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지*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6
검색어 입력폼
  • 알고리즘적 사고란
    컴퓨터 과학 교육과 알고리즘적 사고2011190732 이지예개요수학, 과학, 영어 등 우리나라에서 주요과목이라고 인식되는 과목들과 컴퓨터 교육의 차이가 무엇일까. 그것은 ‘수능’이라는 시험에서 그것을 중요성 있게 다루는 가 아닌 가 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컴퓨터 과학 교육은 그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컴퓨터 교육은 교육적인 의미와 더불어 우리 생활에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컴퓨터 과학 교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알고리즘적 사고도 마찬가지이다. 수학에서도 알고리즘을 다루고 있지만 컴퓨터 과학에서의 알고리즘도 큰 의미가 있다. 이 논문에서는 그것의 중요성을 조금이라도 강조하고자 한다.우선 컴퓨터 과학 교육의 현실과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 현실에서의 컴퓨터 과학 교육의 접목을 언급할 것이다. 또한 알고리즘적 사고가 무엇인지, 그것이 컴퓨터 과학 교육에서 또한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나타낼 것이다.사실 컴퓨터 교육학과에 다니고 있는 나조차 컴퓨터 과학 교육의 필요성을 머리로만 이해할 뿐 실제로 체감하지는 못했다. 누군가 나에게 그 필요성을 물어본다면 그것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논문을 쓰면서 가장 큰 발전은 그 중요성을 체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컴퓨터 과학에 대한 생각이 명확해 졌다. 또한 알고리즘에 대한 사고가 넓어졌다. 하지만 알고리즘에 대한 개념이 조금 더 명확해 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향후 이것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할 것 같다.(1)컴퓨터 과학 교육컴퓨터 과학 교육이란 무엇인가. 어떤 것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는 것만큼 어려운 것은 없을 것이다. 각자의 가치관과 생각, 경험 등에 따라서 그 정의는 달라질 수 있고 똑같은 정의에 대해서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이라는 영역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컴퓨터 과학 에서는 물론 컴퓨터에 관련 된 전반적인 내용을 다룬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개개인의 가치관, 생각에 따라 교육이목을 예로 들어 보자. 수학에서는 수학 문제에 대한 예시, 문제 해결을 위한 해답을 익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수학적 사고능력을 키워주기 위한 여러 가지 단계들이 있다. 또한 수학적 사고의 중요성을 충분히 강조하여 아이들이 그 교과의 중요성을 인식 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컴퓨터 과학 교육에는 부재되어 있는 내용이다. 아이들은 컴퓨터 과학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왜 배우는 것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컴퓨터 과학 교육은 단순한 도구의 사용이나 학생들이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정보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다른 학문에서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지도해 주는 것이다.컴퓨터 과학은 결코 쉬운 분야가 아니다. 그렇다면 학교 컴퓨터 교육에서 왜 컴퓨터 과학에 대해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컴퓨터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알 수 있다. 내 생각으로는 컴퓨터 과학은 컴퓨터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컴퓨터의 고성능화, 소형화, 이동성과 휴대성, 임베디드 시스템으로 전환을 통해 컴퓨터 우리 삶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모든 학생들이 컴퓨터 자체를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컴퓨터 과학 역시 다른 교육 분야들과 다를 바 없다. 예를 들어서 과학 교과의 화학 교육을 생각해 보자. 모든 학생이 화학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 없다. 하지만 화학을 배움으로써 화학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다른 교과에 도움이 될 사고를 키울 수도 있다. 컴퓨터 과학 역시 컴퓨터 과학을 배움으로써 컴퓨터에 흥미를 갖게 되고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에서 볼 수 있듯이 컴퓨터 과학적 사고는 다른 학문과의 융합이 가능하다. 다른 학문과 융합이 되면 새로운 IT기반 산업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IT가 중요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컴퓨터 과학적 사고는 더욱 더 중요한 사고이며 필수불가결한 사고라고 할 수 있다.컴퓨터 교어야 한다.이미 미국, 영국, 이스라엘 등과 같은 많은 선진국의 학생들은 오래 전부터 알고리즘, 프로그래밍, 데이터베이스 등에 대해 배우고 있으며 다른 여러 나라들에서도 컴퓨터 과학의 비중이 계속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컴퓨터 과학 교육에 대한 관심과 지도는 디지털시대에 컴퓨터 교육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우리나라의 컴퓨터 교육은 일반적으로 소양 및 활용 교육을 강하고 있으며 이에 비해 컴퓨터 과학 교육에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실례로, 12년 간의 초등 중등 교육에 걸쳐 이루어지는 컴퓨터교육은 대부분이 소양 영역을 다루고 있고, 여기에 약간의 활용 영역을 더하고 있다. 컴퓨터 과학 교육은 컴퓨터 관련 학과를 기반으로 하는 대학의 학부와 전문 실업 고등학교에서만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나라는 컴퓨터 과학 교육의 영향을 너무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한 대답은 단언하여 말한다면 '그렇다'이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논거로 외국의 컴퓨터 교육 현황에 대해 언급해볼 수 있다. 첫째로, 인도의 경우 이미 초등학교 단계에서부터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한 학습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프로그래밍 한다' 라는 항목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데, 간단한 언어이지만 분명하게 그 목표를 정하고 있다는 데에서 인도의 컴퓨터 과학 교육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둘째로, 이스라엘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이스라엘은 인도보다도 더 컴퓨터 과학 교육을 컴퓨터 교육 영역에 포함시키고 있는데, 초등교육 과정에서 알고리즘에 대한 교육을 시작하여, 고등학교 단계에서는 어셈블리어까지 나아가 교육하고 있다. 이 두 나라 외에도 여러 나라들이 컴퓨터 교과목에 과학 교육을 포함시키고 있는데, 이는 컴퓨터 과학 교육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2)현실에서의 컴퓨터 과학의 중요성위의 내용은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생각해 본 것이다. 그렇다면 대상의 범위를 좀 더 넓혀 생각해보면 어떨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컴퓨터가 없이는 단어 더욱 효율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데이터의 구조화나 추상화 같은 개념을 다른 영역에 적용을 한다면 정보를 나타내는 데 좀 더 편리할 것이다. 또한 다른 학문 영역과 융합이 된다면 새로운 IT기반 학문이 만들어 질 수 있다. IT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지금, 이러한 컴퓨터 과학의 역할은 강조되어야 마땅하다.또한 컴퓨터와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인터넷 악플, 사생활 침해, 인터넷에서 말하는 ‘신상 털기’ 등 여러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어느 사회, 어느 영역에서든 발생할 수 있는 아주 자연적인 문제들이다. 오히려 인터넷상에서 통제하려고 하면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 보면 이런 문제들은 인터넷의 문제를 뛰어넘어 여러 사람들을 자살까지 몰고 가기도 한다. 인터넷에만 국한 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했던 윤리적인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사실 자체도 심각 한 것이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아이들이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의 악플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이것은 후에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미리 그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런 문제들의 심각성, 해결방안 등을 컴퓨터 과학 교육에서 다뤄줘야 한다. 종합해 보면 컴퓨터 과학 교육은 사람들이 정보과학적 사고로 생각할 수 있게 지도해 주며 일상생활에서의 컴퓨터 관련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이렇게 보면, 이제 우리나라의 컴퓨터 교육에서도 컴퓨터 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범위를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고의 전환이다. 컴퓨터 과학 교육은 어려운 것이며, 초등 및 중등 과정에서 가르치기에 쓸모없는 것이라 생각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컴퓨터 과학 교육 역시 컴퓨터 교육의 하나의 기초적인 분야이며 문제해결력과 같은 고차적 사고퓨터 과학 교육의 핵심적 개념인 추상화, 구조화를 알고리즘을 통해 나타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추상화와 구조화 등 정보과학적 사고는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들과 통합도 가능하다. 그만큼 중요한 사고라는 것이다. 알고리즘을 설계할 때 어떤 정보가 더 중요하고 어떻게 알고리즘을 설계해야 결과가 더 효율적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즉 추상화와 구조화의 개념에 대해 접근해 보면서 정보과학적 사고를 기를 수 있고 다른 영역에서도 접목해 볼 수 있다.컴퓨터 과학 교육의 교육과정을 보면 ‘문제 해결 방법과 절차’라는 파트가 있다. 문제 해결을 할 때에 ,그것이 컴퓨터와 관련된 문제든 아니든, 정해놓은 틀 없이 생각나는 대로 하는 것 보다는 하나하나 절차를 짜놓고 그것을 문제에 적용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며 정확할 것이다. 여기서 사용될 수 있는 사고가 알고리즘적 사고이다. 어떠한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가 어떠한 특성을 가지는지를 파악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알고리즘 수업에서 배웠던 optimal subproblem, overlapping substructure, greedy propery등의 특성을 갖는지를 보면 그 문제를 greedy algorithm 으로 풀어야 더 효율적인지 dynamic programming의 특성을 이용해서 풀어야 더 효율적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또한 컴퓨터 과학 교육에서 다루는 프로그래밍도 알고리즘적 이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 과학 교육의 교육과정을 보면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가르친다. 물론 우리가 대학에서 배우는 정도의 난이도는 아니겠지만 자신이 나타내고 싶은 프로그램이나 해결 하고 싶은 문제들을 컴퓨터로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프로그램의 구조를 보면 우선 input이 들어간다. input이 있고 프로그램의 구체적 내용이 step으로 나타내어지고 그 결과로 output이 결정된다. 전형적인 알고리즘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그래밍 과정은 데이터를 어떻게 표현 할 것인지, 어떻다.
    공학/기술| 2014.01.19| 10페이지| 1,000원| 조회(273)
    미리보기
  • 미국 현대시의 흐름
    미국 현대시의 흐름과 그 경향1, 반란의 역사소위 1945년까지의 모더니스트인 에리어트(T.S. Eliot)와 스티븐슨(W. Stevenson), 그리고 이미지스트 파운드(E. Pound)의 영향하에 있었던 미국의 시인들은 올슨(C. Olson)과 크릴리(R. Creeley)가 주관한 불랙마운틴 학파의 푸로잭티즘의 과정을 거쳐 고백파(Confessionizm)들의 출현을 보게 되는데, 이때로부터 미국 시문학사에는 일대 반란이 일어난다.즉 이들은 엘리어트(T.S Eliot) 정통파와 그가 소속되어 있는 소위 유럽의 신비평주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하고 “현대의 예술가들은 미래를 창조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과거를 파괴하기에 이르렀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파운드(E. Pound)가 이미지즘을 가지고 전통적 미국시의 대 선배 격인 휘트만(W. Whitman)을 공격한 것처럼 그들도 새로 나온 후배 시인들로부터 다시 배척 당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미국 시인 홀(D. Hall)은 그의 앤솔로지 현대미국시(1962) 서문에서 “에리어트의 정통파와 신 비평주의는 끝났다. 현대의 예술에서는 무질서가 호의적 군주의 제한보다 났다는 것이 증명돼오고 있다”고 선언했다. 또 케롤(P. Carrol)이라는 시인은 그의 “그것의 피부(1968)”라는 시집에서 현대의 시인들은 10년 또는 15년 전 엘리어트와 다른 시인들이 정의하고 시도해 온 시들과는 동떨어지거나 반대의 시들을 쓰려고 시도해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이렇게 해서 현대 미국시인들은 다소 무질서하기는 해도 과거와는 다른 신선한 이미지들을 가지고 시 창작생활을 하고 있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도대체 과거의 엘리어트나 파운드가 주장하는 미적 기법으로는 현대시인 오하라(F. O'hara)의 ‘라나터너의 시’, 쿠민(M. Kumin)의 ‘배설물의 시’, 또는 플라드(S. Plath)의 ‘아버지’ 같은 시들을 써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모더니스트로 시작해서 고백파 대표시인 중에 하나로 꼽히는 로웰(R. Lo간주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현존 시인 핀스키(R. Pinsky)는 ‘시의 위치’라는 그의 저서에서, 현대 미국 시인은 낭만주의 전통뿐만 아니라 여러 양상으로 에머슨 전통까지도 간여하고 있다. 심오한 청교도 주의나 휘트만 전통조차도 이제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다시 말해서, 오늘의 시인들은 가장 나이 젊은 린다 호간(L. Hogan)이나 리리영(L. Lee)등을 포함하여 독특한 생명력을 성취해 내고 있는바, 그들이 그러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들이 문화적 또는 문학적 과거와 현재를 잘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2. 모더니즘과의 차이그러면 미국 현대시가 1945년 이전 모더니스트들의 시와 어떻게 크게 다른가?전통적으로 모더니스트들은 시인과 시, 그리고 그 시의 소재간에 적당한 미적인 거리를 두고 시를 써왔다. 엘리어트는 시에서 개인의 조건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조건을 다루었다. 그러나 현대의 시인들은 개인 자신들의 조건을 직접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현대의 시인들은 보다 사적이고 개인적 고백에 가까운 아주 친근한 시를 쓰고 있다는 점이 과거의 시인들과 다른 것이다. 시인들의 개인적 인격, 사적 경험, 그리고 정서 등은 엘리어트의 시 사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로부터의 탈출이 바로 시라는 견해였는데, 오늘날의 시인들에겐 그것들이 시에 있어서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시란 현대 시인들에게선 더 이상 개인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고 그것으로의 몰입이고 집착이며 발전이다. 개성은 시에서 어떤 고안품보다 더 중심이 되어야 하고 더 생동감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 결과 옛날에 ‘그’나 ‘그 녀’가 ‘나’로 대치되었다. 즉 시의 화자가 바로 시인이 된 것이다. 예를 들면 플라드의 시 “라사러스 부인”은 바로 자신의 자살 경험을 그대로 쓴 시요, 바로 위에 인용한 “아버지”도 자신의 아버지를 저주하기 위해 쓴 씨다. 뿐 아니라 로웰의 시 “서쪽 길과 렙키의 추억”도 자신의 병역 거부로 감옥재보다 그 부재를 그리고 있다. 정서나 언어 또는 음조 등의 전환을 통해 독자는 개성의 다양한 양상들 중 생명력이 교차됨을 감지할 수 있다. 가령 지적 풍자와 유머, 종교적 경건과 속세, 평범과 고차적 서정성 등, 그 사이에서 찾게되는, 다시 말하면 다면성의 개성들 중에서 일부분이 통합될 때의 조화로운 느낌을 얻을 수 있다.또 한가지는 현대 시인들의 바깥 세계의 발견과 그에 대한 응답이다. 이러한 시들에서 독자는 시인 자신과 그의 개성,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의해 형상화된 시인들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시인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적은 물론, 사회적, 또는 지정학적 풍경을 만날 수도 있다. 시인 휴고(R. Hugo)의 시에선 메마르고 절고한 서부의 풍경을 그리고 있고, 르와이트(C. Wright)의 시에선 테네시의 언덕으로부터 켈리포니아 라구나 비치의 정서적, 지정학적 풍경을 읽을 수 있다.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1945년 이래의 미국 현대시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개인의 역사적 사실이 그들 시에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시인들에겐 보통 집안 개인 사정에 그치고 말 비밀스런 일들이, 특히 얼마 전 까지는 성적 기호야말로 문학에서 가장 비밀스런 요소이므로 시작품과는 별개라고 여기던 일들이, 이제는 모두 그들 시에서 밝혀지고 있다. 긴스버그나 던칸(R. Duncan)의 시들에선 그들이 동성애자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리치(A. Rich)의 시에선 그녀가 레스비언이라는 사실도 공개되었다. 매튜스(W.Matthews)의 시에선 그의 성기를 노래하고 있고, 도브(R. Dove)의 자신과 딸의 성기노출을 노래한 시를 읽고 놀라지 않을 독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개인의 병, 노여움, 실패, 자괴심 등은 미국 현대시에서, 특히 로웰, 플라드, 섹스턴의 시들에서 더 이상 감추어진 소재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미국 현대시가 극히 개인적으로 흐름에 따라 시들이 너무 직설적이고 투명한 점도 없지 않지만, 본질적인 정서의 복잡성, 풍부한 시에 있어서도 산문시나 대화체의 시를 쓰더라도 대화의 음조를 이어가는 힘이 대화의 그것이 아니라 시의 것이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면에서 현대시는 그 경계가 약간 불투명하기는 해도, 아직도 적지 않은 시인들이 전통적인 정형시를 고집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시에서 많은 시인들이 시 대신에 시조를 고집하여 쓰고 있는 경우와 마찬가지일 것이다.반면 정형시에 반대하여 자신의 독창적, 특히 배리맨(J. Berryman)은 자신만의 독특한 형식을 만들어 시를 창작했으며, 로웰(R. Lowell)도 전통적 14행 소넷을 약간 형태를 바꾸어 쓰기 시작했고, 저스티스(D. Justice)는 유아들의 노래를 시에 도입하여 쓰기를 시도하였다.어쨌거나 이곳에서도 국내에서나 마찬가지로 자유시 주창자와 정형시 주창자들 간에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다음에 지적할 사항은 시에 있어서 복잡한 문학적 지식이나 암시를 피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고전 지식, 또는 암시 등을 피하는 대체적 이유는 요즈음의 시인들은 엘리어트의 시절의 시인들처럼 상아탑이나 차지하고 앉아 있는 고등 교육자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시에서도 민주화, 대중화의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휘트만의 말처럼 배운 소수가 아닌 보통의 미국말과 리듬에 의해서 쓰여져야 한다는 주장이 맞아떨어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오늘의 시가 점점 개인의 경험에 의해 쓰여지고 있는 마당에 몸소 느낀 생생한 경험이면 되지, 고차원적 지적수준과 형식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이다. 오늘날 그러한 지적(知的)인 패턴은 비인간적인 기술사회를 초래하게 되었고, 그 결과 원자력이나 환경재해 같은 재난이 인류를 압박하고 있다. 우리가 생존을 위해서 매달렸던 에너지가 우리를 멸망으로 몰아가고 있지 않은가. 체노빌이나 미국에서의 원자핵 사고는 우리의 지식이 만든 기술이 우리를 다시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지식에의 의존이 전멸이라는 극한상황으로 몰고 올지도 모른다는 시인들의 절박감이 지식이나 기술보다는 개인 자신에 또는 필연적으로 인간부름에 응할 수 있는 축제의식을 제외한 모든 신화들은 1945년 이후 모든 시작품들에서 전혀 나타나질 않고 있다. 플라드(S. Plath)처럼 그녀의 초기 작품에 썼던 Colossus(아폴로 신의 거상)가 빠지고, 대신 후기 작품들에 히로시마나 히틀러의 살인캠프 등을 등장시킨 것은 좋은 예이다.3, 청교도 전통주의, 휘트만 전통주의미국 현대시가 물려받은 그 유전자는 물론 신비평주의도 아니오, 미국시의 전통과 그 장구한 영국 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록 그 동안 다소 수정되고 변형이 되었다고는 해도 미국시의 정신과 힘은 이 전통에서 생생하게 살아 내려온 산물이다. 그러한 전통은 단지 미적 유산만은 아니고 형식면에서 또는 주제 면에서 미국 예술 뿐 아니라 심리적, 신화적 바탕에 양면성을 제공하는 두 가지의 전통적 가치가 되어 왔다.그 하나가 청교도 전통주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휘트만 전통주의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가치를 가지고 미국 현대시는 긴장과 균형 그리고 타협 등을 부단히 거쳐 미시적, 거시적으로 시적 안목을 지켜오고 있다.이 가치관은 미국 시인들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끼쳐오고 있다. 그들이 시의 주제와 소재를 선택함에 있어, 또는 언어, 운율, 구조, 표현형식 등을 정하는데 있어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청교도 전통주의 시는 우선 개인의 영적 육적 한계와 멸망에 중점을 두고 가치를 정한다. 그 구조는 복잡하고 상징적이요, 형이상학적이다. 언어구성도 대단히 복잡하다. 왜냐하면 이 계통에 속한 시인들은 전통적 구원의 개념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신은 죽었고, 원죄가 상징적으로 심적, 정서적 불균형을 채우고 있다. 구원의 희망은 없고, 아직도 개인의 원죄를 믿고 있으므로, 이에 속한 시인들은 광기에 의해 위협받고 자기파괴의 유혹에 시달린다. 이에 속하는 시인들로 로웰, 플라드, 섹스턴 등이다. 이들 중 플라드와 섹스턴은 젊은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반면 휘트만 전통주의는 청교도 전통주의와 대비를 이룬다. 이들은 .
    인문/어학| 2014.01.19| 5페이지| 1,000원| 조회(245)
    미리보기
  • 기술문법과규범문법
    IntroductionCommonly, grammar means the rules which govern our way to use a language. In this sense, grammar is prescriptive. Prescriptive grammar aims to tell its readers what grammatical rules they should follow. By contrast, in the modern science of linguistics, grammar is descriptive. The aim of descriptive grammar is to describe the way speakers of the language unconsciously speak and understand the language. The difference is one of goals. Jeffrey P(1994) states that there are some topics which make a difference between prescriptive and descriptive grammar. For example, 'whether to split an infinitive,' as in (1.a), 'whether to end a sentence with a preposition,' as in (1.b), 'whether to use a plural pronoun with a singular antecedent,' as in (1.c), etc1. a. to reluctantly leave b. Who did she go with? c. If anyone comes in late they should go quietly to the rear.Out of these, I will choose the topic 'whether to end a sentence with a preposition' and discuss about this issue only.
    인문/어학| 2014.01.19| 4페이지| 1,500원| 조회(152)
    미리보기
  • sailing to Byzantium 분석
    1. 각 연별 내용 정리1연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The young(저것은 노인의 나라가 아니다.)In one another's arms, birds in the trees(팔짱 낀 젊은이들, 나무 위 새들,)-- Those dying generations -- at their song,(노래하고 있는 저 죽어가는 세대)The salmon-falls, the mackerel-crowded seas,(연어 폭포, 고등어 우글대는 바다)Fish, flesh, or fowl, commend all summer long(물고기, 짐승, 새들이 여름 내내)Whatever is begotten, born, and dies.(잉태되고 태어나 죽는 모든 것을 찬양한다.)Caught in that sensual music all neglect(모두가 관능의 음악에 사로잡혀)Monuments of unaging intellect.(늙지 않는 지성의 기념비엔 관심이 없다.):자연의 원초적 생명력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잉태, 탄생, 죽음의 과정에 대한 조롱을 한다. 이는 감각적인 세계와 이상세계 사이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1연의 5행에서 거친 ‘F’의 두운을 사용함으로서 화자의 강력한 어조를 느낄 수 있다.2연An aged man is but a paltry thing,(늙은이란 하찮은 것)A tattered coat upon a stick, unless(막대기에 걸친 누더기일 뿐이리라)Soul clap its hands and sing, and louder sing(육신의 옷이 너덜너덜 해지는 것을)For every tatter in its mortal dress,(영혼이 좋아 손뼉치고 크게 노래하지 않는다면)Nor is there singing school but studying(영혼의 장엄한 기념비를 배우지 않는다면)Monuments of its own magnificence;(노래를 배울 곳은 아무 데도 없다.)And therefore I have sailed the seas and come(그래서 나는 바다를 항해하여 왔다)To the holy city of Byzantium.(거룩한 도시 비잔티움으로.)*비잔티움:현재 터키의 이스탄불에 해당하는 곳.한때 그리스의 식민지였다.:영혼의 세계 가치를 모르는 노인은 허수아비라는 의미를 가지는 첫문장으로 시작된다. yeats는 이 연에서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는 없는 ‘영혼’을 갖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쓸모 없는 존재들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몸에 연연하지 않을 것을 강조하며 육체는 영혼의 옷에 지나지 않음을 역설한다.3연O sages standing in God's holy fire(아 벽의 황금 모자이크 그림 속에 있는 듯)As in the gold mosaic of a wall,(신의 거룩한 불 속에 서 있는 성현들이시여,)Come from the holy fire, perne in a gyre,(그 성화에서 원을 그리며 내려오셔서)*perne:빙빙 돌다(아일랜드어로 ‘실감개’를 뜻하는 말에서 나온 것)And be the singing-masters of my soul.(내 영혼의 노래 스승이 되어 주시라.)Consume my heart away; sick with desire(내 심장을 다 태워버려 주시라, 욕정에 병들고)And fastened to a dying animal(죽어갈 동물성에 매어)It knows not what it is; and gather me(제 자신을 알지 못하는 그 심장을 -그리고 나를 거두어 주시라)Into the artifice of eternity.(영원히 죽지 않은 예술품 안으로.)*artifice:예술품:화자가 꿈에 그리던 신성한 비잔티움에 도착. 화자는 영혼의 영원성과 장엄성을 찬미. 3연을 통해 화자는 예술의 영원성을 찬미하여 예술만이 영원하기에 나를 이끌어 영원한 예술로서 이끌어달라고 얘기한다.4연Once out of nature I shall never take(자연을 벗어나기만 하면 나는 다시는)My bodily form from any natural thing,(어떤 자연물에서도 내 육신을 취하지 않으련다.)But such a form as Grecian goldsmiths make(대신 그리스의 금 세공인들이 망치질한 금과)Of hammered gold and gold enamelling(황금 유약을 발라 만든 형체를 취하여)To keep a drowsy Emperor awake;(졸고 있는 황제를 깨우련다.)Or set upon a golden bough to sing(아니면 황금 가지 위에 앉아)To lords and ladies of Byzantium(비잔티움의 귀족과 부인들에게 노래해주련다)Of what is past, or passing, or to come.(지나간 것과 지나가는 것들, 그리고 다가올 것에 대해.):자연에서 이 몸이 벗어나면 다신 자연의 형태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며 시작된다. 또한 화자는 자연을 벗어나 영원한 형체로의 환생으로서 ‘황금새’가 되겠다고 한다. 황금새는 비잔티움의 영원성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전체:이 시에서 화자가 가고자 소망하는 비잔티움은 실제의 공간이다.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곳이자 예술세계를 상징하는 곳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정신적, 예술적, 지적 성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시인은 예술을 인간의 영혼을 담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비잔티움이 예술의 도시이고 아일랜드는 젊음을 상징하는 곳이기 때문에 아일랜드를 벗어나고 비잔티움으로 가기를 소망하였다. 그리고 비잔티움에 가서도 심장을 소멸시키라고 한 것을 통해 비잔티움에 화자가 있을지라도 육체의 대표인 심장이 있으면 영원히 살 수 없으므로 소멸하고자 하였다고 할 수 있다.이 시는 예술의 영원성과 심장을 가지고 있는 자연의 내적갈등을 잘 드러낸 시이다.2. 중요한 문구 정리1연6행:yeats가 말하는 nature를 가장 잘 표현한 행.2연: 이 노인들에 대한 묘사는 바로 yeats 자신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yeats가 노년의 시기에 쓴 작품임)3연 3행: ‘the holy fire’은 성화, 즉 여기서는 ‘영원성’을 상징한다. 또한 성화는 현세적인 것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정화하는 장치의 기능을 한다4연:nature를 버리고 난 뒤에, 황금새가 되려는 yeats의 갈망이 드러난다. 여기서의 황금새는 바로 ‘하나의 예술작품’인 것이다. Yeats는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자연적인 것들은 모두 버리고, 오로지 예술의 세계에서만 살고자 하는, 즉 자기가 죽어서도 자기가 남긴 작품들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4연 8행: 화자가 과거현재미래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첫번째의 의미로는 과거, 현재, 미래를 포함한 영원성을 상징하는 것이고, 두번째의 의미는 현실세계, 즉 비잔티움이라는 이상향을 쫓지만 자연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인문/어학| 2014.01.19| 4페이지| 1,000원| 조회(257)
    미리보기
  • 죽은시인의사회를보고
    -나의 경험속의 키팅 선생님2011190732 이지예이 영화는 어느 한 명문고에 영어선생님이 새로 오시면서 시작된다. 이 학교는 70%이상의 학생들이 아이비리그에 진학 할 정도로 철저한 커리큘럼과 교육열을 자랑한다. 선생님들은 대학진학을 위한 공부만을 강조하고 학생들도 그러한 환경에 익숙해 진 채 진정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은 잊고 대학공부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새로운 영어선생님, 키팅 선생님이 오면서 아이들은 점차 변화하기 시작한다. 딱딱한 수업방식에서 많이 벗어난 키팅 선생님의 수업을 들은 아이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지만 점차 키팅 선생님의 수업에 빠져들게 된다. 선생님의 사고방식, 생각 등에 빠져들고 선생님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딱딱한 교과서 대신에 “seize the day!" 라고 ”오늘을 즐겨라! 너희의 삶을 즐겨라!“라고 키팅 선생님은 말한다. 아이들은 키팅 선생님의 졸업앨범을 찾아보게 되고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모임을 알게 된다. 닐은 친구들을 모아서 밤마다 동굴에 모여 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죽은 시인의 사회’ 모임을 재결성한다. 자신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들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에 대해 알아 가게 되고 닐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연극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닐이 하버드에 진학해서 의사가 되기를 바라던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고 키팅 선생님께 고민을 털어놓는다. 키팅 선생님은 아버지께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은 연극이라고 말하라고 조언하셨다. 하지만 닐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결국 닐은 죽음을 택했고 닐의 죽음의 책임이 키팅 선생님에게 돌아와서 키팅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게 된다. 아이들이 떠나는 키팅 선생님께 ”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이라고 외치며 책상위로 올라가면서 영화는 끝나게 된다.책상위에 올라가는 것은 키팅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사물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얘기 한 것이다. 아이들은 키팅 선생님이 가시는 순간에 그 가르침을 표현하며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 것이다.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나의 고3 때 선생님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나는 대학에 와서 공부에 대한 회의감을 많이 느낀 사람 중 하나이다. 영화에서 변화하기 전의 학생들처럼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잊고 살아왔다. 물론 고려대학교에 온 학생들 대부분이 그랬겠지만. 고3 때 담임선생님은 항상 공부만을 강조하셨고 “너가 우리 반을 이끌어 가야한다!”하면서 매번 말씀을 하셨다. 나에게는 그것이 부담감으로 다가왔고 선생님을 실망시켜 드리면 안 된다는 생각도 했다. 사실 이것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없지 않다. 하지만 담임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조언이나 따뜻한 말들은 해주지 않으셨다. 항상 부담감이 되는 말이나 채찍질만 해주셨다. 처음에는 그것이 나를 위해서 해주신다고 생각했는데 점차 선생님 반의 위상을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자신의 반에 있으면 선생님들 사이에서 자랑거리가 되니까. 내가 선생님께 진정 원했던 것은 내가 공부로 힘들어 할 때 “많이 힘들지? 조금만 참자” 라는 한마디였고 내가 시험을 잘 못 봤을 때는 “더 열심히 했어야지!”라는 말이 아니라 “너무 실망하지 말구.. 다음에 더 잘보면 되지~”라는 위로였으며 시험을 잘 봤을 때는 “잘했어!!앞으로도 이렇게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 있겠다~”라는 칭찬이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그런 따뜻한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지 않았고 담임선생님 수업시간에 집중을 안 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더 꾸지람을 듣게 되고 악순환이 반복 되었다. 반면 아직도 기억나는 선생님이 있으시다. 고3 때 화2선생님이다. 나는 화2를 수업만 듣고 수능 때는 시험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수업 때 다른 공부를 하기도 했고 선생님께 집중하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죄송한 일이다. 그 선생님은 옆 반 담임선생님 이셨지만 나를 자신의 반 학생들보다 더 챙겨주시고 쓴소리, 좋은소리도 많이 해주셨다. 우리학교는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상위50명 학생들의 성적을 복도에 붙여놓았다. 선생님께서는 나의 성적이 붙으면 그것을 분석하셔서 “너는 과탐을 어느정도 올려야 한다. 지금부터 과탐의 비중을 높여서 공부를 해라” 이런 식으로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얘기를 해주셨다. 수업시간이 아니라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도 항상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다. 하지만 격려의 말씀만 해주신 것은 아니다. 한 때 수업시간에 집중을 못하고 교실 분위기를 흐렸을 때가 있는데 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이지예~ 지금 떠들면 성적 폭락한다이!! 화2 공부 안 해도 되니까 다른 공부라도 책 얼른 펴라!!” 이렇게 딱 나를 지적해서 쓴소리를 해주셨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그 선생님께는 어떤 쓴소리를 들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평소 나를 많이 생각해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선생님의 쓴소리에는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그 선생님이 쓴소리를 해주시면 달게 듣고 오히려 기분 좋게 공부에 집중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도 선생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하지만 사실 우리나라 교육을 보면 키팅 선생님 같은 선생님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 교육자체가 경험보다는 공부만을 강조하고 그 공부도 철저히 대입위주의 커리큘럼이기 때문이다. 대입에서 중요시 하는 과목들은 학교에서도 중요도를 두지 않고 심지어 과목자체를 없애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키팅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나올 수 있을까? 내가 중학교 때 키팅 선생님과 비슷한 국어 선생님이 계셨다. 교실에서 수업하기 보다는 영화에서처럼 운동장이나 다른 곳에서 직접 체험하면서 수업을 하셨다. 공부만 강조하기 보다는 너희가 하고 싶은 것을 지금부터 탐구해 보라고 하셨고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진지하게 상담하면 응원해 주시고 최대한으로 도와주셨다. 또한 아이들과 많은 활동을 하러 다니셨다. 나와 친구들은 이런 선생님을 뵌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꽤나 충격이었지만 점점 선생님을 따르게 되었다. 하지만 학생들 사이의 반응과 선생님들 사이의 반응은 달랐다. 키팅 선생님처럼 학교에서 나가게 되고 이런 정도는 아니었지만 다른 선생님들은 수업시간에 은근히 그 선생님을 부정적으로 말하곤 했다. ‘아이들과 너무 많이 돌아다닌다’, ‘수업을 교실에서 해야지.. 교실이 아닌 밖에서 하면 아이들이 학교를 우습게 본다’, ‘아이들이 산만해 진다’ 등등의 이유를 대면서 부정적인 말을 하셨다. 물론 그게 나와 친구들의 생각을 바꾸진 못했다. 그 선생님께 얻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배움이라는 것이 딱딱한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배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게 해주셨다. 를 보니 키팅 선생님과 이 선생님이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영화는 선생님에 따라서 학생들이 얼마나 변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선생님의 역할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학생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선생님으로서 고민과 노력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선생님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도 실감하지 못했다. 위에서 언급했던 나의 경험들도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실감할 수 있는 것이지 그 당시에는 ‘좋은 선생님’ 이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 특히 사범대에 입학을 하게 되고 교육에 대한 수업을 들어보면서 선생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되었다. 특히 직접적으로 실감하게 된 계기는 과외 이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알바로 과외를 시작했다. 사실 1학년 때는 공부 할 마음이 없어서 과외 준비도 안 해가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어짜피 아는 건데 뭐~’ 이런 생각이었다. 실제로 과외 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직까지는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었고 설사 까먹었다고 해도 책을 슬쩍 보고 설명해 주거나 해답지를 보고 문제 설명을 해주면 됐다. 과외 준비를 안 해가다 보니까 학생들이 질문하는 것이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아이들과 얘기를 하면서 수업을 안 하려고 까지 했다. 학생들이 딴 짓을 하더라도 선생님의 입장에 있는 내가 바로 잡아줘야 하는데 내가 얘기를 주도해 나가다보니 수업이 진행이 잘 될 리가 없었다. 수업이 제대로 안 되다 보니 학생들의 성적은 오르진 않고 심지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약간의 죄책감은 있었지만 나는 아이들의 탓으로 돌리곤 했다. ‘쟤가 숙제를 잘 안 해와서 그래’, ‘학생이 집중을 안 해서 그래’... 선생님으로서 사명감, 책임감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과외는 몇 달 안가서 끊기게 됐다. 하지만 또 새로운 과외를 구하면 되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가 아는 언니와 과외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 언니는 과외 학생 하나하나를 책임감 있게 공부 뿐 만 아니라 고민상담도 해주고 시험기간에는 추가로 보충도 해주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책임감 없이 학생을 돈으로만 봤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 과외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과외준비도 하고 학생들 한명 한명을 정말 내 제자처럼 애정을 갖기 시작했다. 과외 준비가 철저히 되어있으니 아이들의 질문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질문을 많이 하면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여서 더 많이 알려주고 싶고 이뻐보였다. 그러다 보니 더욱 애정이 생기고 성적도 당연히 오르기 시작했다. 선생님으로서 뿌듯함, 책임감도 생겼다. 아이들도 옛날의 반응과 달랐다. 내가 깨달기 전에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집중도 안하고 얘기만 하려고 했다. 과외 시간 이외에는 나를 찾지도 않았으며 수업시간을 때우려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학생들이 먼저 질문을 하고 연락을 해서 공부 상담을 하고 심지어 자신의 고민 상담도 한다. 이런 나의 과외 경험을 비추어 볼 때도 선생님의 역할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수업에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이 학생들의 문제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이 먼저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변하니 학생들도 변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 대한 애정을 갖고 그 애정을 표현해 준다며 아이들은 당연히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독후감/창작| 2014.01.19| 3페이지| 1,000원| 조회(145)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8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7:11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