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후 교육의 변천과정(제1~7차 교육과정 개정의 주요내용)한국은 1945년 일본의 강탈적인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었다.해방이후의 한국은 미국과 소련에 의해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민족의 분단은 국토의 중간인 38선을 경계로 하여, 북은 소련의 지배하에, 남은 미군이 진주하여, 3년간에 걸쳐 군정을 실시하게 되었다. 1945년의 해방은, 일본의 식민 제국주의에 의하여 황폐화되었던 한민족이 다시 민족의 분단이라는 이중적인 시련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민족의 시련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정치, 경제, 사회, 교육의 제 분야에서 시도되었다.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한국의 교육은 민족 자체의 힘에 의하여 새로운 민족 교육을 형성 발전하게 되는 역사적인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초·중등학교 교육은 교육과정에 따라 변하여왔다. 교육과정은 학교교육의 전체적인 이념이나 목적은 물론, 각 교과의 성격이나 목표, 내용체계, 단원별 내용, 교수·학습방법, 평가에 이르기까지 교과학습과 관련된 세세한 부분을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교육과정의 변천은 단순히 교육내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인 변화에도 직접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1차 교육과정 (1955년)? 진보주의 - 교과형 교육과정? 특별활동영역의 독립? 지역성 고려, 재료단원 장려? 반공교육, 도의교육, 실업교육? 소단원제를 지양하고 대단원제로 시정? 총 이수시간을 백분율로 제시▷ 2차 교육과정 (1963년)? 경험중심교육과정? ‘사회생활과’→‘사회과’로 명칭변경? 계열성 강조? 고등학교 단위제 채택? 교과활동과 반공도덕, 특별활동으로 구성? 자주성. 생산성. 유용성. 합리성. 지역성 강조? 한문과 교련 신설▷ 3차 교육과정 (1973년)? 학문중심교육과정? 교과활동과 특별활동으로 구성? 국민교육헌장이념 구현? 수업시간을 45분으로 변경? 지식. 기술교육의 쇄신? 도덕, 국사교과(중학교)신설▷ 4차 교육과정 (1981년)? 인간중심통합교육과정? 전인교육충실, 국민정신교육강화? 초등1,2학년 통합지도 시도? 진로교육개념도입? 개발과정에서 연구, 개발모형을 적용▷ 5차 교육과정 (1989년)? 통합교육과정? 초등학교1,2학년에서 국어와 산수과목 분리? 학교 재량시간 신설? 중학교 기술, 가정 통합교과 신설? 고등학교 일반계 직업과정에 정보산업 신설? 주체적, 창조적, 도덕적 인간의 강조? 1, 2학년에 있어서 통합교과 신설▷ 6차 교육과정 (1992년)? 통합교육과정? 선택 교과제의 도입? 시, 도교육청과 학교교육과정 편성. 운영지침 작성 권을 부여? 연간 수업 시간 수 축소? 교육과정 구조의 합리적 조정? 건강한 사람, 자주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도덕적인 사람 강조? 과학-기술교육 및 환경교육 강화? 교육과정중심 학교교육으로 전환? ‘산수’→‘수학’으로 명칭 변경? 영어과 신설(6차와 7차 사이 부분개정)▷ 7차 교육과정 (1998년)? 학생선택중심 교육과정 도입? 독서교육강화? 학교 급별 개념이 아닌 학년제 개념도입? 재량활동의 신설, 확대? 수준별 교육과정?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의 편성
플라톤의 인간본질에 대한 설명의 타당성과 교육적 의미플라톤은 아테네의 전통 있는 좋은 여건의 가정에서 뛰어난 자질을 지니고 태어났다.그는 스파르타와의 전쟁에 기병으로 종군하기도 하였고, 20살 때 원숙한 대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만나 감격과 존경을 다하여 8년간 교육을 받았다.그는 당시의 청년들과 같이 정치에 뜻을 두었으나 아테네 정치가 정의의 본질을 망각하고 국정이 문란하여 그 꿈을 포기하고 말았다. 특히 그 당시 민주정치의 중추를 맡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끌어내어 합당하지 않은 불경죄로 고발하고 사형시킨 사실은 플라톤의 정치참여의 방법을 실천적 영역으로부터 이론적 영역으로 전향시켰다.그는 소크라테스 사후 10년간을 해외여행으로 보냈고, 아테네에 돌아와서 아카데모스 지방에 아카데미 아라는 학교를 열고 그의 철학적, 정치적, 교육적인 관심의 결합을 꽃피우는 생애를 열게 된다.아카데미아의 목적은 소질 면으로나 계급적으로 뛰어난 청년의 심신을 수양하고, 깊고 진실된 철학에 의해서 훌륭한 정치적 현상을 실현할 식견을 가진 미래의 통치자를 기르자는 데 있었다.플라톤의 교육사상은 그의 철학적 기초 위에서 전개되고 있다.그의 모든 사상은 이데아설이 그 뿌리를 이루고 있다. 그는 이데아세계(이념. 이성)와 현상계의 두 세계관을 수립하고, 하나는 진, 선, 미가 가득한 영원불멸한 완전의 세계, 절대의 세계요, 하나는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변화의 세계로 규정짓고 있다.인간은 이데아세계로 향하는 본성의 정신과 현상계로 향하는 본성의 육체로 구성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이중적인 성질 때문에 인간의 생활은 이성적, 이상적, 신적인 부분과 감각적, 현실적, 본능적 부분의 대립이 나타난다. 그러나 최상, 최고의 진, 선, 미를 현상화 시킨 이상적 인간은 지혜의 덕, 용기의 덕, 절제의 덕이 내부에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인간일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플라톤의 인간관은 현대적 의의가 크다. 플라톤은 인간을 세 종류로 분류했다. 욕구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생각하는 삶의 중요한 목적은 부이며, 기개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경쟁의 대가로 명예를 얻는다. 그런데 철학적인 사람이 가장 강한 인간이며, 그의 삶의 목적은 진리의 본질을 아는 데 삶의 목적이 있다. 플라톤의 말로 표현하면, “존재의 본질”을 아는데 있다.그의 교육목적은 이성이 안내하는 도덕적, 조화적 이데아의 실현에 있다.따라서 그의 이상 국가는 가장 완전한 지혜의 덕을 특별히 소유한 철학적인 통치자와 가장 의지가 강한 용감의 덕을 특별히 소유한 무사, 그리고 감성적 현세욕 을 가장 잘 인내하는 절제의 덕을 가진 노동생산자가 자기의 본분을 이탈함이 없이 발휘할 때 가능한 것이라 했다.그리고 플라톤은 이성과 열정의 통합을 통해서 인격을 함양하며, 개인과 사회의 조화를 통해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데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앤디 앤드루스 지음항상 똑같은 일상생활의 반복과 공부에 지쳐 있을 때 친구가 추천해준 이 책은 인생을 살면서 내가 견뎌낼 수 없는 시련과 고통을 죽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겨내는 지혜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이 책의 주인공 폰더씨 는 부인과 딸 1명을 둔 성실한 40대의 가장이다.평범하게 살아가던 그에게 큰 시련이 한꺼번에 다가온다. 다니던 회사에서 실직을 하고 어렵게 구한 파트타임 일자리도 잃고 딸의 병원비조차 없는 상황에서 자기 이름으로 가입한 생명보험으로 아내와 딸이 행복해 지길 바라며 죽음을 선택한다.폰더씨 는 자동차를 타고 참나무를 들이받고, 그 순간 역사여행을 시작 하게 된다.처음 도착지는 독일의 포츠담이었다. 그 곳은 일본 본토에 원자폭탄을 투하한다는 결정이 내려진 곳이다.그 곳의 트루먼이 전해준 성공하기 위한 첫 번째 결단은, ‘공은 여기서 멈춘다.’이다.현재의 삶이나 미래의 삶은 내가 선택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런 삶을 사는 것은 내가 과거에 선택했던 일에 대한 결과인 것이다.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얼마나 많은 것들에 핑계를 대며 살아왔는가. 사소한 것 하나하나 모두 어쩔 수 없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들은 내가 선택했던 것들인 것이다.두 번째는 솔로몬을 만났고 그가 전해준 결단은, ‘나는 지혜를 찾아 나서겠다.’이다.지혜의 왕이라는 솔로몬 왕도 주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물며 자신을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할 것이다. 그리고 봉사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문을 열어주기를 바라지 말고 오히려 내가 누군가를 위해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다.세 번째는 군인인 체임벌린이고, 그 전까지 그의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난 이 책에서 그의 결단이 가장 중요하고 실천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그 결단은, ‘나는 행동을 선택하는 사람이다.’이다.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성공하는 사람은 재빨리 결정을 내고 자신의 마음을 천천히 바꾼다. 나는 얼마 전까지 많은 결정들을 다음으로 미뤄왔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러지 않는다. 일단 결정을 하고, 행동을 해보고, 후회는 그때 가서 하자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네 번째는 콜롬버스로 부터 받은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한다.’는 결단이다.콜롬버스는 신대륙이 있다는 자신의 꿈만을 가지고 60일이 넘는 시간동안 항해를 했다. 내가 꿈을 갖고, 꿈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나아가면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다섯 번째는 안네 프랑크이다. 그녀에게 받은 결단은 ‘오늘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을 선택하겠다.’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우울해 하다가 나보다 못 한 사람을 만나서 위안을 얻고는 했다. 하지만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처럼 먼저 웃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정말 행복해 지는 것 같다.여섯 번째는 링컨의 ‘나는 매일 용서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맞이하겠다.’이다. 내가 이 내용을 읽으면서 생각난 것은 우리나라 속담 중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이다. 내가 지금껏 사소한 것에 상처받았듯이 다른 사람도 내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 일에 크게 상처받을 필요도 없고, 화를 낼 필요도 없다. 내가 그 일에 열을 올리고 있다면 나는 귀중한 나의 시간을 낭비 하는 것이다. 차라리 빨리 용서하고 행복해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지식기반사회, 포스트모던 사회에 적합한 교육은?포스트모더니즘을 알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서구에서 근대 혹은 모던(modern) 시대라고 하면 18세기 계몽주의로부터 시작된 이성중심주의 시대를 일컫는다. 종교나 외적인 힘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던 계몽사상은 합리적 사고를 중시했으나 지나친 객관성의 주장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전받기 시작하였다. 니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거친 후 포스트모던 시대는 J.데리다, M.푸코, J.라캉, J.리오타르에 이르러 시작된다. 서구 근대화이래 나타난 대중적 공교육체제는 합리성, 체제성, 보편성, 객관성, 조직성, 효율성 등을 그 특징으로 하는 모더니즘을 근간으로 발전해 왔다.교육은 통상적으로 세계와 인간에 대한 객관적 지식과 보편적인 가치체계를 가르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이성적인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후기 산업사회에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과 가치체계는 객관적이거나 보편적인 것이 아니며, 따라서 그것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누구나 수용해야 하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에서 볼 때,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과 가치체계는 다른 상황에서 혹은 다른 관점이나 세계관에서 보면 전혀 객관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상대주의적 견해는 교육에 뿌리깊이 박혀있던 신념과 인식체계의 근거를 바꿔버리고 있다.전환기적 시대에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의 교육에 관한 대표적인 견해 또는 입장 몇 가지를 살펴보면, 첫째, 포스트모더니즘은 학교에서 가르쳐지는 지식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을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다양한 교육내용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무엇보다도 지식이다. 학생들은 그들이 배운 지식이나 신념체제를 절대 보편타당하고 유일한 것 그리고 당연히 옳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대안적인 지식과 신념체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며 다른 관점과 견해에 대해 개방적이고 허용적일 수 있는 태도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열린 교과서와 교육과정에서는, 료타르가 지적한 것처럼,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하거나 논리적으로 논증 가능한 '인지적 지식'뿐만 아니라, 그 동안 가치가 없거나 적은 것으로 치부해 왔던 주변적 요소들(기술적 요소, 윤리적 요소, 미적인 요소 등)도 인지적 지식과 대등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다양한 지식을 가진 사람만이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다양한 삶의 양식을 창조적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포스트모더니즘은 전통적인 교육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했던 교육방법의 전환을 요구한다. 전통적인 교육에서 중심적인 교육방법은 당연히 전달과 주입이라는 획일적 방식이었다. 일방적인 전달과 주입이라는 독단적인 교육방법은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사고와 행동에 무비판성, 수동성, 경직성을 초래해 왔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입각한 교육에서는 무엇보다도 교사와 학생이 한편은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다른 한편은 수동적으로 따르는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공동으로 지식과 가치를 탐구하며 창조하고 재창조해 나가는 동반자적 관계이다. 포스트모던 교육에서는 학생들 간의 공동학습 혹은 협동학습법을 추구한다. 협력학습이란 학생들이 소집단 활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일정한 역할과 책임을 맡아 공동의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학습방법이다. 이러한 협력학습은 개개인을 격려하고, 학습흥미를 유발하며, 이론보다는 학습현장의 실제장면을 중시하며, 토의?토론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협력학습을 통해 학생들은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자세와 태도를 익히게 된다. 즉, 포스트모던 시대에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다원적인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포스트모더니즘은 포스트모던 사회와 정보화 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교육체제를 요구한다. 근대의 계몽주의와 함께 성장?발달한 공교육은 합리적 이성에 기초한 보편적 지식 및 가치체제의 전달과 주입에 의존하는 제도이다. 18세기 근대 공교육사상의 제창자인 꽁도르세(M. D. Condorcet)는 인간의 이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였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 그 본질인 이성에 눈뜨고 자율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하는 인격으로 무한히 고양되며 그리고 그러한 이성적인 인간으로 고양되어 가는 사람들의 수가 확장되어 가는 것을 진보라고 믿었다. 인간이 본래의 자유를 회복하고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편견이나 무지를 극복하고 인간정신의 진보를 실현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 교육의 고유한 임무가 발견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합리적 이성을 계발하여 편견과 무지를 극복하고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지식과 진리를 추구함으로써 진보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을 교육받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논리에 기초하여 교육에 대한 기획과 운영 그리고 통제를 전체적으로 국가사회가 주도하는 공교육이 성장, 발달해 온 것이다. 그 결과 공교육체제는 필연적으로 획일성과 경직성을 그 특징으로 가질 수밖에 없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새로운 사회적 조건에 적합한 보다 유연하고 다양한 교육체제가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에 입각한 교육이 기존의 공교육체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편에서는 기존의 공교육체제에 포함되는 학교교육 내에서 경직성과 획일성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운영방식을 모색하고,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기존의 학교교육에 대한 여러 형태의 대안적 교육모델을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개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자주 거론되는 열린 교육, 대안교육, 홈 스쿨 등도 결국 포스트모던 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교육체제 혹은 학교를 위한 실험들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포스트모더니즘에 입각한 교육은 학생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전통적인 교육에서 학생은 지식이나 가치를 주어지는 대로 배워나가고 수용해 나가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간주되어 왔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세계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형성해 나가는 데 있어서 학생 개개인이 발휘할 수 있는 능동적인 역할과 주체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저해해 왔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의식에 볼 때, 그들이 미성숙자라고 하여 학생들의 목소리를 소외시켜서는 안 되며, 그들도 인간 주체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기초하는 교육에서는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 기호, 사유 및 행동 양식 등에 깊은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고 이해해야 한다. 나아가 교육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그들이 지닌 비판적 능력과 창의성 그리고 상상력을 충분히 신장, 발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페스탈로치 교육이론의 특징교육의 성자라고 불리는 페스탈로치는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5살 때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는 어머니와 하녀에 의해 양육되었는데, 훗날 페스탈로치는 자신에게 아버지에 의한 교육적 영향이 결핍되었음을 아쉬워하였다. 그러나 그는 시골의 작은 교회 목사였던 그의 할아버지를 자주 방문하였고 또한 할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기도 했다. 대학에서는 신학을 공부하다가 당시 후진국이었던 조국의 발전을 위해 법학을 전공하기도 하였다. 대학시절 그는 당시 스위스에 영향력을 발휘한 루소의 『에밀』과 『사회계약론』을 읽고 애국 단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구금당하기도 하였다. 이에 회의를 느끼고 농촌에 들어가 농촌계몽사업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이후 그의 생애는 농촌계몽과 민중을 위한 교육적 활동으로 점철되었는데, 즉 노이 호프(Neuhof)농장운영의 시기, 스탄츠(Stanz)고아원시기, 부르크도르프(Burgdorf)학교시기, 이페르텐(Iferten)학교시기로 진행되었다.그의 교육이론은 교육의 실천을 통한 비범한 관찰력으로 아동의 내부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인간성을 직관하고, 그것을 사랑하고, 믿고, 기르고, 드러내는 끝없는 교육정신이 원천을 이루고 있다. 그를 인류의 구제자로서 온 세계 사람들이 높이 추앙하는 것도 그러한 교육정신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페스탈로치 교육이론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개념은 인간성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한결같이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인 동시에 환경의 자극을 받아서 밖으로 뻗어 나가는 힘을 지닌 것이다. 페스탈로치는 교육의 이상이 바로 그러한 인간성을 개개의 어린이에게서 계발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페스탈로치는 당시 지배계급의 전제(專制)와 부패·타락을 공격하고 민중을 진실로 행복하게 하는 사회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그것을 위한 생활주의의 교육을 제창했다. 그는 순수한 인간성을 향해서 인간의 도덕적·지적·신체적인 내적 제능력을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것을 생활교육의 목적으로 생각했다. 그는 인간에게는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보이지 않는 내면의 근본력이 있는데, 교육은 이 인간정신의 근본력을 북돋우고 드러내는 일이며, 그것을 방해하고 억압하는 교육은 아무리 유용한 지식과 기술을 전달한다 하더라도 참된 교육은 아니라고 보았다. 페스탈로치는 인간정신의 근본력을 정신력·심정력·기술력의 세 가지로 표현했는데, 그것은 지(智)와 의(義)와 행(行)에 해당하는 것이며, 이는 머리(head)·심장(heart)·손(hand)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3H로 간단히 요약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이 3가지로 대변되는 인간정신의 근본력의 삼위일체(三位一體)적 조화를 교육적 이상으로 삼았다. 페스탈로치는 교육을 사회개혁의 수단으로 보았다. 그는 에서 가정생활의 개량과 학교교육의 진보가 민중의 사회적·도덕적 관계를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것이고, 하층계급의 부패는 사회의 위험한 암흑적인 면이므로 양민의 보호와 사회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현재의 궁핍과 고뇌를 완화시키기 위해 교육이 필요한 것이며, 하층민의 생활 상태를 개량하는 유일한 방법이 교육이라고 믿어 사회개혁의 수단으로서의 교육 사업에 생애를 바쳤던 것이다. 페스탈로치는 지식교육·기술교육·도덕교육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법적 원리로서 직관을 들고 있다. 그는 직관을 인식의 절대적인 기초로 삼고 그것을 교수(敎授)의 최고 원리로서 확립하였다. 또 그에게 있어서 직관은 논리적 인식론에서 말하는 직관이기에 앞서서 생생한 인식구성의 근본원리이며, 모든 인간교육의 기초인 동시에 출발점인 것이다. 그는 직관의 기본요소로 수(數)·형(形)·어(語)의 세 가지를 들고 이를 직관의 ABC라 하였다. 그는 사물의 인식은 첫째로 사물의 수와 종류를 식별하고, 다음으로 그 형태와 모습을 보며, 끝으로 그 이름을 소리와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통하여 파악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언어의 능력, 형태의 의식, 계산능력 등을 외부적인 수와 형과 어에 결부시킴으로써 교수법의 보편적 기초를 확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