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아쉬운 결말, 그러나 압도적인 공포보통 영화를 선택할 때 예고편이나 주위 평을 듣고 적당한 판단을 한 다음 보는 편인데 아무 정보도 없이 보게 되었기 때문일까, 게다가 영화관에 입장하고 광고가 흘러나올 때 관객이 나 하나뿐인 걸 깨달은 순간부터 공포영화를 보기에 최적의 조건이 갖추어 져있었다.광고가 나오는 동안 유전이 무슨 의미에서의 유전일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HEREDITARY, 질병이나 외모적 특성 등이 부모에서 자식으로 유전되는 바로 그 유전을 뜻하는 것이었다.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여서 그 유전이 저주에 대한 것인지 혹은 싸이코패스 살인마의 광기가 유전된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이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난 소감은 첫번째로 감독이 연출을 정말 소름끼치게 잘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배우들은 연기를 정말 실감나게 잘한다.배우들이 아무리 명연기를 펼쳐도 연출이 엉망이거나 혹은 그 반대일 경우 그 이외의 요소들이 아무리 좋아도 영화에 대한 감상이 좋긴 어렵기 때문이다.영화 유전을 이끌어가는 배우는 13살의 찰리와 그녀의 오빠 피터,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인 애니와 남편의 4인가정과 조안. 그리 많은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전혀 지루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영화 초반부는 애니의 엄마가 돌아가신 장례식에서부터 시작한다. 애니는 모녀 사이가 깊고 돈독한 사이라 할 수는 없는 편이지만 큰 슬픔을 느낀다.그리고 외할머니의 자식인 엄마보다 외할머니와 교류가 더 많았다 할 수 있는 13살 난 찰리는 장례식장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모습이 대조적으로 비추어진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표정이 없는 모습이 오싹한 인상마저 준다. 엄마인 애니는 딸인 찰리가 우는 걸 한 반도 본 적이 없고 심지어 태어날 때도 울지 않았다면서 이상함을 느낀다.그래서 찰리를 주인공으로 한 오컬트나 싸이코패스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지 않을까 추측하고 보게 되었다.그런 내 생각이 바로 감독의 의도였던듯, 초반부에서 영화는 찰리의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났다고 느껴지는 모습들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학교에선 아무하고도 어울리지 않으며 입으로 똑똑거리는 소리는 의미를 알 수 없다.게다가 수업중에 무언가 큰소리를 내며 창문에 부딪혀 떨어졌는데, 찰리는 쉬는시간에 가위를 들고 내려가 창문에 머리를 부딪혀 떨어져 죽은 비둘기의 머리를 자른다.화단으로 내려가 비둘기 머리를 자르기 위해 가위를 들고 내려갔다는 것은 창문에 뭔가 부딪혀 소리가 날 때 이미 그게 비둘기란 걸 알고 있었다는 건데 그게 어떻게 가능했던 건지, 그리고 찰리가 한 기이하고 소름끼치는 행동이 악마와 관련이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찰리가 방에서 뭔가 빛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을 느끼거나 엄마에게 할머니가 그립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그녀 역시 할머니에게 정을 느끼고 있었고 그로 인해 이상행동을 한 건가 하고 생각을 바꾸려는 찰나,엄마인 애니는 남편에게는 영화를 보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하고, 아들과는 다소 공격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인다.애니의 가족에게 뭔가 문제가 있으며 남편과 함께 슬픔을 나누기보다 뭔가 방어적인 애니의 태도도 시선을 끈다.그러던 중 애니는 피터가 가는 학교친구들과의 파티에 찰리를 억지로 함께 보낸다. 애니는 찰리가 우울하게 지내는 대신 마음을 전환하라는 뜻에서 그랬겠지만 친구들과 파티에서 마리화나를 즐길 생각이었던 피터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관심이 없는 찰리도 썩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피터는 파티에 도착하자마자 여자애들과 마약을 즐길 생각에 동생에게 케이크를 먹으라고 보낸 뒤 사라진다. 동생이 알러지가 있는걸 몰랐던지 미처 생각지 못한건진 몰라도 다소 무책임한 모습, 우려대로 찰리는 알러지로 목이 부어올라 호흡이 힘든 것을 느낀다. 피터는 동생의 모습에 놀라 찰리를 업어 차에 태우고 급하게 운전을 한다.찰리에게만 포커스가 집중되었을 때보다 긴장감이 가중되는 순간이었고, 이때부터는 긴장감을 놓을 틈이 없었다.찰리가 숨을 못쉬겠다고 고통을 호소하자 피터는 마음이 조급해서 계속 속도를 내고, 찰리는 다급하게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어 찬공기를 들이마신다. 찰리에게 위험하다고 만류하려 잠시 고개를 뒤로 돌렸던 피터 앞엔 길에 누워있는 짐승의 사체가 보였다. 피터가 깜짝 놀라 핸들을 급하게 꺾는 순간 창밖으로 내밀었던 찰리의 머리가 나무에 부딪힌다.동생의 죽음에 슬픔과 동시에 충격과 공포로 이성을 잃은 피터는 그대로 집에 돌아와 다음날 아침 부모님이 찰리의 머리 없는 시신을 발견하는 순간까지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그 이후 아이를 잃은 부모의 절규와 사건현장에 대한 잔인한 묘사는 충격 그 자체였다.엄마가 돌아가신지 일주일만에 딸을 잃은 슬픔에 압도당한 애니는 역시 가족과 함께 슬픔을 헤쳐나가기 보다 밖에서 해결책을 강구한다.찰리가 죽은 것에 대해 서로를 탓하는가하면 또다시 영화를 보러 갔다온 척하고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모임을 참석하러 가는데, 그 때 자신도 아들과 손자를 잃었다며 친절한 이웃 조안이 말을 걸어온다.기이한 행동을 해왔던 찰리의 죽음이 저주를 불러오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하며 영화를 계속 보는데조안의 집에 초대받아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나눌 정도로 친해지고 마침내 조안으로부터 죽은 가족을 불러내는 주술에 대해 듣는 장면을 보면서 조금 더 추측에 확신이 생겼었다.조안이 손자를 불러내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지만 딸에 대한 그리움에 애니는 집에서 찰리를 소환하는 의식을 치르고, 그것을 보라고 가족들을 부른다.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가족들에게 보이는 애니의 광기야말로 소름이 끼쳤다.가족들의 그녀에 대한 불신, 관객으로서 가족들의 편에서 정말 그녀가 딸에 대한 그리움으로 미쳐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녀가 찾아내게되는 조안에 대한 수상한 점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움도 느껴졌다.게다가 애니가 찰리를 소환하기 전부터 시작된 피터의 죄책감으로부터 비롯된 환각에 가까웠던 것들은 소환 이후 피터를 미치게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괴롭히고 위협하는데,피터의 두려움과 공포가 절절히 느껴졌다.가족들의 심리상태를 복합적으로 표현해내면서 조안에 대한 정체에 호기심을 느끼게 하고,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을 연출한 것은 좋은 시도였던 것같다.아빠는 대체 무슨 죄인가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애니가 가족을 오컬트 주술로부터 지켜내려던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피터를 괴롭히고 위협하는 것이 딸의 죽음으로 미쳐버린 애니 본인의 광기라고 생각하는 남편의 시각,가족을 조안이 부리는 어두운 주술로부터 지켜내야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가운데 외롭게 사투하는 애니의 시각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서야 할지 관객으로서 혼란스러운 시점을 표현해내고'본인을 희생하고 아들을 살려 남은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남습니다'하고 흔한 공포영화 결말로 끝날줄 알았는데 예상을 뒤엎고 더욱 기괴한 장면들을 보여준다.배우들이, 특히 애니 역의 토니 콜렛의 연기가 정말 압권이었다. 슬픔, 분노, 혼란, 공포, 경악할만큼 공포스러운 감정, 악마가 되어 인간을 조롱하는 듯한 지독히 소름끼치는 표정까지 모든 표정을 생생하게 만들어낼 줄 아는 배우인 것 같다.영화 막바지에 벽난로 앞에서 순식간에 바뀌는 표정, 피터를 똑바로 쳐다보았던 그 표정은 실제로 어디서도 본적이 없었던 것 같으면서도 정말로 악마가 존재한다면 아마도 악마를 그대로 표현해냈을 것 같은 그런 얼굴을 만들어냈다.그래서 정말로 소름이 끼치고 공포스러웠다.또한 찰리에 대한 죄책감과 계속되는 악마의 괴롭힘에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떠는, 십대 청소년에 불과한 어린 피터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도 관객을 몰입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 같다.영화 초반에 유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었는데조안을 비롯한 오컬트집단이 할머니에게 건 저주가 애니와 찰리, 피터에게 유전되었다는 게 가장 큰 의미인 것 같다.그리고 찰리가 초반부에 직접적으로 포커스가 맞춰졌고 등장하지 않는 순간에도 가족들의 정신상태를 통해 큰 존재감을 드러낸 것을 비추어볼 때, 찰리를 중심으로 놓고 생각하면 유전은 할머니를 통한 비정상적인 감정에 대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니가 심리치료 모임에서 자신의 엄마의 생전 감정상태에 대해 말했던 것들을 놓고 생각해보면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다.영화 자체의 몰입도도 대단했지만, 텅 빈 영화관에 홀로 앉아있는 생경한 경험도 공포를 가중시켰고, 그 덕분에 한 줌의 잡음도 없는 가운데 음향효과는 어찌나 확실한지 시체에 꼬이는 파리의 소리가 바로 내 귀 옆에서 들리는 듯 느껴지고 등장인물들의 절규가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는 듯 느껴졌다.개인적으로 오컬트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컨저링 같은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마지막 결말 포인트에 아쉬움이 더 컸지만 결말의 씬 역시 기괴함의 끝을 드러내는 듯한 느낌을 받긴 했다.공포영화를 보고 이렇게까지 소름끼치고 무서웠던 적은 처음이라 중간에 나오고 싶은 충동도 있긴 했었지만, 오히려 무서우니 더 못나오겠는 기분도 들었다.의도하지도 않았는데 하필 텅빈 영화관에서 혼자 공포영화를 보게 되었고, 집에와서 검색하고 알고보니 무섭다는 평가가 자자한 영화였다니.게다가 집에 가는 길은 더 무서웠다. 집에 가기 위해 자정을 2분 넘긴 시간에 불꺼지고 아무도 없는 거리를 15분이나 혼자 걸어야 했으니까.관객의 슬픈 감수성을 자극하는 정말 잘만든 영화를 슬펐다고 하지 재밌었다고는 표현하지 않듯이, 나또한 이 영화가 정말 무서웠다고 하지 미처 재밌었다고는 못할 것 같다.하지만 이런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정말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나폴레옹은 1808년에 괴테를 만나고 “여기도 사람이 있군” 하고 묘한 말을 남겼는데, 일각에서는 당대 최고의 영웅이자 천재로 칭송되던 나폴레옹이 괴테를 자신에 버금가는 인물로 인정한 것으로 여겨 최상의 찬사라고 생각했다.괴테는 부유한 중산층 출신으로 에서 베르테르에게 자신의 중산층으로서의 삶의 모습을 투영 시킨 면을 볼 수 있는데, 그가 자신을 주인공에게 대입시킨 작품이 아주 다양하다. 이러한 점은 에서도 볼 수 있다. 파우스트 박사는 모든 학문분야를 섭렵했으나 여전히 만물 근원을 알 수 없었다는 이유로 좌절 끝에 자살을 시도한다.요한 페터 에커만의 에서는 괴테 자신이 직접 발언했듯이 자신이 여러 학문을 섭렵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면 글을 더 잘 쓸 수 있었을 것이라고 후회스러운 마음을 내비치고 있다.괴테가 세계 문학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보적인 인물인 것은 80년이 넘는 생애 동안 시와 소설, 희곡과 산문, 신학과 철학, 과학 등 여러 분야를 섭렵하고 법률을 전공하여 유능한 관료로서도 존경을 받았을 정도로 오랜 기간 쌓아온 지식과 그의 다재다능함 덕분이었기 때문이라서 그의 고민은 자신에 대한 지나친 겸손이 아닌가 싶다.또한 괴테의 작품에서 그의 모습이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와 이 있다. 이 작품들에서 빌헬름이 가진 휴머니즘 정신이 아름다운 영혼과의 교류를 통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아마도 괴테 자신이 친구 실러와의 교류를 쌓음으로서 문학의 깊이를 더한 것이 반영된 것 같다.괴테는 어려서부터 문학과 예술을 가까이 접해왔고 여덟 살부터 시를 짓고 열 세 살에 첫 시집을 낼 정도로 문학 신동이었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20대 초반에 변호사로 개업을 했지만 그의 관심은 줄곧 법률이 아닌 문학이었다.그는 1772년에 베츨라르에 머물면서 요한 케스트너라는 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케스트너의 약혼녀 샤를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인 예루잘렘이 유부녀에게 실연을 당하고 자살했다는 비보를 듣게 된다. 따라서 은 그의 실연 체험과 친구의 자살을 소재로 썼다고 할 수 있다.괴테는 1775년에 바이마르로 가서 신임 군주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의 신임을 받아 국정을 맡게 되지만 그의 내면은 예술에 대한 갈망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10년만에 도망치듯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는 여행 2년만에 다시 바이마르로 돌아오는데 이 때의 경험은 괴테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괴테 특유의 고전주의적 예술관이 확립되었고, 여행을 통해 변모한 괴테의 내면을 이해하지 못한 옛 친구들과 결별하게 되었다.그 후에 괴테는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프리드리히 실러와 교류함으로서 문학가로서 큰 힘을 얻게 된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우정은 실러가 괴테를 따라 바이마르로 이사를 하고 이라는 풍자시를 공저했고 서로 작품을 비평하며 집필을 독려할 정도로 돈독했다. 희곡 , , , 그리고 가 이 시기에 나온 괴테의 작품들이다. 희곡 와 , 그의 자서전 , 기행문인 , 과 , , 은 실러가 사망 한 뒤에 집필 된 작품들이다. 1825년에 괴테는 제 2부 집필을 시작했고 1831년에 탈고했지만 원고를 봉인하고 사후에 발표되기를 원했다. 이듬해 1832년 괴테는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친구인 프리드리히 실러 곁에 묻히게 된다.는 처음 구상 될 때 대학 졸업 직후부터 쓰기 시작했으나 미완성 상태로 간행되었던 상태에서 실러가 읽고 감탄해서 완성을 독려하자 1797년에서야 다시 집필을 시작했던 작품이다.때문에 괴테는 이 작품에 더욱 애착을 가졌을 것이고 열심히 집필을 했지만 파우스트 제 1부가 간행된 11년 뒤 실러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초기에 구상했던 제 2부의 집필은 그로부터 또 한참이 지난 1825년에 시작되었고 6년에 걸려 괴테가 사망하기 바로 전 해에 끝남으로서 구상에서 완성까지 무려 60년이 걸린 작품입니다.파우스트를 비롯한 괴테의 대표작들은 다른 유럽 문학에 비해 낙후되었다고 평가 받던 독일의 문학 수준을 일거에 드높였다. 문화사가 자크 바전이 “독일 민족의 자의식은 바이마르에서 태어났다”라고 말할 정도로, 셰익스피어가 영국 만화와 영어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듯이 괴테는 독일 문화와 독일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이다.내가 을 선택하게 된 것은 교수님께서 라는 책을 선물해주셔서 괴테에 대해 관심을 갖다가 괴테가 자기 자신을 작품에 반영한 대표작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에 괴테의 인생과 철학이 녹아있는 부분은 뒤에 작품 배경과 줄거리와 함께 언급하도록 하겠다.작품에 대해 말하자면 괴테가 7주의 기간 동안 써내려간 것으로 친구 케스트너의 약혼녀를 사랑했던 자신과 친구 예루잘렘의 자살을 토대로 쓰여 더욱 강한 흡인력을 갖는 작품이다. 이 괴테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미루어 보건대 그의 체험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것이 아니었을까. 괴테의 친구인 예루잘렘에 대해서 조사해보니 그가 자살 했다는 소식을 케스트너에게 듣게 되었는데 예루잘렘이 자살 하는 데 사용한 권총을 빌려준 사람이 다름 아닌 케스트너였다는 것이다. 당시 그는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괴테가 친구의 약혼녀를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것은 그의 내면에 친구의 약혼녀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던 차에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던 예루잘렘이 자살에 사용한 총이 하필 케스트너 였던 것은 마치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도 생각 할 수 있는 케스트너가 예루잘렘을 단죄한 것 처럼 보여지는 상징적인 의미로 괴테에게 해석 되어서 더욱 충격이 컸고 그로 인해서 작품을 쓰기로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은 절친한 친구인 빌헬름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편지 형식이다. 어느 봄날 베르테르는 변호사로서 상속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시골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법관의 딸인 로테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약혼자 알베르트가 돌아오자 공사관 비서를 자청해 마을을 떠나고 그 사이 로테는 알베르트와 결혼을 하게 된다. 베르테르는 당시의 관료적 인습에 반항하다가 파면 당하게 되고 사교계에서도 웃음거리가 되어 철저히 외면을 받는 존재가 된다. 베르테르는 로테를 다시 찾아갔는데 한 남자의 아내가 된 로테는 그를 여전히 따뜻하게 대해주고 그것이 베르테르로 하여금 더욱 고독함을 느끼게 했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대립구조의 형식을 띄고 있다. 지적인 측면이라든지 경제력과 가치관 등 이상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배우자의 우선 조건이라고 여겨졌던 것이 기존의 가치이고 귀족 계층은 여전히 정략결혼의 틀에 묶여 있었다. 이런 이상적인 배우자에 속하는 것이 알베르트이다. 이에 반해 시민 계층이 배우자를 선택 할 때는 사랑이 핵심적인 가치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문학동네의 작품 해설에 의하면 당시 사랑이 상대에게 느껴지는 정신적 차원의 품위와 미덕에 따라 밀도와 강도가 달라지는 경향을 보였다고 하는데 로테 역시 알베르트의 품위와 미덕 때문에 그를 이상적인 배우자로 여기는, 기존의 가치를 가진 사람이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사랑은 여전히 윤리와 문화에 얽매어 있어야 했고, 결혼 그 자체는 변화 불가능한 질서를 의미 했다.책 내용을 살펴 보면 그녀는 그의 성품이 훌륭하고 자신을 사랑해주기 때문에 배우자로서 적합하다고 생각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베르테르를 사랑하고 아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의 대립구조에서 베르테르가 사회 통념적 가치와 다른 사랑을 추구 하고 있는데 이에 저항하기 위해 알베르트로부터 로테를 빼앗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사랑의 품위와 순수성을 지킴으로서 로테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더 존중하고 싶었기 때문인 듯 하다. 베르테르는 그러한 방식으로 사회에 저항하는 대신 자살로서 사회에 대항하는 방법을 택하는 비극적인 결과가 생기게 된다.두 번째로 작품에서 드러나는 대립구조라 할 수 있는 것은 계급 간의 갈등이다. 괴테가 이 작품을 쓴 계기는 그의 사랑과 친구의 자살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당시 괴테가 중산층으로서 상류층과 하류층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시대와의 단절로 고민하는 청년으로서의 모습 또한 담겨 있다는 것에서도 의미가 있다. 18세기에 경제적으로 시민계층이 부유해지면서 성직자와 귀족 계층에 이어 세 번째 신분을 확보하는데 베르테르의 가문이 이런 시민계층에 속했고 계층 변화의 과도기라고 할 수 있는 이 때에 시민계층은 어디에도 쉽게 융화되기 어려운 존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상류층은 신분이 낮은 베르테르를 무시했고, 하층민들은 베르테르가 자신들보다 신분이 높기 때문에 잘해주어도 잘난 체 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오해 하기 일쑤였다. 베르테르가 상류사회의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무시를 당하는 장면이 속에서 여러 번 보여지는데, 인도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의 유용한 구성원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염원하는 괴테의 바람과 비판 의식이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이 작품이 금기된 사랑이라든가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에 이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심지어 자살 신드롬까지 생겨날 정도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사랑을 지켜내려는 목숨을 건 노력이 그의 사랑만큼이나 뜨거웠기 때문이고, 또한 그의 자살이 사랑에 대한 좌절때문만이라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베르테르와 같은 새롭게 등장한 시민계층의 젊은 이들이 그와 같은 사회와 개인간의 신념의 갈등, 계급간의 갈등으로 인해 고민을 했기에 베르테르에게 더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