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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삼 대통령의 이미지회복전략
    IMF사태는 97년 11월 21일 밤 재정경제원에서의 비상회의 긴급 소집을 시작으로 다음날 아침 김영삼 대통령에게 IMF행 보고서를 제출한 후 임창렬 당시 경제 부총리가 정부종합청사에서 전국에 TV생중계를 통해 “정부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습니다.”라고 발표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밝혀진 바로는 열흘 전 미리 그 사실을 알고도 실질적 발표는 21일에 이루어졌다. 이에 대해 각 언론이 사태의 원인 및 심각성에 대한 기사를 급증적으로 다루고 국민들의 혼란 또한 가중되었으나 27일까지 김영삼 대통령은 어떠한 직접적인 발언도 하지 않았고 27일이 되어서야 “국정최고책임자로서 책임을 느낀다. 금융외환시장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 IMF자금 활용을 검토하고 있으니 적극 협조해달라.”고 발표함으로써 국가책임자로서 김영상 대통령의 IMF관련발언이 비로소 시작되었다.IMF 상황을 거치면서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특히 김영삼 대통령의 언변과 관련하여 많은 언론의 보도가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김영삼 대통령이 구사한 이미지회복 전략이 과연 적절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위기의 진행과정에 따라 세 단계로 나누어 분석했다.1. IMF 구제 금융시기 (97년 11월 22일~ 98년 1월 29일)사건 초기 김영삼 대통령은 이미지 회복 전략의 사과, 수정행위, 부인, 책임회피의 네 가지 전략을 사용하였으며 그 중 ‘사과 전략’을 가장 많이 사용하였고 수정행위, 그리고 부인전략의 하나인 ‘책임전가’와 책임회피 전략의 하나인 ‘좋은 의도’ 전략을 사용했다. 이는 국가의 경제 상태가 악화된 데 대해 국정의 최고지도자로서 유감을 느끼지만, 그에 대한 실질적 책임은 최소화 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는 사과의 수준이 관념적 도덕수준에 머물러 있고 구체적인 책임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도 드러난다.1997년 11월 22일 IMF사태 관련 최초발언에서 “국정의 책임자로서 책임을 느낀다.”고 인정했다가 그로부터 보름 후인 12월 7일에는 “강 부총리가 경제의 기초는 건전하는 보고만 해왔가장의 절망감을 생각하며 제 자신을 매질하고 있다.”며 고개를 떨구었으며, 이어 “적어도 외환 사정만큼은 안정된 상태에서 넘겨 줄 수 있도록 하라.”(조선일보,12월30일자)거나 “새 출발 각오로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동아일보,98년 1월 4일)는 등 사태 수습을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다짐한다. 그러나 이후 “어려울 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조선일보,1월 20일자)는 ‘좋은 의도’ 전략을 통해 다시 한번 이전보다 약간 소극적인 방법으로 책임성을 축소시키려 시도했다.이렇게 김영삼 대통령의 초반 위기대응 전략의 주류는 사과지만 계속해서 책임을 전가하거나 책임성을 축소하려는 모습을 함께 보여줌으로서 실망스러움을 안겨주기도 했다.2. 외환위기 특별감사 시기 (1998년 1월 30일~ 1998년 9월 31일)98년 초부터는 국민들의 불안감과 혼돈 속에서 IMF체제가 시작되고 외환위기 특별감사 시기가 시작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이 시기 발언은 퇴임을 기준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그 경향이 달라지고 있다. 전반부인 1998년 2월부터 4월까지는 사과를 중심으로 책임회피 전략의 ‘좋은 의도’와 ‘불가항력’, 그리고 공격성 축소 전략 혹은 정당화 전략인 ‘자기입지강화’,‘초월’, 그리고 ‘차별화’를 함께 사용했다. 이러한 발언은 앞서 살펴본 IMF구제금융시기와 유사한 형태로 전 국민의 우려를 끼치는 경제위기 사태에 대한 유감을 표시함과 동시에 자신에 대한 책임성은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보이며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외환위기의 책임은 전적으로 대통령인 나에게 있다.” (조선일보, 2월5일자)거나, “경제난을 가져 오게 된 것이 가슴 아프고 국민에게 송구스럽다. 앞으로 어떤 책임도 마다하지 않겠다.”(동아일보,2월21일자), “문민정부 5년과 공과에 대해서는 대통령인 제가 책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못되고 부족한 일이 있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저의 부덕과 불찰의 결과이다.”(한겨례,2월21자)라고사과와 함께 책임성을 축소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문민정부 이전의 정부의 활동과 과거의 경제상황의 고질적인 문제에 원인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회복하기란 불가항력적인 것이었다고 언급하는 가 하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감정적으로 호소함으로서 동정표를 얻으려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했다. 먼저 “우리 경제는 과거 오랜 기간 동안 누적돼온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적 취약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세계 경제 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금융외환위기를 맞게 됐고,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기에 이르렀다.”(한겨레,2월12일자)고 말했는데 이는 ‘책임 회피’ 중에서도 ‘불가항력’에 원인을 돌리는 것으로 나름대로는 대통령으로서 매우 최선을 다했지만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기존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결과는 비록 나쁘게 되었지만, 본래 자신의 의도와 동기는 매우 좋은 것이었으며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열심히 했다는 책임 회피 전략 중 ‘좋은 의도’ 전략을 사용하기도 했다. “열심히 일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됐다.” (중앙일보, 2월 20일자)는 자신의 의도는 좋은 것이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한편 사태의 피해인식을 감소시키기 위해 ‘초월’이나 ‘자기입지강화’도 동시에 사용했다. “내 스스로 평가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먼 훗날 역사에 맡기겠다.”(중앙일보,2월21일) 발언에서는 보다 큰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단순하게 평가할 문제가 아니라며 항변했으며 “개혁 노력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한겨레,2월24일)며 대통령의 과거의 행적들 중에서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IMF사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조금이라도 만회해보려 하고 있다.이러한 언변 양상은 98년 2월 24일 대통령직 퇴임 후 부터는 성격이 바뀌어 좀 더 무책임하고 공격적인 전략으로 변한다. 자신의 책임성 자체에 대해 부정하거나 자신에 대한 공격자들을 역공격하는 일이 잦아졌다. 대통령직 퇴임 후수사 과정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공격이나 의심에 대항하여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사건과의 연관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는데 “IMF지원요청에 대해 보고받은 바 없다.”(중앙일보,5월 3일자), “지난해 11월 10일 외환위기를 처음 보고 받았다.” (동아일보,5월4일자)는 IMF가 초래된 것에 대해 자신과는 어떠한 연관성도 없으며 사건과 관련한 자신의 책임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진술을 한다.이와 함께 수사 과정에서 관료들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책임을 묻자,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을 공격하는 ‘공격자 공격’을 자주 사용하게 된다. 이는 정당화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데, 임창열 경제부총리의 태도에 대해 “인간적 환멸과 비애를 느낀다.”(중앙일보, 5월 5일)고 답하거나, 차기 김대중 정부가 강경식 부총리나 김인호 경제수석비서관에게 수사를 집중하면서 그들에 대한 구속이 임박해오자, 현 정부 수사 과정을 비판하며 “정책의 방법이나 시기선택 등에 관한 잘잘못에 대해 견해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사법처리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중앙일보.5월 7일자)며 “이번 수사는 강경식 전 부총리나 김인호 경제수석비서관 두 사람을 표적으로 해 직무유기죄를 범했다는 혐의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중앙일보,5월7일)라고 말함으로써 IMF행에 있어 그들의 유죄 사실에 대해 사전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식으로 정부를 역공격했다. 또한 공격자의 공격을 넘어서 부인의 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책임전가를 하기도 하는데 “96년 노동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당시 야당의 원천봉쇄로 고용조정제도가 제외된 채 통과돼 97년 초 노동파동이 일었는데 IMF사태 후인 금년 2월에야 가능해졌다.”(중앙일보 5월7일자)며 야당의 정치적 방해와 그로 인해 경제문제가 가중되었다고 주장한다.이 시기에 나타난 또 한가지 특징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발언과 검찰 제출 답변서에서의 발언 양상이 다르다는 것이다. 국민들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려 사과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책임을 논하는 검찰 영삼 대통령의 퇴임 시기와 겹쳐져 전략의 변화를 엿볼 수 있더, 퇴임 이전에는 전적으로 자신이 잘못이 아님을 분명히 하는 대응 전략이 있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책임자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식의 대응으로 책임감 있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퇴임 후 외환위기 특별 감사 시기에 외환위기를 초래한 원인에 대한 추궁에 대해지는 이러한 기존의 사과 전략에서 벗어나 공격자 공격, 극단적 부인 전략까지 사용함으로써 면책하고자 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3. 경제 청문회 시기 (1998년 10월 1일~ 1999년 3월 31일)김영삼 대통령의 퇴임 후 IMF사태의 원인과 책임, 주변 정황에 관한 IMF 특별 위원회의 경제 청문회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후 4주 동안의 일정으로 진행되었지만 그 준비과정을 포함하여 98년 10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그 시기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김 전 대통령은 경제 청문회에 있어서 IMF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공격자 공격, 혹은 사건과 관련된 책임에 대해 부인하는 등의 대응전략을 보여 재임 시절이나 퇴임 직후에 보여준 사과 전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IMF 특별위원회는 경제청문회 증인 출석과 관련하여 김영삼 전 대통령이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했는데, 김 전 대통령은 어떠한 증언이나 답변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경한 응답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청문회에 출석하는 것 자체를 거부하였다. 임기 시절의 경제 상황이나 IMF위기 과정에 대한 언급 자체를 피하는 등, 사태에 대한 대응 자체를 하지 않는 침묵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보복적, 정략적인 목적의 청문회는 어떤 경우에도 응할 수 없다.”(한겨례,12월 22일자) “재임 중 이미 외환위기에 대한 견해를 밝혔고 검찰조사에서도 내 책임이라고 답변한 만큼 새삼스럽게 다시 이야기할 이유가 없다.”(동아일보,12월22일자) 그리고 “이미 여러 번 사과를 했는데 또 무슨 사과냐?”(한겨례,12월 7일자) 등으로 일관했다. 이와 함께 김대중 정권이
    사회과학| 2018.11.17| 5페이지| 1,500원| 조회(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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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진핑의 일인독재가 가능할까에 관한 레포트
    시진핑의 일인독재체제 전환이 가능할까?최근 중국 정치 연구에서 시진핑 주석 등장 이후 정치권력 집중으로 집단지도 체제가 약화되고 일인체제가 형성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시진핑의 일인독재체제 전환 가능성에 대해 주제를 선정한 이유는 한국의 정치면과 경제면에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일인체제를 실현할 경우 강력한 대외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있고, 미국의 견제전략에 대해 국가의 명예와 존엄을 생각하면서 더 강하게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면서 수출입의 1/4을 중국과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변화를 눈 여겨 봐야 한다는 취지에서 선정하게 되었다.앞서 2017년 중국공산당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진핑 신세대 중국특색사회주의사상’이라는 문구가 공산당 당헌에 오르면서 시진핑의 지도력이 강하다는 관측이 잇따른다. 2018년 3월 1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건의한 헌법수정건의서를 통과시켰다. 찬성 2985표 반대 2표 기권 3표로, 99.8%의 압도적 찬성률을 기록했다.이번 개헌의 핵심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국가 주석의 임기 제한을 철폐한 것이다. 중국은 공산당 총서기가 국가주석에 오르며 동시에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겸직한다. 일당체제인 만큼 당대표인 총서기가 당연히 국가를 대표하는 주석이 된다. 5년씩 2회까지 총 10년을 통치하는 공식을 깬 것이다. 둘째는 덩샤오핑 주석이 설계한 집단지도체제가 붕괴됐다는 점이다. 집단지도체제는 현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속한 상무위원들이 국가를 통치한다. 한 명의 독재를 막으면서 이들은 당, 정, 군의 요직에 분포해 국가를 이끈다. 그러나 이번 개헌으로 집단지도체제마저 무너졌다. 셋째는 격대지정을 이어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격대지정은 마오쩌둥 사후 권력이 개인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덩샤오핑 전 주석이 설계한 것이다. 2대를 건너 뛰어 후계자를 지명하는 것으로 2세대 지도자인 덩샤오핑 전 주석은 3세대 지도자로 상해방의 거두인 장쩌민을 핵심인 후진타오로 하여금 4세대 지도자로 지명했다. 이후 장쩌민 전 주석은 한 대를 건너뛰는 5세대 지도자로 태자당의 시진핑을 주석에 오르게 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전인대에서 후춘화 전 광동성 서기를 부르지 않다가, 이번 양회를 통해 다시 후춘화를 불러올렸다. 다만 아직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로 호명하진 않았다. 사실상 후진타오 전 주석이 지명한 것으로 예상되는 그를 상무위원회로 부르지 않은 것은 그가 당분간 집권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이라 추측한다. 동시에 자신이 내세워야 하는 7세대 지도자도 정하지 않았다.암묵적 관습도 깨트렸다. 중국공산당에서는 전당대회인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중앙정치국에 등용될 수 있는 원칙인 '칠상팔하(七上八下) : 67세 이하는 잔류할 수 있으나, 68세가 넘으면 퇴임하는 원칙)'도 깼다. 전인대에서 시 주석은 자신의 왼팔이라 할 수 있는 왕치산(王岐山)은 68세를 넘겼던 만큼 퇴임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 개헌을 통해 해당 원칙을 깨트렸고, 왕 전 기율검사위원회 서기를 불러들였다. 심지어 그에게 국가 부주석 자리를 맡겼고, 자신의 곁에 두게 했다. 이번 개헌이 의미하는 바는 시 주석의 '1인 체제' 도래를 본격적으로 알렸다는 점이다.먼저 시진핑 정권 등장 이후 권력집중화 과정을 알아보자. 시진핑 집권 5년차, 권력집중화 과정은 4가지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졌다.첫째는 당정에 대한 대대적인 정풍운동과 반부패 투쟁을 통해 정적을 제거하고 자파를 중심으로 한 권력집중을 진행해 왔다. “반부패 투쟁을 위해 생사, 직위, 평판을 모두 걸었다.”고 선언한 시진핑은 그 과정 속에서 당내의 핵심 지위를 확립하고 당원생활 준칙과 감독조례를 만들었다.둘째는 영도소조를 설립하고 조장을 독식함으로써 권력기반을 공고화했다. 영도소조는 비공식적인 직무기구이고 법률적인 근거가 없지만 중국정치의 많은 상황에서 비공식적인 관직이 실제 가지고 있는 권력은 공식적인 관직을 초과한다. 영도소조의 조장이나 부조장을 맡고 있는 정치국원이나 정치국 상무위원이 실질적으로 각 부 수준에서 구체적인 정책이 결정되고 이를 부처가 실행하는 사례가 많은 점에 비춰 볼 때, 시진핑이 다수의 영도소조의 조장을 맡고 있으며 그가 조장으로 있는 소조가 개혁정책, 재정, 국가안전, 인터넷과 정보화, 군사개혁 등의 핵심영역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진핑의 영향력 확대를 의미한다.셋째는 원로정치 영향력의 약화이다. 중국정치에서 당정의 퇴직 간부들이 주요 정책결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원로정치의 관례는 비공식적 파벌정치의 원인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총서기의 권력을 제한할 수 있는 비공식적 기제로 작용하면서 총서기를 견제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시진핑 집권 이후 원로정치의 영향력이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악화되었다. 특히 2016년 2월에 ‘퇴직간부 관련 업무를 강화하고 개선하기 위한 의견’을 발표하고 퇴직간부에 대한 교육을 강화함으로써 이들이 정치규율과 규칙을 엄격하게 준수하고 시진핑 지도부의 방침을 자각해야함을 강조했다. 1982년 중국이 원로간부 퇴임제를 도입한 후 30여년만의 간부 퇴임제 개혁안으로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원로정치의 구도를 근본적으로 혁파하고 원로 지도자들의 각종 이권개입을 경고하기 위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2016년 12월에도 퇴직 지도자에 대해 ‘공헌 존중, 영향력 경계, 처우통제’라는 원칙을 제기하면서 정치적 규칙을 통하여 원로정치의 영향력을 차단하고자 했다. 이런 조치들로 원로정치의 영향력이 약화되었다.넷째는 시진핑 어록 출간과 학습운동이다. 이것은 이념적인 측면에서의 권력 강화라 볼 수 있다. 인민일보는 시진핑을 덩샤오핑에 비유하면서 개혁가로서의 시진핑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덩샤오핑이 ‘제1의 개혁’을 선언하고 추진했다면 시진핑은 2013년 공산당 18기 3중전회에서 ‘제2의 개혁’을 선언하고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시진핑이 추진하는 개혁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반대 세력을 비판하고 있다. 시진핑의 어록인 ‘시진핑 개혁 전면 심화 논술 요약’과 ‘시진핑 총서기 중요 강화 독본’이 2014년론지인 ‘구시’는 시진핑의 어록을 마오쩌뚱의 어록이나 되는 것처럼 격상시켜 설명하고 이를 근거로 시진핑 어록을 대대적으로 학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전국적으로 시진핑 어록 학습운동이 전개되었다. 여기에 더해 시진핑의 리더십과 젊은 시절의 활동이 언론에 소개되면서 ‘시진핑 따라 배우기’ 활동도 전개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시진핑 개인숭배의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시진핑 일인독재체제로 전환되는가에 대한 논란에 대해 성급한 판단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재미 중국학자 리청은 시진핑 일인독재체제가 확립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2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중국공산당 내에서 시진핑 지도자를 마오쩌뚱 및 덩샤오핑과 동일한 위상을 지닌 지도자로 위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진핑의 지위는 여전히 마오쩌뚱과 덩샤오핑에 버금가는 지위로 공식화 되어있지 않다. 시진핑은 권력이익의 균형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경쟁자들을 감시해야하는 제도에 놓여있다. 둘째는 당의 이데올로기에서 집단지도체제의 정당화논리가 완전히 제거되어야 한다.즉, 시진핑은 강력한 지도자로 등장했지만 집단지도체제의 규범과 규정을 무력화시킬 만큼 충분히 강력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 5년간 시진핑으로의 권력집중으로 중국 지도체제 내에서 최고지도자와 협력자들과의 권력관계에 일정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러한 변화를 경쟁적 독재에서 확립된 독재로의 전환으로 규정짓기는 어렵다. 시진핑은 장쩌민과 후진타오시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책결정과정에서 정치국의 역할을 중단시키지 않고 있으며 정치국상무위원들의 각종 공식적인 활동에서의 등장을 통하여 증명되고 있는 것처럼 집단지도체제의 핵심구성요소인 최고지도자 간의 업무분담체계도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그렇지만 주목할 점은 시진핑이 현재의 강력한 권력으로 새로운 지도체제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개인독재로는 발전하기 어렵더라도 최고 지도자 간의 권력의 균형을 일정한 전제로 하는 현재의 집단지도체제의 틀을 깨고 1인 수장에게 강력한 권한 제도적 개혁의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시진핑이 일인체제를 굳혀나가는 행보는 한국의 경제면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 5년간 시진핑 1기 정부는 부패척결에 올인했다. 임기연장의 논리는 국민 잘살게 하고 경제에서 미국을 추월하는 위대한 성과를 내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시진핑 2기 정부는 이제 정치가 아니라 경제에 올인하는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 이번 양회에서 중국은 2018년 경제성장목표를 비롯해 모든 경제지표 목표치를 낮추어 잡았는데 유독 실업률 목표만 1%p 높여 잡았다. 실업을 불사할 만큼, 산업구조를 크게 개편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지금 중국의 4대 수출국, 1대 수입국이다. 향후 5년간 중국의 경제 올인은 중간재를 주로 수출하는 한국에게 단기적으로 수혜가 예상되지만 장기적으로 치명적 악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3년 내에 전통산업 구조조정을 완료해 세계 TOP5에 들어가는 기업들로 만들겠다는 것이 목표이다. 한국은 구조조정을 끝낸 중국기업이 몰고 올 충격을 예상하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중국 내부에서도 시진핑의 일인체제 행보에 대한 찬반여론이 있지만 반대여론은 언론통제 탓에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제사회에서도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중국은 마오쩌뚱이나 덩샤오핑과 같은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사라지면서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재임기간에 집단적 리더십의 공식적 제도화를 통한 권력공유를 이끌어내 안정적 통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이 등장한 이후 권력 강화를 시도하면서 시진핑과 협력자들과의 권력균형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진핑은 고강도 반부패 운동, 당내 소조건설과 원로정치의 청산시도, 당내 핵심 영도지위의 확립 등을 통하여 권력을 강화해왔다. 그 결과 최고지도부 내에서 시진핑의 위상은 과거 동급자 둥 일인 보다는 훨씬 강화되었고 덩샤오핑 이후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사실상 실질적 일인자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간되고 있다. 후진타오시기와 비교하여 집단지도체제 내.
    사회과학| 2018.05.29| 5페이지| 2,000원| 조회(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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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 받은 김승옥의 무진기행 분석 레포트 (문예창작학과)
    무진기행 작품분석과 영화 20150074 우혜린1. 서론2. 본론1. 작가 ‘김승옥’의 작품세계2. 무진기행의 줄거리와 구성방식3. 공간적 배경 ‘무진과 서울’4. 작중 인물들과 모티브5. 원작 과 영화 비교3. 결론*참고문헌1. 서론무진기행은 나의 첫 필사 작품이었다. 볼펜을 움직여 무진기행에 한 걸음 내딛는 행위는 처음엔 짜릿하게, 뒤로 갈수록 무진의 안개에 휩싸인 듯 그 끝을 보기 전에는 펜을 감히 놓을 수 없는 상황을 경험하였다. 9월에는 창작체험학습을 계기로 삼아 순천만 정원에 다녀왔다. 그 안에는 순천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는데 무진기행을 쓴 김승옥 작가가 순천 출신 작가이다. 무진기행의 ‘무진’은 실존하는 지명은 아니지만 김승옥의 생애와 작품 내용을 고려하면 무진은 작가가 유년기를 보냈던 전라남도 순천의 공간을 재구성한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작가 자신도 이 작품을 창작하는데 있어 ‘순천과 순천만 연안 대대포 앞 바다와 그 갯벌’에서의 체험을 창작 모티브로 삼았다고 밝히고 있다. 무진기행의 작품 분석에 앞서 문학관을 견학하고 창작 모티브가 된 지역을 다녀온 것은 작품을 분석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본 글에서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서서 2차 창작물이라고 볼 수 있는 영화 를 원작소설과 비교하기까지 이를 것이다.2. 본론1. 작가 ‘김승옥’의 작품세계김승옥은 1960년대 특징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되는데 이는 50년대 작가들이 가지고 있었던 교훈적 태도나 엄숙한 분위기를 흔들었다는 점이 그렇다. 그는 한국소설의 언어적 감수성을 세련되게 한 작가로서 ‘감수성의 혁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의 작품세계가 보여주는 것은 개인의 내면세계이다. 주로 자신의 존재 이유의 확인을 통해 지적 패배주의나 윤리적 자기 도피를 극복해 보려는 작가의식을 보이고 있다. 그의 감성적인 문체가 그려내는 작중인물의 세계는 안개처럼 습한 모습을 보인다. 방황하는 심적 고통과 소외감이 현실과 이상에 대한 내적갈등으로 빚어내어 음습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이처럼 무이 막연하게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내포하고 있는 가장 큰 틀인 내면적 짜임에 집중하여 작품의 정확한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다.2. 무진기행의 줄거리와 구성방식‘나’는 부유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고 그 덕에 얼마 후면 제약회사의 전무가 될 사람이다. 아내의 권유로 젊은 날의 추억이 있는 고향 무진으로 떠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버스를 타고 무진으로 오면서 무진은 사람들이 ‘명산물도 없는 그럭저럭 살아가는 곳’이라고 칭하는 것에 마음속으로 무진의 명산물은 ‘안개’라고 반문한다. 과거에도 무진을 방문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무진으로 올 때는 항상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을 할 때거나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할 때였고 무진이라는 연상은 어둡던 청년기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였다. 무진으로 온 날 밤에 ‘나’는 중학교에서 교사를 하고 있는 후배 ‘박’을 만나고 그와 함께 세무서장이 된 중학교 동창 ‘조’를 만난다. ‘조’의 집에는 세무서 남자직원 3명과 음악선생 ‘하인숙’이라는 사람을 소개받게 되었다. 하인숙은 대학 졸업 음악회 때 아리아 을 불렀다면서 술자리에서는 유행가를 부른다. ‘박’은 하인숙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환멸을 느끼며 속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속물 같은 거짓말로 그를 위로하면서 타인이 하는 모든 행위는 무위와 같은 무게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술자리를 마치고 귀가하다보니 하인숙과 ‘나’ 둘만이 남아 길을 걷게 되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인숙은 ‘나’에게 서울로 데리고 가달라고 간청한다. ‘나’는 그녀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발견했다고 생각하고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했다. 다음날, 어머니 산소에 다녀오던 길에 방죽 밑에서 술집 여자의 시체를 보게 되고 상념에 잠긴다. ‘나’가 과거에 폐병으로 요양했던 집에서 하인숙과 정사를 갖는다. 그 후 그녀에게 사랑을 느껴 편지를 몇 자 적지만 찢으면서 과거의 의식에 빠져 있던 나를 일깨운다. 다음날 아침에 아내로부터의 급전을 받고 영원히 기억의 구석으로 무인공인 ‘나’가 서울을 떠나 고향 무진으로 귀향했다가 다시 무진을 떠나 서울로 오는 ‘여로형식’을 취하고 있다. ‘나’의 시선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소제목 4가지로 나뉘는데 ‘무진으로 가는 버스’, ‘밤에 만난 사람들’, ‘바다로 뻗은 긴 방죽’, ‘당신은 무진을 떠나고 있습니다’ 로 이루어져 공간의 미학이 엿보인다.무진기행은 ‘스토리 라인형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행위나 사건의 발생보다는 한 인물의 심리나 의식의 변화인 내면세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숨겨진 여러 동기에 의한 새로운 감정의 싹틈이나 정신적인 이상에 따른 행위들이 깊게 다루어진다. 무진기행에서 주인공인 ‘나’의 행동들은 필연적 인과관계가 드러나지 않는다. 주인공의 행동에 대한 답은 내적갈등을 통해서 찾아내야한다. 스토리 라인형 소설 중에도 무진기행은 대표적으로 발단, 분규, 절정, 대단원의 전개 패턴에 따라 세밀히 잘 다룬 소설이라고 본다.무진기행이 심리적 변화에 관한 서술에 많은 구성을 둔다는 점에서 ‘분석적 구성’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분석적 구성은 작품 서두에 그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행동의 시작이 등장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아가면서 행동의 시작 부분을 나중에 접하게 되기도 하고 행동 속에 말하고자 하는 바가 포함되어 모든 사실의 시간적 순서가 뒤죽박죽 섞여 있을 수도 있는 구성이다. 독자의 관심을 불러 일으켜 놓고 나서 작가는 배경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 이러한 전략적 방법이 소설의 재미를 키우게 되는데 소위 말해서 ‘알아가는 재미’를 독자들이 맛보기 때문이다. 무진기행에서 과거의 ‘나’가 ‘사건 중간에 뛰어들기’를 취하는 모습이 전혀 뜬금없는 내용이 아닌 것이다.3. 공간적 배경 ‘무진과 서울’현대소설의 배경은 단순한 시간과 장소로서가 아니라 인물의 성격과 행동을 결정하는 어마어마한 존재가 되거나 공간적 미학의 구조를 통해 관념의식, 심리를 암시, 반영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무진기행에서의 공간적 배경은 글의 전체적 분위는 ‘서울’과 ‘무진’은 각각 공간적 의미를 넘어선 공간이다. 서울과 무진은 서로 다른 공간이자 대비되는 곳인데, 소설 속에서 무진은 안개로서 이미지를 보여준다. 안개는 ‘나’의 정신 상태와 정서의 흐름을 잘 나타내주는데 무진의 명산물인 안개를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다’ 라고 표현한 대목부터 답답한 주인공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이 무진을 찾을 때는 새 출발이 필요할 때였다. 그러나 무진에서 그를 마주하는 건 엉뚱한 공상과 판단력의 마비와 윤리관의 상실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무진은 현실의 무진과는 다른 무진인 셈이다. 그렇기에 무진에 대한 연상은 안개처럼 뿌옇게 차 있는 내면의 한 구석인 것이다. 서울은 무진과 다르고 대비되는 공간이라고 해서 확연히 다르지도 않다. 서울은 무진과는 다른 의미로 희뿌연 공간이다. 서울하면 떠오르는 게 스모그인데 안개와 스모그는 성분만 다르지 성격은 비슷하다. 무진에서의 주인공이 혼돈과 외로움을 느끼는 공간이라면 서울은 아내와 현실적인 부분에 의해서 뿌옇게 가려진 자신 본연의 모습을 느껴 힘들어하는 공간임을 알 수 있다.이러한 무진기행의 공간적 요소에서 허무주의가 강하게 느껴진다.4. 작중인물들과 모티브무진기행에서의 인물들은 주인공의 모습이 모두 투영되어있는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먼저 주인공 ‘나’의 중학교 후배인 ‘박’은 매사 진지하고 순진한 면모를 보이는 인물로 가난하고 고통스럽고 무력했던 과거의 순수했던 ‘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나’의 동창인 ‘조’는 현실적이고 천박한 출세주의자이며 그런 노력의 결과로 세무서장을 하고 있다. ‘박’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조’는 현실적 가치를 좇고 있는 현재의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학교 음악 선생인 ‘하인숙’은 진정한 자아를 감추고 속물들의 틈에 어울리는 인물로 무진에서 자신의 참된 삶을 살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녀의 마음은 현실에 굴복하여 속물처럼 사는 것과 그에 반하는 것 사이에서 흔 ‘나’의 모습을 투영해 보여준다. 안개 속에서 벗어나려고 허우적거리는 작중인물들의 모습은 1960년대의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사회상을 보여주고, 참된 자아를 찾고자 몸부림치는 현대인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한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최소의 의미단위를 우리는 모티브라고 부른다.무진기행에서 모티브들은 참된 자아를 매장시켜버리는 현실의 비정함과 그러한 현실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완전히 거부할 수 없는 자아에 대한 안타까움을 감성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들이라고 볼 수 있다.대표적으로 ‘안개’는 1960년대 초의 불확실한 현실과 전망으로 인한 지식인들의 절망과 방황, 허무주의를 상징한다. 단어로 직접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성교’도 무진기행의 모티브라고 볼 수 있다. 가짜와 진짜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가짜는 개미들의 교미와 골방의 수음 등 주인공이 생각하는 것들이고 진짜는 하인숙과의 성교인데 하인숙과 주인공 ‘나’의 결합은 주인공이 비로소 자아의 진정한 내면의식이 무엇인가를 알게 됨을 의미한다. ‘전보’는 현실적이고 사무적인 문서이다. 이처럼 주인공이 처해있는 현실에서는 진정한 자아의 소통이 불가하고 거짓된 관계의 의사소통만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개구리의 울음소리’는 현실의 장막을 걷고 자신의 참모습과 만날 때 내면에서 터지는 울음소리로 말할 수 있는데 이는 거짓 모습으로 살아가는 낮 시간이 지나고 자신의 내면을 만나는 밤이 오면 그때서야 자신의 참모습을 되찾는다는 의미이다. ‘화투’는 현실과 맞부딪혀 자아를 회복하려하지 못하는 자아에 대한 자학심리를 잘 보여준다. ‘아내’는 현실에서 성공을 위한 단지 도구로의 의미를 지닌다.5. 원작 과 영화 비교무진기행은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서 영화화 되었다고 한다. 그 첫 작품인 김수용 감독의 1967년 라는 작품과 원작 을 비교하려한다. 이 영화는 김승옥 원작자가 시나리오를 썼고 직접 연출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김승옥은 영화로 제작하면서도 문학적 가치와 평가에 역점을 두고 되도록 원작을 충실히 영화로 옮기려다.
    독후감/창작| 2017.01.07| 7페이지| 2,000원| 조회(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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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해무' 비평문
    영화보고 비평문쓰기영화: 해무(2014) - 봉준호 감독제목: 해무 속 사람들을 통한 인간의 이기주의와 집착- 영화 ‘해무’를 보고나서처음에 ‘해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바다에 끼는 안개라고 생각하니 음산한 느낌이 먼저 들었다. 알고 보니 이 영화는 2001년도 10월에 실제로 일어났던 태창호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해서 그런지 몰입감이 뛰어났고 구성도 탄탄하니 개인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하고 재밌게 봤다. 특히 주연 배우들의 캐릭터 흡수력이 좋아서 소름이 끼쳤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가 좋은 평가만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이기주의와 집착을 잘 표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기관실에 숨어사는 중년의 기관장부터 이제 갓 배를 타기 시작한 막내 동식까지 5명의 선원을 이끌고 있는 선장 철주는 막내 동식의 다리가 그물에 얽혀 기계로 빨려 들어가는 위험한 순간에 엉킨 그물을 풀기보다 기계의 연료 공급을 끊어버리는 결단력을 가졌으며 동시에 눈앞에서 아내가 외간 남자와 정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 펼쳐져도 영화 밖 관객만큼도 동요하지 않는, 차갑다 못해 어딘가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IMF로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낡아빠진 전진호가 폐선 될 형편이 되자 철주가 밀항으로 돈을 벌어 이 위기를 타개하고자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시작이다. 선장 철주의 이런 성격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하나도 나와 있지 않아서 선장 철주의 행동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잠깐이라도 선장이 이런 성격을 가지게 된 회상 장면이 나왔다면 영화를 이해가 쉬웠을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주로 초점이 맞춰지는 인물이 선장과 동식인데 동식은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으며 해양고등학교 출신으로 전진호의 막내 선원이다. 처음에 밀항하는 과정에서 배에서 배로 사람들이 건널 때, 물에 빠진 홍매를 구해주고 따뜻한 기관실에 있도록 계속 도와주면서 홍매를 사랑하게 되는 인물이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고 예상하지도 못한 사고로 인해 홍매를 제외한 밀항자들 전원이 목숨을 잃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해무가 몰려들기 시작하자 전진호 사람들은 눈앞이 하얘지면서 이성적 사고도 마비되어 버린다. 여기서 사람이 이성이 마비되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세세하게 묘사된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인간은 이기주의적 성향이 나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이 감독이 등장인물 하나하나 특성에 맞게 이성을 잃은 모습을 정말 세부적으로 표현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관장은 사람들이 죽은 것이 자신이 냉각기를 잘 관리 하지 않아서라고 자책하면서 벽에 머리를 박는 등 이상행동을 하면서 미쳐가고, 덤덤한 척하지만 다른 선원들도 이 일이 육지에 알려 질까봐 불안해하면서 서로를 의심하고 하나 남아있는 밀항민 생존자 홍매를 없애는 일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또한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시신을 도끼로 도륙해 시신이 떠오르지 않도록 내던지는 모습을 보고 멀쩡한 사람도 극한에 처하면 저렇게 잔인해 질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식은 홍매를 보호하고자 선장인 철주에게 반기를 들기 시작했는데 점점 가라앉으며 물이 차오르는 배에서 선장과 홍매를 지키려는 동식의 사투가 긴박하게 표현되었는데 그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았고 제일 긴장감이 넘쳤던 것 같다. 기관장이 배를 쏘다니며 밀항민 중 한명이 남긴 유품을 태우지 않고 경찰서에 가져다 줄 거 라고 선장한테 헛소리를 해대니까 선장이 불안한 나머지 기관장을 죽이는 장면에서는 선장이 상황에 대해서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알지만, 같이 오랫동안 전진호에서 일해 온 동료를 좀 더 타일러보지 않고 벽돌로 내리찍어 죽이는 모습을 보고 선장의 본래 인간성에 대해도 의구심을 가졌다. 선장 철주 손에 죽은 기관장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동식과 홍매를 향해 달려들면서 전진호 사람들은 내 욕망을 위해 남을 없애야만 하는 참혹한 처지에 몰려 해무 속을 헤매고 다니는 것으로 영화에서 묘사되었다. 결국은 뒤늦게 해경이 와서 반 이상 가라앉은 전진호를 버리고 홍매와 동식은 물속으로 뛰어들고 선장은 앞에서도 표현되었듯이 배에 대한 애정이 위험한 밀항을 시도 할 정도로 넘쳤기 때문에 끝까지 전진호를 살리려고 발버둥 치다가 전진호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전진호를 탈출한 홍매와 동식은 육지에 닿았는데 홍매가 먼저 정신이 들어 동식을 바라보다가 동식을 두고 떠나간다. 이 부분에서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 자신을 목숨 걸로 배에서 구해 준 남자를 두고 고맙다는 말도 안하고 떠나가버리는 것도 이상했고 분명이 배에서 홍매를 숨겨둘 때 둘이서 서로 좋아하는 것 같이 표현해놓고서는 그걸로 만남이 끝인 것도 떨떠름했다. 한참 후에 동식도 정신을 차려서 주위를 둘러봤을 때는 이미 홍매는 멀리 가버리고 없었다. 차라리 이 장면까지가 영화의 끝이라면 더 나을 뻔 했지만 6년 뒤라는 화면이 갑자기 뜨더니, 동식이 막노동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일이 끝난 뒤 허름한 라면가게로 들어간다. 동식이 라면을 주문하고 동식의 앞쪽 테이블에서 라면을 먹이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나오면서 홍매의 목소리가 나온다, 동식은 그 모습을 보기는 했으나, 홍매인줄은 모르는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영화가 끝이 났다. 마지막 장면을 빼고 육지에 닿는 씬 까지만 영화에 넣었다면 훨씬 더 여운이 남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해무가 몰려들기 전의 여러 사건들을 차곡차곡 쌓아 해무 속에서의 생지옥을 빚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 인물에 대한 설명과 살육전 사이의 사건을 조금 더 매끄럽게 만들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으로 아쉬움이 남았다. 여기서 내가 주목한 부분이 대부분의 사건이 벌어지는 전진호는 수직적으로 층층이 쌓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갑판 아래에서부터 배의 밑바닥까지 닿아있는 어창, 갑판을 기준으로 반 지하쯤 되는 기관실과 선원들의 침실, 갑판 위로 솟아 있는 조타실은 사회의 권력 구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각 계층별 인구마저도 정확히 피라미드형으로 분포하고 있다. 제일 위층의 조타실은 전진호라는 세계에서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1인자인 선장 철주가 지배하는 곳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살피는 것도, 외부와 소통하는 것도 오직 여기서만 가능하다. 대체로 철주의 명령에 복종하는 선원들은 실질적으로 이 배를 움직이는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선장에게 반항했다간 당장 수장될 형편에 처한 밀항자들의 공간인 어창이 있다. 가장 지독한 공간인 어창은 그야말로 세계의 밑바닥인 동시에 창이 없어 바깥 세상에 대한 정보도 전혀 얻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위에서 뚜껑을 열고 사다리를 내려주지 않으면 벗어날 방법도 없는 완벽하게 닫힌 공간이다.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사람의 먹이가 될 물고기를 보관하기 위한 어창 속에서 밀항자들은 낡은 세계의 부산물에 질식해 몰살당한다. 중산층의 몰락이 가속화 되고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그저 옛말이 되기 시작한 IMF 시기가 작품의 배경임을 알 수 있었다. 간간히 등장한 90년대 달력이나 상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IMF라서 힘들다는 말들이 시대상을 반영하는 뒷받침이 된다.
    독후감/창작| 2016.10.14| 3페이지| 1,000원| 조회(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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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화 가을나비- 이준연 줄거리 요약정리본
    가을나비- 이준연1.바람을 파는 소년돌쇠는 대나무밭 가운데 외딴 오두막집에서 할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다. 계절마다 대나무로 할아버지는 그때그때 알맞은 물건을 만들어 ‘알미장’에 내다가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대나무밭은 돌쇠와 할아버지에게 큰 재산이었다. 날씨가 무더워지기 시작하면서 할아버지와 돌쇠는 대나무 부채를 만들어 팔려고 장에 간다. 대대로 이름난 대나무 부채가 얼마나 잘 팔릴까 돌쇠는 기대하면서 장에 따라나선다. 그러나 색색깔의 나일론부채가 손님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대나무부채는 인기가 없는 것을 보고서 돌쇠는 속상해진다. 그래서 돌쇠는 아랫배에 힘을 주며 큰 소리로 대나무부채를 홍보하였는데 할아버지 또래의 손님이 와서 대나무 부채를 칭찬하자 고맙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에 힘입어서 돌쇠는 더 열심히 홍보를 했다. 뒤에 할아버지가 와 있는 것도 모르는 체로.2.하얀 발자국은동이와 금동이는 눈 내리는 솔매산을 오르면서 호남이와 순덕이를 만날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작년 봄에 솔매산에 진달래가 필 무렵 금동이네는 서울로 이사를 가고 금동이의 단짝친구인 호남이네는 광주로 이사를 갔다. 그래서 금동이 형제와 호남이 남매는 여름방학와 겨울방학 때 솔매골에서 만나기로 했다. 금동이 형제는 겨울방학 전부터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할머니와 함께 솔매골을 가려했으나 할머니가 갑자기 편찮으셔서 은동이 형제만 솔매골로 가게 된 것이다. 집은 찾아서 들어갔으나 호남이네는 눈이 많이 내린 탓인지 오지 않았고 왠 사냥꾼들이 그 집에 머물고 있었다. 사냥꾼들은 하루 밤을 묵고 일찍이 하얀 발자국만 남겨 놓고 떠났고 아침에 일어난 금동이형제는 눈사람을 크게 만들어 놓고 여름방학 때는 호남이네 할머니까지 모시고 오자며 다짐한 후 사냥꾼들이 만들어 놓은 발자국을 따라 산을 내려갔다.3.소라 피리수동이네 고장은 텔레비전에 갯마을이 출연한 뒤부터 마을이 급속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고요하던 갯마을은 구름처럼 몰려온 피서꾼들로 시장같이 변했다. 수동이가 조개 무덤에서 소라껍질을 한 무더기 가져오자, 할머니는 돈도 되지않는 소라껍질 말고 빈병이나 주워오라고 말한다. 수동이가 조개 무덤 근처로 가자, 아이들은 두더지처럼 모래밭을 파면서 수동이에게 더 이상 소라 피리를 부는 아이들은 없다며 모래밭을 파면 더 좋고 재밌는 것들을 찾을 수 있다며 시계도 찾았다고 자랑을 한다. 수동이는 개의치 않고 조개 무덤으로 갔지만 그 곳은 쓰레기장이 따로 없었다. 슬픈 마음에 수동이는 등대 바위에 서서 소라피리를 부르면서 용왕님께 갯마을을 더럽히는 사람들을 내쫓아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집으로 돌아가자 할머니는 아까 수동이가 가져온 소라껍질을 서울에서 온 아이들에게 천원을 주고 팔았다며 웃고 있었다. 수동이는 기가 막혔지만 할머니가 좋으면 됐다며 소라피리를 부를테니 춤을 춰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도 덩실덩실 춤을 추고 술에 취해 들어온 할아버지도 모래밭에서 배운 도깨비춤을 추었다.4. 오백 나한하루에 한 분씩 사라지는 나한들을 보면서 스님은 이상하게 생각을 했다. 이런 희귀한 일은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작년 겨울 보살할매가 데려온 한솔이 짓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작년 겨울, 보살할매는 연탄가스로 며느리와 아들을 잃고 하룻밤 사이에 고아가 된 한솔이를 도솔암으로 데려왔다. 할머니 손에 이끌려 절에 온 한솔이는 외롭고 쓸쓸했다. 그런 한솔이의 마음을 끌어주는 것은 절 구경이었는데 나한들을 친구들과 닮은 인형 같다면서 관심을 보였다. 할머니는 나한들은 인형이 아니고 부처님의 제자들이라고 설명했다. 할머니는 절의 일을 도맡아하면서 시주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솔이가 할머니 소원이 뭐냐고 묻자 할머니의 소원은 통일이라며 통일이 되어서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한솔이도 할머니의 소원을 이뤄드리기 위해 시주를 하고 싶은데 마땅히 시주할 것이 없어서 오백나한들을 그려 시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느 날 스님이 보살 할매의 병문안을 갔다가 깜짝 놀랐다. 한솔이가 나한들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벚꽃이 피면서 선운사에 관광객들이 몰려왔다. 그 중에 한솔이는 아는 누나를 만나 자신을 서울로 데려가 달라고 말하고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가는데 뒤에서 나한들이 소리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한솔이는 나한들을 아직 다 못 그렸다며 다시 도솔암으로 올라갔다.5.가을 나비아기 나비는 세상에 대해서 호기심이 많아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나비구름을 보게 된다. 늙은 왕솔나무가 할아버지가 나비구름이 되려면 죽기 전 착한 일 세 가지를 해야 나비구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아기나비는 꽃을 찾아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거미줄에 걸려서 거미에게 잡아 먹힐뻔 하였지만 코스모스가 긴 팔을 휘저어 살려주었다. 아기 나비는 너무 고마워서 코스모스와 함께 살기로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순돌이가 코스모스를 한 아름 꺾기 시작했다. 병원에 있는 누나인 순님이에게 가져다주기 위해서였다. 아기 나비는 순돌이가 순님이에게 코스모스를 가져다주는 것을 보고 가슴이 찡하게 아팠다. 순돌이가 다녀간 병실 안은 무덤처럼 고요해졌다. 아기나비는 코스모스에 숨어 있다가 나타나서는 순님이 앞에서 춤을 추었다. 순님이는 좋아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자 갑자기 야위었던 순님의 얼굴에서 연분홍 꽃물이 들기 시작했다. 아기나비는 찬 바람이 불기 전까지 순님이와 함께 살다가 찬바람이 불자 죽었다. 그런 아기나비를 순님이가 동화책 안에 꽂아 두었고 파란 가을 하늘에는 나비구름이 떠있었다. 가을에 왔던 아기나비는 순님이의 병을 낫게 해주고 나비구름이 되어 파란 하늘로 올라간 것이다.
    독후감/창작| 2016.04.16| 3페이지| 1,500원| 조회(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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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