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왕운명비극 주인공의 모든 행위를 그가 부여 받은 숙명으로 돌리며 파멸과 몰락으로 이끌어 가는 것을 ‘ 운명 비극 ’ 이라 한다 .분석극 본질적 사건이 이미 일어난 상태에서 줄거리가 전개되는 희곡 형식 .테이레시아스 이오카스테 사자 목자주요인물 오이디푸스 : 주인공 이오카스테 : 주인공의 어머니이자 아내 크레온 : 이오카스테의 오라비 테이레시아스 : 유명한 예언가 코린토스에서 온 사자인물의 성격오이디푸스에게는 책임이 있을까 ? 오이디푸스의 책임을 지는 행동 [ 자신의 두 눈을 찌름 ] ‘ 성찰 ’ 의 모델이 되는 오이디푸스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 오이디푸스 왕 ’ 의 관련성급전 ( 반전 ) 과 발견 [ 시학 11 장 ]인류 최초의 과학자 ( 아리스토텔레스 ) 에 의하여 저술된 문예비평에 관한 최초의 저술 시학이란 ?시학에 나타난 ‘ 급전 ’ 급전 ( 반전 ) 이란 사건을 예상 밖의 방향으로 급전시킴으로써 독자에게 강한 충격과 함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 .시학에 나타난 ‘ 발견 ’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지의 상태에서 깨달음의 상태에 이르게 하는 것을 ‘발견’ 이라 지칭함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14 장 공포와 연민의 카타르시스1.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2. 공포와 연민 ( Eleos Phobos ) 3. 카타르시스 (Catharsis) Contents시학을 통해 플라톤이 보인 문학 배척적 입장에 대한 생각이 담김 . 플라톤과 달리 문학의 가치를 인정 . 관념적인 실재관과 철저한 이성에 치우친 사상세계 문학 배척적 입장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플 라 톤 아리스토텔레스공포와 연민 (Eleos Phobos ) - 카타르시스 (Catharsis) 1. 비극을 희극 이나 다른 형식 들과 구별하는 기준 . 2. 작가는 주인공 을 선택하고 플롯 을 구성한다 . 3. 작가는 공포와 연민을 일으키는 사건 에 의해 카타르시스 를 낳는다 .일어나는 사건들을 알게 되면서 전율하게끔 그리고 사건들 앞에서 연민을 느낄 수 있게끔 스토리를 체계적으로 배열해야 한다 . 우리가 오이디푸스의 스토리를 알면서 느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 시학 14 장 중 발췌 카타르시스아리스토텔레스의 카타르시스 사람들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 문학적 긍정적 작용 공포와 연민 카타르시스1. 니코마코스 윤리학 , 정치학 , 시학 / 아리스토텔레스 / 손명현 역 / 동서문화사 2. 아리스토텔레스 , 『 시학 』, 천병희 역 , 문예출판사 3. google 이미지검색 , 다음 백과사전 참고 문헌 및 자료{nameOfApplication=Show}
Berliner Philharmonic. 베를린 필하모닉 홀1945 년 이후의 독일건축 1945 년 이후의 독일 건축 제 2 차 세계대전의 종전 이후 독일 건축의 주된 과제는 파괴된 도시들의 재건이었다 . 신속한 재건이 문제였으므로 건축물의 미관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 60 년대 이후 사회가 안정되면서 다양한 건축물에 대한 요구가 제기되었다 . 1945 년 이후의 독일 건축에도 바우하우스의 영향력은 여전했지만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과 같은 새로운 조류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 1945 년 이후 활약이 두드러진 독일 출신의 건축가중에 한스 샤로운 이 있다 . 1956 년 베를린 필하모니 음악홀의 현상 설계 공모에 당선되어 1963 년에 이 건물을 완공하였다 . 이 홀을 설계함에 있어서 샤로운의 기본 생각은 첫째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담을 허무는 것이었고 , 둘째 좋은 좌석과 나쁜 좌석의 구분을 없애는 것이었다 . 이러한 생각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는 연주 공간을 홀의 중심부에 두고 좌석을 원형으로 배치하였다 . 이러한 좌석배치를 통해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일체감이 고양될 수 있었다 . 연주자와 관객 , 부유한 관객과 가난한 관객 사이의 구분을 없앤 이 음악홀은 20 세기 민주주의를 표상하는 건물이다 . 건축사적으로 이 건물은 1955 년을 전후하여 등장한 신표현주의 건축의 대표적 건축물로 간주된다 .한스 샤로운 Hans Scharoun, 1893 - 1972 독일 건축가 . 브레멘 출생 . 베를린공과대학에서 수 학을 전공 . B . 타우트를 추종하여 초기에는 표현파의 성향을 띠었으나 , 1925 년 슈투트가르트의 <독일공작연맹전>에서는 주택을 , 이듬해 브레슬라우의 <가정과 일을 위한 전람회>에서는 아파트 등을 기능성과 참신한 발상이 서로 융합된 관점에서 설계하여 주목을 받았다 . 30 년에는 지멘스슈타트단지의 계획에도 착수하여 자신의 영역을 더욱 넓혔다 . 제 2 차세계대전 후에는 베를린 재건을 위해 중심적 역할을 했으며 , 슈투트가르트의 아파트 《 로미오와 줄리엣 (1956)》, 베를린교향악단의 《 콘서트홀 (1963)》 등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겼다 .한스 샤로운 Hans Scharoun Hans Scharoun 1893-1972 : 독일 물건과 그 용도와의 관계에 관해서 , 의식적으로 그것을 적정한 것으로 하고자 한다면 , 당연히 그러한 의지는 부여된 목적을 향하여 상상력을 작용시켜간다 . 채택된 해결책의 다양성과 , 일시적이라서 어쩌면 예언적이기도 한 양상은 , 이런 작품에 동적인 흥분을 일으킬 듯한 힘을 부여한다 . 제 1 차 세계대전시 복무중에 동프러시아 재건계획에 건축가로서 참가했으며 , 베를린에서는 , 브루노 타우트와 그 주변에 모여있던 젊은 건축가들과 교분을 맺게 되었다 .Berliner Philharmonic 1963. Hans Scharoun, Berlin, 1963 음악에 중심을 두는 컨셉 : 관객이 오케스트라를 둘러 싼다 . 객석이 덩굴이 늘어진 테라스에 비유 콘서트 홀은 ‘ 음악을 담는 그릇 ’ 외벽은 현 악기의 공명상자 처럼 얇은 막 “ 지휘를 하는 동안 전면에서도 그의 모습을 관객들이 볼 수 있도록 하라 .”philharmonic 독일 베를 린 의 티어가르텐 지역에 위치한 콘서트홀 이다 . 베를린 문화 포럼 지구에 속해 있다 . 포츠다머플라츠 와 인접해 있다 . 베를린필하모니관현악단 의 상주 콘서트홀이다 . 브레멘 출신의 건축가 한스 샤룬 이 1960 년에서 1963 년에 걸쳐 건축했다 . 비대칭 으로 솟아오른 지붕의 모습이 서커스단의 텐트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건물이다 . 콘서트홀은 5 각형 모양으로 지어졌다 . 객석은 모두 2,240 석으로 어느 자리에서든 무대가 잘 보이고 소리가 잘 전달 되도록 설계됐다 . 무대가 콘서트 홀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무대의 모든 면이 객석으로 둘러싸여 있다 . 독일 산 기슭에서 볼 수 있는 포도밭을 연상시키는 좌석 배치는 이 콘서트 홀에서 최초로 도입한 것이다 . 후에 덴버 콘서트 홀 라이프치히 의 게반트하우스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등이 이 콘서트 홀을 모델로 좌석을 배치했다 .Berliner Philharmonic 조형성 1944 년 2 차 대전 당시 옛 건물이 부서지고 , 1963 년경 한스 샤로운은 설계할 당시 통일 후의 도시를 염두에 두었다 . 표현주의 성향의 건축가 한스 샤로운은 당시 서베를린의 끝자락이었던 캠퍼 광장에 필하모닉 홀 부지를 선정했다 . 오늘날 이 광장은 도시의 중심부로서 국립미술관과 도서관 그리고 포츠담 광장등과 함께 베를린의 문화 중심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 다소 기괴한 형태의 외관은 독일의 표현주의 건축가인 부르노 타우트에게 사사받은 건축가의 개인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 실내공간은 오케스트라와 객석이 서로 대면한 전형적인 연주공간의 배치를 무시하고 무대를 건물의 중심에 배치하고 16 개 블록의 객석이 사방에 배치된 아레나스타일로 구성하였다 . 이런 구성은 당시 상임 지휘자였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를 하는 동안 전면에서도 그의 모습을 관객들이 볼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 국내의 예술의 전당 도 이런 개념을 일부 도입하였다 .Berliner Philharmonic 의 역사 .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를린 필하모니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1882 년에 설립되어 125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 지휘자겸 작곡가인 벤야민 빌제의 카펠레 단원들이 처음 설립하였다 . 1887 년 이 오케스트라는 헤르만 볼프가 맡게 된다 . 이때부터 이름을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라고 불리우게 된다 . 1944 년 2 차 대전 당시 옛 건물이 부서지고 , 1963 년부터 한스 샤로운이 설계한 현재 건물을 쓰고 있다 .Berliner Philharmonic 의 주변성 베를린 문화포럼지구 . 독일 베를린 에 있는 문화 지구 이다 . 1950 년대에서 1960 년대에 걸쳐 지어진 콘서트 홀 , 박물관 , 미술관 등이 포함되어 있다 . 독일 분단 시절 서독에 속했던 지역으로 지금의 란트베어 운하와 포츠다머플라츠 사이에 위치한다 . 1958 년 서독 정부는 베를린의 티어가르 텐 지역 가장자리에 문화 지구를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 1959 년 베를린 시의회 에서 베를린 필하모니 의 콘서트 홀 건축이 결정되며 문화포럼 조성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베를린 필하모닉 홀 인접하게 길옆에 설치되어 있는 세계적인 조각가 리차드세라의 조각품 과 신 국립박물관 , 악기박물관 포츠담 광장 등을 볼 수 있다 .1 3. 리차드세라 조각품 ,2. 포츠담광장 . 4. 신 국립박물관 1 2 3 4Philharmonic 의 초기스케치 .Philharmonic 의 도면 한스 샤로운의 형태적 특징은 기능적인 처리를 통한 건축적 공간력의 실현이다 .Philharmonic 의 내부모습 좌석 2 천석에 인상적인 슈케 (Schuke) 오르간까지 설치되었으며 1987 년에는 챔버 뮤직홀이 증축되었다 . 경사진 객석은 포도밭의 언덕 , 관중은 그 위의 나무 , 그리고 천정의 조명과 음향 판은 하늘의 구름으로 은유 된 공간이다Philharmonic 의 내부모습 ▼이동공간이 기하학적인 모양새를 띤다 .Philharmonic 의 외부모습 역동적인 지붕 선은 산 그리고 빛이 투과하는 채색 유리블록은 다양한 태양광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밖의 Hans Scharoun 의 작품 .우리나라로의 영향 . 한가람 미술관 , 디자인 미술관 , 콘서트 홀 , 초월극장 , 오페라하우스 , 국악당 등으로 이루어진 문화시설이다 . 그 중 콘서트홀은 한스 샤로운의 “ 지휘를 하는 동안 전면에서도 그의 모습을 관객들이 볼 수 있도록 하라 .” 라는 개념이 일부 도입되었다 .Finish.{nameOfApplication=Show}
1. 도시경관의 정의도시경관 이란?도시 내에 존재하는 자연적 요소와 건축 기타의 구조물의 구성 등의 인위적 행위가 서로 얽힘으로써 이루어지는 도시미를 일컫는 말. 즉 도시 공간에서 지형, 수목, 건축물, 도로 따위의 구성물이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경관. 시각적 측면에서의 조화나 질서가 중요한 과제이다.도시 공간에는 지형, 수목, 건축물, 도로 따위의 구성물과 사람이 어우러져 도시경관(都市景觀)을 만들어 낸다. 도시계획구역내의 자연환경, 역사, 문화 환경, 시가지, 도시공공시설과 그곳에서의 제반활동에 의해 구성되어지는 경관, 한편 시가와 지역 외부의 농어촌 지역이나 휴양지 등에서 도시경관과 공통성을 가지는 부분, 도시 계획 구역 내 경관의 원경 혹은 배경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연환경도 도시경관의 주요한 범주에 포함되는 것으로 정의한다. 도시 경관은 우리 생활의 의식 또는 무의식까지 많은 영향을 미친다. 도시경관 계획에 있어서는 보이기 위한 경관 조성으로 통일성이 부여되어 있어야 하고, 역사적 경관을 배경으로 생산적 가치를 지닌 경관 조성으로 관광자원화, 또 생활환경조건으로서의 경관 조성은 전원성, 쾌적성 요소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2. 세계 도시경관 사례분석.일본 - 고베·경관형성을 위한 시민협정 체결헤세이 2년(1990)의 경관조례 개정으로 시민 주체에 대한 조직을 제도화하였다. 경관협정은 고베시에서 대상지역을 지정하여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주민 자체의 결의로 협정을 체결하는데, 90%의 동의율을 전제로 한다. 협정은 주로 상가조직이나 자치지구(주민조직)이 있는 경우에 형성된다. 경관협정은 풍속영업단속법(풍영법) 관련 조항의 배제 등 행정주체가 제한하기 어려운 내용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경관협정에 따라 건축행위에 대해서는 현지의 경관위원회와 사전 협의를 한다. 민간지원으로는 협정지구에 대한 시민단체 활동비, 전문가 파견비용, 공공 물리적 환경조성 참여비용(일정비율) 등을 지원한다.· 대규모 건축물 경관 유도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 등은 신고하도록 되어 있으며, 20층 이상 건축물의 경우 사전 협의가 필요하다. 건축물의 배치와 형태에 있어 위압감을 완화할 수 있도록 하고, 현란하지 않은 재료와 색채를 사용하도록 하며 외장에 있어 개방성을 확보하고, 하천 축을 따라서 녹화하도록 한다. 설비물, 주차장, 쓰레기적치장, 조명 등 부속 시설들에 대한 유도방향을 제시한다.·경제적 측면. 하수처리수를 이용한 수력 발전고베(神戶)시는 산에 설치되어 있는 하수처리장의 처리수를 시가지 하천으로 흘려보내면서 경사가 큰 지형의 낙차를 이용, 발전(發電)함으로써 전력을 생산·판매하고 있다. 고베시는 이렇게 생산한 전력을 발전에 필요한 펌프장의 전력으로 사용하고, 남은 전력을 민간 전력회사에 판매하여, 이를 통해 부족한 재정을 보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서유럽어메니티(Amenity)란 용어는 사랑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Amare" 또는 쾌적함을 의미하는 “Amoenitas"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쾌적하고 매력적인 환경" 또는 "보통사람이 기분 좋다고 느끼는 여건, 상태, 정주조건" 등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의미의 새로운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서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농촌 어메니티 운동이 유행하면서 특유의 자연환경과 전원풍경, 지역 공동체문화, 문화유적 등 다양한 차원에서 사람들에게 만족감과 쾌적성을 주는 요소를 통틀어 일컫게 된 이후 도시분야와 경제분야에서도 쾌적함과 만족감을 주는 모든 요소들을 함축하는 용어로 의미가 확대·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도시차원의 어메니티는 건축물, 자연경관, 랜드마크, 사회적 네트워킹 등을 포괄하여 도시에 대한 만족과 지속가능한 삶의 질 향상을 유도하는 제반 여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으며, 영국의 도시계획가 Holford에 의하면 있어야 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The right thing in the right place)으로 정의되기도 한다.이렇듯 유럽 등 선진 외국도시들의 경우에도 공공디자인이 도시의 수준향상과 국가브랜드의 출발점임을 인식하여 위원회를 설치하고 건축물, 공공시설물, 색채, 광고 등에 대한 총괄 기본지침을 마련하여 심의하는 등 도시의 전반적인 경관관리를 시행해 오고 있는 실정이다.결국 여기서 우리가 가져야 할 근본적인 물음은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를 계승한 마천루의 뉴욕이나 빅벤과 버킹엄궁의 런던, 독일식 건축양식과 중국 전통의 건축양식이 공존하는 청도, 아파트 숲이 강변을 뒤덮은 서울 중에 어느 도시가 더 아름다운가? 이다.3. 한국의 도시경관 현황·벽화마을부산 문현동 안동네. 문현동 산 23-1번지 일대다. 문현동에서 전포동으로 넘어가는 전포고개 즈음에 자리 잡고 있다. 외지인들은 주로 돌산마을 또는 안동네라 부르고 마을에 사는 이들은 황령산 자락에 자리잡은 까닭에 황령마을이라고 부른다. 공식적으로는 안동네다. 안동네는 벽화마을로 유명해졌다. 지난해 3월 부산시가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주민들과 학생, 시민 등 자원봉사자 230여명이 참여해 3개월간 벽화 47점을 그렸다. 스산한 회색빛 골목은 화사한 파스텔톤의 아름다운 골목으로 다시 태어났다. 안동네는 ‘2008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 주거환경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명소로 떠올랐다. 어린이집 담벼락에 그려진 30m 길이의 그림 ‘시골마을 운동회 풍경’을 시작으로 재미있는 내용의 벽화가 이어진다.·서울 청계천길이 10.84km, 유역면적 59.83㎢이다. 북악산인왕산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서울 분지의 모든 물이 여기에 모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왕십리 밖 살곶이다리[箭串橋] 근처에서 중랑천(中浪川)과 합쳐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한강으로 빠진다. 2005년 서울특별시가 복개로인 청계천로와 청계고가로의 구조물 노후화에 따른 안전문제의 근원적인 해소, 환경 친화적인 도시 공간 조성, 서울의 역사성과 문화성 회복, 장기적 주변 개발을 통한 강남과 강북의 균형 발전 도모를 위해 추진한 복원사업을 통해 현재에는 서울의 중심 관광지가 되었다.·드림파크세계 최대의 인천 김포 쓰레기매립지를 가을꽃밭, 국화축제라고 이름을 붙여 매년 축제를 이루고 있다. 2011년 10월 2일부터 10월 12일까지 수도권매립지 관리공사 주변에 전시된 국화꽃들은 패기물 매립시 발생하는 메탄가스를 열에너지로 활용하여 수도권매립지 온실에서 공사 직원들과 지역 주민들이 직접 재배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수도권매립지를 알리는 국화축제를 열었다. 쓰레기 매립지라는 이미지를 벗어나 새로운 문화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세계에서 최고의 메탄가스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 자랑스러운 곳이다.·여의도 한강공원여의도한강공원은 정치, 금융, 언론의 중심지인 여의도에 자리하고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 접근성이 좋아 직장인과 일반시민들이 즐겨찾는 명소이자 봄꽃축제, 세계불꽃축제, 각종 공연 및 마라톤행사 등 다양한 행사가 이어져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풍부한 휴식공간이다. 또한 밤섬, 여의도 샛강 등이 비교적 자연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생태학습장 및 자연친화형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한강르네상스 특화사업 등으로 새로 조성된 시설물로는 물빛광장, 수상무대 및 수상분수, 빛의폭포, 너른들판, 천상계단, 피아노물길, 광역여객선선착장, 친수형스탠드, 페스티발랜드, 자연형 호안, 서울색공원 요트마리나, 샛강 상·하류 IC, 샛강 생태공원 방문자센터 샛강 문화의 다리 등이 있다.4. 한국 도시경관의 발전방향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우리나라처럼 난립된 간판과 시설물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시각적 측면에서만 접근해 보아도 조화나 질서가 부족하고 고유한 이미지가 무엇인지 도시 공간 속에서 실현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했었다는 점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도시경관에 대한 문제점이 나타나게 된 원인은 첫째, 그동안 산업화 ? 근대화를 이끌었던 성장제일주의의 도시정책 속에서 미처 삶의 그릇인 도시의 생김새 즉 도시경관까지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 1차적 책임이다. 둘째는 도시 전체의 경관목표를 세우고 이를 실천시킬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미비하였다. 셋째, 시기적으로 다른 개발행위들이 서로 연계되지 못하고 컨트롤 타워가 없어 단편적인 모습으로 중첩되어 이질적 도시경관을 만들어 냈다. 넷째, 일부 전문가나 행정가의 가치관만 반영한 경관규제들이 시민의 공감대를 얻지 못해 민원으로 이어지고 규제 완화 난개발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겪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990년대 후반 이후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쾌적한 환경 조성을 위한 도시 어메니티 플랜을 수립하는 등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환경개선 위주의 녹색플랜이나 자연경관, 역사문화경관 보존과 같은 단편적인 처방에 머무르고 있다는 한계를 갖는다. 그렇다면 도시별로 특화된 어메니티 개발, 특히 심미적 차원의 경관개발을 통해 시민들로 하여금 뚜렷한 아이덴티티와 보다 고차원적인 삶의 질 향상을 느끼도록 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특히 셋방화 시대를 맞아 지역이 모든 활동의 주체가 되는 시점에서 시민들이 공감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지역이미지를 어떤 식으로 창출하고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형태의 도시가 심미적으로 바람직한 어메니티 경관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미적 향수의 주관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우선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논의를 구체화시키려면 과정으로서의 도시계획과 물리적?규범적 수단으로서의 도시계획을 통한 제도화가 모색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도시계획가 뿐 아니라 미학자, 심리학자, 문화예술가, 건축가, 조경학자, 경제학자, 관광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이 모여 학제간 연구를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부문에서도 문화컨텐츠를 담당하는 문화관광부, 계획을 담당하는 건설교통부, 환경을 담당하는 환경부 등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도시경관관리가 우리 도시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제도로서 자리 잡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남의 것을 무조건 모방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고 그 도시의 고유성을 표출할 수 있는 아이덴티티를 정립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과 합의된 통일성이 획일성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후자를 위해서는 실천적 방법론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가로수 길’- 답사 리포트.내가 처음 느낀 신사동의 가로수 길.‘도시환경디자인’의 과목 리포트제출을 위한 현장답사시간이 있었다. 워낙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지라 예시로 주어졌던 인사동 여의도 삼청동 덕수궁 등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은 거의 다 다녀왔던 터라 사실 조금 지루한 느낌의 과제였다. 그러던 중 결국 조원들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가로수 길’을 택하기로 했다. ‘가로수 길’은 고등학교 때 이미 다녀왔었는데 그땐 정말 ‘아, 가로수가 많아서 가로수 길 이구나. ‘실망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두 번 째 21살이 되어 가본 가로수 길은 그때와 달리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훨씬 더 아기자기하게 예뻐진 느낌이었다.가로수 길.삭막할 것만 같은 강남 한복판에 가로수길이 있다. 바로‘예술가의 거리’ 라 불리는 신사동에 위치한 가로수길이다. 압구정동과 신사동 J타워까지 이어지는 은행나무 가로수길은 앤티크한 매장들이 즐비해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을이면 사람들이 낙엽을 보기 위해 이 길을 찾지만 사실 인테리어에 취미가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유명한 곳이다. 건물들은 프랑스의 예술의 거리 소호같이 높은 건물은 거의 없고 대부분 2~3층으로 된 낮은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분위기 있게 꾸며진 카페나 옷가게들이 많기 때문에 길의 전체적인 느낌이 그렇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가로수 길의 장소성.지하철 3호선 신사역부근 J타워에서 압구정동 현대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30년 이상 된 160여 그루의 은행나무가 촘촘히 서이는 은행 나무길, 즉 왕복 2차선 도로를 가로수길이라 부른다.이 도로를 끼고 의류매장과 화랑, 인테리어 업체 등 130여 개가 넘는 다양한 상점 들이 즐비해있는데 숍마다 뚜렷한 개성이 넘쳐 단 하나의‘상징코드’를 찾기는 힘들 정도였다. 또한 다른 로드숍에서 느낄 수 있는 부산하고 활기찬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른 어쩌면 정체된 듯 하면서도 고즈넉한 신사동 가로수길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바로 길과 사람이 만나 어엿한‘하나의 문화’로 탈바꿈한 신사동 가로수 길은 여유와 꿈이 있는 사람들의 거리,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와 맛있는 음식점, 디자이너옷 가게도 함께 있어 먹는 재미,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가로수 길의 역사와 특징.오랜 가로수길 위에 세워진 가게들은 고급스러우면서 특별한 인테리어를 원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곳으로 국내에서 수입되지 않는 유명 디자이너와 브랜드의 제품을 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감각은 일류지만, 청담의 그것보다 다소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맞춤 설계되었다는 것이 이 거리의 특징.”이라고, 우리가 가보았던 'coco'라는 상점에 근무하는 직원이 알려주셨다.대부분 패션 디자이너와 전공학생이나 개성파 패션리더 등 소수마니아층이 많고 구경삼아 들리는‘뜨내기’들이 뜸한 것 또한 이 거리의 특징이라고 하셨다.이전엔 화랑이 많아‘화랑거리’로 불렸던 이 거리는 유학파 디자이너들이 이곳에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샵을 내면서 가로수 길은‘디자이너의 거리’로 급부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화랑거리’가 곧 이 거리의 탄생배경. 무심코 거닐더라도 차마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디자이너 숍들은 눈길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가로수 길의 현황과 물리적 상호관계현재의 가로수 길의 현황이다. 카페와 음식점 옷가게가 가장 많으며, 가로수 길과 상점들의 결합을 눈에 띄게 볼 수 있었다. 상점마다 간 판에‘가로수길 점’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으 며, 밑에서 볼 수 있는 사진처럼 자신들의 샵 홍보효과로 이용하기도 했다. 가장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던 점은 가로수 길 만의 특이함은 사실 간판부터 다르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했 다. ‘현대사회와 공간’이라는 교양과목에서 우리 현대사회에서 가장 달라져야 할 문제점은 간판디자인부터가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었 다. 그런데 가로수 길에서 가장 깨끗하다고 번 잡하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느낀 것은 간판에서 오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했다. 가로수와 걸맞게 간판이 없는 거리의 분위기는 확실히 분위기있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핵심이 되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가로수길의 환경과 상점과의 상호적 관계는 홍보효과 뿐 아니라 상점또한 가로수길의 분위기 연출에 더욱 부각을 더한 듯 했다.가로수 길의 행동변화.가로수 길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은 20대에서 30대가 가장 많았다. 주 연령층이 20대에 속했으며 30대 초반까지도 많은 행동반경에 속했다. 상점 또한 20대를 겨냥한 화장품 숍이나 옷가게가 많았으며 카페나 음식점의 내부 디자인 또한 20대에 눈높이를 많이 맞추었다.실제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인데, 대부분은 연인이나 친구들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도 카페에서 휴식을 취하며 옆에 앉아계신 분들게 몇 개의 질문을 해보았는데, 가로수 길에 얼마나 자주 오냐는 질문에 동네이고 신사동에서의 번화가이기 때문에 자주 오는 편이라고 하셨고 가로수 길 바로 옆에 사신다는 분도 계셨다. 번화가 답지 않게 가로수 길에서 옆 골목골목 사이는 전부 빌라나 주택단지로 이어져 있었는데, 이로 인해 가로수 길은 그냥 자신의 동네라며 가로수 길만의 참신함과 색다름은 잘 못느끼고 산다고 대답하신분도 계셨다. 하지만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가로수 길의 사진을 보고 찾아오신 분이 대다수이고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추천받고 데이트코스로 온 연인 분들이 많았다.앤티크와 모던한 인테리어 샵을 함께 볼 수 있는 가로수 길.‘인테리어 거리’ 로도 유명한 가로수길의 매장들은 유럽 등지에서 들어 온 수입품이 주류를 이루는 만큼 가격은 만만치 않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찾기 힘든 소품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했다. 이곳처럼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스타일의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들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거리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모던한 생활용품 등 자잘한 소품들을 한 번에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한 샵에 근무하는 언니는 품목별로 한 집씩만 들러도 200m 길을 통과하는데 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했다. 요즘에 가로수 길에‘미래와 희망’이라는 유명 산부인과를 중심으로 고가 아동복 매장과 다양한 종류의 샵, 스튜디오 등이 들어섰는데 그래서 가로수 길을 요즘 에는 ‘강남의 충무로’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했다.걷다 지치면 예쁜 카페에서 다양한 브랜드의 커피나 차를 마시며 쉬어가는. 청담동처럼 부담스럽지 않고 압구정동처럼 번잡하지 않은 고즈넉한 분위기가 있어 굳이 쇼핑을 하지 않더라도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어도 아주 좋다고 느꼈다.가로수 길의 시설물.▲여러작품을 모은 앤티크 갤러리 ▲신사동 가로수 길의 벽화.가로수 길을 다니며 근처 시설물을 찾아봤지만, 특별한 시설물은 찾을 수 없었다.‘거리’라는 것이 음식점이나 카페위주로 되어있어 시설물 찾기가 힘들었다. 단 한가지 찾은 것이 역시나 가로수 길은 디자이너의 거리답게 여러 작품을 모은 앤티크 갤러리와 벽화였다. 갤러리는 인테리어를 신경 쓴 만큼 거리와의 어울림과 갤러리 주변의 전체적인 분위기까지 앤티크한 느낌이 들었었다. 벽화는 중간 중간 아무무늬 없는 곳이거나 뚜렷한 특징이 없는 골목 사이에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상점마다 골목의 벽까지 자신들의 상점 특징, 예를 들어 구두상점 같은 경우 구두를 그림으로 그려 벽에 걸어두거나 하여, 상점을 홍보하는 것들이 많아서 벽화도 많이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대단한 시설물은 없지만 정통 에스프레소의 향과 맛을 음미하며 오리지널 앤티크 가구와 소품을 감상할 수 있는 앨리앤틱과 예술과 생활의 조화를 추구하는 인테리어 소품전문매장인 아트앤 라이프, 그리고 건축 , 인테리어, 그래픽 디자인 등 디자인 서적들을 전시, 판매하는 아트 앤드림 등을 둘러봄직하다.가로수 길의 단점.가로수 길은 요즘 정말 'Hot'한 트렌드가 되고 있다고 한다. 매출도 오르는 추세이 고, 옷가게나 상점 주인 분 들은 숍도 점점 더 많아지고 사람도 훨씬 더 유동성이 높 아졌다고 대답해주셨다. 그 러나 아직 개선점은 많다고 생각했다. 가장 큰 단점은 가격이 너무 높게 제시되어있다는 점이다. 우리들이 들어간 카페에서도 15000원, 10000원을 훌쩍 넘긴메뉴는 부담스러워져서 나오고 싶었다.이 가게 뿐아니라 가로수 길에 있는 대부분의 카페가 가격대 전부 6천원에서7천원 선이기 때문에, 값이 저렴한카페를 찾기 힘들었다. 20대를 겨냥한카페의 예쁜 인테리어나 소품 하나를신경 쓴 이미지가 아주 좋게 느껴졌지만그에 따른 메뉴의 가격대는 소비자로서 불만족스러운 경우였다.두 번째로는 외국인의 관광명소로서의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가로수 길에서 혹은 카페에서 외국인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백인 흑인 일본인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가로수 길을 거닐고 있었다. 실제로 옷가게의 경우 직원언니들은 일본어 영어 등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많았으며, 일본어로 홍보를 하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외국인이 가로수 길을 특별하게 느낄만한 그 무언가는 없었다. 서울 명동, 홍대 거리와 특별히 다른 점도 없었으며, 우리가 카페에서 만난 외국인 또한 그런 말을 해 주셨다. "아주 예쁘다는 가로수 길이어서 신사동까지 어렵사리 왔지만 그 만의 특별함을 찾지 못하겠다. 카페에서 비싼 커피를 마시는 것이 가로수 길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 이라며 좀 더 볼거리가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의견을 내주셨고, 어떤 일본분은 카페나 음식점 등 가로수 길 만의 특별한 먹거리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도 충분히 동의하는 바였다. 외국인이 느끼기에 가로수 길은 전혀 참신하지 않다. 가로수 길 사이로는 차들이 다니는 통에 가로수의 참맛을 느끼기에 혼잡하고 매연이 가득이었으며 좁은 골목이다 보니 흔한 노점도 구경할 수 없었다.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카페는 사실 지루한 트렌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