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매스미디어의 이론과 효과학습목표매스미디어가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어떠한 영향을 어느 정도 받고 있는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1. 매스미디어 효과 이론의 출발점20세기 초 사회학에서 매스미디어 효과 관심 (탄환이론-제한효과이론-중효과이론-강효과이론 흐름)1) 대중사회의 등장과 미법의 탄환이론19세기 초 : 매스미디어의 강력한 효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커뮤니케이션학 시작19세기 말~20세기 초 :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격한 사회변화-달라진 환경 속에서 무력감과 불안감 느낌대중사회이론 : 매스미디어들은 엄청난 위력을 갖고 있어서 대중들의 태도나 행동양식을 쉽게 변화시킬 것마법의 탄환 이론 : 새로운 매스미디어들에 대한 과장된 두려움과 전통 사회와 많은 면에서 차이를 지니는 대중사회에 대한 불신의 반영 ? 대중사회 속 개이들은 전통적 사회관계로부터 분리되어 무기력한 존재이기 때문에, 매스미디어에 쉽게 현혹됨. = 피하주사 모델 ? 메스미디어의 효과는 직접적으로 빠르다. - 경험적 입증x/새로운 사회 불안속에서 생긴 심리적 반응o 과학적 연구방법 등장으로 설득력 잃음2) 과학적 효과 연구의 등장20세기 초 : 존 듀이, 로버트 팍에 의해 매스미디어에 대한 학문적 관심 등장1940년대 이후 : 매스미디어의 효과에 대해 본격적인 과학적 연구가 시작 (언론학의 설립자 : 라자싈드, 라스웰, 르윈, 호블랜드 등) - 심리학역구에 기반을 둔 과학적 방법(태도, 인성, 동기 등과 같은 심리학 개념을 매스미디어 연구에 그대로 적용)제한 효과 모델(1940~60년대) : 매스미디어의 직접적인 효과에 의하여 수용자들이 태도나 행동이 급격히 변화하는 경우는 많지 않으며, 오히려 수용자들의 동기, 욕구, 대인관계 등 개인적 특성에 의하여 매스미디어의 효과가 차별적으로 발생2. 제한 효과 이론의 등장(1940~60년대 후반)매스미디어의 사회적 영향에서 개인에 대한 영향으로 이동(한명의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 관찰) - 획일적 효과보다 수용자 개인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르게 발생하는 효과의 차별성이 연구 결과 : 매스미디어 직접적인 영향x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서 더 큰 영향 받음1) 라자스필드의 선거연구와 2단계 흐름 모델라자스필드 : 1944년, 1948년 미 대통령 선거 연구 ? 자신의 표를 매스미디어 영향 x 자신의 주변인들에게 영향 받음 =소규모 집단에서 형성되는 집단의 규범과 집단 속에서 발생하는 정신적인 압력이 수용자 개인의 지지후보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줌선택적 인지 : 유권자들은 자신의 주변 관계 속에서 형성된 일정한 태도있음 ? 태도의 일관성 보호하기 위해 미디어에서 전달하는 메시지를 선별적으로 수용 ? 매스미디어는 태도강화하는 제한적인 효과/기존의 태도는 바꾸지 못함.여론 지도자 : 매스미디어를 통하여 보다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다른 구성원이들에게 전달
영어학개론(2)To decide which word is on the basic level, I use 3 criteria that are covered on our class. There are additional explanation like an example if the decision is hard. And I add class inclusions of the words in my mind.A. Coffee - basic level(1) The basic level is where we perceive the most obvious differences between the organisms and objects of the world.: I can tell that coffee is made of coffee beans, juice is made of fruit and tea is made of herb. There are an obvious characteristic about ingredients according to kids of beverage. I can distinguish between coffee and other kinds of beverage. But, I am not able to tell you that what is americano and what is the characteristic of americano compared with cafe-mocha and cafe-latte. because I don't enjoy drinking coffee and have much interest on that.(2) “Common overall shape”, which is perceived holistically and can be seen as an important indicator of gestalt perception: Features of each beverage vary. In case of coffee, color ords compounded by some words : cafe means coffee and latte means milk.B. Smart phone - basic level(1) The basic level is where we perceive the most obvious differences between the organisms and objects of the world.: Smartphone is used to call someone, search for something online, and listen to music. I can do many things at the same time with smartphone. With computer, I can use internet but can't call a number. TV just show me many programs. There are many obvious differences of purpose of each electronic equipment.(2) “Common overall shape”, which is perceived holistically and can be seen as an important indicator of gestalt perception: All most of the image of all kind of smartphones is square-shape, one button in center and big monitor which occupy almost space of it. It's easy to realize overlapped shapes of smartphones, and the combined shaped of electronic equipments can't be realized.(3) Actions we perform when we interact with objects and organisms: I can grab the smartphone adjective and nouns. Smartphons is subordinate level of cell phone just a few years ago. But now, smartphone be popular and represent all of phones. It is hard to look for a cell phone which is not smartphone. Although, the word of smartphone isn't short and morphological structure of it isn't simple, smartphone is on basic level.C. Watermelon(1) The basic level is where we perceive the most obvious differences between the organisms and objects of the world.: The cover of watermelon is hard, the color of it is green, and flesh of it is red. But other kind of fruit have different type of cover and colors. Each fruit varies according to taste of flesh, shape and scent.(2) “Common overall shape”, which is perceived holistically and can be seen as an important indicator of gestalt perception: All shape of watermelon is round and watermelon almost have stripe on cover. So overlapped shape of watermelon make me easy to distinguish with other shapes of fruits. And overlapped image of 'fruit'watermelon just watermelon for I don't know kinds of watermelon at all.-Their morphological structure is simple.: In English, the morphological structure of watermelon is composed by adjective and noun. But in Korean, '수박' is very short word and isn't exotic word rooted foreign language.D. Computer(1) The basic level is where we perceive the most obvious differences between the organisms and objects of the world.: A computer is used to write some document with certain program like MS offices while other electronic equipment isn't. It is much bigger than phone and smaller than TV. Characteristics of computer are very apparent. But desktop only is placed on desk and laptop is portable while other attributes of them are included by attributes of computer.(2) “Common overall shape”, which is perceived holistically and can be seen as an important indicator of gestalt perception: An outline of electronic equipment is regulated because there are too various equipments. But an outline of compuaptop is not matter.E. Pasta(1) The basic level is where we perceive the most obvious differences between the organisms and objects of the world.: Pasta is Italian food that is made of flour like spaghetti, macaroni. The shape of pasta is various. For Italian, pasta could be superordinate level because they can be aware of different sorts of pasta and recipe of them. But for me, pasta is only western noddle people have for some special day. It has a long noddle and no liquid. While I don't need any tools for eating pizza, I need a fork for pasta.(2) “Common overall shape”, which is perceived holistically and can be seen as an important indicator of gestalt perception: Pasta have long noodle. So a image of pasta is similar each other. I can bring particular images on my mind. These images is different from colors depending on cream pasta or tomato pasta. Actually, pasta which doesn't have long noodle like lasagna and macaroni is one of pasta, however, it's hard for me to recognize it ana'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남북은 서로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1960년대 남한은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통해 북한에 대한 적대적 정책을 추진하고 국력 축적을 주된 목적으로 삼았다. 북한은 ‘혁명’에 의해 남한 정권을 붕괴시키려는 목적으로 1967년 남한에 대해 비무장 지대에서 폭격을 가했으며, 1968년에는 어선 납북, 청와대 기습공격 등을 행했다. 이러한 남북의 긴장관계는 1970년대 국제정세가 데탕트 시기로 전환함에 따라 변화를 맞게 된다.1970년대 초반 당시 미국은 핵무기 개발 경쟁과 베트남 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막대한 군사비 부담으로부터 벗어나야한다는 절박한 과제가 있었다. 또한 중국 공산 정권을 국제사회에 끌어들여 세계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는데 일정한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소련을 견제하고 반소 진영을 강화할 필요도 있었다. 이에 따라, 1970년 2월 미국 대통령 닉슨은 세계 각국, 특히 아시아 및 중남미 국가들은 자국 국방의 책임을 져야한다는 닉슨독트린을 발표했다.이러한 데탕트 분위기는 남한에게 직접적으로 적용되었다. 주한미군 철수가 현실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남한은 미국으로부터 한반도긴장완화를 요구받았다. 또한 박정희 정권은 1969년 10월 3선 개헌 후 민주화 요구가 격화되는데다가 1971년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에서 야당이 약진함으로써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 고도성장을 지속하던 경제가 1970년대 들어 성장률이 둔화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통일문제에 대해서도 반공 이데올로기 일변도에서 벗어나 남북 간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접근하자는 논의가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박정희 정권은 이러한 내부상황을 타개하고 전 세계적인 데탕트 흐름이 가져온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북한과의 대화를 선택하게 된다.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원조를 제공받고 있던 북한에게 중미관계 정상화는 국제적 고립이라는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1970년 김일성의 중국방문에서 중국이 북한에게 남북긴장관게 완화를 요구하였고 북한은 지원을 내용이 기재되어 있는 것은 7.4남북공동성명이 남북통일의 근간이 되었음을 의미한다.또한 7.4 남북공동성명은 그 동안 금기시 되어있던, 통일문제 등을 공론화시켜 논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분단 이후, 통일문제는 정부차원에서 비밀리에 다루어지는 사안이었고, 북한과 통일에 관련된 문제는 대외비로 처리되어 소수의 사람만이 접근할 수 있었다. 통일문제는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보다는 반공정책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7.4 남북 공동성명으로 인하여 국민들에게도 통일문제에 관한 내용이 공개되었고, 많은 사회단체 및 학계에서도 통일문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었다.그러나 7.4 남북공동성명의 시작이 민족적 통일을 갈망하는 남과 북의 자발적 의지가 아닌 데탕트라는 국제정세에서 중국과 미국의 압박으로 이루어진 점에서 수동적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남한은 한반도를 제2의 베트남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미국의 묵시적인 강압에서 불안감이 초래되었고, 북한의 경우, 중국의 미국과의 관계개선에서 중국으로부터 고립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7.4남북공동성명을 촉구하였다고 할 수 있다.미중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데탕트의 효과는 한반도에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7.4 남북공동성명은 1년 2개월 만에 끝이 났다. 이는 지도자가 냉전질서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와 철학으로 남북대화를 추진하였다기보다, 국내정치적 목적을 더 중요시 생각하였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설명은 김일성유일체제가 공고화되었던 북한보다 성장률 둔화와 반노동정책 강화 등으로 권력 안정성 유지에 심각한 위기를 느꼈던 박정희 정권에 더욱 적합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선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의 지속적인 정상회답 제안을 거부하고 7.4 남북공동성명 공개도 꺼렸다. 박정희 대통령은 7월 6일 서울을 방문한 그린 차관보와 나눈 대화에서 “북한이 대화에 응하는 것을 믿을 수 있는 행동이나 긍정적인 의도로 해석하지 않는다”고 언급하였다. 이러한 박정희 대통령의 소극적이며 북한을 불신하는 대화태도는 공동성명이 발표된 되어야 했다. 이러한 대북정책의 전환은 1988년 7.7선언에서 잘 드러난다. 이 선언에서 북한을 적대하는 대상이 아니라 민족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상호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공동번영을 추구해갈 선의의 동반자라는 인식을 표현하였다.북한은 냉전의 종식과 구공산권의 몰락이라는 국제적 위기 속에서 국가의 안전보장을 추구하고 독재체제를 유지하며, 서방권과 관계개선을 도모할 필요성이 있었다. 또한 침체된 경제성장을 해결하기 위한 자본과 기술을 도입해야했다. 김일성은 1988년 신년사를 통해 남북공존에 대해 언급하며 서로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하나의 연방국가를 창설하는 것이 필요하다 밝혔다. 이러한 북한의 상황인식이 남북기본합의서 타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국내외정치적 상황으로 남북은 1989년 2월 8일부터 1990년 7월 26일까지 남북고위급회 답을 개최하여 ‘남북간의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교류협력, 실시문제’를 의제로 논의하기로 합의하였다.그러나 남한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 구현”과 북한의 “하나의 조선에 논리에 기초한 2체제 연방제 통일”방안이 서로 일치하지 못하여 갈등상황이 빚어졌고, UN 가입문제로 남북협상이 결렬되었다. 1년간 교착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한 북한은 한국과 함께 유엔에 가입하게 된다. 또한 미국은 남한에서 핵무기를 철수한다고 결정하며, 남한도 협상타결울 위해 북한 핵문제를 기본합의서 채택과 연계시키지 않고 병행해서 해결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로써 남북고위급회담이 재개될 수 있었다.남북기본합의서는 제5차 남북고위급회답에서 채택된 뒤, 1992년 제6차 고위급 회담을 통해 비핵화공동선언과 함께 발효되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총 4장 25조로 이루어진 기본합의서와 그 부속합의서로 구성된다. 기본합의서의 정식 명칭은 로, 기본합의서 이행을 위해 , , 를 채택하였다.서문에서는 남북한이 평화통일을 위해 ‘7.4남북공동성명’의 통일3원칙을 재확인하고, 1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를 대두되었지만 결국 미-북 적대관계의 산물인 북핵문제를 남북관계개선과 연계시키지 않고 병행해결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 철수를 기회를 포착하여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하였다. 한편, 남북관계 개선과 병행하여 북한의 국제 핵사찰 수용을 실현하였다. 이는 남한이 남북관계에 있어 능동적 외교를 발휘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남북기본합의서의 부속합의서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항들은 남북관계의 모든 부분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용적으로 매우 완벽한 합의서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정치적 화해, 군사적 불가침, 경제를 포함한 제반 분야의 교류협력은 그 동안 남북 간의 쟁점이었던 것으로 통일을 위한 행보에 무조건적으로 해결해야할 사안들이다. 또한 본 회담 이외에 3개의 분과위, 핵통제공동위, 4개 부문별 공동의, 남북연락 사무소 등 총 12개 협의기구를 구성함으로써 남북관계를 제도적 틀에서 개선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즉, 남북관계가 일회성으로 마무리되지 않고 제도를 확충하면서 발전해나갈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한 것이다.그러나 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를 ‘위기상황에서의 수세적 대응’으로 평가했다. 불리한 환경에서 남한의 공세적 요구를 합의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남북기본합의서를 평가절하하였다. 북한은 합의서의 구체적인 항목에서 자신의 입장을 양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표적인 것은 해상경계선에 대한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 불가침 부속합의서 제10조는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온 구역으로 한다”라고 합의했다. 1999년과 2002년 서해에서 군사적 충돌이 벌어졌을 때, 남한은 북한의 NLL 침범을 남북기본합의서 위반으로 규정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북한에게 남북기본합의서는 불리한 근거를 스스로 제공하였다. 또한 남한 측 입장에서 제10항은 서해 5도가 해상경계선 협상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였다는 점에서 자국 영토권 의 행군을 마감하고 김정일로 권력승계가 완료된 시점이었다. 경제 회생을 위한 북한식 발전전략을 추진해야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즉, 북한은 경제난 극복을 위해 남북경협을 포함하여 서방사회와의 본격적인 관계개선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러한 국내외적 배경들이 우호적으로 작용하면서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이라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2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된 6.15 공동선언은 통일원칙, 통일방안, 인도적 문제, 교류협력, 남북대화의 5가지 사항에 대해 다루고 있다. 6.15 공동선언 1항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나가기로 했다”라고 밝히며 자주와 대단결의 원칙을 통합하였다. 이에 대해 남북간 해석에 차이가 있었는데, 북한은 자주적 해결일 외세배격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으며 곧 주한미군 철수로 논리를 확대하였다. 그러나 남한은 통일과정에서의 ‘민족의 단합과 공조’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며, 국제관계에서 주변국을 부인하는 외세배격이라기 보다 남북이 통일 문제의 당사자의 역할을 할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6.15 공동선언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항목은 바로 제2항이다. 남북은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그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북한이 주장하는 낮은 단계 연방제안은 1980년 발표된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에서 유연성을 부여하여 남과 북이 내정, 외교, 군사권까지 보유한 형태이다. 이는 남한의 연합제에서 보이는 2국가론과 북한의 연방제안이 공통점이 있음을 시사한다. 2항은 단일한 제도, 헌법, 정부라는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 남과 북을 서로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고 서로의 체제, 제도 속에서 평화를 위한 합의를 도출한 것이다.3항은 인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비전향 장기수를 비롯하여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도 포함하여 폭넒게 해석할 수 있다. 4항은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킨다는 목표와 이를
한국정치지방정치와 정치발전목차Ⅰ 지방정치의 개념과 필요성Ⅱ 한국 지방정치의 역사Ⅲ 한국 지방정치의 문제점Ⅳ 한국 지방정치의 해결방안Ⅰ 지방정치의 개념과 필요성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지방정치와 지방자치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겠다. 지방정치에 대한 그간의 선행 연구들을 살펴보면, 두 가지 용어의 정의는 매우 불분명하거나 모호하게 다뤄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방자치와 지방정치의 관계를 정의하는 관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지방정치를 지방자치의 하위부분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 유형에서 지방자치는 지방정치 뿐 아니라 지방행정도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지방정치와 지방자치를 같은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지방정치를 행정적 효율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며, 지방정치라는 용어보다는 지방자치를 선호하는데, 그간의 지방자치에 대한 연구들의 대부분은 이 유형에 속한다. 마지막은 지방정치가 지방자치를 포함하는 상위개념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 유형에서 지방정치는 지방이라는 공간에서 전개되고 있는 정치로, 지방정치는 지방자치와 중앙정치가 결합한 복합적 정치영역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이번 레포트에서는 다양한 의미들 중 지방이 스스로 발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지방자치를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하였다.지방자치(local self-govenment)란 일정한 지역을 단위로 일정한 지역의 주민이 그 지역 내의 지방적 사무를 자신의 책임 하에 자신이 선출한 기관을 통하여 처리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민주주의의 요청과 지방분권주의를 기초로 하여 지방자치는 역사적으로 발전해 왔다. 지방자치를 구성하는 요소들에는 ① 국가로부터 독립된 법인격을 가진 지방단체 ② 일정한 지역과 주민 ③ 지방적 사무 ④ 자치권 ⑤ 주민에 의한 지방정치 및 주민참여 ⑥자주재원이 있다. 지방자치의 완전한 구현은 곧 정치발전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지방자치를 통해 주민들의 자발적인 정치참여가 유도가능하다. 또한 지방자치제도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가장 핵심적인 제도이있고 민주화라는 입장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본개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고 한국의 지방정치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으나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지방자치 이기 때문이다.간략하게 근대의 지방정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일제강점기이전은 삼국시대, 고려, 조선등의 국가가 이어지나 중앙집권적인 요소로 종속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일부분 향리를 통한 지방자치적요소가 부분적으로 드러나지만 크게 드러나지 않고 중앙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그저 조언의 형식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시대부터 하기로 하였다. 1920년 이후 20여 년 간 지방제도에 자치적 요소들을 도입하였으나 그것은 본질적으로 한민족의 분열과 회유를 목적으로 한 중앙집권적 식민주의 관료제 통치의 도구로 이용한 사이비 자치제로 이용되었다. 일제강점기 시대는 민주적인 요소가 표면상으로는 보이고자 하였으나, 제국주의적인 일본의 천황제체제 하에서 식민지인 한국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고자 하였기에 우리나라 지방정치에서는 암흑기에 처해있음을 알 수 있다. 상해임시정부는 삼균주의이념에 준거하여 1941년 11월 25일 ‘건국강령’을 공포하고 동강령 제3장에서 근대적 지방자치제 도입을 선언하였으며 이것이 현대 대한민국헌법제정에 영향을 미쳤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드러나있다시피 우리나라는 3·1 운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가려는 의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영향을 미친 것을 알 수 있다.현대 이르러서는 지방자치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조사를 하였다. 지방자치 이전에는전 중앙정부의 정책과 영향력이 주요 변수가 되었다. 한국 근현대사는 국가주도의 정책으로 이어졌으며 독재와 같은 정치적으로 중앙의 힘이 강화된 탓에 중앙에 예속된 상태로 볼 수 있다. 지방정치 저발전이 이어진다. 왜냐하면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의 차별과 같이 지역 간 불균형적인 요소와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대상이 지방행정영역으로 국한시켰으며 중앙권력의 시혜에 의존하는 후원자-수혜자 관계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적절야합의에 의한 8차개정이 이루어진 이후 2000년 17차 개정에 이르기까지 10여 차례 개정 되었다. 이 가운데 비슷한 개정을 제외하고 개혁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지방자치법 개정을 서술해보겠다. 1988년 지방자치법의 전문 개정(7차 개정)은 형식적으로는 법률개정이지만 실제상으로는 새 법의 제정이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를 기존의 특별시 직할시·도와 시·군 외에 자치구를 추가하였다. 1991년 지방자치법 11차 개정에서는 지방의 사회발전과 지방자치제도의 정착을 도모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지방의회의 정기회를 광역의회의 경우 30일에서 35일로 기초의회의 경우 25일에서 30일로 연장조정하고 기초의회에도 상임위원회의 설치를 제한적으로 허용하였다. 1994년 지방자치법 12차 개정에서는 시-군을 통합하여 도·농복합형태의 시를 설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지방자치제도의 시행과정상 제기되었던 제도적 미비점을 조정-보완하였다. 1994년 지방자치법 13차 개정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광역시에 군을 두는 등 관련 규정을 정비함. 직할시의 명칭을 광역시로 바꾸고, 광역시 안에 군을, 구 안에 읍-면을 둘 수 있도록 하였다. 자치단체장의 계속 연임을 3기에 한하도록 하였다. 끝으로 1999년 지방자치법 15차 개정에서는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의 직접참여를 확대하기 위하여 주민의 조례제정 및 개폐 청구제도와 주민감사청구제도를 도입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간 또는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보강하고 각급 지방자치단체의 장 또는 지방의회 의장이 전국적 협의체를 설립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등의 현행 제도의 운영상 나타난 미비점을 개선-보완하였다. 이로써 현행까지 이뤄지게 되었고, 이는 현재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법의 요소가 되었고 지금도 시행되고 있다. 여기까지가 대한민국의 지방정치, 지방자치의 역사이다.Ⅲ 한국 지방정치의 문제점지방자치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4가지로 대표된다. 지방의 경제자립도가 낮다는 것, 이 때자치재정을 제약하는 국세 중심의 재원 배분 구조, 그리고 개별적 요인으로는 낭비성 지출의 증가와 지방공기업의 무분별한 투자로 인한 적자의 발생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다.일부 지방자치단체 경우 근검절약과 효율적 운영이라는 규범이 무시되었고, 지방세입 확충이라는 전략으로 경쟁적으로 개발사업을 진행하였다. 일부 자치단체는 수익률 과다예상,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 사업 추진과정에서 분쟁발생으로 인한 사업의 지연 등으로 투자 사업이 실패하여 그 결과로 채무가 증가하였다. 또한 호화로운 청사 건립, 전시성 행사유치,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축제 개최도 그 원인이 된다. 경쟁적인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 확대도 지방재정을 악화하였다. 사회간접투자 사업비는 2002년 15.2조원, 2009년 38.3조원으로 연평균 14.3% 증가율은 보인다. 이는 2010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전시성 투자 사업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지방자치단체는 이러한 세수 결손을 은폐하기 위해 다음 연도의 예산을 당겨쓰거나, 특별회계장기금의 자금일 일반회계로 전용하는 등 편법적으로 예산편성을 하였다.지방자치단체는 지방세와 보통교부세를 재원으로 활용하는데, 이들은 중앙정부의 대규모 감세정책으로 안정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국고보조금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급증하여 중앙재정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 중앙정부의 비과세, 감면 정책은 지방세의 비과세, 감면으로 이어져 지방세입의 결손을 낳았다.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재정정책에 의해 지방자치 단체 재정의 자율성과 자립성을 확보될 수 없는 것이다.앞서 지적했듯 지방이 재정적 자립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중앙집권적 정치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더불어 과거 권위주의적 정부를 겪었던 역사적 경험도 그 바탕을 이룬다. 또한 제도적 측면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혹은 지방정부간 협력체계가 완벽하게 마련되지 않은 점도 중앙정부에 의존적인 현상을 만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중앙정부의 법률과 방침에 의해 지방정부의 자치성이 침해받고 있다. 한국은 오랜 구 국회의원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작용하는 것은 오랫동안 제기되어 온 문제점이다. 공천절차에 있어서 공정한 경선절차 보다는 일방적으로 지명되는 경우가 많고, 시도당 공천심사위가 존재하기는 하나, 후보자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과정이 부족하다. 때문에 후보자를 최종 결정하는 단계에서 해당 지역구 의원의 의향이 크게 반영되는 것이다. 이는 2004년 선거법 개정을 통해 국회의원의 절대적 권한을 제한하는 노력을 통해 지역국회의원에게 공천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또한 지구당의 부재가 이러한 공천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심화시키고 있다. 2004년 선거법 개정 이후 지구당이 폐지되고 당원협의회가 새로 조직되었다. 그러나 과거 지구당과 거의 다른 점이 없다. 일상적인 정당활동이 없고, 선거시에만 금전에 의한 조직표를 가동시키는 한시적, 제한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지방정부의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인적, 물적 기반이 취약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지역주의 정당구조를 가진 우리나라는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확실해’지는 상황이 되었다. 때문에 단체장이 선출직보다 유사 임명직에 가깝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공천과정에서 후원금 명목의 금품수수와 같은 비리발생이 높으며 지방정치권 내의 지방정당득세에 따른 지방토호 세력들과의 유착가능성이 높다.Ⅳ 한국 지방정치의 해결방안지방정치에서 거론되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안이 제시된다. 먼저 지방재정자립도 확보를 위해 중앙과 지방간의 재원배분 체계의 재정립이다. 중앙의 결정에 따라야만 하는 현재와는 달리 각종 재정지출에 대한 지방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재정적 규제나 감독의 범위는 축소하고, 재정역할과 책임을 전적으로 지방정치에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 에를 들어 사회복지의 경우 기초적인 복지는 중앙정부의 재원으로 하되 지역주민의 요구에 따른 복지는 지방재원으로 하여 지방재정의 과도한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방안 한다.
근대 정치 철학으로 보는 사유재산과 자유시장에 대한 논의《 목차 》0. 근대 정치 철학과 경제1.1 마키아벨리1.2 로크1.3 루소2. 각 사상가별 종합적 평가와 비교3. 결론4. 참고 문헌1. 근대 정치 철학과 경제‘근대’는 많은 함의를 지니고 있는 단어다. 중세 시대 신과 종교의 억압 밑에서 인간이 자유로운 행위의 주체로 일어선 것은 근대라는 시기가 시작된 다음부터였다.인간의 이성과 자유 의지를 중요하게 여긴 배경 아래서 인간은 하나의 행위자로서 주체성을 띠기 시작했다. 그러한 근대에는 ‘경제’ 역시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다. 경제는 예전부터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하지만 중세를 거치며 치부(致富)는 탐욕과 연결되었다. 사람들은 경제 활동에 종교적인 굴레를 덧씌웠다. 그러나 근대를 거치며 인간은 이러한 굴레에서 풀려날 수 있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경제 활동의 자유를 얻어냈다. 그리고 ‘시장’ 역시 새로운 인간의 활동 영역이 되었다. 이렇게 근대성의 철학과 경제 영역은 그 궤적을 함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그렇다면 근대 정치 철학/사상을 통해서 근대의 중요한 경제적 산물인 ‘자유 시장’ 과 그 기반이 되는 ‘사유 재산’ 의 원리에 대해 접근하는 것 역시 가능할 것이다. 경제와 정치는 원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연관관계가 있었다. 근대 이후에야 학문들이 다양성과 전문성을 추구하여 분과되었지만, 경제와 정치는 사실 둘 다 인간의 삶을 다스리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서 한 몸과 같이 생각되었고, 자연스럽게 사상가들에 의해 동시적인 고민이 되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정치적인 질문에는 반드시, 실존적인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문제가 수반되는 것은 플라톤과 같은 고대 정치 철학자들도 고민한 문제였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이 자연스럽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근대에 대한 이해 역시, 정치 철학과 경제의 모습을 수반하여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이러한 접근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중점에 두고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경제와 정치의 불로 사용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 군주에게 필요한 것은 인민의 지지와 그를 통해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다. 군주는 그를 위해 남을 무조건적으로 신용하거나 의지하는 것보다는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꾀’를 동시에 사용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방법으로 그의 실리를 추구하고 목적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그의 움직임에 기반이 되는 것은 인민들의 신뢰와 충성이 되어야 한다.이러한 마키아벨리의 사상은 관념적인 굴레들을 떠나 ‘실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이고 근대적이다. 이러한 그의 사상을 통해 보았을 때, 그는 자유 시장(free market)을 그가 처해 있는 정치적 현실과 비슷하게 여기고, 자유 시장을 이끌어가는 행동 역시 그가 「군주론」 에서 밝힌 방법과 같이 영위하게 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우선 시장에서의 행위자 측면에서 본다면, 시장에서의 개인은 자유로워야만 한다. 그러한 자유로운 시장을 배경으로 개인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그리고 마키아벨리의 사상에서 또 주목할 점은, 인민의 재산을 건드리는 것이 가장 많은 원한을 살 우려가 있음에 대해 밝히고 있다는 것이다. 군주는 자신의 재산과 자신의 인민이 갖고 있는 재산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한 국가를 다스리기 위해 재산을 탈취의 수단, 인민 통제의 수단 등으로 사용하는 것은 인민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고, 그러한 반발은 군주에 대한 지지 철회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국가 존립에 위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유 시장 경제 역시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개인 사유 재산에 대한 철저한 보호와 시장에서의 행위자들 간 자유롭고 평등한 경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민의 것을 ‘주권’이라는 이름, 혹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측면에서는 시장에 대한 존중을 엿볼 수 있다.또한 마키아벨리의 경제관념은 ‘관후함’ 과 ‘인색함’ 개념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관후하다는 평판을 추구하기 위해 함부로 재산을 낭비한다든가 하는 것은 오히려 경제의 파괴,리고 합리적인 인간관으로 향하는 길목이 된다고 평가할 수 있다.1.2 로크로크는 근대를 대표하는 사회계약론자 중 한 사람이다.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 보장받도록 되어 있는 권리를 더욱 효율적으로 보장받기 위해 사회계약을 주창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인 사상뿐만이 아니라 로크는 근대적인 ‘소유권’ 개념을 창시하였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 부분이 크다. 그 이전의 소유권은 불확실한 개념이었다. 자연 상태에서는 물론 그것을 지키기 위한 법과 제도가 부재하였기 때문에 불확실했겠고 소유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동 개념 역시 부재했다. 하지만 현실 역시 불안정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로크는 그의 사회 계약의 제1의 목표로서 ‘소유권(재산권)의 보호’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로크의 소유권과 재산 개념은 ‘노동의 투입’ 을 전제로 하고 있다. 자연물에 인간이 그 노동을 섞이는 순간 그것이 그의 것이 된다는 것으로, 소유물을 갖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노동이 필요하다고 하여 노동의 중요성과 소유권의 절대성 내지는 배타성을 옹호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이러한 소유권에는 물론 한게 역시 존재하고 있다. 최소한의 공유의 조건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충분 조건’, 과잉 소유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손상 조건’, 그리고 투입되어야 하는 노동이 나의 것이지 남의 것이 아니라는 ‘노동 조건’ 이 그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을 통해 로크는 자신의 사상이 무조건적인 탐욕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으며 건전한 노동과 건전한 소유, 그리고 그것의 합리적인 보호를 위한 사회 계약 등을 주장하고 있다.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로크는 개인의 소유권을 가장 보호받아야 할 권리로 놓고 그를 위해서 사회계약을 하는 만큼 그 위상을 높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개인들의 권리(소유권을 위시한)를 잘 보장해주지 못하였을 때 일부 양도된 주권을 얼마든지 찾아올 수 있다는 저항권이 행사된다는 것에서 보았을 때 로크 사상에 있어서의 소유권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 볼 때 로크의대가 물론 지금과 다르고 소유권을 옹호하게 된 배경 역시 다르지만, 그러한 보호는 필연적으로 배타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고 자유라는 명목 아래에서 남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경계한다면 자유시장 경제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1.3 루소루소는 앞서 말한 두 철학자와는 다르게 자연적인 상태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루소 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는 말은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으며 사회에서 타락했다.’다. 이러한 그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그는 그 만의 사회에 관한 논의를 전개한다. 루소에게 있어 오히려 사회란 타락의 위협이 언제나 존재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을 토대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자유 시장의 기초가 될 만한 ‘소유’의 관념은 자연 상태의 발달 과정에서 생겨났다. 사회가 형성되고 인간 관계가 성립되고 초기적인 형태의 사회 모습은 인간의 관계맺음에 대한 욕구와 자기 편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타인에게 인정 받고 선택받고자하는 욕구는 선택이라는 합리적인 행위를 요구하는 측면에서 이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이러한 최초의 이성은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고, 다르게 만들기 시작하고 그것이 ‘다름’, 혹은 ‘불평등’의 시작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야금술과 농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욕심을 불러일으키게 된 변화를 일으킨 두 가지 발명이라 칭해진다. 이렇게 생산의 발달에 따라 소유의 관념이 생기게 된다. 이 때 루소의 소유에 대한 관념은 노동 투입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로크의 그것과 비슷하다. 토지의 점유가 반복되어 소유가 되고, 이러한 소유는 자연적 불평등에 새로운 원인이 결합하여 불평등이라는 하나의 현상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맨 처음 자연 속에서 행복했던 인간은 쇠사슬에 묶여가고, 그리하여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 계약을 맺게 된다. ‘모든 사람들의 공동의 힘으로 구성원 각자의 신체와 재산을 보호하고, 각 개인의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결합하고 있으나 자기히 복수의 행위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행위자들 간의 관계가 중요한 시장에서의 행동 양식이다. 이렇게 수많은 관계맺음 속, 엄연히 존재하는 차별을 우리는 정당한 경쟁이라는 이름 하에 무시해왔다. 그러한 과정에서는 비정규직 문제와 같이 정당하다고 할 수 없는 정도의 과도한 경쟁의 희생양들이 생겨났지만, 어쩌면 이는 당연한 것이라고 무시되어왔을 수도 있다. 이러한 현대 자유 시장의 폐해를 루소는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공동선의 개념은 단순히 자유시장에 대한 제동을 거는 것에서 넘어, 적극적으로 부를 재편하고 복지 정책을 실현하는 등, 자연 상태보다 더 나은, 행복함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 계약의 필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이러한 과정은 모두 일반 의지와 공동선이, 나의 마음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굴종이 아니고 정당성을 충분히 갖게 되는 것이다.2. 각 사상가별 종합적 평가와 비교현대를 움직이는 것들 중 하나에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경제가 있고, 경제 중에서도 다양한 지표가 중요하고 어디에 주목하느냐에 따라서 해석도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무엇보다 주목할 한 가치가 있는 것은 시장이다. 인간은 확실히 시장을 무대로 많은 발전을 해 왔다. 그 과정에서 시장에 대한 평가와 분석 역시 사상가들에 따라 많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들의 사상에 확실히 경제에 대한 언급이 나와 있지 않더라고 하더라도 정치와 인간이 가지게 되는 필연적인 불평등함, 그리고 그들이 사회에서 행동하는 모습, 인간의 본성 등에 의거하여 경제와 자유 시장에 대한 평가를 유추할 수 있게 된다.먼저 마키아벨리와 로크는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측면을 많이 갖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경우는 그 간섭을 금지한다는 것이 결과적으로 군주권을 옹호하고 나라를 지킨다는 다른 목적을 갖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인민들의 소유권을 보호하고, 자유로운 행동을 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의 생각을 읽어낼 수 있다. 또 그의 기본적인 현실주의 사상 ?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더라도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이 옳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