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다이어트요법] 리포트 - 다이어트의 필요성우리 집 냉장고에는 식품 교환표와 다이어트를 위한 식단표가 붙어있다. 다름 아니라 고혈압뿐만 아니라 당뇨 위험 진단을 받은 아버지의 식단을 조절하기 위함이다. 단순히 다이어트는 ‘미적인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한 수단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또한 그런 의미로만 받아들이는 이들 역시 적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다이어트는 우리의 건강을 위한 것이며 건강 증진이 일차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나는 아직 젊은 나이지만 당뇨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 어떠한 증상도 나타난 바가 없지만 친가와 외가 할 것 없이 당뇨를 앓고 있는 가족들이 많은데다가 아버지까지 위험 진단을 받자 조금씩 경각심이 들고 있는 것이다. 당뇨는 100% 유전된다고 할 순 없지만 당뇨가 없는 사람보단 유전 확률이 훨씬 높다. 당장 외할아버지께서 몇 년째 당뇨를 앓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 심각성을 인지 못하던 내가 다이어트를 통한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게 된 것도 직계혈족인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얼핏 보면 당뇨병과 다이어트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다이어트는 건강을 위한 첫 걸음이며 온갖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일종의 예방책이기도 하다. 앞서 당뇨를 이야기했으니 당뇨로 예를 들어보자면, ‘당뇨병 가운데에는 유전적·선천적 요인 혹은 췌장의 절제 같은 후천적 요인으로 인슐린 분비 자체가 어려워진 경우인 제1형 당뇨병과 그런 경우를 제외한 제2형 당뇨병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제2형 당뇨병은 인슐린의 부족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체지방이 증가하면서 인슐린의 작용을 거부해 혈당 조절에 장애가 일어나는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당뇨 환자가 비만할수록 혈당 조절이 힘들기 때문에 반드시 체중 조절을 해야 한다.’ 이승화(단국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다이어트 가이드」, HIDOC고 전문가는 말하고 있다. 당뇨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성인병을 비롯한 많은 질병들은 비만, 과체중과 긴밀한 관계에 있다.혈당지수와 다이어트김재희 김상국 (국민건강증진연구논집, Vol.4 No.-, [2008])비만을 동반한 골관절염 환자의 체중감량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이창범 이혜순 배상철 최웅환 (대한비만학회지, Vol.13 No.4, [2004])호르몬 치료중인 비만 폐경기 여성에서 체중감소치료와 골밀도 변화의 상호관계이득주 김상만 (대한비만학회지, Vol.10 No.4, [2001])비만이 동반된 폐쇄성 수면무호흡증 환자에 있어서 수술후에 시행한 체중감량이 환자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장명근 김성완 박기환 이인영 문지호 조중생 (Korean Journal of Otolaryngology-Head and Neck Sur, Vol.47 No.5, [2004])RISS(학술연구정보서비스)에서 ‘다이어트’ ‘체중감량’이란 키워드로 검색하면 수많은 관련 논문들이 나오는데 위는 그중에서 극히 일부만을 제목만 발췌해 온 것이다. 여기에서만 보아도 다이어트는 혈당관리와 골관절염, 수면무호흡증 등 많은 질환들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다이어트는 건강에 위험할 정도로 과체중인 사람에게는 보다 나은 건강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해서 날씬하거나 표준 체중인 사람들에겐 다이어트가 전혀 필요치 않다는 말이 아니다. 과체중이 아니더라도 마른비만·복부비만을 의심해 볼 수 있으며 전체적인 몸의 균형이 맞지 않아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늘 건강관리에 유의해야 한다. 이들 역시 다이어트가 필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그렇다면 우리는 왜 다이어트를 하는가. 앞서 나는 가족력인 당뇨를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것을 인지하기 전까지 내 다이어트의 첫 번째 목적은 건강이 아니라 바로 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함이었다. 요즘은 단순히 여성들뿐만 아니라 일부 남성들 역시 마르고 늘씬한 몸, 그러니까 ‘스키니’한 몸을 갈망하며 다이어트를 한다. 이는 단순히 자기만족을 위한 것 일수도 있지만 아마 대부분은 우리 사회의 ‘평균’에 맞추기 위해, 또한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한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나 역시 이전까지 다이어트의 이유를 학교의 언덕길을 오르거나 등산을 할 때 체력적으로 많이 부족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것은 전체 이유의 100% 가운데 30% 정도만을 차지할 뿐, 나머지 70%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였다.우리는 타인에게 관심이 참 많다. 좋게 말하면 정이고, 나쁘게 말하면 오지랖이 많은 것이다. 한 여름에 민소매 원피스에 하이힐을 신은 여자는 많고,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씩 스쳐지나가는 길가에서 그런 여자를 콕 짚어 기억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 여자가 만일 과체중의 여성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조금이라도 평균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늘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일쑤다. 심지어는 편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바로 ‘게으르기 때문에 살이 쪘을 것이다.’ ‘자기 관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불과 세 달 전만 하더라도 한 남자배우가 “뚱뚱한 여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발언을 하여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온주완 "뚱뚱한 것? 자신 사랑하지 않는 것", , 2014.07.30
The Secret- 감상문 -초등학교 저학년, 나는 달리기를 못하는 학생이었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매번 하위권에 머무르기가 일수였고 그 때문에 이어달리기를 하는 것이 두려웠다. 나 때문에 다른 친구들에게까지 피해가 갈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반 대항으로 이어달리기를 하는 운동회에서는 매번 자진해서 빠지곤 했다. 달리기가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이다. 아마 나 혼자였다면 그대로 포기를 했겠지만, 달리기를 못하는 학생이라고 스스로의 한계를 단정 지은 채 12년간의 초·중·고 시절을 보냈겠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노력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북돋아주셨다. 안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마치 육상선수가 된 것처럼 당당하게 뛰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내게 마치 주문을 걸 듯 격려해주신 것이다. 꼴찌하는 것이 두려워 일부러 설렁설렁 뛰던 내가 처음 달리기를 할 때처럼 최선을 다해 뜀박질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뛰었을 때, 아쉽게도 나는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점점 상위권 아이들과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매번 운동회 전날이면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달리기 때문에 묘하게 마음이 불편했는데 언제부턴가 내일은 꼭 3등안에 들어서 손등에 도장을 받겠다는 의지가 생겨났다. 손등에 1등 도장을 받아와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매번 운동회 전날마다 간절히 바라왔던 나의 꿈은 4학년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드디어 처음으로 손등에 1등 도장을 받은 것이다. 운이 따라준 결과이기도 했지만 내가 만일 간절히 바라지 않고 그대로 포기했다면 얻을 수 없는 결과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 이후 중학생이 된 나는 반에서 10명 정도만 출전하는 반 대항 계주경기에도 출전할 만큼 달리기 실력이 늘었고, 더 이상 운동회나 달리기가 두렵지 않았다.『시크릿』은 내가 초등학교 때 무심코 행했던 이러한 행위를 조금 더 자세히 서술한 이야기들이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대로 된다, 라고 말하는 것을 보며 나는 위와 같은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책에 있는 이야기들이 허무맹랑하고 현실성 없어 보이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나의 과거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때문에 이 책에서 내게 가장 큰 자극과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것. 부정적인 생각 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라는 것. 어쩌면 후자의 것은 비밀이라기보다는 모두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많은 이들이 간과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이 책에서 ‘비밀’이란 끌어당김의 법칙을 말한다. 나의 인생에 나타나는 모든 현상은 내가 끌어당긴 것이라는 것이다. 내가 마음에 그린 그림과 생각들로부터 결과가 도출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것은 즉 바라는 것을 자주 상기시킨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다소 뜬구름잡기처럼 들릴 수 있는 이야기가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주장은 이러한 지점에서부터 발생한다. 운동선수가 되길 바라던 이가 갑자기 작가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반대로 간절히 작가가 되고 싶어 하던 사람이 운동선수가 될 일도 없다. 간절히 바라게 되면 그것은 나에게 끌어당겨지기 마련이다.첫 번째로 이 책은‘구하라’라고 말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그 대상이 다가오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더욱 명확하게 알면 알수록 그것이 우리의 인생 앞에 펼쳐지는 것은 더 쉬워진다. 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는 멀리서 찾아보지 않아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두 번째 과정은‘믿어라’이다. 순간의 생각이나 바람에 ‘지니’가 반응한다면, 그것도 그거대로 문제일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미 이뤄졌다는 믿음 자체가 커다란 힘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한다. 왜 그동안 우리는 간절히 바라던 것을 얻지 못했는가, 라는 물음에 아직 얻지 못했지만 그것이 지금 나를 향해 오는 중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마지막 단계는‘받아라’이다. 간절히 바라던 것을 받았을 때의 멋진 기분을 느끼라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갖고, 하고싶은 것을 하고, 또 되고 싶은 상태가 되었을 때 얼마나 좋을 지를 생각해보고 그와 함께 밀려오는 짜릿한 감정을 느껴보다보면 이러한 감정들이 우리가 원하는 인생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생각은 느낌으로 뒷받침 될 때 강렬하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느낌은 생각에 활기를 심어주고, 신념이나 느낌 없이 원하는 것을 단순히 확인만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는 굉장히 크다. 생각과 감정은 우리의 인생을 창조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이처럼 이 책은 긍정적인 마인드의 중요성을 어필하고 있다. 확실히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몸과 행동, 모든 일들에 영향을 미친다. 얼마 전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그 때문에 내내 머리가 아팠고,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했으며 친구들의 이야기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기가 일수였다. 모든 일이 짜증스럽게만 느껴졌고, 내 인생에 있어 안 좋은 일들이 지금 다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접하게 되었고, 나는 문득 내가 안 좋은 일들을 스스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저 평소와 같이 아무렇지 않게 느낄 수 있는 일들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다보니 그것들이 정말 안 좋은 일처럼 느껴져 나의 에너지를 갉아먹고만 것이다.책에 따르면, 긍정적인 생각을 갖기 위해 우리는 늘 감사해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은 모든 것을 움직인다. 그 감정 자체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실현시켜줄 에너지라는 것이다. 마음속에 그림을 그려내고, 기대하며, 모든 것에 베푸는 것 역시 중요하다. ‘나는 온전하고 완벽하고 튼튼하고 강하며 정다울 뿐 아니라 조화롭고 행복하다’라는 자기암시는 우리를 그렇게 이끌어주고 정말 암시대로 되도록 만들어줄 것이다.
소설-연극 간 크로스오버 사례와오르한 파묵의 소설 『눈』에 나타난 연극의 모습목 차Ⅰ. 서론Ⅱ. 본론1. 각 장르 간 경계 허물기a. 소설-연극 간 크로스오버 사례 : 소설의 연극化b. 소설-연극 간 크로스오버 사례 : 소설과 연극의 접목2. 소설『눈』에서의 연극Ⅲ. 결론참고문헌Ⅰ. 서 론현대 사회에서 협업(協業) 혹은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라는 단어를 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각각의 분야에서 장점을 지닌, 교차점이 없던 전문 영역들이 만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러한 작업은 패션·전자·자동차 등 거의 모든 사업 분야에서 각광받으며 날이 갈수록 진화해가고 있다. 이러한‘장르의 넘나듦’은 본래 음악과 같은 예술로부터 시작되어 크로스오버(crossover)라는 정의와 용어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는데 현재는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크나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doopedia 두산백과』-“크로스오버”, (주)두산, 2014년 12월 2일 검색.문학작품 역시 예외는 아니다. 문학은 타 장르와의 결합이나 응용·확장에 그 어떤 영역보다도 유연하며, 이에 대해 낯섦을 느끼는 것이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하게 받아들여진 지 오래다.오르한 파묵(Orhan Pamuk, 1952~)은 이러한 문학과 타 장르 간의 결합, 즉 경계 허물기에 어느 누구보다 적극적인 작가이다. 후에 본론에서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지만, 터키 작가로서 유일하게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는 그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새로운 시도를 대담히 선보여왔으며 이는 작가로서 그만이 갖출 수 있는 독자성을 확보해내는 하나의 장치로 자리 잡았다.이 글에서 집중적으로 다룰 그의 작품『눈 (Turkish: Kar)』(2002)은 그가‘처음이자 마지막 정치 소설’이라고 밝힌 만큼 카르스라는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소녀들의 연쇄 자살 사건과 나흘간의 쿠데타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눈』을 수식할 때에 또한 빠져서는 아쉬운 것이 바로‘새로운 방식’으로 작품을 그려냈다는 것인데 바로고 제의했고, 그와 더불어 대학 친구인 이펙이 그곳에 있다는 말을 덧붙였기 때문이다. 카는 소녀들과 젊은 여성들의 갑작스러운 자살 사건과 카르스에서의 지방 선거를 취재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그 제안을 수락하지만 사실 그는 이펙의 아름다운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와 함께 독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던 이펙보다 먼저 만나게 되는 이들이 있으니, 바로 작은 연극단의 배우들이다. ‘푸른 조국’이라는 뜻을 가진 예실유르트 식당에서 만나게 된 그들을 카는 1970년대 이스탄불의 정치적 성향의 연극무대에서 본 적이 있음을 기억해낸다. 남자의 이름이 수나이 자임이라는 것 역시 떠올려낸다. 이들에 대해 작품의 극초반에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눈 내리는 밤 잊혀진 도시에 작은 연극단이 방문한 이유에 대해 카가 -아주 잠시였지만- 가졌던 의문을 독자 역시 갖게 되었을 것이다.카가 취재를 하며 카르스에 머무는 동안 만나게 되는 이들은 다양한 이념을 가지고 있으며 그 때문에 갈등을 겪고 심지어는 살인과 쿠데타와 같은 극단적인 사건을 벌이기도 한다. 히잡을 쓴 학생들을 학교에 들여보내지 않은 교육원장은 카가 보는 앞에서 피살당하고, 정치적 이슬람주의자인 라지베르트는 그런 교육원장과 이념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라지베르트의 연인인 카디페와 교육원장을 죽인 살인자, 그리고 라지베르트를 따르는 신학교의 학생 네집 등도 같은 성향의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교육원장과 같은 이념을 가진 세속주의자는 카가 처음 버스에서 내려 만났던, 후에 쿠데타를 일으키게 되는 인물 수나이 자임을 들 수 있으며 별명이 Z. 데미르콜인 신문기자와 그의 동지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카는 양쪽 대척점에 있는 이들을 모두 만나고 그들과 모두‘나쁘지 않은’관계를 유지하며, 한편 갈등하고 있는 인물이다.오르한 파묵은『눈』에서 이러한 갈등을 서술하고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과정에 연극을 적극 개입시켰다.『눈』이 어떤 작품인지 간략히 알아보았으니 이제 문학작품(소설)는 것은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시공간의 제약이 있는 상태에선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연극화한다는 것은 그러한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영화에 비해 큰 위험이 따르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설의 연극화는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고, 이러한 한계들은 연극 무대만이 가진 장점과 매력으로 승화되어 또 다른 문학적 즐거움을 준다.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극장 중 하나인 명동예술극장의 올해 2014년 마지막 작품은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1861)을 무대 상연을 위해 극작가 김은성이 각색한, 연극 이다.연극 은 5~6개의 작은 무대를 층층이 계단으로 연결함으로써 거대한 무대를 채웠다. 대부분의 출판사에서 두 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장편소설 원작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조각으로 잘라내 재조합하는 것으로 시간적 제약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잘린 조각들은 포개지기도 하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어린 핍과 청년 핍이 마주하는 상황을 발생시키기도 하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계단식으로 된 무대이다. 배우들이 계단을 따라 무대를 옮겨갈 때마다 그곳의 시간과 공간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김소라,“공연 리뷰 연극‘위대한 유산’”,「서울신문」, 2014년 12월 10일.2013년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상연했던 극단 하땅세의 연극 역시 윌리엄 골딩의 장편소설『파리대왕(Lord of the Flies)』(1954)을 각색하여 연극화한 것이다. 불의의 사고로 바다 한가운데 무인도에 불시착한 소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내면에 숨어있던 본성과 사악함, 광기 등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이 작품은 바닷가와 정글이라는 공간적 한계는 물론이거니와 모닥불을 피우고 봉화를 켜고 멧돼지를 잡는 등 여러 가지 설정 면에서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무대 상연에 굉장히 무리가 따르지 않을까 싶은 고전 중 하나였다. 그 때문에 무대화된『파리대왕』에 대한 호기서 연극은 이야기의 진행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카르스의 비극’장면을 빼버리면 소설을 읽는 데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소설 속의 연극은 소설 자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담고 있는 의미 역시 결코 가볍지 않다.이러한 류의 크로스오버 사례로 떠오른 작품이 바로 클라우스 만의『메피스토(Mephisto)』(1956)와 한국 작가 최제훈의 『퀴르발 남작의 성』(2010)이다.클라우스 만(Klaus Mann, 1906~1949)은『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1912)과『마의 산(Der Zauberberg)』(1924)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의 아들로 더 친숙하다. 그의 대표작『메피스토』는 모두 예상했겠지만, 괴테의 역작『파우스트(Faust)』 1772년 산문의 장면인『흐린날 들판』의 집필로 시작되어 그 후 시인의 사망 직전까지 장장 60년에 걸쳐 그 완성까지『초고(初稿) 파우스트』(1775, 1871 사본발견),『단편 파우스트』(1790),『파우스트 제1부』(1808) 및『파우스트 제2부』(1832)의 4단계를 경과하여 지어졌다. -『위키백과』-“파우스트(괴테)”, Wikipedia®, 2014년 12월 2일 검색.(1790~1831) 출간연도에 대한 정보가 아예 기재되어 있지 않거나 사전별·출판사별로 달라 황보종우,『세계의 모든 책』, 청아출판사, 2007, 506p를 선택하여 참고하였음.에 등장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로부터 시작한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눈』못지 않게 연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소설이다.『눈』과 눈 속에서 등장하는‘카르스의 비극’이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듯,『메피스토』에 등장하는‘파우스트’(혹은‘메피스토펠레스’) 역시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고 이야기의 흐름을 유추하고 비교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등 소설과 함께 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욕망으로 가득 찬 연극배우 헨드릭 회프겐은 나치 정권이 독일을 장악했을 때 공산주의 성향의 이끌어나간다.“책을 읽을 때는 각 캐릭터가 연극을 하다가, 덮고 나면 이 캐릭터들은 어떻게 될까 생각을 해봤어요. 읽던 사람을 욕하기도 하고, 자기네들끼리 수다를 떨지 않을까.”마치 장난감 방에 불이 꺼지면 제각기 깨어나는 인형처럼 말이다.「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에는 이제껏 소설 속에 출연했던 모든 캐릭터가 총 출동해 이야기의 향연을 이룬다. 김수영,“어린아이 잡아먹고 젊음 유지한 남작 이야기-『퀴르발 남작의 성』최제훈”,「채널예스」, 2010년 11월 16일이렇게〔소설의 연극化〕와〔소설과 연극의 접목〕두 가지 파트로 나누어 소설-연극 간 크로스오버 사례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러한 경계 허물기에 대해 15여 년 전 문화예술인들이 나눈 대담을 발견하였는데, 2015년을 맞이하는 현재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는 문장이기에 이를 덧붙임으로써 1장을 마무리하고자 한다.■김성곤=장르와 장르, 학문과 학문, 순수문화와 대중문화를 2분법적으로 구분한 모더니즘이 막을 내리고「경계 허물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모든 것이 종합된 총체성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저는 탈 장르적 경향이 과도기적 혼란이라고 보지 않고 새로운 예술·문화를 잉태하기 위한 창조적인 몸부림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행을 좇는 표피문화를 경계하고 날카로운 주제의식과 역사인식을 담아낸 세련된 실험을 거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정훈,“21세기 우리문화를 생각한다 (6) 현장탐구-탈장르 과제·미래”,「경향신문」, 1999년 11월 1일2. 소설『눈』에서의 연극『눈』은 연극을 통해 이야기를 끌어나갈 뿐만 아니라, 연극에 대한 언급 자체가 굉장히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1940년대 말 젊은이들이‘국민의 집’에서 올린 혁명 주의적 연극을 전임 시장이 언급하는 것 오르한 파묵,『눈』1,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05), 39p.은 현재 도시의 몰락과 빈곤, 불행을 정치적 이슬람의 우세에 떠넘기기 위함이다. 라지베르트가 카에게 해주는 뤼스템과 수흐랍의 이야기 오르한 파묵,.
『이방인』L'Etranger - 알베르 카뮈作읽고나면 머리가 멍해지는 소설이 있다. 사실 「이방인」은 내게 그런 소설은 아니었다. 건조한 문체와 불필요한 수식어를 배제한 이 소설의 전개방식과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은 내가 이 소설을 ‘성공적으로 읽었다는’ 착각을 주기에 충분했다. 오랜만에 「이방인」을 다시 읽게 되었다. 소설의 줄거리가 달라진 것도 아닌데 이전과는 달리 이 작품이 다소 낯설게 느껴진 이유는 왜일까.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이제 내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라는 마지막 문장을 읽고난 후 나는 한참동안 이 소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이방인」은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9p, 문예출판사판) 라는 흥미로운 문장으로 막을 연다. 선박 중개인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주인공 뫼르소는 양로원에 계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고 어머니가 계시던 마랑고로 가게된다. 그 곳에서 그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던 이들과 양로원 원장, 문지기 등을 만나게 되지만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라기엔 너무도 무덤덤한 태도로 그들을 놀라게 만든다. 장례식을 마친 다음 날 뫼르소는 수영을 하기 위해 해수욕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예전에 함께 일했던 마리 카르도나를 만나 희극영화를 함께 본다. 그녀와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 후로도 그는 계속해서 무료한 일상을 보낸다. ‘그때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어머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34p)는 그의 태도는 너무도 무미건조하다. 그러던 중 그는 같은 층에 사는 이웃 레몽과 친해진다. 그에게서 그의 변심한 전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그는 그녀를 혼내주려하는 레몽의 계획을 편지를 대신 써줌으로써 돕는다. 그 후 레몽은 친구 마송의 초대로 함께 알제 근처의 조그만 별장에 갈 것을 제안하고, 그렇게 레몽과 뫼르소, 마리는 그 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일전에 마주쳤던 레몽의 전 애인의 오빠 일행과 싸움이 벌어지고 레몽이 다친 후에야 싸움이 끝난다. ‘그러나 극심한 더위 때문에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볕 아래 우두커니 서 있기도 괴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그대로 있거나 어디로 가버리거나 결국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에 나는 바닷가로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74p) 뫼르소는 홀로 밖으로 나갔다가 레몽과 상대했던 녀석이 혼자 돌아와있는 것을 보게된다. 그리고 흥분한 레옹에게서 받아두었던 권총으로 그 아랍인 사내를 쏘아버린다. 그는 잠시 후 다시 네 방을 더 쏜다.그는 체포되어 여러차례 심문을 받고, 재판을 받게된다. 그는 마치 다른 사람의 재판을 지켜보듯 자신의 재판을 관찰한다. 그는 여름 태양이 너무 눈부시기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아랍인을 살해한 것 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보였던 태도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는 변호인이 원하는, 그리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대답 대신 법정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음으로써 지탄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는다.이 소설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실존주의와 부조리라는 단어이지만, 이 소설이 담고 있는 그 기념비적인 이야기들보다 내게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 것은 바로 카뮈가 뫼르소를 그려내는 방식이었다. 「이방인」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인 뫼르소를 낯설게끔 만든다. 어느 누구보다 주인공에게 이입할 수 있는 시점을 취하면서도 거리감을 두는 것이다. 군더더기 없이 사실을 전하는 문체는 이 소설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건조함을 덤으로 선사한다. 두 번째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주인공인 뫼르소의 존재였다. 뫼르소는 그동안 다른 고전이나 지금까지 발표되고 있는 수 많은 소설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전형적이지도 않고 일상적이지도 않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다.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그의 태도는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모를 잃은 자식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그 지점에서 카뮈는 묻는듯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리고 소설 속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인을 기리는 방식이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추모의 모습일까.
『아Q정전』阿Q正傳 - 루쉰作처음 이 소설을 접했을 때는 내가 중,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이었다. 제목이 주는 신비감에 의문을 품고 읽었던 소설이다. 주인공의 이름을 익명으로 설정한 소설은 많고 많지만 주인공의 이름을 확실한 이름이 아닌 阿Q로 처리한 것이 인상적이었던 소설이기도 하다.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조차 몰라’서, ‘아꿰이(阿柱)’인지 ‘아꿰이(阿貴)’인지 확실치 않아 여기저기 물어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 탓에 ‘부득이 서양 문자를 써서 영국에서 유행하는 병음법으로 아Quei라고 쓰고, 간략히 아Q라고’ 하는 수 밖에 없다는 화자의 이야기는 흥미로우면서도 묘하게 납득이 가는 이유여서 소설의 리얼리티성을 살려준다.아큐는 집도 없이 미장의 사당 안에 살고 있으며, 제대로 된 직업도 없이 날품팔이를 하며 하루하루 연명해 사는 사람이다. 그는 칭찬에 기뻐하며 자존심이 강해 미장 주민들을 비롯하여 ‘글방 도련님’까지도 우습게 본다. 하지만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비굴한 아큐는 그들에게 두드려 맞는 일이 있은 후에도 뛰어난 자기합리화로 정신적인 승리를 거둔다. 도박으로 돈을 잃었을때도 스스로 뺨을 때리며 자기가 남을 때린 기분에 만족하곤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로부터 업신여김을 받던 아큐는 혁명의 풍문이 들려오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며 마치 혁명 당원이 된 것처럼 돌아다닌다. ‘가짜 양놈’이라고 부르곤 하던 치엔 나으리의 큰 아들에게 혁명당에 넣어달라고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러던 중 짜오 씨의 댁이 약탈당하게 되고, 아큐는 도둑 누명을 쓴 채 총살형을 당한다.제 1장부터 제 9장에 이르러 전개되는 이 소설을 읽으며 난 채만식의 치숙(痴叔,1938)이 떠올랐다. 물론 주인공의 배움의 정도가 다르고 아저씨와 아큐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관찰자 시점에서 소설이 전개된다는 점과 풍자적인 문체를 사용한다는 것, 그리고 사회를 간접적으로 혹은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소설이 닮았다고 느낀 것이다.소설 초반의, 쉽게 자기합리화를 하고 정신승리를 위해 말도 안되는 이유를 갖다 붙이는 아큐를 보며 나는 그 모습이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 중국인들도 ‘내가 바로 아큐구나!’했다니 역시 사람 사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인 듯 싶다. 이처럼 아큐는 인간의 본성과 보편적인 속성들을 잘 드러내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이 작품이 갖는 의미는 무궁무진하겠지만, 일단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아큐정전은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이토록 전형적인 인물이 마냥 소설 속 인물처럼 느껴지지 않고 어딘가에 실재하는것처럼 느껴지는 이유의 8할은 바로 제 1장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제 1장에서 화자는 아큐를 위해 정전을 쓰고자한 이유와 그것을 쓰기 위해 했던 고민들을 토로한다. 수 많은 전(傳) 중에서 왜 하필 정전(正傳)을 택하였는지, 왜 다른 전기들처럼 ‘아무개, 자는 무엇이며 어느 곳 사람이다’처럼 시작하지 않았는지, 왜 아큐를 아Q라고 적게 되었는지……와 같은 이야기는 소설의 리얼리티를 살리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마치 진짜 전기의 서문처럼 쓰여진 제 1장을 보며 나는 완벽히 이 소설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