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유대시대의 교육에 관한 서술과 유대교육의 관점에서 본 현대 교회 교육 비판여기서 말하는 유대교육은 대략 바벨론 포로시기인 주전 586년부터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때까지를 말한다. 바벨론의 포로로부터 예루살렘에 되돌아온 유대인들은 모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책임있는 남은 자들로서 생각하였다. 대략 주후 70년의 성전파괴까지를 초기 유대교의 마지막으로 간주한다. 후기 유대교의 랍비적 유대교에 이 초기 유대교가 맥락을 이어가며 살아있는 것으로 본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은 네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기원전 605년에 다니엘을 포함한 왕족들과 귀족계급이었고(단1:1-6), 두 번째는 기원전 597년에 여호야긴 왕을 포함한 일반 백성들과 모든 방백들과 군사들 1만명 외에 많은 기술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왕하 24:14) 세 번째는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 성전과 성이 최후로 함락될 때에 시드기야 왕을 포함한 백성들이었고(왕하25:6-12, 렘25:9-11), 네 번째는 기원전 581년에 느부갓네살의 시위대장 느브사라단이 마지막 남은 유다인들을 포로로 하였다. 또 포로되지 않고 유다에 남은 자를 위하여 바벨론과 느부갓네살은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세웠다. 일부는 애굽으로 가기도 하였고, 포로된 백성들은 나라 없는 고통을 겪으며 살았다. 사실 예루살렘 파괴와 뒤이어 포로로서의 포로생활은 이스라엘 역사의 큰 분수령이었다. 단번에 이스라엘은 국가적 존재의 위기와 민족적 정체성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었다. 나라가 파괴되고 나라의 종교적 의식행위가 정지되었고 국가적 및 예의적 공동체가 파괴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근절되고 패배한 개인들의 응집력을 필요로 했다. 이런 여건한에서 옛것으로부터 새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이스라엘의 신앙이 훈련 및 강화되었고 오는 모든 세대들을 통하여 따르게 될 방향이 점차적으로 형성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유대교의 태동이다. 유대교의 정통은 바벨론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주로 팔레스타인과 바벨론에 있었던 유대 가르치는 권한을 부여받게 되었다. 에스라의 지도하애 대중교육의 프로그램의 시작이 새로운 제도로 무르익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주로 토라연구의 강조와 대중지식의 질을 높이는 일을 하였다. 메비님이라고 불리우는 공인된 교육자들은 공공연하게 가르치도록 임명되었다. 토라가 낭독되고 설명 및 해석되었다. 이것은 토라의 정규적인 대중강화의 시작이었고 후에 회당예식과 연결된다. 토라의 조항들 사이의 내적 갈등들과 또한 토라와 그 시기의 실재 사이의 갈등들은 성서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도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리하여 미드라쉬가 나오게 된다. 유다 백성들은 포로 귀환 이후에 하나님의 율법을 통한 새로운 부흥을 체험하고, 교육 부문도 특별한 양상으로 발전하였다. 포로됨과 흩어짐, 이에 따른 고통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이 겪었던 슬픔은 신앙에 대한 새로운 열정과 민족의 결속을 가져오게 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되돌아보고 미래를 재발견하려고 하였다.주전 332년에 희랍의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를 공격하여 팔레스타인과 이집트를 걸쳐 남쪽을 정복하였다. 주전 323년 알렉산더 사망에 이어, 팔레스타인은 이집트와 시리아의 왕국들 사이의 투쟁의 중추였다. 주전 320년부터 120여년 이상동안 즉, 프톨레미1세가 예루살렘으르 포획한 때까지 유다는 이집트와 시리아의 속국이었다. 마지막으로 주전 198년 시리아의 실루커스가 주권을 획득하여 주전 167년 마카비 혁명때까지 보유하였다.희랍시대에 이르러 대중교육을 위한 학교들이 나타났다. 주전 3세기말 교육자 벤시라는 수업료 없는 교육을 시도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학생의 집에서도 할 수 있는 비공식적 공부인데 흔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주전 2세기 말엽에 시몬 벤 쉐타이는 최초로 알려진 지방지원의 학교조직을 시작하였는데 이는 후에 산헤드린과 연관된다. 현자들 혹은 지자들은 랍비적 학자들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동양을 희랍화하려는 알렉산더의 야망이 있었기 때문에 정복하는 곳마다 희랍어, 희랍종교, 희랍의 정치적 기관들, 그리고 희랍학교들을 현장에서 구현시키려고 하였다. 이들은 가정을 단순한 사회적 관점에서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적 입장에서 보았다.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는 아브라함과의 언약에서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이 언약은 아브라함 개인과의 언약인 동시에 히브리 민족 전체를 향한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기에 유대 교육은 민족적이면서도 개인적이었고 그 전통 속에서 가정의 귀중성이 강조된다. 이러한 하나님 중심의 가정관은 유대민족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기틀이 되었고, 정치와는 다른 통일성을 계승하였다. 유대인의 가정 교육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하나님은 유대 가정 교육의 중심이었고 율법은 교육의 바탕이 되었다.모든 종교교육의 목표는 히브리 교육에서와 같이 자녀들이 야웨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양육과 더불어 개인적인 책임의식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이런 목적 아래 가정 안에서의 어린이의 교육은 일반적으로 엄격했다. 이 당시 매는 권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사용되었다. 반면에 히브리 문헌들은 자녀들에 대한 부모들의 깊고 부드러운 감정과 부모들에 대한 자녀들의 감정도 수없이 많이 다루고 있다.자녀들은 3살 될 때까지 종교적인 책임이 없다. 그러나 4살된 아들에게 아버지는 토라의 지식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준수하도록 가르치기 시작한다. 어느 랍비적 교리에 의하면 어린이가 말할 수 있을 때, 아버지는 그에게 토라를 가르쳐서 쉐마를 읽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소년은 다음의 두 구절의 말씀을 배움으로 교육받기 시작한다.“모세가 우리에게 명령한 토라는 야곱 회중의 유산이다.그래서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인 여호와시니이다.“4살 때부터 어린이는 부모와 함께 회당에 오기 시작하면서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도 조상들의 모험담들, 역경 및 불행들 그리고 영광의 이야기들을 배웠을 것으로 추측한다. 13세 소년은 개인적으로 율법에 대해 책임을 지기 시작했다. 성인 예식인 바 미즈바는 소년 자신이 율법을 완성 및 성취해야 하는 책임의식서 잠언의 몇 구절을 배웠고, 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5-6세가 되면 성서 연구를 시작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정식학교가 생기기전에 가정에 의하여 자녀들의 교육이 수행되었다. 이 때 부모 모두가 사실 자녀들의 종교교육 및 행동에 책임적인 교사들이었다. 여기서 가르치는 주제들과 활동들은 주로 쉐마 혹은 국가적 신조, 성경귀절들, 잠언들, 기도들, 찬미들, 그리고 성경 이야기들이었다. 이 당시 종교적 가르침의 업무를 열중한 초등학교의 조직이 생겼으나 가정의 종교적 가르침의 중요성은 약화되지 않았다.교육내용으로서의 율법을 본다면, ‘토라’는 교육, 훈육을 의미한다. 이 말의 어원은 ‘던지다’혹은 ‘굴리다’로서 부모나 인정받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제시된 신령한 교훈을 의미한다. 또, 하나님과 다른 사람의 대한 관계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관점에 대한 내용이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실 때에 율법을 주셨다. 아브라함의 소명으로부터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기까지 하나님은 인간들이 그가 준 언약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기뻐하시며 신앙하는지 안하는지를 시험하셨다. 불신앙이 점점 퍼져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구원을 도외시하자 계속적으로 믿고 결단하도록 율법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주요 목적은 가르침에 있다. 율법은 인간의 행동 규범을 교육한다. 율법은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에 대해서 가르치고, 죄가 무엇이며, 죄인이 받을 형벌이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율법의 구분은 하나님의 거룩성에 있으며, 율법은 의와 거룩을 요구한다. 율법은 인간의 연약성, 죄악성 그리고 부족성을 지적하고 있다.율법은 세 가지 부분들로 되어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수록한 계명들, 둘째는 사회생활의 원리와 심판 규칙, 셋째는 예배에 관계된 명령과 규칙들이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이 주어진 이후부터 유대민족의 교육의 핵심을 율법이었다. 율법은 의식법보다 오래된 것으로써 삶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히브리 민족의 교육이념은 이립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한 학급은 25명 이하의 학생들로 구성되었고 교사 1명과 약간의 보조교사가 있었다. 교사는 사회적 존경을 받았으나 보수는 받지 않았다. 이렇게 회당은 어린이 교육은 물론이고 어른들의 교육 센터가 되었다. 회당은 히브리 민족의 활로였으며 생활의 전당이 되었다. 모든 히브리 민족이 하나님의 교훈을 배우는 학생이었고, 영적 교육만 받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정치 등 삶의 전분야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이와같이 하여 토라를 가르치고 또한 예배하는 곳인 회당은 유대인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유대인들이 모이는 곳에는 어는 곳이든지 회당이 생길 정도로 보편적인 교육기관이었다.가정 밖의 교육기관으로서 회당 외에 이 당시에는 초등학교 교육이 공식적으로 있었다. 만일 회당이 망명동안 생겼다고 한다면, 초등학교도 이 시기에 회당에 부속되어 생겼을 것으로 본다. 초등학교는 늘 회당에 설립되었고 어떤 때는 회당에 붙어 있는 방이나 주인 집의 방이 초등학교였다. 초기부터 회당과 학교는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초등학교의 이와같은 시작은 아버지의 교육의 이상과 실제의 문제로부터 출발하였다. 왜냐하면 실제 가정생활에서 히브리어를 모르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성서를 특히 히브리어인 모세오경을 정확하게 가르칠 수가 없었다. 게다가 회당같은 기관들이 거의 어른들을 위한 예배와 가르침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아버지를 대신하여 자녀들의 종교교육을 해야하는 선생님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초등학교가 회당과 더불어 설립된 것으로 본다. 초기의 초등학교는 회당안에서 회당의 관리들에 의하여 비정규적으로 가르침을 수행하였다. 그 다음에 시몬에 의하여 일반학교들이 설립되었는데 이것들은 회당들과 예루살렘과 다른 큰 도시들 사이에 분리되어 있는 독립립된 기관들인 것으로 본다. 초등학교의 발전 및 설립이 직접적으로 다뤄진 곳은 탈무드로부터 두 군데를 추적할 수 있다. 하나는 매우 간단한 것으로서 시몬 벤 쉐타아는 어린이들은 학교에 가야만 된다고 규정하였다. 다른 하나는 었다.
교육과정 및 교육평가Ⅰ. 교육과정 개관1. “교육은 인간 행동)의 계획적인) 변화이다.”변화가 없으면 교육이 아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교육.)2. 교육관과 교육과정ⅰ)성장으로서의 교육(루소, 듀이...)-식물에 비유 “아이들은 잠재적 성장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 자랄 수 있다. 그래서 교사는 정원사 에 불과하다.” 학생주도형>>아동 중심 교육과정ⅱ)주입으로서의 교육(파블로브....)>>3. 교육과정의 정의Curriculum→어원적 : currere 달려야 할 길ⅰ)지식(Knowledge) -교과 (accumulation of knowledge)-“교육과정은 전공분야에서 졸업 또는 수료를 하 기 위해서 이수하여야만 하는 일련의 교과목을 체계적으로 모아 놓은 것“ C.V.Good=교과 중심 교육과정)-학문 (structure of knowledge)-“지식의 구조를 통한 탐구 과정의 조직” 제롬 브루너=학문 중심 교육과정)ⅱ)경험(experience) -“교실에서든 운동장에서든 아니면 학교 밖에서든 학습에 영향을 미치는, 학교가 하는 노력의 총화”-Smith & Alexander=경험 중심 교육과정(아동중심 교육과정))ⅲ)계획(plan) -“교육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학교의 계획에 따라 학생들이 갖게 되는 모든 교육내용“강신웅=목표 중심 교육과정)4. Curriculum의 issue들① Knowing vs living (앎이냐 삶이냐)② plan vs process (계획이냐 과정이냐)③ product vs process (결과)냐 과정)이냐)④ ends) vs means (목적이냐 수단이냐)5. Eisner의 교육과정 분류공식적 교육과정(official ...)형식적 교육과정(formal ...)잠재적 교육과정(hidden ...)보조적 교육과정(collateral ...)비공식비형식 교육과정(informal ...)교과 외 교육과정(extra ...)영 교육과정(null ...))Ⅱ. 목표중심) 교육과정의 흐름1. Bobbitt(과제 참조)2. Tyler의 「교육목표의 설정」)원천 학습자) 사회) 교과전문가)↘ ↓ ↙교육철학) 교육심리학)↘ ↙교육목표※타이러의 『교육과정과 수업의 기본원리』?4가지 질문 : 1.교육목표의 설정) → 2.학습경험의 선정 → 3.학습경험의 조직 → 4.학습경험의 평가? 3원천 : 학습자의 필요, 사회의 요구, 교과 전문가의 견해? 2체 : 학습 심리학), 교육철학)?학습경험의 선정에 있어서 5원리 : 1.기회, 2.만족, 3.가능성, 4.다경험, 5.다성과?학습경험의 조직에 있어서의 3준거 : 계속성(continuity), 계열성(sequence), 통합성(integration)? 평가 : 교육목표의 달성을 평가(객관도objectivity, 신뢰도reliability, 타당도validity))?비판점 : 목표선재에 대한 비판 Pre-set goal)단선적이다.폐쇄적이다.지나치게 실증주의적이다.)잠재적 교육과정을 무시하고 있다.Tyler의 교육 “Ed. is a process of changing the behavior patterns"3. Bloom의 「교육목표 분류학」) 1956①지 적 -지식-이해-적용-분석-종합-평가②정의적 -감수-반응-조직화-가치화-인격화③행동적4. Mager의 「행동적 수업목표의 설정」1962-가르친 후에 나타나는 도착점 행동이 바로 교육 목표이다. 목표 설정 기준: 측정가능, 수량화가능, 평가가 능, 관찰가능Ⅲ. 학문중심 교육과정)1. Bruner의 「교육의 과정」)○중간언어 - 지식의 구조(내용)을 제외한 학문의 결과○핵심적 확신 - "Any subject would be taught to any child at any age."○나선형 교육과정 -어떠한 지식의 구조도 심화시키면 어린 나이에도 가르칠 수 있다.2. 한계학문이 아니면 가르칠 수 없다. 각 학문간의 연계가 어렵다.Ⅳ. 경험중심(아동, 생활중심) 교육과정1. John Dewey (1859-1952)듀이에게 있어서 경험이란 문제해결의 과정이다. 곧 교육은 ‘경험의 개조’이다.Ed. is a process of living and not a preperation for future living. Ed. is continuing reconstruction of experience)○프라그마티즘(pragmatism 실용주의)찰스 퍼어스), 윌리엄 제임스)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생성되었다.특징- ①관념의 명료화, ②진리의 검증, ③유용성?‘진리’라는 것은 인류 복지(문제해결)의 도구이어야 한다.)○도구주의(instrumentalism)○경험주의(experientism), 실험주의(experimentalism)○지성)주의윤리적 개념, 이러한 지성이 있어야 만이 바른 민주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사회는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민주주의(&교육)○진보주의절대주의에 대한 반격, 모든 진리는 변화한다는 사상(자유주의, 과정신학이 이 것에 영향을 받았다.)①교육은 생활이다. ②교육은 성장이다. ③교육은 경험의 부단한 개조이다. ④교육은 사회의 과정이다.○아동중심주의○Deweyism※박상진 교수님의 교육과정 분류표결과 product과정 process계획 plan앎 knowing교과중심 교육과정Hutchins학문중심 교육과정Brunner목표중심 교육과정Tyler삶 living생활중심 교육과정(어른)bobbitt경험중심 교육과정Dewey2. 교과 중심 vs 경험(아동) 중심교과 중심경험(아동)중심1. 성인중심아동중심2. 생활의 준비교육은 생활3. 외부적 진리아동 내의 필요4. 과거 유산현재의 삶5. 훈련자유(흥미, 자율성)6. 교사중심학생중심7. 지식경험8. 이상적 가치 (관념)실용적 가치 (유용성)9. 암송, 주입탐구10. 사회의 유지, 존속민주사회로의 개선11. 경쟁협동3. 비판점4. 기독교적 적용과 한계점) 인간에게만 “교육”이라 한다) “intentionality" 의도성-우연히 깨달은 것은 교육이라 할 수 없다.) 정범모 「교육과 교육「) 전통적 교육과정, 내용을 중시) 대표자 Jerome Bruner, 탐구를 중시(학습활동을 중시, 탐구하는 자세)) 대표자 John Dewey) 대표자 Ralph Tyler) 목표중심 교육과정결과물의 기준 -관찰 가능하도록, 측정 가능하도록, 평가 가능하도록, 수량화 가능하도록) 경험중심 교육과정) 종착점 행동 terminal behavior) 위 과정에서 다루지 못하는, 제외된 부분의 교육과정) 목표설정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Bobbitt 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학습자의 필요와 요구를 분석) 사회의 요구) 해당 교과목에서 꼭 알아야 할 것) 이것들이 정말 가치 있는 것인가?) 그 것들이 정말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 타일러에 의하면 목표는 내용과 행동진술을 포함해야 한다.) ‘학습 가능한가’에 대한 분별) ‘가르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분별) 평가도구 조직의 세가지 원리) 학습내용을 지나치게 한정시킨다.
종교심리와 기독교교육을 읽고..※ 내용 요약1. 회심경험과 기독교교육회심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어떠한 신비적 계기나 특수한 동기에 의하여 급격한 정신적 변화를 일으키거나,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선택하게 하는 경험으로 알려져 왔다. 이것은 하나님에 의해 인간에게 주어지는 수동적 차원의 종교적 경험이라는 개념이 내포된 용어이다. 성서신학적으로 살펴보면 하나님만이 회심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절대적이며 주도적인 권한을 지니지만 이와 동시에 인간의 내재적 가능성도 부인하지는 않는다. 사회학적으로는 회심자가 어떠한 영향 아래 새로운 종교를 수용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분석에 관심을 가진다. 이 접근은 새로운 종교생활을 하면서 점진적인 행동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개연성을 제공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문화인류학적으로는 각성의 단계, 결정의 단계, 종교집단에의 가입단계로 나눈다. 심리학적으로는 정신분석학적 접근, 인본주의 심리학적 접근, 행동주의 심리학적 접근, 사회심리학적 접근이 있다.미국의 종교심리학자 메도우와 카호는 회심의 과정을 중심으로 회심의 유형을 다섯가지로 분류하였다. 가장 극적인 형태를 지칭하는 급격한 회심, 주로 지적 차원의 깨달음을 통한 점진적 회심, 어린시절의 종교적 가치관을 점차 확대시켜 해석하여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게 되는 무의식적 회심, 재통합의 회심, 인위적 계획에 의한 회심이 있다. 영국의 종교심리학자 타울레스는 회심 후의 행동변화를 중심으로 세 가지로 분류하였다. 사도바울처럼 인지적 차원에서 새로운 종교적 신념과 가치 체계를 서서히 수용하는 형태의 지적 회심, 마지막으로 회심 후 행동상의 변화가 주로 도덕적 측면으로 나타나는 도덕적 회심으로 분류할 수 있다. 특별히 사도바울의 회심을 종교심리학적 이해로 살펴보면 다메섹 도상에 회심을 경험한 바울은 강한 적개심을 느끼는 대상이 단지 기독교로부터 유대교로 전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을 수용함으로 내면적 적개심까지 극복하고 초월하는 차원에서 행동상의 변화를 이끌어 왔다. 바울은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회심에 관한 기독교교육이 회심의 과정과 종교적 성숙의 상호관련성을 중시하는 맥락에서 구성될 필요가 있으며 회심 경험 후 생겨날 수 있는 심리적 갈등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자아성찰의 교육, 신앙공동체의 교육환경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요청된다.2. 수치심과 기독교교육수치심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서, 각자 지향하는 이상으로부터 분리된 자아를 발견하게 될 때 혹은 그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고 평가하게 될 때 생기는 정서이다. 수치심은 특히 유아와 그들을 돌보는 부모(보모)와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아주 어린 시절부터 형성되므로 어떠한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에 따라 각 사람이 평생에 걸쳐 느끼는 수치심의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수치심의 특징으로는 본유적?부가적 정서로서의 수치심을 연구한 탐킨스는 인간의 정서는 사회?문화적 차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동일하게 보이는 반응 양식이며, 그 동일한 형태의 반응 양식은 바로 선험적으로 주어진 구조적 특징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특히 얼굴 표정의 변화를 통해 잘 나타나는데 유아들이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는 것에 앞서, 얼굴 표정을 통한 정서적 의사소통을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한 얼굴 표정의 변화를 통해 감지할 수 있는 정서의 형태는 보편적으로 아홉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 중 여섯 번째 유형이 수치심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이 유형 중 부가적 정서는 한 개인이 그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충족하는 과정 중 그와 상반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부수적으로 느끼게 되는 정서를 말한다. 자의식적 정서로서의 수치심을 연구한 정신분석 학자 나단슨은 수치심은 특정의 상황을 새롭게 접하게 된 ‘그 자신’에 관한 심리적 자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고 보았다.수치심을 일반적으로 분류하면 고통스러운 자각을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도록 하는 건전한 수치심과 자신의 염원보다는 타인에게 이상적으로 보여야 할 자신의 모습에 고착하는 이른바 억압의 상태에 놓여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지 못해서 생기는 무 수치심으로 나눌 수 있다. 기능적으로 분류하면 건전한 정서로서의 수치심과 중독성 수치심으로 나눌 수 있다.기독교교육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성숙한 신앙인의 형성이다. 그러므로 더 나은 삶과 신앙을 추구하기 위해, 타인에 대한 민감성과 존중심을 격려하기 위해, 인간의 한계성을 인식하도록 도와주기 위해 “건전한 수치심을 지니는 신앙인“이라는 새로운 교육목표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 이뿐 아니라 병리적 수치심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기반 위에서 새로운 기독교교육의 목표가 추가될 필요가 있다. 또한 기독교교육은 부모를 대상으로 수치심의 부정적 현상을 앞서 예방하는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부모와의 상호신뢰가 깨어진 아이들에게 부정적 자아정체감을 회복시켜주는 프로그램, 병리적 차원의 수치심을 건전한 수치심으로 전환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교육내용을 새롭게 선정하여 재구성해야 한다. 교수-학습 과정에서도 수치심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물론, 병리적인 차원의 수치심을 느끼는 자들에게 전문적인 상담 과정을 통해 정서적 문제를 진단하고 치유하도록 도와주는 시도가 폭넓게 진행되어야 한다.3. 불안경험과 기독교교육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는 불안을 각 사람에게 위협을 가하는 실제적인 환경을 적절하게 극복하기 위해 사용되는 긍정적 차원의 심리적 도구일 뿐 아니라, 신경증적 행위를 더욱 악화시키는 부정적 도구로서 작용한다고 본다. 행동주의 심리학에서는 불안이란 처벌에 대한 심리적 공포로부터 회피하려는 ‘조건화된 반응’이라고 개념을 정의한다. 실존주의 심리학은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의 가능성 때문에 생겨나는 존재론적 정서라고 정의하며 이것은 인간의 발달 과정 중 필연적으로 느껴야 하는 긍정적 정서로서 취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존주의 심리학자인 메이의 불안개념을 보면 불안 경험과 관련된 인간 삶의 형태를 환경세계, 공동세계, 자아세계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이 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은 존재론적 죄의식을 지닐 수밖에 없다. 현대인에게 가장 요청되는 것은 을 죽음 본능에서 파생된 공격성에서 규명하려 하였으며 유아들은 증오의 감정을 계속 바깥으로 투사하고 안으로 내사하면서 그들의 성격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유아는 가해성 불안과 우울성 불안의 심리상태를 갖게 된다. 이와는 다르게 관계적 맥락에서 불안의 원인을 규명하려 한 페어베언은 불안이나 공포와 같은 심리적 분열 상태는 상실의 상황에서 대상과의 유대를 잃지 않으려는 본능적 욕망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보았다. 마가렛 말러는 유아의 발달과정을 공생의 의존으로부터 벗어나 안정된 자율적 정체성으로의 전향과정을 통해 분리 불안을 겪는다고 보았다. 마지막으로 대상 항상성 불안으로 위니컷은 어머니로부터 위로와 사랑을 기대하기보다는 어머니를 위로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면서 모종의 불안과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로 하여금 아동은 어머니의 부재 시에도 어머니와 같은 편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 중간 대상(인형과 같은)을 소유하게 되는데 이러한 대상을 소유함으로 대상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반면, 이러한 대상 항상성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느끼게 되는 특이한 정서가 곧 불안이라는 것이다.불안경험에 대한 올바른 기독교교육은 병리적 불안을 야기하는 요인에 관한 부모의 비정상적 돌봄 형태를 지적하고 그를 예방할 수 있는 불안에 관한 교육의 장기적인 계획과 효과적인 수행방법이 요청된다. 또한 하나님의 모습이 아버지의 모습과 어머니의 모습이 함께 어우러진 새로운 형상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 존재론적 불안을 지향하는 기독교교육으로서는 불안 경험을 통해 자아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촉진하는 구체적인 교육내용이 재구성되어야 하며 실존적 자아의 중심점을 지키기 위해 무엇보다 자아 긍정적 태도가 요청된다. 이것은 곧 자신과의 화해를 통해, 타인과의 화해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해를 통해 도달하게 되는 새로운 존재의 모습을 이끌어 낼 수 있다.4. 연민과 기독교교육일반적으로 연민은 다른 두 가지 심리와 명확하게 구별하기 힘들다. 감정이입과 동정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동정을 선행조건으로 삼는 실천적 차원의 행동이나 경험을 의미한다는 것이 일반적 개념정의이다. 심리학적으로 개념을 정의하면 연민을 인간이 지니는 이타주의적 성향으로 긍정적 관점에서 보고 있는 학자들의 연구가 있다. 먼저 에르하르트의 연구를 보면 그는 연민과 강박관념을 구분하고 연민은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심리로서 강박관념적 현상과는 구별됨은 물론, 모든 사람에게서 보편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원리라고 주장했다. 팔리의 연구에서의 연민은 인지적, 지각적 차원을 초월하는 맥락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려는 심리적 성향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사랑’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행동양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괴로움을 제공하는 근원적인 기원을 가려내어 예방하게 하는 힘으로 이어지는 심리적 성향이나 특성을 포괄적으로 지칭하여 연민이라 하였다.연민에 관한 기독교교육은 단순한 지식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의 인지적 능력에 따라 연민에 관한 교육내용을 재편성해야 하며 다음 단계로 정서적 차원의 학습능력과 연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구체적인 행동양식의 표출을 지향해야 할 필요가 있다.5. 아동기 종교심리와 기독교교육아동기의 종교적 개념을 라이트와 코프의 연구로 살펴보면 아동은 하나님을 돌보아 주는 존재→특정 질서에 따라 활동하는 존재→영적인 존재→신앙공동체에서 습득한 하나님 개념으로 점차 바뀌어 간다. 유사하지만 더 광범위한 연구를 한 비아넬로는 인간으로서의 하나님→특별한 인간으로서의 하나님→영으로서 인식되기 시작하는 하나님→영으로서의 하나님으로 바뀌어간다고 보았다. 아동기의 내재적 정의 개념은 피아제는 연령의 증가에 따라 상대적으로 감소된다고 보았지만 비아넬로는 내재적 정의에 관한 아동들의 신념 형성에 영향을 주는 학습환경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기도에 대한 개념도 연령이 증가될수록 감소되는 현상을 보였다.아동의 인지능력과 성서이해 사이의 상관관계를 알아보니 내재적 종교적 성향(종교 본질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기독교교육과 해석학1. 기독교교육에의 해석학적 접근기독교교육의 현장에서 전통적으로 의존해 온 교수-학습 과정에 관한 비판적 논의가 70년대 중반 이후 진행되고 있다.첫째, 지금까지 기독교교육의 현장에서 강조해 온 교육 형태란 주로 강의나 종교 수업과 같은 교수-학습 과정을 통해 성서의 내용을 전달하고 소개하며, 그를 듣는 학습자들로 하여금 그 내용을 수용하도록 설득하는 소위 전수의 기능만을 지나치게 중시해 왔다.둘째, 전통적인 교수-학습 형태를 비판하는 또 다른 하나의 입장은 전형적인 교수 방법이 지나치게 서술적이며 지시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기에 현대사회 속에서 생겨나는 여러 형태의 갈등 문제를 성서의 내용과 충분히 연결시켜 해결하도록 학습자들을 격려하지 못하고 있음을 비판하는 것이다.기독교교육의 교수-학습 과정을 재조명하려는 연구가 지난 20여년간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는데, 그같은 연구들로부터 제시된 교육 모델들은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첫째, 학교 교육형태를 모방한 교회교육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사회화 혹은 문화화 과정을 강조하는 신앙공동체 학습 이론둘째, 인간의 인지, 정서, 도덕 판단의 발달 단계에 관한 발달심리학적 이론을 근거로 3차원적-지적, 신뢰적, 행동적 차원-신앙 발달을강조하는 교육 모형셋째, 기독교인의 구체적인 행동 양식의 수정을 위한 교수-학습 과정을 사회과학적 입장에서 제시한 종교 수업의 모형넷째, 신앙의 실천적 차원을 가장 중시하면서 현사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시키려 하는 해방교육의 모형다섯째, 학습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 자신의 경험을 변증법적으로 연결시키면서 해석하게 하는 해석학적 교육 모델이 그것이다.2. 해석학적 접근의 사상적 배경(1)인식론적 방법으로서의 해석학슐라이에르마허에 의해, 지엽적인 해석을 추구하던 학문으로부터 보편적인 해석을 추구하는 학문으로, 또한 번역과 주석만을 시도하던 학문으로부터 이해 의 학문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2)존재론적 철학으로서의 해석학해석자 자신이 과거에 쓰여진 문장이나 구분을 접하면서 얻게 되는 현재적 삶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책임성을 찾아내는 노력을 의미한다.(3)비판적 성찰로서의 해석학이데올로기적 허구성의 노출이라는 맥락에서 종래 옳다고 간주되어 온 전통 의 가치와 진실성을 파헤쳐 보려 한다. 특히 관념적이며 이론적인 지식에 근거하여 옳다고 전제되어 왔던 진리의 진위 여부를 실천적 지식의 입장에서 살펴보면서, 현실과 실재에 대한 왜곡된 의식이 왜 생겨났는지를 밝히려는 것이 이 입장의 특징이다.3. 해석학적 접근의 신학적 배경(1)수정주의신학의 출현이 신학은 신정통주의 신학에서 강조해 온 성서 의 권위와 자유주의신학에서 중시했던 힌간의 경험 모두를 함께 연결시키려는 특징을 지닌다.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과거 로부터 전해 내려온 성서 및 기독교의 전통과 현재 인간들의 경험, 그 둘을 함께 중시하면서 그 둘 사이의 비판적 상관관계를 강조하는 점이다.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전통이 현재에 주는 의미를 밝혀 내는 해석학적 능력과 작업이 우선적으로 요청된다는 것이다. 수정주의 신학은 그 주요 연구 방법으로서 해석학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2)수정주의신학의 기본 전제첫째, 신학연구의 두 가지 주요 자료는 기독교적 문헌과 인간의 공통적인 경험, 언어이다.둘째, 신학의 과제란 위 두 가지 주요 자료를 탐구한 각각의 연구 결과에 대한 비판적 상관관계를 포함해야 한다.셋째, 인간의 공통적인 경험과 언어 를 탐구하는 주요 방법은 일상적, 학문적인 경험과 언어 속에서 보여지는 종교적 차원을 현상학적으로 보는 방법이다.넷째, 기독교적 전통을 탐구하는 주요 방법은 성서에 관한 역사적이며 해석학적인 탐구라고 묘사될 수 있다.다섯째, 기독교의 문헌과 인간의 공통적인 경험, 그 둘의 의미에 관한 진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초월적인, 혹은 형이상학적인 형태의 성찰이 요청된다.4. 해석학적 접근의 특징첫째, 인간 경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지식을 기독교교육 모형 개발을 위한 필수적 구성 요소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둘째, 미래지향적이라는 점이다. 책임성있는 신앙인으로서의 행동을 통해 좀 더 하나님의 뜻에 가까운 미래를 만들어감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느끼게 하고, 이를 위해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 실천적 행사를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That is the message of this report, throughout which the pattern of pairing appears not because it has been artificially superimposed but because this was our discovery of what is given and required.In the biblical and theological foundations of our koinonia in worship we have identified, in place of a haphazard scattering of unrelated stones, building blocks fitting together, "mutually re-interpretive juxtapositions, roots in word and sacrament held together" (paragraph 4, below). Building on this are "characteristic pairings" (10) which help to clarify things that have divided us when they should have united us in faith and practice - such as baptism and the eucharist. So we see koinonia which is "renewed and enlivened" (19) both by expressions of perceived truth and the experience of praying together and using common worship resources - the process of reconciliation through the healing of memories. The gospel is then related to life, transforming cultural components by integrating t, taking care over "dynamic equivalence" (37).Such "pairs" of experience continuously reflect upon each other like colours in the rainbow, belonging together in a pattern. When, therefore, we come finally to note the relationship of our koinonia in worship to the agenda of Faith and Order we are suddenly surprised by the obvious, like the rainbow in the sky, as if it were conceivable that faith and order could ever have been studied independently of our worshipping together (45). So we dare to suggest some fresh perspectives on the totality of faith and order, as if, having seen the glory of the promise of God, we cannot help but share what we have experienced.Was not this, put another way, what Mother Julian discovered as she prayed and then offered the fruits of her experience to others? As freely as we have received from the gracious hand of God, we humbly offer to the end that our experience at prayer may issue in our oneness in the Lord that we live for him in all things.이것의 메세지인 서 한쌍는 것의 어느쪽 패턴은 나타난다 왜냐하면 인위적으로 그것은 superimposed이었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얻는다 그리고 필수의 우리들의 발견이었기 때문에.예배 우리들안에 우리들의 koinonia의 성경의 그리고 신학의 창립들안에 동일한 것으로 간주했다 , 우연대신에 흩어져 있는 관계가 없는 돌들 , 건물은 다같이 적당한 것을 방해한다 , " 서로 re-interpretive 나란히 놓기들 , 단어와 성례안에 뿌리들은 다같이 붙잡았다 " ( 단락 4 , 의 아래 ).이것에 건물은 이다 " pairings을 하는 특성 " ( 10 ) 그들이 신뢰(신념)과 연습안에 연합한 우리들을 가지고 있어야 할 때 분할된 우리들을 가지고 있는 어느쪽 분명하게 하가는 것 일을 도와주고 있다는 것 - 세례와 성체성사와 같은.그래서 우리들은 인 koinonia을 보고 있다 " 회복했다 그리고 활기차게 했다 " ( 19 ) 다같이 양쪽 표현들 지각했던 진실과 경험에 의해서 기도하는 것 그리고 보통의 예배를 우리들는 것 재원 - 화해의 과도 낫게하는 메모리들.그때 그 복음은 생활과 관계가 있다 , 예배안에 그들을 integrating에 의해서 문화적 구성 요소들을 변압하는 것 , 취하는 것은 걱정한다 " 동적인 등가 " ( 37 ).그런 " 쌍 " 끊임없이 경험은 무지개안에 칼라들을 좋아한다 서로 곰곰이 생각한다 , 패턴안에 다같이 소지품.언제 , 그러므로 , 우리들은 돌연 명백한 것을 놀랐다 최후로 우리들의 koinonia의 관계를 기록하는 것 예배안에 협의사항에게 신뢰(신념)과 주문 우리들에게 오고 있다 , 하늘에서 무지개를 좋아한다 , 마치 생각할 수 있는 언젠가 신뢰(신념)과 주문이 다같이 독립적으로 우리들의 예배는 것을 공부했다 이었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 45 ).그래서 우리들은 신뢰(신념)과 주문의 총계에 약간의 신선한 원근법들을 제안하는 것에 도전한다 , 마치 , 신의 약속한다는 것의 봤다는 것 번영 , 우리들은 도울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들이 경험했던 것을 , 또다른것 길을 놓다 , 무엇 어머니 Julian은 그녀가 다른 것에게 그녀의 경험의 과일들을 그리고 그때 제공했다는 것을 기도했기 때문에 발견했습니까 ? 우리들이 신의 자비로우신 손으로 부터 받았기 때문에 자유롭게 , 겸손하게 우리들은 끝에게 기도하는 사람에서 우리들의 경험이 논점 우리들의 단일성안에 군주 저 우리들 을 목적으로 살다안에 그 전부 일을 기원하는 제공한다.1.Blessed be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By his great mercy he has given us a new birth into a living hope through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from the dead (1 Peter 1:3).Blessed be God's great love which has already given to us the holy koinonia for which we pray through the one baptism into Christ Jesus, which continually founds and forms all the churches.1 Beyond our expectation, God has given us that koinonia as we all, together, being "buried with Christ by baptism into death," are raised with him day after day "by the glory of the Father, so we too might walk in newness of life" (Romans 6:4). That koinonia has been given to us in the common life of the believing community, which is empowered with many gifts by the Holy Spirit, which eats and drinks theon" of Christ, and which shows forth a foretaste of the communion of the whole creation with God, a foretaste of all peoples reconciled to God and to each other through the cross and resurrection of Jesus Christ.2 The gift we have received is also our calling and task. The koinonia we seek between and within the churches is a koinonia in and through Jesus Christ. It is a participation in the grace and eternal life of God for the sake of the life and salvation of the world.3 "God is faithful, by whom you were called into the fellowship of his Son, Jesus Christ our Lord" (1 Corinthians 1:9).1.우리들의 군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이다는 것 신과 아버지 ! 우리들 새로운 탄생을 그의 큰 행운 그에 의해서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죽은 바라고 있다 살아있는 ( 1은 1:3다한다 ).신성한 이다는 것 신의 큰 사랑한다는 것 그리스도 예수의 안으로 하나의 세례을 통해서 기도한다 어느쪽 우리들을 위해서 우리에게 신성한 koinonia을 이미 주었던 것 , 끊임없이 찾았다 그리고 우리들의 기대을 넘어서 폼들 모든 churches.1 , 신은 우리들 모두처럼 우리들 저 koinonia을 주었다 , 다같이 , 이기 때문에 " 죽음의 안으로 세례에 의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파묻는다 , " 매일 그와 함께 들어올렸다 " 번영에 의해서 아버지 , 그래서 역시 우리들은 새로운 것안에 생활걸어가는 것을 해도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