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첫 장 글에서 모리즈 핀리, 모리스 비숍, 트레버-로퍼, 브로노프스키, 브루스 매즐리슈등 집필자들의 이름이 나오면서 이 들이 집필한 17개의 주제가 이 책에 담겨 있다는 글을 읽으며 흥미 있게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17개의 주제에서 호메로스, 소크라테스, 알렉산드로스, 티모테오스, 바울, 야만족, 샤를마뉴 등이 있지만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호메로스와 소크라테스, 알렉산드로스, 티모테오스에 대해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처음 시작은 모리스 보라가 쓴 호메로스 새로 읽기 법으로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이 언제 어떻게 지어졌으며 그 이야기의 배후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는지 알아내고자 하는 노력들로 호메로스를 역사적 배경과 연관시켜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가 작업을 수행한 방법 어떤 기반위에서 작업을 수행하였는가에 대해 나온다. 영웅 서사시의 전통이라는 시작으로 서사시란 역사적, 국가적, 종교적, 전설적으로 의미를 지니는 주제를 다루거나 영웅적 업적을 찬양하는 내용을 다룬 이야기 형식의 시로 이 서사시의 전통이 처음으로 나오는데 고대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1400년에서 1200년 무렵까지 살았던 그들의 조상을 초인이자 영웅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들의 조상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보통 이상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특히 전투에서의 무용을 통해 얻어지는 영광을 추구하며 역동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으로 이러한 영웅적 과거에 대한 믿음은 다른 민족들에게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서기 4세기부터 6세기까지의 게르만족 대이동을 들 수 있고 샤를마뉴의 무훈, 키예프의 블라디미르 2세 모노마흐 등이 있다.오늘날 남아 있는 것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뿐 이며 그리스인들은 그 작품들이 호메로스의 작품이라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서사시들은 유럽 문학 초기의 여명을 밝혀주었고 어떤 면에서는 유럽 문학이 이룩한 최고의 업적이기도 했다.이 서사시들은 분석가들에 의한 근본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을 마치 오늘날의 인쇄물처을 구사하였다고 한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 모든 시는 낭송되거나 노래로 불렀다고 하니 시가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사람들이 쉽고 널리 서사시를 알릴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게 되었다.또한 이어서 로메로스 읽는 법으로 음유시인이 자신의 작품을 알리는 유일한 수단은 낭송이었으며 청중의 주의를 끌기 위해 명료하고 간결하게 줄거리를 다루는 등 나름의 규칙을 갖고 있었고 수많은 시들이 예술적 활력과 대중성을 간직하고 있었으므로 호메로스는 예술적 기준에 입각하여 해석되고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두 작품 호메로스가 지었는가에 대한 이야기와 고고학적 증거들로 이루어진 이집트와 히타이트의 기록들이 남긴 흔적, 미케네에서 발견된 점토판, 빌라 유적지와 미케네의 최후 등이 나오며 호메로스의 작품들로 알 수 있는 그의 지식은 광범한 것이었고 그는 자기 시대보다 훨씬 부유하고 강력했던 영웅적 과거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흥미로웠던 것은 호메로스의 오류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호메로스의 이야기 중에 미케네 시대보다 후기에 속하는 것도 있었다는 사실이 나온다. 그의 서사시에서 죽은 사람의 시신은 매장되지 않고 화장되었는데 그러한 관행은 트로이 전쟁 이후에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이집트를 새가 바다 건너 1년을 날아가야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또한 그의 이야기에서 전차는 네 마리 말이 끌고 있지만 사실은 두 마리 말이 끌었다. 이러한 테마들은 그가 택한 영웅적 주제와는 상관없는 것이지만 그 단순성과 폭넓은 호소력 때문에 선택된 것이라 나온다.그렇다면 호메로스는 어떻게 여러 다른 시대의 자료들을 참조했을까? 그가 만일 현대처럼 미케네 시대에 작성된 시들을 기록한 텍스트라는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그 해답은 쉽게 나오지만 미케네인들이 문자를 사용했다고는 해도 시를 쓰기 위한 용도로 문자를 사용했다는 증거는 없고 더욱 중요한 것은 미케네 문명이 멸망했을 때 그 문자 체계도 함께 소멸했한 전통은 수백 년 동안 연면히 지속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리스가 그러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서사시들은 읽기 위한 것이 아니고 낭송되었다고 하였으니 이러한 서사시들로 지식을 얻어 오랜 세월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던 것이 호메로스에게까지 전달 된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고 의문에 답하고 있다.또한 호메로스가 이러한 전통 지식을 트로이 유적 현장에 대한 자신의 지식으로 보완했던 것으로 보이며 선조들로부터 이어받은 상투적 어구만을 되풀이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전투 현장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나타내었다. 오늘날에 트로이의 폐허에 서서 벌판을 바라보면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에 묘사된 내용이 지금 현지의 풍경과 어떻게 해서 그처럼 잘 맞아떨어지는지 이해 할 수 있다고 하니 그는 고대의 이야기를 창작해냄으로써 기존의 전승 설화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이렇게 호메로스라는 인물과 예술 형식 기법을 지닌 서사시들이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수 있었으며 특히 그리스인의 문학과 역사 연구로 탁월한 업적을 이룩한 호메로스의 학문적 권위가 이 이야기들의 진가를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흥미로웠고 전통적인 서사시에 대해 알 수 있어 좋았다.그 다음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로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은 역사 속 에서 끊임없이 논쟁되고 호기심을 유발하며 기억에 남았다. 이는 그때 당시의 아테네인들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중대한 시사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이러한 이유들로 소크라테스에 대해 흥미를 느끼며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소크라테스는 시민들이 믿는 신들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들을 들여와서 퍼뜨린 죄를 범하고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를 범해 형벌로 사형을 제안한다는 명을 받고 70세로 기원전 399년에 그의 고향 아테네에서 재판에서 유죄를 받아 독배를 마시고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재판에 관한 이야기는 명확하다 그러나 이 밖의 문제들은 그렇지 않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 끝난 이 이테스는 죽었지만 이러한 이유에서 신화의 배후에 놓여 있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게 한다.근거는 플라톤의 초기 저자인 이다. 이 저작은 재판이 있은 지 몇 년 후 등장했으며 소크라테스가 두 차례에 걸쳐 배심원들에게 행한 실제 연설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플라톤은 자신이 쓴 다른 글에서 소크라테스가 에서와 같은 탁월한 연설가이기는커녕 오히려 말을 더듬는 사람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연설이 재판에 실질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게 된다. 제자들에게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매우 중요한 문제여서 그들이 그를 위한 ‘변명들’을 쓴 것은 이러한 이유였다. 제자들의 ‘변명들’은 마땅히 소크라테스 자신이 해야만 했던 일이었고 소크라테스의 가르침과 그의 생애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제자들은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석연치 않은 불경죄 즉 아테네의 신들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들을 가르쳤다는 혐의로 고발당했다. 실제로 소크라테스가 매우 신심이 깊은 사람으로 희생 의식 등을 성실하게 이행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 그러나 점이나 예언이 공인된 직업으로 간주되는 사회에서 소크라테스의 믿음은 기소의 사유로는 너무 근거가 희박했다. 더욱 큰 중요성을 갖은 또 한 가지의 혐의 즉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를 살펴보면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있기 약 50만 년 전 까지 만 해도 그리스에는 말하기를 가르치는 학교가 없었고 5세기 중반에 들어 아테네를 중심으로 교육의 혁신이 일어나 소피스트로 불리는 전문교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교육은 훌륭한 것이었고 수업료도 비쌌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애수 신세대적인 태도를 갖도록 하여 도덕, 전통, 신앙, 신화 등은 아무런 변화도 의문도 없이 대대로 이어지는 신조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해야 하는 그리고 필요하다면 수정되고 거부되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혁신적 성향을 혐오하고 의혹의 눈초리로 을 보면 그와는 정반대되는 이야기가 나온다. 즉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을 신랄하고도 전면적으로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뇌리 속에서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는 서로 연관되어 있었다.플라톤이 만들어낸 신화를 제거하고 다수 지배 체제의 위험성이라는 주제에 주목하게 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의 일이다. 사실 소크라테스의 운명은 ‘자유는 그 대라고, 영구적이고도 빈틈없는 경계를 필요로 한다. 는 오래된 격언을 증명한 것이다.자유는 불안정한 것이어서 그 자유를 지지하는 자들이 피해를 당할 위험이 상존한다.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에는 불안정한 요인들이 많았고 아주 강력했다. 지속적인 기근 위협과 더불어 만성적인 재원 고갈에 시달리고 있었고 스파르타와의 전쟁은 지루한 소강 국면을 맞고 있었다. 자유와 민주정은 엄밀히 말해 소수의 특권이었고 노예와 수많은 비 시민들을 배제했다. 또한 배심원들은 너무나 폭넓은 권한을 행사했다. 그들은 한 인간의 죄의 유무를 결정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범한 죄를 규정지을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불경죄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하여 올가미가 씌워지면 누구도 안전할 수 없었다.소크라테스의 처형은 사실이었고 그것은 아테네 민주정이 결코 완벽한 제도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들 가운데 하나이다.이러한 사실들을 읽으면서 아테네 만주정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다수에 의해 묵살되는 많은 의견들이 있기 때문에 남의 일 같지 않다고 생각 되었다. 국가안보에 위협을 가한다는 이 말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그 다음 로빈슨 2세가 쓴 알렉산드로스가 이룩한 두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이야기는 수업시간에도 익히 들었고 많은 영화와 책에서도 나와 있듯이 알렉산드로스는 요절한 비운의 제왕이었지만 그의 업적은 대단하고 비범한 것들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료를 바탕으로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흥미롭고 중요한 문제를 다루었다는 것을 보며 읽기 시작하였다.알렉산드로스는 역
도토리의 집이라는 책은 고등학교 다닐 때 학교도서관에서 접하게 되었는데 소설이 아니라 만화로 되어있어서 읽기도 편하고 책장을 넘길수록 눈물이 날정도로 가슴이 아픈 내용들이 많았다.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보니 옛날에 봤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났다.도토리의집 은 많은 장애아들과 부모님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나오는 내용이다.처음에 나오는 케이코는 가족의 축복 속에 태어나지만 두 돌이 지나고 나서야머리도 제대로 못가누고 아빠엄마와 눈조차 마주치지 못해 이상하게 여긴 아빠와 엄마가병원에 데려가자 의사에게 귀도 들리지 않고 지적인 장애가 있어 지적인 능력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말을 듣게 된다.엄마와 아빠는 큰 절망에 빠지고 그 이후 케이코는 여느 아이들처럼 성장하지만 늘 물건을 던지고 엄마를 사정없이 때리며 여러 가지 많은 문제들을 일으킨다. 점점 지쳐가고 인내도 떨어질 때쯤 엄마는 케이코를 농아학교의 유치부에 입학 시킨다. 처음에는 잘 적응하지 못하지 못하고 선생님이 주는 밥도 잘 먹지 않는 케이코였지만 어느 날 선생님이 기뻐하며 케이코의 엄마에게 달려와서 케이코가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숟갈로 밥을 떠먹는 그 순간이 얼마나 길고 힘든 시간이었는지 엄마는 알았기에 어느 누구보다 기뻐하였다. 그 후 케이코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칠판에 서툴지만 분필로 자기의 이름을 쓰는 것도 보여주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저 작은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들이 케이코에게는 더 힘든 과정을 들 거쳐야지만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엄마는 눈물이 나올 만큼 행복해했다. 이렇게 케이코는 점차 성장해 나가고 여러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누구 도움 없이 는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이, 자해하는 아이 등 중증의 아이들 과 함께 하는데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도 케이코의 엄마처럼 아이에 대해서 좌절하고 힘들어 하는 마음이 같기에 부모님들은 서로 하나가 되어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작업실 즉 도토리의 집이라고 이름을 지어서 만들기로 하였다. 하지만 큰일을 하기에 앞서 재정적인 문제에 부딪치게 되는데 그 고난에 부딪친 부모님들은 모두 이곳저곳 도움을 요청해서 조금씩 돈을 모아 끝내 도토리의 집을 만들어낸다. 점점 들어오는 사람도 많아지고 도토리의 집은 늘 활기가 차있는다. 도토리의 집이 사람들에게는 곧 사회생활이 되는 것이다. 모두가 합심해서 일할 수 있고 나가서는 불평등과 낙인에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이곳 에서는 자기도 어엿한 일하는 한 사람으로 가치있는 사람으로 된다는 것에 자랑스러워한다. 도토리의 집을 다보고 나서 나는 나의 친구들 사이에서도 느끼는 거지만 불편함이라고도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자기의 소신과 믿음 만 있다면 장애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이 이야기는 실화로 알고 있는데 그걸 알고 나서 부모님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 되었다. 내게 만일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면 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부모의 힘이라는 것 이 아이게 정말 크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단순히 밀턴의 생애에 대해서만 나온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배경과 더불어 그 안에서 정치와 종교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와 있어 두꺼운 책이었지만 보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사실 세계사에 대해서 부끄럽지만 잘 알 지 못 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책 처음부터 잉글랜드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 진영과 가톨릭 진영 사이에 있었던 역사와 청교도 개혁, 화약음모사건 등에 대한 설명 등이 밀턴의 삶의 배경을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밀턴의 시대는 단순한 종교개혁을 떠나 더 큰 사회개혁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한 시대에서도 밀턴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위해서 여러 집필활동을 하고 탁월한 문장력 등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특히 찰스1세의 처형을 옹호하는 글을 당당히 써내고 끝내 왕정복고가 이루어지면서 그는 반역자로 몰렸지만 끝내 홀로 투쟁하며 자기의 소신을 올곧게 주장하며 단순한 작가이기를 떠나 혁명가와 같은 역할을 하는 한 시대의 사람이었다.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밀턴이 두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을 때인데 지금도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분들의 어려움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는데 그 시대에서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처형을 당하는 것보다 더한 처사라고 생각하여 밀턴을 처형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보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장애를 비꼬며 그를 하찮게 대하는 사회적 시대에서 밀턴은 그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실명은 신의 징벌이 아니라며 당당하게 반론하고 내가 겪는 어둠은 무덤속의 어둠보다는 관대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용기와 야만적인 치료과정에서의 어려움에서도 책을 집필하며 그 자신만의 사회개혁을 펼치는 모습이 도전적이면서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존경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되었다.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고 나서..수레바퀴 아래서는 읽고 더 많은 이해를 위해 찾아보니 헤르만헤세의 자전적인 성격이 강한 소설이라고 한다. 헤세는 어린 시절 시인이 되고자 수도원 학교에서 도망친 뒤 시계 공장과 서점에서 견습사원으로 일했고 청소년기에는 자살을 기도하여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이와 같이 수레바퀴 아래서의 소설 속 한스 역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촉망받는 아이로 키워져 우수한 성적으로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끝내 적응하지 못한다. 학교와 아버지 그리고 주위의 어른들의 강압과 기대가 한스의 여린 심성을 짓밟은 것이다. 한스는 부담감 과 중압감 때문에 학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하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와 일을 하다가 엠마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엠마는 이런 한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말도 없이 한스를 떠나게 되고 한스는 절망에 빠진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들을 술을 마시다 한스는 술에 취해 거리를 나서게 되다 결국 시체로 아버지의 곁으로 들어오게 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 소설에서는 한스의 죽음의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한스가 직접 죽음을 택했는지, 아니면 만취된 상태에서 익사했는지는 독자의 추측에 맡길 뿐이다. 하지만 한스의 심리와 모든 정황으로 유추해 봤을 때 나는 한스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쪽으로 생각이 들었다. 그 무거웠던 절망 감 과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 할 수 없었던 자신에게 한스는 좌절했고 힘겹게 살아가다가 죽음의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닌지 말이다. 읽고 나니 한스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방과 후 학원 2~3개는 기본이고 과외에다 각종 예능학원까지. 조기교육도 물론 중요하고 다른 이들보다 한발 앞서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참 뛰어 놀 나이에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또 그 나이때 에 할 수 있는 것들을 부모들이 너무 쉽게 포기 시키는 건 아닌지 생각이 든다. 공부는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것들 중에 하나이지만 공부가 다가 아니라는 말처럼 공부가 우리의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이 있다. 현재의 삶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실히 하 라는 뜻이다. 이것은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면서 현실의 많은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고 있는 사람들과 이제 다시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려는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처방이 될 수 있는 말이다.
밀양을 보고나서...처음 이영화가 고등학교 때 나왔을 때 그냥 칸에서 상 받은 그런 멜로물이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이 영화를 혼자 보는 내내 나는 주인공 신애의 모습에 매료되어 아픔과 괴로움과 분노가 내게 생생히 박혀 들어오는 그런 느낌이었다. 한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그런 괴로움들이 밀려오는듯해 가슴이 숨 막히는 듯 한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간신히 남편의 죽음을 잊어내고자 새로운 시작을 위해 남편고향인 밀양에 온 그녀에게 아들의 납치. 즉 아들의 죽음 이라는 가혹한 일이 생기고 겨우겨우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고 이겨내려 노력해 용서라는 마음으로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마주치게 되었을 때 그는 그녀에게 자신도 신에게 구원을 받고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되었다는 그녀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뻔뻔한 말을 해 신앙이란 힘에 지탱하고 있는 그녀를 무너뜨렸다. 그 후 그녀에게는 분노만이 남아있었고 자신이 그토록 믿고자했던 신이라는 대상에게조차 분노와 실망이 남아있었다. 결국 사람이 벼랑 끝까지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 때 야 실천하는 자살도 선택하지만 그녀는 해내지 못한다. 그런 그녀에게 자살까지 자신의 죽음까지 허용되지 않고 남아있는 삶은 정말 가혹하고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엔딩까지 그녀의 아픔이 절절 느껴졌고 그런 그녀를 곁에서 지켜보는 송강호의 마음도 느껴졌다. 내가 송강 호였더라도 그런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정말 지켜주고 싶고 용기도 주고 싶고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 이 들었다.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을 깔보기 보다는 더 잘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우리 주변에서 지극히 볼 수 있는 그런 소재들을 사용해 더 공감이 가고 더 가슴속에 확 와 닿은 영화 같다. 또한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건 이 영화를 다 이해하지 못해 어려운 영화라는 것 또한 송강 호와 전 도연 이 배우들이 캐릭터들을 잘 소화해냈다는 것 그런 것이 느껴진 것 같다. 올해 본 영화중에 가장 가슴 아프고 공감가고 그런 영화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