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토익사회의 더듬더듬 생존법― 심재천 『나의 토익 만점 수기』(2012, 웅진지식하우스) 읽기- 두 눈 뜬 키클롭스의 사회대한민국 취업준비생을 모아 놓고 ‘이 중에 토익 점수 가진 자 손을 들라’고 하면 가만히 두 손을 내리고 있을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취업의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한 스펙 경쟁에서는 누구나 명찰처럼 달고 있는 것이 토익 점수이다.이러한 현실에 심재천의 『나의 토익 만점 수기』는 토익 열병을 앓는 취업준비생이 오해할 만큼 그럴싸한 제목을 들고 등장했다. 언론사 기자로 일하다가 소설가가 되기 위해 일을 그만둔 심재천의경험은 그가 써낸 주인공의 삶의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제3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이자 작가의 등단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토익 590점짜리 취업준비생인 주인공을 내세운다. ‘590점이어도 행복해!’가 아니다. 토익 만점을 받은 친구는 취직에 성공했고, 소나타 신형을 뽑았다. 그리고 여유롭게 말하길, “요즘 토익 만점은 ‘나 눈 두 개 달렸소’ 하는 것과 같” (18쪽) 단다. 반면 590점짜리 ‘나’는 취업시즌 끝까지 서류전형 한 번 통과해보지 못하고 ‘지원자격: 토익 800점 이상‘이라는 문구에서 ‘넌 꺼져.’라는 매몰찬 목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1년간 호주로 꺼지기로 한다. 어학연수란 이름의, 인질극의 시작이다.2013년 통계 기준 토익 수험자 중 만점(990점)을 받은 응시자는 1,685명으로 전체 수험자 중 0.08%에 불과하다. 1%에 채 못 미치는 이 소수의 사람만이 ‘두 눈이 달렸다’는 증명서의 자격을 갖는 성적표를 받을 수 있다. 99%의 인간들은 멀쩡히 두 눈을 뜨고도 ‘두 눈을 달’지 못한 외눈박이 키클롭스로서 살아간다. 누구처럼 새로 뽑은 소나타 신형에 애인을 태우고 다니지도 못하면서!학점·스펙·알바·취업을 돌고 도는 끝없는 ‘노오력’의 굴레를 지적한 인터넷발 ‘헬조선’ 담론은 2015년 대한민국을 휩쓸었지만 사실 이것이 아주 새로운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 이어지는 불황과 청년실업에 청년 , ‘이제’, ‘너무’와 같은 어휘들을 내뱉으며 불가항력적으로 완료된 사건들과 현실에 대한 낙심과 체념을 말하고, 장강명의 『표백』에서 더는 무언가를 이뤄낼 희망이 없는 ‘표백 세대’는 가장 그 세대다운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웹 페이지를 통해 자살을 선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나의 토익 만점 수기』의 주인공은 더없이 의욕 넘치는 바람직한 젊은이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 이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기 위해 목숨(정확히는 한쪽 눈)을 걸고 ‘노오오력’하는 ‘나’의 모습은 “요즘 젊은이들은 열심히 살지를 않아서…”따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회의 99% 이상을 두 눈 뜬 키클롭스 취급하는 게 옳은 것일까’하는 문제의식, 짐짓 유쾌하게 풀어내는 이야기가 도달하는 지점은 그곳이다.- 토익적 사고회로‘2000년대 한국소설의 주인공들은 어떤 경우 더는 주인공이 아니라 캐릭터’이며, 개성과 인격의 담지자가 아니라 자동인형 또는 동물이라고 불러도 상관없을 정도로 탈주체화의 맥락과 자장 안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있었듯이, 소설의 ‘나’역시 개성적인 개인의 모습보다 토익 만점이라는 목표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자동인형적 양태를 드러낸다. 바나나 농장에서의 인질 생활 1년은 전부 토익, 토익, 토익으로 연결된다. 바야흐로 토익적인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 ‘나’의 철칙은 “절대 한국어를 쓰지 말자.”, “한국인과는 말도 섞지 말자.”이다. 브리즈번의 호스텔에서 만난 제임스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귀에 착 달라붙는’ 영어를 구사하며 “남자답게 스릴을 즐기며 영어를 배워라” (22쪽) 는 충고를 건넸기에 그의 부탁에 따라 순순히 마리화나가 든 봉투를 운반한다. 제임스의 지령대로 P시에서 스티브를 만나 그의 훌륭한 구어체 영어 때문에 바나나 농장이라 쓰고 마리화나 농장이라고 읽는 곳의 동양인 인질이 된다. 그리고 완벽한 문어체 회화를 구사하는 전직 토익 리스닝 성우 부부 A, B가 사는 집의 노예가 되기를 자처한다. 그가 경험하는 이 모든 것이 토익 성적의 양분이 된다 The man is picking banana flowers(남자는 바나나 꽃을 따고 있다).⒝ The man is drinking a cup of banana juice(남자는 바나나주스 한 잔을 마신다).⒞ There are roses under the banana tree(바나나 나무 밑에 장미가 있다).⒟ The man is wearing a hat(남자는 모자를 쓰고 있다).(75쪽)‘나’가 바쁘게 문제를 만들고 메모하고 생각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영한사전을 인용하는 동안 호흡이 빠른 문장은 늘어질 틈 없이 990점을 향해 흘러간다. 이러한 ‘토익적 사고회로’의 극단은 토익 성우 부부와의 만남으로 드러난다. ‘철저히 토익화된 인간의 모습’ (176쪽) 의 전형인 부부는 이름조차 드러나지 않고, 그들과의 대화는 사람 대 사람의 대화가 아닌 리스닝 녹음파일의 대본처럼 바뀐다. A와 B로 표상되는 그들은 ‘나’에게 ‘걸어 다니는 스피커’ (174쪽) 외의 어떤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먼 이국땅 마리화나 농장의 일손 생활과 은둔하는 ‘아폴로 13호교 신도’ 여자와의 동거라는 비범한 환경에서도 오직 990점만을 목표로 하는 과정은 익숙한 ‘토익’이라는 시험과 그것에 목매왔던 독자 자신의 모습, 그리고 오늘날의 ‘무한토익사회’적 현실을 낯선 것으로 만든다. 케첩통을 피우는 것, 바나나가 풀에서 열리는 것, 그리고 바나나와 홍차를 마시는 것처럼 지금껏 알지 못했던 생소한 감각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이해TOEIC, 풀어 말하면 ‘Test of English for International Communication’. 분명 ‘Communication’을 위한 ‘English’이건만 ‘나’에게 토익 영어는 커뮤니케이션이라기보다 모든 것이 수치로 환산되는 냉정한 실전이다. 510점은 카투사에 지원도 못 해보고 현역 포병으로 입대하고, 590점은 서류 ‘광탈’을 부르는 세상에서 토익은 수험생에게 이미 ‘모든 수험생들을 목마르게 해서 끝없이 달리게‘ 하는, 일종의 스포츠’ (았기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스티브는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기 위해 더듬더듬 한국어를 배운다. 이들에게 어학시험 990점 따위는 상관없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영화 보러 갈래?”, “미안했다”라고, 서툴러도 진심을 전할 수만 있다면."'아폴로 13호'는, 정말, 미안, 했습니다. 너무, 이상해서, 그랬습니다."그가 한국어로 더듬더듬 사과했다. 외국어로는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177쪽)결국 ‘평양식 물냉면, 영양도 만점 맛도 만점’에서 시작한 한국어 레슨은 요코를 2년간의 지하 생활에서 지상으로 끌어올린다. 그들의 관계 회복을 도운 선생님 역할은 ‘나’에서 아버지로 이어져, 먼 호주 땅에서 세 사람을 한 가족으로 묶어 준다. 진정 훈훈한 한류 열풍이다.스티브가 그랬듯, ‘나’의 아버지도 서툰 이국의 언어로 아들에게 마음을 전한다.‘I, YOU, UNDERSTAND’와 ‘I understand what you said’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분명히 차이가 있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더듬더듬 엉터리로 쓰인 문장 쪽이 내 가슴을 더욱 흔들어놓는다. ‘I understand what you said’ 같은 매끄러운 문장으로는 가슴속 진동이 일지 않는다. 그것으로는 지난 15년 동안 가슴에 쌓여 있던 찌꺼기가 불살라지는 느낌을 못 받았을 것이다.(181쪽)‘나’가 선택한 호주행의 표면적인 목적은 어학연수였지만, 그 이면엔 집안 환경에 대한 불편함과 복잡한 감정을 숨기고 있었다. 호주에서 2형식 문장, 3형식 문장 따위를 고민하던 그가 작문 연습 삼아 쓴 영문 편지에 아버지가 보낸 답장은 ‘문자는 전부 대문자이고, 문법은 완전히 무시’, ‘시제, 어순도 엉망’ (181쪽) 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매끄러운 한국어로 이루어졌던 지금까지의 어떤 대화보다 부자간의 쌓인 앙금을 풀어주는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의 작용을 한다.언어의 가치는 ‘사람과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것’에 있다. 일개 어학시험 성적는 그다지 가치가 없다.- 믿고 싶은 것을 믿기‘나’의 집에는 ‘우리집 전용 지진‘ (55쪽) 이 있다. 인근 교회에서 온 듯한 ’중년 5인조’가 주기적으로 ‘나’와 아버지가 사는 집을 습격해 온 집안을 ‘chaos’, 즉 ‘쑥대밭’ (55쪽) 으로 만들고 간다. 아버지가 믿는 ‘이주일을 닮은 예수’ (56쪽) 의 초상에 빨간색 래커 칠을 하고, 거실 바닥엔 “꺼져라 사탄”이라는 지우기 힘든 글귀를 남긴다. 이들은 기독교라는 일반적인 사회 테두리 내부의 사람이지만 오히려 외부의 인간인 아버지보다 폭력적이다.“이 새끼들아, 왜 그러냐고?”나는 외쳤다.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뺨을 맞았다. 뺨에서 웅웅웅웅웅, 소리가 났다.“사과해라.”아버지였다.“죄송하다고 말씀드려.”5인조가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버지는 슬픈 눈으로 나를 보고는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라고 작게 중얼거렸다.(…)“죄송합니다.”나는 그들에게 머리를 숙였다.“사과는 필요 없어. 하나님 품으로 돌아와야 해.”5인조 중 중년여성이 말했다. 그들은 마룻바닥에 사탄은 지옥으로 꺼져라를 완성하고 돌아갔다.(132-133쪽)사회 내부의 인물들은 짐짓 깔끔한 척하면서도 폭력적 성향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입에서 가그린 민트향이 나는 권사님은 구두도 벗지 않고 마루에 올라온다. 불가리 향수를 뿌리는 호주의 젊은 경찰은 과잉 진압으로 ‘나’의 오른쪽 눈을 날려버린다. 이것들은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토익 이데올로기와도 닮았다. ‘취업도 하고 소나타도 몰고 하려면 이 정도 스펙은 가져야 한다’고 사회의 보이지 않는 목소리들은 정장을 차려입고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화려한 스펙만이 사회에 편입될 수 있는 입장권인 것처럼, 청년들에게 끊임없이 토익 만점을, 자격증을, 그럴듯한 학력을 강요한다.믿고 있는 예수가 남들과 조금 다를 뿐 선량하고 평범한 아버지, 방사능 재킷을 입고 아폴로 13호를 믿지만 학구열이 대단한 요코, 마약사범이지만(이건 물론 범죄가 맞다.) 절도가 있고 가장 맛있는 바나나를에.
아기장수 전설의 신화적 성격- 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로의 재창조차 례1. 서론2. 아기장수 전설2.1. 아기장수 전설의 개요2.2. 아기장수 전설의 신화적 성격3. 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로의 재창조4. 결론참고문헌11. 서론은 대표적인 한국의 구비전설이라고 할 만큼 널리, 또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어 왔다. 전설의 형성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사기』에서 겨드랑이에 깃이 달린 장수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아기장수 전설이 우리 민족의 긴 역사와 함께 형성되고 발전하고 구전되어 온 만큼 그 안에서 인정할 만한 가치를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연자들, 즉 민중의 의식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보통 아기장수는 마치 성경 속 예수와 같이 짧은 생애를 살다 감으로써 괴로운 현실에서 해방을 원했던 민중 의식이 발현된 희생양 모티브로 해석된다. 여기서는 그의 비범한 속성과 행위를 통해 헤르메스적 인간의 면모를 찾아보고, 전설의 신화적 성격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 이러한 전설이 최인훈의 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로 재창조되면서 어떠한 신화적 해석을 가능케 하는지 분석해 보고자 한다.12. 아기장수 전설2.1. 아기장수 전설의 개요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아기장수 전설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이 전설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태어나 비극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아기장수의 이야기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전해져 현재까지 채록된 작품 수만도 300편이 넘는다. 전국적으로 분포되며 변이가 이루어져 지역에 따라 구조와 내용이 조금씩 차이를 보이지만, 이야기를 구성하는 중심 화소를 분석하면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첫 번째 유형의 이야기는 '○○지역 ○○가문에 어린 아기가 태어났는데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외출에서 돌아온 어머니에게 날아다니는 능력과 겨드랑이의 비늘, 혹은 날개가 노출되어 부모나 가족에게 살해당하자 용마가 나타나 울다 사라졌다'는 내용이다. 등이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아기장수 전설에 속하는 300여 편 가운데 약 260여 편이 이와 유사한 내용의 작품들이다. 두 번째 유형의 이야기는 '웃도리이야기', '우투리이야기'로 전해지기도 하는데, '어느 집에 남다른 아이가 태어나 말을 타고 온 사람(권력자)과의 힘겨룸에서 기지를 드러내 승리한 후 어머니에게 곡물을 부탁해 본격적인 대결을 준비했다가 어머니의 실수로 죽은 후 땅속에서 재생을 기약하는데 어머니의 폭로로 영원히 재생할 수 없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전북 남원에서 채록된 , 등이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김영희(1999)는 첫 번째 유형을 유형, 두 번째 유형을 유형이라 지칭한다. 두 유형은 내용적으로 큰 차이가 있으나, 비범한 능력을 갖고 태어난 아이가 가능성을 실현해 보기도 전에 죽게 된다는 점, 그리고 죽음의 원인이 그의 비범함에 있으며 그를 죽게 하는 실수가 근친자인 어머니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점에서 유사한 면이 있어 모두 '아기장수에 관한 이야기'로 구연된다.2.2. 아기장수 전설의 신화적 성격아기장수 전설에서는 ‘헤르메스적인 인간’이라는 신화적 사고의 형태를 찾을 수 있다. 유형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물론 아기장수의 신이한 ‘날개’이다. 를 보면 어린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날개를 가지고 있고 선반 위에 날아 올라갔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찍어 눌러 죽여 버린다. 이 날개는 하늘을 날던 새의 날개가 퇴화한 것이다. 하늘은 천신을 의미한다. 시공을 극복하는 신비한 힘의 근원인 날개를 가진 영웅은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는 천신의 사자 또는 천신 자체인 ‘새’를 뜻한다. 천상과 지상을 잇는 교감의 통로가 되는 헤르메스적인 존재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당대 서민을 삶의 질곡에서 구해 줄 것으로 기대되는, 하늘에서 내려온 구세주가 그가 가진 날개를 통해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아기장수의 짝인 용마의 날개 역시 같은 의미를 가진다. 하늘을 나는 새와 말은 건국신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이 둘은 날아서 하늘과 땅을 오갈 수 있다. 천신이 강림해서 고대국가를 세우는 신화에서 새와 말은 하늘과 땅의 중간자, 사자의 역할을 한다. 박혁거세, 김알지 등의 이야기가 그렇다. 그러나 이처럼 위대한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 아기장수는 방 밖으로 나가보지도 못하고 죽임을 당하고, 용마는 그의 짝을 만나보지도 못한다는 것이 아기장수 전설이 가지는 비극성이다. 유형의 아기장수가 한 번의 죽음을 체험하고 땅속에서 재생을 기약하는 것도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헤르메스의 중간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삶과 죽음의 세계를 체험하는 이야기는 동서양 신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로 그리스의 페르세포네, 프시케, 오르페우스가 대표적인 예이다. 아기장수는 땅속 죽음의 세계에서 부활을 꾀했고 실제로도 거의 성공에 다다랐지만 결과적으로는 근친자(어머니)에 의해 좌절을 겪는다.3. 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로의 재창조아기장수 전설의 모티프와 구조는 문학적으로는 후에 김덕령, 이몽학, 신돌석, 최제우와 같은 반체제적 영웅담에서 거듭 재현되며, 김동리의 ?황토기? 등 현대소설, 희곡에도 수용된다. 또한 최근에는 아기장수의 캐릭터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사이버세계라는 소재를 더한 국산 애니메이션 아장닷컴(2003, KBS2)이나, 지역 캐릭터로 만들어지는 등 전설의 재창조를 위한 노력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이에 여기서는 1976년 발표되어 한국의 심성, 신화나 전설 속에 침잠해 있던 모티프들을 예술로 형성해냈다는 평가를 받는 최인훈의 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를 통해 아기장수 전설이 현대 희곡에서 어떻게 재구성되고, 변화되었고, 그 신화적 성격은 어떠한지 알아보려고 한다. 희곡의 특성상 본 희곡을 실제로 무대에 올린 영상자료를 참고하여 무대의 구성, 연출 등을 함께 살피면 더욱 가치 있는 연구가 되었겠으나 자료의 부족으로 여기서는 다음의 과제로 남긴다.이 희곡의 주제 자체는 원화 아기장수 전설의 주제와 거의 같다. 희곡의 서두에 덧붙인 작가의 말을 보면, 평안북도에 내려오는 전설을 바탕으로, 애기를 눌러 죽이는 데까지가 전설의 원화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아기장수 전설은 탄생-갈등-죽음이라는 상황이 중심구조를 이루고 있는 데 비해 희곡에서는 결말의 부활과 승천 부분에서만 아기장수가 표면화되어 있고 아기장수의 부모가 극의 중심을 이끌어 간다. 이것은 부모가 처해있는 상황을 통해 고통받는 민중의 삶과 장수 탄생과의 유기적 관계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이다.?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에는 겨울과 봄, 두 계절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겨울에 주인공들은 씨앗조를 꾸어 농사의 준비를 하는 한편 눈이 많이 내리는 것을 보고 풍년을 기대한다. 암울한 민중들의 삶이 혹독한 겨울을 통해 제시되지만, 그 속에서도 그 해의 농사에 대해 희망을 가지고 준비하는 것은 봄에 태어날 아기에 대한 기다림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기장수는 만물이 새롭게 자라나는 봄에 태어난다. 그의 성장은 우주적 질서에 따른 사계의 순환 리듬과 일치하는 신화적, 우주적 질서를 보인다.희곡의 결말부는 원화전설이 아기장수의 죽음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데 비해, 용마를 타고 부활한 아기장수가 부모와 함께 승천함으로써 자기를 죽인 자에 대한 사랑과 화해, 그리고 구원에의 의지로 독자에게 문학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여기서 아기장수는 구원과 용서의 의미로 진달래꽃을 던진다. 진달래꽃은 한(恨), 반가움, 흐드러진 아름다움 등의 이미지를 가지는 우리 민족에게 친근한 문학적 소재이다. 이렇게 꽃을 던지고 노래를 부르며 퇴장하는 아기장수의 장면에서 최인훈은 작가의 말을 통해 신들린 사람들처럼 춤출 것을 지시하고 있다. 이러한 신명의 분위기는 일종의 엑스터시나 몰아, 혹은 망아의 경지에 이르는 상태를 말한다. 이 장면을 통해 아기장수를 핍박하던 인물들부터 가족까지 너나할 것 없이 춤의 신명에 의해 공동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물아를 통해 서로에 대한 교감, 하나가 되는 공감을 이루어내는 것이다.4. 결론이상에서 아기장수 전설과 그 신화적 성격, 그리고 이러한 전설을 바탕으로 창작된 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의 성격에 대해 살펴보았다. 아기장수 전설은 광포전설로 지역에 따라 구조와 내용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를 분석하면 유형과 유형의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아기장수 전설에서는 헤르메스적 인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아기장수의 날개는 하늘을 나는 새를 의미하며 하늘은 곧 천신으로 아기장수는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헤르메스적인 존재의 성격을 가진다. 이러한 중간자, 사자의 성격은 용마의 날개 역시 마찬가지이다. 유형의 아기장수가 죽음에서의 귀환을 시도하는 것은 여러 신화에서 등장한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아기장수 전설의 문학적 성격차 례1. 서론2. 아기장수 전설의 분포3. 아기장수 전설의 유형 분석4. 아기장수 전설의 의의5. 결론참고문헌11. 서론국문학에서 설화의 한 갈래인 전설을 설명할 때 가장 두드러지는 특성은 ‘비극성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은 이러한 전설의 비극성이 드러나는 좋은 예이다. 이 전설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태어나 비극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아기장수의 이야기로, 우리나라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전해진다. 수많은 구연자들에게 어떠한 가치를 인정받고 오랜 세월에 걸쳐 전파된 만큼, 아기장수 전설의 연구를 통해 그 문학적 가치를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구연자들(민중)의 의식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여기서는 아기장수 전설의 분포와, 전승되는 내용에 의한 유형 분류와 분석, 그리고 아기장수 전설이 가지는 의의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12. 아기장수 전설의 분포아기장수 전설은 전국 각지에 분포된 광포 전설로 현재까지 채록된 작품 수만도 300편이 넘는다. 이 전설의 형성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에 겨드랑이에 깃이 달린 장수에 대한 기록이 있다. 또 『조선읍지』 강릉 고적 조에는 아기장수 전설과 흡사한 이야기가 나타난다. 또한 아기장수의 모티프가 조선시대의 반체제적 인물 전설과 결부되거나 조선 후기 민란 관련 담론인 ‘진인(眞人) 출현설’과도 닿아 있는 것을 보면, 적어도 이 전설이 조선 중기와 후기에 널리 유포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전국적으로 분포되며 변이가 이루어져 지역에 따라 구조와 내용이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비범한 아이가 자신에게 해를 미칠까 두려운 부모가 아기를 살해하는 유형이 광포한데 아이를 죽이는 상황과 방법이 다양하다. 조상 묘를 잘못 쓴 탓에 아기장수가 출생한 것으로 보거나, 나아가서는 묘를 잘못 쓰게 된 원인을 며느리에게 돌리는 변이형들도 나타난다. 한편으로는 살해당하지 않고 청장년까지 생존하는 아기장수도 있다. 날개를 잘리고 불행하게 살아가거나, 잠적하여 언젠가 다시 나타나길 기대하는 등의 생존형 아기장수들이 특히 호남 지역과 제주 도서 지역에 상대적으로 풍부하게 나타나는 것은 백제권의 역사 및 도서 지역의 환경적 특수성 때문일 것으로 이해된다.3. 아기장수 전설의 유형 분석앞서 살펴본 것처럼 전국에서 전승되는 아기장수 전설에는 크고 작은 지역적 차이가 있지만, 이야기를 구성하는 중심 화소를 분석하면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첫 번째 유형의 이야기는 'ㅇㅇ지역 ㅇㅇ가문에 어린 아기가 태어났는데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외출에서 돌아온 어머니에게 날아다니는 능력과 겨드랑이의 비늘, 혹은 날개가 노출되어 부모나 가족에게 살해당하자 용마가 나타나 울다 사라졌다'는 내용이다. 아기장수 전설에 속하는 300여 편 가운데 약 260여 편이 이와 유사한 내용의 작품들이다. 두 번째 유형의 이야기는 '웃도리이야기','우투리이야기'로 전해지기도 하는데, '어느 집에 남다른 아이가 태어나 말을 타고 온 사람(권력자)과의 힘겨룸에서 기지를 드러내 승리한 후 어머니에게 곡물을 부탁해 본격적인 대결을 준비했다가 어머니의 실수로 죽은 후 땅 속에서 재생을 기약하는데 어머니의 폭로로 영원히 재생할 수 없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구성된다.김영희(1999)는 첫 번째 유형을 유형, 두 번째 유형을 유형이라 지칭한다. 두 유형은 내용적으로 큰 차이가 있으나, 비범한 능력을 갖고 태어난 아이가 가능성을 실현해 보기도 전에 죽게 된다는 점, 그리고 죽음의 원인이 그의 비범함에 있으며 그를 죽게 하는 핵심적인 실수가 근친자인 어머니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점에서 유사한 면이 있어 모두 '아기장수에 관한 이야기'로 인식되어 구연된다.두 유형의 이야기는 전형적인 비극적 서사의 특징을 드러낸다. 다만 유형은 이야기의 앞뒤에 지명유래나 명당에 관한 이야기가 덧붙여져 있어 전설의 성격이 강한 반면, 유형은 증거물이 없다. 또 유형은 전승의 지속 지향이 강하여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유사한 서사단락을 보이는데 비해, 유형은 중간의 내용이 빠지고 다른 이야기가 들어가 있거나, 앞부분이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점과 유형이 더 광범위하게 분포된다는 점, 전해지는 작품 수가 우월한 점을 함께 고려하여 보면 아기장수이야기의 본령은 유형에 있다고 할 수 있다.4. 아기장수 전설의 의의우리 구비문학에서 장수와 용마가 짝이 된 이야기는 많지만, 이 전설은 장수가 아기 때 살해당할 뿐 아니라, 장수의 사후에야 용마가 출현하여 따라 죽는다는 점에서 다른 장수전설보다 심각하고 비장하다. 아기장수는 메시아의 속성을 지닌 존재로, 현세의 질곡을 벗어나게 해 줄 구세주를 바라는 민중적 세계관이 투영되어 있다. 이러한 아기장수의 패배는 역사 속에서 민중이 겪은 좌절을 반영한다. 지배 체제에 저항하여 일어났으나 좌절했던 역사적 경험이 아기장수 전설의 형성과 전승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이처럼 아기장수 전설은 민중들의 생활과 역사 속에서 그들이 경험한 현실, 역사의식이 반영되어 형성되었다. 아기장수 전설의 형성은 좌절의 현실에 대한 당대 민중의 설화적 대응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조선 후기 진인(眞人) 출현설과 내용이 닿아 있는 것도 이 전설의 저항 문학적 의의를 말해 준다.아기장수 전설의 모티프와 구조는 후에 김덕령, 이몽학, 신돌석, 최제우와 같은 반체제적 영웅담에서 거듭 재현되며, 김동리의 ?황토기?, 최인훈의 희곡 ?옛날 옛적에 훠어이?처럼, 현대소설, 희곡에도 수용되었다.15. 결론이상에서 아기장수 전설에 대해 살펴보았다. 아기장수 전설은 광포전설로, 문헌상의 기록으로 보아 모티브는 예전부터 존재하였고 유포된 시기는 조선 중, 후기쯤으로 짐작된다. 분포 과정에서 변이가 이루어져 지역에 따라 구조와 내용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를 분석하면 유형과 유형의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두 유형은 내용적으로 차이가 있으나, 모두 '아기장수에 관한 이야기'로 인식되어 구연된다. 그러나 전승의 지속 지향성, 분포 범위, 개수로 보았을 때 본령은 유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유산 조사기- 창덕궁 조사기사진 출처 : 창덕궁 안내 가이드북에서 발췌차 례Ⅰ. 창덕궁을 찾아서 02Ⅱ. 창덕궁 조사 02Ⅲ. 맺음말 05Ⅳ. 참고문헌 061창덕궁 관람권Ⅰ. 창덕궁을 찾아서작년 가을학기, 교양 과목을 수강하면서 경복궁을 답사할 기회가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건물의 이름이나 수업시간에 배웠던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을에 방문했던 경복궁은 지금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넓고 탁 트인 공간에 커다란 정전이 있고, 아름다운 단청들과 굴뚝이 있었고 낙엽이 지는 정자와 경회루가 있었다. 흔히들 한국의 미, 한국의 미 하지만 역시 직접 방문해서 보고 느끼는 건 느낌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복궁 방문은 지금까지 고궁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내가 고궁 답사의 즐거움을 처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올해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작년 경복궁에 함께 갔던 학과 친구 두 명과 이번에는 창덕궁으로 발길을 향하기로 했다. 사실 다른 궁궐이 아닌 창덕궁을 고른 이유는, 창덕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라는 정보를 접하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 직접 찾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후원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원 관람 예약을 미리 해두려고 했는데, 궁궐 나들이를 하기 좋은 계절이라 그런지 예약 시기를 놓친 사이 예약이 꽉 차버렸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번에 인연이 닿지 못한 후원은 다음 방문을 기약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창덕궁 역시 경복궁과 비슷하게 서울의 한복판, 지하철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러나 경복궁이 역 출구에서 나오면 바로 웅장한 정문이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창덕궁은 평범한 도로와 상가와 평범한 회사 건물을 지나고 정문인 돈화문을 만날 수 있었다. 지하철이 없었던 옛날, 궁궐을 찾아오던 사람들은 이렇게 걸어서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관람권을 받아 돈화문으로 들어갔다.Ⅱ. 창덕궁 조사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은 1412년(태종 12)에 건립되었다. 문을 통해 들어가 별 생각 없이 뒤를 돌아보았더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2층 구조처럼 생긴 문은 여러 번 봤어도 계단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한 건 처음이라 인상에 남았다. 찾아보니 1413년(태종 13)에 돈화문 2층 문루에 무게 1만 5천근의 동종과 북을 걸어 시간을 알리게 했다고 한다. 통행금지 시간에는 종을 울리고 해제 시간에는 북을 쳤다.돈화문을 지나 금천교를 건너는 궁궐 마당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낙엽 지고 있었다. 이 느티나무가 언제부터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1830년경 그려진 창덕궁과 창경궁 조감도인 동궐도와 비교해보면 창덕궁 안에 지금도 남아있는 느티나무 고목들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궁궐의 건물들 역시 그 자리에 서서 역사를 지켜보았겠지만 나무라는 한 생물이 지켜본 역사는 어땠을까 생각하게 된다.금천교의 기둥에 돌로 조각한 해치가 있었다. 궁궐의 외전 영역엔 반드시 금천(禁川)이 있어 입궐하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흐르는 물에 씻어 바르게 하기를 바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옛 선조들이 조각한 해치는 선악을 가리며 나쁜 것을 쫓는다는 그 속뜻과는 다르게 보고 있으면 둥글둥글 친근한 면이 있어서 항상 보기 좋고 귀엽게 느껴진다. 경복궁의 금천교에서 금천을 빤히 내려다보던 해치와 같이, 한 곳에 서서 제 임무를 다하고 있는 창덕궁의 해치 역시 늠름하고 귀여웠다.창덕궁에 처음 와보고 가장 놀랐던 것은, 궁궐의 건물들이 경복궁처럼 직각으로 크게 크게 연결되어 있지 않고 오밀조밀 모여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관람하는 동안 어떤 순서로 이동해야 할지, 여기는 어디인지 계속 헤매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실수를 했는데, 단체관람객 무리에 섞여 걸어 들어가다가 궐내각사를 보지 못하고 바로 인정전으로 가버렸다. 사전 조사를 할 때도 궐내각사에 대한 안내는 자세히 보지 않아서 그만 놓치고 말았다. 다음에는 조사 전에 꼭 경로를 계획하고 참고 서적을 준비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창덕궁 인정전. 용마루의 꽃문양이 보인다.인정전은 경복궁 근정전보다 규모가 작아 보였고 같은 정전이지만 다른 인상이 있었다. 무엇보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내부의 노란 천을 씌운 샹들리에가 눈에 띄었다. 창덕궁은 대한제국, 일제강점기의 근현대사를 겪으며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는데, 그중 가장 크게 훼손된 부분이 인정전을 에워싸고 있는 영역이라고 한다. 인정전은 그 내부 바닥이 서양식 쪽널마루로 바뀌고 일본풍의 샹들리에가 달려 있으며, 용마루에 구리로 만든 오얏꽃 문양이 박혀 있다. 용마루의 꽃문양 다섯 개는 자세히 보진 못했는데, 이 문양은 대한제국의 상징 문장으로 이화(오얏꽃)문장이라고 부른다.주위 회랑과 마당 바닥은 최근에 복원한 것이긴 하나, 인정전의 외형 자체는 대체로 법전으로서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회랑의 바깥 서, 남, 동쪽 일대에 남아 있는 옛 건물은 선원전, 어차고, 선정전 세 채뿐이다.인정전 내부를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자 경복궁 근정전 앞의 인파처럼 인정전 역시 인파가 북적였다. 그러나 안타까웠던 것은 주변에서 들리는 말소리가 전부 우리말이 아닌 일본어였다는 것이다. 경복궁에서는 수없이 많은 중국인들을 만났는데, 창덕궁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모양이었다. 함께 입장했던 현장학습 온 우리나라 학생 무리는 무관심하게 어딘가로 사라진 듯했고, 해설사의 해설을 열심히 듣고 있는 것은 전부 일본인들이었다. 타국에까지 찾아와서 문화재를 진지하게 관람하는 것은 정말 보기 좋았으나, 정작 한국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는 것에 씁쓸함을 느꼈다.인정전을 나서 선정전으로 향했다. 선정전은 왕이 업무를 보던 편전이다. 선정전은 현재 조선 시대 궁궐의 전각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청기와 건물이다. 선정전에서 희정당으로 가는 길 천장의 단청에서 금색 오얏꽃 장식을 찾을 수 있었다. 이것 역시 인정전 용마루의 이화문장과 같은 맥락으로 장식된 것이 아닐까 한다.선정전 동쪽 희정당은 건립 당시에는 침전이었으나, 원래의 편전인 선정전이 비좁고 종종 국장을 위한 혼전으로 쓰이면서, 침전이었던 희정당이 편전의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 중수 과정에서 덧붙은 서양식 현관 구조 때문에 내부를 보려면 대조전 쪽으로 가서 뒤편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1917년 화재로 소실된 희정당을 1920년 경복궁의 강녕전을 헐어 중수하면서 서양식 요소가 도입된 새로운 전각으로 재건하게 되었다.서양 문물은 기술, 재료, 생활양식 부분에서 건축적으로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희정당에서는 기술의 도입에 따라 전기, 위생, 난방 설비가 실내에 들어섰고, 유리, 철물 등의 새로운 재료는 창과 문의 변화를 보여주었으며, 서양식 의자 및 탁자, 카펫 등은 생활양식의 변화를 이끌었다. 창덕궁에서 유리창, 전등 등 서양식 요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이국적, 서양적으로 느꼈던 것은 희정당이었다. 나무로 된 창살은 그대로 있으나 유리가 붙어 있었고, 내부는 붉은색 카펫과 금색 안락의자로 장식되고 전등은 현대에도 있을 법한 둥근 전등이었다. 경복궁에서 보았던 건물들과 비교하면 천지차이였다. 외래문물의 도입은 당시 사회상을 보면 당연한 흐름이었고, 이러한 모습도 나름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있지만 더 이상 본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왕비의 침전인 대조전 역시 아픔을 겪은 건물이다. 이곳의 홍복헌에서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를 결정하였다. 1917년에 선정전 동쪽 희정당과 대조전 내전일곽이 불타자, 조선총독부는 1920년 경복궁의 내전 건물인 교태전, 강녕전, 동행각, 서행각, 연길당, 경성전, 연생전, 인지당, 흠경각, 함원전, 만정전, 홍복전 등을 헐어다가 불탄 내전을 복구하였다. 대조전 권역은 중건되면서 전각의 구조, 회랑의 배치, 내외의 장식, 통품, 채광, 보온에 이르기까지 많은 경비를 투입하여 현대적 설비를 갖추게 되었다. 건물을 복구하면서 함원전에는 서양식 욕실이 설치되고, 경훈각에는 좌식 화장실이 설치되었다. 내부 장식도 서양식 침대와 테이블 등이 놓였다. 이곳은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이 승하한 곳이기도 하다.다음으로 성정각 일원으로 향했다. 성정각은 세자가 생활하던 동궁에 속한 전각이다. 이곳에서 세자가 공부했다고 하는데, 과연 높이 올라간 전각이 탁 트여 학문을 하기에 딱 좋은 장소로 보였다. 본래 왕세자가 거처하던 중화당은 소실되고, 서고와 도서실 역할을 하던 삼삼와와 승화루 등이 남아있는 모습이라고 한다.낙선재. 안쪽으로 만월창이 보인다.마지막 행선지인 낙선재는 창덕궁과 종묘, 창경궁에 경계가 없던 때에 본래 창경궁 영역에 속하던 곳이라고 한다. 헌종 13년(1847년)에 왕의 사적인 공간으로 지어졌다. 지금까지 보았던 궁궐의 모습과는 다르게 단청을 올리지 않은 마치 보통 양반집을 보는듯한 소박함이 단아했다. 선진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헌종의 기호에 따라 창살을 청나라식 다양한 문양으로 아름답게 장식하였고, 둥근 만월창으로 소박하지만 절대 심심하지 않은 세련된 집이 완성되었다. 만월창은 궁궐에서도, 일반 집에서도 처음 보는 요소였는데 한옥에 독특한 미가 더해지는 느낌이었다. 과연 창틀을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해진다.
시대 속의 사랑과 진실의 문제- 영화 를 보고영화 (2008, 원제 : The Reader)는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원제 : Der Vorleser)를 원작으로 한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이다.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는 1995년 10월 9일에 출간된 이후로 32주 동안 슈피겔 Spiegel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그 후에도 스테디셀러로서 꾸준한 사랑을 받아 40여 개 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독일어권 소설 최초로 1999년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면서 미국에서 홀로코스트에 관한 가장 중요한 독일문학작품으로서 자리 잡는다. 슐링크는 이 책으로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김나지움의 교재로 사용됨으로써 작품의 가치도 인정받았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국제적인 성공에 힘입어 영국 감독 스티븐 달드리에 의해 2008년에 영화화된다.원작 소설을 접해보지 않아 영화와 비교하며 분석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나, 영화는 소설의 전개를 따라가되 남녀주인공의 사랑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15세 소년 마이클은 길거리에서 심한 구토를 일으키고, 우연히 지나가던 한나의 도움을 받는다. 마이클은 몸이 나은 후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한나의 집을 찾아간다. 그녀는 마이클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연상의 여인이었다. 마이클은 그녀에게 반하고 결국 그녀와 관계를 맺게 된다. 둘은 연인 사이가 되어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사랑을 나눈다. 한나는 마이클이 책을 소리 내 읽어 주는 것을 좋아한다. 마이클은 그녀를 위해 매일 책을 준비해 읽어준다. 그러던 중 전차검표원으로 일하던 한나가 사무직으로 승진하게 되고, 그녀는 아무런 메시지도,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마이클의 앞에서 사라진다.시간이 흘러 법대생이 된 마이클은 한나와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참관하게 된 법정에서 피고인석에 선 한나를 보게 된다. 그녀는 나치 집권 동안 나치 친위대에 가입하여 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며 처형될 수감자들을 골라내는 일을 했다. 다른 경비원들의 모함으로 그녀가 유대인 살인죄를 홀로 뒤집어쓸 처지가 되자, 마이클은 그녀의 누명을 벗길 결정적인 증거 - 그녀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알릴 것인지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지 않는다. 한나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복역한다.다시 시간이 흘러,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마이클은 그녀를 위해 책을 읽는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보낸다. 한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글을 공부하게 되고, 가석방을 앞두고 이미 훌쩍 나이 들어버린 마이클과 재회한다. 마이클은 그녀를 위해 집과 일자리를 준비했다고 말하지만 한나는 석방 전날 자살을 선택한다. 그녀는 마이클에게 자신의 작은 전 재산을 수용소 생존자에게 전해달라는 유서를 남긴다. 마이클이 생존자를 찾아 미국으로 가지만, 생존자는 그것을 거부하고 재산은 문맹 퇴치 단체에 기부하는 것으로 정한다.1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녀주인공의 사랑을 그리는 영화 초반은 보통의 로맨스 영화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사랑에 빠진 마이클은 스무 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는 그녀에게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라는 세간의 시선을 드러내는 장면이 바로 여행지에서의 식당 장면이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는 마이클에게 식당 주인은 굳이 ‘엄마가 맛있게 드셨는지 몰라’라는 말을 건넨다. 이 말을 들은 마이클에게 순간 스쳐 지나가는 씁쓸한 표정은 그들의 사랑을 달콤한 환상에서 순간적으로 현실로 끌어오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것이 이어지는 교회 장면에서의 한나이다. 그녀는 성가대의 노래를 들으며 더없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앉아있다.한나는 입체적이고 특수한 인물이다. 첫 만남에서 마이클을 연상의 여인다운 모습으로 보살피던 그녀는, 교제가 이어지면서 어린 연인에게 화를 내는 날 선 일면을 보이기도 하고 문맹임이 밝혀진 뒤에는 이미 멀어진 옛 연인에게 의존하여 살아가는 어린아이 같은 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녀는 자존심이 굉장히 강한 인물로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어떤 상황이라도 밝히려 하지 않는다. 한나와 마이클의 관계는 처음엔 육체 관계를 주로 하였으나, 그녀가 마이클에게 책을 읽어주기를 부탁하면서 관계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그녀는 책을 읽는 순서를 육체 관계 이전으로 당길 정도로 마이클의 낭독 행위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연인에게도 끝내 자신의 진실을 고백하지 않는 것이 한나의 자존심이다.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녀의 사랑은 다른 소설과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이 영화의 새로운 점은 한 쌍의 연인이 헤어진 후 그들의 인연을 전범재판소에서 다시 이어지게 했다는 점이다. 원작 소설의 저자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1999년 2월 의 인터뷰에서 마이클과 한나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그리고 싶었던 것은 두 사람의 나이 차가 아닌 전쟁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 간의 관계와 세대 차이였다고 설명한다. 영화 초반에 시간적 배경이 제시되었으나 사회상에 대한 다른 언급이 없어서 처음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암울했던 나치 시기를 지나, 법대생이 된 마이클과 전범으로 재판정에 오른 처지가 된 한나를 보고 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단순한 운명적 사랑이 아님을 이해하게 되었다.어렸을 때 읽은 ‘안네의 일기’나 지금까지 세계사 시간에 공부했던 나치의 만행, 유대인 탄압의 역사 등은 항상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가해자의 입장을 보게 된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다. 그 가해자가 철저한 나치즘의 나치 간부도, 세뇌된 인종주의자도 아닌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인 순진무구한 한나 슈미츠이며, 그녀가 교육을 받지 못한 문맹, 즉 사회적 약자라는 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나 무작정 그녀의 불쌍함과 순진함을 강조해서 그녀 역시도 한 명의 피해자로 만듦으로써 자기변명을 하거나 동정을 얻는 것이 아닌, ‘그녀가 아무것도 몰랐다고 해서 죄가 씻기고 가해자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이 영화의 완성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