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프(K. H. Graf)는 Die geschichtlichen Bücher des Alten Testaments(1866) 에서 예언자들보다 법이 늦게 형성되었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라프 이전에도 이와 같은 의견들(E. Reuss, J. F. L. George, W. Vatke)이 있었으나, 그들은 모두 드 베테(W. M. L. DeWette)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드 베테는 Contributions to Old Testament Introduction(1806-7)에서 오경의 율법이 시내산에서 모세가 받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종교의 역사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 발전된 결과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문제는 희생 제도(sacrificial system)와 신정 정치(hierachic)를 보여주는 모세의 율법의 존재를 다윗 시대에 보여주는 역대기 사가의 역사였다. 그러나 드 베테는 역대기 사가의 역사서는 사무엘과 열왕기를 사용하였으며, 편파적인 유다에 대한 생각 그리고 북이스라엘의 증오가 그 안에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래서 시기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오경에 있는 법과 그 이후의 책들에 있는 내용을 비교함으로써, 오경의 법이 결코 우선 시기가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신명기의 예배 중앙 집중화와 그것을 모르는 사무엘-솔로몬, 신명기 17장 14-20절의 왕권의 율법과 왕권 제도를 거부하는 사무엘, 출애굽기 25-28장에서 솔로몬의 성전을 배경으로한 모습, 후기에 나타나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구별.17-18세기에 오경 문학은 여러 이론을 불러 일으키는 시기가 되었다. 특히 창세기에서 두 개의 신명 사용, 이야기들의 양식 차이, 창조의 반복된 설명 등이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아스트뤽(J. Astruc)과 아이히호른(J. G. Eichhorn)은 창조에 관한 두 기사를 E(엘로히스트 자료)와 J(야위스트 자료)로 지정했다.
서론오경의 자료가 JEDP라는 문서로 구별된 이후, 다양한 방면에서의 논쟁이 있어왔다. 자료의 존재에 대한 논쟁, 순서에 대한 논쟁, 연대에 대한 논쟁 등이 있었다. 다수의 학자들은 P 자료에 대한 존재와 특징이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합의점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특별히 P의 내용과 특징에 대해서는 합의하는 바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진행중인 논쟁도 있다. P의 기본자료라고 할 수 있는 PG에 대해서는 공통된 의견이 있으나, 그 결말이어디까지인지, 그렇다면 후에 작업된 자료는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그러나더욱 중요한 논쟁은 P가 자료로써 기능을 하였는지, 편집으로써 기능을 하였는지에 대한논쟁이다.그래서 본 논문에서는 먼저 대부분의 합의가 있는 P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할 것이다.이 내용은 기본자료인 PG가 아닌 완성된 P에 대한 내용이 될 것이다. 그리고 논쟁 중인자료 모델과 편집 모델의 특징과 주장하는 학자들의 의견을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이 두 모델에 대한 보완적 모델로 등장한 혼합 모델에 대한 학자들의 주장을 볼 것이다.본론1. P의 특징뇔데케(Th. Nöldeke)는 오경의 가장 기본 자료를 P로 설정했다. 그리고 그 P의 범위는광범위하며, 반복적인 내용이 있지만 구체적이고 자세한 서술이나, 생동감이 있지는 않은특징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등장 인물에 대해서도 간략한 언급만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중 략>또한 제사장 저자는 “톨레도트(ותֹדֵ ולֹת “(양식을 사용하였다. 이 양식은 원역사에 5번(창 2:4a; 5:1; 6:9; 10:1; 11:10), 족장사에 5번(창 11:27; 25:12, 19; 36:1; 37:2) 나타난다.8 그리고 몇 개의 족보들에서는 이름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표현되기도 한다.9 이 양식으로제공되는 내용은 이름과 나이 목록뿐이다. 분명 이것은 소개된 인물들에 대해 이미 있던서술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한다.10 역사 서술의 중요한 이 틀은P의 편집을 위한 기반이었다.출애굽기에서 레위기를 지나 민수기까지 이어지는 자료에서도 P의 작업이 나타난다.창세기보다 도 훨씬 작은 내러티브로 이루어져 있으며, P의 작업은 “그들이 -에서 떠나 -에 진을 치다’라는 양식으로 표현되었다.
인간이 창조될 때, 원래 죽음을 가진 존재였을까? 아니면 영생하는 존재였으나, 선악과의 범죄로 말미암아 죽음을 가지게 되었을까? 우리는 죽음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2-24)1. 고대 근동과 구약에서의 죽음영원하신 하나님(시 90:2; 합 1:12)과는 달리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민 16:29; 수 23:14;삼하 14:14; 왕상 2:2; 욥 14:1-2; 16:22; 30:23; 시 49:10; 전 9:5; 사 51:12).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1) 고대 메소포타미아이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성경 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의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죽음은 원래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며, 영생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 자체가 헛된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길가메쉬여, 당신은 어디로 방황하십니까?당신이 찾는 영원한 생명을, 당신은 결코 찾지 못할 것입니다.(왜냐하면) 신들이 사람을 창조할 때에,인간의 몫으로 죽음을 정해 두었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자신들을 위해서는 영원한 생명을 간직했습니다.길가메쉬여, 당신은 당신의 배를 채우고, 밤낮을 항상 즐겁게 보내고,날마다 축제를 여십시오.당신의 손에 있는 아이를 보고당신의 아내를 당신의 품속에서 즐겁게 하십시오.이런 일들만이 인간의 관심사입니다.(The Epic of Gilgamesh, Tablet 10, 77-91)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강의안1.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개념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개념에 대해 도드(Dodd)는 몸짓이나 시간 또는 공간을 상징적으로 하여 의사를 표현하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정의하였고, 골더버(Goldhaber)는 언어를 제외한 메시지를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주장하였다. 한편 사모바(Samovar)와 포터(Poter)는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란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송신자와 수신자에게 잠재적 메시지 가치를 갖는, 인간이나 환경에 의해 야기된 언어를 제외한 자극을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보았다.커뮤니케이션 체계를 언어적 양상과 비언어적 양상으로 구분할 때,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란 언어를 제외한 비언어적 신호를 통한 의도적, 비의도적 정보교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2.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특성1)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은 언어적 커뮤니케이션과 마찬가지로 의사전달의 기능을 가진다. 일시적이고 아주 작은 움직임일지라도 개개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상대를 좀더 효과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비언어적 단서들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2)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은 표현의 강도에 따라 전달의미의 단호함을 나타내고 확인의 정도를 전달할 수 있다. 미소나 얼굴을 찌푸리는 행위 또는 껴안는 정도의 강, 약에 따라 의미의 해석이 달라지는 데, 이것은 특히 비언어적 행위를 통해 잠재된 의식이나 억제된 욕망, 두려움의 요인들이 파악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3)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은 상황적 해석에 근거하여 그 의미가 결정된다. 같은 행위일지라도 상황에 따른 의미해석은 전적으로 다르다. 거짓으로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한쪽 눈을 깜박이는 행위와 예쁜 아가씨를 보고 짓궂은 남자들이 보이는 행위의 의미는 서로 다르다. 또한 병행되는 언어적 단서가 무엇인가에 따라서도 의미는 변화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문화적 상황이 다른 경우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4)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은 신뢰도가 높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여겨진다. 긍정적 단서들이 언어적 근거로 그 규칙들이 정형화된다. 그리고 사회가 변화거나 대인간의 관계에 변화가 발생되었을 대는 이 규칙의 적용도 바뀌게 된다.6) 전달된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애매함 또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한 특성으로 지적된다. 채널간의 표현이 언제나 같지 않기 때문에 표현과 해석의 방법에 일관성을 기대하기 힘든 특성을 지닌다.3.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역할1) 반복인간은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요소를 이용하여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고, 송신자가 의도했던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그러한 요소들을 동원하여 언어적 메시지를 반복한다. (예, 정원에 대해 말을 하며 손가락으로 정원 가리키기 등)2) 상반언어적 메시지와 비언어적 메시지가 서로 상반될 때, 보다 신뢰할 수 있는 메시지는 비언어적 요소가 전달되는 메시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송신자는 메시지가 서로 모순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메시지를 의도적으로 사용한다. 그 이유는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은 언어적 표현보다 자연스럽고 숨기기가 어려우며 따라서 언어보다 더 정확하고 믿을 만한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언어에 의한 직접적 메시지 전달이 어려운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 의도한 바를 표현, 전달한다. (예, 부모가 화난 목소리로 아이를 꾸짖으며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등)3) 보완비언어적 요소들은 전달되는 메시지와 보내는 자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송신자의 외모, 표정과 몸짓, 음성과 어조 등은 그 사람의 됨됨이와 그가 말하고자 하는 화제에 대한 그의 태도뿐만 아니라 그가 보내는 언어적 메시지 자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비언어적 요소 중에서 어떤 것은 메시지의 송신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의미에서 보완적이다. (예, 말을 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거나, 눈을 부릅뜨는 것 등)4) 강조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은 또한 언어를 강조하기도 한다. (예, 말하는 중에 특정 단어를 크게 말하거나 문장에서 특정한 단어를 이탤릭체나 고딕 및 유사점1) 차이점① 언어에 비하여 비언어적 표현은 상호간에 별로 의식되지 않고 행해지는 경향이 있다.② 대부분의 비언어적 표현이 덜 구체적이고 구체화할 수 없는 성질을 가지는 데 비하여 언어는 상대적으로 명백한 규칙과 구조를 가지고 있다.③ 사용법에 차이가 있다. 의도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비언어적 표현보다는 언어가 더 자주 사용된다는 것이다.④ 비언어적 행위보다는 언어와 언어유형에 대한 체계적, 집중적 연구가 더 많이 행해졌다.⑤ 학문적 관심사의 초점에 차이가 있다. 비언어적 활동의 중심에는 뇌의 위치가 존재하고 있다. 뇌의 좌반구는 언어처리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대조적으로 우반구는 얼굴과 신체 이미지, 예술 음악에 대한 인지 등 통합과 창조, 상상력에 관련되는 노력을 인식하는데 특별히 중요성을 갖는다.2) 유사점① 비언어적 표현보다는 언어적 표현이 더 자주 의도적 메시지의 전달을 위하여 사용된다. 그러나 둘 다 의도적 또는 비의도적으로 생산되고 전달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② 비언어적 표현의 구조와 유형은 언어의 구조와 유형에 비해 덜 구체화되어 있지만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도 일정한 규칙과 유형이 있음을 알 수 있다.③ 구어적 메시지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몇몇 이들 규칙과 유형들은 개인적 또는 문화적 차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의 행위에 공통된다. 매우 광범위하게 공유되는 이들의 유형은 모든 인간에 공통된 생리학적 능력과 인지 능력의 결과이다.④ 비언어적 표현과 언어적 표현체계가 갖는 보편적 특성 이외에 특정한 지역이나 직업 또는 문화적 단체나 개인들에 따라 독특한 많은 유형들이 있다.⑤ 다양한 형태의 언어적 또는 비언어적 행위 가운데 어느 것이든 서로 관계를 맺으며 서로 보완적 관계가 된다. 그러나 언어적 표현과 비언어적 표현은 잠재적으로 모순된 정보자료가 될 수도 있다.5.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의 유형1) 몸짓 (제스처)몸짓은 아이디어, 의도, 또는 느낌을 전달하는 데 사용되는 몸(또는 몸의 일부분)의 움직임이다. 도드(Dodd)는 등)2) 자세자세는 사람의 인상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가까운 거리에서는 상대방의 얼굴만이 주로 시야에 들어오지만,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 사람의 몸 전체가 보이기 때문이다.3) 얼굴표정인간 얼굴의 특징은 개인과 개인을 구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며, 개개인의 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간의 얼굴은 다양한 표정을 나타낸다.① 내재적 기호모든 영장류는 얼굴표정이라는 기호체계를 사용하는데, 하급 영장류에서는 유인원에 가까워질수록 표정의 가짓수가 많아진다. 가장 보편적 표정 가운데는 슬픈 얼굴, 화난 얼굴, 장난스러운 얼굴, 뿌루퉁한 얼굴 등이 있다.② 상징적 기호얼굴표정은 감정을 표현하거나 특정 행위를 흉내내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얼굴 제스처도 경우에 따라서는 상징적 기호로 작용한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흉내를 내는 얼굴 표정을 말한다.③ 임의적 기호얼굴표정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임의적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 그러나 얼굴표정은 사회적, 관습적으로 공유된 일종의 원칙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에 그 해석에 관해 지리적, 문화적 차이가 존재할 수도 있다.4) 응시의사를 전달하는 인체의 모든 부분 중에서 눈은 가장 중요하며, 가장 민감한 뉘앙스를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이 눈이다. 응시의 형태는 사람들과의 관계설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효과적인 신호로서의 응시기능에는 보내고 받는 것 사이의 조화가 이루어진다. 즉, 사람들은 응시의 형태로 정확하게 해석한다.① 일방적 응시일방적 응시는 관심에 대한 일방적 표현이며, 우리가 보낸 시선이 돌아오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방적 응시 행위는 상대방의 프라이버시와도 관계가 있어 신중하고도 예의바른 시선처리가 필요하다.② 상호응시상호응시는 두 사람이 서로 쳐다보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것을 ‘눈맞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눈맞춤은 상호응시 중 상대방의 눈동자를 맞추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상호응시의 한 부분이다. 상호 시선을 교환한다는 것은 서로간에 서로 상이한 의미를 지닐 수도 있으며, 유형 또한 다양하게 나타난다. 신체접촉은 그 범위나 정도에 따라 스치기, 만지기, 문지르기, 움켜쥐기, 누르기, 주무르기, 긁거나 할퀴기, 격한 접촉, 껴안는 행위 등으로 구분되고, 신체의 어느 부분과 연결되는 행위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또한 신체접촉이 어떠한 상황과 시간 및 장소에서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그 행위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의미를 달리한다.6) 색깔색이 말을 한다. 색은 문화다. 따라서 문화가 다르면 색의 이미지도 다르다 이제 비즈니스도 색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되었다. 색은 각각의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으며, 고유의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색 선호도는 유전자, 아동기 때의 기억들, 교육, 부모님의 믿음, 문화적 훈련, 정치적 성향, 그 밖의 여러 삶의 측면에서 종합해서 생긴 결과이다. 그러므로 색이 보내는 여러 가지 메시지를 알면 그 메시지를 통해서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7) 냄새냄새는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에서 하나의 정보원이 된다. 냄새에는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이 있다. 사람의 몸에서는 일정한 냄새가 풍기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는 그 사람의 성, 직업, 나이, 신분 등에 관한 기본적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 냄새에 의해서 수행되는 기능의 하나로 대화의 분위기 조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냄새는 인간의 성생활, 동기부여, 기억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들이 닥치면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한다.8) 이모티콘이모티콘은 감정(emotion)과 아이콘(icon)의 합성어이다. 그리고 ‘전자적 준언어’라고 불리기도 한다. 전자적 준언어는 규범적 문법이나 언어와는 관계없이 시각적, 감각적 또는 상황적 의미를 전하는 데 유용한 측면이 있다.① 이모티콘의 장점- 기계적이고 단순한 메시지 교류를 부드럽게 해 준다.- 아날로그 메시지를 감정적, 주관적으로 전달해 준다.- 메시지를 강조하거나 보완해 준다.- 기존 문자메시지의 내용을 명진다.
초기 기독교와 축귀 사역 서평저자인 트웰프트리는 축귀에 대해서만 세 권의 책을 썼다. 그는 한 마디로 귀신 전문가다. 그리고 그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관심이 무척이나 많기 때문에 이 책에서도 그런 입장이 종종 발견되곤 한다. 이 책에는 초기 1-2세기의 문헌들을 통해 볼 수 있는 축귀에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시대순으로 배열해 놓았기 때문에 이해에 도움을 준다. 이런 내용은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이 축귀를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에 대해 좋은 제안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저자는 이 책을 읽기 전 독자들을 향해 권고하는 바가 있다. 그것은 축귀를 다루기 위해서는 영적인 존재와 그들과 관련된 악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현대인의 사고에서 귀신의 실체에 대해서 집중하고 밝히려는 것보다는 그들의 문화적 환경에서 나타난 그들의 세계관을 이해해야 축귀에 대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신약성서에서 축귀를 접근하며 경험할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것은 예수의 활동을 담은 공관복음에서는 축귀 사역이 예수의 사역 일부분으로 나타나지만, 바울서신에서는 축귀와 예수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언급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축귀의 강조점에 대해서 동의하는 학자와 그렇지 않은 학자들로 나눠질 수 있다. 그런데도 저자는 신약성서의 축귀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먼저 예수와 제자들이 인식했던 축귀의 의미에 대해서 다루고(2장), 신약성서의 연대를 따라 축귀의 위치와 관행을 설명하며(3-9장), 그가 다룰 연구범위의 마지막시기인 기원후 200년까지 나타난 초기 기독교인들의 축귀를 다룬다(10-12장).본론으로 들어가면, 2장에서는 예수의 축귀를 살펴보기 전에 당대에 마술사들과 축귀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축귀’에 대한 언급들이 있는 문헌들을 나열하고, 설명한다. 마술사들은 축귀 의식, 외부의 능력이나 권위에 의존하여 축귀를 행한 자들이면, 축귀자들은 전적으로 자신들의 카리스마에 의해 축귀를 했던 자들이었다. 이 장의 핵심인 예수의 축귀는 고대인들의 모습에서는 카리스마적인 마술사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축귀를 행했다. 하지만, 당대 어떤 유대인들도 이런 기적을 종말론적인 표징으로 연결하지 않았는데, 예수는 이것을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연결하는 독특한 해석을 했다는 것을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또한 예수가 제자들에게 축귀의 임무를 부여했는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본문의 예는 없지만, 예수가 강조한 하나님 나라의 도래 메시지 속에 축귀에 대한 임무는 내포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합리적 추론을 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리고 제자들에 의해서 축귀가 이어지고 있었다는 증거는 예수의 메시지의 핵심이었던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도래하지 않았고, 예수의 시대처럼 도래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평가된다.3장에서는 바울서신으로부터 신약성서에 나타난 축귀에 대해서 논한다. 바울서신에서는 특이할 정도로 축귀 사역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물론 사탄과 관련된 본문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말이다. 이것이 바울이 예수의 축귀에 대해서 몰랐다는 것은 아니고, 바울이 축귀자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지는 않는다. 또한 바울이 축귀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이런 현상이 바울이 서신을 통해 공동체에 쓰고자 했던 세계관과 달랐기 때문이라고 정리한다. 그래서 바울서신에 눈에 띄게 등장하지는 않는 것이다.Q 자료도 비슷하다. Q에도 예수의 축귀 사역에 대한 큰 관심은 없어 보이며, 이것은 의도적으로 경시한 결과일 것이라고 저자는 추측한다. 그런데도 Q는 축귀와 종말론적 전투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으며, 축귀를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하고 있다는 것은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마가에 나타난 축귀에서 저자는 사회적, 정치적 배경하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해석자들의 시도에는 한계가 있음을 언급하고, 정치적 자유를 위해서가 아닌 개인적 차원에서 축귀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마가에서 축귀는 상당히 중요한 사역이었고, 축귀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 가능한 일이었으며, 당시 축귀는 예수가 했던 방법을 배워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행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축귀에 대한 언급은 사라진다.누가는 예수의 축귀 사역을 강조하는 동시에 초기의 중요성을 감소시킨다. 교회 사역에서 축귀는 강력한 것임을 주장함과 동시에 마가처럼 가장 중요한 측면은 아니었다. 누가에게 축귀는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 나라의 도래 그리고 사탄과 그의 왕국의 패배와 관련있다.마태는 마가처럼 축귀에 강조점을 두지 않으며, 누가처럼 복음 전도와 균형을 맞추어 설명하지도 않고, 복음 전도에 일부 포함된 것으로 본다. 마태에게 축귀는 사역의 우선순위가 낮은 편이다. 그러나 축귀가 가진 의미는 누가처럼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사탄의 멸망을 표현했다.그 외 베드로전서, 히브리서, 야고보서에 언급된 축귀를 간략하게 언급하지만, 전체적인 글에 있어서 중요도를 띄지는 않는 것 같다.저자는 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은 예수의 축귀에 대해 침묵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요한이 왜 그렇게 했을까에 대해서 몇 가지 제시되는 의견들을 설명하고 정리한다. 그것은 관점의 차이인데, 요한은 예수의 신적인 모습에 집중하고, 귀신의 영향은 진리에 의해 극복 가능한 것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축귀 사역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본다.3부에서는 기원후 200년까지 초대 교부들과 변증가들 그리고 초기 기독교 비판자들의 몇 개의 문헌들을 다룬다. 기원후 2세기 초반의 문헌들은 신기하게도 축귀에 대해서 거의 다루지 않는다. 그렇다고 귀신 세력이 없는 것처럼 여기는 것은 아니다. 몇 개의 문헌은 요한복음처럼 축귀가 아닌 방법으로 귀신을 제어하고 물리칠 방법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후의 문헌들에서 축귀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문헌들도 있었다. 결국, 신약성서 이후의 문헌들은 신약성서의 어떤 전승들에 주목하느냐와 어떤 배경에서 쓰인 글이냐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이 보였다. 하지만, 축귀만이 초기 기독교인들의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는 대부분의 공통점이 있었다.저자는 마지막에 전체의 내용에 대한 요약과 결론을 말하고, 종합된 의견들을 담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귀신과 축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제안한다. 나에게는 모두 동의하는 내용이었다. 저자와 같이 터툴리아투스가 한 말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귀신은 신적인 은혜의 압력을 통해 패퇴한다.”각 장의 소제목이 일관되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다. 하지만 책의 주제와 내용은 “귀신”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반드시 추천하고 싶은 (현재까지는 유일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