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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인, 가정과교회 독서리포트(요약) 평가C아쉬워요
    『혼인, 가정과 교회』 요약김홍전 지음1강 배우자 선택의 표준(창세기1:24-31)인생의 중대사인 혼인, 사람은 한평생을 살면서 몇 가지 중대사를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는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불가항력적으로 닥쳐오는 것들도 있고, 자기의 의사와 행동 여하로써 결정되는 것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치신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모든 염려를 맡기고 살라고 하신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해서 하라고 하신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맡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을 적극적으로 찾고 이행해 가야 한다.혼인 적령기에 있는 청년들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혼인에 대한 여러 가지 교훈을 바로 배우고, 그 터 위에 배우자를 선택하거나 혼인에 관계된 여러 가지 일들을 결정하고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만드시고, 거듭나게 하사 거듭나게 하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들어오게 하셨다는 것과 우리 각 사람은 그리스도적인 품성과 사명을 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혼인 적령기의 자녀를 둔 부모나 자녀는 혼인에 대한 뚜렷한 표준을 가져야 한다. 창세기를 통해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최초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의 형상을 따라 내 모양대로‘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라는 말을 쓰셨다는 것은 히브리어 문장에는 주어를 반드시 넣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동사의 어미를 변경시키면 자연히 주어도 표시되기 때문에 여기서 동사를 복수 제1인칭으로 만들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라고 하셨습니다.즉, 복수로 계시면서 동시에 단수이신 하나님을 증거하셨습니다. 당신의 존재 자체가 항상 복수형인 동시에 단수형이라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나타난 계시에 따르면 한 분이신 당신께서 세 분의 인격으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인격이라고도 하고 품위라고도 합니다. ‘한 분 안에서 세 인격으로 계시는 하나님’,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세 품위로 계시면서 또한 단수형으로 한 분이신 하나님’으로 표현할 수 있다.우리는 항상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제한적인 사고의 범주, 시간, 공간, 인과 관계라고 하는 그러한 선험적인 사고의 형식 가운데 한정되어 있다. 사람들은 선험적인 사고의 형식 중 가장 기초적인 범주의 하나로서 ‘수’를 듭니다. ‘수’라고 하는 논리 형식에 따라 항상 하나라든지 둘이라든지 그런 말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시공의 제한에서 벗어나셨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무소부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전체가 되십니다.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에게서 모든 것이 나오고 필경은 그분에게로 돌아간다. ‘만물이 주께로부터 나오고 주에게로 돌아가나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모든 수는 그분에게서 나왔고 그분에게로 돌아갑니다.부부 관계의 표준이 되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즉, 부부의 원형은 교회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교회를 부부의 원형이라고 했고, 부부가 교회의 원형이라고 하지 않았다. ‘교회는 부부와 같이 할 할 것이리나’고 가르치지 않고, ‘부부는 교회와 같이 할 것이니라’고 가르친 것이다. 에베소서 5장 22-24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언제든지 그 표준을 어디다 세우느냐 하면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이 아내는 남편을 대하라는 것입니다.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대해 하시는 모습이 남편이 아내에게 대해 해야할 전범으로 나타난다. 그러면서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과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고 성경은 아주 명료하게 가르칩니다.여기서 주의하고 넘어가야 할 단어는 바로 순종입니다. 내 자신이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뜻을 더욱 궁구하고 살피고, 그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식별항여, 우리가 알았을 때는 자진해서 즐겁게 성신님을 의지하여 순종해 나가는 것. 성경이 아내에게 가르치는 것은 자기 남편에게 굴종하라는 것이 ㅣ아니라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순종하되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순종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그 뜻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그것이 알려지면 그것이 과연 그런가 하고 확인하고, 그 다음에는 ‘다 같이 성신님을 의지해서 그리로 갑시다’하고 한 마음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방식입니다.어떤 사실이 주님의 뜻이라고 판단되고 확인되면 자기의 개성과 자기의 전체의 인격을 거기에 즐거이 바치고서 순종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도리입니다. 이와 같이 아내도 남편에게 그렇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먼저 생명나무가 있는 것을 명시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기 전에 생명나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익이라는 거룩한 법칙을 계시로 내리시기 전에 생명의 계시를 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법이 있었습니다. 선악과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선악과를 따 먹는 행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사람이 범하고 그리로 들어간 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선악과 금령,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또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러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아담은 목적 없이 그저 복된 현실을 즐기도록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지으신 다음에는 그와 언약을 맺으시는데, 그것도 그로 하여금 그 영광의 목표를 향해 발전해 가도록 하시려는 의도로 내신 것이었습니다.그러므로 정확한 하나님의 공의의 관점으로 볼 때, 만일 선악과를 먹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끝까지 잘 지켰다면 어떤 상을 받았을까? 우리가 힌트를 얻는 것은 생명과를 먹고 생명으로 말미암아서 그가 더 영화되었으리라는 것입니다.돕는 배필을 지으심. ‘우리’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되, 하나님이 우리 이시면서 또한 하나이신 것같이 사람들도 서로 우리라고 할 수 있으면서도 또한 나라고 할 수 있게 창조하셨다. 그러한 하나의 실재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부 창조의 신비가 나타납니다. 돕는 배필을 언제 창조하셨는냐? 아담이 피조함을 받고 사명을 받고 자기의 사명의 거룩한 길을 행하고 있을 때, 상당히 그 사명을 잘 수행하고 있을 때, 짐승들에게 이름을 다 주었을 때, 이성의 중요한 활동을 발휘한 다음에 아담의 배필을 창조하셨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한 결과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먹는 날에는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아담은 먹은 그날 당장 죽어서 장사 지낸 것은 아니었지만, 아담은 분명히 그날 죽었습니다. 그 후로도 930세나 더 살았지만, 참된 의미의 죽음은 그날 시작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과는 떨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아내의 영향력, 아담은 이렇게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시와 명령을 받고 사명을 받았는데 그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왜 아담을 돕기 위한 배필로 하와를 지으셨을까요? 갈빗대 하나를 갖다가 지으시되 갈빗대로 그냥 남겨두지 않으시고 인격자로 지으셨습니다. 영향력이 강하고 위대한 인격자로 지으셨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크게 찬사를 올리고 환희의 기쁜 소리를 외친 그 대상을 끌고서 영원한 죽음으로 들어갈 만큼 영향을 미친 하와는 큰 능력을 가진 돕는 배필로 만들어졌다.혼인 상대를 구할 때 기억해야 할 중요한 원칙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와를 만드실 때 원칙하에서 만드셨습니다. 표준, 기준이 있었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 내가 이 법을 주었다. 너는 이 금령을 지키고 늘 나와 관계를 가지고 살아라. 그것을 지킬 수 있도록 큰 힘을 주신 것입니다.2강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4장의 혼인의 도리
    독후감/창작| 2020.07.09| 5페이지| 1,000원| 조회(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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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론 논쟁과 칼케돈 공의회의 대하여 평가A+최고예요
    기독론 논쟁과 칼케돈 공의회■ 서론기독론과 기독론 논쟁기독론의 문제는 삼위일체론의 논쟁의 결과로 나온 셈이지만 원리적으로 보면 삼위일체론이 그리스도론에 대한 대답이다. 니케아 신조에서 결정된 최종적인 정식화는 아들이 아버지와 본질(실체)을 같이 한다면, 역사의 예수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를 낳았다. 니케아의 삼위일체론의 도그마는 어떻게 한계 없는 신적 본성이 동시에 하나의 실재적인 인간이 될 수 있겠는가의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이 물음에 대답을 제시하려는 노력은 3세기 이상에 걸쳐 기독론의 논쟁이 되었다.기독론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신은 (아버지로서, 로고스로서, 또는 성령으로서) 인간 예수를 사용해서 그에게 영감을 부어 그의 아들로서 받아들였다고 하는 주장이며 다른 하나는 신적 본질 (로고스 또는 영원한 아들)이 변화의 행위를 통해서 인간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니케아 신조는 동일본질론 (homoousious)의 관념을 가지고 전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영원한 아들의 신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오히려 역사적 예수의 인간성을 더욱 쉽게 강조하게 한다. 반신이라면 인간으로 변화할 수 있지만, 신 그 자체는 인간을 양자로 삼을 수 있을 뿐이다. 변화이론은 오리게네스주의적 사고 안에 있다. 오리게네스는 영원한 로고스는 아버지보다 못한 존재며, 로고스는 예수의 혼과 결합함으로써 영원히 역사적 예수의 특징을 가진다. 따라서 로고스는 예수의 육체를 빌려서 쉽게 역사적 존재로 변화할 수 있다. 삼위일체론의 논쟁에서는 동일본질론의 성질에 관하여 정의하지 않았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양자론으로도, 변화론으로도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이것은 긴 논쟁의 시작을 알리는 것 이였다.■ 본론칼케돈 공의회1) 배경네스토리우스와 키릴논쟁 이후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디옥 학파 사이에 진행된 장기간의 논쟁을 끝내지 못한 채 잠시 휴전하게 만들었다. 알렉산드리아 주교 키릴은 그리스도 위격의 철저한 단일성을 주장했다. 로고스가 인성을 옷처럼 취급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것을 인정하지 못하였다. 이후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키릴은 단성설에 입각하여 마리아의 칭호를 “하나님을 낳으신 분”으로 확정하였다. 네스토리우스는 이에 응수하였다. 이로 인해 기독교계는 심각한 분열의 위기에 처하였다. 그리하여 테오도시우스2세 안디옥학파와 알렉산드리아학파의 통합은 위하여 에베소공의회(433)를 통하여 양측의 연합을 독촉하였으나 분쟁을 해결하지 못했고 449년에 또다시 열렸으나 거기서 키릴루스 못지 않게 권력에 굶주린 후임자 디오스쿠루스는 자신의 수도자 무리와 함께 공의회 교부들을 폭행하고 안디옥학파의 주요 신학자들을 파면시켰다.하지만 곧 급변하게 된다. 450년 7월 데오도시우스 2세가 후사 없이 사망했다. 권력은 황제의 누이 풀케리아 (Pulcheria)에게로 넘어갔다. 그녀는 마르키안(Marcian)과 혼인했고 450년 8월 그를 동로마 황제로 선포했다. 그는 교회 권력에 맞서 교회에 대한 황제의 전통적 지배권을 다시 확립하기로 결심했다. 이로써 기독론 논쟁은 새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새 황제는 레오 1세에게 정권 이양을 알리고 그의 인준을 요청했다. 레오는 449년에 모인 에베소회를 “강도대회”로 선언하였고 이에 이기에 레오는 당연히 에베소회의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였다. 레오는 교황과 함께 최근의 에베소회의에서 행했던 일들에 대해서 되갚아 줄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지나치게 교황처럼 처신하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디오스쿠루스를 파면을 작정하고 곧바로 디오스쿠르스에 의해서 쫓겨난 감독들을 복직시키고 플라비안을 추종하였다가 살아남은 세력들을 사도들의 성당으로 모셨다. 콘스탄티노플의 새로운 감독은 레오의 ‘교서’를 지지한다고 공식 발표했으며, 여러 지방에서도 수도에서 행했던 것과 동일한 과정이 진행되었고 마지막으로 황제는 451년5월 새로운 종교 회의를 개최할 결심하고 소집을 명령하였다. 451년 9월 각처에서 모인 520명의 감독들이 회의 장소인 니케아로 모였다. 니케아에서 모여 진행되어야 할, 회의는 여러 강도회의’(449년)와 콘스탄티노플 회의(448년)의 회의록이 낭독, 논의되었고 이 과정에서 몇몇 감독들은 위협과 공포에 못이겨 억지로 승낙한 내용이라고 고백하였다. 이때 유티키스를 반대한 플라비안의 정통성을 확인했고, 디오스코루스를 정죄하였다. 자리에서 쫓겨나 유배당하게 되며 유배 기간 단성론자들의 추앙을 받으면서 죽었다.네 번째 회기부터 여섯 번째 회기까지는 새로운 신앙고백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어 토의 끝에 신앙고백을 채택하였다. 그것을 ‘칼케돈 신조’(Chalcedon Creed)라고 부른다. 이 신조는 한편으로 네스토리우스의 양성론을 배격하고 다른 한편으로 유티키스의 단성론을 반대하면서 433년의 평화안의 조문과, 키릴이 네스토리우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 레오의 교리서신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따와 종합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 중에서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한 인격 안에서 결코 혼합, 변함, 나뉨, 분리됨이 없이 연합되었다는 레오의 가르침이 칼케돈 신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신조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1.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거룩한 교부들을 따라 하나이신 (동일한)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신성에서 완전하며 인간성에도 (똑같이) 완전한 그분을 고백하는 사람을 가르치는 일에 동의한다.2. 주는 참 하느님이며 동시에 이성적인 혼과 인간적인 몸을 가진 참 사람이다.3. 신성에 따르며 아버지와 실체를 같이하는 분이며, 인간성에 따르면 우리와 실체를 같이하는 분이며, 죄를 떠나서는 모든 것이 우리와 같은 분이다.4. 신성에 따르면 모든 세대에 앞서 아버지에게서 낳고, 인간성에 따르면 그 뒤 세대에 우리를 위해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신의 어머니인 처녀 마리에게서 낳았다.5. 하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들), 주 다만 독생자로 낳은 분이며 두 가지 본성에서 알려지지만 혼합되지 않고 변화되지 않으며 분할되지 않고 분리되지 않는 분이다.6, 두 가지 본성의 구별은 통일에 의해서 결코 무너지지 않으며, 도리어 두 가지 본성의 조성(특성)은. 첫 번째 부분은 서론이다. 여기서는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확정된 신앙고백을 인용한다. 이것은 모든 오류에 대항하여 정통 신앙을 고백하기 위함이다.두 번째 부분은 상호 대립하는 두 가지 오류를 반박한다. 한 가지 오류는 거룩한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분을 평범한 인간으로 주장하는 것이고 (네스토리우스의 오류, 나누어지지도 갈라지지도 않음), 다른 오류는 두 본성을 혼합하고 그리스도의 신성이 고난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유티케스의 오류) 전자에 대해서 키릴루스의 서신을 통해 반박하고, 후자에 대해서는 레오1세가 플라비안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반박한다.세 번째 부분은 신앙고백이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앞 부분은 뒷 부분에 비해길다. 유일한 그리스도는 참 신이며 동시에 참 인간이다. 또한 “한 그리스도는 두 본성 안에 있다.” 뒷 부분에서 두 본성은 오직 한 인격을 이룬다는 것을 가르치고 이로써 분할되거나 누어지지 않는 그리스도의 일체성을 상기 시킨다.신조에서 볼 수 있듯이 칼케돈 회의의 핵심은 상반되는 입장을 적당히 혼합시킨 타협안이 아니라 상이한 신학적 전통들을 함께 수용하였다.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한 인격 안에서 혼합되지 않고, 변하지 않으며, 분할되지 않고, 분리되지도 않고, 한 인격 안에 연합되었다는 것에 있었다.4) 칼케돈 공의회 평가칼케돈 공의회의의 의미를 살펴봄에 있어 일부 학자들은 긍적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첫째로, 칼케돈 신조는 그때까지 논란이 되어왔던 아폴리나리우스주의, 네스토리우스주의, 유티키스주의와 단성론 문제를 해결하였다.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가 성부와 동일본질이며,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니케아 신조에서 고백되어왔던 전통을 재확인했다. 셋째로,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디옥 학파 사이에 논란이 되어왔던 동정녀 마리아를 데오토코스로 확정하였고,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혼합이 아닌 연합으로 규정하여 신성 또는 인성만 강조했던 극단을 피함으로써 그동안 진행된 기독론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는 칼케돈 신조에 대한 평가를 함에 있어 피상적인 느낌을 받게된다. 하르낙의 표현을 빌리고자 한다.“그것들은 통해 모든 것을 말했다고 하는 밍밍하고 소극적인 네 가지 정의(뒤섞이지도 않고 등)는 따근하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그것들은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다리(신앙인에겐 믿음)를 이슬람 신봉자들이 붙들고 언젠가 낙원에 들어갈 수 있기를 희망하는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선으로 만들어버렸다”또한 칼케돈 공의회에서 만들어진 기독론의 정식(참인간이며 참 하나님)은 비잔틴 교회와 서방교회 모두에게 교의학적 토대를 제공했으나 결국 인간의 이성으로 꿰뚫어볼 수 없는 신비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정식이 만들어졌고 분쟁은 오히려 지속하게 만들었다. 기독론을 둘러싼 논쟁은 비잔틴 제국에서나 서방에서나 그 후에도 몇 세기간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문제는 정치, 외교와도 깊이 뒤얽히게 되었고 이후482- 519년 사이 동로마와 서로간의 최초의 공식적 교회분열이 발생하였다. (서방은 칼케돈 신조를 간직하고 있었지만. 동방은 그것을 단성론적으로 해석하려 하였다.) 이후 칼케돈을 부인하는 교회들은 지금도 동방의 비잔틴 정교회뿐 아니라 서방의 로마교회와도 분리되어 있다.■ 결론칼케돈 공의회의 시작은 신학적인 문제에 대한 갈등과 교황과 황제의 갈등으로 인하여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기독론의 문제는 기독론자체의 문제가 아닌 권력의 문제와 결부되었다. 기독교는 이후 분열과 이단박해로 뒤엉키게 되었고 자신의 본질의 왜곡 속에서 박해받던 소수집단에서 박해하는 다수의 집단으로 변해버렸음을 느낀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기독교는 가지각색의 모양들로 분열되어 상대를 인정하지 못하며 서로를 향해 으르렁 거리고 있다. 발제자는 현재의 분열의 모습의 한 원인으로 공의회들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한다. 또한 과연 기독교를 규정하는 것이 기독론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독론의 논쟁을 칼케돈공의회 이전부터 시작되었고 판넨베르크와 칼바르트의 기독론이 다르듯이 지금까지도 기독론에 대다.
    인문/어학| 2020.03.19| 8페이지| 2,000원| 조회(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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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 켈러의 왕의 십자가 책 요약 및 서평
    위대하신 왕의 가장 고귀한 선택-예배학- 『KING's Cross, 왕의 십자가』팀 켈러의 왕의 십자가■ 저자소개저자 팀 켈러는 「뉴욕타임스」선정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뉴스위크」지로부터 "21세기의 C. S. 루이스"라는 찬사를 받은 팀 켈러 목사는 현재 뉴욕 맨해튼 리디머장로교회 담임 목사인 그는 달라스 윌라드가 '이 시대에 가장 주목할 만한 목회자'라고 극찬했을 만큼 미국 기독교 지도자들이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설교자로 인정받고 있다.이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새롭고도 깊이 있게 통찰한 책으로, 영생으로 가는 길뿐 아니라 이 세상의 역사와 목적까지 발견하게 한다. 이 땅에 살았던 사람 중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인물, 예수! 팀 켈러 목사는 이 책을 통해 예수님이 왕이시되 역사상 가장 큰 짐을 지셔야 했던 왕이라는 점을 설명해준다. 마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삶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면서, 예수님의 이야기가 우주적이고 역사적인 동시에 개인적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그래서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라고 촉구한다. 신실한 크리스천이든 회의론자든 누구나 읽으면 예수님과 기독교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각자에게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길 것이다. 라고 소개한다.■ 책 요약저자는 본 저서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영국 런던에 있는 '킹스크로스(왕의 십자가)' 기차역을 아는가? 「해리 포터」책을 통해 유명해진 역이다. 이 역 이름이 예수님의 의미를 너무도 완벽하게 담고 있어서 이 책의 제목으로 빌려 사용하였다. 마가복음이 이 책의 목적과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데는 또 한가지 이유가 있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삶을 정확히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제시한다. 하나는 만왕의 왕이라는 예수님의 정체성이고, 다른 하나는 그분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목적이다. 이 책의 구조는 제목 그대로다. 왕과 십자가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부는 마가복음의 주요 부분을 분석한 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책은 내용을 선별해서 싣는다. 4복음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21:25)라는 말로 자신의 복음서를 마무리 했다. 나는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삶, 특히 그분의 실체나 목적을 가장 잘 담고 있다고 생각되는 텍스트만 추렸다. 그러다 보니 잘 알려진 몇몇 구절은 이 책에서 상세히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 책을 읽는 사이에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 점점 더 흥미가 생길 것이라 믿는다. 예측 불가하지만 믿을 만한 분, 온유하시지만 파워풀한 분, 무한한 권위와 겸손을 동시에 지니신 분, 인간이자 신이신 분이다. 당신 나름대로도 그분의 삶의 의미를 깊이 고민해 보기 바란다.예수님의 삶을 조사하고 싶은가? 예수님이 실제로 이 땅에 살았는지, 또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는지 확인하고 싶은가? 부활절 이야기가 역사적인 진실을 조금이라도 담고 있는지, 아니면 역사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지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야기를 담은 역사적 문건인 복음서를 살펴보아야 한다. 각 복음서는 저자인 마태와 마가, 누가, 요한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다. 최근의 '예수 장르'의 대부분은 복음서가 예수님의 생애에 관한 믿을 만한 기록인지를 놓고 논쟁하는 내용이다. 2백 년 전부터 일부 학자들은 복음서가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전설적인 요소들이 가미된 구전일 뿐이며, 예수님 당시로부터 백 년 이상 지난 후에야 쓰여졌다고 주장했다. 이런 예수님의 진정한 실체를 알 수 없다는 주장은 많은 동조를 얻었다.본 저서는 특별히 마가복음을 택하였는가? 나는 예수님의 삶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4복음서를 다 조사하는 것보다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 예수님의 실제 말씀과 행동에 초첨을 맞춘 이야기만을 다루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마가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삶을 조명하고자 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마가복음은 밋밋한 역사책처럼 읽히지 않는다. 마가복음은 현재 시제로 쓰였고, '즉시'같은 단어를 자주 사용할 만큼 책 전체가 행동으로 가득하다. 마가복음은 숨 막히는 속도감을 자랑하는 책이다. 이 점은 예수님에 관한 중요한 사실 하나를 말해 준다. 예수님은 한낱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라 오늘 우리와 깊은 연관이 있는 살아 있는 현실이다.이 책에서 우리는 복음서 기자 마가를 따라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가 본다. 생생한 인물 묘사, 놀랍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한 반전, 악의 면전에서 극적으로 거둔 기적적이고도 우주적인 승리, 예수님의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그것이 다인가? 복음은 여느 해피엔딩처럼 잠시 기분만 좋게 하는 이야기일 뿐인가? 아니다. 복음은 그 이상이다. 톨킨은 위 에세이의 후기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사실 때문에 복음 이야기는 단순히 좋은 읽을 거리가 아니다. 복음은 인생을 변화시키는 힘을 품고 있다. 잠시 누군가가 고대 도시 안디옥에서 노예들에게 이렇게 설교한다고 하자, "부활은 큰 용기를 주는 이야기입니다. 선이 악을 이긴다는 내용을 담고 있죠. 그러니까 서로에게 잘해 주십시오." 과연 이 말을 듣고 "이럴 수가! 지독한 불행과 압제로 얼룩진 내 인생을 승리와 소망의 삶으로 바꿔 줄 메시지야!"라고 말할 노예가 한 명이라도 있을까? 물론 없다. 바울은 지중해의 도시들을 돌며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그분을 보고 만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진짜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이 복음을 믿으면 지금 당장 그 나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다. 복음이 이야기는 단순히 감정만 자극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현실 도피를 제안하는 이야기도 아니다.복음은 악과 상실을 더없이 진지하게 다룬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는 구원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 외에는 그 무엇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하지만 역사적 부활이라는 '해피엔딩'은 심지어 십자가의 슬픔까지 뒤덮을 만큼 강력하다. 그래서 부활을 믿는 사람은 인생의 깊은 슬픔과 상실을 당당히 마주할 수 있다. 복음을 믿지 않아도 희망 섞인 이야기들을 읽고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지만 그래 봐야 잠시뿐이다. 내심 인생의 현실은 그런 이야기와 다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음을 믿는 사람은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해피엔딩'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기적적인 은혜가 우리의 슬픔, 심지어 '슬픈 대단원'까지도 삼켜 버릴 것이다. 복음은 패배에서 나오는 승리, 악함에서 나오는 강함, 죽음에서 나오는 생명, 버림에서 나오는 구원을 보여 주는 궁극의 이야기다. 복음은 진짜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이 정말 그 복음대로 될 수 있다는 소망이 있다.
    독후감/창작| 2020.03.19| 4페이지| 1,000원| 조회(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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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고보서의 역사적 배경과 신학적 특징(레포트)
    「야고보서의 역사적 배경과 신학적 특징에 대해 서술하시오」□ 야고보서의 역사적 배경야고보서는 여러 부분에 나타난 성경적 배경과 많은 학자들의 주장으로 추론해본다면 주후 45-48년경으로 신약성경 중 제일 먼저 쓰여졌던 책으로 보인다. 근거는 2:2절에서 “교회” 대신에 “회당”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과 주후 50년 이후에 교회 안에서 일어난 교리에 대한 문제들, 예를 들어 예수의 부활, 재림, 신성, 영지주의, 신비주의, 구원의 방편으로서의 할례 등이 본서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 서신을 그 이후에 쓰여진 바울의 로마서에 대한 논쟁적 서신으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반대로 로마서를 야고보서에 대한 반박 서신으로 간주하기도 어렵다. 바울과 야고보의 관계 및 바울의 야고보에 대한 태도로 미루어 볼 때, 바울이 야고보를 대단히 존경했던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야고보가 이 야고보서를 기록한 목적이 1장 1절에 나와 있듯이 “흩어져 있는 열두지파”에게 보내기 위함을 볼 수 있다. “12지파”라 지칭한 이 말은 유대인 전체를 지적하면서, 또한 디아스포라, 즉 팔레스타인을 떠나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을 지명한 것이다. 이 무렵 유대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다. 헤롯왕은 아우구스투스의 신뢰를 받아 주전 37년에 이 지역의 왕으로 임명되며, 예루살렘을 자신의 거주지와 통치 장소로 정한다. 모든 로마 총독들은 힘과 권력으로 통치하였지만, 헤롯대왕은 간혹 종교지도자들에게 유화책을 써서 평화를 유지하려고 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엄청난 예루살렘 성전의 개축을 말할 수 있는데, 요세푸스는 헤롯의 치적 중 가장 크고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묘사한다. 하지만 대부분 유대인들은 로마의 통치에 분노하고 과거의 자유와 영화를 갈망하면서 반란과 폭동이 계속되자 결국 디도황제는 유대반란을 진압하고 주후 70년에 예루살렘과 성전은 파괴되고 만다.또한 1세기의 유대, 즉 팔레스타인 사회 속의 일련의 요소들로 불법적이고, 타협적인 위치, 그리고 부유한 지주들과 종교지도자들의 착취와 기근 때문에 시달리는 유대인들은 비참할 만큼 가난한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적인 핍박의 상황 아래 놓여 있었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가해진 것이다. 사람들은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되는데, 심지어는 베니게, 구브로, 안디옥까지 이르게 된다(행11:19). 이러한 핍박의 상황은 예루살렘 회의와 바울의 마지막 예루살렘 방문까지 계속되고 있었다고 사도행전은 증거하고 있다.이러한 정치적으로 경제적, 그리고 종교적으로 극한 박해를 받아 주님을 버리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가거나, 신앙을 구실로 방종한 삶을 살며, 말의 범죄와 생활의 위선된 삶을 사는 사람들과 겸손이 넘치는 사람들이지만 억압당하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야고보는 지혜를 사랑하며, 기도의 신앙을 가지고 현세적인 선과 영적인 선의 양면성을 중요시 생각하고 또한 실천하는 삶을 권면한다. 더불어 신앙에서 솟아나는 근원적인 힘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난 속에 처해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만나도록 인도해 주며 그들을 세상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음을 말하면서, 성도는 그 믿음을 생활에서 선행으로 열매 맺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성숙한 모습을 나타내 보여야 함을 교훈한다. 따라서 야고보는 본서에서 참된 경건, 참된 신앙, 참된 지혜가 무엇인가를 구제와 성결한 인생, 겸손한 생활과 인내 등을 실례로 들어 권면한 것이다.□ 신학적의미야고보서에서 하나님에 관한사상들은 전형적으로 1세기 초유대주의 내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저자는 그의 독지들。l 이러한 확신을 그와 공유하기를 소망하고 있다. 이러한 확신들은 저자가 언급한 주요 핵심들 기저에 안정적으로 위치하고 있다. 1:1 7에서 하나님이 사람들의 삶에 선한 것을 공급하신다고 말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것이 무엇이며 우리가 누구인지 개인적으로 아신다는 것과 그 분은 우리의 안녕을 위해 우주적인 세력들을 이용할 충분한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저자 자신의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다. 4:3에서 사람들이 그들의 구하는 것을 다 받지 못하는 것은 죄의 욕망 때문이라고 말할 때 저자는 우리가 품은 동기가 선한지 악한지를 하나님이 아시기에 우리가 그분에게 어떤 것도 숨길 수 없다는 그 자신의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다.하나님에 관한 다른 많은 개념들이 발견될 수 있다. 그분은 창조자이시고(1 :17-18), 그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드신 분이며(3:9). 그분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중생을 주실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능력이 있으시다(1:1 8). 그분의품성은 악과 어울리지 않고(1 : 13 ,17), 항상 자신의 약속을 지키시며(1 :12)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그리고 힘 있는 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대하고 다루는 것에 방심하지 않고 인식하시고(1 :9-11; 2:1-7 5:1-6) 변치 않으시는 분이시다. 의심의 여지없이 야고보서는 그리스도에 대해 말할 때는 상당히 기독론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으나,그리스도 중심적이라기보다는 하나님 중심적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주"(1 : 1 2:1 5:7-8, 14-15)와 심판주(5:9)라는 명칭을 공유하고 있다.
    인문/어학| 2020.03.14| 4페이지| 1,000원| 조회(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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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김과 나눔의 경영자 간디를 읽고(느낀점 및 서평)
    섬김과 나눔의 경영자 간디를 읽고(느낀점 및 서평)- 간디의 삶에서 배우는 15가지 원칙 -케샤반 나이르 지음/김진옥 옮김▣ 저자 케샤반 나이르(Keshavan Nair)1932년 인도 출생. 오하이오 주립대(공학박사),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에서 30년 이상 정부기관과 포춘 지 선정 1백대 기업, 해외 기업 등을 상대로 컨설팅 활동을 펼쳤으며,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우드워드 클라이드 사의 수석 부사장을 역임했다. 저자는 도덕적 실천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의 개발과 평가, 전략적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투명성과 합리성 제고로 현재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특히, 이 책 『간디 리더십 A Higher Standard of Leadership』으로 경영학 분야의 명저에 주어지는 벤자민 프랭클린상을 수상했으며, 『승리 너머 Beyond Winning, the Handbook for their Leadership Revolution』 등으로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역자 김진옥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다. UCLA 동아시아 어문학과를 수료했다.요약내용◆ 이중기준을 버리고 모범을 보인다1. 삶 전체에 적용할 절대가치를 발견한다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자기 행동의 지표로 삼기 위해서도 우리는 보편적인 원리, 즉 절대가치를 추구한다. 그는 모든 종교와 문화에 기본이 되는 근본적인 가르침을 포용했다. 간디는 진실과 비폭력이라는 두 가지 절대가치를 공식화했다. 간디는 “사유에 진실이 담겨 있어야 하며, 말에도 행동에도 진실이 담겨야 한다.”며 진실을 폭넓게 정의했다. 간디에 있어서는 신은 곧 진실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진리를 찾으라. 그러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에는 종교적인 함의가 들어있다.간디의 비폭력에 대한 정의도 마찬가지로 폭넓은 의미를 가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폭력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전 인류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이다. ‘사랑’으로 실행된 비폭력은 인류 최상의 법이다.진실은 현실적인 록 촉구하는 도덕적 지상명령인 것이다.진실과 비폭력은 실용적인 가치관이다.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간디의 메시지이다.2. 이상을 추구하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영국의 사상가 존 러스킨의 『이 최후의 사람에게도 Unto This Last』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이 책은 간디의 삶을 크게 변화시켰다. 간디는 러스킨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리를 끌어냈다. 첫째, 개개인의 행복은 공통선에 포함된다는 점, 둘째, 모든 직업과 일은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 셋째, 노동하는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모든 행동을 진실과 비폭력이라는 절대가치에 비추어 평가하고, 이 절대가치에 충실한 행동의 숫자를 늘려가야 한다. 모든 일을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잘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목표이다. 끊임없는 개선만이 한층 높은 리더십에 이르는 길이다. 간디는 하루도 빠짐없이 자신에 대한 무언의 재판을 행하고, 아무리 작은 행위의 아무리 사소한 점에 대해서도 스스로의 해명을 추구했다.올바른 길을 계속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간디는 서약을 맺음으로써 자신의 가치에 충실하기 위해 필요한 규율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올바른 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일상의 행동을 평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자신의 일상 행동을 점검하고 평가함으로써 우리는 더 큰 문제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술을 몸에 익히게 된다. 어느 것이나 중요하고 점검할 가치가 있다. 점검하고 평가하는 훈련을 통해 우리도 리더로서의 실행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다.3. 자기 성찰을 통해 거듭난다꾸준한 개인적 성찰 없이 도덕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개인적 성찰이란 자신과의 대화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구하고, 자신의 행동을 평가하는 것이다. 간디는 지도자의 개인적 성찰은 실천적인 노력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4. 집착을 줄이고 권력과 특권을 남용하지 않는다누구에게나 집착하는 것이 있다. 집착심에 의해 리더십의 질이 크게 좌우될 위험성 욕구에 한도를 정하고 점점 커지는 부에 대한 욕망을 억제한다면, 비도덕적인 행위로 빠져들게 하는 큰 유혹을 제거할 수 있다. 특권이나 권력에 대한 집착이 더 높은 수준의 리더십에 도달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난 다음에는, 그러한 집착을 줄이는 일에 착수할 수 있다.5. 모든 것이 투명해야 서로를 신뢰할 수 있다간디는 “내 생각에 비밀이라는 것은 죄악이며 폭력의 조짐이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든 회피해야 한다” 진실과 비폭력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사람이나 조직이라면 비밀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게 간디의 생각이었다. 간디는 개인적으로 철저하게 솔직함을 추구하는 생애를 살았다. 불신의 대부분이 비밀주의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신뢰하는 사람과 정보를 공유한다. 리더는 개인적으로 공개성의 원칙에 충실해야만 한다. 지도자는 자신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책임을 져야 한다. 다른 사람이 정보를 얻기 힘들게 만드는 것은 간접적으로 비밀주의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6. 도덕적 용기를 통해 참다운 리더가 된다올바른 것을 행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용기. 도덕적인 용기는 자신의 안에 있는 본질적인 선과 일체감을 가지는데서 나온다. 올바름에 대한 당신의 신념과 자신이 합일된다면, 그 올바른 것을 행하는 용기가 생겨난다. 리더십의 규범을 더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불의를 바로잡겠다는 용기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모든 사람을 자신과 같이 대하기 위해서는 헤아릴 수 없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용기를 간디는 몸으로 보여주었다. 바로 이 용기 때문에 진정 위대한 지도자는 인정 많은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내가 간디의 삶에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도덕적 용기를 배우는 곳은 다른 아닌 우리 자신의 생활’이라고 하는 점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봉사한다리더십의 핵심에 두어야 하는 것은 봉사이다. 권력은 늘 리더십과 결부되는 것이지만, 그 권력의 사용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목적은 봉사인 것이다. 봉사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말하자면 진실한 봉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리더로서 우리는 봉사에 헌신하는 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봉사를 리더십이 핵심에 둘 수 있는 다섯 단계를 발견했다.●나의 책임에 초점을 맞춘다●올바른 가치관에 기반을 둔 봉사를 실천한다●직접적인 봉사는 감동을 불러일으킨다●당신이 봉사하는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이해한다●권력과 봉사의 조화를 꾀한다7. 나의 책임에 초점을 맞춘다리더에게 어려운 것은 인간으로서의 근본적인 책임을 다하는 것, 다시 말해 타인을 자신처럼 대하는 것이다. 간디는 자신이 불가촉천민과 함께 생활하며 화장실 청소까지 한 이후에야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게도 차별을 중지하도록 요청했다. 책임을 원동력으로 하는 사회는 봉사를 중시하고, 자신과 다른 사고방식을 인정하고, 타협하며, 진보를 지향하는 사회이다. 리더십이 한 단계 높은 규범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책임을 다하는 것이 대가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생활 방식이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자신의 책임을 중시하고, 타인에게도 각자의 책임을 다하도록 요구함으로써 당신이 리더로서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8. 올바른 가치관에 기반을 둔 봉사를 실천한다인류는 하나라도 믿었던 간디는 모든 사람에 대한 봉사라는 맥락에서 봉사를 규정했다. “개인적 봉사는 보편적인 봉사로 융합될 때에 비로소 가치 있는 봉사가 된다” 모든 봉사 행위는 진실과 비폭력의 시험을 거쳐야 하고, 어떤 그룹에 대한 봉사든 인류 전체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치관에 근거한 지속적인 봉사정신은 당신이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서 물러난 다음에도 계속해서 인생에 목적을 부여해줄 것이다.9. 직접적인 봉사는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몸소 봉사에 헌신함에 있어 크고 위대한 대의는 필요없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곳, 가족이나, 친구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정작 어려운 점은 이 같은 직접적인 봉사를 상시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조직에서 지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몸소 봉사 행위를 매일 한 가지씩 수행할 수도 있을 사람의 헌신에 대한 존중을 결합할 때 조직 전체에 걸쳐 봉사에 대한 헌신을 창조해내는 상승효과가 생겨날 것이다.10. 당신이 봉사하는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이해한다간디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봉사하는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 즉, 상대와 대화하고, 귀를 기울이고, 상대의 경험을 지켜보고 공유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눈을 돌려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는 감춰진 소망이나 뚜렷하게 표현되지 않는 요구를 찾아내고, 자신이 봉사하고자 하는 상대와의 유대를 구축해야 한다.리더가 있어야 할 곳은 현장이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진실에 충실하면 리더는 현실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직접 사람들과 만나는 가운데 간디는 인도 사회의 참된 문제가 무엇인가를 찾아내었고, 그것을 자신의 문제로 간주했다. 그 문제들이란 불가촉천민 제도의 관습, 희박한 위생 관념, 타종교에 대한 적대감, 여성에 대한 차별, 인도인에 의한 인도인의 착취 등이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기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도록 노력하고, 진실에 충실하여 관찰한 것을 해석해야 한다.봉사대상과 일체가 되어야 한다. 간디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관찰하는 것을 뛰어넘어 자신이 봉사하려는 사람들의 경험을 함께 나누었다.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상대를 가장 깊게 이해할 수 있고, 가장 오래 지속되는 유대감을 가질 수 있다. 간디가 몸소 실천한 규범은 어느 누구에게도 손이 미치지 않을 만큼 높은 것이다. 경험을 공유할 기회는 많이 있지만, 늘 겸손과 봉사의 정신을 가지고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봉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이해하기 위한 행동 하나 하나는 그것이 아무리 하찮을지라도 상호 유대를 강화하고 한 단계 높은 리더십의 규범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된다.11. 권력과 봉사의 조화를 꾀한다리더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필요한 권력과 봉사를이다.
    독후감/창작| 2020.03.14| 5페이지| 1,000원| 조회(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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