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영화 비교 레포트소설 『은교』와 영화 비교 분석-작품 속 인물 형상화에 따른 차이점을 장르적 특성과 관련지어서-[차 례]Ⅰ. 서론Ⅱ. 이적요_욕망의 깊이의 변화ⅰ-소설과 영화 속 달라진 이적요ⅱ-그로 인한 효과Ⅲ. 서지우_은교에 대한 마음의 변화ⅰ-소설과 영화 속 달라진 서지우ⅱ-그로 인한 효과Ⅳ. 은교_능동적 인물로 변화ⅰ-소설과 영화 속 달라진 은교ⅱ-그로 인한 효과Ⅴ. 결론참고문헌≡≡≡≡≡≡≡≡≡≡≡≡≡≡≡≡≡≡≡≡≡≡≡≡≡≡≡≡≡≡≡≡≡≡≡≡≡≡≡≡≡≡≡≡≡≡≡≡1. 서론.밀고 당기고. 문학과 영화의 관계가 그렇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하고, 영화가 개봉되면 다시 원작소설이 더 팔린다. 어쨌든 요즘 소설은 영화와 불가분의 관계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다. 문학은 영화에 마르지 않는 우물 같은 영감의 원천이 된다.이처럼 매해마다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개봉된다. 소설은 영화로 각색됨으로서 그 가치를 재평가 받고 있다. 그러나 많은 유사성 위에 있는 문학과 영화이지만 장르적 특성으로 인해서 문학이 영화로 각색되어질 때의 어려움이 존재한다. “소설과 영화라는 매체 자체의 개성이 존재하고, 눈으로 상상하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시점의 차이, 길이와 깊이의 문제, 그리고 배역선정의 문제 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완벽한 각색이란 더욱 어렵다.이번 연구의 주제로 삼은 영화 역시 소설 『은교』를 각색하여 만들어졌다. ‘은교’는 일흔의 시인과 삼십대 제자, 그리고 열일곱 소녀의 파격적인 사랑과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소설과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공통된 갈등의 주제이다. 그러나 다루고 있는 갈등의 내용은 동일하나 영화 와 소설 『은교』는 엄연히 다르다. 시점이나, 사건 등 소설의 각색이 일어나면서 영화와 소설은 전체적 플롯은 동일하나 부분적으로 달라졌다. 그 중에서도 필자가 주목한 것은 원작소설이 영화로 각색되어짐에 따라 인물형상화에 있어 어떠한 차이점을 만들어 냈는가 하는 점이다. 극중 인물은 우리서 분석해보고 그로 인해 얻어지는 효과에 대해서도 연구해보려 한다.Ⅱ. 이적요-욕망의 깊이의 변화ⅰ-소설과 영화 속 달라진 이적요소설 『은교』의 시인 이적요는 필명그대로 평생을 욕망을 내비치지 않고 고요하게 살아온 고결한 인물로 묘사된다. 이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일흔의 시인 이적요는 열일곱 ‘은교’의 존재로 인해서 깊은 욕망에 빠지게 된다. 이 욕망은 나이차를 보았을 때 뭇사람들에게는 사랑이라는 것보다는 추접한 스캔들로 보일 수 있을 파격적 욕망이다. 이는 소설과 영화 둘 다에서 가장 크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모든 사건의 시작이 되는 갈등의 주제이다. 그러나 이적요라는 인물의 형상화를 달리 함으로써 영화와 소설은 각기 다른 효과를 내고 있다. 우선 소설에서의 이적요는 많은 욕망을 내보이는데 그것은 순수한 사랑이자, 은교를 향한 강렬한 육체적 욕망이다. “욕망이라면, 목이라도 베이고 싶은, 저돌적인 욕망이었다.”라고 묘사되어지기까지 한다.네가 말했고, ‘옴씬’이 기름통, 내 몸에 성냥을 그어대는 것 같은 효과를 금방 가져왔다. 나는 경악했다. 우회해서 표현하진 않겠다. 갑자기 나의 페니스가 고개를 기웃, 들더니 맹렬하게 허리를 세우고 일어났다. 전에 없던 일이었고, 너무도 돌발적이었다.은교가 헤나를 그려주던 장면에서 소설 속 이적요는 강렬한 성적 욕망을 느끼고는 은교를 세게 밀어버린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를 이적요가 잠에 들어 꿈속에서 은교를 만나 관계를 맺는 장면으로 대체하면서 은교에 대한 욕망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않는다. 또한 이 외에 이적요의 성적욕망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장면들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와 달리 문학에서는 이적요가 은교를 향해 느끼는 욕망이 이적요의 시점에서 그려짐에 따라 아주 잘 묘사되어진다.자연의 사이클을 따르면 된다고 여겨온 섹스의 욕망이 나를 긴장시킨 적은, 그러므로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은교를 향한 욕망은 확실히 강도와 빛깔에서 전에 경험한 것과 판이했다. 평생 처음 겪는 강도, 빛깔이었다. 포악스럽고 장렬했서는 은교를 향한 이적요의 갈망이 적나라하고 심도 깊게 그려진다. 그러나 소설이 영화로 각색되어짐에 따라서 영화 속 이적요는 상대적으로 욕망을 표출하지 않는다. 이는 장르적 차이로 인해 언어의 모든 표현을 영화 속으로 옮겨갈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 속 이적요가 욕망을 절제함으로써, 소설 속 이적요의 욕망은 더 극대화되어 다가온다. “이적요를 절제된 인물로 그리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는 감독의 의도가 영화로 잘 나타내어진 것이다. 이것은 소설이 이적요란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서술한 것에 비해 영화는 이적요란 인물뿐만 아니라 서지우와 은교라는 인물의 비중을 키움으로써, 인물의 형상화에 차이점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 이적요를 절제된 인물로 그려냄으로써 얻는 효과는 이러하다. 각 캐릭터들의 무게감을 맞춤으로써 이적요의 욕망만이 줄거리의 주를 이루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이적요라고 생각된다면 영화에서는 이적요 한 명에게로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진 않는다. 다만, 세 인물간의 무게감은 맞춰졌으나 “은교를 차츰차츰 탐하게 되는 소설 속 시인 이적요와 달리 박해일이 연기한 이적요는 은교에게 첫 눈에 반해 무한한 애정을 쏟는 할아버지로 그려진다.” 이는 관객의 공감과 이해를 끌어내야하는 영화의 장르적 특성에 따라서 이적요의 사랑을 절제하여 다룬 까닭이다. 이로 인해 영화는 소설에 비해서 관객으로 하여금 금기된 욕망이 주는 반감을 줄이는 효과를 얻는다.Ⅲ. 서지우_은교에 대한 마음의 변화ⅰ-소설과 영화 속 달라진 서지우서지우는 극중 이적요를 스승으로 받들고 모시는 그러나 문학적 재능이 없어 괴로워하는 삼십대 제자이다. 또한 은교를 두고서 이적요와 갈등을 겪는 인물이다. 전반적 캐릭터는 문학과 영화 둘 다 동일하다. 그러나 각색되어지면서 인물 형상화에 있어서 많이 달라진 인물이다. 때문에 서지우란 인물은 작품 속에서의 형상화의 차이점으로 인해 소설과 영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가장 큰 차이점은 소설 속에서 은교를 진심으로 사랑게 깊어질 줄 몰랐다. 시작은 이런 사랑이 아니었다. 나는 미지근했고 미지근한 그것이 나에게 잘 맞는 내 사랑법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의 사랑은 뜨겁고 무겁다.소설 속 은교를 향한 그의 고백에서 우리는 진심을 느낄 수 있다. 그도 이적요 못지않게 은교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속 서지우는 소설 속 서지우와는 아주 다르다. 영화 속에서 서지우가 은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은 그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다. 다만, 서지우는 은교의 육체를 탐하는 한 남성으로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 말 그대로 원조교제의 느낌이 더 강하다. 또한, 소설 속에서 은교를 향한 이적요의 마음을 알고 질투를 불태우는 것과는 달리 영화 속에서 서지우는 그저 그 마음이 추하다 여겨 화를 내는 것으로 묘사되어질 뿐이다.ⅱ-그로 인한 효과소설과 달리 상영시간의 한계와 그것으로 인해서 다룰 수 있는 소재가 한정되어 있는 만큼 영화는 등장인물의 성격의 일부분만을 극대화시키거나 혹은 줄거리를 위해서 성격 자체를 바꿔버리기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설 『은교』가 영화 로 각색됨에 따라 서지우란 인물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인간적인 면모는 많이 보이되, 은교를 향한 진실한 마음은 사라진 인물로 변모하였다. 원작을 보신 분들은 영화를 보고 생각했던 이미지와 달라 실망하시거나, 영화를 통해 감동을 더 키우시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다고 말한 배우 김무열의 말처럼 원작 소설에서의 진실한 마음을 가진 서지우를 기대하고서 영화를 본 관객들은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로 인해서 영화는 은교를 향한 이적요의 마음을 보다 진실 되게 표현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소설과 달리 은교를 그저 육체적 욕망의 대상으로 여기는 듯한 영화 속 서지우는 은교를 아끼는 이적요와 대비됨으로써 그 효과는 더욱 커진다. 이에 따라 영화는 짧은 시간안에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게 된다.Ⅳ. 은교_능동적 인물로의 변화ⅰ-소설과 영화 속 달라진 은교은교, 열일곱의 관능적이고 가 섬세하게 묘사됐다면, 영화에서는 은교를 좀더 능동적으로 그리고 싶었다는 의 정감독의 말처럼. 능동적 인물로 형상화된다.엄마를 이해하면서도 사랑이 고팠던 은교는 자신을 아름답게 그려준 사람으로 '되어 있는' 서지우와 외로운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허상 같았던 은교는 영화에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소설 속 서지우와 관계에 있어 그냥 관계를 맺던 은교와 달리 영화 속에서 은교는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서지우와 관계를 갖는다. 또한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였던 마지막 장면. 이적요의 노트와 서지우의 일기를 불태우며 우는 은교를 끝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은교는 벽을 바라보고 죽은 듯이 누워있는 이적요를 안으며 "은교를 예쁘게 써줘서 고마워요. 나는요, 내가 그렇게 예쁜 아이인 줄 몰랐어요. 정말 아무 것도 모르고 멍청이처럼 굴었어요"라며 고해성사 하듯 용서를 구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는 이적요에 대한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며 성인이 되어 성숙해신 은교의 모습을 나타내는 중요한 장면이다. 소설에서는 두 남자의 욕망이 대상으로만 단순히 표현된 것과 달리 영화 속에서 은교는 한 소녀의 성장기를 보여줌으로써 능동적 인물로 그려진다.ⅱ-그로 인한 효과소설 속에서는 은교보다는 오히려 이적요나 서지우가 더 중심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영화로 각색되어지면서 은교는 보다 능동적으로 변한다. 추상적으로 잡히지 않던 소설 속 은교와 달리 영화 속 은교는 능동적이며 분명하다. 단순한 욕망의 대상이 아닌 한 소녀의 성장기를 함께 그림으로써 영화는 보다 성숙해진다. 이로 인해서 다소 자극적이었던 소재는 관객들에게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내게 되며 단순히 두 남자의 사랑을 받았던 소설 속 은교가 아닌 ‘은교’라는 인물 자체에도 주목하게 되는 효과를 일으킨다.Ⅴ. 결론.본 연구에서는 문학과 영화에서 인물 형상화가 달라짐에 따라서 생기는 차이점을 알아보았다. 또한 단순히 그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장르적 특성과 연관지어 분석하고 형상화를한다.
4인의 경세가 - 지금 내가 사는 이 시대에도 진정으로 필요한 이들.새 정부가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가들의 올바른 자세는 무엇일까? 역사는 무릇 반복되는 것이기에 우리는 이 답을 옛 조선시대에 살았던 경세가들에게서 배울 수 있다. ‘경세가’란 세상을 다스려 나가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실은 우리에게 낯선 이 단어는 단순한 정치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단어는 정치가와 더불어 학자를 뜻하기도 하며 개혁가 등 이 모든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이 책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에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네 명의 경세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로 다른 부분도 많았던 그들이지만 결국 그들은 ‘민생’이란 단어 하나로 결합되어진다. 물론, 이 ‘민생’이란 말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뉴스에서 정치권이 민생이란 단어를 얼마나 많이 사용해왔는가. 새로운 정치권력이 형성될 때마다 그들은 민생을 강조하며 민생 살리기를 위해 힘쓸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그들의 민생이란 단어는 적어도 나에게는 직접적으로 와 닿은 적이 없다. 그러나 이 책 속, 그들 이이, 이원익, 조익, 김육 이 네 명의 경세가들은 진정으로 민생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의 가장 큰 공통된 과제, ‘민생’. 옛 경세가들의 삶을 돌아보며 우리나라의 현재의 모습은 어떠한가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율곡이이-탁월했지만 이해되지 못한 경세가맨 먼저 나오는 경세가는 율곡이이. 그가 정계에 있던 당시는 아주 복잡한 시대였다. 문정왕후의 20년간의 절대권력이 행사되던 시기였기에 척신(왕비의 외척세력)세력의 힘이 강했고, 또한 문정왕후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벌인 을사사화 등으로 인해 죄 없는 많은 사림세력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귀양을 갔다. 이이는 문정왕후체제 몰락이후 조정을 장악하게 되는 사림세력 중 하나였다. 이 당시 신진사림들은 이황의 학문으로써 세상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으며 구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이는 사림세력의 진출로 개혁정책이 추진되리라 예상하였으나 선조는 개혁의지가 없었으며 사림은 정치적 역량이 부족했다. 이 때 이이는 선조에게 ‘만언봉사’를 제출하는 데 이 속에는 이이의 정치적 생각이 드러난다. 이이는 ‘시의’와 ‘실공’을 설명하면서 개혁의 제도적 방식을 강조한다. 이때 시의란 것은 정치에서 올바른 목표 및 방식의 선택에 해당하는 것이며 실공이란 것은 과감한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즉, 이이는 제도적인 민생 대책을 마련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여태까지의 비제도적이었던 이황의 학문과는 대비되는 것으로 이이가 정치를 현실 속에서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 것을 의미한다. 허나, 이이의 이 주장은 큰 공감을 얻지는 못한다. 또한 이 시기에 사림이 동서로 분열되는 일까지 일어나게 된다. 조정은 민생을 위한 현실적인 대책마련보다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싸우기에 바쁜 것이다. 이 때에도 이이는 대부분의 관료들이 자신들의 관심 밖의 것에 신경쓰지 않을 때 오로지 민생만을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성혼과의 합작 상소에서 알 수 있다. 이이는 ‘안민’ 즉 백성을 편안하고 안심하며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세금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세금 문제가 백성의 삶을 좌우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보며 어떠한 세금 제도를 갖느냐에 따라서 국가가 변한다고 보았다. 이는 이이가 국가를 민생이란 목표를 위해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후 이이는 동인들에 의해서 비판을 당하게 되고 조정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이는 민생을 위한 제도적 접근에 대한 필요성과 항시 안민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이룬 것이 없다. 또한 분열된 사림을 다시 화합시키려 하였으나 그마저도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이가 실제적으로 큰 성과를 이룬 것이 아니라 그가 개혁하고자 했던 의지와 직접적으로 민생에 대한 생각을 가졌음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옛날 동서로 분열된 사림세아니라 국가의 존재 이유가 민생을 보장하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고 힘써야 한다. 현 정부에도 이이처럼 현실적인 문제에 눈을 돌리고 어떤 당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항시 민생을 생각하는 관료가 있다면 국민들의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는 사실, 율곡이이가 어떤 인물인지 잘 몰랐으며 맨 처음 ‘이이를 왜 기려야 하는가’란 대목에서처럼 어찌하여 그가 오천원권 지폐에까지 그려져 있는 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지금은 비록 당시에는 이해되지 못하였으나 이이의 안민에 대한 생각은 참으로 현 정치가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오리 이원익-진심으로 헌신한 관리이원익은 자신이 맡은 바 일에 늘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중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였으며 경연에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으며 안주 목사로 임명된 후에는 굶주려 가는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고 뽕나무를 기르게 해 민생에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이러한 민심을 얻어 훗날 임진왜란 발발 이후 선조의 피난길을 열 때에도 큰 도움을 주어 이원익의 입지를 다져주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이원익의 가장 큰 정치적 성과는 공물 변통 정책에 있다. 이원익은 ‘민생 이외의 일은 모두 부수적인 일에 불과하다.’라는 한 마디로 자신의 현실 인식을 요약했다. 그는 백성의 곤궁함을 해결하기 위해서 부세 부담을 줄이는 것에 힘썼다. 그의 열망과 노력으로 광해군 때 경기선혜법이 시행되게 된다. 또한 인조 즉위 후, 삼도대동법을 시행하게 되는데 이는 이원익이 백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공물제도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다른 관리들이 백성의 곤궁함을 그저 입에 담는 것과는 달리 그 스스로도 절제하고 청렴한 생활을 했다. 실제로 그는 두어칸 짜리 띠집에 살아 인조가 집을 하사해 주기도 하였다. 그는 이렇듯 자신이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며 백성을 위한 공물개혁을 통해서 대동법의 앞 단계를 실천하였다. 무엇보다도 청렴하였으며 자신 뜻하는 염근리에 뽑힐 만큼 그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에 힘쓰지 않았다. 이는 지금 시대를 비추어 보았을 때도 가장 본받을 점이다. 높은 정부 인사들의 횡령에 관한 비리들이 뉴스에 뜰 때마다 어마어마한 액수에 놀라고, 또한 경제가 좋지 않은 국민들의 상황을 생각하곤 했었다. 국민들의 경제를 위해 힘쓰지 않고 그 자신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비리를 저지르는 정부관료들이 많은 현실 속에서 만약 이원익 같은 관리가 있었다면...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제대로 된 집 한칸 마련하지 않고 그에 앞서 백성들의 곤궁한 삶을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지게 할까에 관한 생각만으로 헌신했을 그의 모습과 자기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현 시대의 정치인사들은 정말로 대비되는 모습이다. 현 정치가들도 말로만 민생을 외치는 것이 아닌 그 자신들 스스로가 먼저 청렴함을 보여 우리들에게 믿음을 주었으면 한다.포저 조익-이론과 현실을 조화한 학자포저 조익은 주체적인 사고와 행동의 소유자로써 학문을 탐구하는 데 열중하던 인물이다. 그는 비판적 독서를 멈추지 않았으며 많은 책을 집필했다. 또한 현실에 참여한 지식인으로써 진정한 사대부였다. 그는 인조반정 후 조정에 복귀하여 대동법의 실시를 실무적으로 추진하였다. 당시 조선의 수취제도에서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은 진상이라는 것이었는데, 이는 공물과 다른 개념이었다. 공물은 정부로 들어가기 때문에 세금의 범주로 인식이 되지만 진상은 각 고을 수령이 왕에게 바치는 일종의 ‘선물’로 인식되어지고 있었다. 즉, 진상은 실제로는 무거운 세금이었으나 그 명목이 왕에게 바치는 것으로 규정되어 이를 부정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조익은 이를 해내었다. 그는 대동법을 반대하는 반론들을 해결해나가며 삼도대동법의 실시를 이끌어내었다. 하지만, 삼도대동법은 실시와 함께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 때 조익은 공납 문제의 핵심은 공물 부담의 불균등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보는 현실인식에 뛰어난 면모를 보여준다. 조익은 각 도마다 부담의 정도가 공평하지 않으며 많이정치적 문제에 대한 염려를 놓지 않았는데 이는 조익이 원두표와 이후원, 이시방에게 쓴 편지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는 편지에서 전쟁이후 피폐해진 백성들의 삶과 그로 인해 공물가 부담에 대해 논하며 국가의 근본은 백성에 있으니 백성을 구해줘야 한다는 내용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조익은 이처럼 백성들을 위했으며 이를 실천하였다. 그것은 대동법의 기본 뼈대를 완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그가 언제나 비판적인 관점에서 독서를 하며 끊임없이 공부를 하였고 거기에 관리로서의 경험을 보태어 구체적 현실에 맞는 대안점을 연구하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끊임없는 비판적 독서의 힘이 결국 대동법의 구체적 설계도를 만들었음이다. 끊임없는 공부와 연구는 모든 관리들에게 필요한 일이다. 더군다나 이것을 현실에 맞추어 구체적인 대안에까지 연결한다는 것은 그 만큼 더 많은 노력이 있었음을 의미할 수 있다. 누구나 말로는 많은 정책을 논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을 현실로 옮기기에는 그만큼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조익의 모습은 현 시대를 운영해나가는 학자는 물론이고, 정치가들에게 큰 교훈을 준다. 말로써가 아닌 스스로의 학문연구를 통해서 현실에 발맞춰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민생을 위하는 것은 누구나 겉보기에 그럴 듯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현실로 옮겨 국민들의 삶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그럴듯한 공약을 세울 수는 있지만 이를 실제로 실현시키는 것은 매우 드물다. 예를 들어 의회에서나 각 정당들에서 국민들을 위해 많은 정책을 내놓지만 이러한 정책들은 대안을 찾지 못하고 불거지기만 할 뿐, 결국 사라진다. 대학생인 나의 입장에서 볼 때 대학반값등록금에 관한 정책도 그러하다. 많은 정당들과 심지어 대통령도 그에 대해 언급하지만 실질적으로 볼 때 대학생들의 생활이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 몸소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일을 벌여놓기만 할 뿐 그것을 추진해나가는 능력을 갖춘 인물이 없는 탓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관료
불신시대감상문현대사회는 극도의 이기주의로 치닫는 상태이다. 개개인의 사람들은 서로 관계를 맺게 될 때 그저 아무 조건없이 신뢰하지 않으며 또한 자신의 믿음을 쉽사리 주지도 않는다. 그것은 비단, 인간 사이의 관계뿐만이 아닌 더 나아가 학교, 혹은 직장 그리고 크게는 이 사회에 있어서 그러하다. 서로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거나 쉽게 불신하며 믿지 않는다.그런 점에서 이 책 ‘불신시대’는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고 할 수 있다. 9.28서울 수복 직전에 남편이 죽어 미망인이 된 이 책의 여주인공인 진영 역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처럼 갖은 불신과 의심 속에 살아가고 있다. 남편을 잃고 힘든 진영은 또 한번의 극도의 절망으로 치닫게 된다. 진영의 외아들인 문수가 말 그대로 의사의 무모한 시술로 인해 생죽음을 당하게 된 것이다.이런 진영은 문수를 잊기 위해 종교에 매달리게 된다. 이 부분에서는 진영을 성당으로 인도해주는 갈월동의 아주머니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본시 종교의 모습은 퇴색된 듯, 갈월동 아주머니는 상당히 세속적인 인물로 비추어진다. 그녀에게서 나는 분냄새라던가 말할 때마다 보이는 금니가 그러하다. 또한 그녀는 계로 인해 경제적 사정도 좋지 못한 인물로 나온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갈월동 아주머니를 그리 신뢰하지 않는 진영의 눈길도 읽을 수 있다. 어쨌든 완전한 믿음을 가지지 않은 채 진영은 성당으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진영이 종교에서 발견한 것은 신발을 도둑맞을까봐 예배당에 싸들고 들어가는 믿음없는 신도들의 모습뿐이었다. 또한 진영은 미사가 끝난 뒤 연금 주머니를 보고선 마치 구경꾼 앞으로 돌아가는 풍각쟁이의 낡은 모자를 생각하게까지 된다. 이러한 묘사에서는 진영이 성당으로 인해 더 큰 불신과 의심만을 안게 된 것을 알 수 있다.이미 이렇게 종교에 신뢰를 잃은 진영이지만, 진영은 문수를 위해 이번에는 절에 가게 된다. 그렇다. 큰 불신을 안고는 있지만 그 보다는 아들을 생각하는 진영의 마음이 더 큰 것이다. 그러나, 문수가 좋은 곳을 가길 바라는 진영의 모정은 세속적으로 변모한 절의 중들로 인해 또다시 상처입게 된다. 중들은 돈의 크기로 제를 올리러 온 사람들의 마음의 가치를 자신들 멋대로 판단한다. 진영보다 더 많은 영가 노자를 낸 이의 제를 하기 위해 문수를 위한 제는 대강대강하라고 지시한다. 이 부분에서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이나 그저 돈이 있어야지 동무하고 쓰고 놀다 가지 않겠어요?“ 라며 진영이 내놓은 영가 노자를 비아냥거리는 중의 모습에서 나 역시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아니, 어떻게 제를 올리러 온 사람의 마음이 아닌 돈으로 판단하는지 말이다. 진영 역시 분노에 휩싸이지만 이내 낯선 곳에 문수를 혼자 두고 가는 것 같은 기분에 그만 다시 울적해진다.그런 중 진영은 한여름 내 앓게 된다. 그러나 아파서 찾아간 병원 역시 위선과 거짓 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가짜약 투성이에 이미 병원들은 진짜 의사가 아닌 가짜의사들로 넘쳐나고 있다. 전쟁 후 사회는 비단 종교뿐만이 아닌 곳곳이 모두 부패해있는 것이다. 불신들로 넘쳐나는 세상에 진영은 괴로워한다.그렇게 진영은 세상의 추악한 불신과 거짓들이 문수의 영혼을 모독하는듯한 기분을 느끼며 절로 가 문수의 위패와 사진을 가지고 산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사진을 불태우며 아직 자신에게는 악에 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 남아있음을 느낀다. 또한 그러한 악을 부정하는 것이 자신의 삶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진영이 ‘그렇지, 내게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지. 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어떤 결연한 의지와 뚜렷한 진영의 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 진영은 자신을 둘러싼 이런 불신들에 그저 굴복하는 것만이 아닌, 저항할 의지를 가지고 있기에 또한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위선과 부정으로 둘러싸인 어두운 사회에 진영이 단지 굴복하기만 하였더라면, 그것은 오히려 읽는 이로 하여금 더 큰 실망감과 어쩌면 패배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수의 사진을 태우며 문수를 보내고, 또한 새로운 삶의 이유를 찾고 자신을 되새기는 진영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영의 어떤 결심을 본받게 된다. 비단 진영이 살고 있던 전쟁 후의 사회가 아닌,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는 악에 항거할 수 있는 정신이 있음을 알려주는 듯하다.
한국 근현대사 부분요점정리본외세의 접근과 그에 따른 개항개화운동과 근대적 개혁구국민족운동단원1. 외세의 접근과 그에 따른 개항1)흥선대원군의 왕권강화정책(1863~1873)■ 정치개혁-수군강화-정치기구개혁 } 비변사축소, 의정부와삼군부 강화-법전 } 대전회통·육전조례-세도정치 약화 } 능력에 따른 인재등용, 안동김씨세력 축출■ 민생안정정책-삼정바로잡기 } 전정→양전사업, 군정→호포법(양반도 군포징수), 환곡→사창제■ 경복군중건-백성노역 -원납전징수 -당백전발행 →그에 따라 민심이 흉흉해짐■ 서원 정리-국가재정 확충-백성보호2)통상수교거부정책■ 1866년- 병인박해 } 천주교 탄압- 제너럴셔먼호 사건- 병인양요 } 프랑스의 강화도 침범 → 문수산성(한성근), 정족산성(양헌수)→ 프랑스의 외규장각 도서 약탈■ 1868- 오페르트도굴사건■ 1871- 신미양요 } 미국의 강화도 침범 → 광성보(어재연)■ 척화비 건립3) 개항과 불평등조약■ 배경- 흥선대원군 하야, 민씨정권 성립- 통상개화론의 대두 } 박규수,오경석,유홍기■ 발단- 일본의 포함외교 } 정한론(흥선대원군이 거절), 운요호사건(1875)■ 강화도조약(1876)- 최초의 근대적이자 불평등조약- 조선의 자주권인정 → 청의 종주권 부인- 삼포개항 } 부산,원산,인천- 불평등 조약 항목 } 해안측량권 인정치외법권 인정(영사재판 허용)■ 조·일수호조규부록- 일본 거류지 설정- 일본 화폐 사용- 일본 외교관의 자유로운 국내 여행 허용■ 1차 조·일 통상장정(조·일무역규칙)- 양곡의 무제한유출- 무항세- 무관세* 단어 풀이- 정한론 ; 1870년대 전후 일본에서 대두된 조선에 대한 정벌론이나 무산되어짐.- 포함외교 ; 강대국이 무력으로 약소국을 굴복시키려는 외교방식3) 서구열강과의 수교■ 조·미 수호통상조약(1882)- 배경 } 조선책략(러시아 견제), 청의 알선- 내용 } 거중조정협정관세→ 제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음불평등조약 → 치외법권최혜국대우- 의미 } 서양과 맺은 최초의 그러나 불평등 조약임- 보빙사 → 이것을 유리한 대우를 조약 상대국 에도 똑같이 부여하는 것을 의미함.단원2. 개화운동과 근대적 개혁1) 개화세력의 등장■ 개화파-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형성- 등장 배경 } 북학파 실학사상 계승양무운동과 일본의 문명개화론■ 선구자- 박규수 (양반) 김옥균 박영효- 오경석 (역관) → 1870년대형성 홍영식 서광범- 유홍기 (의사) 김윤식 유길준■ 1880년대 분화- 온건개화파 → 동도서기론(기술수용 주장)→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민씨정권에 참여→ 개화 주도- 급진개화파 → 일본의 메이지유신(사상, 제도까지 수용 주장)→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정부의 개혁비판 (친청정책 비판)* 단어 풀이- 동도서기론 ; 우리 정신과 문화는 지키되 서양의 과학기술만 받아들이자는 의미.2) 개화정책의 추진과 반대■ 개화정책의 추진- 동도서기적 입장■ 수신사(일본)- 1차 ; 1876년 김기수- 2차 ; 1880년 김홍집 → 조선책략의 소개- 3차 ; 임오군란이후 박영효■ 제도개편- 관제 → 통리기무아문과 12사 설치- 군제 → 5군영을 2영(무위영, 장어영)으로 개편→ 별기군(신식군대) 신설■ 근대문물시찰- 조사시찰단(신사유람단) → 1881년 일본으로→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영선사 → 1881년 청으로→ 기술교육연수단(무기 제조기술의 배움이 목적)→ 김윤식→ 기기창 설치- 보빙사 → 1883년 미국으로* 단어 풀이- 영선사 ; 영선사 일행은 톈진의 기기국에서 화약, 기계의 제조법 및 각 분야의 과학기술을 배움. 그러나, 기본적 지식의 부족과 정부의 뒷받침이 부족해 1년만에 돌아옴.■ 위정척사운동- 위정척사 ; 정학과 정도를 지키고 사학과 이단을 배격함.■ 1860년대- 배경 ; 열강의 통상요구- 인물 ; 이항로, 기정진- 주장 ; 통상반대운동 → 병인양요 때 척화주전론 주장■ 1870년대- 배경 ; 일본의 개항요구- 인물 ; 최익현- 주장 ; 개항반대 → 왜양일체론, 개항불가론■ 1880년대- 배경 ; 정부의 개화정책추진, 조선책략 유포- 인물 ; 이만손, 홍재씨정권의 고관 살해- 일본인교관 살해, 도시빈민층의 합세- 흥선대원군 재집권- 민씨 일파의 요청으로 청군의 조선파병 → 흥선대원군 납치- 민씨일파 재집권■ 영향- 청의 내정간섭심화 → 친청정권 수립→ 서울에 군대 주둔(위안 스카이)→ 정치·외교 고문 파견 (마젠창과 묄렌도르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체결(통상특혜 허용)- 일본과 제물포조약 체결 → 일본에 배상금 지급→ 일본 공사관 경비병 주둔 허용→ 박영효(수신사) 태극기 사용4) 개화당의 근대화운동■ 개화당의 활동- 3차 수신사(박영효, 김옥균)- 박문국 설치(한성순보),우정국 , 일본에 유학생 파견- 일본으로부터 차관도입 실패- 친청세력의 견제 심화■ 갑신정변 (1884)- 배경 → 청·프 전쟁 발발 (청군일부 철수)→ 일본의 지원약속- 전개과정 → 우정국개국 축하연→ 개화당정부수립→ 14개조 개혁정강 수립 } 청에대한 사대관계 폐지} 신분제 타파} 지조법개혁(조세제도 개혁)} 혜상공국 폐지} 모든 재정의 호조 통합} 내각중심의 정치 실시 (군주권 제한)→ 실패 } 청의 무력개입(3일 천하)} 민중의지지↓- 결과 → 청의 내정간섭 강화→ 친청세력의 장기집권→ 개화세력의 위축→ 한성조약 체결(1885) } 일본에 배상금지불, 공사관 신축비 부담→ 톈진조약(1885) } 청·일간의 조약이 맺어짐.- 의의 ; 근대국민국가 건설을 위한 최초의 정치개혁- 한계 ; 토지제도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음외세의존적 태도5) 갑신정변 직후 열강의 대립심화■ 청-일- 청의 내정간섭심화- 일본의 경제적 침투■ 러시아- 조·러 통상조약(1884) 및 조·러 비밀협약 추진 → 청의 간섭배제 노력 → 실패■ 거문도사건(1885)- 영국이 러시아 남하 견제 위해 거문도 불법점령- 철수(1887)■ 조선중립론의 주장- 독일 부영사 부들러- 유길준6) 갑오개혁의 추진배경과 제1차 갑오개혁■ 배경- 내정개혁의 필요성↑ } 동학농민군의 개혁요구} 온건개화파의 개혁의지} 일본의 개혁강요→ 교정청설치, 자주적 개혁 추진- 일본의 내정개혁강요 } 일의 금납화→ 도량형의 통일· 사회 → 신분제타파(공·사노비제 폐지)→ 봉건적 폐습타파 (조혼금지, 과부의 재가허용, 고문과 연좌법폐지)7) 제2차 갑오개혁■ 배경- 청일전쟁에서 일본의 승세- 일본의 내정간섭본격화- 흥선대원군 실각■ 개혁추진- 군국기무처 폐지- 김홍집·박영효 연립내각 구성 (온건·개화 연립내각)- 고종의 독립서고문발표- 홍범14조 반포(1895)■ 내용- 정치 → 의정부·8아문을 내각·7부롤 개편→ 8도를 23부로 개편→ 사법권의 독립에 따른 재판소 설치- 경제 → 탁지부 산하에 관세사와 징세사 설치- 군사 → 군제개혁 소홀→ 훈련대와 시위대만 설치- 교육 → 교육입국조서 반포→ 한성사범학교, 외국어학교 관제 공포8) 을미개혁(제3차 개혁)■ 을미사변- 삼국간섭으로 일본세력 약화- 제3차 김홍집내각(친러내각) 성립-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 배경-을미사변으로 제4차 김홍집내각(친일내각) 성립■ 을미개혁 내용- 건양연호 사용- 친위대와 진위대 설치- 태양력 사용- 종두법 사용- 소학교 설립- 우편사무재개■평가- 을미의병과 아관파천(1896.2)으로 개혁중단- 의의 ; 개화파인사들과 동학농민층의 개혁요구 반영- 한계 ; 일본의 강요에 의한 개혁, 토지제도와 군사부문 개혁의 소홀* 단어 풀이- 삼국간섭 ; 1895년에 일어남. 만주와 조선에 진출하려던 러시아가 독일과 프랑스 를 끌어들여 일본이 청·일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요동반도를 포기 하도록 만든 사건단원3. 구국민족운동1) 동학농민운동의 전개■ 사회 상황- 지배층의 수탈- 일본의 경제적침탈로 인한 수공업자와 농민층의 몰락- 동학의 교세확장 → 2대교주 최시형, 포접제→ 교조신원운동 목적}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 해소과정} 보은집회(1893) → 동학 중심의 종교운 동이 농민중심의 정치운동으로 변모■ 고부농민봉기(1894.1)- 원인 ; 고부군수 조병갑의 횡포- 과정 → 전봉준 등의 관아습격→ 신임군수 박원명의 온건한 무마책으로 해산■ 제1차봉기(1894.3)- 원인 ; 정부의 농민탄압 (안핵사 이2차 봉기 (1894.9)- 배경 ;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및 내정간섭 → 청·일전쟁 발발- 과정 → 농민군재봉기→ 남·북접연합부대의 논산집결→ 공주우금치 패배■ 평가- 의의 ; 반봉건적,반침략적운동 → 갑오개혁에 영향- 한계 ; 근대국가건설을 위한 구체적방안의 부족2) 독립협회■ 배경- 아관파천 이후 열강의 이권 침탈 심화■ 독립신문(1876)- 서재필이 창간■ 독립협회(1896.7)- 근대지식인이 주도 → 관료,시민,학생,노동자,천민,여성등 다양한 계층의 참여- 활동· 민중계몽 → 독립문 건립→ 강연회와 토론회 활동→ 독립신문과 잡지발간· 자주국권 → 만민공동회(1898) } 러시아 고문 철수 및 절영도조차요구철회} 고종의 환궁요구· 자유민권 → 정부의 독립협회탄압→ 국민의 기본권보장운동 및 국민참정권운동 전개→ 독립협회에 우호적인 박정양 내각 수립→ 관민공동회(1898) } 헌의6조→ 의회식중추원관제개편■ 해산- 보수파의 모함- 정부가 황국협회와 군대동원- 강제해산(1898)■ 평가- 자주국권,자유민권,자강개혁- 의의 ; 민중을 개화운동에 결합, 자주적 근대화 운동- 한계 ; 러시아 제외 미국,영국,일본에 우호적보수 세력의 탄압*단어 풀이- 관민공동회 ; 박정양을 비록한 정부의 고관들도 만민공동회에 참여하게 되었으므 로 이 만민공동회를 관민공동회라 부름.3) 대한제국과 광무개혁■ 배경- 고종의 환궁- 한반도 내 러시아와 일본의 세력균형■ 선포- 1897년에 선포- 국호 ; 대한제국- 연호 ; 광무- 원구단에서 황제 즉위식 거행■ 광무개혁- 구본신참(복고주의) → 점진적 개혁- 내용· 정치 → 전제황권강화→ 대한국국제(1899)→ 원수부(황제가 군권장악)→ 시위대와 진위대 증강· 경제 → 양전사업(지계발급, 지세제도)→ 상공업 진흥책(근대적 공장과 회사 설립)→ 실업학교설립, 한성중학교(1900)설립· 교통,통신,의료,전기분야 근대시설 확충- 한계 ; 열강의 간섭, 일부 관료만참여, 국민의 참여 부족4) 간도와 독도■ 간도- 백두산 정계비의 토문강 해석문제 단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