할 예정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광고 중에서도 사회의식이 잘 드러나는 광고들. 예를 들어, 아파트, 자동차 광고 중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던 그랜저 광고를 모델로 삼게 되었습니다. 레포트를 통하여 그랜저 광고 한 작품뿐만이 아닌 한국 광고의 전면적인 모습을 담고자 합니다.Ⅱ. 본론Ⅱ-1. 대중문화란 무엇인가.현대의 대중문화는 이전 단계에서 볼 수 있던 일부 엘리트만의 고급문화와, 기층(基層)에 있는 토착적인 민속문화와의 사이에 나타난 중간문화를 이르기도 한다. 종래 문화의 향수(享受)는 지극히 한정된 일부 계급 ·계층 사이에서 고급문화화하였다. 그러나 생활수준의 향상 및 교육보급의 확대에 따른 문화향수 능력의 향상과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은, 문화의 자유스러운 향수범위를 확대하여 대중문화 성립의 기반이 되었다.대중사회와 문화와의 관계는 가치체계의 전달형태나 사회화의 기능, 레크리에이션이나 긴장처리의 기능 등을 분석함으로써 밝혀진다. 특히 전자의 경우로는 교육의 보급이나 매스 미디어의 발달에 의해 방대한 인구가 문화의 향수자가 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한국의 경우도 6 ·25전쟁 이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고등교육기관이 증설되었다. 또한 전국적인 텔레비전 방송망이 갖추어지고, 출판물과 신문면수(新聞面數)가 증가하는 등 매스 미디어의 발달도 현저하다.이와 같이 대중이 교육에 의해서 사회화되는 기회가 증대되고, 매스 미디어와의 접촉기회가 많아졌다는 사실은 확실히 문화의 대중화를 상징한다 하겠으나, 이를 역(逆)으로 보면 교육이 산업화되고 확대되며, 매스컴 기업체가 거대화하여 문화의 향수자인 대중은 교육산업이나 매스컴 산업의 이윤대상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특히 주의하여야 할 일은 문화적 기업이 계열화됨에 따라 문화의 질적 저하가 초래된다는 점이다.교육의 확대가 오히려 학력의 저하를 초래하고 매스컴 기업이 이윤추구만을 경영목적으로 하는 한 저속한 프로그램이 횡행하리라는 우려도 예견할 수 있다. 또한 문화의 창조자가 대중에 영합해서 저속한 작품을 양산(量産) ·상품화하여, 대중사회의 저속화 ·퇴폐화를 돕는다는 우려는 근래 문단(文壇)에 대두한 대중문학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예에서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문화기업에 의해 획일화 ·양산화되어 공급되는 문화내용은 필연적으로 정형화된 사고와 행동을 낳게 되어, 본래 창조적이어야 할 문화는 대중의 생활 속에서는 나오지 않게 된다. 따라서 전통문화는 더욱 쇠퇴하고, 새로운 문화의 창조와 향수는 이윤과 영합을 축(軸)으로 해서 움직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위의 설명에서 살펴볼 부분은 “또한 문화의 창조자가 대중에 영합해서 저속한 작품을 양산 ?상품화하여”라는 부분이다. 대중문화는 대중화되고 상업성이 가미된 문화를 분류할 때 사용하는 어휘이다. 대중문화의 특성상 대중에 영합한 문화들이 창조되며 인터넷이나 가판대, 전광판을 수놓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눈 여겨 보아야 할 대중문화로는 광고가 있다.대중문화가 기존의 문화에 합성 첨가물처럼 특성을 추가하여 그 모습을 완성시켜 나가고 있는 중이라면 광고는 합성 첨가물이 주가 된 문화이기 때문이다. 매스 미디어로 대중문화가 치장되고 문화 수용자들 앞에 설 때 광고는 매스 미디어라는 골격 안에서 피어났다. 매체의 성격을 이용하여 기업의 이윤 추구와 이념 전파를 목적으로 탄생한 것이다.그러나, 오늘날 대중문화 속에서 광고가 가지는 파급력은 실로 위대하다. 단순히 판매실적의 그래프를 더 급격하게 한다든지, 기업의 이미지를 정화시킨다든지 하는 본래의 목적을 충족시키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대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문화의 범주에 포함된 것이다. 현재에 이르러 광고학이나 광고제, 광고 공모전 등이 끊임없이 양산되는 것은 대중문화로써 광고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게 한다.Ⅱ-2. 광고의 정의와 그랜저 광고현대인은 일상에서 대중매체에 노출되며 살아간다. 대중매체는 보편적으로 상업성을 기반으로 조직되어 있다. 다수의 수용자를 잡기 위한 매스미디어의 대표로는 광고가 있다. 광고야말로 대중매체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중문화인 것이다.거리, TV, 영화관, 책, 신문, 인터넷 등 주위에서 접할 수 있는 모든 것에는 광고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 형태는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되어 있는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그림, 사진 자료와 문장이 혼재되어있는 형태를 보인다. 광고는 대중에게 각인되기 위한 하나의 메시지를 그림, 사진과 문자를 적절히 활용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광고와 타 대중문화가 다르게 느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형태의 차이점이나 문장의 길이에서도 다름을 발견할 수 있지만 광고와 타 대중문화의 궁극적인 차이는 담고 있는 이념에서 드러난다. 대부분의 대중문화는 시대적 사조 속에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이념을 보여준다. 그러나 광고는 작가가 아닌 기업정신의 이념을 발현시킨다.그렇다면 광고의 정확한 뜻은 무엇일까? 광고는 기업이나 개인·단체가 상품·서비스·이념·신조·정책 등을 세상에 알려 소기의 목적을 거두기 위해 투자하는 정보활동을 지칭한다. 글·그림·음성 등 시청각 매체가 동원된다. 광고의 정의는 다양하나, 미국 마케팅 협회가 1963년에 “광고란 누구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광고주가 하는 일체의 유료형태에 의한 아이디어, 상품 또는 서비스의 비대개인적(非對個人的:nonpersonal) 정보제공 또는 판촉활동이다”라고 정의 한 바 있다. 1969년 미국 일리노이대학의 S.W.던 교수는 《Advertising, Its Role In Modern Marketing》에서 “광고란 광고 메시지 속에 어떤 형태로든 밝혀져 있는 기업이나 비영리기관 또는 개인이 여러 매체에 유료로 내는 비대개인적 커뮤니케이션이다”라고도 정의하였다.광고와 흔히 혼동해서 쓰는 PR(public relations)와 선전(propaganda)은 ‘유료’ ‘누구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이란 두 관점에서 광고와 다르다. 즉, 홍보나 선전은 광고처럼 일정한 광고료를 내지 않으며, 또 홍보나 선전을 하는 주체가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다. 이 2가지 정의에도 예외는 있는데, 그것은 무료 공공광고(public service advertising)의 경우이다. 이는 매체가 광고료를 받지 않고 게재, 또는 방송하기 때문에 예외의 경우이다. 광고란 낱말은 영어로 ‘advertising’ 또는 ‘advertisement’라고 하는데, 전자는 광고활동 모두를 뜻하고, 후자는 낱낱의 광고물을 뜻한다.)레포트에서 다루고자 하는 그랜저 광고도 판매를 목적으로 한 기업의 광고이다. 4세대 그랜저TG 광고의 경우 젊은 층을 타깃으로 했다. 광고의 내용은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오랜만에 조우한 친구 앞에서 나의 그랜저를 보여주면서 나를 대변한다는 내용이다.▲ 그림 1 4세대 그랜저 TG 광고기존 그랜저 광고가 중년 이상의 남성을 주 타깃으로 설정했다면 4세대 그랜저 TG의 경우 젊은 2~30대의 인정받고픈 내면의 욕구를 다루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차와 집이 나 자신의 사회적 계층 위상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미루어 생각해볼 때 그러한 심리를 잘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Ⅱ-3. 그랜저 광고에 담겨있는 사회인식한국이 자본주의 사회로 변모하고, 문화에 대한 인식이 변하면서 문화의 형식이나 콘텐츠 ? 유통 과정 또한 변천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공급을 맡게 된 기업 측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대중을 판매자로 확보할지를 연구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대중문화 전반에 변화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대중문학이나 영상은 대중의 심리를 적극 반영하기 시작하였으며 대리만족할 수 있는 콘텐츠가 생산되었다.광고도 마찬가지로 대중의 심리를 반영하여 판매 실적을 올리고, 기업이념을 대중에게 알리어 기업의 이미지를 승격시키는 효과를 얻으려고 했다. 이런 와중에 그랜저가 택한 것은 그랜저를 타면 당신의 품위 역시 높아질 수 있다! 라는 발상이다. 현재 한국 광고계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는 ‘고급화’ 발상은 한국 사회의 의식을 보여주는 예라고도 할 수 있다. 자동차나 아파트 같은 경우는 고액으로 거래되는 상품들이므로 구매자가 구매할 때 갖게 되는 과시욕, 인정받고 싶은 욕구 등을 판매 수단에 이용하는 것이다. 기업의 상품을 통해 구매자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뒷받침 할 수 있으며 내면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