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역사 - 중국이 주 활동지가 된 이유• 1910년, 일본의 무단 통치의 시작으로 억압이 강해졌다. • 만주나 연해주 지역은 지리적으로 험난하여 독립운동 활동을 숨기기에 적합 하였다. • 만주나 연해주 지역에 이미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 중국도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기에 만주에도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이 생겨서 쫓겨난 중국인들과 연합하여 독립 운동을 하기에 적합하였다.<중 략>신흥무관학교 역사•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6월 10일 이회영 일가가 중국 지린성[吉林省] 류허현 [柳河縣] 삼원보三源堡(현 삼원포三源浦)에 설립한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에 서 출발하였다.• 1912년 봄, 이회영 등은 퉁화현[通化縣] 합니하(哈泥河)에 정착지를 확보해 이 주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수많은 청년들이 찾아오면서 기존의 시설만으로 이들을 수용할 수 없게 되자 신흥학교는 1919년 5월 류허현[柳河縣] 고산자(孤山子) 로 본부를 옮기면서 신흥무관학교로 명칭을 바꾸었다.
목차1. D·I·Y 화장품1) D·I·Y 화장품의 정의2) 시판 화장품과 D·I·Y 천연 화장품의 비교3)“화학 제품은 못 믿겠어…….” 노케미족(No-Chemical族)의 등장4) D·I·Y 화장품의 인식2. D·I·Y 화장품 만들기 - 토너1) 준비물2) 재료선택3) 만드는 방법3. 느낀 점4. 출처1. D·I·Y 화장품1) D·I·Y 화장품의 정의D·I·Y란, Do it yourself의 준말로, “스스로 만들어라”라는 뜻이다. D·I·Y 화장품은 사용자가 식물성 성분들을 이용하여 직접 제조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색조 화장품보다는 피부를 건강하고 투명하게 하는 기초화장품에 초점을 두고 있다.2) 시판 화장품과 D·I·Y 천연 화장품의 비교D·I·Y 천연 화장품은 그 함유성분이 천연 그 자체로 사용 되는 것은 아니다. 피부에 자극이 될 수 있거나, 유해성의 논란이 있는 성분들을 제외하며, 피부효능이 있는 기능성 원료의 배합비율을 높여 피부에 더 좋은 화장품을 사용하자는 취지라고 볼 수 있다. D·I·Y 천연 화장품은 피부에 자극을 주는 성분을 배제하고, 최대한 식물성 성분에 가까운 것으로 레시피를 만든다. 사용감이나 감촉은 시판 화장품에 비해서 떨어질 수 있고 방부효과 역시 3개월 정도로 짧다. 하지만, 같은 원료를 사용하는 시판 화장품과 비교할 때 효능 원료의 함량이 높아 피부에 좋은 효과를 줄 수 있다.3) “화학 제품은 못 믿겠어…….” 노케미족(No-Chemical族)의 등장최근 드러난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 때문에 사람들의 충격이 컸다. 보건당국은 살균제가 유해하다고 이야기 했으며, 옥시는 이 실험을 반박하기 위해 서울대와 호서대 교수의 실험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하였다. 하지만, 이 실험보고서는 조작으로 밝혀졌다.◀5월 27일, 아리따움에 올라온 공지또한 5월 27일, 아리따움은 1+1 행사도 진행하며 인기가 좋았던 오일틴트에서 미생물 기준치 초과로 자진 회수를 한다고 밝혔다.◀6월 8일,더 페이스샵에올라온 공지이에 이어 6월 8일, 더 페이스 샵 또한, 트렌디네일즈 6품목에 유해물질 성분이 기준치를 초과했으며, 이에 대한 보상을 하겠다고 공지가 올라왔다.◀6월 9일, 트위터의 한 제보피부에 충분한 수분을 공급시키고, 얼굴에 난 트러블을 안정시키고자 해왔던 마스크 팩 또한 비위생적은 환경에서 만들어 지고 있다는 말이 있으니, 어쩌면 믿을 법 한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이런 여러 가지 사건이 터진 지금, 화학 성품이 들어간 제품을 믿지 못하는 노케미족(No-Chemical族)과 자신이 직접 만든 제품을 선호하는 상황은 당연한 것 같다.4) D·I·Y 화장품의 장단점2009년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D·I·Y 화장품을 사용한 사람들은 인공첨가물과 방부제가 첨가되지 않아 신선하고 자극이 없고, 개인의 피부 타입에 맞게 만들어져 효과 및 효능이 높은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뽑았다.전체 설문자의 57.6%가 짧은 제품 수명이 D·I·Y 화장품의 단점이라는 대답을 하였다. 또한 단점을 모르겠다고 답한 사람은 11.1%였다. D·I·Y 화장품은 일반시판제품과 달리 검사나 검열 과정이 없이 사용되므로 대중매체에서는 D·I·Y 화장품의 안정성에 대해 경고하기도 한다.D·I·Y 화장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짧은 제품 수명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인공색소, 방부제가 첨가되지 않아 안심이 되고, 개인의 피부 타입에 적합하게 만들어 피부고민의 개선이 가능하기 때문에 선호되고 있다.2. D·I·Y 화장품 만들기 ? 토너1) 준비물화장품을 담을 용기와 비커, 비커와 용기를 소독할 소독용 에탄올, 전자저울, 화장품의 수상층을 구성할 정제수, 피부를 보호해주는 피지와 비슷한 역할을 해 줄 보습제, 향을 결정 할 에션샬 오일, 수상성분과 유성성분을 잘 섞이게 해 줄 가용화제, 쉽게 상하는 것을 방지하는 방부제, 자신의 피부에 필요한 역할을 하도록 도와 줄 기능성 첨가물이다.구성수상층보습제에센샬오일가용화제방부제기능성첨가물비율90 ~ 95%3 ~ 5%0.5 ~ 1%보습제 + 에센샬 오일과 같은 양0.2%~0.5%수상층 제외한 것들 포함해서 10% 이내좋은 향이 나게 하는 에센샬 오일을 너무 많이 넣으면 피부의 트러블을 유발할 수 있고, 가용화제를 너무 많이 넣으면 끈적거리게 된다. 많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은 기능성 첨가물 또한, 너무 많이 들어가면 토너가 과포화 용액 상태가 되어 쉽게 변질 될 수 있다. 적당한 배합이 중요하다.2) 재료 설명? 워터류 (수성원료)정제수 - 특별한 효능은 없지만, 트러블 발생률이 가장 낮음.네롤리워터 ? 건조피부, 노화피부, 민감성 피부에 효과적. 피부 재생 효과. 피부 톤을 조절하고 주름관리에도 이용.라벤더 워터 - 모든 피부 타입에 잘 맞지만, 특히 습진, 건선, 염증성 피부에 효과적. 피부 진정 작용. 햇볕에 그을린 피부를 진정시켜주는 효과.로즈 워터 ? 모든 피부 타입에 잘 맞지만, 특히 민감성 피부, 노화 피부 등에 많이 사용. 수렴 효과. 피부 진정 작용. 지친 피부 활성화.로즈마리 워터 ? 수렴효과가 뛰어나 지성 피부에 많이 사용. 지친 피부를 활성화. 혈액순환 촉진에도 효과적.알로에베라 워터 ? 건성피부와 지성피부를 중화. 소독, 살균효과가 있어 염증성 피부, 트러블 피부에 효과적. 보습 작용.자스민 워터 ? 모든 피부에 잘 맞고, 트러블 진정작용이 뛰어남. 피부에 생기를 주어 노화 예방에 효과적.?보습제 (수성원료)글리세린 ? 가장 기본적인 보습제세라마이드 - 거칠어진 피부를 완화 장기적인 보습. 수분건조로 인한 주름생성방지. 아토피에 효과적.히아루론산 ? 보습 효과가 가장 좋음.알로에베라겔 - 건성피부와 지성피부를 중성화?에센샬 오일모든 피부: 캐모마일, 재스민, 제라늄, 로즈, 라벤더, 네롤리, 로즈마리, 레몬, 일랑일랑 등건성피부: 샌달우드, 로즈우드, 팔마로사 등지성피부: 바가못, 사이프러스, 라임, 만다린, 오렌지 등아토피 민감성 피부: 샌달우드, 로즈우드 등?가용화제알코올, 올리브리퀴드?방부제천연한방방부제, 나트로틱스, 자몽씨추출물 등?기타 기능성 첨가물녹차추출물 - 멜라닌 색소 침착방지, 보습상승병풀추출물 ? 피부 염증 치유마치추출물 - 항산화작용 및 피지조절작용상백피 - 멜라닌 생성억제, 색소침착개선나이아신아마이드 ? 피부 미백 성분티트리 ? 피부진정, 피지조절, 여드름 완화3) 만드는 방법스킨토너 100ml? 사용할 비이커와 화장품을 넣어 사용할 용기를 소독한다.? 비이커 두 개를 준비하여, 하나에는 워터류 90g과 보습제 3방울, 방부제 2g , 기능성 첨가물을 넣는다.? 다른 비이커에 에센샬 오일 6방울과 가용화제 10방울을 넣는다.? 소독한 용기에 ?을 담고, 그 다음에 ?를 담아 흔든다.주의사항 : 워터류를 제외한 재료가 10%가 넘지 않도록 한다. 10%를 넘어가면 과포화상태가 되어 쉽게 변질 될 수 있다. 천연 화장품의 유통기한은 길지 않으므로 금방 사용해야 한다. 특히 플로럴워터나 우린물을 사용하면 유통기한이 1달 정도로 짧아진다.
시작말동화는 아이들이 자신의 가치관이 정립되기도 전에 읽게 된다. 아이들이 동화를 읽으면서 동화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 동화는 아이들에게 여러 교훈을 주는 반면에, 좋지 않은 영향도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끼치고 있다.동화에 나오는 남성의 역할은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여성의 경우에는 순종적이거나 적극적인 모습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또한 순종적인 여성은 고난 끝에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지만, 적극적인 여성은 결국 벌은 받는다.모티브로 한 개구리 왕자에서의 교훈은 ‘약속을 잘 지키자.’이다. 하지만 공주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아버지의 명령으로 억지 선행을 베풀고, 또 그 대가로 왕자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자신의 의지가 아니지만,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하여 결국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이 동화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원작에서는 불친절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던 공주가 개구리를 벽에다가 집어던지자 개구리가 왕자로 변한다. 왕자는 불친절했던 공주에게 ‘마법을 풀리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마법을 풀어준 대가로 ‘청혼’을 한다.이처럼 여러 동화에서 소녀들이 한 선행의 대가와 인생 목표는 꼭 결혼인 것 같이 표현된다. 많은 동화의 결말을 보면 ‘둘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인 경우가 많다. 동화의 결말이 ‘취집’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 동화를 선택하게 되었다.동화를 읽는 아이들이 올바른 성 정체성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자신의 성격은 성이 결정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고유한 특징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동화를 각색하였다.소녀와 개구리옛날 어느 마을에 소녀와 소년이 살았어요.둘은 숲 속에서 공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신나게 놀고 있었어요.그러다가, 그만! 소녀가 소년에게 공을 세게 던져서 깊은 연못에 공을 빠뜨리고 말았어요!“내 공! 어떡하면 좋아! 흑흑”그 공은 소녀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주었던 공이었어요. 소녀는 아버지가 주었던 마지막 선물을 잃어버려서 몹시 슬펐답니다.소녀는 엉엉 울며, 공을 주우려고 연못 안을 들여다보았어요. 연못은 소녀와 소년의 키를 합친 것보다 열 배는 더 깊었지요.소년은 울고 있는 소녀 옆에서 발만 동동 굴렀어요.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소년 옆으로 개구리가 다가와서 말했어요.“내가 공을 가져다줄게, 대신 나를 먹여주고 재워줄 수 있겠니?”“그래. 좋아. 약속할게!”개구리는 연못 속에서 금세 공을 가지고 나왔어요.소년은 공을 받자마자 소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달려가려고 했어요!개구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려고 했답니다.소녀는 소년에게 소리쳤어요.“우리는 개구리와의 약속을 지켜야 해!”소년은 소녀에게 말했어요.“저런 조그마한 것과의 약속은 지킬 필요 없어. 우리 빨리 집에 가자. 뒤에 개구리에 쫓아오고 있어!”소녀는 소년에게 소리쳤어요.“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야!”소년은 화가 나서 소녀를 때리고 말했어요.“난 거짓말쟁이가 아니야!”소녀는 소년이 자신을 때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소년을 밀쳤어요.소년은 넘어지면서 다치고 말았답니다.“아야! 아파! 아파!”소녀는 소년이 다친걸 보고 놀라서 소년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어요.그리고 그 날 저녁. 소녀는 개구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계속 생각났어요.소녀는 고민을 하다가 그 날 밤. 숲속에 있는 연못으로 가기로 마음먹었어요.숲의 밤은 귀신이 나올 것처럼 으스스하고 어두웠지만, 소녀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어요.그리고 연못에 도착했더니, 개구리는 연못 옆에서 구슬프게 울고 있었어요.소녀는 개구리에게 말을 걸었어요.“개구리야. 개구리야. 오늘 낮에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미안해. 지금이라도 같이 갈래?”개구리는 소녀의 사과에 웃으면서 대답했어요.“정말 약속을 잘 지키는 아이구나! 난 지금 배가 너무 고프고 졸리단다. 빨리 집으로 가서 맛있는 것을 먹고 편안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싶구나.”소녀는 개구리를 데리고 집으로 갔어요. 집으로 가는 길은 어두웠지만, 개구리와 함께여서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답니다.소녀와 개구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빵을 먹었어요. 그리고 배가 부른 개구리는 식탁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어요.소녀는 개구리를 조심스럽게 안고 소녀의 방으로 데려갔어요.자신의 침대에 개구리를 올려놓고, 그 옆에 조심스럽게 누웠어요.그리고 달도 잠이 들 시간, 누군가 소녀를 깨웠어요.“아이야. 아이야.”소녀는 눈을 뜨고 보니 웬 조그마한 요정이 날갯짓을 하면서 소녀 주변에 날라 다녔어요.“아이야. 아이야. 나는 밤에 네가 데려왔던 개구리란다. 나는 원래 요정이었단다. 그런데 마법사의 저주를 받아 개구리가 되었어. 내가 너의 옳은 마음씨에 감동을 받아 다시 요정으로 돌아왔단다. 아이야. 아이야. 내가 소원을 하나 들어줄게. 혹시 소원이 있니?”소녀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어요. 소녀는 요정에게 소원을 말했어요.“아버지와 함께 살게 해 줘.”요정은 소녀의 소원을 들어주었어요.“푹 자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너의 아버지와 함께 아침을 먹을 수 있을 거야. 아이야. 아이야. 잘 자렴. 다음에 또 보자꾸나.”소녀는 꿈을 꾼 듯. 다시 잠에 빠졌어요.그리고 아침이 되었어요.“아이야. 이제 일어날 시간이란다. 오늘 아침은 맛있는 토스트와 계란이란다. 일어나렴.”소녀는 오랜만에 듣는 아버지에 목소리에 잠에서 깨었어요. 아버지는 소녀의 머리맡에서 소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었어요.소녀는 아버지를 꼭 끌어안았어요.“아버지 사랑해요!”아버지는 소녀의 등을 두드리면서 대답했어요.“나도 너를 사랑한단다.”소녀의 아버지가 돌아오고,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끝맺음동화를 쓰면서 어떤 것이 젠더 평등 관점에서 아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였다. 젠더 평등이 성차별은 물론 모든 것에 있어서의 평등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계급과 사람 사이의, 더 나아가 동물까지 존중 하는 것이 진정한 젠더 평등이라 생각하였다.여성은 항상 순종적인 것이 아름다우며, 적극적인 여성은 옳지 않다는 생각을 깨기 위해 노력하였다. 모든 행동에 있어서 주체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했다. 원작과 달리 개구리를 보살피는 것이 타인의 의지가 아닌 자의에 의해 하는 것으로 만들었다. 인생의 결정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1) 외할머니 이야기 (1943. 12. 29. ~ )외할머니는 1943년, 날이 추워 눈이 녹지도 않는 겨울, 둔포에서 2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나셨다. 과수원집 딸로 부족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국민 학교를 입학하시고 얼마 되지 않아 아들이 태어나자, 동생을 돌보라고 학교에 보내지 않으셨다고 한다.외할머니가 15살이 되던 해 외할아버지가 이름 모를 병으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시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셨다고 한다. 병원비를 대기 위해 과수원을 짓던 땅을 모두 팔아버리고, 가족들은 품을 팔러 다니기 시작하셨다. 외할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경기도 오산에서 짜장면 배달도 하고, 서울에서 주인집에 물을 떠다 주면서 식모살이를 하셨다. 서울에서 식모살이하면서 손에 동상도 걸리고 다치기도 많이 다쳐서 서울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두고 둔포로 다시 돌아오셨다.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외 증조할머니가 혼인 계를 타서 외할머니를 결혼시키기로 하셨다. 중매를 보았을 때, 외할아버지댁 마당에 쌀가마니가 가득 쌓여있었다고 한다. 중매인은 “이 집에서 추수한 쌀들이다.”라고 하며, 부잣집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쌀가마니 안에는 쌀은 없고 겨만 가득했다.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외 증조할머니는 그 말에 속아 외할머니를 결혼시키기로 하셨다. 19살 4월, 추적추적 비 오는 날 결혼식을 하셨다. 그날 오던 비는 힘든 결혼생활을 알리는 비였던 모양이다.외할머니는 결혼하고 힘든 생활을 하셨다. 먹을 것이 없어 이집 저집 장내 쌀을 빌려 먹기도 일쑤셨다. 빚을 갚아도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 지친 외할머니는 오빠가 있는 수원으로 갈 것을 외할아버지에게 권유하셨다. 수원에 가서 외할머니는 대한 수출이라는 장갑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셨으며, 외할아버지 또한 그 회사의 경비로 일하셨다. 회사 일만으로는 살기가 힘들어 회사에서 부업 일을 가지고 와서 집에서도 일을 계속하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이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이때 온 식구가 붙어서 부업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고 말씀하셨다.외할머니는 5남매를 낳으셨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자식들 학교 준비물조차 사주기 힘드셨다. 어머니는 준비물을 꼭 필요한 날 아침에 말해, 아침마다 돈을 꾸러 다니게 해서 곤란하게 만들었다. 속상한 마음에 자식을 혼내면서 준비물을 챙겨주고 일에 나가면 마음이 온종일 불편하셨다고 한다.외할머니가 첫째 딸은 결혼을 보내고, 막내아들만 제외하고 고등학교 졸업을 시키고, 곧 있으면 남편과 함께 편히 여생을 살겠지 하며 기대하고 계셨던 날, 설날을 맞아 일가친척이 다 모였다. 어머니의 숙모는 외할아버지의 배가 이상하게 불룩 튀어나왔다며 병원에 가보라고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연휴가 끝나고 병원에 가보셨고, 병원에서는 간 경화며,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진단을 받고 한 달 반쯤이 지나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슬픔에 빠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하실 때, 둘째 딸 혼자 결혼 준비를 하여 결혼하셨다고 한다. 자신이 너무 힘들어 도와준 것 하나 없었는데, 잘 커 줘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고 하셨다.(2) 어머니 이야기 (1970. 05. 22 ~ )어머니는 1970년 5월 22일에 3남 2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나셨다. 어머니는 어려운 생활에 국민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산에서 솔가지를 모아오거나, 부업을 도우셨다. 어머니는 국민 학교에 들어가서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강한 생활력을 보이셨다. 막내 외삼촌을 돌보면서 틈틈이 공부하여 월말고사마다 좋은 점수를 받으셨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상을 받아 때마다 500원씩 용돈을 주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 돈을 모아 졸업할 때 4만 원을 모으셨다고 한다.중학교 때부터는 국민 학교 때처럼 학교 공부만으로 따라잡기가 어려워지셨다고 한다. 시험에서는 수업시간에 배우지 않았던 내용이 나왔으며, 선생님들은 학원이나 다른 곳에서 배웠을 것으로 생각하고 진도를 빠르게 나갔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어머니는 대학을 못 갈 것은 뻔하니,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려고 하셨다. 하지만, 이모가 실업계 고등학교에 간다고 취직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니, 차라리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취직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셨다. 어머니는 이모의 충고에 따라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셨다.어머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있는 취업 반에 들어가려고 하셨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 전문대라도 가라고 하면서 취업 반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어머니는 종종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취업 반에 들어가서 졸업을 했으면 더 빨리 취직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야기하며 화를 내셨다. 원서비조차 없어 어머니는 대학 문턱도 밟지 못하셨고, 취직하게 되셨다.어머니가 23살이 되던 해 설 연휴가 지나고, 외할아버지가 편찮으시다는 걸 알게 되셨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아침에 출근할 때, 외할아버지의 눈빛이 평소와 다르다고 생각이 되고 출근을 하고서도 계속 외할아버지가 마음에 걸리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상사에게 조퇴를 시켜달라고 부탁을 했다. 상사가 조퇴 사유가 명확하지 않아 허락하지 않았지만, 고집을 부려 조퇴를 받아냈다. 집에 들어가서 할아버지 점심을 드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이때 일은 정신이 없어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으신다고 한다.얼마 지나지 않아, 연애 중이었던 아버지와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외할머니에게 허락을 받으러 가셨다. 외할머니는 충격으로 한동안 일상생활이 힘들었고, 집안의 소득원 중 하나인 어머니가 결혼한다고 하자, 외할머니는 어머니에게 돈 좀 더 벌어주고 가라고 농담을 하셨다.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반항심이 들어 이모부의 소개로 만난 아버지와 결혼을 강행하셨다.어머니는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두셨다고 하신다. 어머니는 아이를 낳을 때까지 일을 더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하시던 가구점의 전화가 집 전화에 연결되어있다며, 집에서 전화를 받거나, 다른 일들을 도와달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그 말에 직장을 그만두시게 되셨다.첫째 딸을 낳고, 둘째를 갖기 전에 아버지의 형제들이 하는 사업이 기술력은 있는데 영업을 잘하지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형제들을 돕기 위해, 잘되고 있는 가구점을 정리하셨다. 그러면서 집을 안산으로 이사했고, 곧이어 IMF가 터졌다.아이를 둘을 낳게 되자 한 집에서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지고 있던 돈에 빚을 조금 내서 살 수 있는 시흥으로 이사 가셨다. 이후 아버지의 사업이 잘 풀려 부천으로 이사를 와서 살게 되고, 아버지가 하시는 공장에 어머니가 경리로 들어가서 일을 하고 계신다. 두 딸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 타지로 보내 가끔 적적하기는 하지만, 지금 삶에 만족하며 산다고 말씀하신다.(3) 내 이야기(????. ??. ?? ~ )나는 ????년 ?월 ??일 2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고집을 많이 부려 나 때문에 억지로 어린이집에 보냈던 언니를 따라서 어린이집에 가겠다고 떼를 쓰거나, 언니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 나도 다니고 싶다며 조르거나, 이것저것 해보는 것을 좋아했다. 어머니는 내가 하고 싶다는 것을 하게 해주려고 했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조르거나 해서 들어주기 힘들었다고 하셨다.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컴퓨터가 신기해서 관심을 두게 되었고, 그 관심을 고등학교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특성화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여자보다 남자가 많은 환경을 처음 겪고, 생각보다 적성에 맞지 않아 공부를 포기하고 인문계 고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남녀 분반이었던 학교는 남자가 많았던 환경에서 여자만 있는 환경으로 변하면서 성별 구분 없이, 나의 역량을 보일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이제는 강력한 리더십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팔로워십으로 따뜻한 마음과 차가운 머리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며 살고 있다마무리과거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살아왔던 시대와 지금은 많은 부분이 변했다. 많은 변화가 있었던 부분은 연애, 결혼관이 아닐까 싶다. 외할머니에게 처음 외할아버지와 선을 본 날 어떤 기분이었는지 여쭈어보자 “그때, 무슨 얼굴을 보고 결혼을 해”하고 대답하셨다. 외할머니가 결혼하셨던 시대에는 얼굴도 보지 않고, 집안끼리 결혼하기로 했으면 결혼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모부를 통해 선을 보고, 연애하다가 마음이 맞아 결혼하기로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의무감이나 주변의 압박으로 결혼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일찍 결혼하셔서 그런 것일지는 모르지만, 결혼하고 싶으셔서 결혼한 것이라고 하셨다. 나는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았다. 결혼하는 것을 원치 않으면 하지 않아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게 될 것이며, 자유롭게 연애하다가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결혼보다 동거가 흔하게 되고, 지금처럼 동거하면 문란하다는 생각보다는 다양성을 인정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결혼 후의 직장에 다니는 것에 대한 생각도 변화하였다. 외할머니가 결혼하신 뒤에는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농사를 짓거나, 공장을 다니며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하였다. 어머니가 결혼하신 뒤에는 경제 발전을 했던 때로 직장이 있다면 홀벌이로도 충분히 먹고살 만한 시대였다. 어머니에게 직장을 그만둔 이유에 관해 물어보자 아버지는 겉으로는 자기 일을 도와달라고 말씀하셨다지만, “남자가 돈을 벌고 있는데도, 아내가 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자존심이 상해서가 아니었을까?”라고 하셨다. 아내가 돈을 벌고 있는 것이 ‘무능한 남편’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도 결혼하면 다 일을 그만두었는지 물어보자, 길게 일하는 사람도 임신하면 일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내가 결혼할 나이가 된다면 집이 가난해서도 누가 강요해서도 아닌, 자신의 성취를 위해 결혼을 하더라도 일을 그만두는 여성이 줄어들 것이다. 현재 법적으로는 남녀 모두에게 육아휴직이 보장되어있지만, 실제로는 많이 쓰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사회의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지 않더라도 여성의 육아휴직은 보장되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 싶다.
우리 아들과 딸이사랑에 눈뜨던 날-감상문-나는 평소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머리말은 찬찬히, 본 내용보다 자세히 살펴보는 편이다. 머리말을 읽으면 저자가 어떤 말을 전하고 싶기에 쓴 책인지 알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아들과 딸이 사랑에 눈뜨던 날’처럼 쓰인 책은 보지 못하였다. 타인, 그것도 자신의 아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이야기를 담은 책, 아들의 결혼을 기념하며 쓰인 책이라는 걸 읽고는 교수님의 아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말을 읽고 교수님에게서 낭만적인 삶의 향이 느껴졌다.책은 사랑의 시작에서부터 죽음까지의 과정을 천천히 서술하고 있다. 책의 이런 흐름은 아버지가 자식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며 그에 대한 도움이 될 법 한 이야기를 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인생에 있어 겪게 될 일들을 순서대로 보여주면서 내가 겪지 못한 상황들에 대해 찬찬히 따라가며 생각 할 수 있게 도움이 되었다. 또한 앞서 머리말에서 교수님이 작은 팁을 주고 싶으셨다는 마음처럼, 이 책은 책의 모양을 한, 인생의 나침반처럼 느껴졌다. 인생에 있어 도움이 될 만한 글을 모아 두었다.다른 책보다 눈에 띄었던 점, 다른 책보다 좋았던 점은 ‘도란도란’이었다. 다른 시집과 달리 교수님이 이 시에서 어떤 부분을 주목했으면 좋겠는지, 그런 부분을 이야기해주셔서 좋았다. 이런 부분은 둘째 치고, 아버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말투로 쓰여 있어서 좋았다. 책의 말투는 온화하게 설교하시는 아버지의 말투를 닮았다. 사랑이 가득 담겨있는 말투로 하는 글은 내용이 눈뿐만이 아닌, 가슴에 들어오게 했다.책의 머리말을 지나, 처음 독자를 맞이하는 시는 메블라나 잘라루딘 루미의 「화려한 봄날 과수원으로 오세요.」다. 시의 어조는 부드럽고 간절한 기색이 하나 없다. 하지만 이 책의 모든 시보다 간절한 느낌이다. “어떤 아름다운 것도 사랑하는 이가 없다면 부질없고,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또한, 사랑하는 이만 있다면, 그 하나로 가장 아름다워, 어떤 아름다운 더 기다리게 만들어주었다.다음 페이지에 있는 단테,「새로운 인생」은 처음 읽었을 때에는 가슴에 와 닿는 무언가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덮고 눈을 감고 있어도 어느 시에서 읽었을지 모르는 「‘이제부터 새 인생이 시작된다.’라고 적는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어디서 읽었을까, 생각을 해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잊고 있다가 「화려한 봄날 과수원으로 오세요.」를 읽고 다음 페이지를 넘겼더니 찾고 있던 그 구절이 눈에 보였다.굉장히 담담한 말투라 잊게 되지만, 이 구절에 다이어리에 남자친구와 첫 만난 날을 ‘새 인생 시작!’으로 적게 되었다. 다이어리에 표시를 할까, 말까, 한다면 어떻게 표시해야 될까 고민하던 날인데, 시 구절이 마음에 들어 다이어리에 표시한 첫 만난 날의 이름이 마음에 든다.용혜원,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은 하늘에서 내려준 짝을 발견하였을 때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꾸밈없는 모습으로도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운명을 만나는 상대에게 한눈에 반하는 과정을 노래한 시로 느껴졌다.다만, 「사랑하는 사람에게/장미꽃 한 다발 받은 것보다/더 행복했다」 구절은 동감 할 수 없었다. 운명을 만나고 그 상대가 운명인 것을 한눈에 아는 것도 크나 큰 행복이겠지만, 그런 이가 날 위해서, 날 기쁘게 해주기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데 그거보다 행복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지 않는 무언가라도, 날 기쁘게 해주기 위해 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떤 일보다도 더 행복한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였다.책을 읽으면서 사랑의 첫 느낌과 운명의 짝을 만난 것에 대한 기적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또한, 사랑에서의 다른 것보다 ‘사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엘리자베스 브라우닝,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고요?」는 요즈음, 연애를 할 때 물건을 사듯 상대방을 재고 또 재고, 자신의 물질적인 기준에 맞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며,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확인’하려는 태도가 많다.이런 연인들을 보다가 시를 읽고 사랑은 확인하 꿈은 항상 꾸는 것이 아니다. 꿈에 등장하는 사람 또한, 자신의 곁에 자주 있으면서 머릿속 한 구석에 항상 놓아두고 있는 사람이다.현실에서도 물론 꿈에서도 같이 있는 것이 당연한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은 혈연관계가 아닌 이상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결혼’으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왔던 둘이, 둘이 아닌 하나로 되어가는 과정은 얼마나 신비로운 일일까.운명의 짝을 찾기도 힘들지만, 그런 사람과 한 집에서 살고, 미래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생각하는 미래에 서로가 있는 것이 당연한 존재가 되어간다는 점. 시인처럼 ‘함께’라는 건, ‘함께’가 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또한 다른 페이지의 ‘도란도란’보다 더욱 따뜻한 느낌을 담은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행복했던 결혼 생활을 떠올리시며 시를 선택하시지 않았을까. 겪어보셨기에 그 행복감이나 기대감을 아시기에 미소 지으시며 이야기하시는 느낌이었다.카릴 재미슨의 ‘사랑은 손에 쥔 모래와 같다……’는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는 소유욕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닌, 여유로 서로를 믿고, 그렇다고 놓지는 않고 적당히 서로를 이해하며 존중하는 결혼에 대한 의미를 이야기했다. 다른 결혼에 대한 시에서 또한 서로에게 간격을 두며 서로를 존중하는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결혼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다른 결혼에서의 태도에 관한 시보다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지듯, 마음속에 와 닿았다.최석우, 「부부」에서는 결혼생활에 있어서 배우자의 능력에 대해 한탄하며, 친구의 배우자와 자신의 배우자를 가늠해보기도 하고, 갈라서는 것까지도 생각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서로를 친구의 배우자와 비교하며 물고 뜯어도, 아플 때 달려오는 배우자를 보며 정신없이 사랑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결혼하기 잘했지, 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나도 저렇게 될까 싶었다.다른 시를 읽을 때보다 팍 와 닿았던 부분은 ‘시든 꽃 한 송이/굳은 케이크 한 조각에 대한 추억이 있었기에/첫 아이 낳던 날 함께 흘리던 눈물이 있었기에/ 부모 상(喪) 같이 치르고/무덤 속에서도 같이 눕자고 말하는 시였다. 요즘엔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여 된사람보다는 난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들이 많다. 나는 자신의 생각을 주입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길로 가게 만드는 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내가 어떤 부모가 될지는 모르겠다만, 이 시처럼 또 다른 내 자신을 만들려고 하지 않아야겠다. 아이들이 또 다른 나가 아닌 새로운 하나가 되게 키우면 그 재미 또한 있을 거라 생각했다.웬델 필립스,「나이를 먹는다는 것」에서 인생을 포도주에 비교했다. 포도주는 처음 만들 때 수확된 포도의 질도 중요하지만, 포도주는 숙성하는데 있어 습도가 너무 높으면 곰팡이가 생겨 포도주의 맛을 변하게 하며, 습도가 지나치게 낮으면 공기가 포도주 병속으로 들어가서 포도주를 산화시킬 수 있다.시에서는 나이를 포도주에 가볍게 비교했지만, 시인은 어쩌면 포도주를 나이에 비교하며 삶에 있어서 중용의 자세를 지키라는 당부를 하고 싶던 것이 아닐까? 잘 익은 포도주를 위해 적당한 습도와 온도를 지키는 것처럼, 적당한 정도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인생만큼 멋있는 인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보통 책을 한 번 읽고서는 그 내용의 한 부분이 갑자기 떠오르고, 너무 궁금하지 않고서야 다시 읽는 일이 흔치 않다. 하지만, 이 책은 잊지 않고도, 미래에 대한 고민이 생기면, 마음을 다잡기 위해 다시 읽을 거 같다. 눈에 가장 띄는 책꽂이에 꽂아 두고 계속해서 읽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내용을 외울 때까지 읽지 않을까. 과제를 위해 읽기 시작한 책이 ‘어린왕자’나 ‘모모’를 만났을 때처럼 읽으면서 기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책의 읽는 내내 따뜻한 아버지의 품에서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다.올해 대학을 입학 한 지 1년도 안 된, 인생을 산지는 20년도 안된 내가 감히 올바른 인생관에 대해 논할 수 있을까. 부족한 이 글을 읽으실 교수님이 보시고는 옳지 않다고 생각 하실 수 있겠지만, 그래도 용기 내어 길었다면 길고, 짧았다면 짧은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의 인생관에 대해 이야다.상상과는 다른 점이 있어 실망도 했지만, 처음 말했던 것처럼 무엇을 꼭 하고 와야지 하는 생각이 없었다. 그랬기에 멀리까지 왔어도 춘천 닭갈비를 먹었으니 만족했고, 사진에 관심이 많은 친구인데, 그 근처에서 우연히 아마추어 사진전이 열어 구경을 하고, 친구는 마음에 들어 했다. 어떤 목적을 둔 여행이 아닌, 그냥 멀리 떠나보고 싶고, 친구와 추억을 쌓으려던 생각이었기에 큰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추억으로 친구를 만날 때마다 이야기를 하곤 한다.반대로 썩 만족하지 못했던 소풍은 여름에 ‘경복궁’을 갔던 것이다. 우리 집에서 한 시간이 넘는 거리라서 한 번 갈 때 다 보고 오자는 느낌으로 출발을 했다. 하지만 여름이었기에 더웠고, 내 체력은 내 의욕을 따라 와 주질 못했다. 거기다가 경회루 2층에 올라가보겠다고 예약을 하려 했으나, 예약이 가득 차서, 예약이 되는 시간은 오전밖에 없었다. 날짜를 잡고 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니 경회루도 예약을 했다. 계획은 다른 사람이 간다고 하면 계획표를 줘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짰다.하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완벽한 코스를 짜기에는 무리였다. 하필 경회루 관람 시간과 수문장 교대 의식의 시간이 겹쳐 버린 것이다. 보고 싶던 것을 다 보지 못하고 결국 집에 왔다. 갔다 온 뒤에는 많은 거리를 걸은 탓인지 다리가 아팠고, 후회가 남았다. 완벽하게 갔다 오겠다는 욕심 때문이었다.두 소풍을 비교했다시피 좋았던 소풍은 계획 없이, 어떤 욕심 없이 갔다 왔던 소풍이 가장 좋았고, 좋지 못했던 소풍은 계획을 잔뜩 세웠지만, 그에 따른 소득은 별로 없고 피곤함만 남았던 소풍이다. 인생 또한, 별 욕심을 갖고 살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거기다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것은 힘들다. 오래 산 노인 분들도 잘 모르는 것이 인생인데, 어떻게 완벽한 삶을 살 수 있을까.“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Art is long, life is short.)”라는 말처럼 인생이 길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과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