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실무론(전용선론) 과제-유조선에 대한 연구 및 조사(내항선을 중심으로)-소속 : 항해실습선 00조학번 : 00000000과목 : 전용선론(항해실습, 선박적하 등)제1장 서 론제2장 유조선의 개요2.1. 유조선의 정의와 역사2.2. 유조선의 화물과 관련 내용2.3. 유조선의 장비(하역장비 등)제3장 유조선의 업무3.1. 유조선의 승무 자격 및 하역, 일반 업무3.2. 각종 검사 업무제4장 유조선의 서류 및 사고사례4.1. 유조선의 서류4.2. 유조선의 사고사례(안전관련)제5장 결 론제1장 서 론현대문명에 있어서 컴퓨터, 전화, 항공기 등 여러 가지 발명품들이 인류의 생활을 풍요롭고, 편리하고, 윤택하게 하였는데, 그 근본에는 바로 석유와 화학의 발전을 통한 신 재료의 개발이 선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석유산업의 발달은 바야흐로 20세기의 놀라운 발전을 가져 주었으며, 친환경을 부르짖고 있는 21세기의 트렌드에도 석유 산업은 꾸준함을 유지해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2,000여년간 나라없이 떠돌이 생활을 해 온 유태인들이 이스라엘을 건국 할 수 있도록 한 벨푸어 선언이 이루어졌던 것에 큰 기여를 한 것이 걸출한 유태인 화학자인 하임 와이츠만의 아세톤 제조 기술이었다는 것도 석유화학 산업이 한 민족의 운명까지도 바꿀 수 있는 놀라운 산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대한민국도 산유국은 아니지만 첨단화된 석유산업시설을 울산, 여수, 대산에 대규모로 운영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석유화학산업의 대국이 되었다. 중화학 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생산된 기름의 운송은 반도 국가의 특성 상 해운을 이용하여 운송하는 것이 다른 운송수단을 이용하는 것 보다 수송의 효율성 및 비용의 이점에서 선박이 나을 것임은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통계상 세계 5위의 석유 수입국이며, 수입하는 원유의 약 80%는 중동에서 대형유조선을 통하여 들어오게 된다. 이 원유를 통하여 석유제품을 생산한 이후에 국내에 유통시킬 때에는 선박, 유조화차, 유조차, 파이프라인 등으로이 시작되었다. 20세기가 시작되는 1901년 미국의 캘리포니아와 멕시코에서 대규모 유전의 발견은 해운업자들이 선박의 연료를 석유로 바꾸는 것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직전인 1913년, 훗날의 영국 수상이 되는 윈스턴 처칠은 대영제국해군의 군함들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었고, 미국 해군도 그 뒤를 따르게 되었다. 석탄에서 석유로 선박의 연료가 변화하자 그 전까지는 많은 선원이 기관실에서 석탄을 나르고 때야 했지만, 석유는 적은 인원으로 연료의 운용이 가능해졌다. 이것은 곧 인건비의 감소를 통한 운항비용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석탄이 선박연료로 완전히 사장되고 석유가 선박연료의 전체를 차지하게 되었고, 이는 21세기가 되어서야 LNG벙커링이 도입되면서 깨지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과 이후의 급격한 산업화에 따라서 석유화학산업은 급속하게 발전하였고, 그로 인한 인류의 문명은 놀랍게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승선하게 되면 석유화물들을 많이 다루게 되는데, 여기서는 석유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정리하였다. 다음장에서는 유조선의 장비에 대해서 살펴보겠다.2.3. 유조선의 장비2.3.1. 하역장비유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들은 바로 화물 작업과 관련한 하역장비 일 것이다. 그 하역장비의 근본이 펌프이다.바로 펌프(Pump)에 대해서 정리해보겠다. 펌프란 전동기, 터빈, 내연기관 등의 원동기에 의해 구동되며, 원동기에서 기계적인 에너지를 받아 유체에 에너지를 전달해주는 유체 기계를 의미한다. 즉 펌프는 원동기로부터 받은 기계적인 에너지를 외피(Casing, 케이싱)속에 장착된 임펠러(Impeller)를 회전시켜 액체에 속도와 압력 에너지를 주고, 이 때 케이싱에 부착된 볼류트(Volute)나 디퓨저(Difuser)를 통해 속도에너지를 압력에너지로 배가시켜 원하는 곳으로 토출시키는 장치이다. 이런 기본적인 원심펌프의 원리를 바탕으로 유체를 다양한 방법으로 이송할 수 있는 펌프가 끊임없이 개발되고 활용되고 있으며, 같은 펌 레버(Levy)로 구성되어 있었다. 때로는 해머를 이용하여 밸브 안으로 핀을 박아 플러그가 회전하지만 빠지지 않도록 되어있었다. 그것은 밸브의 입구쪽으로 발견되었던 일부 구멍들로 보아 그 시대에 폭 넓게 자행되었던 물 도둑질을 막기 위해 플러그를 빼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였던 것으로 보인다. 몇몇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에서는 같은 유형의 작은 밸브들이 발견되었는데, 라바트, 지에일라, 그 유명한 이스탄불 등이다. 상기의 도시들은 앵글밸브, 혼합밸브와 역류를 막기 위한 체크 밸브를 사용하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후 중세시대 까지 밸브에 있어서 중요한 또는 혁신적인 변화과정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관의 건설, 관개시설, 수력장치 및 좀 더 정교해진 밸브들이 나오기 시작한 때는 르네상스 시대였다. 이후 근대 밸브산업은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17세기에 진입하면서 밸브 기술은 괄목할만한 발전을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1681년 데니스 파핀(Denis Papin)은 기록상 최초로 압력용기의 과압(Over pressure)으로부터 용기를 보호장치인 레버 타입의 안전밸브(Safety Valve)를 발명했으며, 1718년 데자글리에(Jean Theophile Disaqulierc)는 이를 증기 엔진에 적용하였다. 앞서 1705년 토마스 뉴코멘(Thomas Newcomen)이 처음으로 스팀엔진(Steam Engine)을 발명하였고, 제임스 와트(James Watt)가 새로운 엔진을 발명함에 따라 밸브의 설계도 더욱 진보하였다. 하지만 밸브의 생산이 대규모화하고, 독립적이면서 특정적인 생산 품목이 되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만 했다. 증기기관의 발명자인 와트는 그의 증기기관에 1769년에 이르러 현대적인 형태의 밸브를 적용하였다. 그가 제작한 장치로서 플로그 콕 밸브, 수동조작 리프트 밸브, 리프트 체크 밸브, 일종의 플랩밸브인 스윙 체크밸브가 조합되어 있으며, 아울러 증기압을 조절할 수 있는 현대의 버터플라이 밸브에 상응하는 밸브까지 달려있었다. 1펌프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서로간의 화물작업을 위하여 본선과 해양유조시설에는 카고호스가 준비되어 있거나 전용터미널에는 로딩암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내용은 다음장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그렇다면 이런 해양유조시설이 위치하는 항만이란 무엇일까? 항만법 제2조 1항에는 항만을 “선박의 출입, 사람의 승선·하선, 화물의 하역·보관 및 처리,해양친수활동등을 위한 시설과 화물의 조립·가공·포장·제조 등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국가의 기간시설이라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항만은 크게 무역항과 연안항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내항유조선을 승선하게 되면 거의 무역항에 설치된 부두 시설에서 접·이안 및 화물 작업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부두라 함은 선박을 접안시켜 화물을 하역 할 수 있는 제반시설을 갖추 구역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접·이안을 할 수 있는 시설, 즉 계류시설이 필요하며, 형식상 중력식 안벽(Gravity Type Quaywall), 잔교식 안벽(Open Type Quaywall 또는 Pipe Type Quaywall), 강판셀식 안벽(Fabricated Steel Cellular Quaywall), 디태치드 피어(Detached Pier), 부잔교(Floating Pier), 돌핀(Dolphin), 계선부표(Mooring Buoy)등으로 분류 할 수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중력식 안벽이다. 중력식 안벽은 토압, 수압 등 외력에 대하여 자중과 저면의 마찰력에 의해서 저항하는 구조로 케이슨식, 우물통식, 블록식, L형 블록식, 셀룰러 블록식, 현장타설 콘크리트식, 직립소파식의 안벽 등으로 세분되며 지반이 견고하고 수심이 얕을 경우에 유리하다. 또한 내구성이 우수하다는 장점이 있어 비교적 많이 이용된다. 두 번째는 잔교식 안벽이다. 잔교식 안벽은 상판을 각주로 지지하고 있는 형식의 안벽으로 각주로는 철봉 강말뚝 철근 콘크리트 말뚝, 케이슨 나무 말뚝 등이 사용되며, 평면배치에 따라서 해안선과 나란하게 축조하는 횡잔교와 해안선에 직적재하였다면 잔량 제거 등 탱크 세정을 깨끗하게 하고 나야 선적이 가능하다. 양하후에는 다음 화물의 선적을 위해서 반드시 가스 프리 작업을 해서 폭발성 가스를 제거하게 된다.(2) 나프타류 : 가솔린, 제트연료유를 적재한 후에는 가스 성분이 없을 것과 납 성분이 제거되어야 하며, 등유나 경유류를 하역한 이후에 나프타류를 선적하게 된다면 탱크 내부에는 전 항차 화물의 잔유물이 없어야 한다. 원유나 중유류를 전 항차에 선적했다면 나프타류를 선적하지 않는다.(3) 항공유 : 보통 민항기나 전투기에 적재하는 유종으로 엔진 형태에 따라 사용하는 제품명이 다르다. 등유를 적재한 후에는 탱크 내부에 전 항차 화물의 잔유물이 없어야 선적 가능하며, 특히 탱크 내부에 수분은 절대로 있지 말아야 한다. 나프타류, 가솔린류, 경유류 하역 후에 항공유를 선적할려면, 역시 탱크 세정을 시행하여 탱크 내부가 깨끗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원유나 중유류의 하역후에는 적재하지 않는다. 보통 민항기에서 사용하는 Jet A-1이 있고, 전투기에서 사용하는 JP-8을 내항유조선에서 주로 다루게 된다.(4) 등유류 : 나프타, 가솔린, 항공유의 적재 후에는 가스 성분이 없어야 하며, 마찬가지로 원유, 중유류 등의 하역 후에는 선적하지 않는다.(5) 경유류 : 나프타 가솔린류, 항공유의 적재 후에는 가스 성분이 없어야 하며, 등유의 하역후에 경유류를 적재한다고 하면 탱크내에 잔유물이 최대한 없는 것이 좋다. 마찬가지로 원유, 중유류 등의 하역후에는 선적하지 않는다.(6) 중유류 : 선박용 연료유로 보통 C-중유, 이른바 벙커-C가 있고, 이 벙커-C를 전용으로 수송하는 소형선박들이 국내 연안에 많이 운항하고 있다. 벙커-C 전용선에는 히팅라인의 설비가 구비되어 있고, 히팅이 용이하게 되어 있다. 국내 정유사의 주요 부두에도 이들 벙커-C 전용선박을 위한 부두와 시설이 존재하고 있다.(7) 윤활유류 : 윤활유는 적하전에 탱크에 충분한 스팀을 가하고, 탱크 세정을 깨끗하게 하여 탱크벽에 이질유.
한국군사학의 역사와 발전방향00대학교 군사학과 000서 론각 대학교에 군사학과라는 학과가 개설된 이래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 대전대학교를 시작으로 하여 경남대학교, 원광대학교, 조선대학교가 육군본부와 추가협약을 통하여 개설되었고, 그 이후에 공군, 해군, 해병대에서도 각 군의 장교양성을 위한 군 계통학과를 설치하게 되었다. 또한 2,3년제 대학에서도 각 군의 부사관 소요에 따라서 군 계통학과를 설치하였으며, 취업난과 더불어 장교와 부사관, 군무원 등 국방관련직종의 인기가 높아감에 따라서 이들 학과들은 창설초기와 달리 점점 안정되어 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본 과제물에서는 한국의 군사학의 역사를 문헌자료들을 통해서 살펴보고, 군사학이 단순한 장교나 부사관의 양성, 또는 고급공무원이나 군무원의 직능과 관련된 학문을 넘어서 건전하게 국가의 안전보장과 군사력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발전방향에 대해서 같이 살펴볼 것이다. 본래 이 글은 본래 2005년경 과제물로 작성되었던 것을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 전면적으로 수정, 보충한 것임을 서론에 미리 밝혀둔다. 그리고 추가로 관련 자료를 더 찾아보고 확인하려는 사람들을 위하여 신문 및 월간, 주간지 자료, 국회 등의 간행물, 각종 단행본 및 연구과제 등을 주로 참고하였으나, 도저히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찾았으며, 이 또한 각주에 적었음을 미리 밝혀둔다.본 론1.한국의 군사학의 발전역사대한민국은 건국과정보다 건군이 빠른 미국과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물론 임시정부나 광복군, 대륙회의와 대륙군같이 정규정부가 아닌 독립정부나 임시정부, 정규국군이 아닌 광복군이나 의용군 같은 기구들과 무장조직이 있었으나 이는 엄밀히 말해서 국가나 국군이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논의는 이 글의 주제 상 생략하도록 한다. 대한민국 국군은 이미 광복직후인 1945년 11월 11일 손원일의 해방병단을 시작으로 하여 건군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건국화를 유지하고, 전쟁을 신속히 종결시켜 다시 평화를 회복, 유지하는데 필요한 사상, 이론, 제도와 정책, 정략과 외교 및 군사력과 이의 운용교리를 총괄하는 연구분야”로 정의하였다. 군사학과가 개설될 때 육군사관학교 군사학처에서 나온 입문서인 『군사학 길라잡이』에서는 군사학을 이렇게 정의하였다. “군사학은 전쟁 및 분쟁의 본질과 성격을 연구대상으로 군사력 건설, 운용 및 유지, 그리고 기타 군사에 연관된 분야를 연구 범위로 하여 이를 경험적, 정책적, 규범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하였다.육군본부에서 2006년 발간한 『군사용어사전』에서는 군사학을 “국가안보 문제의 군사적 차원에 속하는 하나의 학문체계로, 전·평시에 있어서 군사력의 역할, 발전, 운용 및 지원문제와 국가 목표 달성을 위한 군사력의 사용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재, 지리, 정치, 과학기술, 사회심리 등 국력요소간의 상호작용 관계를 이론적,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하였다. 이 시기에는 군사학과가 개설되면서 군사학의 학문체계, 학위수여, 교육과목 등에 대해서 체계와 틀을 어느정도 잡은 시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또한 이 시기에 육군사관학교에서 주관하는 대학생 안보토론대회, 경남대학교 군사학과와 해사 군사학처에서 처음 실시한 학생-생도 군사학술세미나, 각 대학교 군사학과에서 실시했던 군사학술세미나 등이 폭 넓게 개최되어서 군사학의 저변확대 및 관심을 증대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하였음은 두말할 필요 없는 사실이다.군사학은 학문수요자의 특수성, 연구대상과 연구목적의 특수성, 진리적용의 대상 제한 및 상대성, 진리적용의 조건성 혹은 비밀성이라는 특수한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군사정권이 지속될 때에는 음지나 군에서만 관련되었지만 21세기에 들어서는 이런 특수성을 넘어서 민간에까지 확대되었던 것이다.2000년대에 설립된 한국국방안보포럼과 자주국방네트워크 같은 단체들은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활동을 하고 있다.2007년에는 국방대학교에 군사학 박사과정이 개설되었으며, 이미 개설된 군사2013년 국제 군사사학회 학술대회에 한국에서 군사편찬연구소 소장과 연구원이 참가하였다. 그리고 2019년에 국제 군사사학회 측에 군사편찬연구소가 주축이 되어서 국제 군사사 학술대회를 개최하겠다는 제안서를 제출하였고 승인받아 계획대로 국제 군사사 학술대회가 2022년 개최될 경우 우리나라는 36년만에 다시 국제 군사사 학술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한국군사사학회는 여러번 활동이 중단되었다가 재개되었다를 반복하다가 다시한번 2022년 국제 군사사학회 학술대회를 계기로 도약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군사사학회가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최근에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한국군사사학회의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역할 분담 및 활동, 협업에 대해서 명확하게 정리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해양관련 분야의 전문적 연구기관인 한국해양전략연구소도 있다. 여기에서는 해군사 및 해양가 관련 도서의 번역 및 출판, 그리고 학술논문지의 발간 및 학술논문공모전을 통한 해양분야 연구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 연구소이다. 한국해양전략연구소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한국해양전략연구소는 1997년 2월 1일 개소되어 현재는 약 25년 가까이 된 연구소이다. 설립자인 정의승 이사장이 사재 350억 가량을 출연하고, 군 원로였던 김영관 전 해군참모총장, 공정식 전 해병대 사령관 등을 발기인으로 하여 설립하였다. 2005년에는 연구소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하였고, 다양한 해양분야의 저서들을 번역 및 출판하고, 특히 학술지인 『Strategy21』을 최근까지도 꾸준히 발간하고 있다. 그 외에도 CNA와 같은 외국기관과의 협업 및 정보교환, 공동학술회의 개최, 안보특강, 모닝포럼등을 개최하고 있다.여기서 정의승 이사장에 대해서 공식적인 언론보도 등을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유는 한국의 군사학 분야 기관들 중 군이나 정부소속이 아니면서 탄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사업을 꾸준히 하는 곳이 거의 이 곳 한국 해양전략연구소 밖에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기 떄문이다. 정의승 이사장은 해군사관학교 17기로 임관하고 중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에 소위 매니아 층으로 치부되고 있는 군 관련 분야를 양지로 끌어낼 수 있는 역할을 민간대학의 군 관련 학과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이다.다만 군 관련학과들이 절대 다수가 지방대에 위치하고 있는 관계로 우수학생의 선발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수도권 및 재경지역에는 고려대학교에 설치되어 있는 사이버 국방학과가 최상위권대에 설치된 군 관련학과이다. 그 외에는 거의 다수 군 관련학과들이 지방대학에 설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물론 학벌이 절대적인 군 간부로의 능력은 아닐 것이다. 학군장교 출신 최초로 육군참모총장이 된 남영신 대장은 동아대학교 출신이고, 초창기(1 ~ 4기) 서울대학교 출신 홍순호, 고려대학교 출신 박세환, 김진호 대장과 같이 명문대학교 출신들의 대장 진급 이후에는 대학 구분없이 품성이나 자질, 능력 등으로 장군의 반열에 올랐고, 지금도 학벌에 상관없이 진급하는 장군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방대학에 군사학과나 군 관련학과가 있다 하더라도 우수한 자원이 지원할까 하고 의문을 제기할 이유는 줄어들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군사학과의 활성화와 관련해서 살펴볼 것이 군과 민간의 역할 분담의 문제이다. 군은 군 관련학과를 통해서 이미 설치된 특수학교인 사관학교와, 오랜 역사를 가지고 민간대학에 설치중인 학군단을 보완하는 성격을 갖고 운영하는 것들이 바로 군 관련학과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설치되어 있는 학군단의 학군사관후보생들이 단복을 입고 통제된 생활을 하는 것과 비슷하게 군사학과 학생들도 학과복을 입고 학교에서 어느 정도 통제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민간에서 양성 시 유리한 장점들을 제쳐두고 단순하게 군 간부 양성으로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군 간부 양성이라는 목적에서는 2013년에 군사학과 10년 창설 10년 기념 기사에서 대전대 출신 졸업생들이 동춘상과 재구상을 수상하고, 다수의 임관 우수자들이 국방부장관 또는 육군참모총장 상장을 수여 받을 정도 시에 교수진의 연구역량 및 학술참가 등도 평가요소에 높게 반영하여, 각 교수들의 연구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학생들의 역량만큼 교수들의 역량도 계속 강화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것이 장기복무에 도움을 주는 직무중심의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둘 것 인지?? 이제는 학문 중심으로 전환할 것인지도 진지하게 검토할 시기가 된 것이다.그리고 각 군 본부를 넘어서 국방부가 주관이 되어 전국의 군사학과 및 군 관련학과에 대한 표준, 체계화된 평가방식을 확립하고, 이 평가 방식을 적용하여 주기적인 평가를 통하여 우수한 학과들에 대해서는 국방부 차원의 포상과 지원을 하고, 미진한 학과들에 대해서는 국방부가 개선 명령등을 내리는 것도 좋은 개선 방안 중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셋째로 군사학의 학문적 위상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군사학은 그 자체의 학문성으로만 국내에서 30년 넘게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군사학은 군사학 자체의 학문성보다 국제정치학, 안보학, 북한학, 통일학 등 주변 학문체계와 비교하여 보아도 연구의 범위나 내용에서 구별되기 보다는 중첩되는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군사학이 종합학문적인 성격이 짙은 것이며, 이로 인하여 이론적으로 체계적이고 독특한 패러다임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부각되는 것이다. 또한 군사학은 전통적으로 우파적인 시각이 강하며, 학문분야의 공동체가 군과 관련이 있는 사람, 아직도 음지에 모여있는 매니아 층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다양하고 건전한 학문으로서의 위상이 높아지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어둠과 빛의 양면을 지니고 있는 군사정권을 지나오면서 도덕적으로 군사학이 학문으로 인정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문적으로 군사학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먼저, 학회의 활성화나 대학등에서 활성화하는 방안은 앞서서 충분히 설명했으므로 여기서는 학술지나 군사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서 군사분야의 학술.
해양실무지식 향상을 위한 학습(항해사실무 과제)케미컬탱커에 관한 연구(실습항해사용)A study on Chemical Tnakers(For A/O)2018년 10월 최초작성2020년 6월 수정, 증보차 례제 1 장 서론제 1 절 본 연구의 목적---------------------------------1제 2 절 본 연구의 구성---------------------------------2제 2 장 케미컬탱커의 기초 이해제 1 절 케미컬탱커의 정의와 역사-----------------------3제 2 절 케미컬탱커의 화물과 관련 내용------------------8제 3 절 케미컬탱커의 장비(하역 및 일반)----------------19제 4 절 케미컬탱커 승무자격---------------------------38제 5 절 케미컬탱커의 업무-----------------------------39제 3 장 케미컬탱커의 검사제 1 절 메이져검사-----------------------------------43제 2 절 기타검사-------------------------------------49제 4 장 각종서류작업의 이해------------------------------58제 5 장 결론---------------------------------------------65참고문헌소개---------------------------------------------67제1 장 서 론제 1 절 본 연구의 목적해운업은 대항해시대를 거침과 동시에 선박 건조술의 발전에 힘입어 괄목할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해운업의 발전은 동양보다 뒤쳐져있던 서구사회를 산업화와 과학화로 이끈 위대한 산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특히 20세기 들어서 2번에 걸친 세계대전의 결과로 해운업은 더욱 강화되어 갔다. 비록 항공기와 고속철도가 생기면서 해운업의 쇠퇴를 우려하기도 했었지만 대량 및 장거리를 운송할 수 있는 이점은 해운업의 쇠퇴보다는 해운업의 주력이 되는 선박기술의 발전을 동시에 있으며, 가스가 많은 화물, 냄새가 고약한 화물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특징이 있다. 이로 인하여 IMO에서는 SOLAS와 MARPOL분만 아니라 케미컬 탱커에는 화물의 안전한 수송 및 관리를 휘하여 부가적이고 좀 더 까다로운 요건을 적용하고 있다. 또한 예전과 달리 위험하거나 발암물질, 독성물질을 적재하였다가 탱크세정을 하였다고 해서 생수, 음료수원액, 쥬스, 와인등을 탱크에 싣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조금 더 살펴보면 화학성분에 따라 케미컬 화물도 유기화학물과 무기화학물로 구분될 수 있는데, 유기화학물(Organic Compound)이란 하나 이상의 탄소 원자가 다른 원소의 원자와 공유, 결합된 화학적 화합물의 큰 범주이고, 가장 일반적인 유기화학물로는 산소, 질소, 수소가 대표적이다. 무기화학물(Inorganic Compound)이란 탄소 이외의 둘 이상의 화학 원소가 결합된 물질로 거의 항상 일정한 비율로 존재하며, 탄소 화합물은 탄화물, 탄산염, 시안화물 및 몇 가지 다른 것들 제외하고 유기물로 분류된다.대형유조선들의 사고로 인하여 단일선체가 강제로 퇴출되면서 케미컬 탱커들도 화물의 다양성과 위험성으로 인하여 동일하게 단일선체가 금지되어, 이중선체를 적용받아 운항되어 지고 있다.이런 다양한 화물로 인해서, 화물준비를 위해서 이른바 탱크세정, 즉 탱크클리닝과 관련된 장비들을 별도로 갖추고 있으며, 이는 장비 편에서 알아보겠다. 케미컬탱커는 하역지에서 하역작업이 끝난 후에는 다음 화물이 정해지는 대로 그에 맞춰 탱크세정을 하고, 세정 이후 가스프리 및 탱크건조를 통하여 악취, 화물냄새 등을 제거해야 한다. 탱크세정과 관련해서 기준은 ‘무색투명(Water White)’과 ‘고순도(High Purity)가 탱크세정의 중요한 기준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무색투명은 탱크가 완전히 깨끗하고 건조가 잘 되어있으며, 전 항차 화물의 냄새나 악취등이 나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고순도라 함은 화물의 적재후에 화물의 오염 등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 개인이 갖추게 될 장비들을 P.P.E(Personnel Protective Equipment)라고 하는 개인보호장구류들을 지급받게 될 것인데 보통 다음과 같은 장구류를 지급받게 될 것이고, 위에 설명된 내용과 대동소이하나 케미컬 탱커 기준으로 다시 정리해본다.첫째 안전모, 요즈음에는 화물이나 가스등으로부터 안구를 지킬 수 있도록 내부에 보안경이 부착된 일체형의 안전모를 지급하는 추세이다. 둘째, 보안경, 셋째, 방폭형 작업복, 넷째 방음마개, 다섯째 보호장갑, 여섯째 역시 방폭형의 안전화이고 선사의 규모나 보급기준에 따라서 지급되는 P,P,E의 종류와 수는 이 정도에서 비슷하게 정해진다. 하지만 여기에 덧붙여서 부식성 화물을 다루게 되면 추가적으로 전신을 감쌀수 있는 케미컬 보호복, 케미컬 보호신발, 긴 장갑, 굴 전면을 보호할 수 있는 전면 보호경이 추가적으로 갖추어져야그리고 관공서나 다중이용시설 등에서 손쉽게 볼 수 있는 S.C.B.A(Self-contained Breathing Apparatus)라 하는 자장식 공기 호흡구가 있다. 이는 주로 화재훈련이나 화재진압을 위해서 선박에 보유하지만 케미컬 탱커에서는 탱크세정, 카고작업 중에 항상 가까운 곳에 준비해야 하는데, 케미컬 화물에는 항시 각종 독성 증기와 위험한 가스들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3항사로 승선하게 되면 안전장구들을 담당하게 되는바, 특히 S.C.B.A의 에어 실린더가 잘 충전되었는지는 항상 중요한 검사 요소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S.C.B.A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보면 이는 소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 중의 하나이며, 관련 산업에서도 사용하는 장비이다. 소화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에 선박에도 S.C.B.A가 비치되어 있는 것이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스킨 스쿠바라 불리는 스쿠바도 S.C.U.B.A로 오로지 Under-Water의 U만 한 글자 더 들어가있다. 하지만 S.C.B.A를 차고 스쿠바를 했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S.C.B.A는 Closed-Cir이 돌아갈 정도이므로 항상 선원이 UTI를 들고 확인을 할 수는 없으므로 화물탱크수위 게이지(Tank Level Gauge)가 설치되어 있다. 이는 탱크 내부에 화물이 어느 높이 까지 왔는지 확인하는 장치로, 안전한 화물 작업을 위한 중요 장비 중의 하나이다, 특히 단순히 수위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온도, 95%를 초과하였을 경우의 High Level Alram이 울고, 98%를 초과하면 Overfill Alram이 울게 연결되어 있다. 측정 방식은 탱크 내에 레이더가 설치되어서 측정하는 방식, 고전적으로 탱크 내부에 플로팅 볼이 있어서 화물이 차면 볼이 부상하면서 측정하는 방식의 2가지 형태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승선하게 될 선박에서 매뉴얼이나 지침서를 살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다만 이 플로팅식 게이지는 다른 것들에 비해서 내구성이 약하며, 정밀도 또한 떨어져서 10CM 이하의 액면을 계측하는데 부적합하다. 또한 해상에서의 동요나 계류시의 동요시에는 정확한 측정이 거의 불가능하며, 이로 인해 작동부가 손상을 입을 수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플로팅 볼이 하부까지 측정이 되도 10CM 이하의 액면 계측이 안 되므로 하역작업 막바지에 스트리핑을 하게 되면 해치 커버의 얼리지 홀(도면마다 명칭이 틀림, 통상 얼리지 홀, 사이드 글라스, 탱크 리드라고 부름)을 오픈하여 관측해야 하는 등의 애로가 있다. 또한 클로즈 로딩이나 디스차징이 강제화 된 부두에서는 마음대로 해치를 열고 작업하다가 적발되면 부두로부터 어마무시한 클레임과 고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얼리지 홀을 통해서 화물의 적,양하를 잘 확인하는 연습도 필요할 것이다.레이더 방식은 측심기와 원리가 거의 유사하다. 즉 전파를 반사시켜서 물표나 수심을 측정하는 레이더와 에코 사운더처럼, 전파를 발사하여 액위나 얼리지를 측정하는 것으로 가격이 다소 비싸지만 현재는 이 방식이 많이 사용되고 있으나 다만 고장 시에 수리 비용이 비싼 단점도 있기 때문에, 항시 유지 및 보수, 취급에 주 폐쇄여부를 확인하게 된다. 3항사는 선장의 지시를 받아 대리점 및 도선사와의 연락을 맡으며, 선적작업 시 중요한 시간을 선장 및 도선사로부터 확인 받아 기록 및 유지한다. 접안이 끝나면 1항사의 지시를 받아 2항사와 3항사는 탱크 검사를 보조하며, 매니폴드에서 로딩암 또는 카고호스의 연결을 지원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적과 관련한 라인업이 올바르게 되었는지 확인하며, 하이레벨 및 오버필 알람 테스트를 맡아서 하기도 한다. 1항사가 협정이 끝나 선적작업이 시작되고 정상 레이트로 작업이 진행되면, 각 당직사관은 자기 당직시간에 투입되어 정상근무를 하게 되며, 1항사의 지시에 따라 화물작업을 진행하게 된다.하역작업 중의 업무도 별반 다를것이 없다. 선적과 다른 점은 샘플 채취 작업이 조금 더 까다롭다는 점이며, Surveyor의 계측에 2항사 또는 3항사가 보조를 하게 되는데 검정회사 또는 항구마다 분위기가 틀린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염방제 장비 및 소화장비, 안전장비들을 부두의 요구에 맞게 잘 준비해야 하는 것도 추가일 것이다. 하역작업 후에는 1항사의 지시에 따라 탱크 검사를 보조하기도 하며, 3항사는 특히 서류 및 출항준비, 대리점 및 도선사와의 연락에 만전을 기울여야 한다. 국내항을 운항하는 내항 케미컬 같은 경우는 선장의 조선 성향이나 성격에 따라서 예인선을 호출하지 않고 접, 이안하는 경우도 더러 있으며, 출항시간이 확정되면 줄잡이도 시간에 맞춰서 잊지 않고 섭외를 해야 하는 것이다.실습사관으로 올라가게 되면 처음에는 외국 부원들과 다니면서 사투리 비슷한 영어를 들으면 고생하게 될 것이다. 이 때 알아두고 같이 일해야 할 부분은 선적 및 하역시 라인업의 차이점, 라인업시 유의사항, 로딩암 및 카고호스의 연결 및 분리시 해야할 일 등을 집중적으로 봐야 하며, 3항사나 2항사를 따라 다니면서 준비해야 할 것, 특히 샘플링 및 U.T.I 게이징 하는 노하우를 습득하는데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항해중이나 정박중, 수리중에는 일반 선박과 다름없으나 .
해양실무지식 향상을 위한 학습국가안보를 위한 승선근무예비역 제도 연구A study on Boarding duty reserve for Korea’s National Security2020년 5월목 차제 1 장 서론제 1 절 본 연구의 목적---------------------------------1제 2 절 본 연구의 구성---------------------------------3제 2 장 병역제도의 기본 이해제 1 절 병역제도의 정의--------------------------------4제 2 절 관련된 한국 병역제도의 변천과정-----------------6제 3 절 역사속의 해운의 중요성과 교훈------------------12제 4 절 승선근무예비역 제도 이해----------------------20제 5 절 최근 논란과 이슈 정리-------------------------23제 3 장 국가안보와 승선근무예비역 제도제 1 절 국가안보의 정의와 한국안보-------------------25제 2 절 승선근무예비역 제도의 중요성-----------------34제 4 장 승선근무예비역제도 유지와 합리적대안의 모색-------41제 5 장 결론---------------------------------------------45참고문헌소개---------------------------------------------47제1 장 서 론제 1 절 본 연구의 목적해운산업의 발전과 국가발전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대한민국은 거의 100% 가까운 수치로 물동량을 해상수송에 의존하는 국가이다. 반도국가 이지만 북한과는 완전히 단절되어 있으므로 해양국가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런 특징 속에서 그 동안 국가안전보장의 한 축인 병역제도 하에서 승선근무예비역 제도를 효과적으로 운영하다가 저 출산과 병역자원의 감소를 이유로 축소 또는 폐지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어서 사회적 문제가 되었고, 이는 또한 남성에게만 과도하게 부과된 의무인 병역 중에 정식으로 인가되었고, 당시 미국의 대통령인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는 “킹스 포인트는 육군의 웨스트포인트나 해군의 아나폴리스처럼 상선대에 근무한다”고 명시하여서 상선대 근무의 강제성을 공식화 하였던 것이다. 또한 킹스 포인트에도 1974년부터 여성 생도들을 입교시키기도 하였다. 킹스 포인트는 해양교육 분야에 있어서도 세계적인 수준의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킹스 포인트의 시스템 또한 한국의 제도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잠깐 살피고 넘어가는 것이다.1959년 3월 1일 국방부령 제37호인 해군예비원령 시행규칙이 정식으로 시행되었고, 이 규칙 제4조 1항에서는 “국방부장관이 소정의 군사교육을 실시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학교에 대해서는 군사교육을 폐지할 수 있다”고 명시하여, 각 학교마다 다른 수준의 교육이 실시되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해양대학교를 통해서 양성된 해기인력의 관리는 해군과 동일한 수준으로 유지 및 관리되었기 때문에 동 시행규칙 제6조에서 함정실습을 할 것을 명시했던 것이다.대체복무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3년 국가의 기간산업육성, 국위선양 및 병역 잉여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을 위해서 현역병 충원에 지장이 없는 범위내에서 지원할 수 있도록 이른바 ‘특례보충역’으로 최초에 도입되었다.1978년 제4공화국 말기에 병역법을 개정하면서 개정 병역법 제62조의 2항에서 “예비역 장교에 편입된 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해당 전문분야별로 국가가 지정하는 업무에 3년간 종사한 때에는 보충소집에 의한 실역복무를 마친 것으로 본다”라고 규정하면서, 해군예비역장교제도의 정비가 이루어졌다.그러다가 1981년 제5공화국의 출범과 더불어 해군 예비원령은 폐지되고 병역법에 통합되었다. 동년 12월 31일 병역법을 다시 개정하면서 1978년 개정한 동 법 제62조의 2항을 “해양 또는 수산계의 대학이나 전문대학에서 군사교육을 받고 예비역 장교 또는 하사관의 병력에 편입된 자가 3년간 승선근무에 종사한 때는 보충소집에 의한 실역복무를 마친 병력과 물자를 일본에서 부산항으로 수송하는 임무였다, 그 이후 월남전쟁 기간 동안 MSTS는 MSTS 사령부로 다시 명칭이 바뀌고 5,400만 톤의 전투 장비와 보급품, 그리고, 8백만 톤의 연료를 수송하는 업무, 병력수송의 업무를 담당하였다.그 이후 1970년데 들어 MSC로 확대 개편된 것이다. 냉전시대 말기 까지 미국 국방부에 해상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걸프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수송업무에 종사하였다. 이 사령부의 임무는 해상수송을 통한 군수지원 및 전쟁지속능력의 유지, 해군과 유관기관의 협력, 전 세계적인 수송능력의 구비등을 주 임무로 명시하고 있어서, 우리의 국군수송사령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기구의 사령부는 미 해군의 핵심기지 중의 하나인 버지니아 주 노포크에 위치하고 있어 연관된 해군 기관들과 유기적인 협력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5개의 지역사령부를 유지하고 있고, 극동지역 사령부는 싱가폴에 위치하고 있다. 반면 우리 국군수송사령부는 경기도 과천시에 위치하고 있어서, 3군 본부가 있는 계룡대나 또는 국방부와 합참이 있는 서울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다.국내의 사례를 살펴보면 한국전쟁 기간 동안 참전한 비군인 민간인들은 약 100만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노무자, 학도의용군, 국민방위권, 군속, 유격대 등으로 본인이 처한 상황에 맞게 참전함으로 조국 수호와 국가의 위기극복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중 약 2,500만 톤의 물자를 미국으로부터 수송했는데, 이 중 95%가 해상운송, 5% 정도가 항공운송에 의존했다. 전체의 해상운송의 물동량 중 80%는 미국국적의 상선이 담당하였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참전한 군함 261척 중 한국해군은 겨우 15척으로 참전하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 해상운송의 주요거점인 부산항을 지키기 위해 백두산함이 개전 당일 적의 대형 수송함을 격침시킴으로 해상 운송의 거점인 부산항을 지켜낸 점이 초기 한국전쟁의 전사에서 높이 평가되는 부분이다. 즉 해상교통로의 보상자와 여러 제도를 없앤다고 하고, 이공계 특례를 없앤다고 하자 우수한 남성들이 이민을 가겠다고 하는 상황이 폭증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정리해보면 승선근무예비역에 대한 무지에서 초래되는 잘못된 인식들, 그리고 병역 문제와 연관하여 제기되는 평등과 의무, 보상의 기울어진 운동장, 그리고 병역제도와 관련하여 팽배해있는 불신과 이기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제기되면 무조건적으로 제도를 폐지하는 역대 정부의 아주 일관된 행태, 예를 들면 연예병사 폐지, 방위 폐지, 스리랑카에서 대체복무 중 사망사건이 발생하자 결론은 KOICA를 통한 대체 복무제 폐지.... 등이 그런 예이다. 그러므로 남성에게만 강제된 병역의 의무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인 여성 징병제 및 여성의 국방참여강제화 방안, 그리고 승선근무예비역 유지를 위한 국민과 정부에 대한 설득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고 병역문제란 거대한 이슈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들중 승선근무예비역 유지에 필요한 것들을 추려내서 이슈화 시키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제 3 장 국가안보와 승선근무예비역 제도제 1 절 국가안보의 정의와 한국안보의 상황동서고금의 역사를 살펴보면 세계의 패권을 쥔 나라들은 모두 바다를 통한 국가이익의 수호 및 국가안보를 유지했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16세기 스페인, 그 이후 영국, 영국의 빈 틈을 파고 든 네덜란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완전한 유일의 패권국이 된 미국이 그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반면 동양에서 지역패권국인 중국의 왕조들은 쇄국정책과 해금정책을 펴다가 멸망과 쇄락의 길로 접어들었다.그러므로 국가안보와 해양력은 빠질 수 없는 관계이다. 물론 국가안보라는 것 자체가 광의의 개념이고 그 자체가 군사학이나 안보학, 국제정치학안의 큰 분야로 분류되지만 여기서는 승선근무예비역과 관련 있는 해양 분야와 안보의 상관관계와 정의, 그리고 최근 한국안보의 상황을 살펴볼려고 한다.주변국들의 정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먼저 일본은 전통적으로 아시아에서 이다. 부원들을 용병개념으로 외국인을 사용한다고 해도, 선장/기관장/1∼3항기사 8명은 한국선원으로 승선시켜야 할 것인데, 결국 인원도 부족해지는 것이다. 국가의 비상을 상정하여 만든 제도들이 엉터리로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병력은 감축한다고 하면서, 징병자원이 부족하니 대체복무를 폐지하겠다고 하는 앞뒤 안 맞는 행동이 계속되고 있으며, 또한 주변의 핵 보유국과 군사대국들이 위치한 항시 위험한 상황속에서 국민의 생활과 국가의 존립과 관련한 문제를 졸속으로 처리하는 위험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장에서는 승선근무예비역 제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앞에서 살핀 내용들에 덧붙여서 간략하게 살펴보겠다.제 2 절 승선근무예비역제도의 중요성승선근무예비역은 단순한 병역자원뿐만이 아니다. 만약에라도 우리나라 선원이 점점 감소되어 외국 선원에 의존하게 된다면 전시, 준 전시 등의 상황발생시 이들이 순순히 한국에 입항해서 작업을 할려고 하겠는가? 이미 일반적인 선박에서도 외국선원과 한국선원이 혼승하거나 다국적의 선원들이 혼승하면서 만국공용어인 영어의 구사와 이해에서 벌어지는 오류, 외국선원들의 수동적인 업무태도, 종교의 차이에서 벌어지는 음식문제와 기도문제(특히 무슬림), 휴식시간을 둘러싼 문제, 나이와 직급차이에서 벌어지는 문제가 이미 존재하고 있고, 심지어 선상반란도 일으켜서 선장과 선원들을 살해한 전력도 있는 것이 조선족 선원들과 베트남 선원들인데, 이런 상황들을 진지하게 고려해 본다면 외국선원들이 순순히 한국정부의 통제와 선장과 기관장의 통제를 따라서 전시 수송업무를 잘 하겠는가? 이것에 대해서 명확하게 대답할 사람은 아주 적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항시 전쟁의 위협이 존재하는 한국에서 자국선박이 없이 외국선박에 의지하여 운송을 한다고 하면, 그 막대한 운임비는 고스란히 외국으로 유출될 것이다.실례를 하나만 살펴보자. 2011년 3월 11일 일본의 동북부 해안을 덮친 대규모의 쓰나미로 센다이, 하치노혜 등 일본 동북부의 7개 항만 및 주요시설이 직진다.
독 서 감 상 문성명ㅇㅇㅇ제목작은꿈을 위한 방은 없다학과/학번O O O / 20XXXXXXXX지은이시몬페레스, 윤종록 번역유태인의 나라 이스라엘, 여러 가지로 우리에게 가까운 의미가 있는 나라이다. 이 책은이스라엘의 수상과 대통령을 역임하시고 얼마 전 서거하신 시몬 페레스 전 대통령님의회고록이며, 이스라엘의 현대사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시몬 페레스 대통령의유,소년 시절 폴란드 바쉬네바에서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 팔레스타인에 이주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에서 평화로 가는 길까지 이스라엘의 70년 역사를 시몬 페레스란 인물의관점과 이스라엘을 연결시켜 이야기하고 있다. 유태인 대학살을 피해서 이주해 온 시몬페레스 청년은 어렵고도 힘든 나날을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보내게 된다. 그 때 청년 페레스는 이스라엘의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 구리온(초대 수상)을 만나서 그와 함께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청년 페레스가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반이자 바탕이되었다. 여담이지만 벤 구리온은 수상직에서 완전히 퇴임한 이후에 소데 키부츠(집단 농장)로 하야하여 여생을 농사를 짓다가 서거하였다고 한다. 팔레스타인에서 페레스는 여러가지 일을 하고 경험을 쌓는다. 비밀무장조직인 하가나에 가담하기도 하였으며, 집단농장을 지키는 일, 우유를 짜는 일 등을 하였다. 거기서 그는 모세 다얀과 같은 훌륭한위인들이자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는 그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 그의 청년 시절은유태인들의 민족적 비극인 디아스포라를 끝내고 2000년 가까운 시간만에 유태민족의국가를 회복하고 건설하던 시기였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 전쟁을 하고, 국가를 지켜야하는 중차대한 업무를 젊은 시절부터 하고 살아야 했다. 이스라엘의 건국선언을 한다고해도 생존확률이 절반밖에 안 된다는 걸 알고도 독립선언을 강행하고, 그 다음부터 바로전쟁을 해야 했던 그의 모습에서 고뇌하는 청년의 모습을 느낄수 있었다. 흡사 그로부터2년이 지난 후 한국전쟁을 겪어야 했떤 신생 대한민국의 모습이 합쳐지며 많은 울림을주었다. 그 이후에 그는 이스라엘의 비밀 핵개발을 주도했다. 지금도 이스라엘의 핵무기보유여부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그는 이 자서전에서 비밀 핵개발을 시인하는 듯한 뉘앙스로 기술을 하였다. 결국 안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그의 모습을 보면서 잔잔한 감동과 진취적인 기상을 느껴볼 수 있었다. 사족이지만 페레스대통령의 이 책을 읽으려면 어느정도 이스라엘의 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것을 또 알게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재건하고 부흥시키는 동안 남들이 거부하고 불평을 일삼을 때 항공산업과 전자산업을 1950년대와 1960년대 육성, 부흥시켜야 한다고강력히 주장하고 동료들을 설득시키는 그의 모습에서 선견지명을 가지고 도전하고 도전하는 청년의 모습을 보았다. 핵 개발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도 찾아 볼수 있었다. 나는 이스라엘식으로 부인도 긍정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자력방위를 위한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결론을 짧게나마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 유명한 엔테베작전의 이야기를 당사자의 입장에서 기술한 것은 제법 흥미진진했다. 그 유명한 현 이스라엘의 수상 베냐민 네타냐후의 친 형인 요나단 네타냐후가 전사한 작전이면서, 세계의특수작전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전으로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그작전을 당시 국방상으로 관여했던 페레스 대통령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적혀있다. 거기서페레스 대통령이 인질을 구출하기 보다 테러범의 요구를 들어주고 인질을 교환하자고하는 내각의 각료들을 설득하면서 ‘판타지 위원회’라는 특별위원회를 만들어서 여러 날을신경을 곤두서가면서 작전을 입안하고 토의하는 모습에서 국민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의 모습이 잔잔하게 다가왔다. 인질구출작전계획의 초안을 작성해서 조용하게 군사적 천재인 대 전략가 모세 다얀을 찾아가서 조용히 설명하자, 모세 다얀 장군은 무조건 작전을 수행해라고 하면서 그를 격려해주는 모습에서 나라와 민족의 운명앞에참된 우정과 충성을 나누는 모습에서 한국의 현재 모습을 대조해보면서 깊은 한 숨만나올 수밖에 없었다. 작전의 수립기간 동안 치통을 참아가면서 일을 하던 모습, 그 치통을치료해주는 의사선생님의 아들은 사이렛 메트칼 특공대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국방상에게 일체 아들의 안위나 작전의 여부를 물어보지 않고 이빨 치료만 묵묵히 했다는 페레스 대통령의 글을 보면서, 한국의 부모들과 유태인의 부모들이 이리도 차이가 날 수 있는가 하고 새삼 이스라엘과 유태민족의 저력을 느끼기도 하였다. 페레스 대통령은 작전의 성공과 동시에 요나단 네타냐후 중령의 전사소식을 들었지만 이내 슬픔을 극복하고다른 일을 위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 이후 그 유명한 노,사,정 협의를 이끌어내기위해서 수상으로 첫 임기를 수행하는 모습을 읽었다. 태생부터 사회주의자들, 즉 동유럽에서 공부하고 살던 유태인들이 주축이 되어 건설한 나라였다. 페레스 대통령의 이 책을읽기전에 이미 나는 별도로 이스라엘에 관한 책들. 테오도르 헤르츨의 ‘유대인국가’와같은 책들부터 읽어보았기 때문에 페레스 대통령에 이런 모습을 이해하기가 쉬웠다.내각의 각료들, 그리고 국민들을 꾸준히 설득시키고, 노조, 회사, 정부의 대 타협을 이끌어내고, 결국 이것이 오늘날 창업국가이자 스타트-업 국가인 이스라엘을 만드는 뿌리가되고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을 보며 당대에는 비난을 받고 많은 오해를 사지만 결국 그끝이 훌륭하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페레스 대통령은 기술하지 않았지만, 소련의 붕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