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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신술 -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 비교
    한국희곡론「호신술-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반민족적 자본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라는 공통점과 정치적 성향으로 인한 차이점201420118 국어국문학과 최가연희곡 과 는 모두 반민족적 자본가와 그들에게 기생하는 세력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다. 또한, 두 작품 모두 작품의 끝에 반민족적 자본가들의 몰락을 그려내고 있다. 반민족적 자본가와 그 관련 세력들이 모두 척결되는 미래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두 작품은 ‘반민족적 자본가에 대한 비판’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각 작품을 집필한 송영과 오영진, 두 작가의 정치적 성향은 크게 다르다. 송영은 좌익 계열 예술단체인 카프에 속해 있었던 반면 오영진은 우익 계열의 문화 단체인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의 북한지부를 조직하고 위원장에 임했던 인물이다. 이런 정치적 성향의 차이로 인해 ‘반민족적 자본가’가 내포하는 의미에서 약간의 차이가 발생하고, 반민족적 자본가를 몰락시키는 주체도 달라진다. 이러한 점에서 착안하여 과 를 자세히 비교 분석하고, 이를 통해 두 작품 속에 내재된 정치적 성향과 지향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한다.앞서 말했듯이 과 는 모두 반민족적 자본가와 그들에게 기생하는 세력들에 대해 비판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속 반민족적 자본가를 대표하는 인물은 김상룡이다. 김상룡은 일제 치하의 구조적 모순에 안주하면서, 공장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과격하고 폭력적인 것이라고 치부하며, 끝내는 일제의 경찰력으로 제압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반민족적 자본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은 김상룡이 파업에 대한 대책으로 ‘호신술’을 배우는 것을 통해 반민족적 자본가에 대한 비판의식을 보여준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호신술 몇 가지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김상룡은 해결책으로 호신술을 선택한다. 김상룡의 현실인식이 얼마나 퇴행적이고 소극적인지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잘못된 행위로 축적한 부를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고 누리는 반민족적 자본하고 재산을 불려나가는 인물이다. 이렇게 온갖 비리와 범죄로 부를 쌓던 이중생은 꼬리가 잡혀 재산을 몰수당할 위기에 처한다. 이런 위기 속에서 그가 변호사와 함께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위장 자살이다. 위장 자살을 한 뒤, 사위에게 재산을 물려주고 사위의 이름으로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이중생은 자신이 몇 년을 더 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죽은 척하고 남의 이름으로 산다는 이 터무니없는 계획을 현명하다고 믿는다. 속 김상룡 같이 이중생의 좁고, 어리석은 현실인식에 대한 비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속에서도 자신들의 옳지 못한 부의 축적을 권리로 생각하는 반민족적 자본가의 가족들이 등장한다. 이중생의 아내 우씨와 큰 딸 하주가 바로 그런 인물들이다. 1막의 시작에서 우씨는 박씨에게 집안의 유복함을 자랑하는데, 이 대목에서 우씨가 이중생이 국유림을 사유지처럼 사용하는 것에 동조하고, 그런 행동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하주 역시 자신의 아버지인 이중생을 국유림의 관리인이자 주인으로 칭하고, 재산 몰수라는 판결이 부당하다고 말한다. 이런 대사를 통해서 하주는 반민족적 행위를 통해 얻어낸 재산을 당연하듯 누리고 있고, 심지어는 그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는 자각조차 없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처럼 뻔뻔한 반민족적 자본가와 똑같은 모습을 지닌 가족들을 통해 반민족적 자본가들의 부당한 행위를 더 강하게 표현하고, 그에 대한 비판적 시각 역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또한 속에서는 김상룡과 그 가족들의 행동을 희화화하여 풍자하고 있다. 1장에서 김상룡은 노동자들의 파업에서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호신술을 배우지만 오히려 그 호신술 때문에 몸을 다친다. 이 장면에서 김상룡은 뚱뚱한 몸과 다르게 아내의 호신술에 의해 가볍게 메쳐진다. 그리고 2장에서 김상룡의 아내인 경원은 호신술을 배우다 기절까지 한다. 사건의 해결을 위해 대책을 마련하지만, 그 대책이 오히려 문제를 발생시키고 끝내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장면을 통해서 김상룡이 내세운 호서는 김상룡과 그의 가족에게 아부하는 의사와 변호사의 모습이 나온다. 변호사는 2장에서 짧게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김상룡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대사(월급도 조금 내리고, 밤일은 되도록 안 시키겠다는 당연한 말을 양보했다고 선심 쓰듯 말하는 대사)를 말할 때, 노동자들이 공연히 과격하다고 말하며 김상룡에게 동조한다. 또한 하인이자 노인인 춘보가 호신술에 의해 강하게 메쳐질 때는 엄살이라 말하면서, 젊고 건강한 경원이 기절하는 과장된 모습을 보이자 걱정하는 이중적 면모를 보인다. 의사는 이런 이중적 면모를 조금 더 강하게 드러내는 인물로 급한 환자를 두고 김상룡네 진찰을 위해 방문하는가 하면, 김상룡의 뚱뚱한 몸을 건강과 미가 겹쳐있는 몸이라고 아부한다. 또한 춘보의 아픔은 무시하다가 상룡의 딸의 작은 상처나, 경원의 호들갑에는 급하게 반응하며 입원까지 시키는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은 두 인물을 통해 춘보를 대할 때와 상룡의 일가를 대할 때의 차이를 확연하게 드러냄으로써 반민족적 자본가에게 기생하는 지식인 세력의 이중적 면모를 고발하고, 풍자하고 있다. 속에서는 최 변호사가 반민족적 자본가에게 기생하는 세력의 대표적 인물로 나타난다. 최 변호사는 이중생의 고문 변호사로 이중생이 재산을 몰수당하는 것을 막고자 돕는 인물이다. 최 변호사는 이중생이 비리로 부를 축적했다는 것을 알지만 그에게 기생하여 이익을 얻고자 그를 돕는다. 또한 최 변호사는 이중생을 위대한 사업가로 칭하거나, 국회 특별조사위원에게 이중생을 변호하는 모습을 보이며 이중생에게 아부한다. 그러나 일이 틀어져서 이중생이 재산을 전부 기부하게 되자 여태껏 보였던 태도에서 돌변하여 이중생에게 큰소리를 치며 수수료를 요구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런 이중적인 태도뿐만 아니라 최 변호사는 스스로가 상속법의 대가라고 했지만 고인의 빚이 상속된다는 상식을 모르는 모습을 보인다. 은 이를 통해서 반민족적 자본가에게 기생만 하고 실제적인 능력은 없는 지식인들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드러내고 있다.이렇게이렇게 노동자를 깔보고, 아래계급으로 보는 인식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상룡은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를 침해하면서도 그것을 많이 양보한 것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없는 놈일수록 다소곳하고 잘 살 생각들은 못하고 그저 멀쩡하게 서로 똑같이 나눠 먹자는 수작만 한담‘이라는 대사를 통해서 착취를 견뎌내고 저항하지 않는, 고분고분한 노동자를 원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즉 속 반민족적 자본가는 반민족적 행위에도 비판적 시각을 두고 있지만, 그런 반민족적 행위를 통해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자본가‘라는 것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반면 속에서 비판하고자 하는 반민족적 자본가는 반민족적 행위를 통해 부와 권력을 얻고, 부정과 비리로 그 이익을 이어가고자 하는 인물이다. 에서 이중생의 모습은 일제 치하 속 부를 쌓아 세력을 키워나갔던 반민족적 자본가, 친일 자본가들을 여실히 나타내는 모습이다. 이중생은 화선 절충식(일본과 조선의 절충식) 저택에 살면서 값진 물건들을 쌓아놓고 사는 인물이다. 그는 삼대독자인 하식을 지원병으로 보낼 만큼의 친일파이다. 이런 이중생이 일본이 물러가고도 잘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일제치하에서 터득한 처세술을 미군정 밑에서도 사용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중생이 해방 이후 국유림으로 회수된 산림을 사유지처럼 사용해 반도임업을 소유하고 있던 모습이나, 그것을 바탕으로 ‘농림대신, 상공대신, 재무장관’ 등을 꿈꾸는 모습은 해방직후 재기를 노리는 친일세력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배임, 횡령이라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위장 자살로 자신의 부(富)가 유지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 모습을 통해서 일제 강점기부터 권력층에 속해 있던 이중생의 속성을 보여준다. 세상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당대의 권력층과 가까이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친일 군상들의 속물적 모습을 정확히 꼬집어 낸 것이다. 속 반민족적 자본가는 반민족적 행위를 통해 부를 쌓은 자본가들과 싸우겠다는 메시지를 통보받는다. 그리고 춘보의 ‘똑 둑이 터진 것 같습니다그려.’라는 마지막 대사를 통해 쌓여있던 노동자들의 분노가 터지면서 그들의 저항이 홍수처럼 밀려올 것임을 암시하고 막이 내린다. 노동자들에 의해 반민족적 자본가와 그들의 기생 세력들은 몰락할 것이고, 끝내 노동자들이 승리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다.반면 속 반민족적 자본가를 몰락시키는 세력은 김의원으로 표현된 건강한 국가와 그 국가를 지지하는 새 시대의 인물들이다. 이중생은 자살을 위장하고, 모든 재산을 사위인 송달지에게 넘긴다. 그리고 장례를 치른 뒤, 빼돌린 재산으로 사업을 이어나가려 한다. 이런 그의 속셈을 위해서 이중생의 고문 변호사인 최 변호사는 장례식장에 찾아온 국회 특별조사위원인 김의원을 잘 대접하여 구슬리려 한다. 그러나 김의원은 대쪽 같은 태도로 단호하게 이중생에 대한 처벌을 선고한다. 이렇게 이중생의 술수에 말리지 않고 부정과 비리에 응당한 벌을 내리는 김의원은 혼란스러운 정세를 수습하고 세워진, 다른 권력에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국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친일 세력에서 미군정 세력으로 옮겨가며 기득권을 유지하는 반민족적 자본가를 합당하게 처벌하는 진정한 국가의 모습인 것이다. 에는 이런 건강한 국가를 도와 이중생을 완전한 몰락으로 이끄는 인물들도 존재한다. 그 인물들은 하연, 송달지, 하식이다. 하연은 가장 먼저 나서서 이중생의 비리, 속물적 행태를 지적하고 나선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인 이중생을 두고 ‘전과자’라고 하고, ‘모리배 타도, 우리 아빠 같은 것 숙청 데모’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이중생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또한 3막에서는 이중생과 같은 친일 잔재 세력 숙청을 위한 시민대회에 참가하면서 새로운 미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인다. 송달지는 하연과는 달리 우유부단하고 이중생과 아내 하주의 눈치를 보는 인물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김의원의 병원설립에 전 재산 기부라는 제안을 수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 뒤 이다.
    인문/어학| 2016.09.02| 5페이지| 2,000원| 조회(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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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산지대 감상문
    고산지대201420118 국어국문학과 최가연고산지대 속 세 인물은 모두 신학생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각기 다르다. ‘나’는 유학을 위해 헬라어를 공부하며, 주로 도서관에 앉아 있는 신학생이다. 세상에 저극적인 찬익, 신앙에 적극적인 몽크김과 달리 모든 일에 거리를 두며 그저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찬익’은 세상, 체제, 사회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인물이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과격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이런 찬익과 완전 반대되는 인물로 ‘몽크 김’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몽크 김은 세속적인 것은 결벽에 가깝게 구별하고, 오로지 기도와 고행에 힘쓰는 인물이다. 신에 대한 갈망과 추구만이 신앙의 길이라고 믿는 인물이다. 이렇게 전혀 다른 세 사람은 소설 속에서 계속 삐걱거린다. 찬익은 어지러운 세태를 외면하는 나와 몽크 김이 마음에 들지 않아 비아냥거린다. 세상없는 하나님이란 그의 표현은 그가 가진 신념을 잘 표현하는 말이다. 죽은 언어에서 벗어나서 삶의 현장에서 함께하는 신앙인을 외치는 찬익에 대한 구절을 읽을 때 ‘세례 요한’이 생각났다. 성경 인물 중 하나인 세레 요한은 세례를 베풀고 하나님의 말을 전하던 선지자(예언자)로 로마에 대한 비판과 일종의 사회 운동을 일으키던 인물이다. 소설 속에서도 찬익은 예언자의 의식에 치우쳐있다는 표현이 나오기도 해서인지 더더욱 세례 요한과 겹쳐보였다. 한편 몽크 김은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찬익을 두고 하나님 없는 세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예수님의 고행을 그대로 따라하는 깊은, 어쩌면 기이한 신앙심을 지녔다. 그는 찬익과는 완전 반대로 나라와 사회를 놓고 기도하는 것이 사회에 대한 참여하고 생각한다. 찬익과 몽크 김은 각자 자신의 신념이 확고했다. 확실한 자신의 생각이 있었기에 둘은 끊임없이 부딪히고 논쟁을 벌일 수 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어정쩡한 존재이다. 자신의 신념도 없고, 그저 헬라어, 유학만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 어정쩡함 때문에 찬익과 몽크 김 사이에서 눌리고, 나중에는 그들의 대립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가 느낀 부끄러움은 자신은 자신의 것이 없어 저렇게 대립하지도 못한다는 것에서 기인한 부끄러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방법이 어떻든 간에 일단 찬익과 몽크김은 각자 신념에 걸 맞는 태도로 현실에 참여를 하고 있는데 나는 그저 방관만 하고 있기에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생각했다.이 소설을 읽으면서 종교의 사회참여에 대한 생각도 들었지만 소설 ‘금시조’가 떠오르기도 했다. 찬익과 몽크김의 대립이 석담과 고죽의 대립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작가가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빌어서 자신이 고민하는 예술에 대한 부분을 풀어서 쓴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지러운 80년대 사회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나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 담겨있는 것 같았다. 또 쓰러지는 찬익을 몽크김이 업고 가는 장면을 통해 둘의 화해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데, 이 장면을 통해서 현실과 종교, 혹은 현실과 예술이 대립하는 것 같지만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작가의 결론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독후감/창작| 2016.09.02| 1페이지| 1,000원| 조회(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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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빨래」분석
    뮤지컬 「빨래」-음악형식/플롯구성/노래에 대한 분류로 분석한 빨래의 넘버들201420118 국어국문학과 최가연뮤지컬 ‘빨래’는 고향이 아닌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각자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고향을 떠나 서울의 한 달동네에 모여 살면서 벌어지는 사건이 주된 줄거리이다.이런 줄거리에 맞게 ‘빨래’는 ‘서울살이 몇 핸가요?’라는 뮤지컬 넘버로 시작한다. 이 넘버를 음악 형식으로 보면 오프닝 넘버에 해당하는데, 관객의 관심을 집중 시키고 분위기를 안정적으로 만들어 작품의 배경과 상황들을 설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곡을 살펴보면 ‘서울살이 몇 핸가요? 서울살이 몇 핸가요? /언제 어디서 왜 여기 왔는지 기억하나요?’ 라는 가사가 있다. 이 넘버는 이 부분을 통해서 관객에게 등장인물들이 서울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가 아니란 점을 전달하고 있다. 이 부분 뒤에는 등장인물들의 개인사를 설명하는 가사로 넘어가고 주인공 ‘나영’의 솔로로 이어진다. 나영의 솔로는 앞서 나온 인물들과는 약간 다르게 진행된다. 나영의 솔로 부분은 뮤지컬 노래 중 ‘I am song’에 해당된다. I am song은 연기자의 감정 상태와 사건의 상황을 관객에게 전달하여 주는 기능을 가진 노래를 말한다. 그래서 나영의 솔로 부분은 자세한 서울살이의 소개와 더불어 나영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늘어나는 서울살이와는 다르게 잦은 이사와 이직에 대한 소개도 있지만, 이루지 못하고 있는 꿈에 대한 불안함과 초라함에 대한 심경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빨래’의 전체적인 배경과 상황을 소개한 뒤 슬롱고와 마이클의 대화가 나온다. 이 대화에서 이어지는 곡은 마이클의 솔로로 ‘나 한국말 다 알아’라는 넘버다. 이 뮤지컬 넘버는 뮤지컬 노래의 종류 중 ‘comedy song’에 해당한다. comedy song은 노랫말 전달이 주된 기능을 하여 관객의 폭소를 자아내는 노래이다. 이 comedy song은 주로 show stopper에 의해 불리는데 마이클이 show stopper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show stopper는 뮤지컬에만 있는 독특한 플롯구성인데, 극의 진행과 별도로 유머러스한 위트와 개그, 노래로 웃음을 자아내는 역할이다. ‘나 한국말 다 알아’의 가사를 살펴보면 ‘나 한국말 다 알아./ 빨리빨리, 이 자식, 저 자식, 개새끼, 십새끼’ 라는 비속어를 사용하거나 ‘필리핀 최고 킹카 마이클이가 와썹/ 강한 콧날에 숯검댕이 눈썹/ 섹시, 핸섬 몰라주면 섭섭’과 같은 가사를 통해서 웃음을 유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시에 ‘빨래’에서 마이클과 같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가사를 통해 관객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마이클이 주도하는 장면이 지나가고 뒤이어 슬롱고가 나영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나오는 넘버는 ‘안녕’이다. 안녕은 슬롱고의 솔로로 뮤지컬 노래의 종류 중 ‘I want song’에 해당한다. I want song은 극의 전개를 미리 예시하는 기능을 가진 노래이다. ‘안녕’의 가사를 살펴보면 ‘안녕 토요일에 나타난 사람/ 파란 하늘 아래 서있는 아름다운 사람/ 내 마음을 두드리네/ 언제까지나 파란 하늘 아래 서있을래/ 다시 만날 때까지 ‘ 라는 가사가 있다. 이 가사는 나영을 바라보며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슬롱고의 마음이 표현 되어있다. 이 가사를 통해서 앞으로 슬롱고와 나영의 사이가 단순한 이웃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나영이 일하는 서점에 대한 소개와 스토리가 진행되고 슬롱고가 나영을 향한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참 예뻐요’ 라는 뮤지컬 넘버가 나온다. 이 뮤지컬 넘버는 뮤지컬 노래의 종류 중 Special Material에 해당하는 곡으로 슬롱고의 솔로로 불리는 노래이다. Special Material은 뮤지컬의 꽃으로 연기자의 가창력을 통해 관객에게 어필하는 노래이다. 이 노래가 나오는 부분은 그 극의 클라이맥스 부분으로 절대적으로 연기자의 가창력에 의존한다. 참 예뻐요의 가사를 살펴보면 ‘ 들리나요. 내 마음 외치는 소리/ 보이나요. 내 두눈에 흐르는 눈물/느끼나요. 타버릴 것 같은 내 심장/ 밤 하늘을 함께 날고 싶은 사람/ 참 예뻐요. 이런 내 맘 아나요/ 참 예뻐요. 나와는 다른 사람 ‘ 이라는 가사를 통해 나영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절절하게 고백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 부분에서 슬롱고 역의 배우는 절절한 감정을 가창력을 통해서 관객에게 어필한다. 또한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슬롱고의 감정이 확실히 관객에게 알려지는 클라이맥스의 부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스토리가 진행되고 1막의 끝 부분에서 ‘비 오는 날이면 ’이라는 뮤지컬 넘버가 나온다. 이 뮤지컬 넘버는 확장형식으로 이루어진 노래로 각자가 말하는 비 오는 날이 다르지만 결국은 비 오는 날 속 쓸쓸함과 외로움을 지향점으로 뭉쳐진다. 또한 이 넘버는 플롯 구성으로 분류하면 company song에 해당하는 곡이다. company song이란 작품 전체의 테마나 분위기를 암시하는 합창 및 기악곡으로 극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장면의 전환에 도움을 주는 노래를 말한다. 이 곡에서는 연기자들의 앙상블이 중요하다. 비 오는 날이면에서는 서울살이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부각시키는 소재로 비를 사용한다. 이를 통해서 뮤지컬 ‘빨래’의 메인테마인 고단한 서울살이를 하는 사람들의 삶이 드러난다. 또한 이 비 오는 날이면을 통해서 슬롱고와 나영의 고단함과 불안함이 고조된다. 비 오는 날이면의 가사를 살펴보면 ‘흔들리는 내 꿈을 좇아가 보지만/ 남는 건 허탈한 마음뿐 ’ 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자꾸만 무너지는 꿈에 대한 불안감이 표현된 부분인 것이다. 또한 이 넘버는 중간 중간 아카펠라가 삽입되어 연기자들의 앙상블이 중요하게 작용한다.2막에는 주인 할머니와 희정엄마가 억울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는 나영을 위로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는 ‘슬플 땐 빨래를 해 ’라는 뮤지컬 넘버가 나온다. 이 곡은 노래 종류로는 comedy song이자 플롯 구성으로는 Production number에 해당한다. Production number란 뮤지컬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장면으로 웅장한 합창과 화려한 춤, 그리고 기능적인 무대장치의 전환 등이 종합 구성된 장면이자, 관객들에게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남게 연출 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슬플 땐 빨래를 해에서는 주인 할머니와 희정엄마의 춤과 보이지 않던 빨랫줄이 내려오는 무대장치, 비눗방울이 터져 나오는 무대 효과가 함께 어우러져 연출된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발랄한 곡과 함께 이 장면을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게 된다. 이런 Production number는 주로 1막 중간이나 1막 끝, 2막의 시작에 삽입되는데 실제로 ‘빨래’에서도 2막의 시작에 ‘책 속에 길이 있네 ’ 라는 Production number를 삽입했다.
    인문/어학| 2016.09.02| 2페이지| 2,000원| 조회(2,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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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생과 사에 대한 아름다움
    한국현대소설강독유홍종의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생(生)과 사(死)에 대한 아름다움한국 현대 소설 강독국어국문학과201420118최가연목차Ⅰ. 서론1. 작가 유홍종 소개2. 연구 계기Ⅱ. 본론1.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 속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과 욕망1) 여란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과 욕망의 표현2) 나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과 욕망의 표현2. ‘나’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 변화와 그 이유Ⅲ. 결론작품 속 생(生)과 사(死)에 대한 아름다움, 기준, 욕망의 의미Ⅳ. 참고문헌Ⅰ. 서론1. 작가 유홍종 소개유홍종(柳烘鍾, 1943~ )은 1943년 12월 10일 서울 출생했고,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4년 「달빛 소리」가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었고, 1976년 『현대문학』에 「금지된 바다」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84년 『불의 회상』으로 대한민국문학상을, 1986년 『서울에서의 외로운 몽상』으로 소설 문학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소설집으로 신과 인간의 길 사이를 방황하는 인물을 형상화한 『수녀 아가다』(1980), 한 개인이 받은 충격의 여파를 정신분석적인 시선에서 그려낸 『불의 회상』(1983), 평범한 소시민이 1980년대를 거치면서 부와 명예를 얻고 변해 가는 모습과 상처를 지닌 남녀의 진실한 사랑을 형상화한 『조용한 남자』(1991), 미국을 배경으로 연예계의 실상과 음모 등을 긴장감 있게 그린 『욕망의 질주』(1999) 등을 간행한 바 있다. 권영민, 유홍종 [柳烘鍾],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CBS 프로듀서, 동아일보 기자를 지냈으며, 한국의 초기 천주교회사를 다룬 『왕국의 징소리』, 그리고 구한말의 일제 침략과 조선 왕국의 비극적 사건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소설 『명성황후』, 가톨릭 신자로서 오랫동안 불교에 깊이 천착한 끝에 붓다의 생애와 득도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한 다큐멘터리 소설 『붓다』 등 본격적인 논픽션 작품들을 내놓기도 했다. 사이버문학광장, 유홍종, http://old.munjang.or.k하고 있다. 먼저 여란을 통해서 표현되는 아름다움은 무엇이고 그 욕망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여란에게 있어서 아름다움이란 '생명력'이다. 여란은 12살의 어린아이였지만, 삶은 늘 죽음과 상실에 근접한 삶이었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와의 이별을 겪었고, 심지어는 할아버지의 실종과 죽음을 눈앞에서 겪었다. 또한 자신 역시 혈우병이라는 ‘죽음’에 가까운 병을 앓고 있었다. 즉 ‘여란’의 삶은 늘 ‘생명력’이라는 요소가 결핍된 상태였던 것이다. 욕망의 사전적 정의는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이다. 네이버 국어사전,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28547700루소도 ‘모든 욕망은 부족함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장 자크 루소, 『에밀』, 미네르바, 2009, 60p그리고 동경은 이러한 욕망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자 하는 충동이 바로 동경이기 때문이다. 강신주, 『감정수업』, 민음사, 2013여란은 자신이 결코 가질 수 없는 생명력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러다 자신과는 다른, 그리고 자신의 부족을 채워줄 수 있는 ‘나’를 보고 욕망하고 동경하게 된 것이다. 자신이 원하지만 갖지 못하는 것은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인간의 심리이다. 즉 ‘여란’은 ‘나’에게서 느껴지는 생명력에서 아름다움을 느낀 것이다. ‘여란’이 이런 ‘생명력’을 향한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모습은 본문에서 찾을 수 있다.그 반대로 여란은 내가 잠들고 있는 동안 내 턱에 자신의 뺨을 대보고 가녀린 손가락으로 내 가슴의 뼈를 헤아려보거나 어깨의 근골을 만져보기도 했다. 어쩌다 내가 서서 껴안아 줄 때면 여란은 자신의 몸을 내게 좀더 밀착시켜 내 하체의 돌기를 깊게 감촉하려고 하는 느낌을 순간적으로 받기도 했다. 이남호, 『오늘의 한국소설』, 민음사, 1989, 355p여란은 계속해서 ‘나’에게 신체적 접촉을 하려고 하고, 그것을 성적인 접촉으로 이어한 것이다. 여란이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성적인 접촉을 원한 것은 ‘생명력’이라는 결핍을 채우기 위한 욕망, 즉 생명력이라는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인 것이다. 임신을 원하고 요구하는 행위 역시 생명에 대한 동경과 죽음에 가까운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할 수 있다.2) 나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과 욕망의 표현「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는 ‘나’가 ‘여란’에게 가지는 욕망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서 아름다움이란 여란처럼 고정적이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한다. ‘나’는 밤중에 우연히 들은 플루트 소리와 화장실 방수 공사를 통해 ‘여란’을 알게 된다. ‘나’는 ‘여란’을 처음보고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는 플루트 소리를 들으며 그 속에서 느껴지는 슬픔에 대해 궁금해 했는데 ‘여란’을 만나고 여란에게서 그 플루트 소리 속 외로음과 슬픔을 느끼게 된 것이다.어디선가 여느 때처럼 플루트의 은은한 선율이 귀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깊이 어둠을 뚫고 구슬프고 청아하게 내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중략) 그 소리가 너무 구슬퍼서 나는 차츰 플루트를 부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런 늦은 밤에 청승맞은 산 짐승의 울음처럼 가락을 흘리는 저 사람은 얼마나 슬픈 사람일까. 이남호, 『오늘의 한국소설』, 민음사, 1989, 350p긴 머리, 창백한 얼굴에 눈이 크고 검은 그 소녀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이상한 시선이라는 표현을 특별히 쓰는 이유는 소녀의 눈빛 속에 무서운 외로움과 갈망의 빛이 강하게 스며있기 때문이다. (중략) 물의 회로는 물론 바퀴벌레나 쥐의 통로조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내 집에서 흘러나오고 기어나오는 것들이란 아주 당연한 것인데 그런 것들의 출처를 규명하려고 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소녀의 눈빛을 보는 순간 들었던 것이다. 플루트는 제가 불어요. 그동안 방해가 되셨나 보군요. 나는 소녀의 말을 듣고서야 플루트의 진원지가 바로 적갈색의 소녀의 입술이 말하고 있기도 하고, 처음 여란을 보았을 때 지칭하던 ‘소녀’가 ‘그녀’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나’가 여란에게 느끼던 감정이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나’는 실제 여란을 대하는 태도는 동생을 대하는 모습이었으나 감정적으로는 ‘연인으로서의 상상적 갈망’을 지녔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나’는 여란에게 성적욕망을 느끼는 도색적 취향이 아니며 의 작가는 그런 도색적 취향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거부감과 다르게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 곳곳에는 롤리타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 드러난다. 먼저 소설 속 서술자인 ’나‘의 직업이 롤리타와 동일하게 작가라는 점과 여란이 뗘나고 여란이 남긴 테니스 라켓에 주목하는 점 등이 그러하다. 김은정, 「문학적 서사성의 회화적 수용 양상 연구」, 『배달말 49권』, 2011, 180p즉 ’나‘는 자신의 욕망을 롤리타와는 다른 욕망이라 주장하지만 결국은 동일선상에 있는 욕망인 것이다. 롤리타 속 험버트가 롤리타에게 욕망을 느끼게 된 계기는 ’생명력‘과 ’생동감‘이다. 위의 관계에서 본다면 ’나‘도 ‘여란’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고 욕망하게 되는 이유는 ‘생명력’과 ‘생동감’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논문, 180p먼저 롤리타 속 본문을 살펴보고자 한다.거기 나의 아름다움이 배를 깔고 엎드려, 눈을 부릅뜬 나의 혈액 속에서 천개의 눈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약간 들어올려진 그녀의 어깻죽지, 안으로 굽은 그녀의 척추를 따라 흘러내리고 있는 장밋빛 아름다움, 검은 옷에 감추어져 부풀어오른 좁고 팽팽한 엉덩이, 여학생 같은 그녀의 장딴지 사이의 해변. 말없이, 나는 중학교 1학년이 되어 그녀의 초록, 빨강, 파랑 만화책을 즐겼다. 누가 뭐래도 그녀는 가장 아름다운 요정이었다. 나보코프/피츠제럴드,『롤리타/위대한 개츠비』, 동서문화사, 2009, 48p(중략) 나의 롤리타에게 혼합되어 있는 어린애다운 꿈길 같은 상냥함과 일종의 요기 어린 천박함은, 광고나 잡지의 사진 속에 나오는 귀여운 들창코라든가 옛날 전원 풍경(짓밟혀 부스러진 데이지또 있다.내게 다만 한 가지 이룰 수 없는 불만이 있다면 내 롤리타를 완전히 뒤집어서 그녀의 어린 자궁, 알 수 없는 심장, 진주빛깔의 간, 포도송이 허파, 그리고 두 개의 귀여운 콩팥에 실컷 키스하지 못한 것뿐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문학동네, 225p「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에서는 위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빌려와 여란에 대해 묘사를 하고 있다.그녀의 적갈색 자궁도 커지고 진주광택의 간장이며, 허파의 포도송이 같은 알도 굵어졌고, 콩팥과 팔꿈치며 무릎의 복숭아뼈도 자랐겠지. 이남호, 『오늘의 한국소설』, 민음사, 1989, 360p롤리타 속 험버트처럼 ‘나’가 여란에게 성적인 욕구를 가장 극명하게 느끼는 부분이 바로 여란의 몸 속 깨끗한 장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김은정, 「문학적 서사성의 회화적 수용 양상 연구」, 『배달말 49권』, 2011, 180p이러한 점에서 볼 때 ‘나’가 여란의 물건 중 테니스 라켓에 주목한 것은 테니스와 같은 운동이 육체의 생동감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논문, 180p이처럼 ‘여란’에게서 느껴지는 생동감, 생명력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욕망하던 ‘나’는 태도를 바꾼다. 죽음을 겪고 여란의 죽음을 알게 된 뒤, ‘극미(極美)’라는 말을 사용하며 죽음과 맞닿은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것이다.아름다움이란 독기와 통하고 독기와 통하고 독기는 죽음을 불러오는 것이므로 결국 극미(極美)란 죽음과 인연이 닿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극치의 아름다움이 죽음과 통한다는 말은 조금도 이상한 말이 아니다. 이남호, 『오늘의 한국소설』, 민음사, 1989, 349p극도의 아름다움이 죽음과 연관된다는 ‘나’의 태도는 앞서 ‘여란’에게서 느껴지는 생명력에 아름다움을 느꼈던 모습과는 반대되는 태도이다. 또한 ‘나’는 여란을 회상하며 아름다움은 끝내 비극이라는 말을 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태도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2. '나'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 변화와 그 이유한결같이 아름다움을 생명력에 두고 욕망하는 여 같다.
    국어국문학| 2016.05.31| 11페이지| 3,000원| 조회(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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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헤어(1979) 감상문
    201420118 인문학부 최가연영화 는 1960년대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1979년에 개봉한 영화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밀로스 포먼 감독은 영화 의 감독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영화 는 121분이라는 러닝 타임을 노래와 춤으로 수놓고 있으며 1970년대의 체제와 반체제 사상으로 어수선했던 미국 사회와 반전사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런 반체제적 사상과 반전사상 때문에 당시 우리나라의 정권에 의해 상영이 금지되어서 개봉되지는 못했다.영화 헤어는 작은 시골마을의 청년 클로드가 버스를 타고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클로드는 베트남전에 징병되어 입영 전에 대도시를 보기 위해 뉴욕으로 여행을 간다. 그리고 우연히 지나가던 공원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던 버거 일행과 만나게 된다. 클로드는 당당히 돈을 구걸하고 주위 사람들을 희롱하는 버거일행을 보고 약간 경계하지만 결국은 그들과 어울리게 된다. 버거 일행과 같이 환각제를 복용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초대받지 않은 파티까지 들어간 클로드는 우연히 본 쉴라에게 반하게 된다. 쉴라에 대한 마음과 버거 일행의 설득에 클로드의 마음이 약간 흔들리지만 결국 클로드는 입대를 하게 된다. 고된 훈련 속에서 클로드는 쉴라에게 편지를 쓰게 되고 그것을 본 버거 일행과 쉴라는 클로드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다. 전시 상황이라 면회가 금지된 클로드를 만나기 위해 버거는 머리까지 자르며 클로드와 옷을 바꿔 입는다. 친구들과 재회한 클로드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하필 그 시간에 출전 명령이 떨어지게 되고 클로드 대신 출전한 버거는 전사하게 된다.영화 제작 시기에서 거의 반백년이 지난 지금 2014년에 이 영화를 보았지만 지금도 이 영화는 충격적이고 파격적이다. 투쟁을 통해 얻은 자유와 예전에 비해 많이 사라진 강압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헤어가 뮤지컬 영화인만큼 많은 노래들이 나오는데 그 노래가사들은 노골적이거나 무의미한 단어들의 나열로 이루어져있다.기존 뮤지컬 영화에서는 노래를 통해 대화를 하거나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데 비해서 아주 파격적인 형식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 가사들이 마약이름이나 성적인 단어를 나열한 것이어서 더 파격적으로 느껴졌다. 1970년대보다 더 개방된 사회인 지금도 사람들이 입에 잘 올리지 않는 “‘Fellatio, Cunnilingus, Masturbation”같은 단어들을 스스럼없이 반복하는 노래를 들으며 좀 황당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나니 그런 노래였기에 당혹스러울 정도로 자유롭고 얽매임이 없는 버거 일행의 모습이 잘 표현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 뮤지컬 영화와 같이 평범한 방식의 노래를 사용했다면 히피들의 모습이 잘 부각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이런 자유롭고 얽매임 없는 히피들의 모습은 영화구성에서도 나타난다. 마약에 취한 버거일행과 클로드의 모습이나 클로드의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상한 결혼식은 길게 이루어져있는데 주요인물인 버거의 죽음은 짧다.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허무하게 느껴진다. 웬 괴상망측한 춤과 노래는 길게 나오면서 주요인물이 저렇게 허무하게 끝나다니 얼마나 이상한 영화인가. 그런데 그런 허무함과 이상함으로 인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확연히 드러난다. 헤어는 반전사상을 담고 있는 영화다. 버거의 허무한 죽음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덧없고 허무한 일인지 한 사람이 전쟁에서 희생되는 것이 얼마나 짧은 찰나인지를 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스토리의 구성처럼 뜬금없이 중간 중간에 나오는 노래들도 영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물론 앞에서 말한 마약이름이 나열된 뜻 없는 노래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뜻 없는 흥얼거림이나 이상한 단어들도 전부 히피의 자유문화를 상징한다.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단어들을 거리낌 없이 꺼내고 드러내어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다. 히피문화에서 추구하는 기성세대로부터의 탈피와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허드가 부르는 노래를 통해 인종차별에 대한 탈피와 다름을 인정하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종끼리의 구분과 차별이 덧없다는 것과 차별 없이 다 같이 자유를 추구하며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도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는 편견의 허물을 벗어던지려는 히피문화의 노력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이런 히피문화를 더 넓고 큰 차원에서 본다면 뉴에이지 사상에도 이를 수 있다. 뉴에이지란 기존 서구식 가치와 문화를 배척하고 여러 영역의 집적된 발전을 추구하는 신문화운동을 뜻한다. 「뉴에이지」,『네이버-두산백과』이런 뉴에이지는 특히 종교적 영역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뉴에이지 운동의 사상이 개개인의 영성적 변화, 즉 인간의 내적 능력을 개발시켜 우주의 차원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구원이라고 확신하는 사상 「뉴에이지」,『네이버-두산백과』이기에 종교와 맞닿게 되기 때문이다. 뉴에이지는 종교뿐만 아니라 의학·철학·천문학·환경·음악 등의 영역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뉴에이지라는 개념의 어원은 점성학이 바탕이 되어 현대는 새로운 세대(New Age)로서 물병자리[水甁座]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새 시대, 뉴에이지를 물병자리 시대, 즉 아쿠아리우스(Aquarius) 시대라고도 부른다, 「뉴에이지」,『네이버-두산백과』영화 헤어의 시작 부분을 장식하는 노래 제목이 아쿠아리우스(Aquarius)인 것도 이와 깊은 연관이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한다. 기성세대의 관습에서 탈피하려는 히피들에게 새로운 시대라는 말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또한 히피들에게는 뉴에이지의 사상이 가장 잘 맞는 사상이고 반가운 사상이었을 것이다. 노래의 가사를 살펴보면 이런 뉴에이지 사상이 잘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아쿠아리우스의 가사 일부분을 보면 “물병자리시대의 새벽이 밝아오네. 조화와 이해, 공감과 신뢰가 넘쳐 나는 시대, 더 이상 거짓도 조롱도 없어라. 행복한 삶, 환상적인 꿈, 신비롭고 투명한 계시, 마음의 참된 해방만 있을 뿐 물병자리 시대에는…….” 라는 구절이 나온다. 새로운 시대와 더불어 평화가 오리라는 뜻이 담겨있다. 이 구절만 봐도 새로운 시대를 추구하는 뉴에이지 사상과 히피 문화가 잘 결합된 가사임을 알 수 있다.헤어 속 버거일행과 같은 히피들이 이런 뉴에이지 사상을 열렬히 추구한 것은 맞지만 히피들만 뉴에이지 사상을 반긴 것은 아니다. 1970년대는 전반적으로 뉴에이지 사상이 만연했고 일종의 유행처럼 번져있었다. 타임(Time)지를 비롯한 여러 대중 잡지들이 염력, 심리 치료, 침술, 예언 등에 관하여 다룬 기사들을 통하여 ‘뉴에이지’라는 표현이 관심거리가 되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에 들어서는 그 관심이 고조되어 뉴에이지 사상을 다룬 뉴에이지저널(New Age Journal)등이 생겨났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반전사상과 여성 차별, 인권, 노동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 혼잡스러운 사회에 뉴에이지가 딱 맞게 느껴지는 사상이었기에 사회에 만연하게 퍼졌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감독은 영화 헤어를 통해 1970년대의 히피들과 그들의 문화를 통해 반전이라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자유를 갈망하던 젊은이가 얼마나 덧없고 허무하게 져버리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혼란스럽던 당대의 사회 모습과 그것에 반항하는 히피들의 모습도 잘 담아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을 거부하며 자유를 추구하던 히피의 모습을 유쾌하게 담아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부정적인 면모를 나타나기도 했다. 히피들이 차별 없는 세상을 노래했지만 그것이 일종의 자아도취나 우월감으로 변모된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허드가 자신의 아내와 마주쳤을 때 했던 대사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네가 우주만물의 이치를 알아?” 라는 대사에서 아내는 아무것도 모르고 무지하며 허드 자신은 그 윗 단계라는 식으로 말한다고 느꼈다. 실상 허드 자신은 자유를 노래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없고 자신의 아이와 아내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너무 현실을 부정하고 멀리하는 면모가 있는 것이다. 또한 차별을 싫어하면서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약간 비하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오히려 차별을 만드는 모습도 있었다. 감독은 무조건적으로 그들의 자유, 평화 사상을 옹호하기보다는 좋은 면모와 더불어 부정적인 면모도 숨김없이 같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독후감/창작| 2016.05.31| 3페이지| 1,000원| 조회(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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