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소프트웨어 개발방법론< 1. 소프트웨어 개발방법론 >소프트웨어 생명주기 모델 개념시스템의 요구분석~유지보수까지 공정을 체계화한 절차소프트웨어 생명주기 모델 프로세스1. 요구사항 분석- 기능, 비기능 요구사항2. 설계- 시스템 구조, 프로그램, UI 설계3. 구현- UI, 자료구조 개발, 오류처리4. 테스트- 단위 테스트, 통합 테스트,시스템 테스트, 인수 테스트5. 유지보수소프트웨어 생명주기 모델 종류폭포수각 단계를 확실히 마무리 지은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감프로토타이핑요구 주요 기능을 프로토타입으로 구현하여 고객의 피드백을 반영나선형 점진적으로 개발, 변경에 유연반복적구축 대상을 나눠 병렬적으로 개발 후 통합하거나, 반복적으로 개발소프트웨어 생명주기 모델 간 비교특징 장점 단점폭포수 순차적 접근이해용이,관리편리요구사항변경어려움프로토타이핑프로토타입개발요구분석 용이,타당성 검증 가능비용↑나선형위험분석,반복 개발위험성 감소,변경에 유연관리어려움반복적증분방식,병행개발병행개발로 일정단축 가능비용 ↑소프트웨어 개발방법론구조적전체 시스템을 기능에 따라 나눠 개발하고 이를 통합하는 분할/정복 방법론정보공학정보시스템 개발에 필요한 관리 절차와 작업 기법을 체계화한 방법론객체지향‘객체’ 기본 단위로 시스템을 분석/설계하는 방법론컴포넌트 기반소프트웨어 구성 컴포넌트 조립해서 하나의 새로운 프로그램 작성하는 방법론애자일절차보다 사람 중심, 변화에 유연하고 신속하게 적응 가능한 경량 개발 방법론제품계열특정 제품에 적용하고 싶은 공통된 기능을 정의해서 개발하는 방법론애자일 방법론- 개발 기간이 짧고 신속- 즉시 피드백을 받아 유동적 개발 가능XP의사소통 개선과 즉각적 피드백,‘고객참여 – 개발’ 반복Scrum매일 정해진 시간, 장소에서
명이대방록황종희(黃宗羲)가 추구한 이상적인 국가상에 대해 비평201502826사학과 임지수황종희가 추구한 이상적인 국가상은 전체적으로 민주주의 및 계몽주의에 바탕을 둔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당시 지배적 이였던 봉건적 제도와 거리를 두고 있으며, 그가 저술한 명이대방록의 첫 장, 군주론에 대한 글에서부터 알 수 있다. 군주론에 대하여 논하면서 황종희는 당대 중국의 전제군주제도에 반대한다. 그는 요 순과 같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백성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하는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사람을 이상적 군주로 명하며, 군주는 천하에 해를 입히는 자 일 뿐이라 주장하기 이른다. 분명 전제군주제도에 반하는 그의 주장은, 민주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긍정적 반응을 얻을 것이며 나또한 일부 그의 의견을 지지한다. 군주, 즉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개인의 이익보다 백성과 국민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해야 된다는 말은 옳다. 그러나 군주가 단지 천하 혹 나라에 해를 입히는 자라는 주장은 성급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당시 군주가 민주주의적 방식을 통해 그 지위에 오른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신념이 있었고 원하는 이상국가가 있었으며 큰 계몽을 꾀한 것은 아니어도, 나라 발전에 최소한의 기여는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하지만 봉건 전제군주제의 여파로 군주와 국가가 동일하게 인식될 때, 그 둘을 명확히 구분하기를 주장한 그의 민주적 인식과, 군주와 신화 모두 백성들의 공적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군신평등사상은 분명 당시 혁신적이면서 계몽적인 사상이었으며 이는 높게 인정받아 마땅하다.백성을 위한 그의 사상은 단순히 군주론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의 계몽적인 사상은 교육 사상에서 크게 나타나며 특히, 교육제도와 인재 등용에서 뚜렷이 알 수 있다. 황종희는 봉건주의 제도하의 불균등한 교육권을 반대하고 전국에 교사를 두어 국민 모두가 교육받아야 한다는 오늘날 국민의 권리, ‘교육받을 권리’에 해당하는 주장을 하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정된 권리 중 하나인 만큼, 이 사상은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당대 사회 현실에서 이러한 사상을 펼친 그에 감탄할 뿐이다. 심지어 그는 오늘날 교육 현실이 나아가지 못한 부분까지 주장해 보인다. 학교가 인재 양성의 공간이 아닌 공론화 되고, 독립된 여론기관의 공간이 되어야 하며 옳고 그름이 학교를 통하여 결정되기를 주장한다. 또한, 인재 선발에 대하여 하나의 기준이 아닌 다양한 선발 기준을 재창하며, 보다 폭넓고 다양한 인재의 둥용을 가능케 한다. 위와 같은 그의 교육 사상은 보다 많은 이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이러한 기회들을 통하여 등용한 인재들로 나라의 발전 또한 꾀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사상이다. 실제 그의 주장들은 현재 우리나라의 제도와 유사하다. 모두가 교육 받을 권리를 갖는 것, 대학 입시에 학생부전형, 정시 등 기준이 다양한 것처럼 인재 등용에 여러 기준을 둔 것 등. 이처럼 그의 교육 사상이 실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민주적이며 이상적이라 볼 수 있다. 단지 한 가지 말하자면, 학교가 공론화되고, 옳고 그름이 학교를 통하여 결정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 학교는 학문을 위한 곳일 뿐, 나라의 중대사를 결정하기에는 학생들이 아직 미숙하다고 본다. 또한, 그의 주장이 현실화 되면 학생들은 그들의 스승 혹 선생님의 가치관을 따라 옳고 그름을 결정하여, 개개인의 정체성 확립에 도움을 주지 못 할 것 이라 본다.황종희의 경제 사상 역시 당대 보편적이던 사상과 많이 달랐다. 당시 농업을 추대하던 것 과 달리 그는 상업과 공업을 근본적으로 여기면서 중시하였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그의 사상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농업이 근본이 되어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살면서 국가가 형성되었고, 국가의 구성원들을 먹여 살리는 근본 또한 농업이며, 어떻게 보면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원천이 경작, 즉 농업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황종희의 사상이 단순히 공업과 상업을 중시하자는 것에 멈춘 것은 아니다. 그는 당대 조세 제도가 백성이 아닌 나라의 재정을 중심으로 부과되기에 문제가 된다고 보며, 조세 제도에 대하여도 백성을 위하는 뜻을 펼쳤다. 또한 화폐 제도에 대하여 금과 은을 사용하던 것을 지적한다. 이 방식이 일정한 기준이 없으며 금 혹은 은이 없는 경우 문제가 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지폐를 발행하여 편리함과 시장 경제의 활성화를 달성시켰다. 그의 이러한 경제 사상은 정치사상과 교육사상에 비하면 대단하지는 않지만 계몽적이었다고 본다.
201502826 임지수논어 中 술이(述而) 10子謂顔淵曰 : 用之則行, 舍之則藏, 惟我與爾有是夫.子路曰 : 子行三軍, 則誰與?子曰 :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臨事而懼, 好謀而成者也.공자께서 안연에게 말씀하셨다. “써 주면 일을 하고, 버리면 숨어 지내는 것은, 오직 나와 너만이 그럴 뜻이 있을 거다.”자로가 여쭈었다. “선생님께서 대군을 지휘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맨주먹으로 범을 잡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면서 죽어도 뉘우침이 없는 자라면 함께 하지 않겠다. 반드시 일을 앞에 두고는 두려워하며, 잘 계획하여 일을 성취시키는 사람이어야만 하겠다.출처-김학주 역주/논어/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써주면 일을 하고, 버리면 숨어 지낸다는 공자님의 말에 대하여 나 또한 속세 혹은 권력에 미련 없이 그러하겠다는 뜻을 가져서 인상 깊다고 느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러지 못 할 것 같아서, 써주지 않는다면 나도 훌륭한 인재이니 써주기를 원한다고 말을 할 것 같아서 이러한 말을 한 공자님께 존경심이 일었다. 어찌 보면 이 구절이 나의 삶뿐만 아니라 현대 청년의 삶과도 밀접하다고 본다. 실업률이 문제가 되는 현대 사회에서 어느 누가 저러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학교 선배들만 보더라도 쓰임받기 위해 즉, 취업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공자님의 말씀에 따라 난 쓰임 받지 못하고 버려졌으니 숨어 지내겠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공자님의 말씀을 되 뇌이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쓰임을 받기 위하여 부탁하는 입장이 되지 말고, 누구나 쓰고 싶어 하는 인재가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술이 10 구절이 특히나 인상 깊었던 이유는 공자의 이 말씀 때문이었다. 공자님의 말씀에 나타나는 탐욕 없음에 감탄하여 다시 한 번 더 존경하게 되는 한편, 나 스스로도 생각하고 다짐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술이 10에 저술된 공자님의 다른 말씀에 대하여는 마치 나의 생각과도 같았기에 인상 깊었다. 일을 하는 데에 두려움이 없고,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 후회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을 하는데 두려움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그 일에 대하여 후에라도 경시하거나 가볍게 여길 것 이라 본다. 반면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하나하나 계획하는 사람은 일을 하는데 있어 두려움이 없는 사람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여 성취하려 할 것 이다. 후에 내가 직장생활을 할 때에 원하는 상사의 모습은 두려움 없이 일에 뛰어드는 사람이 아닌 약간의 두려움을 가진, 그러나 그만큼 자신의 노력과 철저한 계획을 통해 일을 성취시키려는 사람이다.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위험을 감수하며 자신은 물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까지 좋지 못한 결과를 안겨주는 사람은 지도자로 좋지 못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금 나의 모습은 두려움은 없으나 일을 하는데 앞서 계획을 하는, 두 인물상을 반씩 닮은 상태이다. 하지만 점점 새로운 상황에 놓이고, 다양한 일들을 접하면서 조금씩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만큼 내가 하고자하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파악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획하며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 이처럼 차츰 새로운 일에 직면하고 그 일을 해결해가는 능력을 익혀가는 나는 어떠한 사람의 모습으로 일을 마주할지 나름의 많은 생각을 해 보았고, 논어의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 고쳐야 할 부분을 깨닫기도 하였다. 새로운 일을 시작함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야기만 들어왔던 나에게 두려움을 가지라는 말이 색다르게 느껴졌지만 내용을 곱씹고 생각해 보니 약간의 두려움을 가져 일을 대함에 있어 가벼워하지 않는 것이 좋은 모습이라 깨달았다.
201502826 사학과 임지수 국립청주박물관 석남사목 차 국립청주박물관 위치 및 소개 전시 2. 안성 석남사 대웅전 영산전 마애여래입상 3. 마애불 의의 기원 및 전파 종류 시대별 특징국립청주박물관위치 및 소개 충북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 87故김수근 선생께서 1979 년 설계 1987 년 10 월 30 일 개관 대지면적 86,302 ㎡ 건축면적 10,704 ㎡ 위치 및 소개전시 전시동 청련관 청명관 문화 사랑채 야외 전시 선사문화실 고대문화실 고려문화실 조선문화실 *전시 전시동 청련관 청명관 문화 사랑채 야외 전시 *전시 전시동 청련관 청명관 문화 사랑채 야외 전시 *전시 전시동 청련관 청명관 문화 사랑채 야외 전시 *전시 전시동 청련관 청명관 문화 사랑채 야외 전시 * 통일신라 돌덧널 무덤 백제 제철 복원실안성 석남사위 치 경기 안성시 금광면 상촌새말길 3-120 베티성지 석남사 약 12 분영조 11 년 ( 1753) 화덕 중수 통일신라 문무왕 20 년 (680) 고승 석선 창건 고려 초기 혜거국사 중수 임진왜란 혜원선사 중수 국가적 지원 및 관 심 석남사 세조 2 년 석남사 승려 잡부역 면제 선조 13 년 동종 조성 숙종 대웅전 중창 영조 1 년 대웅전 중건 및 영산전 중수석남사 대웅전 영산전 돌층계 석탑금광루 정 면 3 칸 , 측면 2 칸의 2 층 누각 효심 천심 불심 언제나 이 마음 수행도 봉사도 나날이 즐거워 서운산 아래 금광루에서 부처님 광명 다시 빛내리 전면 후 면대웅전 사찰의 중심부에 위치 조선시대에 가장 유행한 주불전 대웅 = ‘ 마하바라 ’ = 석가모니 문화재 제 108 호 정면 3 칸 , 측면 3 칸 다포계 맞배지붕의 귀공포 형태대웅전 내부 중앙 석가삼존불 2 층 구조의 닫집 1978 년 옮겨왔으며 , 이때 석남사 법당칠중창기적 발견 * 닫집 궁전 안의 옥좌 또는 법당의 불당 위에 만들어 다는 집의 모형대웅전 ‘ 불신이 널리 시방세계에 두루하사 ’ ( 佛身 普遍十方中 불신보편십방중 ) ‘ 삼세의 모든 부처님 한결 같으시니 ’ ( 三世如來一切同 삼세여래일체동 ) ‘ 넓고 크신 원력 구름처럼 다함 없고 ’ ( 廣大願雲恒不盡 광대원운항부진 ) ‘ 망망한 깨달음의 바다 가늠하기 어렵다 ’ ( 汪洋覺海玅難窮 강해묘난궁 )영 산 전 석가모니 불상과 그 생애를 여덟 가지로 나누어 그린 그림을 모시는 불전의 명칭 나한을 모셔 나한전이라고 칭하기도 함 보물 제 823 호 앞면 3 칸 , 측면 2 칸 규모의 다포작 팔작지붕영 산 전 ' 부처님은 한없이 오랜 옛적에 이미 성불하셔서 ' ( 塵墨劫前早成佛 진묵겁전조성불 ) ' 중생을 구하러 이 세상에 오셨네 ' ( 爲度衆生現世間 위도중생현세간 ) , ' 삼계 가운데 큰 스승 되시네 ' ( 於三界中作導師 어삼계중작도사 ) ' 높고 큰 덕이 둥근 달처럼 세상에 가득하시어 ’ ( 巍巍德相月輪滿 외외덕상월륜만 ) 석탑 좌측 탑 우측 탑 향토유적 제 19 호마애여래입 상 1981 년 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 109 호로 지정 전체 높이 5.3 m 불상 높이 4.5 m 얕 은 돋을 새김으로 조각 제작 시기는 고려 전기 육계 신광 두광 = 광배 대좌 연화좌마애불마애불이란 ? * 마애 조각 절벽이나 거대란 바위 면에 선각이나 돋을새김 기법 등으로 어떤 주제나 내용을 형상으로 새긴 것 마애불은 불교상을 새긴 마애 조각을 일컬음 선사시대 암벽 조각의 전통 계승 부동산 조각으로 당해 지역의 작품임이 명백 조각의 손상이 적고 , 조각이 용의하여 보다 세밀한 표현 가능 * 마애불 의의마애불이란 ? * 기원 및 전파 인도 석굴 사원의 벽면에 새긴 불상 중국 산동 반도와 가까운 서산의 태안 반도 일대에 600 년 경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에 처음 조정됨마애불의 종류 오목새김 ( 음각 ) 돋을새김 ( 양각 ) 바위 면을 그대로 두고 깊이로 새김 불상 외형을 그대로 두고 바위 면을 제거함 낮은 돋을새김 ( 저부조 ) 점각기법 선각기법 높은 돋을새김 ( 고부조 )시대별 특징 삼국시대 신라 백제 고구려 중국 영향 강한 아름다움 표현 온화하고 부드러운 표정 및 세련된 조형성 = 단조롭고 감각적인 미 인도적 중국 불상 모방 부자연스러움이 특징인 중국 북위 양식 모방 화화 ( 華化 ) 양식 영향 세련되고 원만한 양식 중국 북위 양식 영향 추상조각 양식 동위 , 서위 영향 추상성 완화 및 이상주의적 북제 , 북위 영향 추상표현주의적 양식 수나라 , 당나라 영향 반사실 양식시대별 특징 통일신라 , 고려 , 조선 조 선 고 려 통일신 라 신라 계승 = 사실적이며 이상적 거대함 중국 당나라 영향 사실주의 양식 = 현실적 특징이 강한 세련 , 능숙 , 육감적 형태 추상표현주의 불교의 억압으로 후기 양식 계승 평판적 도시적 특징 목불상 多참고문헌 김광호 , 2013, 문화유산을 찾아서 , 혜성출판사 한국건축역사학회 , 2006, 한국건축 답사수첩 , 동녘 문명대 , 2014, 빛깔있는 책들 마애불 , 대원사 황현정 , 2012, 조선후기 안성지역 불사와 후원자 연구 , 한국 교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5, 한국의 고건축 제 17 호 , 국립문화재 연구소 국립청주 박물관 http://cheongju.museum.go.kr/www/index.do감사합니다 :){nameOfApplication=Show}
파시즘과 국가주의Ⅰ. 머리말파시즘이 대두하게 된 배경과 그 이데올로기의 특징, 영향에 대하여 서술하기 앞서, 파시즘의 어원과 그에 대한 여러 측면에서의 해석에 대하여 언급하고 넘어가겠다.파쇼(fascio), 집단이나 무리를 가리키는 어휘로 그 복수형, 파시(fasci)는 참전을 촉구하는 선동 부대를 일컬을 때 사용되었으며, 여기서 유래한 파시즘이라는 말은 1919년 3월 23일 무솔리니가 사회주의와의 투쟁을 선포하면서 처음 사용했다. 파시즘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아직 없으나, 1922~1945년의 무솔리니 정권의 이념과 체제 혹은 1919~1945년 사이의 권위주의적, 반민주주의, 반사회주의적인 극단적 민족주의 정치 이념이나 체제를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이러한 파시즘을 이해하기 위해 맑스주의자들이 처음 이론적 틀을 만들었으며, 이를 자본주의의 대리인으로 보았다. 심리적 해석 또한 등장하였다. 개인이 느끼는 사회심리적 혼란을 파시즘의 동력으로 본 오르테가 이 가세트(J.Ortega Y Gasset), 인간성이 성적 억압과 권위주의적인 가족 구조가 붕괴한 것에서 파시즘이 비롯하였다는 에이히 프롬(E.Fromm). 그 외에 냉전 초의 전체주의적 해석, 근대론의 경향을 반영한 해석 등 그 노력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Ⅱ. 파시즘의 흥기대공황을 통한 계급 갈등과 더불어 1차 세계대전은 파시즘이 출현하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사회 혼란 속 민족의 강한 단결을 촉구한 파시즘의 흥기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정치, 사회, 경제적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정치적 부분1차 대전 후 많은 나라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의회 민주주의가 정착하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렸으며, 특히 전란 속에서 이를 효율적으로 운영함과 동시에, 이를 통하여 경제공황을 극복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결국, 자유민주주의와 합리주의에 대한 실망감 속에서 의회 민주주의의 뿌리가 약한 나라에서는 의회가 거부당하고, 대신 즉각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한 독재를 선호하는 양상을 보였다.사회적 부분전쟁 후, 돌아온 군인들 그리고 지식인들을 포함한 많은 수가 전쟁과 경기 침체로 인한 일자리 감소 속에서 실업자가 되고, 젊은 세대는 지배 계급과 기성 세대의 무능함에 분노하는 등 이들은 자국의 패배 또는 공허한 승리에 환멸을 느끼게 되면서 기존 체제를 불신하게 되었다. 또한, 전후에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심하여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찾으며, 젊은 세대들이 파시즘 운동의 원동력이 된다.이탈리아의 상황을 예로 들자면, 프롤레타리아 혁명 가능성이 높은 상태로, 농민들은 토지 개혁을 요구하였고, 노동자들은 일상적으로 파업하였다. 좌파 사회당은 전투적이 되어가고 있었다.경제적 부분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자본주의는 급격한 사회 경제적 변화를 일으켰으며, 전쟁 직후부터 나타나 1929년 이후 첨예화되었다. 대량생산을 하는 대기업들의 등장으로 중소기업과 전통적인 수공업, 상업이 몰락하며 중산층과 하층 중산계급이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물가 폭등, 경제공황 등 이러한 경제적 위기는 심리적으로 이어져갔으며, 혼란 속 선동에 이끌리게 되었다.처음 파시즘은 대자본 권력을 약화시키는 한편, 사유재산을 부인하는 사회주의를 거부하려는, 즉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양면 전쟁의 성격을 지녔지만, 현실적 한계로 보수 세력과 동맹을 맺었다.이처럼 정치 체제의 불안정, 기존 정부의 부패와 무능 등 병리현상 만연, 사회적 집단 간의 충돌 격화 등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사회는 자율적 회복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대중들은 쉽게 선동되어 대중 조직화가 이루어 진다.Ⅲ. 파시즘의 기준 및 특징파시즘 하면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을 떠올리지만 그와 비슷한 것들이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영국의 파시스트 연맹은 일부 여성주의적인 평화주의적 태도를 보였고, 벨기에의 파시스트들은 의회주의를 통한 권력 장악을 추구하였으며, 라트비아의 천둥십자가단은 군사주의적인 반공산주의를 지향하는 태도를 보이는 등 그 이념과 행동은 크게 보면 비슷하나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른 양상을 띠었다. 이처럼 단순하게 하나의 모습으로 정의할 수 없기에 어떤 정권 혹은 어떤 정치적 파시스트라고 명명될 수 있는가라는 일정의 기준점을 규정하기도 한다. 또한 파시즘 체제의 일반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지도자의 원리전체주의적 일당 독재국가코퍼러티즘 체제테러리즘 체제지도자의 원리, 즉 지도자의 무제한적 권위와 추종자의 무조건적 복종을 요구하는 파시즘 체제는 독재 권력만을 위한 것이 아닌 사회의 모든 요소를 하나로 결집시키기 위함이다. 따라서 의회를 통함이 아닌, 지도자와 대중의 직접적 연결이 강조되며 선거가 아닌 임명을 통한다. 그리고 민주주의 체제의 무능과 혼란을 거부한 대중의 선택으로 전체주의, 개인과 모든 사회 집단을 하나로 통합하는 독재국가 체제가 이루어진다. 코퍼러티즘 체제는 계급 구조 및 투쟁이 없는 새로운 경제구조 창설을 목적으로 함을 말한다.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바와 같은 계급투쟁이 아닌 극복을 목표로 하며, 협력(corporation)에 기초한 체제를 구상한다. 마지막으로 테러리즘은 독재 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필연적 요소로 독일의 비밀경찰과 같은 폭력기구 없이 존립하기는 어려웠다.Ⅴ. 맺음말독일과 이탈리아에서의 나치즘 체제는 히틀러의 자살과 반파시스트에게 붙잡힌 무솔리니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물론 파시즘 체제가 이 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다른 파시스트 국가들에서의 영향은 제한적이었으며, 점차 전통적인 군사독재화가 되었다. 독일의 나치즘을 통하여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파시즘의 부정적인 측면, 독재체제에 의한 비인간적 행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부정적 측면만이 존재하였던 것은 아니다. 정치적 혼란과 계급적 분열 약화를 통한 사회 안정, 경제공황 극복, 전통 봉건적 사회관계 타파를 통한 보다 평등하고 근대적 사회 건설을 추구한 점도 있다.파시즘의 어원부터 그 영향까지 살펴보면서, 이는 개인을 비롯한 그 무엇보다도 국가를 우선시하고, 결속을 통한 힘을 강조한 사상임을 확인하며, 상당부분 국가주의와 통한다고 본다. 우선 국가주의는 국가를 가장 우선적인 조직체로 규정하고 국가 권력에 사회 생활의 전 영역에 걸친 광범위한 통제력을 부여하는 사상이다. 나치 정권을 예로 본다면, 국가주의의 정의 속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치 정권은 조직의 경제 안정과 침략 전쟁을 대비하여 경제를 통제하였다. 경제의 주 요소인, 노동자의 직업부터 파업, 기업 등 광범위한 통제가 이루어졌으며, 종교와 문화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극단적인 국가주의가 전쟁으로 이어짐과 같이 파시즘, 나치에 있어서도 전쟁은 불가피한 요소로 작용하였으며, 잘 알다시피 이들의 인종주의 이론은 극단적으로 작용하여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계급의 극복 및 반공산주의와 더불어 전체주의와 국가의 우위를 주장하는 이탈리아의 파시즘도 국가주의와 비슷한 맥락이지만, 단지 나치즘만큼 철저하지 못하였고, 대중에게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였으며, 나치즘과 달리 반유대주의적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참고 문헌이주영, 『서양문명의 역사』, 삼영사, 2008, p. 214~229강철구, 『서양 현대사의 흐름과 세계』, 용의 숲, 2012, p. 169~191진원숙, 『주니어를 위한 역사 이야기』, 야스미디어, 2005, p. 292~301이강룡, 『하룻밤에 읽는 서양사』, 페이퍼로드, 2014, p. 215~219남경태, 『종횡무진 서양사』, 그린비, 2009, p. 637~650빌헬름 라이히 (황선길 역), 『파시즘의 대중심리』, 그린비, 2006, p. 1~79마이틴 키친, 『파시즘』, 이론과 실천, 1989, p. 1~29, 122~134캐빈 패스모어 (강유원 역), 『파시즘』, 뿌리와이파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