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영웅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면......2007년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는 한 가지 신드롬이 있었다. 바로 조선의 22대 왕인 ‘정조’ 신드롬이었는데, 정조를 주제로 한 각종 소설과 드라마, 영화들이 제작되었고 대중들에 의해 빠른 속도로 소비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왜 하필 정조 신드롬인가?’에 대해 정치, 사회, 역사적인 측면에서 많은 분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대에 와서 새롭게 그려진 정조는 기존의 수구적이고 보수적인 공신집단에게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고야 마는 ‘영웅’으로 그려졌다. 왕이 대신들의 의견에 가로막혀 자신의 뜻대로 정치를 하지 못하는 조선의 관료제사회와 이를 타파하고자 했던 정조. 그리고 대중들은 그러한 ‘영웅’의 모습에 열광했다.영화 ‘돼지의 왕’에서 표현되는 학급 내의 모습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나뉘어있다. ‘고기를 먹는 개’와 ‘잡아먹히기 위해 키워지는 돼지’로 묘사되는 전형적인 계급대립의 구도에서 돼지들은 자신들이 살이 찌워져 잡아먹히게 될 것이란 사실을 모른 체 현실에 안주한다.다른 돼지들이 개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무관심으로 일관한다.이러한 상황의 학급 내에서 ‘철이’라는 영웅이 등장한다. 철이는 돼지로 표현되는 학급 내 피지배층의 영웅이다. 그리고 종석과 경민은 이러한 철이의 등장에 자신도 모르게 철이를 따르게 된다.극 중 철이가 지배세력에게 대항하는 방법은 ‘칼’로 표현되는 폭력이다. 지배세력이 피지배세력을 억압하는 가장 큰 무기인 폭력을 자신이 더욱 압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지배세력에 대항한다. 그러나 그 폭력은 철이를 퇴학당하게 만든다. 철이는 ‘개’들과는 달랐다. ‘모범생’이란 타이틀이 없었던 것이다.퇴학당한 철이는 자신의 어머니의 눈물을 보며 경민과 종석에게 ‘자신은 더 이상 영웅이 될 생각이 없다’고 선언한다. 자살소동을 통해 학교에 복학을 하여 자신 역시 평범하게 학교를 다닐 것이라고 말한다. 이 때 경민과 종석이 느끼게 되는 충격. 자신이 처한 현실을 모두 해결해 줄 것 같았던 철이가 자신과 다르지 않은 보통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게 되는 허탈감. 이 허탈감은 급기야 종석이 옥상에서 철이를 밀어버리는 참사를 일으키게 한다.영화 ‘돼지의 왕’은 우리사회의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모순관계를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을 통해 표현하는 것 뿐 아니라, 그로인해 피지배층이 만들어내는 영웅의 허구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투쟁하기 보다는, 자신은 그저 현실에 안주하며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영웅을 기다리는 소시민적인 생각. 자신은 앞으로 나서지 못하면서 누군가 대신 앞장서주길 바라는 모습은 영화 속 남의 일에 무관심한 돼지의 모습과 유사하다. 2007년도에 불었던 ‘정조’ 열풍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생각할 수 있다.종석은 철이를 옥상에서 밀어 떨어뜨려 죽게 했고, 경민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 함구한다. 그렇게 억지로 만들어진 영웅은 두 사람의 인생을 전혀 바꿔놓지 못했다. 경민은 사업실패에 실패하고 아내를 죽였으며, 종석은 실패한 소설가로 대필작가를 하며 생계를 꾸려나간다. 경민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철이가 하지 못했던 것’을 해보이겠다며 옥상에서 뛰어내리지만 이는 돼지의 왕이 되기 위한 추락이 아니다. 단지 실패한 사업가의 자살일 뿐이다. 경민의 자살을 보며 종석은 절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