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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자가 만든 세상-독후감 평가A+최고예요
    공자를 되살린 중국‘마이클 슈먼’이 지었고 ‘김태성’이 옮긴 『공자가 만든 세상』은 16억 동아시아인의 삶을 규정하는 유교 문화에 대하여 현대 미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쓴 글이다. ‘마이클 슈먼’은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유교적인 나라로 평가하며, 유교 문화가 동아시아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했다고 보았다.저자는 1부에서 기원전 500년 공자가 노나라 관리가 돼 공을 세웠던 순간부터 1966년 중국 홍위병에 의해 묘가 파헤쳐지기까지 2500년 역사를 소개한다. 그리고 2부에서는 가부장적 제도와 비정상적인 교육열, 그리고 한국의 여성 혐오의 원인을 분석한다. 또한, 3부에서는 유교 문화가 어떻게 경제·정치의 사상적 기반이 됐는가를 설명한다.1. 공공의 적이 된 공자인간 공자는 노(魯)나라에서 태어나 노나라의 기득권을 대표하는 정 씨 가족의 곡물창고 관리인과 가축 돌보는 일을 하다가 노나라 공공사업부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리고 분쟁 협상 전문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 정치개혁의 한계를 느낀 공자는 노나라를 떠나 제자들과 대륙을 순회했다. 논어는 이때 제자들과 대화한 내용을 후대에 제자들이 정리한 것이다.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적이 너무 많이 생겼던 공자는 혼란했던 당시 중국의 정치 세계에서 패자가 되었다. 그러나 공자는 사후에 제자들과 미래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동아시아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변신되었다.(p.76)공자의 가르침을 한나라에 가장 많이 적용한 사람은 동중서(董仲舒)라는 학자였다. 맹자나 순자같이 위대한 공자사상가는 아니었지만, 중국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였다. 그는 제일가는 공자사상의 홍보원이었으며 한의 엘리트들에게 공자의 사상을 인지시켰다. 그런 노력은 단순히 일개 학파였던 공자의 사상을 중국의 뛰어난 철학적 전통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p.96-97) 공자는 제자들에 의해서 노나라 보통 인간에서 성인으로 추앙받게 된 것이다.저자에 의하면 공자는 죽은 지 500년 후인 후한 시역대 통치자들은 그를 백성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삼았다. 그뿐만 아니라 공자의 영향은 국경을 넘어 퍼져나갔다. 유학 사상이 이미 한나라 시절부터 주변 나라에 퍼지기는 했었으나, 현자의 가르침이 동아시아 전체로 깊이 파고들게 된 것은 특히 14세기의 성리학 운동 때문이었다.(p.125)1895년 전쟁에서 일본에 패한 청은 몰락했다. 그 후 중국 대륙에는 1949년 마오쩌둥에 의해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졌다. 그런데 마오쩌둥은 공자를 '봉건주의의 상징'으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공자의 무덤을 파헤치고 관을 쪼갰다. 취푸에서 일어난 신성 모독은 공자에 대한 마오쩌둥의 공격의 시작일 뿐이었다. 1973년, 그는 전보다 더 혹독하게 현자를 비난한 “반유교 운동”을 대놓고 옹호하였다. 공자는 진나라 시대 이후 역사상 최악의 시대를 맞았다. 마오쩌둥은 진시황제가 2,000여 년 전에 그 유명한 ‘분서갱유’를 자행하던 때보다 자신이 공자의 영향을 더 많이 파괴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진시황제는 겨우 460명의 학자를 생매장했지만 나는 학자 4만 6,000명을 매장했다.”라고 1958년에 있었던 당 간부들을 향한 연설에서 말했다.(p.162) 20세기 후반에는 공자와 그의 유산, 그리고 그로부터 현대사회에서 취하거나 취하지 말아야 하는 역할 등에 대한 국제적 논쟁이 불거졌다.(p.163)2. 논란의 중심에 선 공자저자는 공자의 사상 중 가장 논란이 되는 세 가지, 즉 가부장적 가족제도와 비정상적인 교육열 그리고 근래 한국에서 더욱 논쟁적인 여성 혐오에 대해 그의 공과 책임을 따져 묻는다. 저자는 공자가 동아시아의 현대화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나름의 경제발전을 이뤄내고, 민주국가로 변신한 배경에는 유교 사상이 있다고 한다. 공자가 만든 효(孝) 개념이 기업에 녹아들면서 회사가 개인보다 우선인 문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공자가 만든 교육열이 오늘날 동아시아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한다.‘효’는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만들어 냈는 같은 것이었다. 모든 사회가 커다란 가족과 같다면 아들이 아버지를 거역할 권리나 거역할 수 없는 권리에 대한 규정은 유교의 교리상 인간이 나라에 거역할 어떤 권리가 있는지와 일맥상통한다. 아버지와 아들 간의 교류는 나라가 국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국민들이 어떻게 공권 남용에 대처할 수 있는지, 또 동아시아 사회에서의 시민적 자유 등에 대해 시사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효에 대한 유학적 해석은 동아시아의 민주화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한다.(p.185-186)또한, 한국의 ‘기러기’는 모든 동아시아를 사로잡고 있는, 공자로부터 유래된 유별난 교육에 대한 집념의 한 징후일 뿐이다.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공자의 견해는 그의 교리에 대한 수많은 비난과 공격에도 유일하게 아무 탈 없이 근대까지 살아남은 가르침 중의 하나일 것이다.(p.206) 저자는 동아시아인들의 비정상적인 교육열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의 내용이 문제이지 교육열 자체는 비록 비정상적 일지라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고 있다. 저자는 공자가 만든 교육열이 오늘날 동아시아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를 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도 여성 혐오에서는 미국인의 선입견으로 바라보았다.저자는 공자에 의해서 여성혐오가 만들어졌다고 여기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근거가 약한 주장이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동아시아 국가에서 여성의 역할은 서구보다 훨씬 제한적이었다. 이는 공자와 유교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공자의 가르침이나 '논어'에는 여성이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공자는 여성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자세히 설명한 적이 없다. 사실 그의 가르침에 대하여 가장 믿을 수 있는 서적인 『논어』에조차 여성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어쩌면 그의 침묵은 그가 오늘날 우리가 믿는 것만큼 남성과 여성 사이를 차별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염색체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자비를 추구하고 공자의 황금률(자신이 원하지 않은 것을 타인에게 강요하한 이야기 속에 여성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또 보편적 교육을 주장했지만, 여성 제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가 찾아다닌 통치자와 권력자는 모두 남성들이었다. 여러 세기를 걸치면서 공자에 대하여 편찬된 수천, 수만 권의 저서에도 공자의 딸들 이름은 언급이 없다. 공자의 세상은 남자만의 세상이었다.”(p.231) 그러므로 여성 혐오는 공자가 만들었다기보다 역사적으로 거의 모든 나라에서 남자 중심의 사회활동을 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구 국가에서 여성평등권이 확보된 것도 겨우 100년밖에 안 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성경도 남성 위주로 기술되었음을 상기해 볼 때 결코 여성 혐오가 공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3. 다시 돌아 온 공자항공기 추락의 원인으로마저 공자가 거론되는 판이다. 아시아와 아시아 외의 전문가들은 대한항공의 조종석에 존재하는 계급체계가 낮은 안전 운항의 한 요소라고 여겼다. 주조종사를 두려워하는 부조종사는 안전 운항에 필수인 팀워크 관점에서 주조종사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의문을 제기하지 못함으로 끔직한 대형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새 방법을 찾는 세계의 모든 정책 수립자와 간부들이 유교적 자본주의를 이렇게 즉각적으로 포기하는 것은 잘못일지 모른다. 서양, 특히 미국 기업이 동아시아의 기업과 다른 점 가운데 하나는 직원에 대한 경영진의 태도이다. 일반적으로 미국 기업체계는 특정된 임무를 수행한 대가로 임금을 받는, 임금만큼 일하는 간단한 공식에 기초하고 있다. 기업은 임의적 고용과 해고를 수익성과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 보는 경향이 있다. 반면, 동아시아의 기업에서는 유교의 교리가 경영진과 근로자 사이에 스며들어 있다. 효에 대한 집착은 가족에서 넘쳐 기업을 포함한 다른 제도와 조직에까지 흘러 들어갔다. 그래서인지 경영진은 서양의 기업보다 좀 더 집안의 가장과 같은 성격을 띤다. 엄격하지만 자기 자식을 돌보듯이 직원들을 돌본다. 대신 종업원은 불구하고 유교 문화가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보았다.또한, 저자는 공자가 정치적 차원에서 예상과 달리 민주주의 국가로 가는 또 다른 길을 열어 주었다고 보았다. 맹자는 이미 “왕은 꼭 필요한 것도, 영원한 것도 아니라면서 그는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을 신성한 군주라고 칭했지만, 잔혹하고 원칙이 없는 사람들을 모든 사람이 반대해야 하는 개인주의자라고 불렀다. 따라서 중국은 2,000년 훨씬 전에 민주주의 사상을 이미 고려하였으나 당시에 현실로 옮기지 못하였을 뿐이다.”라고 저술했다. 한국의 친민주주의 전사이며 대통령이었던 김대중도 이 대목에 동의했다. “존 로크보다 거의 2,000년 전, 중국의 철학자인 맹자는 유사한 사상을 설파했다. 왕은 ‘하늘의 아들’이고 하늘은 좋은 정부, 즉 국민에게 좋은 것을 베푸는 정부를 만들 권한을 그에게 부여했다. 만일 왕이 옳게 통치하지 않을 경우, 국민은 궐기하여 하늘의 이름으로 정부를 쓰러트릴 권리가 있다.’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4년에 저술한 책에 썼다.(p.304)국민 스스로 통치할 수 없다는 믿음과 공동체의 이해가 개인의 이해를 우선한다는 사상 등, 리콴유가 주장하는 “아시아적 가치”에 공자를 반영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좋은 정부를 위해서는 그런 정부를 운영할 수 있는 탁월한 사람이 필수라는 그의 주장은 송나라 시대 왕안석의 주장과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 그러나 스스로 유학인이라고 불렀던 과거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리콴유는 자기의 이해에 일치한 공자만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공자는 버렸다. 도덕적 힘은 물리적 힘보다 강하므로 통치를 위해 엄격한 법과 형벌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공자의 믿음이었다. 유학의 관점에서 보면, 리콴유는 권력을 위해 사형이나 다른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또한 ‘항의’는 훌륭한 정부를 위한 중요한 사항이므로 유교적 통치자는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했다. 처형과 체벌, 그리고 반대파의 목소리를 탄압하고, 언론의 목을 죄는 리콴유 정권을 18)
    독후감/창작| 2018.10.05| 4페이지| 3,000원| 조회(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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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챠드 린츠의 구속사 이해
    리차드 린츠의 구속사 이해논문에 사용시 표절 주의!! 참고만 하시고 원전을 인용하세요전환기의 개혁신학(이승구 지음)- 20세기 후반 영미 개혁신학의 동향 -책 소개 ;1960년대 이후 영미권 개혁신학의 흐름을 개혁신학적 입장에서 검토한 책이다. 이승구 교수는 이 책에서 20세기 후반 영어권의 가장 뛰어난 개혁신학자들의 신학적 작업을 검토하여 개혁신학의 본질과 개혁신학의 현대적 정황을 정밀히 분석하고 있다. 또한 '안토니 후크마', '로버트 레이몬드', '도날드 맥클라우드' 등 손꼽히는 개혁신학자들의 면면을 살펴 전통적 개혁신학에 더 충실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조망한다.- 목 차 -서문Ⅰ. 전통적 개혁신학에 충실한 성경적 개혁신학1. 안토니 후크마의 성경적 개혁신학2. 로버트 레이몬드의 전통적 장로교 신학3. 로버트 레이몬드의 타락 전 선택설 주장에 대한 한 논의Ⅱ. 철저한 개혁신학에의 요구4. 도날드 맥클라우드의 개혁파 정통주의적 그리스도의 위격 이해5. 로버트 리담의 성경적, 개혁파적 그리스도의 사역 이해6. 싱클레어 퍼거슨이 제시한 개혁파적 성령론7. 코넬리우스 반틸의 개혁파 변증학 요구8. 에드먼드 클라우니의 개혁파적 교회론9. 게할더스 보스의 성경신학적 설교를 위한 성경신학적 원리10. 그레엄 골즈워디의 성경신학적 설교에의 요청Ⅲ. 개혁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제시11. 고든 스파이크맨의 종교개혁적 기독교 철학적 신학12. 리차드 린츠의 구속사적 조직신학의 프로그램(pp.603-638)13. 마치는 말참고 문헌주제 및 인명 색인리챠드 린츠의 구속사에 근거한 신학의 새로운 틀 구성린츠는 구속사적 신학의 틀을 복음주의 신학이 앞으로 취해야 할 신학이라고 복음주의 신학의 서론을 제시한 바 있다.(Richard Lints, The Fabric of Theology: A Prolegomenon to Evangelical Theology(Grand Rapids, Michigan: Eerdamans),1993.)이 책에서 린츠는 복음주의적 전통은 신학을 하.269) 그런데 그런 해석의 틀은 오직 성경이 제시하는 것이다.”라고 한다.성경은 인간 역사를 세계적 용어로 설명하고, 우리들로 하여금 그 역사 안에서의 우리의 영향을 이해하도록 하는 해석의 틀(interpretive matrix)을 제공한다. 물론 그 역사는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이들에게만 궁극적으로 유목적적(purposeful)인 것이다.(p.269)린츠는 성경이 인류의 역사를 폭넓게 설명하는 해석적 틀(interpretive matrix)을 제공해 주며, 그 역사 안에서 우리의 역할을 보고들을 수 있는 눈과 귀를 제공해 준다고 본다. (p.269). 그러므로 우리의 해석적 틀(interpretive matrix)도 성경의 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성경이 구속사적인 틀로 과거, 현재, 미래를 의미 있게 바라보듯이,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의미 있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의 서로 다른 시기들의 유기적 관계를 더 발전시켜 현대까지를 포괄해야 하고, 그리하여 모든 역사를 성경의 해석적 우산 아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p.271) 린츠는 바로 여기에 우리의 조직신학적 작업이 있다고 보았다.(p.608) 그 모든 유기적 관계를 지닌 정경 전체에 바르게 주목하지 않고서는 신학적 체계가 바르게 세워질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p.279)린츠는 우리가 우리 시대의 질문을 가지고 성경에서 대답을 찾아보려고 하지 말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성경이 묻는 질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p.269) 그리고 그렇게 본문 자체가 묻는 것에 대한 대답을 본문으로부터 찾아야 한다고 했다.(p.293) 성경의 질문을 찾고 그에 대답하려다 보면 해석자인 우리는 우리들의 근본적 가정들과 사유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p.291)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본문이 묻는 질문이 우리의 신학의 기본적 질문이어야 하고, 성경 본문의 중요한 주제들이 우리들의 신학적 중요한 주제여야만 한다고 했다.(p.271)린츠는을 다시 나타내 보려고 했고, 그것을 오늘날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pp.609-611)2. 구속사 신학의 방법론1) 구속사적 성경 해석린츠는 다른 모든 정통적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적 계시”라고 생각한다. 성경이 구속에 대한 묘사와 계시이기만 할 뿐 아니라, 구속을 성취하는 일도 한다는 것을 여러 번에 걸쳐서 강조한다.그리고 린츠는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을 잘하려면 린츠가 클라우니에게서 배운 개념들을 자신의 용어로 표현한 ⑴본문적 지평, ⑵시기적 지평, ⑶그리고 정경적 지평에 잘 유의해야 한다고 한다.린츠는 대개의 주해가들이 본문적 지평에는 유의하나 시기적, 정경적 지평에서 그 본문을 떼어 내는 우를 범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본문의 의미를 시기적 지평과 정경적 지평에서 분리해 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가 보기에 매우 중요한 점이 시기적 지평과 정경적 지평이라는 유리한 점에서 보면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음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대한 신학적 해석은 이 세 가지 지평이 끊임없이 서로 대화하도록 하여 각각의 의미를 설명하고 더 분명히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p.612)⑴본문적 지평본문적 지평이라는 말은 본문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그 본문의 직접적 문맥이나 그 본문이 속해 있는 책의 맥락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를 드러내는데 개신교에서 강조해 온 문법적-역사적 주해가 매우 도움이 된다고 린츠는 강조한다. 그런데 성경 본문은 그 구속적 목적 때문에 다양한 스타일과 장르로 기록되어져 있다. 더구나 성경은 보다 풍성한 사상의 전달을 위해 다양한 심상들(the imagery)과 상징적인 언어(symbolism)로 표현되어 있다. 이런 심상들과 상징들은 “그저 번역되어져서는”(translate out)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 의미를 추상화하여 분문의 생명력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예수께서 일으키신 다양한 이적들은 결국 그리스도께서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 장차 임할 구속을 준비하게 하는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경의 모든 시기들은 다른 것들과의 관계에서와 또 그 자체로 이해해야 한다.그렇다면 린츠는 구속사의 시기를 어떻게 구분하고 있는가? 그는 성경 여러 곳에서 그 자체가 시사하고 있는 시기의 구분들을 잘 살피면서 언급한 후에, 구약은 복잡하고 성경의 저자들은 시기를 단일하게 구분하여 말하지 않고, 각각 다른 신학적 목적에 따라서 시기를 구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 곳에서 그는 결국 보스, 에드워드, 클라인, 로버슨, 토마스 맥코미스키, 얼 엘리스 등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시내 산에서 주신 율법, 다윗에게 주신 약속의 갱신 등을 중심으로 구약의 시기들을 나누어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아주 분명한 시기 구분을 제시하지 않고 단지 그가 앞에서 제시한 신학의 틀에 따라 말하며 아브라함을 중심으로 약속된 언약, 모세를 중심으로 중간 언약,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도입된 성취, 그리고 극치에 이른 구속으로 나누어 구속사를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⑶ 정경적 지평정경적 지평은 정경 전체의 범위와 내용에 신경 쓰는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성경을 해석할 때 우리는 전체로서의 성경이 우리의 주해의 규정점이 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린츠는 “바른 주해는 그 해석적 지평으로 전체로서의 정경을 신중하게 취하여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성경의 각 부분을 지도하며 그 전체를 하나로 묶는 것은 구속사와 구속적 계시 전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들 사이의 연속성과 그 약속들의 성취가 성격 해석의 정경적 지평에서 본질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약속-성취의 모델이 다양한 성경 저작들을 하나로 묶고, 그 통일성을 확보하는 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이 현재 상황에서 의미를 제공하며, 미래 구원에 대한 희망을 제공한다. 린츠는 루터가 “그리스도를 지시하는 것”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정경 안의 정경 개념의 선구가 된 루터를 비판하면서 정경 자체가 그리스도를 지시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규정한다고 말한영감b. 문학적 다양성 → 신학적 구조c. 해석학기사(narrative) - 역사성⑴ 교훈적 - 신학적 주해⑵ 모형론 - 종말론3. 살아 계신 말씀 - 성육신(기독론)B. 구속적 언약1. 약속된 언약 - 아브라함2. 중간 언약 - 모세3. 도입된 성취 - 그리스도a. 그리스도와의 연합(구원론)b. 그리스도의 사역의 적용(성령론)c. 새언약적 공동체(교회론)4. 극치에 이른 구속a. 최후의 심판b. 새 하늘과 새 땅c. 구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린츠는 이처럼 신학적인 틀을 구성하는 것은 성경이 참으로 하나님 백성을 위한 구속적 계시의 정경으로 기능하는 방식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 틀은 새로운 주해적, 성경신학적 작업이 나타남에 따라서 상당히 수정되고 바뀌어 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는 주의 나라가 극치에 이르기 전에는 바른 신학적인 틀을 구성하는 우리의 사역이 결코 완성되지 못할 것임을 아주 현실적으로 인정한다. 그때까지는 온전한 틀을 가질 수는 없다고 한다. 물론 그런 틀이 없거나 있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귀가 마땅히 들어야 할 것을 다 듣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p.623)3) 린츠의 신학적 이상(Theological Vision)린츠는 성경의 구속적 틀을 잘 반영하는 신학적 틀로부터, 그런 틀을 토대로 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라는 정황 가운데서의 현대적 신학적 이상을 이끌어 내고, 그런 이상을 제시하려고 한다.성경에서 시작되고 그 구속사의 정점에 이른 그 이야기가 이미 그 극치를 시사하고 있고, 그 역사가 지속되고 있음으로 성경은 과거 현재 미래를 해석하는 틀을 제공하고, 따라서 오늘 우리의 상황에도 적절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제대로 된 우리의 신학적 이상이 우리를 준비시키는 “복음의 희망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빠져 영원을 영원히 또 영원히 보내게 될 것”이라고 한다.(p.624)이런 영원에 대한 소망과 이해에서 나오는 현 세대에 대한 해석은 기독교 공동체의 과제와 책임을 이해하고 비판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문/어학| 2013.03.08| 11페이지| 2,000원| 조회(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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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넨베르그의 자연신학 평가A+최고예요
    자연신학논문에 사용시 표절 주의!! 참고만 하시고 원전을 인용하세요.Ⅰ. 저자와 책 소개1. 판넨베르그 소개『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는 『몰트만』과 더불어 살아 있는 현대신학의 거장으로 손꼽힌다. 1928년 독일의 스테틴에서 태어난 그는 훔볼트대학과 괴팅겐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1950년 칼 바르트 밑에서 '교회교의학'을 공부했다. 그 후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신학박사와 교수 자격을 취득해 1958년부터 3년간 부퍼탈에 있는 신학교에서 『몰트만』과 함께 조직신학 교수로 일했다. 1968년 뮌헨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1994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조직신학을 가르쳤다. 저서로는 「계시로서의 역사」, 「기독론의 근본 질문」 「신학과 하나님의 나라」 「신학적 전망에서 본 인간론」 등 600편의 많은 저술을 남기고 있다.자연과학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신학자인 『판넨베르그』는 어떻게 하면 신학적 사유를 시대적 상황에 맞게 적응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것보다, 신학 자체의 고유한 관점이 무엇이고 고유의 관점에서 어떻게 자연과학적 사유를 비판자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를 탐구했다. 『판넨베르그』의 「자연신학」을 살펴봄으로 그는 과학과 신학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2. 이 책의 대강(大綱)본서에 수록된 일곱 개의 논문은 이미 예전에 다른 문헌들을 통해 출판되었던 것들을 『테드 페터스』가 모아 편집한 것인데, 이 논문들을 통해 판넨베르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자연의 신학을 명확하게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편집자 서문을 통해, 편집자는 신학자들과 과학자들 간의 상호교류에 『판넨베르그』의 도전이 던져주는 의미를 기술하고, 그의 과학적 자연의 신학이 취하고 있는 방향성을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다.(p.14)1. 편집자 서문: 판넨베르그의 신학과 자연 과학....(11)2. 과학자들에게 던지는 신학적 물음들....(35)3. 창조론과 현대 과학....(57)4. 하느님과 자연: 신학과 자연 과학 간의 논쟁사에 관하여....(87)5. 우발성과 자연 념과 보전과 지배 개념들을 한데 엮어 주는 역할을 한다.6 성령의 장(場, field) 이론이 질문은 『판넨베르그』에게 우발성의 빛에서 계속된 창조를 말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하느님의 영(성령)의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새로운 시간 개념을 정초하는 것으로 종말, 즉 영원성에 대한 신학적 이해에 관계된 질문이다.균일한 자연 법칙들과 특정 사건들의 우발성 간의 관계는 근대 과학에 대한 『판넨베르그』의 신학적 분석에 형식적 출발점을 제공한다. 관건은 과학적 이론화의 실질적 내용과 출현하는 실재에 대한 기술이다. 『판넨베르그』가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바로 물리학의 역장 개념이다. 마이클 패러데이와 그의 이론을 승계하고 있는 아인쉬타인의 작업들이 특별한 관심의 대상들이다. 힘이란 매개물을 전제하지 않는 물체들 간의 운동 결과이며 따라서 보이지 않는 힘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관점을 전복시킨 것은 바로 이 장 개념이 일구어 낸 성과라 할 수 있다. ..............이 개념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신학적으로 중요하다. 첫째, 뉴턴 이후 힘을 운동하는 물체에로 환원시켜 버림으로써 근대 과학은 우주상으로부터 어떠한 신적인 힘도 배제시키는 결과를 야기했다는 문제를 들 수 있다. ...장 개념이 신학적으로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패러데이』로부터 『아인쉬타인』에 이르기까지 역동적인 장(場)이론들은 부분들에 대한 전체의 우위를 주장한다. 하느님과 전체 개념을 상관적 범주들로 묶어 준다는 것이 또한 이 장 개념이 신학적으로 의미있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실재로서 하느님은 우주 전체를 통일하는 근거로 인식되어야만 한다. 만일 그 신이 세계의 창조자와 구원자로 인식되어야 한다면 말이다. 신이 수여한 실재의 전체라는 개념에 근거하여 『판넨베르그』는 모든 우발적인 단일 사건들 속에 하느님의 현존이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을 설득력 있게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는 결국 물리 법칙은 논리적으로 법칙을 적용하는데 필요한 우발적인 조건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우리가 자연 현상을 법칙으로 기술할 수 있지만, 그것들은 이미 우발적인 조건들을 전제하고 있다고 한다. 사건의 결과가 유사성이나 구조적 규칙성을 보여 준다 할지라도, 모든 사건들이 일차적으로 우발적이라는 가정을 적용하는 것이다.3.4.『바이체커』는 역사란 보편적으로 변경 불가능한 변화들을 그 특성으로 가지는 발생 사건들에 관심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것은 발생 사건들의 비가역성과 반복 불가능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지적으로 볼 수 있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르면 열은 결코 완전하게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자연 과정은 열을 생산해 내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모든 시간은 비가역적이며 자연 내의 어떤 사건도 정확하게 반복되지 않는 것이다. 『판넨베르그』는 이러한 반복불가능성을 그 특성으로 하는 열역학 제 2 법칙과 더불어 물리법칙은 자연 과정에 있어 반복 불가능성을 확증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자연 법칙들의 변함이 없는 타당성이 항상 성립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자연 과정들의 비가역성은 흔히 다른 근거에서, 특별히 엔트로피 법칙과 관련하여 주장되기도 한다. 이 엔트로피 이론은 우주론에 응용되어 대폭발 이론등과 같은 상대론적 우주 모델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비가역성의 궁극적 근거는, 바이젝커가 제시했듯이, 시간의 비가역성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발성과 비가역성은 공통의 뿌리를 갖게 되는 셈이다.(pp.46-47)자연 법칙의 공식을 통하여 기술되는 규칙성 그 자체는 우발적인 것으로 간주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규칙성이 갖고 있는 패턴은 사건들의 반복 가능한 연속을 의미하는데, 그 사건들의 연속은 그것들이 반복되어 규칙적인 연속을 이루기에 앞서 시간 속에서 그의 최초 발생 시점을 갖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이상의 연구들이 신학적으로 관심을 끄는 이유는 실재를 역사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성서적 이해 때문이다. 즉 그칼 바르트』였는데 그는 자신의 책 교회 교의학 중 창조론 서문에서 원리적으로 신학적 창조론은 과학적 기술들과 결과들에 관여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결정하였다.독일 신학에서 그와는 다른 태도를 견지한 인물을 예를 들면, 칼 하임의 작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들과 대화에 그토록 정통했던 하임조차도 신학이 묘사하는 사고 형태와는 대립된 또 다른 사고 형태로서 자연에 대한 과학의 개념화와 기술을 조망하면서 그것들을 완전히 상대화시키는 일에 보다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 두 사고 형태들은 양극화된 것들이 아니라 하임의 말에 의하면 오히려 초극적인 형태들이다. 그러므로 『하임』 조차도 자연 과학의 개념적 토대들에 대한 신학적 수용과 비판 작업에는 착수하지 않았던 것이다.(pp.61-62)『판넨베르그』는 본장 이하에서 기존의 신학적 창조론으로는 과학과 절충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4. 창조와 우발성『판넨베르그』 입장에서 보면, 모든 자연 현상들은 신의 자유 행위에 따르는 일회적이고 비가역적 사건이다. 그래서 우발적 사건이다. 이와 달리, 자연 과학은 비록 우발적으로 주어진 사건들을 대상으로 그것들에 의존해서 법칙 개념 자체를 적용하는 것이지만, 그런 전제 조건에도 불구하고 일차적으로 자연 과정이 지닌 규칙성을 드러내는 데 관심을 둔다.이렇게 자연 과학과 신학은 모두 동일한 우발적인 사건을 다루지만, 규칙성과 우발성이라는 다른 관점에서 서술한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판넨베르크』는 우발적인 사건을 규칙적으로 공식화한 자연 법칙을 다루는 자연 과학과, 신의 활동에 의한 우발적 결과라고 자연 현상을 바라보는 신학은 서로 모순 되거나 배제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판넨베르그』는 자연 현상을 결정하는 힘을 지닌 신을 대상으로 하고 그 실재의 총제성에 관심을 갖는 신학이, 총체성의 일부분인 법칙성을 다루는 자연 과학보다 더 넓은 범위를 지니고 있으며, 우발적인 사건이 지닌 의미에 대해 보다 완전한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실재에 대한 과학적 이며 적어도 예수의 메시지와 초대 기독교 일반 속에서 종말론의 의미의 재발견이 갖는 중요성을 토론하고 있는 현대의 신학적 맥락을 고려할 때 그 중요성은 실로 자명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거스틴』이 플로티누스적 시간 개념을 적용했을 때에는 상황이 달랐다. 시간을 이해할 때 종말론적 미래의 우선성은 중요한 것으로 고려되지 않았다. 그 대신 『어거스틴』은 개별 영혼이 시간과 영원에 맺고 있는 관계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시간의 주관적 경험에 집중하였고 이는 『칸트』와 『하이덱거』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관련된 모든 토론의 기본 방향을 제공하였다. 하지만 『어거스틴』의 심리학적 시간 경험 분석은 플로티누스적 시간의 존재론을 전제한다. 이는 『어거스틴』의 유명한 개념 즉 영혼이란 시시각각 변해 가는 사건들의 흐름 속에 계속적 현존이 놓여 있는 자리라는 개념 속에 특별히 분명하게 드러난다. 기억되는 과거와 예기되는 미래 사이를 가로질러 확장하는 영혼의 팽창으로 그 계속적 현존을 기술하는 것은 영원에 참여하는 하나의 형태로서 영혼의 지속을 의미하는 것이다.이는 시간을 이해함에 있어 우리로 하여금 신학과 과학의 관계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만일 공간을 현상들이 동시적으로 창발하는 형태로 기술한다면 물리학적 기술에서 이미 균일한 시간을 전제하는 과학적 시간 측량 기술들에서 그리고 공간과 시간과 에너지를 통합하는 시공간 모델 혹은 우주 장 모델에서 나타나는 시간의 공간화는 영원한 하느님의 현존에로의 모든 유한 존재들의 참여를 외삽적 추론을 통해 기술하고 있는 것이며 그리고 이 참여를 통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지속 경험이 가능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공간화는 앙리 베르그송이 추측하는 것처럼 단순한 허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간화는 지속 경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서 이 경험은 베르그송 자신의 사고에 기본이 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일찍이 천상의 운동들과 관계했던 밤과 낮의 연속, 여름과 겨울의 연속이 보여 주는 계속성뿐만 아니라.
    인문/어학| 2013.03.08| 31페이지| 4,000원| 조회(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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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빈의 성경관 비판적 고찰
    칼빈의 성경관 비판적 고찰(기독교강요 Ⅰ권 6장~10장을 중심으로)논문에 사용시 표절 주의!! 참고만 하시고 원전을 인용하세요.Ⅰ. 緖論1. 칼빈의 사상적 배경칼빈의 사상적 핵심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라 할 수 있다. 이 하나님 절대 주권 사상은?사도 바울에게서 완성되고, 어거스틴에게서 재 발견되고, 칼빈에게서 꽃핀 신학적 체계이다.?)칼빈은 자신의 신학적 입장의 확신을 찾으려는 정열을 가진 신학자로 자기 사상의 기초를 성경에 두었다. 그는 성경 전체를 면밀히 연구하였다. 특히 구약에 대하여는 어느 다른 개혁자들보다도 훨씬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이 움직이지 않는 반석 위에 자신을 확고히 세우고 신앙과 행위 문제에 있어서 성경을 유일하며 가장 안전한 안내자로 확신하였던 것이다.?)자연인의 이성을 인정한 철학적 사유로 어거스틴이 기초를 제공했고,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성과 신앙, 철학과 신학을 조화시켜 체계를 완성한, 교회의 권위를 주장하는 로마 교회에 의해 가리워졌던 하나님 절대 주권 사상은 종교개혁으로 다시 드러나게 된다.?종교 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떨어져 나간 교회를 초대 기독교의 단순성과 순수성으로 되돌리는 운동이었다.?)어거스틴이 로마 교회의 신학적 기초를 제공했지만, 그가 주장했던 은혜의 교리는 종교개혁을 가능케 한 적극적인 요인이었다. 칼빈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교부도 어거스틴이었다. ?그는 어거스틴이 성경 해석에 있어서 풍유적 방법을 사용한데 대하여 가끔 유감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성경의 가장 충실한 해석자로 간주한 데는 항상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어거스틴을 인용하였다. 교리 면에서 볼 때, 칼빈은 어거스틴의 자유의지와 성례관에서 영향을 받았고, 은혜와 예정을 다루는 각 장에서는 전적으로 어거스틴의 논증을 자신의 논증으로 사용한다.또한 칼빈은 루터의 영향을 받았다. 칼빈의 저서에서 루터의 어떤 완전한 논증이나 문장 그대로 인용된 것을 찾아보기는 힘든다. 그러나 루터의 영향은 의 칼빈은 기독교 강요로 프로테스탄트 교리를 체계화 시켰다. 본서의 엄청난 영향과 중요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이 책은 로마 카톨릭 교회에 의해 부패되어진 기독교를 그 이전의 기독교로 바꾸어 놓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책은?프로테스탄트의 신앙을 권위있고 강력하게 설명한 것?) 으로 모든 개혁파 교리의 표준이 되었다.4. 기독교 강요의 변화와 증보.1536년의 기독교 강요는 단지 여섯 장(chapter) 뿐이었다. 그중 네장은 율법(십계명 해설포함), 믿음(사도신경 해설포함), 기도(주기도문 해설포함) 그리고 성례전으로 되어있다. 칼빈은 루터의 교리문답에서 이러한 순서를 취했는지 모르나 그러한 순서는 평신도들의 교육을 위한 허다한 중세의 책들에도 나타나 있다. 5장과 6장은 논쟁적인 방법으로 각각 거짓 성례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다루고 있다. 5장에서 칼빈은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성례라 불리워지고 있던 고해, 견진, 결혼, 서품, 종유등 다섯을 성례가 아니라고 논박한다. 그리고 6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개념을 해설할 뿐 만 아니라,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를 논술 한다.1538년 스트라스부르그로 옮긴 후에, 1539년 8월 크게 증보된 개정판을「기독교 강요」(institutio christianae reli33gionis)로 서명(書名)을 바꿔출간했다. 독자들에게 쓴 간단한 서문에서, 칼빈은 2판의 목적이?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원하는 신학 후보생들에게 준비?를 시키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애초에 자기 동료 신자들의 신앙을 변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발한 논문이 학생들을 위한 성경교리 요약으로 확대 되었다.본래의 내용들 중 어떤 부분들은 다시 보충해서 새로운 제목들을 달았고 그만큼 새로운 사실들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책의 두께도 본래 6장이던 것이 17장으로 세 배로 늘어났다. 11개의 새 장들 중 두개는 1536년의 첫장 앞에 왔고, 세 개는 마지막 장 뒤에 가 붙었으며, 나머지는 본래의 6장 사이사이에 삽입되었다. 어떤 부분들은 그대로 재판에 옮겨졌으나 대체로이 인류를 진정한 신지식으로 인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인간들은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분의 의지에 따라 그들의 삶을 거룩하게 살지 못했고, 그들 자신의 양심의 증거에 따라 정죄를 받아) 신지식이 없어졌기 때문으로 보았다.하나님은 우리를 우주의 창조자이신 당신에게 인도하기 위하여?다른 더 훌륭한 조력자?를 보내 주심으로 그 분을 알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셨다. 하나님은 그를 보내주심으로 그는 구주로 알려지셨는데, 그를 구주로 알리는 수단이 성경이라는 것이다.칼빈은 성경의 기능을 안경의 기능에다 비유하고 있다.“노인이나 또는 그 눈이 흐려졌거나 시력이 약해진 자들은 그들 앞에 아무리 아름다운 책을 펴놓는다 해도 그 속에 무엇이 기록된 책이겠지 하는 것을 알 뿐 두 마디 말도 계속 읽을 수가 없을 것이다.그러나 안경을 쓰고 보면 그 도움으로 분명히 읽기 시작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것 없이는 혼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성경은 우리 마음 속에 집결시켜 캄캄한 운무(雲霧)를 헤쳐 주어 참 하나님을 분명히 보여준다.”)성경속의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인간의 죄 때문에 피조물이 할 수 없는 계시 활동을 가능케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필수품으로 보았다.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인간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망녕에 어찌나 빠지기 쉬운지, 그리고 선뜻각종 오류 가운데 기울어지는지, 신기하고 허망한 종교 따위를 때때로 날조(捏造)하고저 마음 먹게 되는지를 우리가 음미해본다면 우리가 등한히 하기 때문에 망하거나 또는 오류 가운데 빠져 소멸(消滅)되거나 혹은 인간들의 방자하고 뻔뻔스러운 것 때문에 타락되지 않게하기 위하여는 이와 같이 하늘로부터의 증거 문서가 필요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그러므로 성경은 타락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총의 선물이요,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 섭리로 예비하신 선물이라고 보았다. 성경은 구원의 지식과 기독교인의 생활을 위한 안내자로서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는 것이다.칼빈조하신 피조세계를 통하여 나타내신 권능의 영광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타락한 인간이 피조된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신지식(新知識)을 얻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의 일반계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타락한 인간에게는 특별 계시로서의 성경이 절대로 필요하게 된 것이다.)Ⅲ. 성경의 권위칼빈은 하나님께서 성경 안에서만 자기의 진리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신성(神聖)하게 보존하기를 원하셨다고 하였다. 마치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하늘로부터 유래되었다고 생각될 때에만, 비로소 성경은 신자로부터 완전한 권위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성경은 교회의 승인을 얻을 때에만 그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는 카톨릭의 주장에 대해 칼빈은 이것은 마치 하나님의 영원하시며 침범할 수 없는 진리가 인간의 결정에 의해 좌우된다는 말과 같다고 반박한다. 교회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었다는 사도들의 증거는(엡 2:20) 선지자와 사도의 교훈이 교회의 기초이고, 그것은 확실히 교회가 존재하기 이전에 벌써 그 권위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성령의 증거는 일체의 이론을 훨씬 능가하는데, 하나님 자신만이 자기 말씀의 합당한 증인이 되시는 것처럼, 그 말씀도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하여 확실한 것으로 그 권위를 확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성경에 대한 최고의 증거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사실에서 얻게 된다는 것이다.도날도 맥킴도 “칼빈의 견해에 의하면, 사람들이 성경에 관한 이 확신-즉 하나님이 그 저자이시라는 확신-에 이르게 되는 것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성령의 내적 증거(testimonium spiritus sancti internum)는 우리가 성경의 기원과 권위에 관하여 확신할 수 있게 되는 방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죤머레이도 “칼빈은 내적 증거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고 있지 않고, 우리 마음에 인식된 증거로만 보고 있다. 칼빈이 ‘성경이 권위있다’(autho오셔서 구약에서의 약속대로 하나하나 성취하신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께서 첫 아담에게 세우신 언약은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주심으로 완전하게 성취되는 것이다.”)이처럼 구약과 신약 사이에 서로가 논리의 조화를 이루고 있음으로, 성경은 일관된 논리로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계시하고 있다.Ⅳ. 성경의 신빙성칼빈은 우리가 일단 성경을 그 존엄성에 따라 경건하게 받아들이며, 일반적인 서적과는 달리 뛰어난 것으로 인정하기만 하면, 이전에는 마음에 성경의 확실성을 강하게 심어 주지 못하고 고착시켜 주지 못하던 논증들이 이제는 매우 유용한 도움을 주게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신적 지혜의 배치가 얼마나 훌륭하게 질서 있게 배열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고, 이 교리의 천상적인 성격은 얼마나 완전하며, 이 교리가 그 모든 부분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그리고 책에 위엄을 가져다주는 다른 특성이 얼마나 풍부한지를 주의 깊게 생각한다면, 이러한 사실로 말미암아 놀라운 확신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또한 주제의 위엄에 의해 우리의 마음은 더욱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성경의 고전성 그 자체가 적지 않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데, 성경이 고전성에 있어서 다른 모든 책보다 얼마나 우수한 것인가를 생각할 때 신빙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모세가 행한 수많은 이적들, 이전에는 일반 대중에게 비천한 자로 멸시를 받던 그들이 갑자기 하늘나라의 신비를 장엄하게 강론하기 시작한 것, 성경 그 자체의 힘으로 널리 보급되어진 것, 많은 순교자들이 성경의 교리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 등이 성경에 대한 증명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칼빈이 말하기를 “성경은 그 자신이 증거하고 있으므로 증명이나 변론에 붙여질 것이 아니요, 성령의 증거에 의하여 우리가 받아들여야 그 확실성을 얻을 수가 있다?) 고 한다. 그러면서도 성경의 신빙성에 있어서는 인간 이성이 허용하는 한도내에서 충분히 증 있다.
    인문/어학| 2013.03.08| 10페이지| 2,000원| 조회(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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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제별로 정리한 칼빈 주석의 정수 하나님에 대한 지식
    「주제별로 정리한 칼빈 주석의 정수」2. 하나님에 대한 지식논문에 사용시 표절 주의!! 참고만 하시고 원전을 인용하세요1. 서론하나님을 어떻게 지식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조셉 하로투니언』이 저술하고, 『이종태』가 옮긴 「주제별로 정리한 칼빈신학의 정수」를 통해서 『칼빈』은 하나님을 어떻게 지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지 가능한 한 책의 본문 내용을 그대로 요약하여 살펴보고자 한다.2. 하나님의 계시 - 하나님은 자신을 어떻게 계시하시는가?하나님은 영이시고 따라서 육안으로 볼 수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인간의 지성은 무한히 높으신 하나님께 오를 수 없는데 어찌 하나님을 가시적 형태로 파악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즉, 이 책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서는 유한자인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그리고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알 수 있다면 어떻게 가능한가? 의 문제를 다룬다.1) 인간이 이해 할 수 있도록 계시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실 때에는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고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내셨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사야도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엄을 자신의 지력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형태를 보게 된 것이라고 한다.(pp.135-136)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도다.(사6:1-5)2) 은혜의 영광 선포로 계시하나님께서는, 절망적이고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할 수 없는 특권을 던져버리는 것이 될 것이다.그러므로 하나님을 알되 그 분의 말씀을 통해서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분은 우리를 상대하시되 크신 자비와 긍휼에 따라, 곧 이름을 위하여 행하시고 우리의 그릇된 행위를 따라하지 아니하신다.(pp.145-146)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20:44)이렇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당신을 알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민족들과는 구별된 제단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 세상 어디에서나 인정받는 잡다한 신들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만을 섬긴다는 것을 증거 하려는 것이었다.(p.147) 칼빈은 하나님 백성들의 하나님 섬김을 당연시 하고 있다.(불가항력적 은총에 의한 하나님 섬김)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 벧엘이라 불렀으니‥‥‥‥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가시는지라(창35:7, 13)3. 인간의 인식 -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빛이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인간들에게 남아 있는 한 가닥의 희미한 빛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은 항상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초청하셨지만, 이것이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칼빈은 말한다. 인간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후, 그의 지성은 무지로 짓눌려 그에게 남아 있던 빛은 다 꺼져버리고 쓸모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이성(理性)이 있으며, 그것은 인간이 호흡을 하도록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해하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이 그들의 이성을 통하여서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으며 그를 가까이할 수 없다는 것도 역시 사실이라고 한다. 그것은 그들의 모든 이지(理智)는 헛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새로운 구제 수단을 가지고 그들을 도와주시기것을 지적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구별을 통하여 저자는 하늘과 땅에서 밝게 빛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남의 빛을 받아 비추는 것인 반면 그리스도는 자신이 빛이요 그의 광채는 자신의 것이기 때문에 빛의 근원이나 원인이 달리 있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참 빛이라고 부르는 것은 광채를 발하는 것이 그분의 본성이기 때문이라고 했다.이 구절은 대개 두 가지로 설명된다고 했다. “일부 사람들은 각 사람을 성령에 의하여 거듭난, 생명을 주는 빛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국한시킨다. 어거스틴은 여기서 한 교장을 예를 들어, 만일 그가 마을에 단 하나밖에 없는 학교의 교장이라면 비록 많은 사람이 그 학교에 다니지 아니할지라도 각 사람은 그를 선생님이라고 할 것이라고 하였다. 또 일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추신다는 말씀의 의미를, 아무도 그 분이 아닌 다른 곳에서 생명의 빛이라는 은혜를 받았다고 자랑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복음서 기자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 모두를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설명이 더 내 마음에 든다고 했다. 곧 앞에서 말한 대로, 이 빛에서 나오는 광선이 모든 인류에게 발산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사람은 다른 모든 생물들과는 달리 이성(理性)과 이지(理智)를 부여받았다는 초월성을 지녔으며 그들의 양심에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영원한 빛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직관력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 구절을 곡해하고 조명(照明)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제공된다고 추론하는 정신 이상의 광신자들이 있다. 이 말씀은 믿음에 비해 훨씬 열등한 자연의 일반적인 빛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아무리 예리하고 명석한 지성을 지닌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꿰뚫어 볼 수는 없다. 택함 받은 자들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 주는 분은 하나님의 영뿐이시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이성의 빛은 죄로 흐려졌으며, 그래서 심각한 무지의 깊은 수도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므로 우리의 눈을 먼저 그에게 고정시켜야 한다고 하실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그로부터 시작하여 아버지께로 올라가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내려오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무엇을 염두에 두고 계셨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믿어야만 한다고 고백한다. 이것은 누구나 이의 없이 찬성하는 하나의 확정된 원칙(axiom)이다. 그러나 그것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백에 하나도 없을 정도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위엄이 우리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탄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온갖 구름으로 가려놓아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하늘의 영광 가운데 계시며 가까이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계시는 우리의 하나님을 찾는 동안에도 사라지고 만다.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우리 믿음의 올바른 대상으로 우리에게 계시하신다.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그 분에게로 향하면 그것은 즉시 확신과 안식을 얻는다. 무한정 방황하지 않으려면 우리의 믿음을 그리스도에게만 향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신조이다. 우리의 믿음이 갖가지 시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그분에게 고정되어 있어야만 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와 우리가 그 분 안에서 누리는 약속들로부터 떨어져 나가기를 용납하지 않는 믿음의 증거다.교황 추종 신학자들은 믿음의 대상에 대해서 논의하거나 크게 말하나 그리스도는 빼놓고 하나님만 언급한다. 이런 자들의 글을 읽고 지식을 얻는 사람들은 아주 가벼운 미풍만 불어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교만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천함(卑下)을 수치로 여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불가해한 신성으로 날아간다. 그러나 믿음은 그리스도에게 순종함으로써만 하늘에 이르려고 한다. 그리스도의 얼굴이 천한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며, 신앙이 그리스도의 연약하심에서 지지를 얻지 못하면 그것은 안정을 찾을 수 없다.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 있는 것이 모두 신성하고 하늘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에 의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에 관하여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경고를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에는 지식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확실성이 있다고 했다.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요10:38)믿음이 마치 그 차원에 있어서 지식보다 못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지식 다음에 믿음을 놓으시는 것은 경험에 압도되고 강요받지 않으면 굴복하지 않으려고 하는 불신적이며 잘못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한 반역자들은 믿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시는 일에 대한 지식을 통하여 우리들이 믿음을 소유하도록 준비를 시킬 정도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의 지혜의 비밀에 대한 참된 지식은 믿음에서 온다고 한다. 이는 믿음의 순종이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문을 열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이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으로 선택받은 자들을 일깨워 주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우리가 생명을 받는 방법을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그가 여기서 다루고 있는 문제는 우리의 소망인 궁극적인 생명의 향유가 아니라 인간들이 생명을 얻는 방법이라고 했다.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홀로 생명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시지 않는 한 우리 모두는 죽은 상태라는 것을 먼저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분이 빛을 비춰 주시는 곳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그 분을 소유하며 그와 동시에 생명을 소유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참되고 정당하다고 한다.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장한다.
    인문/어학| 2013.03.08| 9페이지| 1,500원| 조회(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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