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관습에 따른 기독교 가치관과의 충돌”1. 배경지식1) 마사이족의 일반적 개요나일로트계(系) 흑인종이다. 평균 173 cm의 큰 키에 고수머리, 단정한 용모에 암갈색 피부가 특징이다. 남자는 송아지나 염소가죽으로 된 케이프를 걸치고, 여자는 케이프나 스커트를 착용하며, 머리는 붉은 흙으로 굳힌 이상한 모양의 헤어 스타일로 꾸민다. 주거는 반원형의 낮고 작은 진흙집으로, 우기(雨期)에는 모피(毛皮)를 지붕에 덮는다. 남자들을 중심으로 몇 가족이 작은 마을을 이루어 100∼200마리의 소 외에도 염소 ·양 ·당나귀 등을 사육한다.농경은 하지 않으며, 소의 생혈(生血) ·젖 ·고기를 식용한다. 소는 그들의 독점물이라는 부족의 신화(神話)에 따라 부당하게 소를 소유하고 있는 다른 종족으로부터 약탈하여 오는 것을 의무로 생각한다. 토테미즘을 신앙하고, 씨족외혼(氏族外婚)을 행하며, 사회조직은 남자를 중심으로 한 연령집단으로 이루어진다. 남자는 15세 전후에 할례(割禮)를 받은 다음 연령집단에 가입하여 전사(戰士)가 된다. 전사는 소의 약탈과 다른 종족의 습격을 방어하는 것이 임무이며, 타조의 깃털로 머리를 장식하고 긴 창과 방패로 적과 용감하게 싸운다. 전사는 미혼여성에 대한 성적 자유, 우유와 쇠고기 등을 어느 가정에서나 요구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2) 마사이족 분석마사이족은 사냥과 목축업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부족 끼리에 잦은 전쟁이 있다. 그러기에 남성들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 되었고 남성들의 위치가 더욱 상승 하였다. 그 이유는 부족들 간에 전쟁, 사냥, 목축업을 할 때에 들짐승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했고 상대적으로 여성 보다 힘이 강한 남성들이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은 남성을 지닌 부족이 더욱 힘이 강한 것이고, 많은 남성들로 이루어진 가족들이 부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그리고 남성들은 부족들 간에 전쟁, 사냥, 들짐승으로 부터 방어를 하다보면 사상자가 많이 나오고 의학의 발달이 안 된 마사이족들은 사망자가 늘어 날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많이 필요한 남성들은 점점 줄어들고 남녀비율이 남성이 줄어들어서 여성들의 수가 증가 하였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많이 필요로 하는 남성의 수가 적고 여성의 수가 많기 때문에 남성 한명에 많은 여성들이 결혼을 하고, 또한 결혼한 남성이 다른 남성과 결혼한 여성들과의 성관계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남성들의 지위가 높으므로 성적 쾌락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족이 평화롭게 살아가려면 많은 남성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부족이 살아가기 위한 방법 중에 하나로 이해를 해야 한다.또한 마사이족의 종교적인?개념은?복잡하지?않다.?엔카이?-?‘신’,?‘하늘’,?‘하늘?신’?등?다양하게?번역?-?는?한때?지구와?하나였는데,?점차?분리가?되었고,?마사이에게?호의를?베풀어?가축을?보냈으며?땅?위에?거하는?모든?사람들보다?마사이가?엔카이의?자비를?받았다고?믿었다.?이런?핵심적인?종교?신화는?아주?문자?그대로?해석되어지고,?마시아족에게서?소를?버리는?것은?자신의?품위를?떨어뜨리는?일뿐만?아니라,?엔카이의?자비와?축복에?대한?무례함이다.?마사이족?가운데는?-?특별히?탄자니아에서?-?그들의?유목?방식을?포기할?수밖에?없도록?하여?지정된?지역에만?정착하도록?강요당하는?그룹이?있다.?그러나?케냐에?있는?대부분의?마사이족은?전통적인?방식에?강력하게?고착되어?‘닭처럼?땅을?갈면서’?농사짓는?것을?경멸하며,?가축에?생계를?완전히?의존한?채?살고?있다.?일상의?인사가?‘당신의?가축이?잘?있기를?바라오’?에서?보듯이,?또?황소를?잡는?의식이나?의례에서?나타나듯이,?모든?삶이?가축을?중심으로?발달하였다.2. 내용요약해럴드?커민스과 아내 베티는 16년 이상 남침례교 선교사로 주로 캄바족이 있는 코스에 머물면서 사역했다. 여태까지?마 사이족을?전도하는?데?성공한?침례교인은?한명도?없었고,?케냐마사이족?가운데?세례?교인은?한?명도?없었다.25~30명의 여성들과 많은 어린이들, 좀 나이 많은 아이들이 성경 공부와 예배에 참석했다. 그러나?마사이?남성들-학교?교장이며?반은?마사이?혈통이고?반은?키쿠유족인?마이클?음비티를?제외하고는 전혀?관심을?보이지?않았다. 두?달?전?10명이?넘는?여성들이?세례?받고?싶다고?말했다.?아내와?나는기뻤다.?왜냐하면?그들이?세례를?받는다면?마사이?교회의?중요한?기초가?될?테니까.?더?놀라운?것은,?우리가?세례에?대한?강조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지 성경을 공부하는 동안, 성경에 나오는 에티오피아내시아 빌립보의 간수처럼 성경공부에서 나타났을 뿐이었다.만약?내가?지금?여자들에게?세례를?준다면,?나는?기독교가?여자들에게?적합한?신앙이고?남자들을?위한?것이?아니라고?모든?마음?사람에게?말하는?것이?된다.?게다가?그?여자들에게?지금?세례를?준다면,?나는?그들의?일부다처제를?아무?문제없이?받아들이는?것으로?해석될?것이다.?베티와?나는?특별한?경우를?제외하고는,?그전에?일부다처제에?대해?고민해?본?적이?없다.?그러나?마사이에서?일부다처제는?일반적이다.?일부다처제인?사람에게?세례를?베푸는?것은?나에게는?문제가?된다.?또한?많은?케냐?목사님과?평신도지도자에게?큰?문제가?된다.?여기?동아프리카의?개신교?교회는?나름대로의?전통을?가지고?있고,?일부다처제에?관한?전통은?아주?오래되었고?그?뿌리는?매우?깊다고?보고?있다.하지만?동아프리카의?기독교인들?사이에는?복혼제에?대한?통일된?입장이?없다.?사실?다양한?의견과?실천이?있다.?그러나?개신교가?일반적으로?해왔던?것은?복혼제의?남자가?아내?한명을?제외?하고?나머지를 보내기?전까지는?세례를?거부한다.?어떤?교파는?남편에게?첫?번째?아내하고만?살고?다른?아내는?보내라고?하거나,?어쨌든?아내?중?한?명만?선택하라고?한다.?이론적으로는?남편은?모든?아내를?부양할?책임이?계속되지만,?첫?번째?아내와만?부부로?산다.몇몇?개신교?교회는?첫?번째?아내에게만?세례를?주어왔다.?다른?교회는?남편을?제외하고?모든?아내에게 세례를?주려고?한다.?만약?내가?이?마사이?여자들?중?어떤?사람에게?세례를?준다면,?나는?수많은?현지인목사님과?평신도?사역자와?갈라서게?되는?위험을?감수해야?한다.?또한?여자들에게만?세례?주기?시작하면,?마사이?남자는?기독교에?대해?어떻게?생각할?것인가?하는?질문이?뒤따른다.?마사이?문화는?완전히?가부장적이다.?나는?남자들의?허락?없이?여자들에게?세례?주는?게?두렵다.?만약?그들이?동의한다고?해도?무엇이?가장?현명한?방법인지?모르겠다.3. 문제제기1) 여자들에게 세례를 주어야 하는가?2) 여성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면 남편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3) 여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면 다른 선교사들과의 마찰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4) 복혼제에 대해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4. 해결방안1) 여자들에게 세례를 주어야 하는가?여기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세례를 주는 방법 이다. 세례를 주는데 일부다처제는 문제가 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세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공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죄인과 의인을 불문하고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를 믿는 다면 자녀로 삼아 주시기 때문이다. 즉 세례의 본질적인 의미만 따진다면 일부다처제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는 문제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사형수에게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대해서 확답을 받는다면 세례를 준다. 사형수가 된 대부분의 이유는 흉학범 살인, 강간 등의 죄를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보는 앞에서의 형식적인 죄에 대한 회개만 듣고도 주는 경우와 이러한 죄에 대한 형식적 회개도 없이 세례를 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들 사형수들의 회개가 진실 되게 이루어 졌는지에 대해서 알 수 없다. 그런 자들에게도 세례를 주었는데 일부다처제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줄 수 없는 가에 의문점이 생기며, 세례를 받는 모든 사람들은 과연 죄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세례를 받았나 하는 의문점이 생긴다. 당연히 죄가 전혀 없이 세례를 받은 사람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럼 죄의 크기의 차이 때문에 세례를 줄 수 없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그 죄에 크기에 따라서 자녀로 삼으시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점이 생긴다. 그렇기에 비록 그들이 일부다처제를 유지 한다고 하여도 세례를 주어야 된다고 본다. 그러나 일부다처제는 세례를 준 후에 변화 시켜야 된다고 본다. 일부다처제를 찬성하거나 인정하는 것은 전혀 안이다. 일부다처제가 세례를 주는 것에 문제가 되지 않는 다고 보는 것이다.둘째로는 세례를 줄 수 없다는 관점이다. 세례의 본질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성도들 앞에서 공포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례의 본질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형식적인 의미 또한 무시 할 수 없다. 이러한 것을 무시하게 되면 교회의 전통을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기본 교회의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당장 세례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계속 성경공부와 교육 등을 통해 일부다처제를 거부하게 될 때에 세례를 주어야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세례의 형식적인 의미는 세례를 주기 위해서는 문답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러한 문답은 세례를 받는 자들이 비기독교인들에 비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중점적인 내용이다. 그렇기에 비기독교인이 일부다처제를 허용한다면 기독교인으로서 세례를 받는 자들은 일부다처제를 거부하는 정도의 발전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2) 여성들에게 세례를 주었을 때에 남편들이 반대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마사이족 문화는 목축업의 발달이 된 사회이다. 목축업과 사냥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렇기에 마사이족은 목축업이 당연히 삶의 중요한 부분 중에 한 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부족에게 현대 과학으로 진화된 목축업에 대한 지식들(소가 병에 걸렸을 때 치료하는 법, 소의 젖이 많이 나오게 하는 법 등)을 가르쳐준다. 또한 지금 이들이 사는 곳은 ‘엘마민’이라고 불리는 불모지 이다. 이들은 물을 구하기가 힘들 것이다. 여기서 우물을 찾을 수 있는 지식이나 도구들이나 집적 우물을 파주는 등의 이들의 필요부분을 찾아 채워주면서 관계형성을 먼저 이루어진 뒤에 다시 세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고 본다.
종교개혁자들과 선교-칼빈을 중심으로-목 차Ⅰ. 서론 2Ⅱ. 본론 21. 종교개혁자들의 선교 21.1 쯔빙글리 31.2 루터42. 칼빈의 생애에서 바라본 선교52.1 해외 선교52.2 문서 선교52.3 교육 선교62.4 봉사 선교63. 칼빈의 예정론과 선교 7Ⅲ. 결론 8Ⅰ.서론종교 개혁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선교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어떤 활동을 했었는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선교 신학자들은 “종교개혁자들에게는 선교활동이 없다”고 가혹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나 루터교 정통파신학자인 필립 니콜라이는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 반반하면서,“종교 개혁자들에게는 선교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종교개혁자들이 ‘교회의 확장을 위해 선포한 것’도 역시 ‘선교사역을 위한 파송’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종교개혁자들의 선교적 측면의 평가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연구와, 신학연구에 비하면 선교적인 부분은 많이 미흡했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이렇게 종교 개혁자들의 선교적 측면을 평가가 다른 이유는 선교를 어떻게 보는 가에 대한 차이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로마가톨릭 신학자들이 정의하는 선교의 의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1910년 처음으로 가톨릭 신학을 쓴 요셉 뮤미들은 선교를 이슬람교, 유대교, 동방종교 및 모든 이교도인들 까지 포함하여 ‘비기독교인을 기독교화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랄프 윈터는 선교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였다. 그는 선교의 개념을 지리적으로 E0,E1,E2,E3 으로 정의 하였고 교회의 개혁과 부흥은 E0에 속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모든 황동이 다 선교라는 것이다.본 저자는 랄프 윈터의 선교의 개념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다른 선교의 개념보다는 저자의 선교의 개념과 비슷하기 때문에 랄프 윈터의 선교의 개념을 가지고 종교개혁자들이 선교적인 측면에 대해서 칼빈을 중심적으로 조사 연구를 하여 종교 개혁자들의 선교가 어떠하였는지 찾아보려고 리가 1525년에 이룬 교회개혁은 선교적인 측면에서 평가해 볼 때 선교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미사폐지, 성찬식을 기념설로도 수용자중심이지만 예배 중에 사용되던 라틴어를 사용하지 않고 독일어로 사용함으로서 전달 중심의 전달방식에서 수용자 중심의 전달방식으로 변화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예배를 독일어로 드림으로서 청중 즉 신자들에게 더욱더 가까이 다가간 것을 알 수 있다.1.1.2 성경번역 선교츠빙글리는 “나는 젊은 시절에 동년배들처럼 인간의 가르침에 지나칠 정도로 몰두 하였다. 내가 전적으로 성경 연구에 몰입하였다. 내가 전적으로 성경 연구에 몰입할 때면 항상 신학과 철학이 나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말씀으로부터 직접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터득했다.” 말했다. 성경을 하나님에게 직접 조명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성경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직접 읽어야 하며, 성경을 연구하며 인간 주석가나 인간에 판단에 따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빛을 구해야 한다고 한다.그리하여 츠빙글리는 목회자 성경공부를 통하여 1524년에 독일어 신약성경을, 1530년에는 신구약 전권을 번역하였으며, 주석 작업을 마치게 하였다.1.1.3 모달리티가 중심의 선교츠빙글리의 사역들과 사상들을 보게 되면 소달리티(Sodality)적인 부분이 있었냐 하면 전혀 없다고 대답할 수가 있다. 그러나 츠빙글리에게 선교가 아예 없었냐고 물어본다면 그것은 또 아니다. 그에게는 모달리티(Modality))적인 선교가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모달리티(Modality)적인 선교는 구심적(Centripetal))인 선교를 했다고 볼 수 있다. 구심적인 선교는 신앙개혁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츠빙글리는 부패된 카톨릭을 보고 취리히인들 에게 교회로 와서 듣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다.1.2 루터루터의 작품에 나타난 선교란 인류를 위해 선한 의도를베르그(Wittenberg)로부터 남쪽에 있는 슬라브(Slavs)로 갔다. 아이스란드의 고트챨켄(Gottschalken), 스웨덴의 올라브(Olave)와 로우렌스 페터슨(Laurence Petersen), 덴마크의 마틴 라인하르트 (Martin Reinhard)와 한스 타우센 (Hans Tausan), 발틱 지역의 브리스만(Brissmann)과 스페라투스(Speratus), 폴란드의 라스키(Laski)와 다수의 이주 학생들과 헝가리의 데바이(Devay),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이 개혁운동의 확장을 위한 열쇠가 되는 사람들이었다. 루터에게서는 이런 복음 전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의 확장을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루터의 관점에서 본다면 말씀을 들었던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우리”(God's fold) 밖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2. 칼빈의 생애에서 바라본 선교적 측면2.1 해외 선교칼빈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역을 하였다. 칼빈의 생애를 보면 칼빈이 특별히 기독교가 전해지지 않은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선교사를 파송하는 모습을 보였다. 칼빈이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는 크게 두 곳이다.첫 번째는 유럽이다. 칼빈은 1555년 사역에 안정을 찾게 되자 10넌 동안 외부 선교에 집중을 하게 된다. 칼빈은 자신의 조국인 프랑스의 복음화를 소망하였다. 그는 프랑스의 각 지역에서 쇄도하는 목회자 요청에 응답하여 선교사를 파송할 뿐 아니라, 권서를 통하여 복음 신앙 서적을 보급하기도 하였다. 깔뱅은 1555년에서 1562년까지 공식적으로 88명의선교사를 프랑스로 파송했다. 당시 박해 상황으로 인해서 익명으로 파송한 선교사의 숫자까지 합친다면 적어도 두 배는 더 되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2150여 개의 교회가 제네바 교회의 모범으로 개척되었고, 개신교의 수도 7년여 만에 300만정도로 급증하였다. 칼빈의 제네바 교회와 아카데미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의 전 지역으로 전도자와 선교사를 파송하였다.두 번째는 브라질이다. 칼빈족들에게 드리는 인사말”이라고 제목을 붙인 서문을 섰다. 칼빈은 서문에서 성경이 제 나라 말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역설 하였는데,이는 모든 신자들이 성경에서 직접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칼빈은 1545년 이후 불어로 출판된 신약성경의 서문을 섰다. 이 서문의 머리말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드리는 인사말”이라고 되어 있으며, 서문에서 그리스도가 구약을 완성시키는 새 언약의 중보자로 찬양을 받으실 분으로 기록 되어있다.“우리는 복음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라고 칼빈은 말하였다. 1535년 판에만 등장하는 라틴어 서문에서 성경이 자국어로 번역되어야 됨을 역설한 것에 대하여 최정만은 칼빈이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 지도층들은 일반 민중들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박탈했을 뿐 아니라 민중들이 말씀과 접촉하는 최소한의 기회조차도 허용하지 아니했음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며, 칼빈이 성경을 토착적인 언어로 번역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 자체가 깔뱅의 토착화 선교의 일단계이다. 라고 주장했다.)114)이렇게 깔뺑이 성경 번역에 참여한 것은 문서 선교에 가장 큰 역할 중의 하나로 남을 것이다.2.3 교육 선교1536년 칼빈이 제네바에 가게 된 것은 파렐의 초빙에 의해서 인데, 그 직무는 성경 교사로 시민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기독교 강요를 불어로 번역하며, 어린이 교육을 위하여 교리 문답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칼빈은 특히 어린이들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울였는데, 칼빈이 제네바로 돌아온 후 몇 일만에 제네바 교회의 교리 문답을 작성하여 1541년 11월 말에 발간하였다. 칼빈이 교리 문답을 만든 것은 제네바 시민들이 교리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교리에 대한 지식이 신앙생활의 기본적이라고 생각한 그는 제네바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교육이라고 확신 했다.이 일을 위해 그는 제일 먼저 아이들을 위한 교리 문답서를 만든 것이다. 칼빈이 가장 크게 강조했던 교리 문답은 주하였다. 그러나 당시 칼빈이 빈민 문제에 대하여 또는 피난민들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제네바 시민들에게 성경의 근거를 제시 하면서 물질적인 재산을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데 사용하라고 가르쳤고, 또 이에 따라서 유산을 기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이 기금의 운용은 기부자들이 선출한 평신도 집사에 의하여 운용되었는데, 집사들은 운용의 원칙에 있어서 자립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무상 지원 보다는 대출 형식을 더 선호 하였다.)집사들은 이 기금을 선교적인 목적으로도 사용하였다. 칼빈의 성서 강의나 설교를 받아 적는 속기사를 고용하기도 하고, 칼빈의 작품이나 시편 찬양집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이 기금이 프랑스의 선교와 연관되어 있었으므로 집사들은 목사회를 대신하여 프랑스로 선교사를 파송하거나, 선교사로 파송된 사람들의 아내들을 돌보는 일에도 기금을 사용하였다.3. 칼빈의 예정론과 선교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예정론을 목회적 관찰로 시작한다. 말씀 선포로 복음을 듣는 자 모두가 똑같이 감동하지 않는다는 실제 상황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듣는 자 중 어떤 자는 믿어 구원에 이르고, 어떤 자는 그렇지 못할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칼비은 이 차이점에 대한 대답을 예정론으로 하고 있다.)복음의 선포를 통해 대비되는 신자와 불신자의 태도로부터 예정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칼빈의 예정론은 신앙에 의해 나온 것으로서 귀납법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복음의 선포인 부르심은 선택이라는 원천에서 흘러나오며, 선택의 주체가 하나님이므로 값없는 것이라는 것이 강조된다. 보편적으로 부르심을 받을 때 모두가 다 믿음으로 응답하지 않는다. 선택을 받은 사람은 믿음으로 응답하지만 유기된 사람은 믿음으로 응답하지 못한다.하나님은 외적인 복음 선포를 통해서 일반적 부르심으로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자신에게로 부르시는데, 복음을 사망에 이르는 냄새로서) 또 더욱 엄격한 정죄의 기회로서 제시하는 사람들도 부르신다.) 그러나 개별적 부르심
1.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개요1) 배경① 데보티오 모데르나 운동그리스도를 본받아 는 ‘데보티오 모데르나’ 운동을 배경으로 기록되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의 배경이 된 ‘데보티오 모데르나’ 운동은 암울한 시대상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었다.곧 교회 권위와 영성의 위기, 흑사병에 대한 두려움, 스콜라 신학의 지나친 사변성에 등에 대한 신앙적 반응이었던 것이다, 그 결과, 경건의 실천을 강조하고, 세상의 헛됨을 경사하며, 개인적 회심과 내적 갱신, 그리고 공동체적 삶을 통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심화시키려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당시의 상황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와 실천적 경건의 강조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에도 잘 나타나 있다.② 성경그리스도를 본받아는 마치 성경 본문의 여러 구절들을 엮어 만든 모자이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본받아 에는 성경구절들이 얼마나 인용되어 있는 것일까? 먼저 1904년에 M.J.폴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에 나타난 성경구절 1061개를 분간해 놓은 바 있다. 또한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성경을 인용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것을 이 유일하신 말씀과 관계시키고 이 우일하신 말씀 속에서 보는 사람, 이 사람의 마음은 가히 요지부등하기에 하나님 안에서 계속 평안을 누리며 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마음에 불을 일으키고 영혼을 조명하며, 통회로 이끌고 온갖 위로를 가져 온다.” 고 말한다. 또한, 성경을 읽는 방식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가령“만일 그대가 유익을 얻고자 한다면, 겸손하고 단순하면서도 성실하게 성경을 읽으시되, 결코 앎의 명성을 얻으려 하지 말라”고 한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우리는 말재주가 아니라 진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은 그것이 기록된 성령으로 읽혀져야 한다.” 고 말한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본받아 에는 수많은 성경구절들이 인용하였기에 성경을 배경으로 썼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2) 토마스 아 캠퍼스의 생애토마스 아 켐피스의 삶에는 특별히 획을 긋는 면이 별로 없다. 세상을 방황하며 결국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찾은 어거스틴의 삶과는 다른 모양을 가진다. 고요한 개혁자로서 토마스는 거의 한평생인 70년 이상을 수도원 작은 골방에서 보냈다. 그는 1379/80년 독일 켐펜(독일 중부 도시 뒤셀도르프에서 북서쪽 근교에 위치)에서 평범한 수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그는 네덜란드의 데벤터(Deventer)와 빈데스하임(Windesheim)에서 학교를 다녔는데,여기서 ‘공동생활 형제단’을 알게 되었다. 1399년 그는 플로렌치우스 라데베인의 권유로 츠볼레(Zwolle) 근교 성(聖) 아그네스 수도원(어거스틴 수도원)에 입신하였다(서약은 1406년). 이곳은 그의 형 요한이 수도원장으로 봉직하던 곳이었다. 그는 이 수도원에서 1414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토마스는 그렇게 큰 학식은 소지하지 못했으나, 성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그의 영적인 향기였다. 한마디로 그는 성서 안에서 믿음의 삶을 산책하고 그리스도의 품을 거닐었던 수도승이었다. 그의 소명직은 성서를 포함한 사본들을 필사하는 것이었다. 그의 필사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여전히 그가 베낀 성서본은 오늘도 끝없는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한평생 그는 성서를 네 번이나 필사하고 미사서와 중세의 신비주의자인 성(聖) 클레아보의 버나드의 저서 등을 옮겨 적었다. 또한 그는 아그네스 수도원의 사가(史家)로서, 그리고 수도원 부원장으로서 자신이 속한 수도원 생활에 최선을 다한 활동적인 명상가였다. 이러한 그의 수도원 생활은 주저「그리스도를 본받아」를 통하여 시대 초월적인 정점을 이루었다. 이것은 수도원 문학의 전형적인 작품으로서 세상에서 (성경 다음으로) 두 번째로 많이 인쇄. 판매되고 읽힌, 중세 경건 문학의 금자탑을 이룬 책이다. 토마스는 여러 직분 가운데서도 우선 수도원 초신자들을 돌보는 일을 자신의 주요 직분으로 삼았다. 그는 수도원을 떠나는 일이 거의 없었고 수도원에서 사본 필사와 서적 집필을 하며 목회자로서의 본분에 충실하였던 타고난 수도승이었다. 일생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애쓰던 토마스는 1471년 7월 25일에 그렇게도 갈망하던 그리스도의 품에 안겨 한 많은 세상 소용돌이를 벗어나 빛과 찬양의 세계로 떠났다.3)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으며 주의할 점① 성경 해석의 관점「그리스도를 본받아」가 쓰인 시대에는 성경 해석이 현재와 다르다 현재는 문법적인 해석을 중심으로 해석을 하였지만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쓰였을 때에는 문자적인 의미 그 자체 보다는 내용에 포함된 영적인 의미를 찾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성경해석과 다르게 성경해석을 하였다는 것을 인색해야 된다.② 외경의 사용저자는 본 저서의 내용을 전개함에 있어서 정경으로 인정된 66권뿐만 아니라 외경인 ‘지혜서, 집회서, 마카비서’등을 인용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③ 로마카톨릭 신학 사상「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다 보면 개신교의 신학 사상보다는 로마 카톨릭의 사상이 더욱 많이 나타나 있다. 3부의 나타난 구원론이 개신교의 신학 사상인 순간구원론이 아닌 로마 카톨릭의 신학 사상인 평생구원론이며 4장에 나온 성례예식 또한 개신교의 신학 사상인 영적임재설이 아닌 로마카톨릭의 신학 사상인 화채설이다. 등등 현재 개신교와는 다른 신학적인 사상을 지닌 자가 저자인 것을 잊으면 안 된다.2. 「그리스도를 본받아」 요약1부는 신앙인의 삶에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그것은 무엇보다도 세상과 헛된 지식을 경시함으로, 자극(自剋)과 마음의 통회를 이루어 마음의 평화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관건은 겸손에 달려 있다. 이 겸손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조용히 따르는 데서 오는 겸손이다. 아울러 이것은 자신을 가만히 성찰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과 세상의 허영을 벗어나 진리의 가르침을 따르는 데서 오는 것이다. 마음의 단순함이 교만한 지식보다 낫다는 것이다.2부는 내적인 믿음생활을 위한 권고들을 다루고 있다.여기서 토마스는 세사의 외부적인 관심 보다는 내적인 변화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이 변화는 모든 것을 넘어서서 예수를 사랑하고 그와 우정을 맺고 그의 왕도(王道)인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이룩된다. 인간의 순간적 위로는 하나님의 위로에 버금가지 못하며, 하나님의 위로야말로 신앙인을 평화로 이끄는 것이다.3부는 내적인 위로를 다루는데, 대언(對言)방식이 바뀐다.즉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와 제자인 신앙인과의 대화체로 글이 전개된다. 주인과 종의 관계, 주님과 아들의 관계로 신앙의 규범들이 상세히 서술된다. 1부에서 의지가 강조된다면, 여기서는 은총이 주 역할을 담당한다. 인간에게는 아무런 선한 것도 없기에, 자신을 비우면 비울수록 그는 은총 안에서 참된 자유를 얻는다. 참된 위로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 얻어질 수 있으며, 경건한 사람은 언제나 이를 위하여 위안자인 예수를 지니고 있다.4부는 인간이 하나님과 신비적인 합일을 이루는 거룩한 성례인 성만찬을 다룬다.논술체도 3권과 마찬가지로 주님과 제자간의 대화를 통하여 성만찬과 신앙인의 대응 관계를 논한다. 성만찬을 올바로 받기 위하여 인간의 죄된 성품에 대한 자기 고백이 있어야 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성만찬에 참여함으로써 신앙인은 경건의 은총을 얻을 수 있다. 특별히 4부의 성만찬 내용은, 오늘날 성찬의 의미가 약화된 개신교 교회에 새로운 각성이 될 내용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그 어떤 조직적인 사상 체계를 기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심지어 ‘그리스도의 본받음(추종) 사상’ 또한 이 책에서 주도적인 관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밖에 토마스는 이 책에서 그 당시의 종교적인 관행인 성지 순례와 성물 제도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바로 이 점에서 토마스는 후대에 가톨릭교회의 내부 개혁이나 루터의 종교개혁과 같은 선상에 있다.3.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읽고 느낀점「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을 읽고 난 후에 많은 생각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특히 현제 교회에서 사역을 하면서 교회에서 가르치는 양들의 영혼의 성숙보다는 양들의 수에만 신경을 썼던 것에 대해 많이 생각이 났었다.「그리스도를 본받아」는 개개인의 영성수련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많은 신앙서적들이 인기를 얻었던 이유는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과 마찬가지로 개개인의 영혼의 성숙의 깊이를 키워주는 책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쓰였던 당시나 현재의 교회나 외형적인 성장에 신경을 쓰는 추세였기 때문에 영적 수련에 강조를 하는 곳에 인기가 있다.그러나 한국의 많은 목회자들은 강단에 서서도 기복주의적 설교를 전하고 있다. 교회에 나와서 봉사를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 하고 기도를 열심히 드리고 예배를 잘 드리면 세상에서의 많은 것들이 풀린다고 설교를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교회 즉 기복주의적 설교를 전하는 교회보다는 영적인 성숙을 위해 말씀을 전하는 새롭다고 생각이 드는 교회들이 인기가 있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모여든다.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또한 인기가 있었던 이유가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짐작을 해보았다.한국교회는 외형적인 성장을 위해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시간과 금액을 사용한다. 그러나 신자들의 영적인 성숙을 위해서는 인력, 시간, 금액의 사용의 비율이 낮다. 한국 교회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책을 보면서 깨달아야 할 것이다. 현재와 같이 외형적인 부분에 집중을 하다보면 결국 형식적인 신자들의 수만 늘어갈 뿐 실질적인 영적으로 성숙한 신자들의 수는 점차 줄어들 것이다.
토마스 아 캠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목 차Ⅰ. 간략한 요약 2Ⅱ. 신앙적인 핵심 가르침 3ⅰ. 하나님과 연합을 이루는 4단계. 3ⅱ. 공동체의 생활에 관하여 4ⅲ. 영생(구원)에 관하여 6ⅳ. 성찬식에 관하여 7Ⅲ. 영향력 9ⅰ.받은 영향력 9ⅱ.끼친 영향력 10Ⅳ. 현대교회에 적용할점 12ⅰ. 거룩한 삶을 촉구하는 설교 12ⅱ. 교회 안의 세속적인 것들을 제거하기 13ⅲ. 성도들 간의 교제에 대한 바른 기준 제시 13ⅳ. 성찬의 의미에 대한 가르침 14ⅴ. 주의할 점 15Ⅰ. 간략한 요약토마스 아 켐피스의 책인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4부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영적 삶을 위한 거룩한 조언, 내적 삶을 위한 거룩한 조언,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내적 위로, 그리고 예수님의 거룩한 만찬 준비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져 있다.먼저 영적 삶을 위한 거룩한 조언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일이 세상을 바라보는 대신 하늘의 일을 쫓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순결한 삶을 살아야 하고 순결한 삶이 우리를 거룩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영적 삶을 위해 갖추어야 할 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영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겸손을 갖추고 교만하지 말라는 것이 주된 흐름인 것 같다. 겸손은 평안을 주지만 교만은 언제나 시기와 분노를 부른다고 말하며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진리에 순종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또한 여러 가지 시험과 역경, 어려움을 겪을 때는 언제나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정으로 겸손했고 삶 속에서 순수한 복종을 실천하며 사랑을 베풀고 인내하며 살았던 사막 교부들을 본받으라고도 말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진정한 회개를 하라고 한다. 언제나 마지막을 생각하고 자신의 영적 생활을 등하시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있다.두 번째는 내적 삶을 위한 거룩한 조언인데, 내적인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과 아름다움이라고 말한다. 그 분께서 우리와 친숙한 친구가 되어 주신다. 인간의 본성과 은총은 상반된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 둘 사질 수 있도록 영적으로 순결하고 자유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상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를 사랑하고 십자가를 담대히 지고 나아갈 때 비로소 참된 평화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3부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내적 위로”는 하나님과 연합을 이루는 고급의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그리스도와 제자 사이에 나눈 담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이 부분이 토마스 아 캠피스가 직접 그리스도와 관상기도를 통해 만나고 교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과 만나고 대화한다. 궁금한 부분을 묻고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대답해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직접 말해주심으로써 우리가 더욱더 완전함의 길로 나가는 구체적인 지침들을 알려주신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하나님과의 연합이 이루어진다.4부의 “예수님의 거룩한 만찬 준비”는 하나님과 연합을 누리는 단계이다. 토마스 아 캠피스는 하나님과 연합을 누리는 것의 방법은 성찬식이라고 말한다. 이 단계에서 성찬을 통해 모든 인간의 지혜를 초월하여 거룩함으로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을 불붙게 한다. 그리고 성찬을 통해 하나님과 깊이 영적으로 만나고 연합한다.ⅱ. 공동체의 생활에 관하여토마스 아 캠피스는 13세에 네델란드 데벤터에 있는 ‘공동 생활 형제단’에 들어가 공동체 정신과 신앙을 배웠다. ‘공동 생활 형제단’은 ‘오늘의 헌신운동’으로 네덜란드의 데벤터에서 출생한 제라드 그루테(Gerard Groote 1340~1384)의 회심으로 시작되었다. 그루테는 당시의 교회와 수도원 개혁의 필연성을 절감하고, 무력하고 타락한 생활에 대하여 경종을 울리며 일반 평신도에게까지도 한층 더 열정적이고 청빈한 신앙생활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그루테는 자기의 가옥을 공동 생활 자매단(Sisters of the Common Life)의 숙소로 제공하였다. 그루테는 자기의 제자 12인을 택하여 장차 수행할 사업을 준비하던 중 1384년 흑사병손하고 단순하며 경견하고 덕망 있는 사람들과 사귀도록 하십시오. 그들과 함께 의논하고 사귐으로써 당신의 영혼을 유익하게 하고 강화시킬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2. 사람들과의 사귐에 노력하지 말고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 그리고 그의 천사들과 친밀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우리는 모름지기 모든 사람들으 사랑해야 하지만 그들 모두와 깊이 사귀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나 소문만 듣고 어떤 사람을 몹시 칭찬하거나 비난하다가도 실제 그 사람을 만나보면 이와는 다른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친밀한 교제를 나눔으로써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다가도 우리의 약점이나 불미스러운 행동을 드러냄으로써 그를 불쾌하게 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제1부 “영적 삶을 위한 거룩한 조언” 中 10번 잡다한 언사에 대하여 -1. 가능하다면 많은 사람과 함께 모이는 것을 피하도록 하십시오(마14:23). 세상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리 진실된 의도로 말한다 해도 큰 장애가 되기 쉬우며 오히려 타락하거나 허영심에 사로잡히기 쉽게 됩니다. 종종 나는 그때 모임에 참석하지 말 것을, 혹은 그때 입을 다물고 있을 것을 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우리는 기꺼이 나서서 이야기하거나 여럿이 환담하기를 좋아하면서도 양심에 상처 입기 전에는 침묵을 지키기를 꺼려하는 걸가요?(롬2:1)ⅲ. 영생(구원)에 관하여영생(구원)에 있어서 카톨릭의 구원론인 평생구원을 말하고 있다. 토마스 아 캠피스는 구원을 단순히 믿고 시인하면 바로 이루어지는 순간구원이라 보지 않았다. 그는 구원이 우리가 이 땅에서 이루어져 가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의 무거운 짐과 수고를 견디라고 말한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성경을 읽고 쓰고, 찬송하고, 예배하고, 침묵을 지키고, 기도하며, 남자답게 모든 십자가를 감내하도록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영원한 생명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구원이 약속되어 있지만, 구원은 당신 자신의 몸을 우리의 양식으로 주시는 이 생명의 잔치는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 것이온지요! 오, 당신께서 하시는 일은 얼마나 훌륭하고 경탄할 만한 것이옵니까! 오 주님, 당신의 능력은 참으로 위대하시며, 당신의 진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나이다.13. 당신께서 하시는 일은 참으로 위대하시며, 믿을 만한 것이고, 인간의 지혜를 초월하시나니, 나의 주 하나님이시여, 당신께서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으로서 이 작은 떡과 포도주에 친히 임재하사, 당신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머여 주시나이다.- 제4부 “예수님의 거룩한 만찬 준비” 中 3번 성찬을 자주 행함이 유익하다 -3.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시86:4). 저는 이제 경건과 경외심으로 당신을 받아들이고자 하나이다. 삭개오와 같이 저는 당신을 저의 집안으로 모셔 들여 당신의 축복을 받고 아브라함의 자녀들 가운데 속하기를 원하옵니다(눅19:9).4. 제 영혼이 당신을 받아들이기를 소망하오며, 제 마음이 당신과 연합되기를 간구하나이다.5. 당신 이외에는 어떠한 위로도 소용이 없사오니 당신 자신을 제게 주사 제 영혼을 충족케 하소서.- 제4부 “예수님의 거룩한 만찬 준비” 中 4번 성찬의 유익함에 대하여 -3. 제 눈을 밝게 하사 당신의 놀라운 신비를 볼 수 있게 하시고, 의심 없는 믿음으로 그것을 굳게 믿을 수 있도록 제게 힘을 주옵소서. 이 성례전은 당신만이 행할 수 있는 일이요 사람의 힘에 속한 일이 아니오며, 당신께서 세우신 거룩한 제도이며 사람이 발명한 것은 아니옵니다.4. 이러한 일들을 이해하거나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사오며, 이는 천사들의 지식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옵니다. 그러하오니 무익한 죄인이며 먼지와 재처럼 헛된 존재인 제가 어찌 그 깊고 오묘한 선비를 다만 일부분이라도 파악하거나 이해할 수 있사오리까?- 제8부 “예수님의 거룩한 만찬 준비” 中 8번 십자가 위에 드린 그리스도의 희생과 우리의 순종 -4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사랑은 마치 물체의 무게처럼 모든 영혼에 있어서 그것을 끓임없이 잡아당기고 그것을 계속적으로 움직이게 해서 안식의 장소를 찾게 하는 무게이다. 즉 이 사랑의 무게가 어디로 향하는냐가 판건인 데, 이런 개념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셋째, 토마스 아 캠퍼스는 ‘일시적인 것들을 사용하고, 영원한 것들을 향유하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개념에서 영향을 받앗던 것 같다. 다음의 두 문장을 비교해보자.잠시 있는 것들을 그 자체로 향유하기보다는 영원한 것들을 향유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고백록」잠시 있는 것들을 사용하고, 영원한 것들을 바라라. 너는 그 어떤 일시적인 보화를 통하여도 만족을 느낄 수 없는데, 이는 네가 그것을 향유하라고 창조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리스도를 본받아」두 문장을 비교해 볼 때 토마스 아 캠피스 가 잠시 있는 것들과 영원한 것들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용/향유” 모티브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넷째, 토마스 아 켐피스는 ‘참 행복은 하나님을 아는 지혜’라는 주제에서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가령, “교만한 철학자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섬기는 겸손한 농부가 더 행복합니다” 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의 문장은 “나무를 재고 그 가지의 수를 셀수 있는 지식이 있어도 그것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고 또한 그것을 만드신 창조자를 알거나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보다는, 오리혀 나무의 높이가 몇 자이고 그 둘레가 얼마인지 몰라도 자기가 그 나무를 소유하고 있음을 알고 그것을 사용할 수 있음을 당신께 감사드리는 사람이 더 행복합니다”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문장을 연상케 한다. 왜냐하면 두 문장이 서로 유사한 주제를 보일 뿐 아니라, “B보다 A가 더 행복하다” 는 문장구조를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다섯째, 아우구스티누스와 그리스도를 본받아가 유사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했다는 것을 지적해야 할 것 이다. 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 은혜와 본성과같다.
목차Ⅰ. 개관 ………………………………………… 11. 조로아스터교란? ……………………………… 12. 창시자 ………………………………………‥ 13. 역사 …………………………………………· 2Ⅱ. 교의 ………………………………………… 21. 경전 …………………………………………‥ 22. 교리 …………………………………………‥ 33. 의식 …………………………………………·· 3Ⅲ. 선교적 방안 ………………………………· 4Ⅰ. 개관1. 조로아스터교란?불을 신성시하고 유일신을 예배하던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로서 교도 자신들은 아후라 마즈다를 믿는다 하여 마즈다 예배교(마즈다야스나:Mazdayasna)라고 부르며, 한자로는 배화교(拜火敎), 중국에서는 현교(敎)라고 하여 삼이교(三夷敎)의 하나로 꼽혔다2. 창시자조로아스터는 BC1500년경 석기시대의 페르시아에서 살았던 인물로 출생지는 카스피해의 남쪽 해안에 가까운 아제르바이잔 지방이라 한다. 현재 이란의 수도 테헤란 부근 라개(Raghee)에 유적이 있는데 그곳이 그의 출생지로 추정한다. 그의 출생은 3천년 혹은 3백년 전에 이미 예언되었으며, 또 그의 15세의 처녀 모친이 그를 잉태할 때에 마즈다 신의 영광이 그에게 둘러 비쳤다고 전한다.)조로아스터교라는 이름은 “신적 원리의 나타남”이란 뜻이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한 사람의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동정심이 많아 노인과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다. 15세 때 쿠스티(Kusti)라는 성스러운 노끈을 받고 20세 때는 종교적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가족들을 떠나 방랑의 길을 떠났다. 그리고 특히 빈민들이 사는 곳을 찾아 다녔는데 그곳에서 먹을 것을 공급해주고, 사람들에게 정착하여 가정을 이루어고 또 도덕적으로 사는 법과 농사짓는 법을 가르쳤다.30세때 조로아스터는 그의 고향에서 가까운 다이티아(Daitya) 강변에서 신의 계시를 받게 된다. "사람의 몸의 9배나 되는 체구의 몸"을 가진 거인, 천사장 보후 마니흐(Vohu Manah, 선한생각)였다. 그는 조로아스터에게 물질적인 “껍데기”를 벗어 던지고, 순수한 영혼의 옷을 입도록 전능한 신 아후라 마즈다에게 가도록 허락하고 아후라 마즈다는 조로아스터에게 예언자의 소명을 부여하고 진정한 종교의 도리와 진리를 깨우쳐 주었다. 그후 조로아스터는 8년동안 여섯 번의 천사를 통하여 여섯 번의 계시를 받았다. 이 여섯 번의 계시는 선한 생각이요, 둘째는 의로움이요, 셋째는 나의 충순 기대요, 넷째로 인간의 구원, 다섯째, 영혼의 불멸, 여섯째는 조화였다.조로아스터는 이 여섯 번의 계시에서 여섯 가지 진리의 여신화의 직각을 얻었다고 한다. 이 여섯 여신은 전에부터 믿어오던 아후라 마즈다 천신의 명령을 받들어 이 세계와 인간을 감찰하는 여섯 천사라고 볼 것이다. 이 계시를 중심으로 하여 부지런히 전도하였으나 처음 10년 동안은 별로 효과를 얻지 못하였다. 10년 끝에 이르러 종제 마온하가 전도를 받아 제자가 되었다. 11년 되는 해에는 아케메니아 왕조의 비쉬타시파 왕의 궁궐에 들어가 전도하기를 시작하였다. 비쉬타시파 왕은 독재 군주였는데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부하고 전도를 방해하였으나 3년 후에 마음을 돌이켜 조로아스터의 제자가 되기에 이르렀다. 조정에 있는 문무백관이 다 새 종교를 믿고 조로아스터를 큰 선생으로 받들게 되었다. 이때부터 조로아스터는 고독한 예언자가 아니었고 왕의 외호를 입어 관력과 무력까지를 빌어 새 종교를 전국에 확포 하였다. 비쉬타시파 왕이 새 종교를 믿게 된 해는 기원전 618년으로 조로아스터가 42세 되는 해라고 계산한다.) 그리고 전설에 의하면 그는 투라니아 족이 침입하였을 때 다른 승려들과 함께 제단 앞에서 77세 때 순교하였다고 한다.조로아스터가 죽은 후 추종자들에 의해 아후라 마즈다 신과 함께 경배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신격화 되었다.3. 역사기원전 538년 고레스 왕(아하수에로 : 크세르크세스 왕은 고레스의 외손자)이 일어나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페르시아 왕국을 건설했다. 조로아스터교는 바로 고레스 왕과 아케메네스 왕조 시대(BC559-330)에 오늘날의 이란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동족으로는 아프가니스탄까지, 서쪽으로는 페르시아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후에 파르티아 제국 시대(BC247-AD226)에 이르러 유일신 신앙이 확립되었으며, 페르시아산 사산 왕조가 출현하여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아 발전시켰다. 사산 왕조(AD224-651)는 조로아스터교 이외의 종교는 박해를 했으며, 이 시기에 경전 아베스타(Avesta)가 집대성 되었고, 일상어인 팔레비어 번역판이 쓰여지기도 했다. 중동 지역에 이슬람이 도래하면서 그 교세가 크게 줄었으나 개종하는 사람이 늘어났다.Ⅱ. 교의1. 경전조로아스터교의 가장 오래된 경전은 아베스타(Avesta)경이다. 아베스타경은 일 천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그 성격이나 내용에 따라 다음에 같이 분류된다.1.야스나(72장)성스러운 예배 의식에 관한 규정과 가타스(자라투스트라의 송가)가 담겨있음2.쿠르다흐 아베스타작은 아베스타라는 뜻을 지닌 기도서3.비스프 라트기원과 제사 규정이 담겨 있음4.벤디다드악마를 물리치는 주문과 정결 의식에 관한 내용5.하독스트 나스크죽은 후의 영혼에 관한 이야기아베스타 경 외에도 사산왕조 시대에 중기 페르시아어인 팔레이버로 쓰여진 팔레이어 경전이 있다. 젠드 아베스타(Zend Avesta)라고 불리는 이 경전은 아베스타경에 대한 해석과 요약, 설명이 첨부된 일종의 주석서이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는① 세계의 창조와 구조에 대한 내용을 담은 분다히신(Bundahishn)② 조로아스터교의 설화집인 덴카르트(Denkhart)조로아스터교 창시자 자라투스트라가 직접 저술했다고 알려진 것은 ‘야스나’안에 들에 있는 가타스라는 그의 송가뿐이다.)경전 《아베스타(Avesta)》에 의하면, 태초에 아후라 마즈다에서 두영이 나왔는데 하나는 선을 선택한 영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천사인 스펜타 마이뉴(spentas mainyu)이고, 다른 하나는 악을 택한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 훗날의 아흐리만, ahriman)이다. 앙그라 마이뉴는 다른 이름들로도 불렸는데, 그 중 가장 많이 불리는 이름은 샤이틴 혹은 사탄이다. 그의 주위에는 악마의 무리가 있어서 명령에 따라 사람을 시험하거나 괴롭히는 일을 수행한다. 이러한 교리를 통해서 조로아스터교는 세계에서 최초로 악마에 대한 계보를 체계화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2. 교리광명과 선의 신, 아후라 마즈다와 암흑과 악의 신, 앙그로 마이뉴(Angro Mainyu)의 끊임없는 투쟁의 장이 이 세계라고 하는 이원론적인 우주관에 입각한 교의를 설파하였다. 동부 이란의 박트리아 왕의 보호 하에 이란에서 서아시아 각지까지 교세가 확장되어 고대 이란제국의 국교가 되었다.(B.C. 5세기). 특히 사산왕조 시대(3~7세기)에는 교리도 체계화되어 성전 『아베스타』(Avesta)가 완성되었다. 『아베스타』에 의하면 선과 악의 두 원리가 대립, 투쟁하고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빛과 선의 신이 승리하며, 인간이 선의 신 편에 서서 싸운다면 최후의 심판에 따라 천국에 태어난다고 한다.3. 의식1) 예배 의식아베스타(Avesta)기록에 의하면, 신전에는 제단이 있고 제단에는 항상 불이 타고 있다. 그 불에는 백단향이라는 특수한 나무를 넣어서 항상 타게 한다. 갑파도기아에 있던 신전에 대한 기록을 보면, 제사장은 매일 신전에 들어가서 불을 피우면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의 주문을 외웠다고 하였다. 그 제단은 깨끗이 보존되었고, 제사장은 접근할 때 모자를 쓰고 손에 긴 장갑을 끼고 두꺼운 베수건으로 입과 코를 싸매어 입김과 콧김이 거룩한 불에 썩이지 못하게 한 후, 금으로 된 부젓가락으로 불에 연료를 집어넣는다.제사장은 매일 다섯 번 신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제사를 드렸다. 거룩한 나무에서 나는 즙과 우유에 성수를 섞어서 소마의 식물을 드리는 것은 인도의 브라만교와 비슷하다. 밀가루로 만든 떡이나 과자에 버터나 기름을 섞어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희생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제사를 드릴 때는 제사장 8명이 종사하는데 찬송을 부르는 자, 음료 소마를 가져다 드리는 자, 우유를 가져다가 제물 위에 붓는 자, 제단 위에 불을 사르는 자가 각각 2인씩 일한다. 대제사장은 이들 모든 과정을 총지휘한다. 현재는 2명의 제사장이 이 모든 과정을 다 맡아서 해나간다. 조로아스터교는 광명과 불의 종교다. 인도에서는 이를 배화교라고 하고, 제사장을 사화승이라고 한다. 이들은 고대에는 황소, 말, 양 등으로 의생 제사를 드렸으나 현대에는 불로써 신을 섬기기만한다.)2) 새 제사장 세우는 의식새 제사장(new priest)을 세우는 의식은 7~11세 사이에 행한다. 그 아이의 집이나 화신전에 연접한 집회당에서 이 의식을 행한다. 의식 중에 제사장은 아이에게 성의 “슈드라”를 입혀주고, “쿠스티”라고 부르는 성대를 아이의 허리에 세 번 감아 준다. “슈드라”라는 성의에는 “의의 전대”라는 주머니가 달려 있는데, 파르세들은 그것을 “가리얀”이라 하고, 매일 그것을 살펴서 긍휼의 의로운 행위와 근면의 순간적 상급을 체크한다. “쿠스티”라는 성대를 허리에 세 번 감는 것은 ①선한 생각, ②선한 말, ③선한 행동을 상징한다. 이것은 앞면에 두 매듭, 뒷면에 두 매듭으로 묶어서 불, 흑, 공기, 물의 4가지 기본 원소를 표시한다. 노끈 자체는 72사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것은 “야스나”가 전체 72장으로 되어 있는 것과 같다. 남자들과 같이 여자들도 성의와 성대를 착용하는데, 그것은 신체와 영혼이 악령의 세력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