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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여행지 보고서: 서안, 계림, 운남
    중국여행지 보고서서안, 계림, 운남서안(시안) 실크로드서안에서 두한까지 잇는 길을 실크로드라 한다. 장안이라는 옛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 서안은 중국 산시성의 성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9,983km2, 행정구분은 8구 5현으로 나뉘어져 있다. 중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인구는 약 8백만에 달한다.서안은 중국이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약 1,400년동안 중국역대 11대 왕조의 도읍지로 중국의 정치와 문화 사상의 중심지였다. 그리고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이기도 하다. 전안의 장군인 장건이 십여년에 걸쳐 개척한 실크로드는 13세기 바닷길이 열리기 전까지 무려 2000년 넘게 존재해온 동서 교류의 통로였다.실크로드라는 호칭은 20세기 독일에 한 지리학자가 처음으로 부르면서 일반화 된 것이다. 서안은 사대 문명의 중심지로 꼽히고 있으며 중국의 3000년역사를 보려면 서안으로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 이다.현재의 서안성은 명나라 때 장안성의 기초 위에 새로 건립한 것이다. 현재의 서안성은 동서남북 네 개의당나라 시절 서안은 인구 백만여 명이 사는 세계 최대의 도시이자 각국의 무역 상인들과 문물이 모이는 국제 도시였다. 서안의 실크로드에 위치한 많은 관광지와 중국의 유산 중 진시황릉, 회족거리, 지아위관, 그리고 둔황에 대해 소개해보려 한다.진시황릉장안을 도읍으로 흥망을 거듭했던 11대 왕조 중 가장 유명한 황제는 진나라를 건설한 진시황제 일 것이다. 서안에서 40분거리에 있는 진시황릉(진시황제의 무덤)은 그의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곳이다. 진시황은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한 최초의 황제로,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한 인물이다. 진시황릉은 무려 36년에 걸쳐 70만명을 동원해 건설한 능묘(왕의 무덤)로 병마용갱에서 1.5km떨어진곳에있다. 진시황릉은 개인의 무덤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알려져 있는데 진시황릉 자체는 아직 완전히 발굴 조차되지 않았다. 전체를 모두 발굴하려면 50년 넘게 걸리는 규모라고 한다.진시황릉 병마용은 진시황릉 동쪽에 위 진나라 군대의 진영을 그래도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병마용 제 1호갱 가장 넓은 규모이자 최초로 발견된 곳. 발견된 병마용만 6000여개. 모두 7곳이 발굴 되었다. 1호갱은 좌군 2호갱은 우군 3호갱은 지휘부, 아직 발굴되지 않은 4호갱은 지원병사로 구성되었는데 진시황릉 전체구조가 다른 고대군대 같이 좌.중.우 삼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제 2,3호갱은 1호보다 작고 훼손이 심한 상태지만 채색된 병마용이 발견된 곳이다. 이는 당시 군인들이 입던 군복의 색깔과 채색기술의 수준을 나타내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2,3호갱은 1호갱보다 사실적 표현이 뛰어났다. 신발 머리 묶는 모양 손톱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가 구체적이었다.회족거리서안성 서문옆에 있는 회족거리는 서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볼거리이다. 이곳은 옛날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서안을 드나들던 회족들이 모여 사는 야(夜)시장이다. 그 당시에는 세계각국에서 들어오는 물건들이 가득하고 이국적인 향기가 넘쳐났다고 한다. 회족만의 문화가 보존되어 있어 음식도 일반적인 중국음식과는 다르다.서안에서 110km떨어진곳에 화산(華山)이 있다. 화산은 중국 오학중 서쪽의 산으로 장안 팔경 중 제 1경으로 뽑힌다. 고대의 황제들이 화산의 도교사원에 참배를 시작하면서 도교의 성지로 자리를 잡았다. 화산은 평균 해발 2000m가 넘는 다섯 개의 봉우리가 연결되어 있고 화산은 가파른 암벽으로 되어있다.서역으로 통하는 문, 지아위관지아위관은 하성회랑이라는 란저우에서 둔황까지의 1000km에 달하는 길 중간에 위치한 수많은 오아시스 도시 중 하나이다.지아위관(오아시스 도시)은 만리장서에 서쪽에 위치한 관문이다. 2000년전부터 이곳은 중국의 교통군사요청지 였다. 한나라 때는 옥문석장 그 이후는 천문관 등 각 시대마다 중요한 관문으로 여겨졌다. 지금의 지아위관은 1372년 명나라 때 세운 관문이다. 높이 약 11m 두께 약 8m의 벽으로 쌓인 외벽의 길이는 1.2 km. 외벽 안은 다시 내벽과 성어가는 유일한 관문역할을 한다. 만리장성 서쪽의 시작점인 제1돈. 북경의 만리장성과는 달리 만리장성의 서쪽 시작점임 이곳은 흙으로 빚어져 방어 역할보다는 경계선 역할을 하는 듯하다.실크로드의 보석, 둔황실크로드는 불교와, 음식 도자기 등 우리 문화와 직접적이고 밀접한 관계를 가진 길이다. 상인들은 길이 워낙 멀다 보니 시안이나 로마까지 가지 않고 대부분 둔황에 모여서 거래를 했다고 한다. 남북으로 20km 동서로 약 40km에 이르는 모래언덕, 명사산. 명사산은 타칼라마칸 사막에서 불어온 바람에 모래가 실려와 수천년동안 쌓여 평원분지에 산처럼 만들어진 곳이라 한다월아천은 호수의 생김새가 초승달을 닮아 월아천이라 부른다. 수 천년 동안 마른 적이 없다고 하지만 지금은 수로가 막혀 인위적으로 물을 채운다고 한다. 월아천은 도교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막고굴은 실크로드의 꽃이라 불리며 명사산의 남쪽 끝에 위치해있다. 사암 절벽으로 만들어진 막고굴은 366년부터 천여년동안 승려, 조각가, 화가, 석공등 수많은 이들이 하나 둘씩 파서 만든 것이다. 막고굴의 벽화는 위진 남북조시대 부터 원나라 때까지 제작된 것으로 시대에 따라 변하는 중국의 불교미술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예술적 가치가 아주 뛰어나다.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사람들의 생활과 실크로드의 긴 역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계림 (구이린)계림은 중국남쪽에 위치하며 베트남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은 약 4천 5백만 정도인데 장족, 한족, 묘족, 모한족 등 다양한 민족으로 형성되어 있다.유명한 관광지로는 푸보산과 황산이 대표적이다.푸보산푸보산은 계림 시내 중심으로 흐르는 리강 동쪽에 홀로 우뚝 솟은 높이 80m의 돌산이다. 푸보산의 전설로 내려지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마웬장군이 베트남을 향해 쏜 활이 날아가 천산의 구멍을 냈다고 한다. 이를 본 베트남의 장부가 무릎을 꿇고 철군했다 한다.푸보산의 입구에는 마웬장군이 칼을 시험하기 위해 잘랐다는 시범석이 있굴 안에는 당나라 시대 때부터 만들어진 수많은 석불상이 조각되어있다.황산황산은 중국 10대 관광지중 하나로 4개의 현과 5개의 시에 걸쳐있고 192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비취곡은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 와호장룡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정인곡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비취곡의 테마는 사랑이다. 계곡입구에서 사랑 ”애”자로 가득한 비석을 볼 수 있는데 모두 99개자로 쓰여져 있고 “백번째 글짜는 비취곡이 이끈다”고 한다.기송과 기암괴석 운해 등을 황산 4절(4개의 큰 볼거리)이라고 하는데 황산의 독특한 지형과 기후에서 자란 소나무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황산송이라 불리는 이곳의 소나무 들은 화강암(마그마가 식어서 만들어진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리는데 워낙 성장하기 힘든 곳이라 성장 속도가 매우 느리고 생긴 모양도 특이하다.배운정은 서해에서 황산의 기암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교속진열관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운남운남은 중국 남서부에 위치하며 남쪽으로 북회귀선이 통과한다. 면적은 394,100 km2로 중국 전체의 4.1%를 차지한다. 운남의 북쪽은 윈구이 고원의 일부를 이룬다. 북서부는 티베트 자치구, 북부는 쓰촨 성, 북동부는 구이저우 성, 동부는 광시 좡족 자치구와 접한다. 서쪽으로 미얀마, 남쪽으로 라오스, 남동쪽으로 베트남과 총 길이 4060km의 국경을 공유한다.대표적인 관광지로는 쏭찬린쓰, 따리, 리장등이 있다.쏭찬린쓰티벳트의 포탈라궁의 설계를 모방해 마들어 작은 포탈라라 불리는 쏭찬린쓰는 황토(皇土)로 쌓아올린 높은 벽과 검은 색 창틀이 운치를 더하고 황금빛 지붕이 아름다움을 보태는 곳으로 대자연과 고요 속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현재 이곳엔 500여명의 승려가 수행 중이다.사원을 감싸는 원통의 이름은 경통이라 한다. 경통 안에 경전이 들어가있어 경통을 한바퀴 돌리고 지나가면 한가지씩 전생에 지었던 죄가 소멸이 된다고 한다.따리따리는 운남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고 26개의 소수민족 중 바이족의 본거지이기도 천 제품(製品) 자란이다. 자란은 제작이 너무 힘들다 보니 사라지고 있는 문화 중의 하나이다. 바이족은 자란의 염색재료로 반란근이라는 식물을 쓰는데, 염색 재료로 뿐만 아니라 음식 차 약초로도 쓰인다고 한다.천이 잘 마른다음 앞서 꽤멘 선을 풀면 염색천이 만들어진다. 천에 새겨진 무늬는 단순히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바이족을 상징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물고기는 따리의 얼라이 호수를 상징하고 나비는 바이족을 상징한다고 한다.리장리장에 들어서면 촘촘히 모여있는 오래된 집들이 눈에 띈다. 송나라때 만들어진 이곳의 건물들은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곳은 중국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여행지로 미야자키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이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수많은 골목들 사이로 작은 시냇물이 흘러 리장을 동양의 베니스라고도 한다. 이곳에는 나시족을 비롯해 여러 소수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다.스린은 국가지정명승지중 하나로 그 면적만해도 350km2이다. 수억년의 시간이 만들어낸 스린은 풍경에 따라 일곱개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중 관광객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이 따스린 대석림 이다. 평균 15m에서 30m의 거대한 돌기둥들이 미로처럼 이 곳을 둘러싸고 면적이 7km나 되어 가이드 없이는 여행할 수 없다고 한다.스린 중 샤오스린은 작지만 섬세해 또 다른 느낌을 주는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따스린을 아버지의 숲, 샤오스린을 어머니의 숲으로 비유하곤 한다. 아스마라는 바위가 샤오스린에 있는데 마치 꽃바구니를 등에 짊어진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것의 전설은 아스마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헤어진 남자를 만나기 위해 바위로 환생한 것이라고 전해진다.스린이 자연이 만든 예술 작품이라 한다면 이 시산산림고원은 인간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이라 할수 있다. 인조로 만들어진 석굴 사이에는 천년 전 송나라 때 세워진 사찰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곳도 인위적으로 돌을 깎아 만든 곳이다. 석굴과 조각들은 22명의 수도승과 신자들이 25년동안 밧줄에 매달려 돌을 깎아 만든 곳
    인문/어학| 2013.06.16| 5페이지| 1,000원| 조회(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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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사상과 종교: 법가 사상과 묵가 사상
    중국의 사상과 종교법가(法家)사상과 묵가(墨家)사상목 차 TOC o "1-3" h z u Hyperlink l "_Toc358817293" I.서론 PAGEREF _Toc358817293 h 1 Hyperlink l "_Toc358817294" II.법가 사상 PAGEREF _Toc358817294 h 1 Hyperlink l "_Toc358817295" 1.법가 사상의 배경 PAGEREF _Toc358817295 h 1 Hyperlink l "_Toc358817296" 2.법가사상의 본질 PAGEREF _Toc358817296 h 2 Hyperlink l "_Toc358817297" 3.법가사상의 체계 PAGEREF _Toc358817297 h 3 Hyperlink l "_Toc358817298" 4.법가사상의 평가 PAGEREF _Toc358817298 h 3 Hyperlink l "_Toc358817299" III.묵가사상 PAGEREF _Toc358817299 h 4 Hyperlink l "_Toc358817300" 1.묵가사상의 배경 PAGEREF _Toc358817300 h 4 Hyperlink l "_Toc358817301" 2.묵가사상의 지배계층 비판 PAGEREF _Toc358817301 h 5 Hyperlink l "_Toc358817302" 3.묵가사상의 겸애 PAGEREF _Toc358817302 h 5 Hyperlink l "_Toc358817303" 4.묵가사상의 종교적 교리 PAGEREF _Toc358817303 h 6 Hyperlink l "_Toc358817304" IV.결론 PAGEREF _Toc358817304 h 7서론중국의 종교와 사상이 가장 왕성하게 전개된 시기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로, 주나라가 도읍을 호경에서 낙읍으로 옮긴 기원전 770년부터 BC 403년, 진(晉)나라의 대부(大夫) 한(韓), 위(魏), 조(趙) 삼씨가 진나라를 분할하여 제후로 독립한 기원전 4급제도 약화 등 많은 사회적, 정치적 변화가 발생하였다. 이에 따라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요구 되었고, 그에 따른 강력한 행정력을 요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정부는 더 복잡한 기능과 구조를 갖게 되었으며 강대국의 출연과 더불어 새로운 문제들에 직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공자 이래 여러 학자들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도덕, 윤리, 자연, 철학 등 제가 백가들이 제출한 해결방안은 대부분 현실적으로 실천하기엔 어려움이 있는 것들이었다. 군주들이 요한 것은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한 이상적인 정책이 아닌, 각국이 당면한 복잡하고 새로운 문제를 다룰 현실적이자 구체적인 대안들이었기 때문이다.당시 몇몇 인물 들은 필요한 시대적 요구에 부흥하여 현실에 직시하고 구체적이며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였는데 군주들은 이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였다. 이들의 대안이 효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이들을 군주들의 고문으로 만들었는데 이 고문들을 법술지사(法術之士) 라고 불렀다.법술지사의 대안은 다스리는 자의 편에 고도로 집중된 권력을 쥐도록 하는 것이었다. 다스리는 자가 성인 또는 군자가 될 필요는 없고 방법만 잘 운용한다면 평민도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이들은 통치자가 통치력을 완전히 장악하는 방법은 엄격한 법의 집행뿐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생각이 법가 사상 형성에 초기 단계였다.법가사상의 본질법가사상은 법가의 최고의 이론가로 알려진 한비(韓非)에 의해 완성 되었으며, 한비자 이전의 법가에는 법 (法), 술(術), 세(勢)의 세 가지의 사상 계통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 세 가지의 사상 계통의 세부적인 내용은 ‘2.3 법가사상의 체계’ 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겠다.한비는 순자(荀子)의 문하에서 공부하며 유가, 도가, 명가 등 여러 학파의 학문을 흡수하고 법, 술, 세의 사상계통을 정리하여 법가를 완성하게 된다. 순자(荀子)에게 학문을 배웠기 때문에 그의 법가 사상의 근본적인 이론은 순자가 주장한 ‘성악설(性惡說)’ 에 기반한다. 이에 덧붙여 그는정치에서 강제적인 것보다 감동과 감화를 줌으로써 순화시키는 방법으로 나아갔으며, 통치자가 도덕적 수양을 쌓을 때 백성은 그를 향하여 모일 것이라는 이상적인 본질을 추구했다. 이에 반해, 법가사상은 군주의 입장과 신하, 백성의 입장도 어긋나지 않을 수 없어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군주가 의지 할 수 있는 것은 엄격한 법과 질서, 형벌, 권모술수 등이라고 주장하였다.법가사상의 체계위에서 언급하였듯 법, 술, 세의 세 가지의 사상 계통이 한비자에 의해 정립되며 법가사상 이론이 완성되었다. 본 세 가지의 사상을 반전 시킨 사람들은 신도(愼到)와 신불해(申不害) 그리고 상앙(商鞅) 이었다.신도는 하늘의 다스림과 통하는 말인 ‘세’를 주장하였다. 세는 군주는 신성하고 위대한 자 임으로 감히 신하가 넘볼 수 없는 권력을 가졌다는 것을 개념으로 ‘군주권의 신성화’라는 맥락에 닿아 있다.에서는 ‘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현명한 군주가 절대적 권능을 가지고 다스리면 신하들이 감히 군주를 속이려 하지 않고 백성들이 기꺼이 봉사하게 되는데, 이것은 군주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군주의 권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술’은 한나라 재상이었던 신불해에 의해 주장되었다. ‘술’이란 꽤, 방법, 기술, 전술을 뜻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통치자가 신하를 제압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정치적 책략을 가리킨다. 또 ‘관료제’를 정비하여, 국왕 밑에 관료들을 귀속 시키고,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는 능력을 갖춤으로서 신하들이 국왕을 두렵게 만드는 기술이다. 간단히 말해서 ‘술’란 ‘세’를 이루기 위한 ‘기술’로 표현할 수 있다.마지막으로 ‘법’은 상앙에 의해 주장되었는데 군주가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한 기초로, 법에 의한 통치를 가리킨다. 구체적으로는 백성들 집을 집단으로 조직하여 여러 집이 공동으로 책임을 지도록 하였으며, 지위의 높낮이를 막론하고 상 줄 일은 반드시 상주고 벌줄 일은 반드시 벌을 줌으로써 법 적용에 대한 신뢰성과 공평성을 강조하였다. 이때 벌은 엄격하고 비중이 중대해야 하며 초기는 침략과 전쟁이 난무하는 격변의 시대였다. 전국시대에 들어서 겸병전쟁이 빈번하여 전국 중기에 이르러서는 춘추시기 147국의 제후국이 줄어들어 만승(萬乘)의 나라가 7, 천승의 나라가 5개가 되었다. 열국의 겸병과 군웅의 제패과정 중에 열강 사이에 끼어 있던 정(鄭), 노(魯), 위(衛), 채(蔡)와 같은 약소국들은 대국의 약육강식의 대상이 되었다. 묵자는 이러한 약소국들의 하층 민중들의 권익을 대표하겠다고 나섰고 이것이 묵가사상의 시발점이 되었다.묵자는 일찍이 공자의 제자문하에서 유가학설을 배웠으나 제자들이 공자정신에서 이탈해서 단순한 의례(儀禮)형식에 대한 전문가 및 장례 감독자로서 편안하게 안주함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의 철학과 교육체계를 발전시켜 공자사상에 반대하는 독창적인 묵가학파를 세웠으며, 그의 사상은 라는 저서에 잘 나타나고 있다묵자는 그의 저서인 에서 정치, 윤리, 철학사상에 대한 자신의 10가지 주요덕목을 언급하는데, 이는 상현(尙賢:어진 사람을 존경함)·상동(尙同:윗사람의 뜻에 동조함)·겸애(兼愛:보편적 인류애)·비공(非攻:침략 전쟁에 대한 비난)·절용(節用:근검 절약)·절장(節葬:장례의 간소화)·천지(天志:하늘의 뜻과 그에 따른 상벌)·명귀(明鬼:상벌을 내리는 귀신을 섬김)·비악(非樂:낭비적 활동인 음악에 대한 비난)·비명(非命:숙명론에 대한 반대) 등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가 말한 묵자사상의 핵심개념은 타인과 자신을 동등하게 여기는 것이다.묵가사상의 지배계층 비판묵자는 만민평등론 인민주권설 등을 주장한 민주적 정치 사상가였다. 그는”비록 농업이나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더라도 능력이 있으면 그들을 관직에 등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자유로운 신분이동을 옹호하고 신분 차별을 비판하였다.묵자 편에 보면,“천하의 백성들은 모두 물과 불과 독약을 가지고 서로 해롭게 하였으며 남는 힘이 있어도 서로 도와줄 주중 몰랐으며, 남는 재물이 썩어도 서로 나누어 가지지 않았으며 훌륭한 도를 지닌 사람들은 그 돈을 감추고 서로 가르치지 않기에 이르렀 존중한다면 사람들은 싸우기를 그칠 것이라고 했다.묵자의〈겸애편(兼愛)〉에 묵자가 말하기를,“남의 나라 보기를 내 나라와 같이 하고, 남의 집 보기를 내 집을 보는 것과 같이 하고, 남의 몸 보기를 제 몸 같이 하라 (墨子言 視人之國若視其國 視人之家若視其家 視人之身若視其身).”고 하였다. 간단히 말해 자신과 남을 구별하지 않고 남과 그 가족들을 자신과 자신의 가족처럼 사랑하라는 이타주의의 윤리에 일치하고 있다.또한 자기를 위하듯이 남을 위하고 제 나라를 위하듯이 남의 나라를 위한다면, 온 세상이 이로워져서 결국 그 이익이 자기에게 돌아온다는 점이 인간의 이성적 판단에 근거를 둔 공리주의적인 입장 또한 나타내고 있다.묵자는 겸애의 기준으로 세가지를 제시하였다. 이것을 ‘삼표(三表)’라고 한다. 그 첫째는 옛 성왕들이 했던 일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며, 둘째는 백성들이 눈과 귀로 직접 보고 들은 사실, 즉 그들이 참으로 원하는 것에 근원 하여야 하고, 셋째는 정책이나 제도를 통해 국가와 백성들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묵자는 겸애를 주장함과 동시에 비공(非功)을 주장 했는데, 춘추전국시기의 발생했던 수많은 전쟁들은 모두 불의의 전쟁이고 겸애의 원칙을 위배했다고 지적했다. 묵자는 타국에 대한 공격적 전쟁을 반대했지만, 방어적인 전쟁은 결코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것은 묵자가 일찍이 송국(宋國)을 도와 초국(楚國)의 진공을 막은 사례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묵가사상의 종교적 교리묵자는 만민평등론의 근원을 하늘의 뜻(天志)에 두는 천부인권론을 주장한다. 세상에는 하늘이 있고 하늘에는 뜻(天意)이 있으며, 인간은 이 하늘의 뜻에 복종해야 하고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평가하는 통일된 기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묵자는 생각했다. "우리가 마땅히 복종해야 하는 하늘의 뜻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세상의 모든 사람을 널리 사랑하는 것이다." 하늘은 '정의를 원하고 불의를 싫어할 뿐 아니라'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상이나 벌을T1
    인문/어학| 2013.06.16| 9페이지| 1,000원| 조회(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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