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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블레이드 러너' 감상문
    영화 ‘블레이드 러너’ 감상문먼저 이 글은 이진경 씨의 ‘블레이드 러너 : 복제인간과 안티-오이디푸스’(창비 1995년 여름호 발표)란 논문에서 많은 생각을 빌렸음을 밝힌다. 지면상으로 위 논문의 소개는 생략하며, 밑에 출처를 달아놓았다. 바로 결론을 말하자면, 정신분석학적으로 통칭 ‘우리’라는 인칭대명사로 엮을 수 있는 ‘인간’은 복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영화상 ‘복제인간들’은, 사실 가짜 인간인 ‘우리’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해주는 교묘한 장치일 뿐이다. 이는 라캉철학의 개념을 가지고 설명이 가능한데, ‘아버지의 이름’, 다시 말해 ‘표상 체계’에, 개인이라는 개체가 포섭됨으로써, 각 개인은 구분되어지고 역할이 주어진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도킨스가 인간을 유전자의 도구라고 말했던 것처럼, 한 사회의 개인은 대타자의 복제이자 도구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리하여 영화상 ‘인간’은, 실상 ‘복제인간’과 다름이 없으며, 작품의 서사는 두 정체성의 모호한 경계성이 점차 중첩되어지고, 사실은 동일하다는 것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끝으로, 이진경 씨의 용어를 빌리자면 주요 등장인물들은 ‘탈주’를 감행하는데, 이것은 복제된 자아(이 용어가 적절한지 모르겠다. 사실 이것 말고도 전체적으로 용어가 적절한 지 자신이 없다.)임을 거부하는 행위이다. 복제인간들의 지구로의 탈주, 주인공이 레이첼과 함께 하는 탈주, 사실은 실체가 없었던 대타자로부터의 탈주로 인해, 이진경 씨는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과정을 겪는다고 말하며, 필자 또한 이에 동의한다.어쩌면 이것은 모든 감상자들이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던 내용이며, 누군가 납득이 가능하게 논리적으로 풀어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필자에게 궁금한 것이 무엇이냐면, 무엇이 그 당연한 직관의 목소리를 은폐시키냐는 것이다. 만약 현실에서 복제인간들이 존재하며, 그 사람들의 인권과 시민권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을 때, 나는 과연 흔쾌히 찬성표를 던질 수 있을 것인가. 약간의 비약을 거치면 이는 무수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한국인으로, 혹은 내부 정체성부터 변화를 거쳐 세계시민으로 흔쾌히 찬성표를 던질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19C와 20C에 걸친 노예제 폐지와 여성 인권 신장 문제를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 ‘인간’이란 ‘백인 남성’이었을 것이고, 그것은 나름의 신성성을 가지고 사람들을 움직였을 것이다. 즉, 다시 말해 복제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해주는 것을 꺼리는 그 무엇은, ‘인간’이란 자연에서, 혹은 신에게서 나온 무엇이라는 신성성이 내포되어 있으며, 외국인 노동자를 비한국인으로 대하는 것은, 한국과 민족이라는 것에 대한 신성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이런 불쾌감으로부터 ‘탈주하라.’ 말하는 것은 사실 너무나도 쉬운 것이다. ‘탈주’ 뒤에는 무엇이 남는가. ‘인간성’을 일련의 과정으로 설명하는 것은 끊임없는 투쟁의 대상을 필요로 한다. 필자의 종교는 카톨릭인데, 예전엔 이 종교가 사생아에게 세례를 주지 않았다는 점에 놀랐다. 그러나 2차 바티칸 공의회 때인지, 이번 교황이 등극하면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사생아에게도 세례를 주고 있단다. 기존의 신성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섭하는 한 차원 더 높은 신성성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인간은 타인간이 아닌, 표상 체계와 체제에 대한 지배권을 다시 되찾아와야한다. 보편 교리는 가능하며, 그것은 도달점이 아니라 지향점이다. 그것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살리며, 이끈다. 그러려면 ‘인간이 무엇이냐’라는 지난하고도 기초적인 작업부터 들어가야 하는데, 솔직히 모르겠다. 너무 당연한 건데, 풀어쓰려니 모르겠다. 일단 더 살아보고 생각해보기로 하겠다.
    독후감/창작| 2014.10.18| 1페이지| 1,000원| 조회(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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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포트)소련 공산체제의 위기와 동유럽 공산체제의 붕괴
    소련 공산체제의 위기와 동유럽 공산체제의 붕괴- 차 례1. 흐루시초프와 처녀지 개간 사업(1) 개괄(2) 흐루시초프의 ‘7개년 계획’2. 브레즈네프 시대(1964~1982)(1) 브레즈네프의 등장 배경과 당시의 문화 정책(2) 브레즈네프의 외교 정책(3) 브레즈네프의 경제 정책(4) 브레즈네프 시대의 말기3. 고르바초프와 소련연방의 해체(1985~1991)(1) 글라스노스트(2) 페르스트로이카(3) 소련의 해체4. 동구권 공산체제의 붕괴5. 정리서 론1985년 3월 11일,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취임하게 된다.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란 정책을 두 축으로 소련의 개혁을 시도한 그는, 역설적으로 소련의 해체와 공산권의 몰락을 야기하게 된다. 이 역설적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선, 적어도 그 전에 있었던 중요한 서기장, ‘흐루시초프’ 시대의 ‘처녀 개간지 운동’부터 살펴보는 게 좋을 것으로 보인다. 소련 역사에 있어 만성화된 정책 실패는, 고르바초프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왜 무너질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줄 것이다. 또한 연방의 해체는 서방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미숙했던 점에 기인, 다시 말해 경제적 측면의 요소가 크므로 경제사적인 면에 중점을 두고 살펴보는 것으로 한다. 동독을 비롯한 동구권의 몰락은 소련 연방의 부침에 따라 이루어지므로, 소련 경제사의 서술 후 살펴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1. 흐루시초프와 처녀지 개간 사업(1) 개괄‘브레쥬네프’가 소련의 제5대 서기장으로 취임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전 서기장 ‘흐루시초프’의 군사교리 수정과 농업정책 실패에 기인한다. 50년대 이후, 소련에게 있어서 미국과의 군비 경쟁은 점차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흐루시초프는 재래식 무기의 확충보다는, 핵무기와 ICBM 등의 전략무기 확충을 통해 경쟁에서의 우위를 점하려 했는데, 이는 소련 군부의 반발을 야기하게 된다. 또한 ‘7개년계획’ 하의 ‘처녀지 개간 사업’의 실패가 결정적인데, 이를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한다.(2)목권은 제한되었다. 또한 가축수가 한계선을 넘어설 때는 세금이 부여되었다. 다시 말해, 농민들의 사기와 작업 동기는 바닥을 기었다.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흐루시쵸프는 더욱 더 압력을 넣었으며, 근무시간은 심지어 오전 3시 45분부터 저녁 9시 45분까지 달하곤 했다.이러한 추세와 맞물려, 1963년엔 심지어 적국인 미국에게서 곡물을 수입하기까지 이른다. 이는 농업 정책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었던 흐루시초프에게 큰 타격이었다. 결국 1964년 10월, 브레즈네프는 흐루시쵸프를 해임하고, 제5대 소련 서기장으로 임명된다.2. 브레즈네프 시대(1964~1982)(1) 브레즈네프의 등장 배경과 당시의 문화 정책그래도 흐루시초프 정권의 의의를 매기자면, 철저한 스탈린에 대한 비난과 공격이었다. 그는 신적인 우상화가 되어있던 스탈린을 격하시켰으며, 문화와 ‘반당세력’에 있어, 종전과는 다른 여러 완화정책이 펼쳐졌다. 예를 들어 당시 반란 세력이었던 ‘몰로또프’와 ‘말렌코프’는 처형되지 않고, 각각 몽골 대사와 발전소 소장으로 좌천되었을 뿐이었다. 1962년에는 스탈린 시대의 강제수용소 생활을 그려낸, 알렉산더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출판되기도 하였다. 부수적으로는 1957년 10월에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하는 등의 업적이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경제 정책의 실패는 ‘브레즈네프’라는 보수주의 세력을 다시 집권시키는 계기가 되고 만다.새 서기장은 흐루시초프 시대 때 소외되었던 공산당 안의 엘리트와 정부 관료들을 달래는 작업에 착수한다. 수많은 개혁조치가 폐지되었으며, 솔제니친의 작품 또한 다시 금지되었다. 반체제인사들은 다시 탄압되기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행위는 공산당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된다. 다시 과거 스탈린의 경우처럼 브레즈네프에 대한 개인숭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유난히 명예를 졸아했던 그는, 소련 최고의 영예인 ‘소비에트연방영웅 훈장’을 자기 자신에게 4번이나 수여한다. 이외에도 재임 기간 18년 동안 그는 총 2억 킬로와트)1,2941,5751,544석유(100만 톤)603632595가스(10억 세제곱미터)435620643석탄(100만 톤)716785726강철(압연, 100만 톤)103118.5108비료(영양소 함유, 100만 톤)24.836.533.2트랙터(1천 대)555-585시멘트(100만 톤)125141131직물(100만 제곱미터)10,746-12,052출처 ? 같은 책, P. 421위 표는 1981~85년의 제11차 5개년계획에 대한 수치다. 브레즈네프의 말년과 그 이후 집권한 후계자 두 명의 짧은 통치기간을 포함한다. 하나씩 살펴보자면 ‘가스’ 부문을 빼고는 계획량을 달성한 항목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공산권의 부풀린 통계자료에서 말이다. 더군다나 ‘곡물수확’과 ‘석유’는 1980년보다 더 하향했으며, ‘석탄’과 ‘강철’, ‘시멘트’의 생산량은 변함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는 당시 소련 체제의 침체와 위기를 고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서구 세계로부터의 곡물 수입량이 이를 적절히 보여줄 것이다. 1973년의 곡물 수입은 2300만 톤이었고, 1981~1985년의 토지 수입량은 4천만 톤을 넘어섰다.브레즈네프 시대의 이러한 위기는 여러 원인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낮은 출생률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당은 인력에 있어 과도한 요구와 효율의 낭비를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미국과 군사분야에 있어 균형을 맞추느라 재원을 소모하였다. 인프라나, 경공업에 투자되어야할 재원은 기계와 엔지니어링, 전자부문에 배당되곤 했다. 또한 농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 또한 재원을 소모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위에서도 언급했듯, 흐르시초프 때부터 이어진 동기의 부족, 생산설비의 낙후, 생산계획의 착오와 실패 등으로 모두 매몰비용이나 마찬가지였다. 소련 체제는 온갖 비효율과 낭비, 기술진보의 느린 확산, 투자에 있어 불균형이 만연하였다. 새로운 생산물이나 기계는 수많은 단계의 관료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했고, 그런 다음 계획목표 수치에 맞춰져야 했으며,분했을 것이다. ……냉담, 무관심, 도둑질은 …… 대중적 현상이 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고소득자들에 대한 공경적 시기심이 횡행하고 있다. 알코올 중독과 게으름이 판을 치면서, 우리 국민의 상당 부분이 일종의 육체적 타락을 겪고 있는 조짐들이 나타났다. …… 이 모든 것들을 단숨에 극복할 수 없음은 확실하다. 수년이, 아마도 수세대가 필요할 것이다.출처 - 같은 책, P. 431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는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르스트로이카(개혁)’이란 두 가지 화두를 지니고 소련 개혁 작업에 착수한다. 그러나 이것은 끝내 본래의 의도를 달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소련의 해체를 야기하고 만다.먼저 ‘글라스노스트’란 폐쇄적이고,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당시 소련 사회에 대한 ‘자기비판’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의도는 공개정책으로 인해 비능률과 부패가 제거되고, 본래의 공산주의 체제가 회복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금주 운동과 부패추방 캠페인을 벌였으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두 명의 고위관리를 처형한다. 신문에서는 제도와 정책에 대한 비판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여성, 환경, 범죄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1986년에 일어난 체르로빌 원자로 폭발 사건이 보도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읽혀진다. 또한 제27차 공산당대회에서는 유례없이 토론이란 것을 하기도 했다. 이는 소련에 대한 정치 개혁의 일환으로써, 토론에서부터 시작하여 다양성을 허용하는 단계로까지 가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명의 후보가 출마하여 경쟁을 벌이는 지방선거가 실시될 정도로 사태는 발전하여, 그는 정치적 반대세력을 용납하는 단계까지 나아갔다.그러나 이러한 고르바초프의 정치개혁은, 다민족 국가였던 소련을 무너뜨릴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기 시작했다. 글라스노스트는 언론의 자유를 통해 기존 소련 체제 내부의 문제점들을 좀 더 투명하게 드러내서 해결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오히려 언론의 자유를 통해 억눌려있던 민족주의적 열정이 터져 나와서 소련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19 그것보다는 ‘페테스트로이카’ 정책에 있어 몇 가지 문제점이 제기된다.첫 번째는 이데올로기적 문제이다. 맑스주의자들에게 있어, 시장은 제한된 규모로만 허용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사멸되어야할 무엇이다. 이 관점은 비단 관리들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시민들까지 공유하고 있던 사회적 관념이었다. 고르바초프는 효율성을 내세웠지만, 대중들은 값싼 일용품과 안정된 직업에 익숙해있었다. 이로 인해 개혁의 범위 및 규모와 그 궁극적 목적이 무엇인지 불확실하게 표현되었다. 정책 집행에 있어 첫 해에는 ‘시장’이라는 단어조차 회피되었으며, 사람들은 ‘상품-화폐 관계’에 대해서만 말할 뿐, 어떤 종류의 사회주의적 시장도 언급하지 않았다.두 번째는 당-국가 기구에 있는 많은 관리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저항이다. 이들은 권력과 특권의 원천인 ‘재원배당’ 기능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자신들의 직업과 경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들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안을 탐탁지 않아 했다.세 번째는 첫 번째와도 이어지는데, 그것은 ‘시장문화의 결여’이다. 사람들은 구체제에 여전히 익숙해있었다. 경영진은 계획에 의해 고객이 정해지는 것에 익숙하였으며, 마케팅 같은 것은 실행하지 않아도 되었다. 국가 이외의 거래중개인은 여전히 불법이었으며, 계약법은 결함투성이였다. 이러한 요소들이 맞물려 1988년엔 여전히 구체적 기능이 유지되고 있었다. 정리하자면 고르바초프를 비롯한 집권층 일선만 의욕적이었을 뿐, 실무 관료층과 대중 층은 개혁의 의미와 의도에 충분히 공감하고 움직이지 못하였다고 하겠다. 소련 엘리트층 특유의 ‘밀어붙이기식 행정’이 고르바초프 대에서도 온전히 피해가지는 못하고 있던 것이다.또한 고르바초프는 흐루시초프 때부터 이어진 100~150억 루블이라는 막대한 적자를 물려받았다. 그 까닭은 위에서 살펴본 것과 마찬가지로 군비와 실패한 농업정책의 빚이었다. 이 적자는 빠르게 증가하여, 1986년에 479억, 87년에 571억, 88년에 901억 루블에 달하였다. 1989년에는 1천억 루블에 근접하고
    인문/어학| 2014.10.18| 10페이지| 2,000원| 조회(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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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포트)JTBC '꽃들의 전쟁'으로 본 자기애성 인격장애
    * 자기애성 인격장애- 참고자료 / JTBC 꽃들의 전쟁- 들어가며극중 주인공 ‘얌전’은 당시의 신분제도에 의해 심리적 상처가 생긴 인물이다. 물론, 이것은 인물의 복수심에 기반을 둔 몇몇 문제 행동일 뿐이지, 성격장애로까지 진단이 불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본 글에서는 그녀가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있다고 잠정한 후 진행하도록 한다.- 1 : 줄거리 -극중 시대적 배경은 병자호란 때이며, 양력 상으로는 1636년 이후이다. 당시 조선의 사회상은 중인과 서인에 대한 차별이 심한 때였는데, 주인공은 병조참의에 오른 ‘조귀’의 첩의 딸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소실(첩)의 딸이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을 당했는데, 그것은 그녀의 친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직접적이다. 친부는 그녀를 딸로 생각하지 않으며, 다 커서는 ‘얼굴이 반반하다.’라는 등, 현대로 따지면 애매한 성희롱적 발언도 생각 없이 던진다. 또한 그녀의 소꿉친구 ‘남혁’과 결혼을 생각하고 있으나, 그의 어머니는 몰락한 사대부 집안의 어른으로서, 아들과의 결혼을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주인공이 겨우 타협점을 찾은 것이, 훗날 소실로서 들어간다는 조건이었으니, 그녀는 극중 초기에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빈번하다. 그러다 정치적 이유로 그녀는 궁에 들어갈 기회를 얻는다. 물론 그녀는 초기에 밥을 굶는 등 완강히 저항하나, 생각을 바꾸어 적극적으로 그 길을 가는 모습을 보인다.극의 중기는 그녀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분 상승을 꾀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그녀는 예전에 정분이 났던 남자가 있으면 안 된다는 이유로, 자객을 보내 그녀의 남자친구를 살해하려고 시도한다. 또한 두 번째 자식으로 딸을 낳자, 궐 밖의 다른 부부의 아들과 바꿔치기를 한다. 물론 증거인멸을 위해 다 죽인다. 독을 타서 경쟁 후궁의 자식을 유산시키며, 입지 강화를 위해 세자와 인조 사이의 이간질도 서슴지 않는다. 이 밖에도 자신의 경쟁 상대는 모두 제거하는 패턴을 보이며, 그녀는 ‘빈’의 바로 아래 단계인 ‘귀인’의 자리까지 오른다. 또한 그녀는 집요하게 그녀의 아버지에게 복수하는 모습을 보인다.극의 후기는 효종의 등극과 함께 궁궐 내의 모든 역기능적 인물을 제거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주인공의 후견인인 ‘김자점’을 사형시키며, 더불어 그녀의 권모술수가 밝혀지는 것은 물론, 고문과 사약을 받는다. 기존의 ‘후궁 암투 사극’과 동일한 서사를 따르나, 진보된 영상기술, 인물의 개성화, 탄탄한 줄거리, 포스트모던적인 악녀에 대한 시각, 다른 사극과 상대적으로 고증에 충실하면서도 현대적 감성을 살린 점 등이 극의 특성이다.- 2 : 성격 증상과 원인 -필자가 주인공을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판별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녀는 극에서 일관되게 자신의 성공에 대한 공상을 그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녀의 공상은 다음과 같은데, ‘내가 중전이 - DSM에서의 판별 기준다음 중 5개 이상1. 자신의 중요성에 대한 과장된 지각2. 무한한 성공, 권력 등의 공상에 집착3. 자신이 특별하고 독특한 존재라는 믿음상류층만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4. 과도한 찬사 요구5. 특권의식6. 착취적 대인관계7. 공감 능력 결여8. 타인을 질투, 혹은 질투 받는다고 생각9. 거만하고 방자한 행동된다면, 어떠할 것이고, 어떠할 것이다.’ 라고 그녀는 자주 언급한다. 그런데 이것이 그녀가 ‘중전’이라는 사회적 위치를 도구로서 활용하여 ‘어떠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이기에 ‘무한한 성공, 권력 등의 공상에 집착.’한다고 보았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왕의 아들을 낳았다는 이유로 ‘과장되게 자신의 중요성을 부각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녀는 정치적 이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쓸데없이 궁인들을 천대하거나, 그런 자리에 있지도 못하면서 청나라 사신에 대해 개입하려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또한 극의 여러 장면에서 궁인들의 찬사를 요구하였으며, 자신의 대인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주된 패턴이었기에, ‘착취적 대인관계’로 보았다. 경쟁 후궁이 임신을 하자, 그 앞에서 거짓 입덧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담당 궁인이 ‘왜 들통 날 거짓말을 했습니까.’라고 하자, 그녀는 밖에서 헛구역질을 쏟아내며 ‘울화통이 터져서 그랬다.’라고 대답한다. 그녀의 주된 행동이 정치적 계산에 깔린 것이었지만, 어차피 독을 타서 죽일 거 쓸데없이 다른 경쟁 후궁들을 자극하는 위와 같은 행동은, 정치적 이득 면에서도 성격장애로 인한 손해란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내는 그녀의 이런 행동은 결국 스스로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알아낼 동기를 그들에게 준다. 또한 이미 동네 사람 모두가 중요한 후궁 자리에 올랐다는 것을 아는데, 그녀는 ‘어머니가 정실부인 행세를 차려줘도 못한다는 이유’로 중전의 가마를 타고 자신의 친정에 가기도 한다. 또한 극의 중후반에서 경쟁 상대인 세자빈을 이기는데, 사대부 여식이라는 것에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쓸데없이 ‘내 치마를 붙잡고 애원하면 자식을 살려주겠다.’라고 별 이득 없는 제안을 하고 있다. 타 성격장애를 배제한 기준은 다음과 같다.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충동적으로 반사회적 기질을 띄거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데 비해, 그녀는 질투와 특권의식 빼고는, 계획을 세우고 타인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그녀는 혼자 있을 때, 자신이 만든 희생양들에 대해서 죄책감을 가지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편집성 성격장애’를 배제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녀는 의심이 아닌, 그럴듯한 정치적 안목으로 상대를 공격하거나 방어했다.
    사회과학| 2014.10.16| 3페이지| 1,000원| 조회(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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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포트)크리스타 볼프와 최인훈의 시대적 좌표를 생각해보며
    노동, 종교, 예술- 크리스타 볼프와 최인훈의 시대적 좌표를 생각해보며옛날 우리 먼 조상들은 사냥을 하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타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살생에서 죄책감을 느꼈는데, 그것이 어느 순간부터 발현된 인간성의 시초라고 생각한다. 윤리의 기본 명제는 ‘내가 싫어하는 것을 다른 이에게 적용하지 말라.’이며, 생물학적인 논증은 거울 뉴런으로서 가능하다. 인간의 진화발달에 있어 사회성이란, ‘윤리’라는 요소가 필수불가결하며, 이는 ‘너’와 ‘나’를 우리로 보는 공동체 의식과의 공진화 과정이다. 물론 동물에게까지 그것을 적용하는 것은 진화상의 오류일 것이다. - 예컨대 우리는, 물론 그런 것은 아닌 줄 알면서도, 애완견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 여하튼 어느 순간 단순한 야만인이었던 우리 조상들은, 피로 얼룩진 사냥감을 보며 이상한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강제로 죽은 것은 곱게 죽을 리가 없다. 창에 관통당한 몸뚱이와, 피가 쏠려 부풀어 오른 눈자위를 보며, 돌아오는 길에 그는 겉으론 전사로서의 당당함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뭔가 석연치가 않다. 가죽을 벗겨내고, 한 살아있는 개체가 부위별로 해체당하는 광경을 직접 집도하며, 그는 뭔가 석연치가 않다. 아마 그 인간 심리의 애매한 한 지점에서부터 종교의 기본 조건이 파생되었으리라. 모든 종교는, 기독교적 표현으로 ‘죄를 회개하는’ 제례를 가지고 있는데, 사제는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한 남자에게 물로써 씻어주며 마음속의 죄책감을 덜어준다. 그리고 그는 다음 날 다시 사냥을 나갈 수 있다. 이 반복되는 살생의 노동이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들의 삶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노동이란 자연물을 가공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좋게 말해서 가공이지, 환경주의자들은 엄연히 한 나무와 사슴을 죽였다고 말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것의 삶을 빼앗지 않고서는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가 없다. 그 구조적인 인간 심리의 모순을 파고들며, 노동과 함께 종교는 인간 삶의 필수였다. 즉, 인간을 넘어선 신의 권위로, 인간은 제 ‘인간성’과 ‘윤리’의 덕목을 지탱할 수 있었다.산업시대는 비단 산업만의 혁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의식의 전환에까지 파급력이 있었다. 쉽게 말해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암수 병아리들 중에서 수컷 병아리들은 필요가 없다. 컨베이어 벨트에 수컷 병아리들을 올려놓으면, 기계가 알아서 분쇄해준다. 사람은 그 기계의 발을 맞춰서 일을 하면 그만인 것이다. 예전의 노동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나타냈다면, 산업시대의 노동은 인간의 분업화, 기계화를 의미한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전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르며,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다. 가공자로부터 끊임없이 도매상과 소매상을 거치며, 한 사체는 자본주의적 아름다움으로 포장되어 나온다. 소비자에게 있어 미각의 선택 이외에 죄책감 같은 감정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쯤 되면 인간에게 있어 중요한 문제는, 노동에 있어 인간 소외와, 생산품에 대한 배분의 문제가 주를 이루게 된다. 신부에게 가서, ‘제가 오늘 닭 한 마리만 필요했는데, 욕심에 눈이 멀어 닭 두 마리를 잡았나이다.’하면, 순박한 사람이 다 있네, 하면서도 말이 아귀가 맞는다. 그러나 신부에게 ‘전 오늘 하루 내내 나사만 조이다 왔으며, 4분기 매출이 호황인데, 사장이 보너스가 짭니다.’라고 말한다면, 어째 신부보단 변호사가 필요한 정황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19C 말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외칠 수 있었다. 그 전에는 할 수 있지도, 생각할 수 있지도 않은 말이었으며, 했다 하더라도 통용될 수 없는 말이었다. 즉, 종교는 사회에 있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되었다. 수요가 줄어, 생산설비가 놀게 된 형국이 오늘 날 종교계의 지형이다. 물론, 순복음교회 같은 유별난 개신교회는 논외로 하도록 하자.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종교적, 사제적 직분을 지키고 있는 카톨릭이나 불교, 가난한 목사들을 말한 것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성당문이나 대웅전을 서성거리는 까닭은,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소외와 그에 따른 정체성 문제가 주된 이유다.그리하여 신부의 로만칼라의 권위가 예술가에게 넘어가는 시기가 오게 된다. 19C부터 길게는 1970~80년대까지로 보이며, 주된 직업군은 문필가이다. 그렇다면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는 3가지이다. 넘어간 종교계의 권위란 무엇이며, 왜 하필 예술계이며, 또한 문필가인가 하는 점이다. 다시 근, 현대의 노동현장으로 돌아가 보자. 노동자의 감정은 상실과 박탈이며, 그것은 분노라는 색깔을 띤다. 예전의 죄책감과는 성질이 다르다. 그것은 어쨌거나 죄를 지은 주체가 자신이며,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죄를 지은 ‘자신’의 보존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회복’이 문제지, ‘인간 소외’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노동자란 빼앗는 사람이 아니라 빼앗긴 이의 형국이다. 그 자신 또한 노동에 있어 기계이며, 한 인간 하나하나가 부위별로 쪼개지어 일하는 양상이다. 이것은 노동자에게 있어 상당한 자율권 훼손을 의미한다. 또한 분업화와 교환 경제는 자신을 위한 노동이라기 보단, 타인의 수요를 위한 노동을 만들어냈다. 물질적 측면으로 보자면, 자본가의 역할은 개척, 혁신, 투자이다. 노동자의 이윤을 박탈하여 보유재산을 축적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은 19C까지는 맞는 말이었으며, 근대화가 늦은 아시아 국가에선 70년대까지도 타당한 말이었다. 시장경제가 다분히 자연적이라면, 계획경제는 다분히 인공적이다. 새로운 체제와 질서를 노래하는 자들은 이러한 현실에 해결책을 제시해주어야 했다. 자본주의의 부유함을 유지하면서, 인간 소외가 발생하지 않는 노동. 그것은 물질적, 제도적으로는 배급제로 나타나며, 의식 개혁으로 사회주의적 윤리관을 들고 나온다. 그것은 기꺼이 타인을 위해 노동하며, 희생한다는 테제이다. ‘소외’의 문제를 ‘희생’으로 승화시킨 이것은, ‘노동 영웅’이란 호칭으로 사회주의권 곳곳에서 나타나게 된다.인간은 공짜로 희생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내에선 자기희생의 대가로 이윤을 받으며, 존재를 화폐로 환원시킨 문제가 일어났다. 사회주의의 대가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기적으론 ‘영웅’이란 호칭과 명예이며, 장기적으론 사회주의적 유토피아이다. 이것은 끊임없이 선전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체제이다. 누군가 확성기에 입을 대고 끊임없이 선전을 해대는 것이 동구권의 새로운 노동 현장이다. 즉 사회주의는 그 어느 체제보다도 ‘윤리적 인간’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는 결코 만들 수 없는 인간이다. 초반부에 살펴보았듯, ‘윤리’란 인간 심리 모순에 대한 이상점으로 제시된다. 살생하지도 않고 배부르며, 철저히 Ego를 배제하고 타인을 나와 같이 여기며, ‘윤리적 인간’인 ‘그’는 한 개체라기 보단, ‘인간’ 그 자체로 제시된다. ‘윤리’로 보자면 숭고하나, 현실로 보자면 태어날 수 없는 삶이다. 기독교는 이 인간을 ‘예수’로 제시하면서 모순을 극복했었다. 그는 인간의 모습을 지녔지만 신이며, 그런 윤리적 완성의 인간은 오직 ‘예수’하나일 뿐이다. 그렇기에 주일마다 회개하는 평신도의 모습은 당연한 것이며, 현실이 아닌 죽고 난 다음에 형제애가 실현되는 천국이 가능하다. 신부나, 목사 같은 사제직이 존재한다는 것은 ‘신’은 따로 있다는 믿음의 표상이다. 그러나 근대정신과 낭만주의의 극치값이라 볼 수 있는 사회주의는 종교를 당연 배제한다. 즉, 인간 하나 하나에게 예수가 되기를 요구하는 것이 사회주의 윤리의 숨겨진 함의인 것이다.상징주의자들이 말하길, 자연은 혐오스러운 것이며, 이것은 예술이란 가공 작업을 통해 아름다움을 획득한다고 한다. 농부가 아닌 도시민들인 그들은 자신의 죄책감을 원재료에 대한 혐오감으로서 전이시켜 버린다. 사회주의자들이 말하길, 이윤 동기는 혐오스러운 것이며, 사상화 작업을 통해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가상을 가공한다는 점에서 예술가는 꽤 괜찮은 직업군이다. 이것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필가는 지식인군에 속한다. 이것이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다. 넘어간 권위라는 것은 약속에 대한 보증 수표이다. 로만 칼라는 일종의 보증 수표이며, 예술가는 사회주의 이상, 의식적 화폐를 통용시키는 중앙은행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예술가가 기존 순수예술에서 사회적 의미를 띄기 위해선 사회주의와의 만남이 필연이다. 묘사와 표현이 아닌, 미래적 이미지의 제시를 위해선 종교나 사회주의밖엔 없다.
    인문/어학| 2014.10.16| 3페이지| 1,000원| 조회(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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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포트)현대에 있어 유교가 종교적 권위를 잃은 까닭
    12-22樊遲問人. 子曰 : [愛人.]번지가 인에 대해 물으니,공자는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김도련 역주, 현음사, 2008, P375.오늘 저녁에 필자는 친구 조모(祖母)님의 장례식에 찾아갈 예정이다. 처음 홀로 가는 빈소라, 절하는 법, 분향 피우는 법, 조의금 봉투 쓰는 법 등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그 친구의 집안은 불교이고, 내 종교는 천주교이다. 그러나 방금 말한 온갖 예(禮)들은 유교의 영향에서 유래된 것이다. 지난 수업시간에 유교의 예(禮)란 그 속의 인(仁)이 깃든 것이라 발표하였는데, 여러 예법에서 죽은 이와 그 가족들을 귀히 여기는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향의 불을 끌 때 날숨으로 끄지 않는다는 것이나, 향을 든 오른손을 왼손으로 받힌다는 행위 등은, 죽은 이를 다시 귀히 여기는 행위라 말할 수 있다. 이건 사람을 존재론적으로 보지 않고, 오로지 유물론적으로만 본다면 불가한 행위다. 죽은 육신은 가져다버리면 그만일 뿐, 왜 구태여 장례를 치루고, 묘소를 지키며, 그 앞에 절을 하는가. 그 까닭으로 죽어도 사람은 사람이고, 그리하여 그저 소중할 따름이다. 동어 반복적 근거라 볼 수 있겠으나, 본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근거는 사람이 알파요, 오메가로 끝난다.인간의 존엄이란, 논증이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제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다. 또한 역설적으로 그리해야만 존재와 영혼에 대한 존엄이 가능해진다. ‘나’는 소중한가, ‘너’는 소중한가, 왜 그러한가. ‘그대가 무엇이어서, 혹은 무엇을 가지고 있기에’라고 대답한다면, 그 순간부터 존재는 소외된다. 무엇이 아니고, 무엇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그대이기 때문’이라 답할 수 있을 때, 영혼은 벌거벗은 웃음으로 화답한다. 존재란 ‘공(空)’의 자리에 서는 것이며, 이것과 저것이라 명명(命名) 지어질 수 없는 자리에서 출현한다. 그리하여 한 존재와 영혼의 성질은 끊임없는 연속성을 지니며, 영원의 영역에 기거한다. 이것은 종교에서 신(神)의 신성(神聖)을 논증하는 방법과도 유사하다. 인도의 우파니샤드에선 ‘Not A, not B’, 즉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라는 식으로 언어 너머의 신(神)을 표현한다. 종교가 신의 계시가 아닌 인공적이라면, 각자 인간 내면에 지닌 신성(神聖)이라 말할 수 있는 무엇의 집단표출현상이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 영혼의 음성으로 성직자는 신과 소통하는 기도를 드린다고 말할 것이다.유(儒), 佛(불), 기독교를 아우르는 종교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Ego(자아)를 넘어, 초월적 권위와의 合一(합일)을 종교는 말한다. 기독교는 야훼요, 불교는 부처요, 유교는 德(덕)이라 부를 수 있는 무엇과의 합일이다. 현대는 Ego로서의 완성을 요구하며, 이상적인 거울상을 끊임없이 떠오르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인간에게 죽음이란 사건은 모든 것의 이면, 허방을 짚는 공허를 드러낸다. 그것은 채울 수 없는 공허 그 자체이며, 그것을 부단히 채우려고 하고자 하는 의도를 라캉은 ‘욕망’이라 칭하였다. 나는 방금 ‘그대’이기 때문에 소중한 사람이라 말하였다. 이것은 정체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정체성 또한 사회적, 개인적 경험에 의해 조직되어지며, 그것의 소유적 성격은 ‘명함’이란 형태로 형상화된다. 존재를 제대로 명명할 수 있는 단어는 없으나, 그것은 인칭대명사에 가깝다. 한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여 제각기의 색채를 띄듯, 한 인간은 집단적 인간이며, 집단적 인간이 한 인간이다. 공자가 의도하고자 한 지극한 인간애가 여기에 속한다. 나는 곧 너이며, 너는 곧 나이다. 여기에서부터 종교에 있어 윤리와 예법이 파생된다. 그리하여 종교는 공통적으로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바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빈 손으로 와, 빈 손으로 떠나는 空手來空手去(공수래공수거)의 존재는 진정으로 자유로우며, 기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내 십자가는 짊어지기가 수월하다.’ 자기 뜻대로 행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從心(종심)으로 그는 산다.11-12季路問事鬼神, 子曰 : [未能事人, 焉能事鬼?]曰 : [敢問死]曰 : [未知生, 焉知死.]자로가 귀신 섬기는 것을 물으니, 공자가 말씀하시기를‘사람을 잘 섬기지 못한다면, 어찌 귀신을 섬기겠느냐?’라고 하셨다. ‘감히 죽음에 대해 묻습니다.’라고 하자, 공자는 말씀하시기를 ‘삶을 알지 못한다면,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라고 하셨다. 김도련 역주, 현음사, 2008, P319.물론 겸손과 현세에 집중하고자 함이 의도였겠지만, 결론적으로 공자는 죽음이란 사건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명맥을 이어올 수 있는 까닭을 들어보자면, 공자가 출현한 시대상이며, 엘리트적 교화방법론이었기 때문이었다. 평화시기의 불가는 사변적인 경향을 띄고, 식민지 시기의 기독교 속에는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끊임없는 전쟁 속에서의 공자의 말은, 그 근거를 따져볼 필요도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절박함이었을 것이다. 仁(인)은 당시로서는 생존과 결부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는 士(사)라는 계층에 의해 주도된 것이었다. 양반의 제사가 제사다운 것이다. 즉 선비 계층이 아닌 사람들이 있어(無知), 士(사)는 그 우월성의 입지를 보장받는다. 제사를 통해 선비로서의 ‘나’는 영원히 보장된다. 즉 인간애로서 시작된 仁(인)은, 선비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로만 변질된다. 언제까지나 내 자신이 우선순위이고, 민중에 대한 교화는 그 다음이다. 그리하여 유가 경전을 읊으면서, 상놈을 함부로 다룰 수 있는 이율배반적인 귀족 계층이 나타날 수 있었다. 물론, 어느 종교나 사회 권력과 결부되었을 때 이런 모습이 모두 나타났었다. 그러나 반대로 무지한 자의 입장이 되어보자면, 왜 그들은 자발적으로 공자의 말을 배우고자 하지 않았는가. 그 까닭은 유가가 이어올 수 있는 명맥과 함께 한다. 죽음에 대한 함구는 ‘士’라는 정체성마저 지워버릴 수가 없다. ‘부처’라는 말을 잊으라는 불가와 야훼 아래 모두가 평등한 기독과 달리, 유가는 구조적으로 인간 사이에 있어 불평등하다. 즉, 죽음에 있어서조차 모두가 평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좋은 죽음과 의미 없는 죽음이 계층 사이에 존재한다. 평민에게 있어 죽음을 무릅쓰고 불가와 기독교를 따른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다시 말해, 유가는 오륜에서 볼 수 있듯이, 수평적 사랑이라기 보단, 기존의 위계질서에 仁(인)을 담고자 하는 수직적 사랑을 추구한다. 물론, 여전히 인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나 현대는 명목상일지라도 모두가 평등하다. 집안에 노비 하나 없는 이 시대에 있어 군자(君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지장, 용장, 덕장 중에 최고가 덕장이더라.’ 하는 말과 함께, 유가의 책은 조직 관리자 계층 쪽에서는 여전히 읽힌다. 그들은 아랫사람이 있으며, 그의 덕에 감응하여 일어나는 부하직원의 자발적 충성심은 그 무엇보다 강하다. 그러나 죽음의 허무를 전가할 수 있는 피지배계층이 없는 이상, 죽음에 대한 함구한 유교는 어떤 존재의 구원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가. 그리하여 500년을 통치 방법이자, 종교적 권위까지 겸하였던 유교는 현대에 있어 3대 종교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지 않는가 생각해본다.
    인문/어학| 2014.10.16| 2페이지| 1,000원| 조회(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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