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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상섭 만세전 평가A+최고예요
    Ⅰ. 염상섭의 생애Ⅱ. 리얼리즘 문학1. 리얼리즘의 개념2. 리얼리즘의 특징3. 비판적 리얼리즘과 사회주의적 리얼리즘Ⅲ. 1920년대 초반의 대표작가와 작품1. 김동인2. 현진건3. 나도향Ⅳ. 염상섭의 작품 세계1. 염상섭 문학의 전개과정과 대표작2. 염상섭 문학의 특징1. 서지사항6. 등장인물 분석2. 줄거리7. 갈등양상3. 구성8. 작품의 결말과 전망4. 시·공간의 배경9. 시점5. 제목의 의미와 주제10. 문체Ⅴ. 작품분석Ⅵ. 소설교육의 측면에서 본 『만세전』1. 교과서 속의 만세전2. 임용고사 속의 만세전Ⅶ.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평가1. 작가에 대한 평가2. 작품에 대한 평가3. 우리들의 평가Ⅷ. 참고문헌1897년(1세)8월 30일(음력 8월 3일) 서울 종로구 필운동 야조현 고가나무골에서 염규환과 경주김씨의 8남매 중 넷째로 태어남. 본명 상섭(尙燮), 필명 상섭(想涉), 아호은 횡보(橫步), 천주교명은 바오로.1904년(8세)1906년까지 조부에게서 한문 수학.1907년(11세)9월 관립 사범보통학교에 입학.1909년(13세)관립사범에서 조선역사를 가르치지 않고, 이토 히로부미가 오는 날에 전체 학생을 참가시키고 황제의 거행시에는 반대표만 보낸 것에 항의하여 3학년 겨울에 자퇴함. 이기붕, 최승만 등과 함께 보성소학교로 전학.1911년(15세)보성중학 입학. 이듬해 1912년 보성중학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9월 12일 일본유학.1913년(17세)마포중학 2학년에 편입. 이듬해 1914년 성학원(聖學院, 세이카쿠인) 3학년에 편입. 찬양대의 일원으로 침례교 세례를 받음. 혼혈인 미스 브라운을 연모.1915년(19세)성학원 3학년을 수료하고 경도부립제2중학교로 전학. 「우리 집 정월」로 문장력에 호평을 받음.1918년(22세)경도부립 제2중학교 졸업. 경응대(慶?大學, 게이오대학)문과 예과 입학. 1학기만 마치고 병으로 자퇴.1919년(23세)『삼광三光』의 동인이 됨. 오사카에서 3.1운동 소식을 듣고 오사카 천왕사공원에서 거사하기로 했으나 피검되어 현 고려대학교 정문 앞의 초가집으로 이사했고 4월 25일 장결핵으로 사망하였다.☞ 현진건의 작품세계현진건은 1920년대 대표적인 리얼리즘 작가이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리얼리즘 소설만을 쓴 것이 아니다. 현진건은 자전적 요소가 많았던 체험적 소설, 경험을 통한 현실고발적 소설 그리고 민족혼을 표현한 역사소설 이렇게 크게 세 가지의 문학창작 경향성을 보였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소설을 썼지만 현진건이 보여준 리얼리즘의 모습은 한마디로 ‘개인’에서 비롯되는 리얼리즘 이라고 할 수 있다. 「타락자」, 「술 권하는 사회」는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개인적인 삶이 주로 실패한 인생으로 그려지는데 그 원인을 당대 사회 속에서 찾고 있다는 점은 현진건이 개인의 삶과 당시 사회 구조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통한 사회적 모순과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주는 요소이다. 특히 현진건은 작품에서 지적하고 있는 사회를 절대적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발견하고자 노력한다. 작품 속 지식인들의 고민은 자신의 출세나 물질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잘못되어가는 사회에 대한 것이다. 즉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가진 고통이나 현진건의 다른 작품속에 등장하는 지식인의 고통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현진건의 작품은 매우 진실 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는 정말 힘들고 어려운 삶 속에서도 아내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다. 현진건의 다른 작품들도 살펴보면 미래가 부정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지금을 참고 견뎌내면 희망찬 내일이 온다는 것인데 그러한 의미에서 현진건은 굉장히 정직한 작가이다. 그가 그려내는 사회는 매우 현실과 밀착되어 신뢰성을 보여준다. 현실의 모순과 부당함을 극단화하여 표현한 경우도 있으나 이것은 현진건 특유의 솔직함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정직하고 솔직한 현진건 문학의 원시성이 오히려 독자들에게 현실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대표작 : 「빈처」(1921), 「술 권하는 사회」(1921), 「타락자」(1922), 「운수좋은날」(1제 내용은 광인 김창억을 전면에 내세워서 그의 성격을 분석함과 아울러 인생의 암흑면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10장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에서 제1장부터 제5장까지, 그리고 마지막 제10장은 1인칭으로 씌어져 있지만, 제6장부터 제9장까지는 3인칭으로 씌어져 있다.주인공이며 서술자인 ‘나’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채 좌절과 갈등의 세월을 보낸다. “가혹히 나의 신경을 엄습하여 오는 것은 해부된 개구리가 사지에 핀을 박고 칠성판 위에 자빠진 형상”이라는 ‘나’의 고백은 이러한 삶의 권태를 잘 보여준다. 소설의 흐름 속에서‘나’는 끊임없이 청개구리 해부 교실의 면도칼을 의식하는데 이것은 절박한 위기 상황 속에서의 불안과 공포감을 나타내는 격이고, 김창억이 반미치광이가 된 것은 양심 있는 지식인으로서는 미쳐 버릴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 속에 우리가 살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나’의 신경과민과 “4개월간의 옥중생활은 그의 신경을 바늘 끝같이 예민하게 하였다”에서 나타난 김창억의 광기는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김창억을 광인으로 만든 것은 옥중경험이었으며, 그것은 3?1운동 혹은 독립운동과 관련되어 있음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또한 김창억의 옥중경험도 ‘나’의 귀향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김창억이 정신적인 상처를 겪고 세계와 융합하지 못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나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라는 점이 여러 면에서 암시되고 있을 뿐이다. 소설의 내용을 서술함에 있어서 작자는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는 늘 암시적 기법을 쓰고 있지만 우리는 충분히 그 배경의 의미를 추리해낼 수 있으며 그 같은 암시적 기법으로 인해서 이 작품은 염상섭의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훌륭한 문학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김동인이 이것을 보고 ‘강적’이 나타났다고 경계한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 작품은 예술적으로는 성공작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플롯이 엉성하며, 서술의 구체성을 상실한 채 작가상섭 문학의 특징㉠ 리얼리즘의 대표 작가염상섭은 우리나라 최초의 객관적 사실주의 소설을 창작한 공로로 높이 평가할 수 있는데, 그에게 소설쓰기는 세련된 기교를 펼쳐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예술적 사명감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내면을 가차 없이 속속들이 살펴보는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 일을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극단적인 현실을 오가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그러한 자신이 속해있는 두 세계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기, 그것이 염상섭의 작가적 출발이자, 글쓰기의 의미였다. 그래서 염상섭은 객관적인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당대 사회의 현실을 냉혹하게 드러내며 당대 사회의 현실을 그 누구보다도 날카롭게 비판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소설이 ‘있는 세계’를 사실대로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염상섭은 초기에 기록하고 실감나게 묘사해 주는 것이라는 입장에서 문학을 시작했으며, 자신의 입장이나 시각 등을 드러내지 않는 철저히 ‘바라보기’문학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민족의식이 투철한 작가염상섭은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해 체포되기도 하고, 민족문학운동도 전개할 만큼 민족의식이 투철했고, 민족의식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며 우리 민족의 실상을 매우 솔직하게 비판적으로 표현하며 자신의 분노와 절망적 감정을 노출시켰다. 염상섭 소설이 갖는 특징 중의 하나는 현실을 결코 단순화시키지 않는다는 점인데, 염상섭은 단순한 풍속의 재현을 넘어서 현실의 흐름과 그 방향에 대한 나름의 시각을 가졌고, 이러한 역사의식이 작품 속에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리얼리즘의 성취에 이를 수 있었다. 염상섭은 식민지 현실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만이 식민지 현실을 벗어나려는 의지를 가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소설 속에서도 현실대응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1925년 이후, 프로문학이, 민족주의적 문학과 대립을 이루자 염상섭은 중도·절충파의 입장으로 대립을 피하고 절충을 꾀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리얼리즘적인 특징과 함께 바라보는 문학으로서, 일제의 만행이나 고전보다 거리가 깨끗하게 되어있고, 그와 반대로 조선인들을 볼 수 없게 초췌해졌고, 거의 변두리로 쫓겨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부산이 일인들의 도시가 되어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부산에서 찾은 술집에서는 일본인 아버지를 찾아 나서고자 하는 이 곳 종업원의 말을 듣고, 또 한번 식민지 백성의 비애를 심하게 느끼게 된다.▶김천김천은 ‘나’(이인화)가 형의 생활과 모습을 보는 순간 식민지 정책이 조선인들을 얼마나 변화시키고 있는가 느끼게 되는 공간이다. 형이 아들을 얻기 위해 어린 여자를 첩으로 얻는 것을 보았는데, 여기서 ‘나’는 식민지화되어 가는 현실과 전근대적인습의 타성을 버리지 못하는 조선인의 생활태도를 느끼게 된다.▶서울로 가는 기차기차 안에서 ‘나’(이인화)는 민족적 분노를 느끼게 된다. 기차 안에서의 체험은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나’에게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이곳에서 우리는 ‘나’의 민족적 연민과 분노를 느낄 수 있다.▶서울서울에서 ‘나’(이인화)는 아내의 병에 한방 치료만 고집하는 비과학적 태도, 며느리를 공동묘지에 묻지 않으려는 권위의식 등 전근대적인 생활의식을 비판한다. ‘나’는 당대 현실의 허위성에 대해 논리적으로 대응하며 현실적으로 개혁하기보다는 정신적으로 부정적인 현실을 매도할 뿐이다. ‘나’의 부정적 현실인식은 당대 식민지 조선사회를 무덤으로 인식하기에 이른다. 즉, 당대 사회는 무덤, 구데기가 우글우글하는 공동묘지라는 것이다.5. 제목의 의미와 주제㉠ 제목의 의미「만세전」은 3·1운동으로 분출될 수밖에 없었던 만세 전(前), 식민지 조선의 암담한 현실을 ‘지식인’인 주인공 이인화의 시선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만세전」의 본래 제목이 「묘지」였던 이유는 3·1운동 전 극단적으로 생명력이 거세되던 사회임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만세전」으로 제목을 바꾸면서 3·1운동 직전의 당시 조선의 비참한 상황을 보여줌과 동시에, 3·1운동의 필연성을 제시하고 3·1운동, 만세가 일어났음을 역설적으로 알려준다.이처럼 우리나라 민족해방운동의 새어온다.
    인문/어학| 2014.11.09| 46페이지| 2,500원| 조회(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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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만식 논이야기 독후감
    1. 작가 연보1902년(01세)전북 옥구군 임피면 읍내리에서 채규섭의 9남매 중 다섯째 아들로 태어남.1907년(06세)집에서 차린 서당에서 한문 공부를 함.1910년(09세)임피보통학교 입학.1914년(13세)4년제 임피보통학교 졸업.1918년(17세)중앙고등보통학교 입학.1920년(19세)중앙고보 3학년 재학중 익산군 함라면 함열리의 온씨 댁 규수 은선홍과 혼인.1922년(21세)4년제 중앙고등보통학교(당시 이름은 사립중앙학교) 졸업. 일본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 문과에 입학. 고등학원 축구선수로 활약.1923년(22세)여름방학에 귀향, 위 학원 중도 폐학. 뒷날 유고작으로 발표된 처녀작 중편 「과도기」 탈고(《문학사상》 1973년 8∼9월호에 유고로 발표)1924년(23세)제일와세다고등학원 제적 처분. 경기 강화의 사립학교 교원으로 취직. 단편 「세 길로」를 《조선문단》 3호에 이광수 추천으로 발표, 문단에 데뷔.1925년(24세)《동아일보》 정치부 기자로 입사. 단편 「불효자식」이 《조선문단》에 다시 추천 게재됨.1926년(25세)동아일보 퇴사.1930년(29세)개벽사 입사.1933년(32세)개벽사를 그만두고 조선일보사에 입사.1934년(33세)풍자적 성향의 단편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신동아》), 희곡 「인텔리와 빈대떡」(《신동아》) 등을 발표하면서 확고한 문학적 기반을 다짐.1936년(35세)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개성으로 이사.1937년(36세)《조선일보》에 대표작 「탁류」 연재.1938년(37세)《조선일보》에 「치숙」 발표.1939년(38세)『채만식단편집』이 학예사에서, 장편집 『탁류』가 박문서관에서 간행.1940년(39세)개성에서 안양으로 이사. 「태평천하」가 『삼안장편집』에 묶여 명성사에서 간행됨. 중편소설 「냉동어」(《인문평론》), 희곡 「당랑의 전설」(《인문평론》)을 발표.1941년(40세)광장리로 이사. 5월 『탁류』 재판 간행, 3판부터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행금지처분을 받음. 장편집 『금의 정열』에 영창서관에서 간행됨.1943년(42세)중편집 『배비장』이 박문서관에서, 단편집 『집』이 조선출판사에서 간행됨.1945년(44세)부친이 별세하고 장남이 병사함. 4월 고향인 전북 임피로 내려가 살다가 8?15해방을 맞음. 해방 후에 서울 서대문 충정로로 이사함.1946년(45세)중편집 『허생전』이 협문문고에서, 작품집 『제향날』이 박문출판사에서 간행. 「맹순사」(《백민》), 「비스타 방」(《대조》), 「논 이야기」(『해방문학선집』), 「처자」(《주간서울》) 등 발표. 고향 전북 임피로 다시 내려감1947년(46세)모친 별세. 이리시로 이사. 장편집 『아름다운 새벽』이 박문출판사에서 간행.1948년(47세)「민족의 죄인」을 《백민》에 발표. 동지사에서 『태평천하』 간행. 작품집 『작난 사람들』이 민중서관에서 『당랑의 전설』이 을유문화사에서 간행됨.1949년(48세)장편집 『탁류』가 민중서관에서 간행.1950년(49세)6월 11일 폐결핵으로 이리시 마동에서 영면. 전라북도 옥구군 임피면 출산리 선영에 묻힘.2. 줄거리『논 이야기』는 한생원의 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논(토지)에 얽힌 역사다. 구한말에 한생원네는 아버지의 부지런함으로 장만한 열서 마지기와 일곱 마지기의 두 자리 논이 있었다. 그러나 열서 마지기짜리 논을 구한말에 고을 원님한테 뺏기고 말았다. 그것도 억울하게 멀쩡한 사람을 동학에 가담했다는 누명으로 감옥에 넣고, 옥살이를 면제시켜 준다는 미명 아래 착취해 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가 일본에 망했을 때도 그들은 망국의 설움을 못 느꼈다.이 때 일본인 지주 길천이 땅을 사들이기 시작하고 한생원은 생계를 위해 그에게 땅을 판다. 이는 일제의 경제침략의 한 방법으로, 한생원은 더욱 생계를 잇기가 어려워진다.독립이 되었을 때도 궁핍하긴 매 한가지란 생각에 한생원은 만세를 부르지 않는다. 한생원은 자신에게 나라의 존재라는 것은 편한 삶과는 관계가 없고 국가 권력이라는 힘이 자신을 못살게 구는 존재일 뿐이었던 것이다.그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 것은 일인 소유로 넘어간 땅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준다는 소문을 듣고 나서였다. 그는 일본인 길천에게 팔았던 땅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부풀게 되었다. 그러나 해방 직후의 혼란한 와중에 한생원이 길천에게 판 땅은 경매에 의해 다른 사람 손으로 넘어간다. 한생원은 크게 분노하는데 마지막 대사에서 그것이 잘 드러나 있다.“독립됐다구 했을 제, 내, 만세 안부르기, 잘했지.”한생원이 하는 푸념은 지극히 냉소적이다. 그것은 저주의 욕설로 인식되기 보다는 도덕적 비판으로서 아프게 다가온다. 이 아픈 비판은 한생원이 무식한 농사꾼이었기에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3. 작품분석 및 감상「논 이야기」는 농민과 토지의 관계를 놓고 세 개의 이야기로 짜져 있다. 구한말의 상황을 다루고 있으며, 8·15 해방이란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하여 해방 이전의 상황과 해방을 맞이하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대개 구한말에는 탐관오리에게 땅을 빼앗겨 소작농으로 전락한 억울한 농민들이 많았다. 여기서는 그 당시 부패관리들의 횡포를 이야기하고 있다.“꼭 한가지는 묘책이 있기는 있는데 ...... 그럼 내가 시키는 대로 할 테냐?”“불속이라도 뛰어 들어가겠습니다.”“논문서를 가져오느라. 사또께 다 바쳐라.”“논문서를요?”“아까우냐?”해방 이전에는 식민지 시기 우리 농민이 자신의 토지를 일본인에게 빼앗기게 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이 추구한 토지 수탈 정책을 반영하고 있다.용말(龍田) 사는 일인 길천(吉川)이가 요새로 바싹 땅을 많이 사들인다는 소문이 들리었다. … 중략 … 논문서를 가지고 오는 자리는 ‘우대’를 하였다. 이자를 탕감하고 본전만 쳐서 논으로 받는 것이었었다. 논이 있는 사람은 돈을 두어두어도 즐거이 논으로 갚고 하였다.이것은 일본의 자본이 우리의 토지를 수탈하는 한 방법이었고, 우리 농민이 소작인이나 농촌 고용인으로 전락하게 되는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해방 이후에는 일본인이 수탈하여서 소유하고 있던 재산이 해방을 맞으면서 정당하게 처리되지 못하였음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미군정의 개입과도 관련되어 있는 ‘신한공사’의 부적절한 현상을 비판하고 있다.“그래 일인들이 죄다 내놓구 가는 것을, 백성들더러 돈을 내구 사라구 마련을 했다면서?”“아직 자세힌 모르겠어두, 아마 그렇게 되기가 쉬우리라구들 하드군요.”“그런 놈의 법이 어딨단 말인가? 그래, 누가 그렇게 마련을 했는구?“나라에서 그랬을 테죠.”한생원은 손자 용길이가 징용에 가지 않도록 뇌물을 쓰는데 이러한 행동을 통해 그 당시 부조리한 사회 현실을 반영·비판하고 있다.외톨 손자놈 용길이가 징용에 뽑히지 말게 하려고, 구장과 면의 노무계 직원과, 부락 담당 직원에게 굽은 허리를 굽실거리며 건사를 물고 하였던고. … 중략 … 쌀을 보내어 주기 …중략… 씨암탉 잡고 술대접하기… 중략 … 그들의 논에 모 심고 김 매어 주고 하기.백성을 착취하는 국가, 세력을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구한말 시절이나, 일제 강점기나 해방이 된 후 어느 때나 존재하는 상황으로 보여 지고 있다.원과 토반과 아전이 있어, 토색질이나 하고 붙잡아다 때리기도 하고 교만이나 피우고, 하되 세미(稅米 : 納稅)는 국가의 이름으로 꼬박꼬박 받아가면서 백성은 죽어야 모른 체를 하고 하는 나라의 백성으로도 살아보았다.8?15 직후, 낡은 법이 없어지고 새로운 영이 서기 전, 혼란한 틈을 타서, 잇속에 눈이 밝은 무리들이 …중략… 일인의 재산을 부당 처분하여 배를 불린 일이 허다하였다.또한, 「논 이야기」는 한생원으로 대변되는 술과 노름에 빠진 성실하지 못한 개인을 풍자했다. 또, 한생원은 자신에게 유리한 면만을 고집하는 개인의 사사로운 이기심을 지닌 인물로 그려져 비판되었다.“우리 독립 만세 한번 부르실까?”“남 다아 부르구 난 댐에, 그걸 불러 무얼 허우?”송생원은 한생원과 달라 길천한테 팔아먹은 논도 없으려니와, 따라서 일인들이 쫓기어 가더라도 도로 찾을 논도 없었다.한생원은 또 무지한 농민을 대변하기도 하는데, 그의 무지함은 땅을 팔아버리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작가는 이러한 면을 비판함으로써 당시 농민들의 무지함을 풍자하였다. 이런 부분에서는 채만식의 계몽주의적인 인식도 엿 볼 수 있다.“건 조카가 속을 몰라 하는 소리지. 속을 몰라 하는 소린 것이, 나주 작년 정월에 공주 한밭엘 갔다 그놈 차가 철로 위루 달리는 걸 구경했지만, 아 그 쇳덩이루 만든 집채더미 같은 시꺼먼 수레가 찻길 위루 벼락치듯 다리는데, 땅바닥이 사뭇 움죽움죽 하더라니깐! 여승지동이야...... 그러니 땅이 그렇게 지동하듯 사철 들이 울리니, 근처 논이 모두 뿌리를 잡을 것이며 자라기를 할 것인가?”“......”듣고 보니 미상불 근리한 말이었다.부정적 인물인 한생원은 국가를 백성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해주는 일없는 나라라고 비판하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데, 실제적으로는 한생원의 말이 현실을 제대로 통찰하고 있는 말임을 나타냄으로써 국가의 무능력함을 풍자했다.
    독후감/창작| 2014.11.09| 5페이지| 1,000원| 조회(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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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꺽정 서림장 독후감
    1. 작가연보1888년(1세)7월 2일(음력 5월 23일) 충북 괴산군 인산리에서 홍범식과 은진 송씨 간의 장남으로 출생.1890년(3세)모친 은진 송시 별세. 이조판서를 지낸 증조부 홍우길 별세.1898년(11세)『삼국지』 등 여러 중국소설들을 탐독하기 시작함.1900년(13세)참판 민영만의 딸인 여흥 민씨와 혼인1902년(15세)서울의 종교의숙에 입학함.1903년(16세)장남 기문 태어남.1905년(18세)졸업 후 동경유학을 떠남. 동경에서 문일평, 이광수 등과 교우1909년(22세)『대한흥학보』에 논설문 「일괴열혈」(창간호:3월호) 등을 발표함.1910년(23세)대성중학교에서 졸업장 수여함. 『소년』지 2월호에 「쿠루이로프 비유담」, 안드레이 니에모예프스키의 시를 번역한 「사랑」(8월호) 등을 발표함.8월 29일, 금산군수로 재직 중이던 부친 홍범식이 경술국치를 당하여 순국함. 차남 기무 태어남. 호적상 이름은 기은1912년(25세)출국하여 그해 겨울 만주 안동현에 체류.1913년(26세)정인보와 함게 상해로 가서 박은식, 신규식, 문일평, 조소앙 등과 함게 해외 독립운동 단체인 동제사 활동함.1914년(27세)11월, 정원택, 김진용, 김덕진과 함께 독립운동을 위한 재정적 기반을 구축하고자 상해를 떠나 남양으로 향함. 1915(28세) 3월 싱가포르에 정착하여 활동.1919년(32세)3월 19일, 괴산에서 손수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반포하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체포되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음.1921년(34세)쌍둥이인 딸 수경과 무경 태어남.1924년(37세)5월, 동아일보 취체역 주필 겸 편집국장에 취임하여 동아일보에 칼럼 연재. 11월, ‘신사상 연구회’가 맑스주의 행동단체인 ‘화요회’로 개편되자 ‘화요회’ 간부로 계속 활동함1925년(38세)4월, 동아일보사를 사직, 시대일보로 옮겨 부사장직에 취임1926년(39세)3월, 시대일보 사장에 취임. 10월, 정주 오산학교 교장으로 부임. 카프의 기관지에 해당하는 『문예운동』창간호에 「신흥문예운동」을 막내딸 계경 태어남.1927년(40세)2월, ‘신간회’가 창립된 후 조직부 총무간사직을 맡음1928년(41세)11월21일, 조선일보에 대하 장편 역사소설 『임꺽정』을 연재하기 시작함.1929년(42세)12월13일, ‘신간회’주최로 광주학생운동에 대한 일제 관현의 조치를 규탄하기 위한 민중 대회를 개최하려던 중 검거. 경기도 경찰부 유치장에서 『임꺽정』 집필을 계속했으나, 12월24일 구속 송치되자 26일자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중단.1931년(44세)4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음.1932년(45세)1월22일, 가출옥으로 출감. 12월1일, 조선일보에 『임꺽정』 연재를 재개함.1934년(47세)9월4일, 『임꺽정』 의형제편을 끝내고 15일부터 화적편 연재를 시작.1935년(48세)12월24일, 『임꺽정』화적편 ‘청석골’장을 마치면서 연재를 중단함.1937년(50세)12월12일, 조선일보에 『임꺽정』화적편 ‘송악산’장 연재를 시작함1939년(52세)7월4일, 조선일보에 『임꺽정』화적편 ‘자모산성’장의 서두까지 발표한 후 연재를 중단함.1941년(53세)『조광』(10월호)에 『임꺽정』화적편 ‘자모산성’장의 일부가 실린 후 연재는 영구히 중단1948년(61세)을유문화사에서 『임꺽정』 6권이 간행.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가한 이후 북에 잔류.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1차내각(수상 김일성)에서 박헌영, 김 책과 함께 3인의 부수상 중 한 사람으로 인명됨.1954년(67세)평양 국립출판사에서 『임꺽정』 6권이 출판.1968년(81세)3월5일, 노환으로 별세. 평양 교외 애국열사릉에 안장됨.2. 줄거리서림은 광주 사람으로 경기감영의 영리(營利)를 다니다 벼슬을 떼이고, 평양 서윤(庶尹)의 뒤를 따라가 심부름하며 지낸다. 그러다 윤원형의 문객으로부터 부탁을 받은 평안감사 김명윤이 서림을 불러 중히 쓰게 되고, 서림은 장사로 반년만에 승진하게 된다.그러나 김명윤의 총애 받는 기생 옥부용과 놀아나다 예방호통을 받고 눈가림으로 도화와 놀아난다. 한편 옥부용이 이것을 시샘하여 서림이 도화에게 준 수달피 두 장은 빼돌린 것이라고 고변한다. 감사에게 호통을 받았으나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한 서림은 또다시 진상품을 빼돌린다. 도화의 청으로 준주를 훔쳐내다 들켜 집뒤짐을 당하게 되었으나 미리 알아챈 서림이 물건을 싸들고 도주한다.탑고개에서 청석골 패를 만난 서림은 위기 모면을 위해 임꺽정 이름을 팔았으나 길막봉이에게 들켜 초주검을 당한다. 그러나 손가의 은인이라는 이유로 죽음을 면하고 손가의 집에서 후대를 받으며 지내다 청석골의 이야기를 듣고, 평양 진상 봉물을 빼앗을 꾀를 청석골 패에게 알려준다. 드디어 청석골 일당과 서림은 주도 면밀한 계획과 실행에 의해 진상 봉물을 빼앗았고, 그 공으로 서림은 청석골에 입당하게 된다.3. 작품분석 및 감상처음 이 작품에 대해 독후감을 쓰려고 생각을 했을 때, ‘이렇게 쓰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다.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만을 가지고 섣부르게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아무리 작가 홍명희가 각각의 장을 독립되게 서술했다고는 하지만, 전체를 모르는 상황에서 혹시 나의 분석에서 오류가 많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거기다 나는 서림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어릴 때 읽은 임꺽정 동화책에서의 느낌이 남아서인지 모르지만, 커서 책을 다시 읽어 보아도 내내 부정적으로만 보이는 서림을 어쩌면 좋은가에 대해 고민 아닌 고민을 해야 했다.거기다 책의 내용이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앞 부분의 내용을 모르고, 읽어서 내용이 읽혀지지 않나 보다’라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교수님도 읽다보면 재밌을 거라는 말씀을 하셔서, 계속 읽어보았지만, 읽을수록 재미없고 짜증만 났다. 문단의 구분 없이 이 사람 얘기했다가 저 사람 얘기했다가 하니까 생각 없이 한 사람이겠거니 하고 보면 다른 사람 이름이었던 것이다. 특히 후반부는 전혀 상상도 못한 이상한 기법을 가지고 나와 나를 당황하게 했다. 앞뒤를 다시 맞추야 상황전개가 이해가 갔다. 책을 읽으면 앞쪽으로 다시 가서 읽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닌 것 같다.그러나 자세히 「서림장」을 다시 읽어 보어보자, 이러한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당시 바쁘게 읽고 힘들어하며 책을 보았던 상황들이 나의 이러한 판단을 만들었구나 싶었다.서림은 임꺽정을 배신하고 죽게 만드는 결정적 인물이다. 작가 홍명희는 처음부터 이를 암시하듯 그를 그렇게 긍정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는 김명윤에게 자신의 포흠 사실을 아버지에 대한 효심 때문에 한 것이라고 거짓말한다. 얼마나 유창한지 눈물까지 흘린다. 가증스럽다고 느낀 사람은 나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실하지 못한 사람을 싫어하는데, 이 점에서 서림은 정말 싫었다. 또 그는 ‘본래 계집을 좋아’한다. 본질은 방탕한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감사의 눈 밖에 날까 조심하여’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살아간다. 이러한 모습은 작품 곳곳에서 드러난다. 도화에게 수달피 두 장을 주고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는 모습이라든가 임꺽정 사돈의 사촌이라고 하는 모습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그런데 정말로 우연히‘ 서림이는 풍류를 짐작하고 시조를 얌전히 부르고 또 우스갯소리를 잘하여 감사에게 일긴인 것을 자세하지 않더라도 기생들에게 떠받들릴 만하’다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정말 그가 그렇게 매력적인 사람인가?우스갯소리로 착한 여자에게 착한 여자는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는 그림이 있다. 불성실하고 날라리 같은 모습,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졌다는 것 때문에 좋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나도 예전에 좋아했던 누나가 나랑 조금 다른, 다소 논다는 누나였던 적이 있었다.이런 생각이 서림을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이제까지 나에게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점차 재치가 있는 사람, 영리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당시 신분제 사회에서 아전들의 생활상을 생각해 보았다. 아전들은 중앙으로부터 파견된 양반을 모시고 그들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였다. 지방의 현실을 모르는 관리들에게 그 지방의 모든 일으로 관여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눈이 되고 귀가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저 사람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처세술에 능하다는 것은 아전들의 필수 조건이고 그것이 능력일 수 있다. 서림은 이 모든 것을 갖춘 뛰어난 사람이다. 더구나 그는 자제력도 강하다.서림이가 예방비장의 말을 들은 뒤에 한번 남몰래 옥부용과 만나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옥부용의 집에 발을 끊고 상종 않는 표를 남에게 보이려고 일부러 친한 기생 도화의 집에 가서 숙식하고 있었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자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데 서림은 이런 일방적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그러나 그를 능력있는 사람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우선 그가 포흠을 행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잘못된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이 포흠에 대해서도 별로 반성하는 기색이 엿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의 현저한 태도 변화에 앙앙한 마음을 먹고 더욱 포흠을 일삼으며 이것이 들켰을 대 도주하여 평양 진상 봉물 훔치는 것으로 복수까지 하는 것이다. 이 사실에서 많은 사람들은 서림을 몹쓸 사람으로 치부할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양반들의 가치로 서림을 판단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는 따져 보아야 하겠다. 진상 봉물의 물품을 하나하나 열거한 부분은 당시 현실이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다음 대목에 가면 사회적 부패를 더욱 확연하게 볼 수 있다.“평안도 사람들 다 살았구려. 등골들을 빼먹히구 무슨 수루 살겠소.”하고 말하는 것을 예방비장이 바께 나왔다가 귓결에 듣고 곧 장교들을 불러서 그 사람을 잡아내어 매를 치는데 뒤에서 오는 대여섯이 발을 멈추고 구경하였다.“그 준주가 은 오십 냥이나 주구 산 것이라오. 그것을 주머니끈에 채우시긴 아깝지요.”…(중략)… “미친 놈들이다. 나더라 사라면 상목 한끗두 안 주겠다.”하고 혼잣말로 지껄였다. “준주는 외려도 여차지요. 야광주는 의주부율이 대국서 사오는데 이백 냥인니다.”
    독후감/창작| 2014.11.09| 5페이지| 1,000원| 조회(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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