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 강독 에세이 -위험사회당신은 지금 위험하지 않은가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과학 기술의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6-17세기에 걸쳐 일어난 과학혁명을 동력으로 삼아 18세기에는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이에 영향을 받아 기존의 계급주의적 사회는 붕괴되고 근대적 산업사회가 도래했다. 대량 생산체제를 통해 인류는 유래 없이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게 되었고 그에 발맞추어 과학도 끊임없이 발전해왔다. 그렇다면 과연 근대화는 물질적 풍요만을 가져왔으며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류에 있어서 온전히 순기능만 한 것일까?저자, 울리히 벡은 인류가 인간을 어떠한 전통적 제약에서 해방되게끔 하거나 자연을 이용하는 데에만 관심을 지닐 뿐, 과학 기술의 발전이 초래하는 문제들은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전근대 사회나 근대 사회에서의 ‘위험’은 전쟁과 같이 인간이 만들어낸 위험이었거나, 자연재해로 대표되는 초자연적인 위험이었다. 그러나 후기근대로 넘어옴에 따라 위험은 예측불가능하고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속성을 가지게 되었다. 원자력 발전소가 불의의 사고로 파괴되어 방사능이 누출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러한 사고는 사고지역 인근에 거주하던 사람은 물론 지구 반대편의 사람에게도 피해를 줄 것이며, 그 피해는 후대에도 이어지게 될 것이다. 이때, 이러한 피해와 위험은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민주적으로 분배된다. 이처럼 저자는 후기 근대 사회에서 과학기술로부터 초래된 위험이나 위난들이 예측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또한 저자는 저서를 통해 ‘위험의 분배’에 관한 실재론적 인식을 보여준다. 산업사회와 마찬가지로 후기 근대사회에서도 선진 국가에서 제 3세계로 위험이 분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부메랑 효과’에 대해 언급하며 위험이 제 3세계로 전달된다고 해서 끝이 아님을 지적하고 있다. 선진 국가들은 위해 요소를 제 3세계로 이전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지만, 오염물질은 차, 카카오 등 플랜테이션 작물에 함유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되기 때문이다.그 다음으로 저자는 근대화 이후 나타난 ‘개인주의화’ 경향에 초점을 두고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이때 개인주의화는 부르주아들의 자본경쟁 과정에서 발생된 것이라기보다는 후기 근대 노동시장의 산물에 가깝다. 노동시장은 세 가지 측면에서 개인주의화를 촉발시켰다. 첫째로 교육은 개인에 있어 거의 유일한 상향이동의 수단인데, 각 급 학교와 대학교의 공식교육은 개인들에게 증명서를 발급해주는 시스템을 통해 개인들이 노동시장에서 개인주의적으로 이력을 쌓아가게끔 했다. 둘째로 노동시장에 일부로서 개인들은 사회적, 직업적 이동을 통해 세습적이거나 새롭게 형성된 연대에 대해 독립적이게 된다. 셋째로 개인들은 자신들의 기량을 선전하기 위해 남들과 경쟁하게 된다. 이러한 세 요소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며 상호 강화함으로써 개인주의화를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이러한 개인주의화의 결과로 계급사회가 붕괴되면서, 개인들은 전통사회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생활을 맞이하게 된다. 평등의식의 확산과 피임기구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여성이 전통적 가사에서 해방되었으며, 시장의 영향으로 가족이 분화되고 탈전통화 되면서 개인들은 전문성을 지닌 제도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이때 저자는 개인이 사회나 제도에 가지게 된 의존성 때문에 사회의 위험이 개인의 위험으로 직결되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불평등 역시 개인화 되었다. 사회적으로 평등이 보장되지만 개인이 불평등 구조에 빠지면 이는 개인의 책임이 되고 이에 대한 사회적 구제는 없다. 따라서 개인주의화는 전통적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지도규범과 관련된 전통적인 의미의 안전 상실을 의미한다. 나아가서는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속박이라는 일반모델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저자는 위험 사회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으므로 반(反)과학화나 반(反)근대화를 해야 한다는 비관 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근대화의 과정에서 인류가 성찰성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저 녹색 운동 집단내에서가 아닌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과학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과학 그 자신도 과학 그 자신의 산물인 과학주의의 문화가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에 대해 냉정한 시각에서 반박하고 있다. 성찰적 과학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정치적인 것은 비과학화되고 비정치적인 것은 과학화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경향성은 곧 정치 체계 외부에서 시민 단체, 사회운동과 같은 형태로 새로운 청치참여의 요구를 생산한다. 저자는 근대화의 왜곡된 효과를 바로잡기 위해 합리화를 급진화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책이라는 현대 과학기술의 이중성을 ‘성찰적 근대화’를 바탕으로 심도있게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과학에 대한 사회적 제어력을 높이는 과정인 동시에 새 근대성을 향해 진보하기위한 과제이기도 하다.
사회학이론 보고서부르디외적 관점에서 본 일본 오타쿠 문화[ 목차 ]주제 선정 배경부르디외의 구성주의구조주의 이론아비투스(Havitus)와장(Field)이론의 적용 및 결론주제 선정 배경‘오타쿠’는 1970년대 일본을 중심으로 나타난 서브 컬처(하위문화)의 팬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서브 컬처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오타쿠 문화는 주류 문화와 대비되는 비주류 문화이기도 하다. 이들은 확실한 ‘취향’을 가지고 그것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향유한다는 행동의 특성을 보인다. 초기에는 애니메이션-SF 팬에 한정해 불리었지만 지금은 명확한 정의가 없이 ‘팬’이나 ‘마니아’ 단계를 넘어서 자기의 관심분야에 미친 듯이 열광하는 사람들을 통틀어 오타쿠라 부른다. 이들은 자기만족을 위해 관심대상에 대해 순수한 호기심을 갖고 깊게 파고든다. 수집가적 기질과 함께 나아가서는 자기만의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극도의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특이한 점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타인의 시선은 개의치 않고 주관적인 가치관으로 사유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산다는 점에서, 오타쿠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는 같은 선 상에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오타쿠와 히키코모리는 조금 다르다. 히키코모리는 철저하게 자기만의 세계에서만 지내는 것에 비해 오타쿠는 자신과 같은 취향이나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는 어울리거나 일종의 친목을 형성하기 때문이다.일본의 경우 ‘자신을 오타쿠라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 약 38%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등 오타쿠 라는 문화 계층이 확실이 자리잡은 상태이다. 또한 이들 계층이 사회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됨에 따라 오타쿠 시장을 표적으로 하는 산업이 발달하고 이들 문화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싱크탱크가 따로 설립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오타쿠에 대한 인식은 분명 일본에 비해 좋지 않다. 일본에서는 불경기 시기 오타쿠의 활약이 있으면서 이미지의 전환이 이뤄진 적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계기가 없었고 히키코모리와 동일한 존재라고 여기거나 오타쿠가 늘날 오타쿠 문화는 전 세계인이 함께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로 부상했다. 오타쿠 관련 시장은 매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오타쿠에 대한 편견이 점차 희석되면서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 또한 받고 있다. 이제 일본의 오타쿠 문화는 현대 사회에 있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저력 있는 비주류 문화로 자리하였으며, 오타쿠라는 문화 계층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에서의 고찰이 필요하게 되었다. 여기서 변화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오타쿠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님에 주목해볼 수 있다. 오타쿠에 대한 시선은 대부분 철저히 타자에 의한 시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결국 오타쿠에 대한 총체적인 논의는 필연적으로 사회학적인 것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으며, 오타쿠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선 오타쿠에 대한 일반 사회의 시선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이론을 바탕으로 사회적인 환경과 그 환경 속에 있던 일본 오타쿠들의 실천이 어떠한 방식으로 나타났는지를 통시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핵심개념인 장과 아비투스를 살펴보고, 시대순으로 일본 오타쿠의 변화상을 짚어가며 고찰한다.부르디외의 구성주의 구조주의 이론부르디외는 기존의 구조주의와 현상학 이론이 각각 구조의 논리와 개인의 논리에 지나치게 종속되어 개인의 주체성과 구조적 특징과 제약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논의를 시발점으로 하여 구조와 행위의 융합을 목표로 하는 구성주의 구조주의 이론을 제시하였다. ‘행위는 특정한 구조 안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개념의 이 이론은 사회에 있어 구조적 영향과 동시에 개인의 즉흥성이 같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다.한편, 모든 것을 경제적 자본 하나로 환원시켜 바라본 마르크스와는 달리 자본의 개념을 확장시켜 네 가지 종류의 자본을 제시하고 분석하였다.경제자본마르크스의 자본 개념과 유사함사회자본네트워크(=연결망)라고 이해해 볼 수 있음자신에게 유리한 집단에 소속된 것, 개인이 동원 가능한 인간관계 등문화자본학력, 가치, 이때 자본끼리 상호간 어느 정도 변환될 수 있다.아비투스 (Havitus), 장(field)부르디외는 사회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행위자의 ‘실천’과 그것의 사회적 조건을 이해하기 위해 ‘아비투스(habitus)’와 ‘장(field)’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장이 가지는 속성 중에는 투쟁공간으로서 장이 있다. 각각의 장은 특수한 게임과 규칙을 가지는데 이는 다른 장의 규칙으로 환원될 수 없다. 이 공간은 다양한 위치를 점유하는 여러 행위자들 간 투쟁의 공간이다. 투쟁의 목표는 장에 고유한 자본의 정당한 독점, 혹은 자본의 재정의이다. 행위자와 기관들은 특수한 자본을 전유하기 위해, 장을 구성하는 규칙과 규칙성에 따라서, 또 때로는 그 규칙성에 대하여 상이한 힘을 가지고 투쟁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 안의 행위자들은 장의 존속에 공통의 이해를 가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종의 객관적 공모관계를 맺고 있다. 행위자들, 특히 지배자들이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 유지하기 위해 투쟁에 동원하는 모든 ‘수단’이자 ‘소유물’이 바로 자본이다. 인간은 장 속에서 행동하고 장에서 탄생한 규율을 내면화하는데 이것은 강제적인 무엇이 아니라 자발적인 순응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 아비투스라고 한다. 요컨대 어떤 한 사회의 장 안에서 상호 경쟁을 하면서 새로운 문화가 생성된다. 이 때 장 내부의 경쟁을 하는 게임의 룰을 개인마다 내면적으로 익히는 데 이것을 아비투스라 한다. 즉 행위자들은 사회 구조의 영향을 받지만, 행위자 스스로는 그 같은 규율이 완전히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계급이나 계급분파의 '관행'을 생산-재생산하게 함으로써 각 계급이 특정한 아비투스를 표방하게끔 하고 이를 매개로 계급 내에서 비슷한 취향이나 안목이 나타나게 된다.이론의 적용 및 결론이론을 적용하기에 앞서, 앞에서 언급한 일본 오타쿠 문화의 전개과정을 다음과 같이 표로 간단히 정리해 볼 수 있다.구분1세대(1960년대 생)2세대(1970년대 생)3세대(발달-심야 애니메이션 방송-오타쿠문화의 대중화취향-만화, 애니메이션-특촬물-SF물-만화, 애니메이션-특촬물-게임-성우-만화, 애니메이션-게임-라이트노벨-아이돌 성우실천-코믹마켓-코믹마켓-코스프레-성우팬덤-코믹마켓-코스프레-성우팬덤-모에문화특징전문가, 프라이드,행동가, 창조적엘리트의식, 자기보호의식, 이야기 소비자기 중심주의, 자기연민, 데이터베이스 소비오타쿠 내부에서는 1세대 2세대 시절에 사회적 박해의 경험이 있었다. 이 시기에 형성된 오타쿠의 부정적 이미지를 3세대 오타쿠들은 오히려 내면화시켰다. 이것은 오타쿠 스스로 서로를 부정적으로 그리거나 하며 ‘돌출적 행동을 하는 오타쿠’들을 비판하는 행위로 이어진다. 즉 3세대 오타쿠는 그만큼 자기 연민이 강한 만큼 혐오 또한 강한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 한편 인터넷이 발달하고, 개인이 자신의 세계에서 살기에 더욱 편리한 세상이 됨에 따라 이러한 경향은 더욱 짙어졌다. 또한 일본 사회전반적인 로리콘 풍의 아이돌의 열풍이 오타쿠 문화계에서 유행하자 급기야 어느 정도 패턴화 된 모에 문화가 탄생하기도 한다. 이 모에라는 것 자체가 대개의 인터넷 유행어가 그렇듯이 정확한 의미 없이 주관적으로 소비되는 용어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전세대에 비해 점차 ‘자기 취향에 맞는’ 작품만 보려 하고, 사회적인 거대 서사보다는 보다 개인적이고 호흡이 짧은 것을 선호하게 된다.이것은 1, 2세대가 작품을 공부하며 탐구했던, 그래서 이로 인해 장내에서 문화자본과 상징자본을 두고 경쟁했던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1, 2세대 오타쿠들이 더 많은 지식을 모으는 것에 집중했다면 3세대 오타쿠들은 지식보다 감각이 우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오타쿠들이 커다란 이야기를 가진 작품을 분석하고 재구성하였다면, 3세대 오타쿠들은 약해진 서사성 대신 캐릭터의 특징을 이어붙이기만 해도 인기가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타쿠의 폐쇄성은 계속 이어져 오는데, 기존의 오타쿠가 지식으로 자신과 타인을 구별짓기 하였다면 3세대 오타쿠는 캐릭터 데이터베이었다는 점이다. 지식은 공부할 필요가 있었고, 공부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자신의 취향이 아니더라도 오타쿠라는 ‘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기 싫은 작품도 보아야 하는 필수 교양이라 할 만한 것이 있었다. 그러나 개인의 취향만 남은 3세대 오타쿠는 더 이상 오타쿠 장 내에서 경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3세대 오타쿠가 일반인과 구분되는 점은 ‘지식’이 아니라 ‘감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이터베이스인데, 이 캐릭터 데이터베이스가 오타쿠들 내에서는 강한 친밀감을 느끼게 하지만, 오히려 일반인과는 결과적으로 거리를 멀어지게 한다. 따라서 3세대 오타쿠들은 폐쇄성이 더욱 짙어지게 된다..2000년대 이후, 앞서 언급한 요인들이 결합하여 오타쿠의 결정적인 어떤 이미지를 재창출해내고, 오타쿠 계 문화가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다.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스테레오 타입이 되어 이미지화된다. 이때 이 이미지들은 SF마니아 계열, 고전 특촬 계열의 1, 2세대 오타쿠들과는 이질적으로 보인다. ‘오타쿠’라는 장은 타자에 의해 성립된 장이었지만, 적어도 2세대 까지는 내부에 세력 다툼이 존재했고, 우월성을 가릴 수 있는 하나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그러나 3세대 오타쿠로 넘어가서는 2세대까지 쌓아온 아비투스의 일부가 남아있지만(여기에는 동인지, 코스프레 문화 같이 실천/신체화된 아비투스도 포함된다. 단 그 중에서 사회적으로 박해 받는다는 오타쿠의 이미지를 여기서는 더 강조한다) 사회적 환경의 변화로 선배 오타쿠와는 이질적인 존재가 되었다.오늘날의 포스트모더니즘을 표방하는 3세대 오타쿠들에게 계급적 지위를 담는 그릇이나, 그들 취향(혹은 안목)을 대변하는 의미로서의 아비투스는 그 의미가 많이 옅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장 속에서 각자의 개인이 하나의 룰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또 이때 특별한 중재자나 대표가 없어도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과정에서 3세대 오타쿠는 또 하나의 스테레오 타입 형의 인있다.
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본 저서의 원제는 《The Mouse that roared》이다. 이는 마치 쥐에 지나지 않는 것 같은 미키마우스(로 대표되는 디즈니)가 미디어 업계에서 사자와 같이 으르렁거리며 일종의 횡포를 부리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내 보인다. 본 저서의 서문에서 저자 헨리 지루는 즐거움, 순수함, 깨끗함이라는 명목으로 기업의 야심을 신비화하는 문화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하겠다고 선언한다.디즈니는 전 세계에 걸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1997년만 해도 3420만 명이 『멋진 디즈니 세계』를 시청했고, 380만 명의 가입자가 디즈니 유선 방송을 시청했으며, 79만명이 디즈니 테마 공원을 방문했다. 놀라운 점은 이 수치가 겨우 1주일 치 통계라는 사실이다. 디즈니는 미디어 및 문화 공간을 좌우하는 몇 안 되는 기업 집단의 일부로서 시민정신과 소비주의, 시민적 가치와 상업적 가치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 더군다나 디즈니에 노출되는 대부분이 어린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그 영향력은 더 막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벤자민 바버는 그의 저서 《국가》를 통해 어린이들의 진정한 교사는 학교 교사나 대학 교수가 아닌, 영화 제작자, 광고주, 연예인들로 구성되는 대중문화 종사자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MIT보다 MTV, 하버드보단 디즈니가 더 큰 영향력을 가지는 시대가 온 것이다.디즈니사의 회장인 아이스너는 디즈니가 지닌 이데올로기에 대한 시각이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상응하며, 디즈니는 국민 정체성의 보편적 형태를 만들어낸 해설자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디즈니는 순수함이라는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이상적인 대리 부모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점을 선전하지만, 순수함의 개념은 디즈니의 상업성, 이데올로기, 권력 추구라는 이미지를 정화해주는 수사학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디즈니의 상업적 성공과 아이들에 대한 영향력은 상업문화가 공공문화를 대체하고 시장경제의 언어들이 민주주의의 언어들을 대신하면서, 소비중심주의가 어린이들에게 제공되는 유일한 시민정신이 되었으며, 그 선두에 디즈니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리처드 쉬켈은 디즈니를 "맹목적인 애국주의, 자본가들의 도덕에 대한 맹신, 중산층의 섣부른 취미, 인종 차별, 기업의 이윤 조작, 사회의 획일성에 대한 덤덤한 수용을 양산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의 상상과 환상을 자극하고 순수하고 건전한 모험을 하고 싶은 충동을 유발시키는, 그저 유익할 것이라는 일반적 기대와는 다르게 그 컨텐츠가 전달하는 사회 문화적 메시지는 많은 지적을 받는다. 『정글 북』에서는 인디언을 폭력적인 야만인으로 묘사했고, 『알라딘』에서는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서 아랍 문화를 묘사한다. 『인어공주』나 『미녀와 야수』에서는 여성의 수동적 성역할을 강조한다. 젊은 여성에 대한 전통적 선입견에 도전하는 대담한 여성 전사 『뮬란』조차도 그녀의 용기에 대한 대가는 미남 장군으로 귀결된다. 다른 시각에서 아직 기초적인 사회화도 이루어지지 않은 아이들에게 기존에 사회에 자리하고 있던 여성의 성역할을 오히려 교육하는 역기능을 하기도 한다. 한편, 『인어공주』의 플롯을 통해 여자 아이들은 욕망과 힘을 얻는 방법은 멋진 남자를 잡아서 사랑하는 것밖에 없다고 믿게끔 길들여진다. 동화 이론가 잭 자입스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어린이에게 성에 대한 유해한 편견을 심어 준다. 그런데 어른들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근본적으로 해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한다.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내재하는 인종차별은 다소 노골적인 표현과 더불어 아프리카 출신 미국인들과 유색인종들에 대해 복잡한 표현을 기피하는 은근한 태도로 구체화된다. 동시에, 백인의 형상은 중산층의 사회관계와 가치체계, 언어사용 등의 특권적인 표현을 부여하여 보편화시킨다. 더욱이 역사나 개발 그리고 식민지적 잔재를 여전히 지니고 있는 서구문화에 대한 대표적인 입장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에서 동양주의에 대해 언급하면서 말했듯,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적인 사고로 자리 잡은 서구의 제국주의적인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일축된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비민주적인 사회관계에 대한 찬양이다. 남성이 통치하고 엄격한 규율이 사회 계급을 통해 지켜지고 지도력은 사회 지위에 따라 결정되는 식의, 표면적으로는 완곡해 보이는 표현들은 보다 엄격한 계급사회나 군주시대로의 회귀를 갈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타협은 복종의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며 모든 힘과 권위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현상임을 암시한다. 이런 생각들은 어린이들에게 인종차별, 인디언 대학살, 성차별, 민주주의에 대한 그릇된 사고를 가지게끔 한다.
제 3장 정치혁명 : 민주주의, 인권, 헌법의 발명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인민이 주권을 가지는 정치체제를 말한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실현된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은 일이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도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란 생소한 단어였으며 1911년 쑨원이 신해혁명을 통해 이 같은 정치체제를 시행한 것이 아시아 최초의 민주주의였다. 이에 1919년 상해임시정부가 근대 헌법 공표하고 민주주의의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때의 헌법을 1948년 정부수립이후 계승하였다. 이러한 점을 살펴보았을 때 대한민국은 형식적인 의미의 민주주의가 도입된 지 겨우 60년 된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1960년 대 이후 30년간 419항쟁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등 민주화 투쟁이 계속되었다. 민주주의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였다. 청교도혁명 때 절대군주의 목을 베기도 했고, 프랑스대혁명 때는 루이 16세를 단두대에 세우는 일도 있었다. 17-18세기의 유럽은 절대왕정시대였다. “왕은 지상에서 신의 대리인이며 왕권에 제한이 없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절대군주가 왕권신수설에 힘입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던 시대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 세기 반에 걸친 봉기와 반란, 그리고 혁명을 통해 근대 민주주의가 확립된 것이다.근대 민주주의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표방한다. 먼저, 모든 사람은 자유와 평등을 지닌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권력만이 정당하다는 점이다. 또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이들 모두는 누구에도 양보할 수 없는 천부인권을 지닌다는 원칙도 민주주의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인권의 발명은 곧 민주주의의 발명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는 근대 정치혁명이 남긴 문명의 유산이었다. 17세기부터 사상가들은 평민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정치체제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연권 사상에 따르면 어떠한 인위적 구조도 없는 상태인 자연 상태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롭게 태어난다. 이러한 자연 상태에서 개인의 자유는 제한이 없으나 가질 수 있는 재화는 한정되어있어서 투쟁하게 된다. 이는 나아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되며 이때 개인은 무질서의 공포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 홉스의 주장이다. 이러한 혼란으로 부터 안전하기 위해 법과 질서가 요구되는 정치공동체가 출현한다. 사회계약설은 법과 질서아래에서 인간이 자연 상태에서 누리던 자유와 권리를 정치공동체에 위임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때 정치공동체 아래에서 개인의 자유를 담보로 안전을 보장받는다면 이는 자연권 사상에 위배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에 대한 솔루션을 제시한 것이 바로 로크다. 로크에 따르면 개인은 국가가 자신의 안전과 자유,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조건으로 권리의 일부를 국가에 양도할 것을 동의하며 이러한 자발적 동의에 기초한 사회계약은 침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주목할 점은 로크가 정부가 계약을 잘 이행하지 못할 때 국민이 계약을 철회할 권리, 즉 저항권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덧붙여 장 자크 루소는 또 다른 솔루션으로 참여의 권리와 의무를 역설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해서 만들어가는 공동의 의지는 곧 일반의지가 되며 내가 복종하는 대상은 권력을 지닌 누군가가 아니고 일반의지에 반영된 자신의 의지라는 것이다. 이는 훗날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대혁명의 사상적 근간이 된다.미국은 영국과의 8년 전쟁 끝에 5만 명 사상자를 내며 독립을 이룩했다. 이들 독립선언서에서는 민주주의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독특한 점은 구대륙에서처럼 절대 권력이 출현하지 못하게끔, 권력분립의 원칙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한편 프랑스는 미국을 지원하면서 쓴 막대한 군자금을 충당키 위해 막중한 세금을 부과했다. 불평등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파리민중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프랑스대혁명이 발발했다. 이후 권리선언서에서 모든 주권의 근원은 본질적으로 국민임을 재확인하였다. 이들은 인권, 시민권, 인민주권, 자연권의 수호자로서의 정부를 재인식하였다.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도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민주주의는 한번 세워졌다고 저절로 유지되는 완성품이 아니다. 따라서 끊임없이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의 정치적 토대는 민주주의이다. 또한 성숙한 시민이 없다면 민주주의도 없다. 민주주의의 수호는 시민과 대학의 책임이며 시민이 갖추어야 할 덕목 (자율성, 책임감, 비판적 사고력, 관용의 정신)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위 할 책무를 지닌다.제 4장 경제혁명과 산업혁명 : 시장을 발명하다18세기 영국 왕실의 부는 넘쳐났지만 평민들은 궁핍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버려졌고 거리에는 거지들이 넘쳐났다. 왕실 창고에 쌓인 금덩어리만이 국가의 부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때 왕권과 결탁한 중상주의 신흥 계급의 관심사는 어떻게 상업의 이권을 상인들이 독점할 수 있을지,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가난한 상태로 묶어둘 수 있을지에 국한돼 있었다. 산업혁명 이전 1750년, 영국의 상황은 참담했다. 남성과 여성의 평균 기대여명은 각각 31살, 33살에 지나지 않았으며 유아사망률은 65%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을 빈곤과 비참에서 해방시킬 방법 모색한 이가 있었다. 그는 사회 전체의 부를 증가시키면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보았고 한 권의 책을 쓰게 된다. 바로 국부론이다.시장경제의 출발은 곧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이었고, 보편적 부의 창출이었으며, 인간과 사회의 생존을 도모하려는 또 하나의 근대혁명인 경제혁명의 시작이었다. 인간의 오랜 꿈인 '낙원의 삶'은 자원의 유한성으로 말미암아 실현에 있어 한계가 있었다. "자원은 유한하고 욕망은 무한하다"는 생존의 딜레마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자원의 유한성은 부족한 자원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으로부터 초래된다. 따라서 생산과 분배를 통제하는 경제 시스템이 필요성이 대두된다. 경제 시스템은 전통, 명령, 시장의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이중 시장의 방식이 근대문명이 제시한 해결책이다. 근대 이전에도 시장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새로운 해결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근대적 시장과 그이전의 시장이 다른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시장에서의 이익추구가 자연스러운 반면, 근대이전의 시장에서는 이익추구가 부도덕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시장경제시스템은 -중세 유럽에서 생겨난 순수 경제인의 상업도시, 국민국가의 출현, 새로운 종교정신을 가진 개신교의 출현, 회계방법의 발전, 높아진 과학적 호기심- 등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형성되었다.이에 학문적 이론적 바탕을 제시한 사람이 애덤 스미스이다. 그는 자율적 시스템의 원리(보이지 않는 손)를 제시하며 인간이 유일한 교환할 줄 아는 동물임을 근거로 들었다. 이때 교환할 수 있는 능력은 곧 분업으로 나타나 노동생산성의 증대에 기여했다. 시장은 물품공급을 위한 질서정연한 자율체계로, 개인들에게 자유를 제공하면서 스스로 규제하게 한다. 시장이 용납하지 않는 행동을 할 때 그 자유의 댓가는 경제적 파탄으로 나타나게 된다. 스미스는 상인들의 독점적 부를 비판(중상주의 비판)하며 사회 보편적 부에 관심을 가졌다. 중상주의는 시장에서 독점권을 확보하려는 자본가들의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때 스미스가 비판한 것은 정부의 개입자체가 아니고 자연적 흐름을 막아 생산가능한 부의 총량을 감소시키는 독점이었다. 한편 그는 분업의 비인간적 측면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있었다. 단순한 분업은 사람을 어리석고 무지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교육을 마련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인간이게 사회약자를 배려하는 선의와 공감의 본성도 내재되어있다는 점도 간과하지 않았다.이와 관련하여 마이클 샌델은 생산을 조직하는 효과적 도구인 ‘시장경제’와 시장가치가 인간활동의 모든 국면에 스며들어버린 생활방식인 ‘시장사회’를 잘 구별지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시장 논리를 사회 전반에 적용한 신자유주의는 1.정부의 시장 개입을 반대하고 2.정부의 사회 복지정책 또한 반대하며 3.국유 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특성을 지닌다. 그러나 이는 곧 1.기업권력의 증대와 민주주의의 약화 및 2.빈부의 극단적 양극화 , 3.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체제 4.노동 유연화라는 미명 하에 고용의 불안정 등의 문제를 초래했다. 개인의 자유로운 이익추구가 공익을 증가시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점차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미국의 금융파동,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주장은 이제 설득력을 잃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극단적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1대 99의 사회가 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은 더 이상 지속가능 하지 않다. 이에 대한 솔루션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문제이자 해결해야할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