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인간의 지배를 받는 대상으로 볼 것인가, 인간을 지배하는 대상으로 볼 것인가. 이 것은 동서양의 문화적 관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개념이다. 또한 동양과 서양의 기술의 발 전을 극단적으로 가르는 수단이 되었다. 서양의 경우, ‘플라톤’에 의해 제시된 이원론적인 사상(로고스 중심주의)을 바탕으로 기본적으로 자연을 인간에 의해 지배를 받는 대상으로 여겼다. 그들은 인간이 하늘로부터 선택받은 존재임을 내세워 자연의 우위에 있음을 증명하 였고, 자연을 이겨내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러한 사상은 결과적으로 과학의 발전과 산 업혁명이라는 위대한 결과를 이뤄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한 원동력 덕분에 그들은 산업 혁명은 필연적으로 자연의 파괴를 일으키게 됨에도 불구하고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 반면에 동양의 사상은 어떠할까(여기서 동양은 포괄적으로 동아시아를 의미)? 동양에서는 자연이란 존재를 하나의 우주로 보고 인간은 그러한 우주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 며, 두 존재가 서로 대립적이지 않고 하나의 존재임을 주장했다.
도가에서는 기본적으로 생사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들이 주장하기로는 인간이란 존재는 모든 만물과 마찬가지로 무형이면서 무위자연인 도로부터 덕을 받아 천지음양의 기 운이 모여 생성된 본질적으로는 순박한 존재로 사람의 생명은 사람 자신의 것이 아닌, 천지 자연의 소유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탄생과 죽음이라는 현상을 각각의 대척점이 아닌 서로 이어져있는 돌고 도는 무한의 변화과정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고 여겼다(노자는 ‘도덕경’에서 ‘大 결국은 무로 돌아온다.’라고 밝혔다.). 즉,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 니고 그저 하나의 변화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상에 대한 대표적인 학자로는 노 자와 열자, 장자 등이 있는데, 이러한 생사관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어느 날, 장자가 꿈을 꾸었다. 그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고, 너무나도 즐겁게 놀아 스스로의 존재가 장자이면서 나비의 꿈을 꾸는 것인지, 아니면 나비이면서 장자라는 존재가 되는 꿈을 꾸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고 한다.
먼저 불교에서의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란 무엇인가? 무상이란 영원한 즉, 불변적인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그러한 존재를 철저하게 부정하고 우주 만물에 대해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변화하는 존재로서 정의하였다. 이러한 무상에 대해 석가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정리하였으며, 이 개념의 그의 무아無我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이용되었다. 다음으로 ‘무아’란 고정된 아我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우리가 고정된 자아를 가진 것처럼 느끼고 있지만 그것은 5온蘊의 일시적인 집합체의 불과하며 결국은 변화하게 되는 존재로 여겼다. 무아설은 불교만의 특별한 교리로, 이러한 주장은 아트만(숨, 호흡)이라는 생명의 근원이 인간의 본질로서 영원히 상주하고 있다는 인도의 범아일여梵我一如 정통사상과 철저하게 대비되는 이론이기에 석가는 많은 그들과 많은 갈등을 겪었다.
달 항아리의 솔직함과 겸손함조선의 달 항아리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중반까지 활발하게 제작되던 자기로 동시대의 중국, 일본과는 달리 외양의 화려함이 아닌, 선비로서의 내양의 정신이 담겨있다. 이러한 달 항아리 종류를 보면 가장 먼저 눈치 챌 수 있는 특징은 비대칭과 얼룩이다.도자기와 같은 예술작품을 만들 때는 일반적으로 대칭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은 비대칭이 얼핏 완성도가 낮은 것처럼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7, 8세기 조선의 제작자들은 구태여 대칭으로 만들려하지 않았다. 그것은 대칭으로 만들려는 행위가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얼룩 또한 마찬가지이다. 조선의 달 항아리는 특이하게도 항아리 내부에 들어간 젓갈과 같은 것들이 그대로 새어나온다는 특징이 있는데, 그렇게 새어나온 물은 항아리의 표면을 물들이게 된다. 그렇다면 당시의 조선이 그것을 방지할만한 기술이 없던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조선은 중국에서도 인정할 정도의 도기제작기술을 갖춘 국가였다. 그런데도 이러한 문제를 그대로 놔둔 것은 그것이 그들의 정신을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은 기본적으로 유학을 바탕으로 세워진 국가였다. 또한 조선은 선비들이 주축이 되어 나라를 운영하였고, 그 선비들은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을 선택하였으며, 인위적 행위보다는 자연적 발생을 더욱 중요시하였다. 비교를 위해 중국이나 일본, 혹은 유럽의 자기를 보자. 그들의 작품은 매우 화려하다. 매우 화려하고 다양한 무늬와 색감, 형태가 관객들로 하여금 시선이 모아지도록 만든다. 하지만 달 항아리는 어떠한가. 순백의 단색, 특별히 추가한 것이 아닌 자연적으로 새어나온 얼룩, 그리고 동그란 비대칭의 형태. 그것은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하고 평범해 보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작자들이 바라는 것일 것이다.그러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선비들의 유학정신에 대해 이해해야한다. 유학자들은 기본적으로 화려한 외양보다는 내면의 굳건함을 중시하였고, 인위적인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보다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최상으로 여겼다. 공자는 외양에 대해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예에서 어긋나지 않는 선이면 족하다고 하였고, 화려하게 꾸미는 것보다는 단순한 것이 낫다고 하였다. 또한 공자가 최고의 군주로 뽑는 요, 순임금은 재위 당시 인위적인 행위를 일체 하지 않고서 국가를 운영하였는데, 백성들이 부른 배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그들 자신의 임금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공자는 그들을 성인으로 여겼고, 그의 정신을 계승한 유학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이러한 유학자들의 의지를 알고 달 항아리를 다시 보면 그 전에는 느끼지 못하던 것들을 느낄 수 있다.먼저 형태를 보자. 달 항아리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둥그런 형태를 띠고 있다. 이것은 마치 달과 같다. 달은 초승달-상현달-보름달-하현달-그믐달의 순서를 따라서 서서히 모습을 달리하고 관찰할 때마다 보이는 모습이 달라진다. 어떤 때는 완전한 원형처럼 보이고, 어떤 때는 비대칭 한 모습으로 보인다. 달 항아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관객이 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한다. 어떠한 각도에서는 마치 대칭인 듯 보이고, 다른 각도에서는 찌그러진 것과 같이 보인다. 이처럼 자연스럽고 둥그런 형태는 선비들의 순박함과 꾸밈보다는 본 모습을 보여주려는 그들의 마음자세를 엿볼 수 있게 한다.다음으로 색감과 무늬를 보자. 달 항아리의 색은 순백의 색이다. 흰색은 매우 깨끗하고 순결한 느낌을 들게 하는 색이다. 선비들은 청자가 아닌 새하얀 백자를 통해 그들이 사치보다는 검약에 뜻을 두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고자 했는데, 하지만 너무 새하얀 색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때때로 부담감을 느끼도록 한다. 그래서 그들은 내용물이 자연스레 표면에 새어나오도록 제작하여 자신의 내면을 숨김없이 드러냈다.그렇다면 과연 왜 갑자기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까지 달 항아리가 유행하게 되었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역사적인 비극이 상당한 역할을 하였으리라고 생각한다. 조선은 각각 2차례의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전반적인 사회시스템이 붕괴되어가고 있었고 숙종 대에는 경신대기근이 발생하여 백성들이 서로를 잡아먹기에 이르렀다. 또한 정치가들은 당파를 나누어 백성의 이익이 아닌, 당파의 이익을 위해 서로를 물어뜯었다. 달 항아리는 초기에는 왕실에 의해 제작되었다. 생각하기에 이것은 조선에 있는 부패한 정치가들과 스스로만을 고귀하다고 여기고 백성이 아니라 서책에만 뜻을 두는 선비들에게 하는 경고로 보인다. 선비들의 절제미와 검약미, 그리고 가림 없이 드러내는 솔직함과 같은 갖가지 선비정신이 담긴 달 항아리를 통해 그들의 잘못된 행태를 고치고자 했다고 생각한다.과연 선비정신은 무엇인가. 현대인들은 선비라는 개념을 매우 왜곡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선비충’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여 부정적인 의미와 연결 짓는다. 하지만 진실은 다르다. 선비들의 근본적인 목표는 백성들을 편하게 하고 세상을 교화시켜 대동 사회大同社會를 만드는 것이었다. 화려함보다는 검소함을 선택하고 무도함과 사익을 택하기보다는 죽음을 택하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정확히 그와 반대이다. 검소함보다는 화려함을 택하고, 타인을 위하고 공익을 생각하기보다는 사익을 위한다. 그리고 사회는 그것을 권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에 달 항아리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논어?를 읽고논어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 혹은 공자의 행적들을 제자들이 엮은 책이다. 이 책은 노론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렸으며, 학자에 따라 같은 구절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논어는 간단하면서도 심오하며, 심오하면서도 간단하다.과거에 동양에서의 논어의 위상은 현재의 성경책과도 같았다. 반드시 읽어야하는 규범이었으며, 역사적인 논쟁의 주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한 논어가 근대사회에 들어서면서, 서구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인해 반反전통이라는 운동이 형성되며 점차적으로 위상이 깎아내려졌다. 그것은 유학의 종주국인 중국을 비롯하여 유학의 나라였던 조선 또한 마찬가지였다.그런데 현대사회에 들어 논어라는 책이 다시 한 번 조명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근대사회에 들어 ‘예의’를 배척했던 결과물이 사회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절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서 사회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한 어른들이 낳은 아이들은 똑같이 자라나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지금까지는 그러한 모습이 사회발전이라는 대계에 묻혀 드러나지 못했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기본욕구가 충족되고 나니 ‘예’에 대한 관심이 속속 나타나는 것이다.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논어는 큰 지향점이 될 수 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 이것은 논어에 적힌 구절이다. 이 구절은 현대사회에서 국민들이 지향하는 ‘개인주의’라는 개념과 매우 흡사하다. 이것은 타인에게 피해를 끼쳐서 스스로의 이익을 챙기는 이기주의와는 확연히 다르다.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이기주의가 아닌 올바른 개인주의를 지향할 수 있게 된다. ‘군주는 군주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이것 또한 논어에 포함된 개념이다. 이 말의 요지는 스스로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직무가 아닌 바에 손을 뻗지 말라는 것이다. 현대사회를 보면 이 말과 맞지 않는 모습들이 넘쳐난다. 정치인부터 경찰, 군인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직무는 전혀 책임지지 않은 채,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눈을 돌린다. 이것은 국가를 망치는 요소이다. 물론 고위관료나 공무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인재는 ‘말을 듣기 좋게 꾸미고 화려하게 치장을 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공자가 ‘교언영색’이라며 경계하라고 한 대상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그에 반대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그 직무에 맞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보다는 자기소개서를 얼마나 화려하게 꾸미는지, 면접 자리에서 얼마나 말을 예쁘게 포장하는지를 살핀다. 이것은 사회분위기로 하여금 직무에 맞는 능력보다는 상대를 속이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는 것이다. 때문에 과거로부터 공자, 한비자를 비롯한 다양한 위인들이 교언영색을 경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