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와 중세에는 아동들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았다. 출생률이 점점 낮아져 인구절벽기를 맞이하며 아동들은 미래를 이끌어 갈 주역으로 보물처럼 취급받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동권리사상은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고대사회는 아동복지를 위한 이념이나 실천이 거의 없었던 시대로 아동을 부모나 부족의 소유물로 보았다. 사람의 가치가 부족이나 종족 혹은 집단의 생존과 보호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인지에 따라 결정되었기 때문에 아동기는 무시되었다. 아동의 생명을 경시하여 제물로 바치거나 자녀 의 생사권이 부모에게 있었다. seneca나 aristotle, 유스티니아 법전에 따르면 인구조절을 위해 영아살해와 기아는 중요한 수단이며 기아보다 낙태가 더 나은 방법이고 가난한 부모에게는 자식을 팔 권리까지 허용해 왔다.중세사회에 들어서며 기독교와 인본주의 사상이 발전하면서 인명존중을 하게 되고, 아동에 대한 잔인한 대우는 더 이상 받아들여질 수 없게 되었으나 이것은 아동의 권리를 특별히 보장한다기보다는 어른과 다름없는 인권보장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기독교적 관점에 의한 자선사업의 일환으로 아동복지가 전개되었으나 사회적 부담이 되는 아동에 대한 대안으로 아동노역장, 도제제도와 같은 제도가 고안되고 실시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교회를 중심으로 한 종교단체에서 아동을 보호했으나 아동의 인권을 무시 하고 아동의 노동력 을 착취하는 등의 문제점도 적지 않게 발생했다. 또한 아동의 지위는 엄격한 신분제의 영향으로 부모의 지위에 따라 그 보호의 차원이 달랐다. 높은 계급의 아동일수록 혈통계승자로 존중되었고 하류계급의 아동 은 농노로 무가치한 생명으로 취급되어 노동력을 착취당했다.산업화가 급격히 이루어진 근대에는 도시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빈곤, 실업, 노사문제, 주택문제 등 다양한 사회문제가 발생했고 아동중심시설이 생겨났다. 결정적으로 엘리자베스 구빈법을 제정하면서 아동의 문제들을 국가가 해결하기 위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 법에 의해 보호대상아동들이 위탁보호 및 거택보호를 받았고, 이후 300여 년간 구빈사업의 근간이 되었다.20세기부터 아동은 아동으로서의 독립된 존재를 인정받게 되었다. 아동복지의 대상을 요보호 아동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아동으로 확대하는 보편주의 아동복지제도를 도입했다. 아동복지를 담당하는 전문가가 양성되어 현장에서 복지를 실천하고 아동 개인에 초점을 두었던 부분적 접근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아동을 지지해 주는 가족체계에 대한 포괄적 복지로 확대, 빈곤, 전쟁, 질병 등으로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동의 문제가 더 이상 한 국가만 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공동 대처를 요구하는 문제라는 인식이 범세계적으로 형성되었다.
개인과 사회의 정신건강에 따른 상호영향나의 정신 건강수준을 진단하려면 먼저 건강이라는 사전적 의미에 대해 정리하고 고찰해봐야 한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건강이란 신체적, 정신적 질병에 걸려있지 않은 상태만이 아니고 만족스러운 인간관계와 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의 상태이며 그것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음을 뜻한다. 건강에 대해서는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아프면 병원에 다니면서 팔 다리가 가동범위 안에서 원만하게 움직이는지 장기들이 제 역할을 다하는지, 잘 먹고 잘 보고 말은 잘 하는지 등의 신체적인 부분만 생각했었고, 정신적인 부분은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만족스러운 인간관계를 지니고 있는가? 또한 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의 상태인가? 하면 그렇지 못한데 그렇다고 내가 불건강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으니 좀 더 진중하게 고민 해 볼 일이다.만족스러운 인간관계를 지닌 사람이 이 세상에서 몇 퍼센트나 될까? 누구나 실수를 하고 누군가와 다투고 누군가와 멀어질 것이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자신의 인간관계를 완벽히 만족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통달한 사람이거나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일 것이다. 나도 내가 좀 더 성숙했더라면, 혹은 너그러웠더라면 하고 지난 과오들을 후회한다. 만족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에 달린 것이라서 주위에 인간관계를 하나도 맺지 않고 있어도 자기 혼자서는 만족하는 사람과,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많은 사람들 속에 있지만 자신의 마음 속에서는 후회하거나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 둘 중 누구의 정신건강이 좀 더 훌륭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사회적으로 일정한 수입이 있고 이 상태를 유지 할 수 있지만 우울한 사람과 당장 내일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지만 마음은 풍족한 사람이 있다면 세계보건기구의 건강기준으로는 누구의 손을 들어 줄 것인가? 그래서 나는 저 정의로 내 정신건강을 판단하기 보다는 다른 여러 가지 개념을 차용해서 고찰 해 보기로 했다.정상에는 여러 가지 개념이 있다.1) 건강한 것이 정상이라는 개념 : 건강과 정상을 동일하게 바라보는 의학적 접근법. 건강하다는 것은 어떠한 증상이나 징후가 없는 상태를 의미하므로 건강이란 최적의 기능 상태라기보다는 합리적인 기능 상태를 의미한다.2) 이상(理想)적인 것이 정상이라는 개념 :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요소가 최적의 조화를 이루어 최적의 기능을 발휘하는 상태를 말한다.3) 평균적인 것이 정상이라는 개념 : 정상과 비정상을 정상분포곡선안에 존재하는가에 따른 관점에서 이해하는 개념을 뜻한다.4) 변화의 과정이 정상이란 개념 : 정상을 일정한 시점에서 단면적으로 보기보다는 변화나 과정으로 보는 것. 예를 들면 에릭슨의 심리사회발달이론은 점성원칙에 근거해 있는데, 사람은 인생의 8단계를 통해 성숙한 기능에 도달한다고 하였다. 이는 과정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에 문제가 없을 때 정 상으로 간주한다.5) 기능수행이 정상이라는 개념 : 어떤 사람에게 약간의 신체적인 고통이 있어도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데 커다란 장애가 없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으면 정상으로 보는 개념이다.이 중 나는 기능수행이 정상이라는 개념에 가장 동의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로 그 본질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사회 속에서 지니는 의미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련의 예로 안경을 쓰는 사람도 엄밀히 따지면 경미한 시각장애를 지니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지만 안경이나 렌즈 등 도구의 사용으로 생활에 큰 지장이 없기 때문에 장애로 치부하지 않고 건강하다고 정의한다. 이 것은 일의 수행능력이나 고통에 역치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밀 수 있다. 특정한 일을 해내야 할 때 누군가에게는 고통스러워 포기 했던 일이라도 그 만큼을 견딜 수 있는 누군가에게는 해내는 데 무리 없는 일이며 이것은 그 사람이 불편하더라도 결국 수행을 해 냈기 때문에 생활에는 문제가 없고, 정상이며 건강하다고 취급한다. 다시 돌아와서 이것을 정신건강의 경우에도 적용해보면 각자 아프고 힘든 부분이 있더라도 사회 속에서 제대로 역할을 다 해낼 수 있다면 이것은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나는 썩 만족스러운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고 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의 상태이며 그것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능력도 충분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건강하다. 내 과오를 뉘우치며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며 이 사회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내 개인의 정신건강을 이럴진대 더해 우리사회 전체의 정신건강 수준은 어떤가 알아보자.건전한 정신건강의 조건1) 자기존중과 타인존중을 할 줄 아는 인간에 대한 자세2) 자신과 타인이 지닌 장점과 한계에 대한 이해와 수용에 대한 자세
1. 자원봉사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기술하시오.자원봉사의 가치는 크게 개인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 두 개의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개인적 가치가 존재의 가치와 의미, 기술과 지식을 통한 학습의 보람, 새로운 학습의 욕구의 창출, 자원봉사자의 자존 의식과 정신 건강의 증진, 인격적 성숙과 발전, 애정의 증가, 인간관계의 개선에 목적을 두며, 개개인의 미시적인 관점에 좀 더 치중한다면, 사회적 가치는 국가 행정에 대한 보충적 역할, 참여 의식의 증가, 사회와 개인 발전, 건전한 여가선용, 사회통합의 기능, 복지사회로의 발전, 각종 사회기관의 업무의 확대 등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 도움을 준다는 거시적인 관점이다.자원봉사의 사회적 가치를 사회봉사의 4가지 이념에 따라 분석해보았다.1. 인간존중 :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가진 사람이 가지지 못한 사람을 돕는 자선과 같이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닌 함께 살고, 서로 배우고 같이 성장하는 것을 의미이다.흔히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말을 한다. 이 같이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으며 서로의 존엄성을 지키기 때문에 동물과는 그 차이가 있다. 모든 부분에서 뛰어난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문명의 발달과 산업화를 거듭하면서 인간은 더욱 세분화 된 부분을 각자 담당하고 있다. 거대한 사회전체를 하나의 개체로 인식한다면 인간은 각자의 특징과 장점에 따라 분업화하여 움직이고 있다. 자신의 장점이 남에게는 단점이 될 수 있으며, 일방적으로 뛰어난 한 사람이 도움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도움을 서로 주고받으며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매커니즘의 중심에 자원봉사 또한 위치하고 있다.2. 개인의 독립성 보장 : 개인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로 자원봉사자와 수혜자가 상호간의 의사소통과 협조, 동등한 참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자원봉사의 관계는 한 쪽만 계속해서 수혜를 받고 한쪽은 제공만 해야 하는 관계가 아니다. 그렇게 때문에 받는 사람도 언제든지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주는 사람역시도 자신의 호의로 봉사를 했고, 봉사를 받는데에도 떳떳해질 수 있다. 이는 우리 옛 전통인 두레, 향교, 계 등에서도 찾아 볼 수 있으며 이는 이름만 다른 자원봉사의 형태이다. 두레, 향교, 계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온 선조들의 생활에 지혜라고 할 수 있다. 국가에서 제공가는 서비스에 구멍이 날 경우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에게 더 양질의 복지를 제공 할 수 있다. 또한 내 이웃의 복지에 참여하고 서로 관심을 가짐으로써 더 긴밀하고 끈끈한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 한다.3. 개별성의 보장 : 개인에 따라서 독특한 특성과 니즈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로 자원봉사 수혜자들의 각각 독특한 특성과 니즈를 지닌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서비스를 제공하여 한다는 의미이다.사회가 점점 발전해 나갈수록 사회전체의 문화수준이 올라가고, 기본 의식주 충족에 더해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복지의 범위가 늘어나고 있다. 한정된 국가나 지자체의 자원으로는 이들 모두에게 만족할 만한 서비스가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허점을 자원봉사가 메워준다. 봉사를 받는 개인이나 집단을 돕고 사회 전체적인 면에서도 비공식적 원 조망이나 사회공동체가 수행하였던 역할을 대신하여 사회적 통합과 안정을 유지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사회적응을 돕고 일탈을 막는데 도움을 제공한다. 시민단체 같은 비영리 단체의 자원봉사는 은퇴한 교사나 경찰, 운동선수, 사회복지사 등의 고급인력이 전문적인 서비스를 무상 제공하기 때문에 받는 사람도 안심하고 복지를 받을 수 있으며 봉사를 하는 사람도 자신의 능력을 사장시키지 않고 계속해서 키워 나갈 수 있다.4. 사회적 연대성 : 사람의 문제를 개개인의 책임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회적 연대 부족으로 발생하는 사회문제에 대해 우리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모두가 해결 하도록 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현대 사회는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당장에 내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문제는 내 이웃의 문제이며 이것은 언제든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것은 기업 자원봉사 활동에서도 볼 수 있다. 기업 자원봉사 활동은 기업이 임직원의 자원봉사활동을 정책적으로 유도하며, 시간과 기술을 지역사회에 제공 하고자 하는 임직원 및 퇴직자로 자원봉사활동을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활동으로 표면적인 모습만 보면 기업입장에서 일방적인 손해로 보인다. 그러나 기업은 자원봉사를 제공함으로써 그 지역사회에 속할 기회와지지 그리고 좋은 이미지를 얻게 되며 이러한 이미지는 기업의 이익 증대에도 유의미한 결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기업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소속된 몫을 담당하기 위해 ‘기업시민’이라는 계몽된 기업윤리를 실천하고, 이것은 기업과 지역사회가 상생할 수 있는 결과를 불러온다.2. 사회통합 기능의 가치를 실현하는 자원봉사활동의 사례를 설명하고, 사회통합 기능의 가치를 저해하는 요인과 향상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기술하시오.현대 사회는 과거보다 사람들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다양한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여러가지의 이익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이익집단들은 제각기 자신의 집단 혹은 개인의 이익을 주장하면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게 되는데 여기서 사회통합이라는 것은 이러한 다양하게 갈라진 구성원들의 목소리나 가치관 같은 것들을 한 곳으로 모은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 청년들이 취업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때, 그것에 대한 국가차원의 정책을 실시하라는 목소리가 나오게 될 것이다. 이때 여러 가지 사회복지로 그러한 욕구를 채워준다면 그런 목소리는 나오지 않겠지만 국가 혼자서 해결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재능기부’라는 말이 언제인가부터 익숙하게 사용되고 있다. 재능기부란 전문 재능을 공동체에 제공하는 자원봉사활동이라 할 수 있다. 자원봉사활동은 궁극적으로 ‘더불어 살기 좋은 사회 만들기’를 지향하고 있다. 다만 자원봉사의 대상이나 권역에 따라 그 범위가 다를 수 있다. 특히 전문직 자원봉사는 사회통합에 필수적인 요소며, 일반적인 자원봉사활동과는 다른 몇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우선 전문직의 재능기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활동이 될 수 있다. 전문직은 자신의 위치에 따른 책임을 자각하고, 사회적 약자를 돕거나 공동체의 선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당연한 의무이고, 이러한 문화를 형성할 책임도 수반한다. 둘째, 전문직 자원봉사는 전문적인 지식을 활용함으로 자원봉사활동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 셋째 사회계층의 통합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다. 대개의 전문직 종사자들은 안정된 가정 및 직업생활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은 계층으로 대체로 높은 지식과 사회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복지서비스 이용자는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전문직 자원봉사자를 자신의 인적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며, 전문직 종사자는 사회적 책임성을 이행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북한 사회의 이해’ 수업을 선택하고 나는 평소라면 절대 보지 않았을 주제의 책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교내 도서관에도 비치되어있지 않았고, 집 근처의 도서관에도 없어서 고민을 하다 초읍에 있는 시민도서관까지 발걸음을 하게 만들었는데, 책을 다 읽은 지금에는 한 권쯤 소장했더라도 괜찮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상을 말하기 전에 내 정치성향을 밝히자면 나는 우파성향이 강하다. 앞에서 절대 보지 않았을 주제라고 한 것도 역시 이 이유 때문이고, 북한에는 강경책을 펼쳐야한다는데 동의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도 굉장히 많은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의 작가가 사실만을 말하는지, 아니면 이 작가도 북한의 사람들에게 속아 잘못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인지를 말이다.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이 책의 작가도 끊임없이 의아해 했다. 책의 작가 역시 보수파에 가까우며 북한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자신이 만난 북한사람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고 상냥하며 소위 ‘사람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작가는 세 차례의 여행(‘재미동포 아줌마 또 북한에 가다’에서는 후에 더 여행하게 되겠지만 내가 읽은 이 책에서는 총 3번으로 기술되어있기 때문에 이렇게 쓴다.)을 통해 북한에 대한 인식을 점점 바꿔나갔다. 그래서 나도 이 책을 써져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고, 북한에 대해 상당부분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나는 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반공사상을 굉장히 많이 강요받아온 부모님세대와는 달리 대부분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초등학생 때 참여정부가 정권을 잡았으므로 북한에 대한 거부감은 내게 주입된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판단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매우 편협한 시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부의 보도를 의심 없이 믿었으며 북한 인민은 항상 굶주리고 압박받고 있으며 그 곳에서 도망치고 싶어 하지만 기회가 되지 않아 그 곳에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속의 북한은 생각보다 자유롭고 관대했으며 인민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만족하고 살고 있었다.여러 가지에 놀랐지만 가장 놀란 부분은 첫째로 북한의 교회와 절이다. 우리 상식으로는 북한은 김일성만을 섬기며 다른 종교 활동은 배척한다. 라고 알고 있다. 나도 이제까지 그렇게 생각했고 북한에서는 종교활동이 이루어지더라도 아주 음지에서, 마치 조선말기에 천주교처럼 많은 박해를 받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평양은 한때 바티칸으로부터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다고 한다. 책의 저자 신은미씨는 기독교인으로써 평양 시내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는 봉수교회를 다녀왔고, 예배에도 참석했다. 저자의 남편도 의아하게 여겨 ‘여기가 진짜 교회입니까? 가짜교회입니까?’ 라는 다소 당돌한 질문을 목사님께 하기도 했지만 목사님은 웃으며 하루빨리 통일이 되기를 기도한다. 라고 답했다. 묘향산 보현사의 스님 역시도 절에서 조용히 종교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으며 그에 대한 당의 간섭은 없었다.두 번째는 북한의 연애결혼이다. 그동안의 인식은 북한에서 공개연애를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고, 만약 연애를 하다 적발될 시 처벌을 받는다 였다. 연애는 자본주의의 산물로 인식돼 소위 ‘날라리’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또 탈북민들의 방송인 ‘이제 만나러 갑니다’ 라는 방송에서도 연애를 할 경우 산에 가서 몰래 만남을 가진다. 등의 증언을 해주었기 때문에 북한은 연애금지 라는 것이 기정사실화 되어있었다. 김정일 정권 때 까지만 해도 상당부분 사실이었고 말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즉위이후 북한 내부의 여론도 많이 달라졌다. 길거리에서 팔짱을 끼고 다니거나 속삭이는 연인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며, 거리에서 웨딩사진을 찍는 예비 신혼부부들도 눈에 띈다. 이들은 남한과 똑같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며 자신의 반려자를 직접 선택한다. 북한도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북한의 젊은 연인들이 어떻게 연락을 하는지에 대해 생각 해 본적 있는가? 바로 휴대폰이다. 북한에서 휴대폰이라니?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적어도 저자가 방문했던 평양에서는 그렇게 생소한 물건이 아닌 듯하다. 통계상 1가구당 1대의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으며 길에서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모습도 흔하다. 실제로 저자의 수행원 2명과 운전기사까지 휴대폰을 소지하고 있었고 틈틈이 연인, 가족들과 연락하며 자유롭게 통화 했다. 또 인터넷은 사용할 수 없지만 북한 내에서 사용가능한 인트라넷이라는 네트워크로 정보공유도 할 수 있다. 이들은 지하철을 타고 데이트를 하며 정통 피자가게에 가서 식사를 한다.마지막으로 얘기 할 것은 성형수술과 교육열이다. 북한에서도 쌍꺼풀 수술이 점점 유행하고 있고 염색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쌍꺼풀 수술을 하는 인구가 많아 막을 수 없게 되자 정부 측에서도 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테니, 제대로 된 곳에서 수술을 하라고 권한다고 한다. 또 북한의 연적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주요 언어인 영어를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배운다. 실제로 저자가 재미동포임을 밝히자 서슴없이 영어로 말을 거는 아이들이 많았고, 아이들과 프리토킹 수업을 하기도 했다. 북한에서도 엄마들의 주요 관심사는 자식 교육이라니, 남이든 북이든 우리 민족의 교육열과 미에 대한 관심은 막을 수 없나보다. 너무 익숙한 모습이어서 웃음이 나왔다.책 속의 수행원이 했던 말 중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 저자의 남편이 남한에서는 3D(DIRTY, DANGEROUS, DIFFICULT)업종을 기피하고 깔본다고 하자 수행원이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남들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면 대우와 존경을 받아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그렇다면 북한의 교육열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인가 하니 북한에서는 남한처럼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 혹은 대학진학을 위해서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교양과 취미개발에도 많은 시간을 쏟는다고 한다. 이것이 맞는 것인데 왜 나는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남한의 기준으로 3D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노력이 부족한 패배자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내 오만함을 인정한다.책의 마지막 장이 다가올수록 점점 처음의 의심을 지울 수 있었다. 봉수 교회의 목사님과 교인들, 보현사의 스님, 지하철을 이용하며 길거리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젊은 연인들,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던 모든 사람들, 피자집에서 피자를 먹던 내?외국인들, 동포임을 알자 물건 값을 깎아 주려했던 라진?선봉의 시장 상인들, 저자와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눴던 그 모든 사람들이 전부 북한정부에서 말을 맞춰 내보낸 사람들이었을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왜 나는 북한에 있는 동포들 보다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더 친밀하게 생각했을까? 북한에 대한 지원을 반대했던 그 동안의 내 행동이 부끄러워졌다.
400번의 구타(프랑수아 트뤼포)400번의 구타는 영상학과를 희망하는 동생 덕에 어깨너머로 본적이 있는 영화였다. 제목의 뜻이 뭐냐고 물었더니 ‘아이를 키우려면 400번의 매질이 필요하다’는 프랑스 속담에서 유래된 것이라 알려주었다. 동생은 수작이라고 칭찬하며 영화를 보았는데 나는 상업영화가 아닌 까닭에 집중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감독 트뤼포 씨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서 정말 주의 깊게 보았다.주인공인 드와넬은 학교에서 일명 사고뭉치이다. 행실이 안 좋은 아이로 낙인 찍혀 친구들과 같은 장난을 치더라도 더 크게 혼이 나고 그 때문에 더 큰 반항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선생님께 혼이 난 드와넬은 어느 날 친구와 함께 학교에 빠지게 되고, 드와넬은 어머니가 바람을 피는 장면을 목격하지만, 담담하다. 같이 학교를 빠진 친구는 어머니의 사유서로 혼나지 않았지만 드와넬은 그렇지 못했다. 왜 사유서가 없냐는 선생님의 말에 드와넬은 순간적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거짓말을 한다. 선생님은 드와넬의 말을 듣고 그를 배려하지만 이내 학교에 찾아온 드와넬의 부모님 때문에 그 거짓말은 들키게 된다. 드와넬은 편지를 남기고 집을 떠나 하루동안 홈리스의 생활을 한다. 집으로 돌아온 드와넬에게 역정을 내는 아버지와는 달리 드와넬의 어머니는 드와넬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며 드와넬을 어르고, 그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다가올 불어시험 공부에 매진한다. 드와넬은 소설가인 발자크의 말에 감명을 받아 불어시험을 완벽하게 해내지만 이미 문제아로 낙인찍힌 그는 베낀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고 교실에서 쫓겨나게 된다.드와넬은 집에 돌아가면 군사학교에 보내질 것이라며 집에 가지 않고 친구의 집에서 지낸다. 친구와 드와넬은 담배도 피고 술도 마시며 어른 같은 날들을 지낸다. 그들이 하루하루를 즐기며 보내는 동안 친구의 용돈은 떨어졌고, 돈이 필요해진 그들은 드와넬 아버지회사의 타자기를 훔치기로 한다. 타자기를 팔려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자 다시 제자리에 되돌려 놓기로 했고 그 되돌리는 과정 중에 드와넬은 경비에게 붙잡히게 된다. 드와넬의 아버지는 드와넬을 경찰에 넘기고 집으로 돌아간다. 드와넬은 그 경찰서에서도 떠넘기고 떠넘겨지며 철창에 갇히게 된다. 드와넬이 친구와 보내던 며칠 동안 그를 찾지도 않던 부모는 이제 와서 부모의 권리를 운운하며 그를 감화원(역자가 임의로 붙인 명칭 같다. 우리나라의 소년원과 같은 의미이다.)에 보내는데 동의한다.드와넬은 결국 감화원 생활을 하고 드와넬의 독백을 통해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며, 어머니는 미혼모였다는 것을 관객들은 알게 된다. 감화원 어머니가 찾아와 드와넬을 데려갈 수 없다고 말하고, 돌아간다. 축구를 하던 중 도망쳐 바다에 발을 담그는 드와넬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400번의 구타 속 드와넬과 그 부모는 당시 보수적인 프랑스 사회의 부정적 이면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보여지는 것만 중시되는 사회, 그 속에 방치된 아이들. 드와넬은 사회가 낳은 피해자다. 처음에 영화를 볼 때는 이해가 안됐었다. 학교를 밥 먹듯이 빠지며 담배와 술을 일삼는 드와넬이 말이다. 좀 더 성실하게 ‘부모님의 기대에 맞춰 살면 될 텐데......’ 라고 내 기준대로 생각했다. 화목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란 나는 드와넬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당연했다. 영화에 말미에 실마리가 풀렸는데 그가 겉도는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부모에게 있었다. 미혼모였던 엄마, 새 아빠, 그래서 할머니 품에서 자란 드와넬, 드와넬이 부모와 살기 시작한 건 이미 대부분의 인격형성이 끝난 8세 때였다.전공 수업때 라포(rapport)라는 단어를 배운 적이 있다. 내담자와의 상담을 원활하게 하기위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을 라포 형성이라고 한다. 하물며 잠깐의 상담을 위해서도 오랫동안 교류하며 대화를 통해 라포를 형성해 나가는데 드와넬과 그 부모 사이에는 이 단계가 결여되어 있었다. 드와넬의 성장배경을 알자 드와넬이 엄마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아서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담담하게 하는 것이 이해되었다. 드와넬은 이런 부모와도 부딪히지 않고 지낸다. 영화 초반에 ‘착한아들이네’라고 생각 할 정도로 군말없이 쓰레기를 버렸고 침대가 없이 침낭에서 자는 생활을 계속하면서도 부모에게 바라는 것이 없었다. 나에게는 이런 모습이 부모를 어떻게든 사랑하려고, 가정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며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이러했던 드와넬에게 반항의 불씨를 심어준 것은 소통이 되지 않는 교사였다. 그의 과격한 대응으로 개구쟁이가 될 수 있었던 드와넬은 사고뭉치가 되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테지만 드와넬의 반 아이들은 모두 활달하다. 선생님이 필기를 하는 동안 장난을 치는가 하면 수업시간에 쪽지를 돌리기도 하고 모든 아이들이 함께 장난을 친다. 그러나 교사는 드와넬만을 특별 취급하여 혼을 냈다. 교실 벽에 낙서를 한 드와넬을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나무라며 그를 깔보는 숙제를 내준다.나는 이 때 드와넬의 기분이 이해가 됐다.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선생님께 동류의 일을 당한 적이 있었다. 내가 자신을 노려보았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나는 그런 적이 없기에 노려보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을 했지만 듣지 않고, 그 날 숙제로 나를 벌줘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에 대해 반 전체에게 써오라고 시켰었다. 반항심에 그 날 일기를 빠뜨려 먹고 더 혼이 났던 것이 생각이 난다. 내가 좀 더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선생님의 행동은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선생님은 내가 실제로 노려보는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조용히 불러 타이르는 것이 아닌, 단체 앞에서 개인에게 모욕을 주는 그런 처벌은 반면교사 해야 할 방법이다.드와넬의 반항심은 싹이 트기 시작했고, 사사건건 교사와 부딪혔다. 학교를 빠지고,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거짓말을 하게 된 것도, 원인은 교사에게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드와넬이 마을을 고쳐먹고 불어작문 시험을 준비했을 때도 교사는 커닝이라며 이 결과를 부정한다. 친구가 드와넬의 결백을 증명하려하자 그 의견까지 묵살해가며 “여기선 누가 법을 만드는지 보여준다.” 라고 고집을 부린다. 지금 시끄러운 우리나라처럼 소통이 되지 않는 권력자는 어디에서든지 문제가 되나보다.끝까지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다. 드와넬 엄마의 태도인데, 그녀는 드와넬에게 화를 냈다가 안아줬다가, 그를 내쫒는 듯 하다가 다시 신경을 쓰기를 반복한다. 드와넬을 감화원에 보내려는 재판관에게 겁만 주면 안 되냐며 선처를 바라고, 결국 그가 감화원에 가게 되자 바다가 보이는 곳이 있냐며 드와넬을 걱정한다. 처음에는 드와넬을 사랑하지만 그녀 역시 불안정한 사람이라서 그런 행동을 하는 줄 알았다. 박봉인 남편 때문에 그 시대에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맞벌이를 해야 하며, 가사까지 책임지는 워킹 맘의 비애, 이렇게 일을 하면서도 작은집에서 살아야 하는 속상함, 뭐 그런 것 있잖은가? 흔한 여성 캐릭터의 클리셰 말이다. 나에게 불쌍한 어머니 캐릭터였던 그녀는 영화가 끝나기 10분전에 뒤통수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