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나, 예술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은 문화재, 건축물, 예술작품 등을 감상할 때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형태적 아름다움이나 겉으로 표현되는 미적 가치에 중점을 두고 감상한다. 나 또한 과거 몇 번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감상했던 작품들은 나에게는 그저 특이한 형태의 물건. 그 이상의 감상을 주지는 못 했다. 물론 이러한 감상태도가 나쁘다고 할 수 는 없다. 예술작품의 외형적인 아름다움만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작품의 미적가치를 느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작품의 가치는 단순히 외형적인 아름다움으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술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만들어질 당시의 사람들의 관념과 사고, 사회구조와 환경 등 시대상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작품들은 역사학자들의 연구를 통한 주장을 실증적 증거인 것이다.‘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를 몸소 느낄 수 있었던 적이 있다. 작년에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한 르네상스 작품들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개인적인 일로 갔었기 때문에 당시에 특별한 사전공부나 정보 없이 그야말로 백지의 상태에서 작품을 감상하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3대 화가라는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작품은 사전 지식 없이 보더라도 충분히 아름다고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특히나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인 ‘피에타’는 비록 모조품일지라도 그 아름다움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나중에 시간이 날 때 관련된 책을 한번 찾아서 본 적이 있다. 책을 읽고 다시 찾아본 르네상스 작품들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일을 계기로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는 사전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이번에 감상한 영화 ‘장미의 이름으로’ 역시 이러한 점에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중세시대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이를 고증하고 충분히 재현해놓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역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봤다면, 그저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한편의 추리영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업시간을 통해서 중세시대의 배경 설명을 듣고 그리그, 이집트 문화와 비교해서 보니 여러 가지 당시의 시대상이 조금은 보였다. 그야말로 ‘아는 만큼 보인다.’였다.먼저 이 영화를 평가하기에 앞서 영화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영화는 14세기 초 북부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한 수도사를 통해 중세말기의 시대상과 교회 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역사소설의 틀을 갖추고 있는 추리소설이다. 중세시대는 잘 알려진 대로 인간보다는 신을 숭상하고 그 무엇보다도 종교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시대였다. 따라서 세속군주보다 교황의 권위가 더욱 강하게 들어났으며, 이를 상징하는 대표적 사건으로 ‘아비뇽 유수’가 있다. 일명 카노사의 굴욕으로 황제가 교황에게 무릎 꿇은 치욕적인 사건이다. 이처럼 영원할 것만 같았던 중세 교회의 영광도 결국은 그 한계를 드러내고 만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듯, 도를 지나친 종교 부흥은 본래의 목적을 잊고 점차 세속화 하고 부패되고 만다. 교회의 타락에 실망한 일부 성직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종파가 생겨나고 교회 내부에서 갈등이 나타나게 된다. 이는 영화 내부에서도 드러나는데, 주인공인 윌리엄과 아소드가 속해있는 프란체스코회와 베네딕트회의 갈등이 그것이다. 윌리엄이 속한 프란체스코회는 수도사들과 교회의 청빈에 관해 베네딕트회 보다 약간 더 엄격한 입장, 즉 수도사들마저도 청빈해야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고, 베네딕트회는 어느 정도는 수도원들이 부를 축적하고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당시 영화의 시대적 상황은 종교적 가치가 최우선되는 상황에서 교회 내부적으로도 가치에 대한 갈등이 나타나고 있으며, 일반 백성들은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영화의 분위기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듯 상당히 어두운 분위기로 그려진다.소설이 그러하듯 영화 또한 갈등 구조가 존재해야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두 가지의 큰 갈등 구조가 이야기를 구성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첫 번째 갈등구조는 위에서도 언급한 프란체스코회와 베네딕트회 간의 갈등구조이다. 영화는 이 갈등구조를 통해 중세교회의 부조리를 보여주고자 했다.두 번째 갈등은 윌리엄 사제와 호르헤 수도사의 갈등이다. 이 둘의 갈등구조는 시대와 시대의 갈등이라 할 수 있다. 이성적 사고를 대표하는 윌리엄 사제는 그리스&로마 시대, 나아가서는 현대를 나타내고 영적인 믿음을 숭상하는 호르세 수도사는 중세시대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 둘의 갈등구조를 통해 영화는 중세시대의 진정한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말하고자 했다.이 둘의 대비를 통해 중세시대의 문제점은 극명히 들어난다. 중세시대는 그리스&로마 시대와는 반대로 이성적 사고를 부정하고 영적인 믿음만을 숭상한다. 이러한 사고를 바탕으로 중세시대에는 육체적 쾌락이나 인간의 본능은 죄악으로 여기며 절제와 통제를 미덕으로 삼게 된다. 따라서 인간의 가치는 땅에 떨어지게 되고 당시 사람들은 일부 성직자와 귀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폐한 삶은 영위하게 된다. 또한 학문을 공부하는 것은 일부 특권 계층에게만 허용되어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지한 상태로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를 만들었다.
1. 문화의 정의문화란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공감하고 공유하는 가치를 문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가치는 항상 일정한 것이 아니라 시대나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에 맞춰 변화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과거 조선시대에 우리나라는 중국의 영향으로 인, 의, 예, 지라는 유교 가치에 많은 비중을 두었지만 현재는 이러한 유교 가치에 두는 비중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나라는 유교문화권에서 벗어나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여 점차 서구문화권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처럼 문화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나 사회의 변화상에 따라 함께 변하는 유동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2. 주제 선정 동기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문화란 시대나 사회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해가야 한다. 그렇지 못한 문화는 결국 괴리가 발생하여 문제가 생기게 된다. 최근 바로 이러한 사회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해 괴리가 발생하여 사회적으로 심각한 화두로 떠오른 문화가 있다. 바로 결혼문화이다. 물론 현대의 결혼문화는 그 형식에서는 과거 전통 방식에서 벗어나 서구의 방식을 따라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내적인 부분에서는 과거의 방식을 못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혼수 문화이다. 현재의 우리나라의 혼수문화는 남자는 집, 여자는 가구나 집안 살림을 해가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럼 혼수 문화가 왜 문제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혼수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3. 혼수의 기원사실 혼수 문화라는 것은 그 기원이 굉장히 오래된 문화이다. 혼수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없어 명확하지는 않으나, 단편적인 기록을 통해서 그 기원을 알아 볼 수 있다.“저녁에 사위가 집 밖에 나와 딸과 함께 자도록 간청하면, 장인/장모가 집 뒤에 지은 사위집으로 안내하여 딸과 함께 자도록 하는데, 사위는 이때 돈과 비단을 제공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면, 비로소 사위는 처자를 데리고 자기의 집으로 돌아간다.“~예물로 보내는 폐백이 15수레였다. 또 쌀,술,기름,꿀,간장,된장,말린 고기, 젓갈이 135수레, 조가 150수레였다. 5월7일 이찬 문영과 개원을 그 집에 보내 김흠운의 딸을 왕비로 책봉했다. 그날 묘시에 30명들을 보내 신부를 맞아오게 했다. 신부는 수레에 탔는데, 좌우에서 시종하는 관인들과 부녀자들이 매우 성대했다. 왕궁의 북문에 이르러 신부가 수레에서 내려 궁궐로 돌아갔다.”위 기록은 고구려 전에 나오는 기록이며, 아래 기록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기록으로 신문왕이 신하의 딸을 신부로 삼으면서 혼수를 보내는 모습이다. 혼수 문화가 적어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어져온 문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4. 혼수 문화의 변화이러한 혼수 문화도 조선시대 이전과 조선시대 이후로 나눌 수 있는데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혼수를 남자가 혼수를 마련하여 여자의 집에서 사는 처가거주제에서 조선시대 이후에는 여자가 혼수를 마련하여 남자의 집에서 살게 되는 시가거주제로 바뀌게 되었다.이렇게 바뀐 이유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유교가 조선의 중심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부계중심의 친족 집단과 가부장 제도가 정착되면서 여자가 시집의 구성원에 흡수되는 시가 거주에가 일반화되었고, 여자가 시집에서 사는데 필요한 것들과 시집의 가계에 보탬이 될 만한 것을 장만한 데서 오늘날의 혼수가 비롯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혼수문화는 불과 얼마 전까지 만해도 보수적인 사회 환경 속에서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져 왔다.5.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혼수 문화하지만 최근 각종 언론이나 여론 등에서 혼수문화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대두 되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우리나라의 혼수 문화는 부계 중심의 가부장적인 유교문화에 중심을 두고 있는데 사회는 점차 서구 문화권으로 변화해 가고 있기 때문에 그 간극이 점차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6. 혼수의 문제점내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혼수 문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세 가지이다.? 비용이 너무 크다.? 부모에게 의지한다.? 남녀 간 부담하는 비율이 다르다.우리나라에서 결혼을 하기 위해서 드는 평균비용은 총 1억 7642만원으로 결혼 적령기의 남녀가 부담하기에는 상당히 큰 액수이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 결혼을 하게 되면 그 비용을 부모에게 의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 자료를 보면 결혼 시 부모가 부담하는 결혼 비용 부담이 적지 않다. 결국 자식들의 결혼에 부모님들 또한 큰 부담을 느끼며, 성인이 된 자식들의 결혼까지 부모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 혼수문화에서 가장 큰 갈등을 낳는 문제는 바로 남녀 혼수비용의 차지이다.
-목 차 -1. 서론2. 본론2-1. 고대~근대 이전 : 중세미술2-2. 근대 :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2-3. 현대 : 모더니즘(야수주의, 입체주의)3. 결론1. 서론‘프란치스코 교황, 오는 8월, 25년 만에 방한‘ 최근 교황의 방한 일정이 확정되면서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었었다. 사회적으로는 교황의 방한을 환영하는 무리와 소수 반대하는 무리가 부딪치면서 소란스러웠고, 정부는 교황을 맞을 준비에 분주하게 움직였다. 종교가 없는 나의 시각으로는 한 종교의 지도자가 우리나라를 방문한다는 소식만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모습을 보니 새삼 종교의 영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카톨릭 국가가 아닌데 이정도이니, 카톨릭 국가에서 교황의 영향력은 생각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이처럼 종교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막대한 수준이며, 인간의 역사를 논할 때 종교는 빠질 수 없는 필수적인 존재이다. 특히 서양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 기독교의 역사라고 말해도 크게 무방하지 않을 정도이다. 그리고 서양미술사 역시 이 종교의 역사에 무관하지 않다. 서양의 역사가 종교의 역사인 만큼 시대상이 반영되는 예술품들 역시 그 영향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의 내용에서는 종교의 역사에 따른 서양 미술사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처럼 평소 개신교, 한국 교회에 반감이 컸던 종교 관련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 영향으로 수업 시간에 들었던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 지어서 생각을 하게 됐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서양의 역사는 종교의 역사다. 그리고 현대에서의 종교의 영향력이 적지는 않지만 과거에 비해서 그 영향력이 줄어든 것 또한 사실이다. 서양 미술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고대 그리스 미술에서부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서양 미술사의 역사는 점차 종교의 색채를 지우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고 생각한다. 이에 따른 기준으로 서양 미술사는 고대 미술~근대 이전까지 / 근대 / 현대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사조를 설명할 수 없기에 각 시대별로 하나의 사조를 뽑아 설명하고자 한다.2-1. 고대~근대 이전 : 중세미술먼저 고대 미술~근대 이전 시대까지의 미술사의 특징은 작품의 주제에서 신과 관련된 내용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 로마, 중세에 이르기까지 신의 종류는 달라도 작품의 주제는 신을 숭배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그 중에서도 이러한 기조가 절정에 달한 시대가 바로 중세시대 미술이다. 중세는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5세기~15세기)로 약 1000년 동안의 시기를 말한다.초기 기독교는 합법적이지 않은 종교여서 온갖 박해와 수모를 겪었으며 박해가 심할수록 그들은 로마의 지하묘소 카타콤에 숨어서 복음을 전파하고 벽과 천장에는 벽화를 남겼다. 국교로 승인 후 고도의 기능을 갖춘 건축가에 의해 여러 곳에 거대한 성당이나 수도원이 세워지고 교회 벽면과 천장을 장식하기 위한 회화나 기 벽면 모자이크가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 졌다. 로마네스크는 기원전 1000년경부터 1200년경 사이에 유럽 전역에 걸쳐 유행한 기독교 미술 양식으로 외형은 단순하고 벽면은 크고, 창문은 작은 것이 특징이며, 어둡고 신비로우며, 영구적이고 웅장, 탁월한 음향효과를 갖는다. 12세기 중엽부터 14세기에 이르기까지는 고딕양식의 기독교 미술이 유행했다. 고딕 회화의 대표적인 것은 스테인드글라스로 여러 빛깔의 유리 조각이 창문 전체를 종교적 화상으로 메운 아름다움과 그것을 통해 들어오는 광선의 영롱함으로 성당 안을 종교적인 경건함으로 채우게했다. 중세의 회화는 기독교가 내세의 구원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지상의 물체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려는 경향은 자연히 사라지게 되었다. 누드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고, 심지어 옷을 입고 있는 육체도 해부학적인 정확성이 무시되곤 했다. 또한 원근법이 없는 모습을 보인다.이처럼 중세 미술은 성경의 내용을 문맹자에게 전하기 위한 성화가 많이 그려지고 성경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성경의 내용을 표현하는 작품이 많았다. 이 모든 미술의 특징은 신 중심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개성이나 인간을 그린 것은 이 시대에 무의미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중세 말에 이런 양식에 대한 각성이 여기저기에서 일어났다. 그 후 중세의 평면적인 회화를 현실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표현 기법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소재나 주제에 대한 관심도 점차 인간적이고 주변 현실로 옮겨가는 움직임이 일었다.2-2. 근대 :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중세를 지나 인간중심의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 기법이나 양식은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작품의 주제의식은 신 중심사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서양미술사에서 예술가들이 작품에서 신의 굴레를 벗어나기 시작한 시기는 근대에 들어오면서 부터이다.18세기 중반 이후 화산재 속에 묻혀 있던 고대 로마 유적이 발굴되면서 그리스·로마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미술계에서는 고대 문화의 고전미를 본받아 정확하고 균형 있는 형태를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을 신고전주의라고 부른다. 신고전주의 화가인 다비드와 앵그르 등은 당대에 일어난 주요한 사건을 그렸다. 또한 그의 제자인 도미니크 앵그르는 스승인 다비드보다 더욱 고대 미술에 충실했다. 첫 번째 그림인 마리의 죽음은 프랑스 혁명 이후 혼란했던 사회 속에서 자코뱅당과 지롱드당 간의 당파 싸움에 자코뱅당의 지도부였던 마리의 죽음을 단순하고 절제된 모습으로 순교자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두 번째 그림인 앵그르의 그랑 오달리스크는 터키 황제의 시중을 는 여자 노예의 그림으로 이 역시 뚜렷한 윤곽선과 붓 자국이 보이지 않는 매끈한 면을 고집하면서 고전적이고 이상적인 여성의 미를 부여주고 있다.다음으로 동시대에 엄숙한 신고전주의에 반발해 일어난 낭만주의는 주관적이고 감정적이었다. 낭만주의 미술가들은 인간의 감정과 본성에 관심이 많아서 파격적인 구도와 색채 때문에 이들의 작품은 매우 역동적이었다. 낭만주의의 대표화가로 꼽히는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은 실제 있었던 메두사호의 사건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조난당한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보여주고자 했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프랑스의 7월 혁명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인물들의 역동적인 움직임,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적극적인 여성상, 열정적인 느낌을 주는 색채 등의 사용이 돋보인다.이러한 근대 초기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이전 시대의 작품들과는 다른 점은 더 이상 작품 속에 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왕권의 붕괴, 산업 혁명, 이성주의의 대두 등 급변하는 사회 환경 속에서 신보다 더욱 중요한 가치들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근대의 작품들은 위 작품들과 같이 주로 역사의 한 장면이나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품 등 그림의 예술가의 생각이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 특징이다.2-3. 현대 : 모더니즘(야수주의, 입체주의)근대 이후의 더욱 심화되어서 이 시기의 화가들은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졌다. 오히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지속되어 왔던 원근법, 명암법 등 전통적인 규칙과 단절하고자 했다. 현대의 화가들은 처음에는 전통적인 방식을 이용했지만 점차 자신들만의 색깔을 찾아 나갔다. 이 때문에 현대 미술은 과거처럼 하나의 주류 기법이 대표하기 보다는 화가의 개성에 따라 다양한 파로 갈리게 되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야수주의, 입체주의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야수주의를 주도한 대표적 화가는 프랑스의 앙리 마티스이다. 야수주의의 특징 그림자와 명암이 없는 강렬한 색을 사용해 색을 대상에서 해방시켰다는 것이다. 위의 두 작품은 마티스의 대표적인 작품들로 야수주의의 특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마담마티스는 마티스의 아내인 아멜리를 그린 초상화다. 주관적인 느낌에 따라 강렬한 색상을 배열해 색채를 해방시켰다. 또한 색채만으로 형태와 입체감, 그림자, 심지어 내면까지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춤은 다섯 사람이 원을 이루며 춤추는 모습으로 화면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또한 원색의 강한 대비는 원초적인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다음은 입체주의의 대표적 화기인 피카소이다. 피카소는 20세기 미술계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화가이다. 입체주의는 다양한 시점에서 분석한 면들을 화면에 담는 것이 특징이다. 위의 두 작품 역시 피카소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전통적인 원급법과 구성을 급진적으로 깨뜨린 작품이다. 입체주의의 기초가 된 작품으로 여러 방향에서 본 사람의 모습을 한 화명에 동시에 표현했다. 평평하고 쪼개진 면으로 구성된 얼굴과 육체는 아프리카 탈과 이베리안 조각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우는 여인은 전쟁의 비극을 경험한 여인의 슬픔을 나타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강렬한 색채가 서로 충돌하면서 화면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꿀맛 같은 추석 연휴를 보낸 뒤 기분 좋은 한 주를 맏이 할 줄 알았던 국내 경제계에 한 가지 비보가 날아들었다. 바로 동양그룹의 부도설이다. 사실 동양그룹의 위기설은 오늘 내일 하던 이야기가 아니었다. 최근 몇 년간 동양그룹의 위기설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하지만 여태껏 잠잠했던 동양그룹의 부도설이 갑자기 수면위로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1. 동양그룹 부도설의 원인동양그룹 부도설의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만, 현재 가장 큰 위기의 원인은 바로 유동성 위기이다. 즉, 자금이 돌지 않아 현재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간단한 유동성 설명) 그렇다면 동양그룹은 왜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된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동양그룹에 구조와 지난 몇 년간 동양그룹 계열사의 재무제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1) 동양그룹에 어떤 문제가?위 그림은 동양그룹의 계열사 조직도로 동양그룹은 제조, 금융,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있는 대기업이다. 많은 동양의 계열사 중 삼성그룹의 삼성전자처럼 동양에서도 핵심, 주력 계열사가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동양시멘트이다. 하지만 이 동양시멘트는 지난 몇 년 간 건설 경기의 침체로 동양의 위기론에 원인을 제공해왔다. 동양시멘트는 지난 몇 년간 해마다 수백억 원의 순손실을 누적해왔다.위 그림은 동양시멘트의 2010~2012년까지의 손익계산서이다. 붉은 부분이 동양시멘트의 당기순이익을 표시한 것인데, 2010년에는 335억원, 2011년에는 839억원, 2012년에는 695억원으로 지속적으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영업이익은 나지만 이 돈으로는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또한 동양그룹의 사정 또한 좋지 않았다. 동양 그룹은 지난 3년간 매출은 증가하였으나, 오히려 당기순이익은 손실을 보이며, 그 규모 또한 점차 커져갔다. 게다가 부채비율 또한 해가 갈수록 증가하는 모양세를 보였다.2) 동양그룹의 선택은?이처럼 주력 계열사인 동양 시멘트를 비롯하여 동양그룹 전체의 지속적인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 동양 그룹이 선택한 방법은 무엇일까? 은행을 통한 자금차입? 기업의 전망이 안 좋고 부채의 규모가 너무나 커서 은행은 자금 차입을 기피했다.(은행이 동양그룹 및 그 계열사에 차입을 기피하는 이유를 보충하는 자료로 쓸 것)그러면 계열사 매각을 통한 자금 확보? 동양그룹은 일부 계열사를 매각하여 자금 확보를 위해 힘썼으나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동양그룹이 선택한 최후의 수단은 CP와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었다.3) 회사채 발행, 무엇이 문제가 되었나?회사채의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은 동양 그룹 뿐만이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사용하는 자금조달 방법이다. 하지만 동양그룹의 회사채 발행은 무엇인 문제였던 것일까? 4만9000명. 동양그룹 채권을 산 투자자의 숫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이 개인투자자다. 동양증권을 통해 판매된 회사채·CP 1조6000억원의 90%(1조4400억원) 이상을 개인이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1인당 투자금액도 3200만원이나 된다. 통상 채권시장은 기관투자가·펀드매니저의 투자영역으로 여겨졌다. 주식보다 구조가 훨씬 복잡한 데다 투자금 단위가 크기 때문에 전문지식과 자금력이 부족한 개인투자자가 직접 참여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동양그룹 채권에서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동양그룹이 사실상 개인투자자의 자금으로 경영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문제는 동양그룹 계열사 채권이 투자부적격인 B등급 회사채라는 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뒤 연기금·보험사와 같은 기관투자가는 대부분 내부투자기준을 강화해 B등급 채권 투자를 금지했다. 이 때문에 동양그룹 채권에서는 기관 자금이 거의 빠져나갔다. 빈자리는 저금리 기조 속에서 수익률을 높이고 싶은 개인투자자가 메웠다. 여기에는 동양그룹 금융 계열사인 동양증권의 전국적인 판매망이 큰 몫을 했다. 동양그룹이 회사채·CP를 발행하면 동양증권이 프라이빗뱅킹(PB)센터와 지점을 통해 고객에게 구입을 권유하고, 고금리를 맛본 투자자가 재투자하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4) 수면위로 떠오른 부도설하지만 이렇게 편법적인 방법을 통해서 개인의 돈까지 끌어다 썻지만 건설경기 부진은 예상보다 계속 지속되었고 그 기간에 이자가 더해지면서 채무의 크기가 점점 증가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동안 잠잠했던 이유는 가족 그룹인 오리온의 지원해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석 연휴가 끝난 23일, 월요일 오전. 오리온 그룹이 동양에 대한 지원이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순식간에 동양그룹의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증폭된 것이다.지원이 없다면 당장 올 하반기, 발행한 회사채의 만기가 돌아오는데 동양그룹은 이에 대한 상환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부도설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2. 한 주간의 동양그룹 동향9월 23일▶동양그룹주 오리온 자금지원 불발 소식에 줄줄이 하한가▶오리온 지원 거부 동양그룹 “발전사업 지분 매각 속도 내겠다”동양시멘트ㆍ동양증권ㆍ동양파워 등 동양그룹 5개 계열사가 발행한 기업어음(CP)은 총 1조1000억원 수준으로, 이달부터 차례로 만기가 돌아온다. 하지만 형제 기업인 오리온의 자금 지원이 거부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동양그룹은 자금 확보를 위해 동양파워와 동양매직의 매각을 결정하였다.9월 24일▶위기 심리와 뱅크런오리온의 지원 거부로 동양의 부도설이 떠오르면서 기존에 동양증권을 통해 동양그룹의 회사채를 산 투자자들이나 동양종금을 이용하는 일반 투자자들도 불안심리에 떨며 앞 다투어 예금된 돈을 인출하는 뱅크런이 일어났다.9월 25일▶금감원, 동양파이낸셜대부도 특별 검사▶동양 650억 회사채 발행 ‘일단 정지’…금융당국 제동에 지연 불가피동양그룹에 대해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이 나섰다. 최근 유동성 위기에 빠진 동양그룹의 금융 계열사인 동양증권에 대한 특별 점검에 착수했다. 그리고 발행예정이었던 650억 규모의 회사채에 대해 발행 정지시켜, 동양그룹의 자금압박이 더욱 가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