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의 공부방법론 연구’ 이해와 그 의미1. 서 론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대학교에서 주자에 대한 강의를 들었지만 수업이나 강의의 시간이 정해져 있고 한 강의에서 주자의 사상만을 다룰 수가 없기 때문에 주자의 사상을 전체적으로나 세부적으로 깊게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 과제를 통해서 주자의 사상에 대해서 좀 더 깊게 공부해보려고 한다. 흔히들 유가의 수양론은 현실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만 유가는 원래 실천윤리를 강조했고 당시에 유가의 사상은 현실적인 것이었다. 즉 유가의 공부방법은 우리 현실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주자의 공부방법론 연구’를 읽으면서 주자의 수양론에 대해 이해하고 그 것이 현대 사회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지 찾아보려고 한다.2. 주자의 공부방법론주자의 거경궁리론은 평범한 사람이 성인이 되기 위한 공부방법론이다. 거경공부는 놓아버린 마음을 모으는 수양방법론이며, 궁리공부는 마음이 모아진 상태에서 세상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인식방법론이다. 이러한 주자의 공부방법론은 주자 이전까지 존재했던 유학 및 불교의 공부방법을 집대성한 것이다.공자의 ‘박문약례’를 살펴보면 공자가 주자의 공부방법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박문약례에서 ‘약례’는 경의 측면에 해당되고, ‘박문’은 학문을 궁구히 한다는 점에서 궁리의 측면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자는 이를 통해서 거경과 궁리가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면 어긋나기 때문에 자기 몸의 감각기관을 잘 단속해서 마음을 깨어 있게 한 상태에서 책을 탐구해서 세상의 이치를 알고, 그리고 실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맹자의 경우 거경에 해당하는 부분이 양기이고, 궁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진심과 지언이다. 특히 맹자의 양기는 송대의 성리학자들에게 경의 측면에서 큰 영향을 미친다. 주자는 이 둘의 관계를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로 해석한다.앞에서 말했듯이 주자는 불교의 영향도 받았는데 대표적으로 육조 혜능의 영향을 받았다.육조 혜능의 선학의 정좌와 좌선은 주자의 경에 영향을 끼쳤다. 공자와 맹자의 사상에는 정좌가 나오지 않는데 주자의 사상에 정좌가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당나라 이고는 정 때문에 인간이 성인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정을 없애는 방법으로 정좌를 강조한다. 이러한 이고의 영향을 받은 북송의 주렴계의 정좌와 궁리에 대해서 말했으나 이는 너무 정적으로 치우처져 있었다. 주렴계의 제자 정이천은 이러한 치우침을 바로잡았으며 이는 주자의 정좌수양에 큰 영향을 끼쳤다.송학의 장재의 함심과 궁리, 이천의 함양과 진학은 주자의 거경궁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장재는 마음이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여 본성을 그대로 지키기 어렵다고 말하며 이렇게 마음이 움직이고 맑지 않은 것은 객허가 많고 항심이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객허를 줄이고 항심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장재는 이를 위해서 마음을 모으는 공부법을 주장하며 마음을 모으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지식을 확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천또한 정이 지나치면 마음을 바로 잡을 수 없고 결국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본성을 확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마음이 일을 잘못되게 하는 것이므로 먼저 경을 하고 이후 궁리를 해야한다고 말한다.이러한 선대 사상가들의 사상을 주자는 집대성했다고 볼 수 있다. 공자와 맹자의 공부방법론이 주자에 이르면 정과 동의 공부방법론으로 종합된다. 정의 상태에서는 정좌를 통해서 놓아버린 마음을 모으고, 동의 상태에서는 주일무적이나 상성성을 통해서 모은 마음을 놓아버리지 않게 하는 공부방법론이다. 주자는 공자와 맹자의 사상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정좌의 수양방법을 말하는데 이는 주자만의 특이한 수양방법이다. 이러한 주자의 사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주자는 주정지경론과 격물치지론을 말한다. 먼저 주정기경론은 인성론, 심성론에 이론적 배경을 둔다. 인성론과 경은 먼저 사람의 악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그 근원을 말한다. 그 근원으로 천명지성과 기질지성을 거론한다. 천명지성은 순수한 선이다. 그러므로 악의 근원은 기질지성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천명지성과 기질지성을 분석해서 먼저 악의 근원을 찾고 그 다음에는 경공부를 통해서 악의 근원을 변화시키면 된다.둘째로 주자는 심성론을 통해서 경공부를 실제로 담당하는 주체에 대해서 서술한다. 경공부를 하는 주체는 마음이다. 그리고 마음은 실제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이있고,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정’의 이면에서 ‘정’을 조절하고있는 ‘성’이 있다. 이 관계를 주자는 ‘심통성정’이라고 했다. 즉 마음은 성과 정을 함께 거느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확인할 수 없는 ‘성’이 드러나면 ‘정’이 되는 것이다. 이때 마음을 잘 조절하면 악한 정이 되지 않는다. 이 공부를 경공부라고 하는 것이다.그리고 주자 경공부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면 정좌와 성찰이 있다. 경공부의 내용으로 정좌를 살펴보면 정좌는 마음이 아직 사물과 접하지 않았을 때 본성을 직접 함양하는 것으로 이는 선불교의 좌선과 같은 것과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성찰은 마음이 사물과 접하여 인식이 일어날 때 사물의 겉모양이나 이름을 따라가지 않고 사물의 핵심인 이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공부를 말한다. 즉 정좌공부를 할 때 어떤 자세를 취하고 마음이 분산될 때 무엇에 집중을 해서 마음의 분산을 막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는 주자어류나 심경을 근거로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일무적, 정제엄숙, 항상성등의 방법을 통해 움직일 때도 언제나 경의 상태에 있을 수 있다.다음으로 주자의 격물치지론의 경우 이론적 배경을 리일분수와 성즉리라고 할 수 있다. 주자 궁리론의 핵심은 개별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공부를 통해서 자신의 본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개별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 어떻게 나의 본성을 확인하는 방법이 되는 것인가 즉 개별 사물의 이치와 내 마음에 있는 본성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주자는 같아질 수 있는 근거로 리일분수와 성즉리를 거론한다.리일이라고 하는 것은 리의 일관성, 공통성, 보편성이고 분수라고 하는 것은 사물 가각의 신분과 역할에서 차이가 생김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는 본질적으로 태극의 원리를 지니고 있어 결국 같은 것으로 각각의 사물의 이치를 궁리하는 것은 결국 리일을 알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즉리란 각각의 사물의 본성은 곧 이치라는 말인데 이처럼 자신만의 내면의 이치뿐만 아니라 각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 내면의 이치를 더욱 궁구히 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 곧 내 마음의 본성을 인식하는 것이다.다음으로 궁리론의 내용으로 격물치지의 과정에 대해서 알아보면. 우선 주자는 사물의 이치를 파악하는 궁리에 대해서 말한다. 주자는 거경공부와 궁리공부는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궁리공부를 잘하면 거경공부가 날로 발전이 있고, 거경공부를 잘하면 궁리공부가 더욱 정밀해진다고 하였다. 이것은 어느 한 측면을 소홀히 취급해서는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궁리공부를 통해서 사물의 이치를 분명하게 인식하면 내 마음도 그만큼 성장하는 것이고, 거경공부가 잘되면 마음이 항상 깨어있기 때문에 사물의 이치를 궁구할 때 더욱 정밀하게 진행할 수 있다. 즉 궁리공부도 사물의 이치를 인식하는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도덕의 본성을 체인하는 공부인 것이다. 이를 통해 격물이 사물에 나아가 사물에 있는 이치를 완전하게 궁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심지리의 확충이라는 의미에서 치와 지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면 격물은 사물이 가지고 있는 자기 고유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자는 치지에 대해서 먼저 치란 사단을 확충하는 것처럼 모든 측면들에 대해서 철저하고 완전하게 미루어 나가는 것이고 지란 사단으로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처음 사물을 궁구할 때는 사물의 이치는 서로 다른 것 같지만 오랫동안의 궁구를 통해서 근원적인 이치를 확인하면 같은 하나가 다른 모습으로 나누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면 사물에 대응할 때 그 사물의 고유의 이치에 따라서 대응을 하지만 그 근원은 하나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서로 나누어지는 결과는 없게 된다. 주자는 이를 활연관통이라고 말한다.주자는 거경공부와 궁리공부를 통한 인격완성에 대해 말한다. 첫째로 거경궁리의 상호관계에 대해 알아보면 거경이 공부의 근본이고 궁리는 거경의 바탕 위에 하는 공부방법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 면으로 서술할 수 없는 측면도 있다. 거경공부를 통해서 놓아버린 마음을 붙잡아서 깨어 있는 상황에서 궁리공부를 하는 도중에 또 마음이 달아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리공부를 하는 도중에 거경공부도 항상 같이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둘의 관계는 항상 같이 움직여야 하는 공동 운명체임을 알수 있다.
유가(儒家)와 자유주의(自由主義) 정치사상의 철학적 토대Ⅰ. 서론우리나라는 과거 유교사회에서 개화의 물결과 근대화를 추구하면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하였다.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의 한계와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폐단이 자리하고 있다. 이제 현대적, 서구적 가치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이러한 반성의 일환으로 정치사상적 관점에서 전통유교와 현대 자유민주주의를 바라보아야 한다.우리의 전통은 유교로 대변되고 현대는 자유민주주의로 대변되기 때문이다. 이 두 사상은 각각 한 쪽 극단으로 치우쳐있다. 유교는 사회적 질서를 강조하면서 자유를 억압했고,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우선하면서 갈등과 소외를 조장했다. 유교와 자유민주주의는 중용의 논리를 통해 보완될 수 있다. 규범론의 차원에서 유교는 천리를 중심개념으로 하는 직관주의이고 자유주의는 자유의지를 중심개념으로 하는 구성주의이다. 정치론의 차원에서 유교와 민주주의의 주권재민, 합의에 의한 정치, 언론의 자유, 국민을 위한 정치, 권력분립이라는 기본원칙을 같이 한다. 유교는 통치권자의 덕치를 통해,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민(民)의 직접참여를 통해 민(民)을 위한 정치에 도달하려고 한다.정치란 원만한 사회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행위이다. 정치의 본질은 사회의 본질을 내포하고 있다. 사회의 본질은 사회 건설의 동기로 파악할 수 있는데, 사회건설의 동기는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자연적 재난, 외부의 침략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둘째, 다양한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셋째, 자연 상태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각각 다른 이 세 가지 동기는 모두 분업과 협동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즉 사회란 분업과 협동의 체계라고 할 수 있다. 분업과 협동은 질서를 통해 실현 가능한데 질서는 각자의 권리와 의무 또는 도리를 공정하게 분배하여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질서는 규범과 공권력에 의해 뒷받침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치란 구체적으로 ‘규범과는 유가의 유기체적 세계관의 전형적인 내용이다. 이 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로 대립적 구조롤 이루어져 있다. 대립물들의 관계는 감응(感應)의 관계이며, 대립물들 사이에는 위계의 차등이 있다. 이러한 자연의 질서는 곧 인간의 질서의 원형이다.이와 같은 유가의 사고방식을 체계적으로 표현한 것이 역학사상(易學思想)이다. 은 만물의 나는 것은 위계 구조 속에서 감응과 순환의 원리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본다. 또한 천지에는 높고 낮음의 위계가 있으므로 건곤과 음양에도 귀천이 존재한다는 위계의 관념과 높은 것과 낮은 것, 귀한 것과 천한 것 모두 각각 정해진 자리가 있다는 정위(定位)의 관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의 기본구조는 변하지 않는데 역학에서는 이를 불역(不易)이라 한다. 음양의 감응을 통해 만물은 끊임없는 나는데 이는 교역(交易)이다. 모든 존재가 나서 자라고 늙고 죽는데 이러한 순환적 변화를 변역(變易)이라 한다.이 불역(不易), 교역(交易), 변역(變易)의 관념은 유가 정치사상의 기본골격을 이루고 있다. 불역이란 위계구조가 인간의 사회의 불변적 구조이며 통치자와 피치자와 관계는 불변한다는 의미이다. 교역은 통치자와 피치자는 호혜적으로 감응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변역은 인간의 사회도 흥망성쇠를 반복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그리고 유기체적 세계관에서 보다 근본적인 내용은 바로 ‘이 세계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는 관념이다. 생명력의 유지라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지니는 머리와 사지(四肢)처럼 국가도 분리될 수 없다. 통치자와 피치자는 공통의 목적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하는 것이다.유가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유가의 세계의 인식문제를 살펴보면 유가는 이 세계의 이법(理法)을 인간의 당위적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자는 이를 계천입극(繼天立極)이라 한다. 계천입극을 추구함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천도(天道), 즉 이 세계의 이법을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 이법을 인식하기 이전에는 계천입극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주자는 인간의 마음은 인식능력과 하기 때문에 세계에 대한 완전한 인식 가능성을 회피한다. 이러한 회의주의적 태도는 자유주의의 한 특성이다. 로크도 인식은 오직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보았다. 지식을 얻는 데에 있어서 경험이 최선의 것이다. 경험은 외부대상으로부터의 자극에 의해서 인간의 마음속에 생기는 주관적 결과이다. 외적 대상은 감각에 의해서 경험에 표상되는 것이기 때문에 경험은 최선의 것이면서도 동시에 충분히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아무것도 지니지 않는다. 후천적 경험을 통해 얻은 관념들에 의해 지식이 형성된다. 경험을 얻는 원천으로는 ‘외적대상에 대한 관념을 얻는 감각’과 ‘심적작용에 대한 관념을 얻는 반성’이 있고 관념은 외적대상으로부터 수동적으로 직접 얻어진 단순관념과 심적작용에 의해 단순관념들을 결합시킨 복합관념으로 나뉜다. 단순관념을 일으키는 원인은 사물의 성질이다. 성질이란 외적 대상이 지니는 힘으로서 인간의 마음에 관념이 생기게 하는 것이다. 사물의 성질은 ‘제1성질’과 ‘제2성질’로 구분되는데 ‘제1성질’은 객관적 성질이고 ‘제2성질’은 주관적 성질이다. 즉 경험적 사실은 주관적인 관념의 결합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단초를 주관주의, 회의주의, 불가지론 등이 발전한다. 로크는 경험론을 주관주의 및 불가지론과 한데 묶었다. 인간은 주관적 관념만을 지니기 때문에 외부세계의 참된 성질에 관해서는 영원히 무지하다. 그러므로 경험주의는 ‘부정의 정신’ 혹은 ‘근거 없는 믿음에 대한 경고’이다. 이러한 경험주의의 회의론은 자유주의가 ‘타협과 협상의 정치’를 추구하도록 뒷받침한다.Ⅲ. 역사관과 가치의 문제유교의 역사관과 자유주의의 역사관을 대비해보면, 상고주의적 역사관과 미래지향적 역사관, 순환사관과 진보사관, 인간주체적 역사관과 법칙결정적 역사관, 우환론적 역사관과 낙관론적 역사관 등으로 그 특성을 분류할 수 있다.유교의 역사관은 상고주의로 그 특징이 규정된다. 이는 유교가 맹목적으로 옛 것을 숭상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옛 것에는 유교가 이상으로 대해 무한한 연민의 정을 품는 것이다. 책임이란 연민의 정을 바탕으로 하여 민생을 고통에서 구해냄을 자기의 임무로 삼는 것이다. 삶의 유일한 터전인 현실이 아무리 숱한 부조리와 혼란으로 오염되어 있더라도 그러한 현실을 바로잡으려 하는 것이 유자들의 역사적 사명인 것이다.자유주의의 경우 초기 자유주의 정치사상을 대표하는 홉스와 로크는 특별한 역사철학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을 받아 18세기 계몽주의적 진보사관이 발생했다. 칼 뢰비트는 계몽주의적 진보사관의 특성을 종말론적 모델의 세속화라고 규정하였다. 즉 계몽주의적 진보사관은 형식적으로는 기독교의 목적론적 역사관의 틀에 내용적으로는 그리스적인 인문주의적 세속성을 담고 있다는 말이다.기독교적인 역사관은 세계사는 하나의 전체로서 미래의 계획이나 목표를 지니고 있으며, 그러므로 역사의 과정이 가치있고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러한 목적론적 역사철학자들은 역사과정의 일반성 또는 사건전개의 전과정에 내재하는 의미 또는 의의를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또한 그들은 대체로 역사과정의 필연성을 믿고 있다. 목적론적 역사관은 인간의 역사가 궁극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어디로 향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발전방식 또는 진보의 개념이다. 이러한 서양의 목적론적 역사관은 기독교적 역사관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이러한 종말론적 모델의 세속화로서 계몽주의적 진보사관의 특성은 첫째로 미래지향적 역사관이다. 목적사관이나 진보사관에 의하면, 과거보다는 현재가 발전한 것이며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욱 좋은 상태인 것이다. 과거의 교훈보다는 미래의 희망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유학의 상고주의적 역사관과 대비되면서도 역사의 이상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둘째, 같은 맥락에서 진보사관 또는 발전론적 역사관을 들 수 있다. 계몽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진보 또는 발전이란 지상낙원의 실현이라는 역사의 목표에 접근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역사를 일회적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반면에 유학은 역사 역사의 목표를 지상낙원이라 하였다. 본래 기독교에서 추구하는 역사의 목표는 천상낙원이었다. 천상낙원은 마음이 가난한 자를 위해 준비된 금욕의 낙원이었다. 하지만 종교개혁이후 개신교는 세속적 부를 구원의 징표라고 합리화하였다. 금욕주의적 가치관이 그리스적 인문주의와 결합되면서 무한한 세속주의로 탈바꿈된 것이다. 본래 그리스의 인문주의는 세속적 욕망을 이성에 의해 알맞게 통제해야 한다는 중용의 논리였다. 하지만 계몽주의적 세속성은 욕망의 무한한 충족을 추구하는 논리였다. 홉스의 무한욕망론이나 로크의 무한소유론의 영향 하에서 계몽주의적 세속성의 화신인 공리주의가 탄생한 것이다.이러한 지상낙원의 관념은 서양의 근대문명을 이끈 원동력이었지만 동시에 사회적 갈등의 심화, 가치관의 전도 등의 문제를 발생시켰다.Ⅳ. 인간관과 정치체의 목적유가의 인간관을 상징하는 명제는 맹자의 성선설이다. 맹자는 사단을 근거로 인간의 본성이 선함을 주장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지만, 그 본성을 구체화시켜주는 질료인 기질로 인해 선한 본성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문제를 설명하는 것이 성리학의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이다.성리학에서는 이(理)와 기(氣)로 만유(萬有)의 존재를 해명한다. 주자는 태극(太極)을 표준이나 본(本)으로 해석한다. 주자에 의하면 이(理)는 만물의 존재근거로서 더할 수 없이 지극하기 때문에 태극(太極)이라 하며, 무형무위(無形無爲)하고 무성무취(無聲無臭)하기 때문에 무극이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즉 태극은 완전무결(完全無缺)하고 순수지선(純粹至善)한 본(本) 또는 도(道)로 규정된다. 태극은 만물이 그것을 본받고 본뜨는 본(本)이다. 도(道)란 길로서, 모든 사물이 본받아야 할 진정한 존재의 길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자는 도를 당위법칙으로 규정하였다. 본이 바로 당위지칙(當爲至則)이 된다는 것이다.또한 주자에 의하면, 이(理)는 형이상자(形而上者)로서 도(道) 또는 본(本)으로 규정되고 기는 형이하자(形而下者)로서 기(器) 또는 구(具)로 규.
노장(老莊)의 정치사상1. 노장의 생애와 시대노자의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이었다. 노자는 멸망한 은나라의 유사(遺士)였을 것인데, 고현(苦縣)으로 이사와서 살았다. 옛날의 예(禮)에 익숙했기 때문에 주나라 수장실(守藏室)의 기록관이 되었다. 그의 나이는 공자보다 많았고, 공자와 더불어 예를 논한 적도 있는데, 공자가 그를 칭찬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노자는 망국의 후예로서 난세에는 유위(有爲)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마침내 도덕의 학문을 닦음으로써 “스스로 재능을 숨겨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힘썼다”. 근세의 학자들 가운데는 도덕경(道德經)을 노자가 지었다는 것을 의문시하는 경향이 있다. 노자가 세상을 피하여 자신을 감추려고 한 것을 생각하면, 스스로를 드러내는 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5천 자의 책은 그의 후학인 태사 담(太史 ?)의 저작인지도 모른다.장자는 “삶의 자취가 없고, 행동이 전하여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체로 노자와 비슷하다. 에 따르면 장자는 몽(蒙)의 사람으로 이름은 주(周)다. 그는 양혜왕과 제선왕과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다. 그의 학문은 박학해서 모든 서적에 막히는 것이 없었는데, 근본은 노자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그의 문장은 매우 훌륭했고, 세상일을 가리키는 것이 적절하였고, 그로써 유가와 묵가를 공격하였으므로 당시의 석학이라고 하는 사람도 공격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웠다.노장의 사적에 관하여 전해진 사실은 매우 적으나, 두 사람이 모두 송나라와 관계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송은 은나라 유민의 나라로 노장의 사상은 은문화를 배경으로 했던 것이며, 이 점에서 유묵과 함께 논의될 수 있다. 유묵과 달리, 노장은 소극적인 경향을 띠었으며, 손퇴(遜退)와 영정(寧靜)을 개인의 안전과 만족의 방법으로 삼았다. 그들의 태도는 지극히 비판적이었다.노자의 정치사상은 공자의 그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공자는 평화로운 시대의 부흥을 바랐고, 노자는 어지러운 나라에 살면서 걱정이 많았다. 그들은 학문의)이다. 보통 사람들은 강장(强壯)이 승리에 이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강장의 결과를 보면 모두가 대체로 패망을 면치 못하는 것들이다. 노자에 의하면, 이러한 것은 모두 ‘반’의 도를 깨닫지 못해서 생기는 실패이다. 왜냐하면 “약하다는 것은 도의 효용”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았을 때는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으면 굳고 강해진다. 즉 견강(堅强)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유약한 것은 삶의 무리인 것이다. 이는 모든 것에서 그럴 뿐 아니라, 천도 역시 그것을 면할 수 없다.반면에 우리가 유순한 것을 볼 때, 그 쓸모가 아주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늘은 다투지 않고 이기며, 견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는 물보다 나은 것이 없듯이 유약은 자기보존에 충분한 것이며, 강강은 반드시 꺾인다. 다투지 않는 것은 승리에 이르게 될 수 있으며, 이러한 도가 없을 때 그것은 일찍 멸망한다. 그러므로 ‘유약은 강강을 이긴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실로 움직일 수 없는 지당한 도리이며, 처세의 요체다.둘째는 겸하이다. 겸하도 유순의 한 표현이다. 강과 바다가 낮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계곡의 왕자가 될 수 있다. 강과 바다는 겸하의 효용을 잘 설명해준다. 왕공은 자신을 일컬을 때 사람들이 싫어하는 고(孤), 과(寡), 불곡(不穀)을 사용한다. 이는 인사에 있어서 겸도(謙道)에 가장 잘 맞는 것이다. 만일 겸하를 정사에 이용한다고 하면, 안으로 안정되고 밖으로 평화로울 것이니, 안팎에서 모두 필승의 약속이 된다. 왜냐하면 “사람을 잘 쓰는 자는 남의 아랫자리에 처신”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백성의 위에 있고자 하면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백성들은 그에게 위압을 느끼지 않고 해로은 것으로 느끼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하 사람들이 즐겁게 추대하고 싫어하지 않는다. 또한 성인은 남과 다투지 않기 때문에 그와 다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는 겸하가 내정에서 발휘하는 효용이다. 만일 겸하를 외교에 응용한다고 하면, 약국과 소국이 서로를 겸하로 대하여 어려움은 배제되것은 바로 그의 사상의 최종 목적을 말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의 술은 ‘약자(弱者)가 도의 작용’이라는 생각에 주로 근거하여 성립되었고, 또 그 작용은 소극적인 것에의 경향을 띠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를 살핀다면 소극적인 것 가운데 적극적인 태도가 함께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반자가 도의 운동’이라고 한다면 반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자의 의도는 바른 것을 얻는 데 있는 것이며, 반을 바라면서 반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닌 것이다. 노자가 이른바 ‘바른말은 진리에 반대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은 그 작용이 ‘물러남으로써 나아감’에 모두 있으며, 또 그것은 지족과 장보(長保)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노자의 학을 순전히 허무주의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또 만일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대하는 자가 앞에서 말한 방법들을 하나하나 봉행할 수 있다면, 천하만민은 각기 그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할 것이고, 그 생존을 평안하게 할 것이다. 정부가 시행하는 각종 규제는 아주 적게 될 것이며, 또 더구나 그것들은 백성들의 언행에 이미 나타난 바람과 일치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전제독단에서 나오는 명령과 핍박은 아니다.이러한 이론은 유, 묵, 법가의 주장과는 크게 다르다. 한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만민의 주인이 되게 하는 데에 있어서 유, 묵, 법가는 그 입장을 같이 한다. 근대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유, 묵, 법가는 모두 군주전제의 관점에 접근하는 반면에 노자는 명목상의 임금 아래서 행해지는 인민에 의한 정치를 지향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노자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민치사상을 수립하는 근거를 찾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의 유약 겸하의 방법은 소극적인 정치적 항의가 되고 말았다.3. 무위(無爲)이나 불위(不爲)는 없다.노자사상의 기본 개념은 둘이다. 하나는 ‘반(反)’이고, 다른 하나는 ‘무(無)’이다. 그의 정치철학의 주요부분은 후자에 근거하고 있다. 노자는 우주를 깊이 관찰하고, 천지만물이 모두 자연의 도에서 생성되고 중벌이 가져오는 반응이다. 군대가 주둔하던 곳은 가시덤불이 우거지게 마련이고, 큰 전쟁이 있은 뒤에는 반드시 흉년이 든다. 이것은 무력의 남용이 낳는 나쁜 결과를 가리킨 것이다. 천하를 이와 같이 다스리는 것은 무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해로운 것이며, 전혀 다스리지 않음만 못하다.가혹한 정치에 대해서는 노자뿐만 아니라 공자도 걱정했다. 공자는 인의충효의 덕과 예악 제도를 통해 그것을 해결하고자 했다. 노자에 의하면, 이러한 것은 유위에 의거하는 것이며, 따라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들이다. 인의예절이 자연의 근본을 배척한 이상, 그것으로써 난을 구하고자 하는 것은 소용이 없는 일이다. 가혹한 정치와 포악한 정치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도로 누르는 것뿐이며, 또 천하가 ‘스스로 안정되기’를 기다림으로써 “만물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돕고 감히 인위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일 따름이다.도는 만물은 낳는데, 그 것은 무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위는 또 목적 없이 하는 행위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대개 어지러운 정치는 개인의 사심에서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사의(私意)를 없애는 것이 곧 자연의 무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성인은 자신을 뒤로 미루지만 자신이 앞서게 되며, 자신을 도외시하지만 자신을 존재케 한다. 성인은 무위의 일을 처리하며, 불언의 가르침을 행한다. 성인이 이와 같으면 공을 이루고 일을 성취하여도 백성들은 모두 우리 자연이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천하는 다스려지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을 탐하여 더 얻으려고 하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며, 얻는 것을 욕심 내어 거짓의 행동을 하는 것은 항상 지혜에서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무위의 다스림에 있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아는 것도 없고 욕망도 없게 해야 한다. 현명함을 숭상하지 않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욕심을 적게 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빈틈없이 잘 살피는데 나 혼자 어둡고 어리석다 생각하여 지혜를 버려야 한다. 욕심모든 정치제도에 반대했다고 말할 수 있다.4. 제물외생(齊物外生)노장사상은 모두 ‘위아(爲我)’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노자는 개인의 자존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유약과 겸하의 방법을 발전시켰다. 또 그는 개인의 자존에 알맞은 사회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무위(無爲)의 이론을 세웠다. 그러나 개인의 ‘장보(長保: 오랜 삶)’와 ‘불태(不殆: 위태하지 않음)’의 추구라는 노자의 목적은 사실상 성취하기 아주 어려운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복잡해서 변화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삶을 후하게 하고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절실하면 할수록 안위와 존망에 대한 생각도 더욱 두터워진다. 어떤 이가 오랜 삶을 산다고 해도 삶의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기는 힘들 것이다.장자의 사상은 이러한 노자의 사상을 보완한 측면이 있다. 그는 위아사상을 버리고, 제물외생(齊物外生)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여기서는 ‘천락(天樂)’과 ‘소요(逍遙)’가 인생의 최고 경지가 되었고, ‘장보’와 ‘불태’는 그 다음의 지위로 떨어지고 만다.장자의 제물외생의 주장도 천도(天道)에서 도출된 것이다. 장자는 만물이 모두 무형(無形)의 도에서 생성되었고, 또 도는 만물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이 두루 존재한다고 인식했다. 모두가 ‘도’에서 함께 나오기 때문에 물(物)과 아(我)사이에 경계를 긋기가 어렵다. 또 그 본성이 각기 ‘덕(德)’을 갖는 것으로 말한다면, 모든 존재는 각기 그 이치에 맞는 것이 있다. 일단 이러한 의미가 확립되면, 피아, 시비, 귀천의 구별은 모두 그 절대적인 한계를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균일하지 않은 만물이 균일한 지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시와 비와 귀와 천은 모두 한 가지로 동등하다.제물외생이 이루어지면 “천하를 천하게 감추는 것이 되고,”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으면서 영원이 존재하는 경지에 기유(寄遊)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과거도 현재도 없으며, 삶과 죽음이 상통하게 된다. 슬픔이나 기쁨도 삶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개인생활의 미와 선에서 이것보다
교육과정 사회학의 관점에서 본 『윤리와 사상』1. 교육과정 사회학의 등장과 그 배경과거 영국에는 11 plus examination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이 제도에 따라 11세가 된 학생들은 시험을 쳐 상급 학교로 진학을 할 것인지, 직업을 위한 전문학교로 갈 것인지 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는 각자 타고난 사회경제적 지위가 있기 때문에 그 출발선부터가 차이 발생하며, 결국 상류 계층의 학생들은 높은 학업 성취도로 상급 학교에 진학하여 고급 엘리트 관료가 되고, 대부분의 노동자 계층의 자녀들은 직업전문학교에 진학하여 다시 자신의 부모와 같은 계층의 사회인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사회에서의 계층 이동이 힘든 것이 교육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11 plus examination을 폐지했고, 진로 선택을 보류하고 진학과 취업의 호환이 가능한 종합 학교(comprehensive school)을 설립했다. 또한 1960년대에 들어서 기능주의의 바람이 불면서 교육을 일종의 투자로 여겨 교육을 통해서 계층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사조가 사회적으로 확대되었다. 당시 영국의 보수당과 경쟁구도에 있던 노동당은 이러한 기능주의 사조를 받아들여 교육을 통하여 노동자 자녀들이 신분상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교육 투자 우선지구를 설정하여 소외계층 자녀에게 교육적 혜택을 주도록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교육 개혁의 실질적인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고, 60년대 미국과 영국의 연구 결과를 통해 도출된 공통적인 결과는 학업성취도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결국 가정의 사회 경제적 지위(Social Economy states)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보고서가 1966년에 발표된 콜먼 보고서이다. 콜먼 보고서는 "School can't make difference.", 즉 학교는 무력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불평등을 낳는 요소가 교육제도가 아니라면, 과연 무엇 때문인가? 신교육사회학은 기존의 사회 계층 구조를 중심으로 이유를 찾던 거시적 관점을 버리고 미시적인 관점으에서는 절대적 진리나 보편적인 것이 아닌, 사회구성원들이 만들어가는 것으로 학교 교육의 내용으로 선정되는 지식 역시 특정 시대, 사회, 문화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지식은 상대적이며 가변적인 것이다.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달라지며 시대 혹은 상황이 변화면 참이라고 말해지는 지식 역시 변화하는 것이다.그렇다면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은 누가 결정하며, 누구에게 유리한가? 대체적으로 교과 과정에서 배울 내용을 정하며 교과서를 집필하는 것은 그 대학교수, 교육계의 고위 관리, 그 분야의 전문가 등으로 사회의 지식인, 고학력자로 사회의 상위계층에 위치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학교 교육의 내용은 사회 기득권층의 이해관계를 고려하고 반영하여 결정되는 것이다. 기득권층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지식이 가치있는 지식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가치가 없는 지식이 되는 것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는 대학 입시에 영어와 수학 과목이 필수적이다. 영어나 수학과 전혀 관계없는 학문을 전공하려는 학생에게도 이는 똑같이 적용된다. 내가 미술을 전공하고 싶더라도 나의 고등학교 미술 성적은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대학에서는 나의 영어와 수학 점수를 보는 것이다.실제 우리나라에서 생활을 하며, 혹은 직장에서 영어를 구사할 상황은 거의 없다. 영어를 유창하게 해야만 할 사람도 많지 않다. 소수의 사람만이 영어를 실생활에서 사용을 하게 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입시에도 취업에도 영어는 필수적이다. 실제로 영어에 유리한 사람들, 즉 외국에 유학을 다녀오거나 할 정도의 형편이 되는 사람은 사회의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영어를 중요시하는 교육은 기득권층의 자녀에게 유리한 내용인 것이다.신교육사회학이 대두되며, 우리의 일상 세계와 학교 교육내용의 핵심인 교과서적 지식에 대한 기존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고, 교육과정 사회학이 새롭게 등장했다. 이는 교육내용을 사회학적 시각과 방법론으로 그 사회적 성격을 밝히려는 학문으로서 학교에서 가르치는 측면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1)『윤리와 사상』교과의 목표『윤리와 사상』은 말 그대로 나라의 앞날을 짊어지게 될 학생들로 하여금 인간의 삶 속에서 등장하는 윤리와 사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동?서양의 윤리 및 현대 사회 사상의 흐름과 특징을 파악하며, 한국 윤리의 사상의 기본 틀을 정립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교과목이며, 한국인으로서의 주체적인 윤리관과 사상적 틀을 형성하게 하려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서울 대학교 사범 대학 국정 도서 편찬 위원회, 2003, p. 2)『윤리와 사상』 과목은 국정 교과서로, 전국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한다. 또한 수학능력시험에서 사회탐구영역의 윤리 과목의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책이다. 또한 윤리과목은 사회탐구영역 선택과목별 응시자 수의 순위에서 4위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과목으로, 결론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윤리와 사상』 교과서를 공부하며, 따라서 『윤리와 사상』 교과서의 영향력 역시 클 것이다.이 교과서를 통해서 세계의 여러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배우고, 그로 말미암아 자신의 삶을 바람직하고 합리적으로 개척하기 위한 윤리 사상을 정립하게 될 학생들에게 과연 이 교과서는 평등한가?(2)지배이데올로기의 문제『윤리와 사상』은 pp.38-40에 걸쳐서 민주 사회에서의 덕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민주 사회에서 강조되는 덕목으로는 인권 존중, 공정성, 준법정신, 책임감, 그리고 정직성 등이 있고, 이러한 덕목들을 지켜야만 바람직한 민주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고 한다. 자유 민주사회에서의 중시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는 사회 전체, 국제 사회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강성한 국가를 이루기 위한 덕목이 더 크게 제시되어 있어 국가주의적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이 경우 사회 지도층은 국민들에게 국민을 위한 국가가 아닌, 국가를 위해 일하는 국민의 이미지를 바람직한 것으로 인식시킬 수 있어, 그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국민들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또한 Ⅲ. 사회사상의 흐름과 변화 단원에서는발전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과정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에서 시행되는 경제 체제는 완벽한 자유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주의의 시장 경제가 가미된 혼합적인 수정 자본주의 경제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적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인 자유민주주의 사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적 인식과 공산주의에 대한 뿌리 깊은 부정적 관점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바람직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교육을 위해서는 국가적 이데올로기만을 옳은 것으로 여겨 학생들이 그 이데올로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 이데올로기의 특성과 발전 과정, 초기의 발생 이유까지 정확하게 설명하여 학생들 스스로 그에 대해서 평가하도록 하는 것이 옳다.뿐만 아니라, 분단 상황의 우리나라에서 당면한 심각한 문제로 통일을 내세우며, 통일을 통해 이루어야 할 것이 '민족 공동체'임을 말하고 있다. 통일에 대해서 민족성을 내세우는 것은 적절한 통일의 근거가 아닌, 그 사람의 도덕적?인격적인 부분을 자극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그러한 주장을 거절하지 못하게 된다. 통일을 당연히 이루어야 할 민족의 목표로 내세움으로써 통일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비인간적인 사람으로 몰아세울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 통일을 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 분단 상황에서의 대내외적인 불안감 그리고 통일을 해서 발생하는 국가의 이득등의 정당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피교육자가 스스로 판단하여 자신의 관점을 확립하는 윤리와 사상의 교육목적에 합치할 것이다.(3)성차별적 교육내용성차별적 교육내용을 논함에 있어서는 외형적 측면과 내용적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외형적 측면으로는 집필진?연구진?심의진의 성비를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윤리와 사상』의 연구진, 집필진, 심의진의 총 47명 중 단 다섯 명만이 여성으로, 전체 중 여성의 비율이 겨우 10%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특히 연구진과 집필진은 모두가 남성이었다. 또한사, 학자, 운동하는 모습, 군인, 스님을 포함한 종교인 등의 모습으로는 남성이 주로 나타나고, 여성의 경우에는 교사, 봉사하는 모습, 간호사, 매장의 직원, 시장 보는 모습 등이 주로 나타나 있다. 이 교과서에서도 남녀 성 인식의 변화 등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과서를 통해서 알아볼 수 있는 실태에서는 자리 잡은 성차별적 교육 내용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이렇듯 교과서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성차별적 내용에 의해 학생들의 인식 속에도 이러한 성차별적 내용이 자연스럽게 내면화될 것이다. 그를 통해 현재 유지되고 있는 성차별적 사회 인식 역시 그대로 내면화되어 문화로 전승될 것이고, 그렇다면 현재의 불평등한 구조, 사회 내에서의 성차별의 요소 등 역시 그대로 전승될 것이다.(4)문화제국주의적 측면『윤리와 사상』에서 등장하는 주요 사상은 크게 동양윤리, 서양윤리, 한국윤리, 세계윤리로 나뉜다. 동양윤리에는 공자, 맹자, 순자를 시작으로 하여 중국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들과 유교 윤리, 도가 윤리, 불교 윤리가 기술되어 있다. 한국 윤리 역시 이러한 중국의 철학을 기초로 하여 우리나라에서 발전했던 사상과 유교 학자들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또한 서양윤리에서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기반으로 하는 그리스 철학에서 출발한 관념론과 경험론, 그리고 기독교에서 파생된 신학자들을 위주로 설명한다. 이러한 사상가들은 주로 영국과 독일에 집중되어 있다.문화제국주의론에 의하면 제국주의 시대에서 제 3세계에 속하는 식민 국가들의 경제와 정치가 큰 나라에 종속되었듯이 그 나라의 문화와 교육 역시 제 1세계의 국가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윤리와 사상』에 등장하는 사상가들의 주요 국가, 즉 중국, 독일, 영국 등의 국가 역시 우리나라에 영향을 많이 끼치고 있는 선진 국가들로, 우리나라의 교육이 그 나라들에 예속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통적인 지식관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에서 편찬한 교과서에 실린 지식이라면 당연히 옳은 있다.
영화 리뷰클레몽 마티유는 성공하지 못한 음악가로 이 학교에 음악을 가르치는 음악 교사로 들어온다. 이 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이 가난하거나 고아이다. 모항주는 삐딱선을 타고, 페피노는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어 한다. 아이들은 수업 듣는 것은 고사하고 교실에 가만히 있기도 힘들어 한다. 또, 교장은 그런 아이들을 체벌로 다스린다. 클레몽 마티유는 이 학교의 처참한 현실과 그 속에 방치된 아이들을 방관하지 않는다. 교장 라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클레몽 마티유는 합창단을 만들고 자신만의 교육 철학을 펼쳐나간다. 그의 끊임없는 인내와 노력 덕분인지, 아이들은 점점 밝아지고, 학교의 분위기도 날이 갈수록 좋아진다. 결국 마티유는 학교에서 쫓겨나지만, 그의 유산은 아이들에게 남아 모두 의젓한 어른으로 성장한다.클레몽 마티유는 우리 예비 교사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클레몽 마티유는 첫 시간에 아이들이 자신의 가방을 훔쳐가고, 숙소에서 자신의 소지품을 훔쳐가고, 거짓말을 하고, 온갖 사고를 쳐도 무작정 체벌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교육의 신념 아래서 아이들을 이해시키고, 아이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도록 한다. 학교에서의 체벌 논란이 일면서 학생인권조례가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지금은 교권의 붕괴라는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다. 이는 학생과 교사 어느 일방의 문제가 아니다. 일부 교사의 그 자리에 맞지 않는 행위와 그에 반발하는 철없는 학생들의 행동의 결과이다. 교사들은 클레몽 마티유처럼 학생들의 돌발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에도 인내심을 가지고, 좀 더 학생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클레몽 마티유는 아이들을 감화시키는 데 음악을 이용했다. 마티유가 본래 음악가였는데, 그는 그의 재능을 통해서 아이들을 감화시킨 것이다. 일단 음악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면, 음악과 같은 예체능 교과는 아이들의 정서를 안정시키고 감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남녀노소를 떠나 좋은 음악은 기분을 좋게 하고, 예술 작품은 감동을 준다. 그러므로 전통적으로 인지적 영역에 속한다고 여겨지던 수학, 과학, 사회 등의 교과에서도 획기적인 방안을 통해서 정의적 영역과의 통합을 시도해야한다. 예를 들면, Coldplay의 Viva La vida라는 곡은 프랑스 혁명을 루이 14세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역사적 사실은 E. H. Car의 말처럼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현재의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사회과 수업에서 프랑스 혁명에 대해 배울 때 학생들에게 Coldplay의 노래를 들려준다면 학생들은 프랑스 혁명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 볼 수 있으며, 동시에 프랑스 혁명에 대한 지식을 인지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교과의 모든 부분에서 이러한 방식을 적용하기는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교사는 평소에 자신의 경험을 통해 PCK를 쌓아 갈 때, 단순히 경험을 말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 영화 등의 다양한 자료를 통해서 더욱 효과적인 교수-학습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