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의 세계화소제목 : 문화적 의미로써의 한식한식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섞고 비비고 삶고 하는 것이 유달리 많은 음식이라고 한식을 흔히 생각하는데, 대체 한식이란 어떤 것일까? 어떤 음식평론가는 한식을 두고 “이렇게 훌륭한 음식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라고 말한바있다. 한식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발전해왔기 때문에 그 문화적 총량은 대단하다. 또 시대를 달리하면서 계속해서 변화해 와서 전통 한식으로 생각되는 음식들 가운데에는 최근에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현재 한식의 대표 주자처럼 생각 되는 김치는 만들어진 지 100여 년밖에 안된 최근에 만들어진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불고기나 삼겹살은 1960년대 이후에 생겼으니 역사가 더 짧다.진정한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한식의 문화적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식은 많은 특징들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된장이나 김치와 같은 발효음식이 발전한 것은 가장 큰 특징이다. 발효음식은 영양이나 건강 면에서 매우 뛰어난 효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더 각광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가 하면 한식은 음식을 섞어서 비벼 먹는 것이 유달리 많은 음식이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유명해 진 국제적인 음식에는 비빔밥이 있다. 또 육식보다는 채식을 선호하는 것과 고추를 사용해 매운맛을 즐기는 것도 한식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이 매일 먹는 식탁을 보면 고추가 들어간 반찬이 반 이상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잘 알려진 것처럼 임진왜란 이후에 일본에서 수입된 이후 한국 음식의 동향을 바꿔 놓았기 때문에 고추의 등장은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우리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은 밥을 먹기 위해 차려진다는 것이다. 너무 뻔한 말인 것 같지만, 한식은 모든 것이 밥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식은 밥과 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음식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도록 차린다. 여기에 중요한 특징이 있다. 한식의 상차림은 보통 한 상에 다 차려놓기 때문에 ‘공간 전개형’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서양식이나 중국식은 ‘시간 전개형’이다. 양식은 각각의 음식이 시간을 두고 한 접시씩 나오지만 한식은 한꺼번에 차려놓고 먹는다는 것에 차이가 있다. 한식에서 모든 반찬이 다 나열되는 것은 밥과 같이 먹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한 상을 차려놓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수저로 음식을 먹는다. 여기에 한식의 또 다른 특징이 있는데 바로 겸상을 하는 것이다. 상 하나를 두고 여러 사람이 반찬을 이런 식으로 공유하는 것은 다른 나라 음식 전통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한식의 특별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새 서양의 식습관을 선호함에 따라 고급 한정식집을 가보면 공간 전개형보다는 서양식을 따라 시간 전개형으로 서빙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수프부터 먹는 서양식을 따라 죽을 먼저 먹고 각각 음식을 단독으로 들다가 마지막에 밥과 국을 먹는다. 하지만 양식의 시간 전개형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왜냐하면 양식은 음식을 먹는 데 자유가 속박당하는 느낌이 든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한식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의 기호에 따라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채소가 먹고 싶으면 나물이나 김치를 먹으면 되고 고기가 먹고 싶으면 생선이나 불고기를 먹으면 된다. 그러나 양식은 그게 되지 않는다. 샐러드가 나오면 그것만 먹어야 하고 스테이크가 나오면 고기만 먹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특징과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도 존재한다. 우선 음식의 온도 문제인데 음식이 항상 깔려 있으니 금방 식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 여러 명이 같이 먹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도 있다. 바로 한 음식에 모두의 수저를 대기 때문에 비위생적일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특히 찌개 같은 음식을 먹을 때 여러 명이 자기 숟가락을 담그는 것은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많다. 이런 단점들을 잘 고친다면 한식은 분명 경쟁력 있는 음식이 될 것이다.대부분 한식 세계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홍보의 부족으로 생각되지만, 나는 문화 콘텐츠의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음식의 건강성은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바이나 세계의 소비자들은 기능성보다는 그 음식과 문화를 통해 삶의 방식을 바꾸고 싶어 한다. 즉 느끼고, 즐기고, 배울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가 함유된 음식을 원하는 것으로, 세계의 소비자들이 음식 속에 녹아 있는 한국적 라이프 스타일을 느끼고 소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세계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볼 때 앞으로는 문화로 중무장하지 않고서는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수 없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식사 공간을 디자인한다거나 테이블 웨어, 고급 도자기류의 식기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생활양식 자체가 변하고 있기에 감성과 상상력 그리고 스토리와 같은 문화적 요소가 더 중요한 것이다. 사람들은 불고기 한 입을 먹더라도 자신의 철학을 담아 자신이 만든 음식을 멋지게 설명할 수 있는 감성을 가지고, 말이 통하고 격을 갖춘 요리사에게 더 끌리게 마련이다. 남의 문화, 이질적인 문화에 대해 마음을 열고 배우려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실제적으로 여러 대학의 조리학과에서는 여러 문화와 우리 한국식 문화를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고 기능적인 면에 치우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다양한 손님들 입맛은 마음으로 먼저 맞춰야 하기에 아는 것이 많고 열린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한식의 세계화를 위한 발걸음으로는 여러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최근 한식을 공부하는 젊은 학생들이 많이 늘고 있고, 몇 년 전부터는 '푸드스타일리스트'라는 새로운 직종도 대거 등장했다. 광고, 잡지, 방송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푸짐한 것이 먹기 좋다'는 식이 일반적이었던 한식의 모양을 변화시킨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식에 비해 음식을 꾸미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고 색감과 모양새가 자연 재료에 가까운 한식을 맛깔스럽게 연출하는 법을 고민하고 선보이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이처럼 전문적인 교육을 통한 푸드스타일리스트들의 양성을 도모하여 한식을 세계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연구한다면, 한식이 세계적인 음식이 되는 날이 머지않아 다가올 것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한식의 식사방법을 전통 방식만을 고수하지 않고 새롭게 거듭나 서양식처럼 전식?본식?후식의 코스 요리로 개발하는 것도 있다. 바로 한식의 퓨전화 하는 것인데, 최근 문을 연 한식 레스토랑에서는 서양식 코스 같은 한식 코스 요리를 만날 수 있다. 양념을 변화시킨 나물이나 생채 등을 샐러드의 자리에, 맑은 국이나 죽은 수프의 자리에, 갈비나 너비아니 구이 또는 전복이나 더덕 같은 고급 식재료를 이용한 요리 등 일품요리를 본식의 자리에 배치하여 서빙하는 것이다. 밥을 먹어야 식사가 완성되는 우리의 식습관 하에 이러한 코스식의 말미에 밥과 국과 김치, 간단한 찬 등을 내어 식사를 마무리하도록 하는 것도 한식 코스 요리만의 특징이 될 수 있다. 한식은 음료와 디저트 부분이 약한데, 이 부분은 궁중음식이나 사찰음식에서 참고해 다양한 메뉴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와인'이라는 음식이 가진 보편적 인기를 빌려 한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찾아내 꾸준히 소개하는 일도 한식의 세계화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이렇게 한식을 새롭게 거듭나고 개발하는 방식으로 세계화에 이바지하는 방식도 있지만, 전통 한식으로 남아야 더욱 가치가 있는 음식들도 있다. 사찰 음식, 궁중 음식 등은 그 독특한 계급 문화를 반영한 음식으로 소개해 한식에 대한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음식들은 독특한 동양의 문화로서 다채로운 시각으로 소개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 번째로는 영양 측면에서만 보면 우수한 식문화를 가진 한식은 건강 외의 측면을 고려했을 때 세계적인 음식으로 거듭나기에 부족함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세계적인 음식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서양 음식들이 맛 못지않게 추구하고 있는 아름다운 음식의 모양새와 상차림법 등에서 더욱더 개발하고 발전해야 한다. 한식은 밥과 반찬이 동시다발적으로 차려지는 '한 상 문화'이기에 요리 한 접시, 밥 한 그릇을 따로 논해서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식 연구가들은 한식을 세계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음식 중심이 아닌, 한 상 중심의 상차림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술적 작품으로서의 한식 차림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식생활을 지켜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식의 세계화는 우리가 우리 음식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한식을 세계화하겠다고 공표해놓고서는 아직 우리는 연구도 턱없이 부족하고 제대로 된 한식을 취급하는 곳도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전통적인 한식을 취급하는 것에서부터 변화와 퓨전이 일어나는 것이므로, 일단 제대로 된 한식 그 자체를 취급하는 식당의 수가 늘어야 하고, 한식에 대한 연구가 뒷받침되어 자국민들에게 더더욱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개개인 스스로도 한식에 대해 자부심과 애정을 가지고 관심 있게 바라봐야 할 것이다. 이 방안들을 토대로 우리 모두 노력한다면 한식의 세계화, 곧 우리에게 머지않은 일이 될 것이다.
방송과 커뮤니케이션REPORT나는 평소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금기에 도전하며 감춰진 진실을 밝히는 탐사보도 방송을 관심 있게 지켜봤었는데, 그중 KBS2에서 수요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송하는 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가지고 모니터 리포트를 써보려 한다.추적 60분은 생활 속의 문제를 집중 추적하는 교양과 오락성을 갖춘 시사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어, 1983년 2월 27일 처음으로 방영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유일무이하게 탐사보도 방식을 도입한 프로그램이다. 당시 사회적으로 충격적인 내용들을 다루었으며, 이로 인하여 선정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프로그램이다.2016년 9월 21일 방송된 에서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사건 사고들 중 치밀하게 계획된 보험범죄에 대해서 파헤치고 있다. 크게 세 가지 범죄 사건을 차례대로 소개하며 진행하는 방식으로 방송이 진행됐다. 세 가지 범죄의 재연 부분 중 핵심적인 부분을 편집한 것으로 방송이 시작 되어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흥미가 생기게 하는 부분이 좋았다.첫 번째로는 중국에서 한국인 여고생이 물에 빠져 사망한 사건을 소개했다. 취재진은 실제 중국으로 이동해서 실제 사고 장소를 취재하기도 하고 근처 주민들에게 의심 가는 정황을 인터뷰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와 더 생동감 있고 믿음이 갔고 궁금했던 점을 대신 방송이 물어봐 줘서 너무 좋았다. 시청자들은 취재진이 수동적으로 방송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방송을 만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또 전문가의 의견 부분에서는 금융 보험 전공 교수님의 인터뷰 영상이 나왔는데, 어려운 말로만 쓰지 않고 일반인들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풀어서 설명해줘서 방송적인 부분이 아니지만 이런 배려가 좋았다. 그리고 실제로 금액으로 예시를 들어 설명했는데 그때 그래픽으로 그림이 같이 나와서 좋았다.하지만 아쉬웠던 점으로는 보험 사기의 수법에 대해 너무 자세하게 방송해서 이 방송을 보고 모방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됐다. 어떤 식으로 범죄가 이뤄지는지 너무 세세하게 나와서 해외 보험 사기가 급증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보험범죄의 핵심적인 수법은 삭제하는 것이 제2의 범죄를 낳을 우려를 만들지 않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 범인들의 검거 영상을 방송했는데 일반인들에겐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된다는 경각심을 줄 수 있지만, 이 부분이 범죄자의 가족들이나 특정 사람들에게 인권적인 측면에서 불편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이 방송을 연출한다면 범죄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구체적인 방법과 범죄자 자체를 중점을 둬 방송에 내보낼 것이 아니라, 피해자나 피해 규모에 초점을 맞춰 연출한다면 시청자들에게 좀 더 전달력 있는 방송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때 중간에 아나운서가 나와서 앞의 이야기를 설명해주고 첫 번째 이야기와 두 번째 이야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 줘서 좋았고, 두 번째 이야기를 개괄적으로 설명을 해줘 다음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유발됐다.두 번째 이야기는 무속인 동생을 둔 언니가 동생이 죽은 지 하루 만에 바로 화장을 해서 의문을 사는 사건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 동생이 죽은 것이 아닌 다른 노숙인 여성을 죽인 뒤 언니가 동생이 죽은 양 신고를 해 보험금을 탄 사건이었다.취재진이 직접 지방까지 취재를 위해 가는 모습이 열정으로 비쳐서 좋았다. 또 좋았던 점으로는 음지에 있어 밝혀지지 않았던 범죄들을 방송을 통해 양지로 끌어냄으로써 수사에 좀 더 도움이 되고 시청자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줘서 좋았다. 또 중간중간에 있는 재연 부분이 더 상황을 실감 나게 만들고 내레이션만 있는 것보다 더 흥미롭게 느껴져서 좋았다.하지만 아쉬웠던 점으로는 나는 이 방송을 재방송으로 새벽 1시에 시청했는데, 재연배우분들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그래서인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너무 무서웠다. 이 방송이 오후 11시 30분에 방송되는 만큼 나 같은 시청자를 위해 연출을 조금만 덜 무섭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범죄가 일어났던 배경을 설명해 줬는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범죄자를 옹호하는 측면으로 보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경찰 인터뷰 부분 (28:20)에서 “이건 누군가가 대신 사망을 했던, 아니면 보험 가입자인 무속인을 누군가 살해했던 둘 중에 하나다.” 라는 인터뷰 영상과 자막이 나오는데 ‘~던’은 맞춤법에 어긋나는 말이므로 설령 맞춤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이 ‘~던’으로 발음했더라도 자막에는 ‘~든’으로 표기했어야 더 옳은 방송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집단[집단을 통한 사회화][목차]1. 사회화의 정의와 중요성2. 집단의 정의와 중요성3. 내가 바라본 I와 타인이 바라본 Me4. 시기별 내가 속한 집단을 통한 사회화과정1) 유년기 - 가정2) 청소년기 ? 학교, 또래집단3) 청년기 ? 봉사단체5. 나의 느낀 점 및 후기1. 사회화의 정의와 중요성나의 사회화 과정을 알아보기 전 사회화의 사전적 정의부터 살펴보자. ①인간의 상호 작용 과정 ② 인간이 사회의 한 성원으로 생활하도록 기성세대에 동화함. 또는 그런 일. ③ 사적(私的)인 존재나 소유를 공적(公的)인 존재나 소유로 바꾸어 감. 또는 그런 일이다. 사회화의 정의는 인간이 하는 행동을 전제로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의 구성원으로 동화되는 일을 뜻한다. 대부분의 동물은 태어나면서부터 본능적으로 행동한다.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인식하고 따라다니는 것과 같이 본능에 의해 생활하는 동물들은 학습에 의한 행동의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사회화는 동물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인간에게만 국한되어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자라면서 언어를 배우고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바라보면서, 사회에서 요구하는 일정한 규범이나 사회적 역할 등을 체득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다.사회화는 모든 사회와 개인에게 동일한 것은 아니다. 사회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가치나 규범 등은 개인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학습 내용이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 가정 내에서 첫째와 막내에게 주어지는 사회화의 내용을 다를 것이다. 부모로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낳은 첫째에게는 통제와 억압으로 아이를 양육할 가능성이 큰 반면, 막내에게는 아무래도 첫째보다는 좀 더 여유롭게 양육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에 항상 모든 개인에게 동일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이러한 사회화를 담당하는 기관을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개인의 사회화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1차 사회화 기관과 2차 사회화 기관으로 구분하는 것이다.집단으로 가족 등이 해당된다.사회화의 유형으로는 주로 가정이나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사회화 교육인 기초사회화, 사회변동과 개인의 지위변화에 따라 요구되는 새로운 규범, 가치, 기능 등을 학습하는 과정인 재사회화, 앞으로 획득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사회적 지위를 설정하고 그 지위에 맞는 가치, 태도, 기술 등을 습득하는 과정인 예기사회화 (=예비사회화), 기존의 행동 양식을 벗어나도록 하는 과정인 탈사회화가 있다. 특히 재사회화는 개인의 지위변화 뿐만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의해서도 요구되는데, 예를 들어 사회변화에 따라 특정산업이 사양화되어 그 산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다른 직업을 구하기 위해 직업훈련을 받는 경우도 재사회화에 포함된다. 현대사회는 사회 전반적으로 변화 속도가 빨라 새로운 기술을 익히거나 태도 혹은 가치관을 변화시켜 적응할 일이 많으므로 재사회화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사회화가 되지 못한 사건의 예를 하나 들면 러시아에서는 한 무리의 개에 의해 양육된 여섯 살짜리 소녀가 발견되었다. 이름이 베로니카라는 이 소녀는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의 집 뒷마당에서 개에 의해 길러졌다고 언론에 보도되었다. 발견 당시 말을 전혀 하지 못했고 음식도 사람이 아닌 개처럼 먹는 등 개의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이처럼 베로니카는 태어나면서부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행동양식과 규범을 내면화하는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이 아닌 동물에 가까운 행동을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나아가 사회화가 실패한 경우도 있는데, 이가 반영된 끔찍한 사건이 최근 많이 발생하고 있다. 경기 안산 대부도 토막살인 사건이 대표적인 예인데, 두 달이나 함께 살던 열 살 차이 선배를 잔인하게 살해한 뒤 시신을 토막 내어 유기한 범죄이다. 하지만 끔찍한 범죄치곤, 그 동기가 선뜻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사소했다. 바로 피해자가 가해자 조씨를 어리다고 무시하고 자주 청소를 시켜 그로 인해 분노가 쌓이고 사소한 말다툼 끝에 살인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 사건을 보고 전문가들은 가정·함으로써 다양한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사회집단을 유형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번째 분류 기준은 구성원의 소속감 여부에 따른 구분이다.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나뉘는데 내집단은 자신이 소속되어 있으면서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강한 집단이다. 내집단은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고, 판단과 행동의 기준을 학습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반면 외집단은 자신이 소속되어 있지 않고 이질감을 갖는 집단이다. 특징으로는 외집단이 존재할 경우 내집단 구성원 간의 결속력이 높아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일 축구경기에서 일본이라는 외집단이 존재함으로써 한국이라는 내집단은 결속력이 높아진다. 다음 분류 기준으로는 구성원 간의 접촉 방식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1차 집단과 2차 집단으로 나뉘는데, 1차 집단은 구성원 간의 접촉이 잦고 친밀하며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집단이다. 가장 좋은 예로는 가족이 있다. 1차 집단은 자아 형성의 근원이 되며, 사회 유지에 기여한다. 2차 집단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형식적이고 수단적인 만남을 바탕으로 결합된 집단이다. 예를 들어 학교나 정당이 있는데 이러한 2차 집단은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비중이 커지며, 주로 공식적인 통제가 이루어진다. 세 번째 분류 기준으로는 결합 의지의 유무에 따른 구분이 있다. 공동사회와 이익사회로 나뉘는데 공동 사회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본능적 · 자연적으로 형성된 집단이다. 주로 친밀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지고, 이익 사회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선택적 의지에 따라 의도적으로 형성된 집단이다. 주로 수단적 인간관계가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준거 집단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준거 집단은 개인이 어떤 행동이나 판단을 할 때 기준으로 삼는 집단이다. 자신이 속한 소속 집단과 준거 집단이 일치할 때 소속 집단에 대해 자부심과 만족감을 느끼고, 소속감이 커지고, 반대로 소속 집단과 준거 집단이 불일치할 때는 소속 집단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되며, 갈등을 겪기도 한다.이러한 사회 집단을 통해 개인은 집단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나타낸다. 다음 6-7세의 어린이들은 숨바꼭질, 축구시합과 같은 경기를 할 수 있는데 이때 경기의 규칙을 지키면서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타인으로부터 추상화된 기대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때의 타인은 중요한 타자들에서 일반화된 타자들(generalized others)로 확장된다.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문화와 그 문화에 포함된 가치, 도덕규범 등을 파악하도록 학습되어진다. 이때 객관적 자아인 Me를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미드는 단순히 인간의 자아가 타인의 기대에만 따르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Me가 생겨나더라도 주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주체로서의 자아인 I는 엄연히 존재한다. 즉 I는 스스로 규정하는 자신의 모습이고, Me는 타인이 규정하는 나의 모습인데, 상징적 상호작용론에 따르면 미드는 인간의 자아는 ‘I’와 ‘Me’의 합성이라고 주장했다. 두 자아가 충돌하고 갈등을 겪을 때 적절한 방법을 통해 통합하고 해결하는 것이며 모든 각각의 개인은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의해 움직이는 Me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적이고 충동적 의지를 지니는 I도 있으므로 따라서 미드에게 있어서 자아란 이 두 자아가 상호 작용하면서 발달하는 역동적인 것이었다.내가 스스로 규정하는 I는 “밝고 유머 있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한다. 하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낯을 가린다. 귀찮은 것을 싫어한다. 이익에 대해서는 계산적이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한다. 하기로 마음먹은 일은 하고야마는 성격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타인이 규정하는 Me를 알아보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 대학교에서 만난친구, 기숙사 룸메이트, 봉사활동에서 만난 친구에게 물어보았다.초등학교 때부터 친구 (임**) “처음 봤을 때는 무뚝뚝하게 생겨서 친해지기 어렵겠다고 생각했지만, 친해지고 나니 정말 활발하고 재밌는 애다. 첫인상과 이미지가 정반대이다. 자기주관이 있다.”대학교에서 만난 친구 (권**) “성격이 밝은줘 고민 상담을 잘 들어주는 성격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이렇게 나 자신을 I와 Me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보니 원래의 ‘나’가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며 성장해가면서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나’로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수업시간에 일어나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수도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바로 내가 양심적이거나 어떤 개인적인 I에 따라서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나에게 요구되는 행위들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둘 다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I가 더 발달한다면 개인적인 성향으로 사회적으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고, Me가 더 발달한다면 원래의 자신의 개성이나 능동적인 주체의 모습이 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4. 시기별 내가 속한 집단을 통한 사회화과정이제 시기별로 내가 속한 집단을 통해 어떻게 사회화 되었는지 알아볼 것이다. 이때 에릭슨의 성격발달이론을 적용하여 알아볼 것이다. 에릭슨의 이론에 앞서 프로이트의 이론은 지나치게 선척적인 욕구충족의 정도와 영유아기의 경험을 강조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성품은 선천적 욕구뿐만 아니라 사회적 욕구 또한 개인의 사회화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에릭슨의 의견에 좀 더 동의하기 때문에 에릭슨의 성격발달 이론을 통해 나의 사회화 과정을 탐구해 볼 것이다. 주로 유년시절, 학교를 다니는 청소년시절과 대학교에 들어온 청년기로 나누어서 탐구해 볼 것이다.1) 유년기(제1-4단계) ? 가정에릭슨에 따르면 대체적으로 이 시기에서는 어머니와 보모에서부터 시작해 또래나 선생님 등의 중요한 타인들의 행동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 타인들에게 어린이의 행동이 격려 받 고 칭찬 받으면 그 어린이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 중요한 타인들이 귀찮게 여기거나 비판하게 되면, 어린이는 죄의식과 열등감을 갖게 된다.자아형성의 근원이 되는 가정이라는 1차 집단이자 공동 사회 속에서 이 시기에 나의 어머니는 직장을됐다.
역사콘텐츠속테마읽기REPORT이 동영상의 시작은 고영근이 “우범선을 암살한 것은 단순히 목을 벤 것이 아니라 국모의 원수를 갚은 것이다.”라고 하면서 시작된다. 명성황후 복수 사건은 을미사변의 8년 뒤에 고영근이 우범선을 암살한 사건이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5시 30분 을미사변당시 명성황후는 저항도 못하고 한 나라의 왕비로서 최소한의 존중도 받지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되었다. 을미사변의 전말은 명성황후가 러시아를 이용하여 일본을 막으려는 조선후기의 외교정책인 인아거일을 펼쳤다. 명성황후가 친러정책을 펼치자 일본을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기고 일본공사관인 미우라 고로를 대표로 명성황후를 여우로 칭하고 ‘여우사냥’이라는 명칭 하에 명성황후를 시해하기로 계획했다. 이때 우범선이라는 조선인이 크게 관련 되어있다. 우범선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을미사변 때 훈련대 제2대대장이었다. ‘우범선 최후사‘라는 한 독립운동가가 쓴 책에 보면 우범선은 조선을 일본식으로 근대화하기 위해서는 민씨정권을 교체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일본 자객들이 건천궁에 침입하자 군대를 풀어 담을 에워싸고 파수를 보았다. 그리고 죽은 왕비의 얼굴을 확인해 주었으며, 부하들에게 왕비의 시체를 소각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등 명성황후 시해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조선의 국정을 쇄신시킬 기폭제라고 여겼다. 이때 일본 공사관 미우라는 왕비살해사건을 대원군과 관련해 마치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고부간갈등으로 조선 내분으로 몰아가려했다. 정리 하자면 일본정부의 사주를 받은 미우라는 조선 사람들을 내세워 을미사변을 내분으로 몰아가려하고 우범선은 그 계획에 동조해 명성황후살해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반역자인 것이다. 을미사변 이후 러시아 등 열강 등으로부터 일본에 대한 비난이 일끓자 사건관계자들을 교도소에 수감했는데, ‘겐요사 명부탑’에는 을미사변에 가담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는데 이는 살인범들을 영웅취급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의 행동대원으로 이용당한 우범선은 일본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고 일본정부로부터 많은 돈을 받는 등 특별대우를 받았다. 병마절도사를 지낸 고영근은 황태자의 슬픔을 보고 원수를 갚을 것을 다짐했다. 일본으로 떠나서 노윤명이라는 사람과 함께 우범선 암살을 계획했다. 일부러 우범선에게 접근해서 경계심을 풀고 그의 주위를 맴돌며 암살할 기회를 노렸다. 우범선은 고영근의 집을 구해줄만큼 친밀한 관계가 되었고 술을 먹게 되었는데 그때 죽였다. 그 후 파출소를 찾아가서 자수했고 국모의 원수를 갚았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재판에서 고영근은 사형, 노윤명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되었다. 노윤명은 황태자에게 복수를 위임받았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고영근은 우범선암살은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명성황후가 살해된 후 우범선을 참수시키라고 황태자가 명령했던 기록이 있고 개인적 판단이라기보다 황태자가 배후에 있다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러한 의문이 제기될 만한 이유가 있던 것이 고영근은 황태자와 황후의 총애를 받고 신뢰도 아주 두터웠던 신하였다. 고영근이 고종의 총애를 받았다는 증거로는 고영근은 때때로 독립협회를 다시세우는 운동을 주도하는 등 왕의 명령을 거스르는 활동을 했다. 게다가 폭열탄사건 사건 때문에 조선에서 활동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했던 고영근은 일본으로 갔다. 그래서 도저히 이러한 행동으로 볼때는 고종의 심리에 거슬릴만한 일을 많이해서 고종은 고영근을 별로 안좋게 볼 수도 있었는데, 고종이 고영근을 총애 했다는 것을 이때 알수 있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고종이 직접 고영근의 선처를 부탁했다. 그래서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 됐다. 고종이 끝까지 고영근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1911년 고영근은 석방명령을 받았다. 그 후 고영근은 당시 대한이라는 칭호를 쓰면 안되는데 대한이 새겨진 비석을 총독부가 치웠는데 다시 세우는 등 대한제국의 자존심을 일으켜 세웠다. 명성황후 시해 이후 24년 뒤 고종까지 하늘나라로 떠나 홍릉에 묻히게 되는데 고영근은 홍릉 바로 앞에 초가집을 짓고 죽는 그 순간까지 왕과 왕비를 지켰다. 그는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우직하고 용감하게 자신이 믿는 것을 향해 나아갔던 그는 어지러운 시대에 추락한 황실의 명예와 국가의 자존을 세우기 위해 끝까지 의리를 다했던 행동하는 충신이었다. 고영근은 후세 사람인 내가 생각해 봐도 의르를 지켰으며 정말 우리나라의 권익과 명성황후를 위하여 목숨 바친 사람으로써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나라면 고영근 정도까지는 용감하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 같다. 명성황후 시해 100년이 넘게 흘렀지만, 일본은 여전히 사과 한 마디 없고 현대인들은 쉽게 이 역사를 잊고 있는 것 같다. 나 또한 을미사변이라는 사건에 대해 자세히 몰랐는데 이번기회에 자세히 알게 되고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을미사변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아봤다. 1895년 8월 20일 새벽 일본의 공권력 집단이 서울에서 자행한 명성황후 살해사건으로써 이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으로는 일본은 중국과의 전쟁인 청·일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큰 이익을 얻었다. 일본은 전쟁 후 중국과 맺은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중국의 랴오둥 반도, 타이완, 조선에 대한 간섭권을 얻었다. 이제 10년을 기다려 온 조선을 삼키는 일만 남았는데, 일본이 중국 대륙을 침략하려는 의도를 알아챈 러시아가 프랑스, 독일과 힘을 합쳐 간섭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너무 커지는 것을 경계하려고 랴오둥 반도를 청나라에 돌려줄 것을 요구한 ‘삼국 간섭’을 했다. 그동안 일본의 강압을 받으며 개혁을 추진하던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를 이용하고자 했다. 그런데 조선이 다시 옛날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려 할 뿐 아니라 일본인 장교가 훈련시킨 군대도 해산하려 하자 일본은 몹시 다급해졌다. 그래서 일본인 공사 미우라는 낭인을 이용하여 명성황후를 죽인 것이다. 새롭게 알게 된 점으로는 을미사변에 조선인들도 많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우범선이라는 인물로 조선 훈련대 제2대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인물이 우리나라 지리를 잘 아는 점과 시해 후 명성황후의 얼굴을 확인해 줬다는 점에서 과연 이게 조선인으로써 할 수 있는 행동인가라는 생각을 했고 매우 놀라웠다. 명성황후가 죽임을 당한 것은 우리나라에게는 치욕의 역사이다. 그리고 을미사변으로부터 파생된 명성황후복수사건은 실제 벌을 받아야 할 일본이 아닌 고영근과 우범선간의 동족간의 복수극이라는 점에서 또한 또 다른 비극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역사스페셜을 보면서 명성황후 시해 당시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찾아봤는데, 조수미의 ‘나가거든‘이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가 명성황후ost로써 명성황후 시해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시청했다. 동영상을 보고 마음이 먹먹해지면서 슬퍼졌다. 뮤직비디오의 내용도 물론 슬프면서 그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었지만 슬픈 멜로디의 노래와 어울러 지면서 과거의 역사는 이랬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듯이, 이 아픈 역사가 주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이번 계기를 통해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기게 되었다. 청, 러시아, 일본, 미국 등이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세력다툼을 하고 있던 시기에, 약자였던 우리나라는 힘이 없었기 때문에 보고만 있었다는 점이 매우 안타까워서 이 사건이 더욱 슬프게 보인다. 역사를 아무리 돌아봐도 이렇게 약하기만 한 우리나라를 앞으로도 나처럼 우리의 과거가 안타까운 모습뿐이라 실망하는 후손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 역사를 새롭게 쓰고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요즘은 명성황후 관련 스토리를 담은 뮤지컬이라든지 많은 작품들이 나왔는데 그 뮤지컬이 일본에까지 흥행하게 되었는데 명성황후를 살해했다는 일본군의 외손자가 그 작품을 보았다는 말을 듣고는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하고, 그 일본인 외손자분은 어ㄸ?ㄴ 감정을 느꼈을지 정말 궁금했다. 을미사변이라는 사건은 좀더 대중적이고 문화적으로 알려질 필요성이 있다. 그래서 다음 역사콘텐츠 수업에는 명성황후 강의가 꼭 포함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관련된 영화나 콘텐츠가 최근에 나온 것이 없긴 하지만,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 수 있을만한 주제인 것 같고 레포트를 쓰면서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내가 느낀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
문학, 예술 그리고 시대정신REPORT[1. 고대 그리이스.로마]영웅시대와 호메로스 시대에서는 선사시대의 비 개인적 씨족 조직이 사라지고 봉건왕제가 기작되었다. 이때 영웅시와 서사시가 발생했다. 영웅시는 개인적 작자, 개인적 운명을 노래하고 무사귀족들의 명예심이 영웅시를 발생시켰다. 영웅시의 목적은 명예심만족과 명예욕, 칭송욕구에 있었다. 서사시의 등장은 농경민인 도리스인의 침입으로 이주민이 쫓겨나게 되었는데 이오니아라는 낯선 민족의 영향을 받아서 호메로스 서사시가 탄생하게 되었다. 영웅시대의 시인이 사제층 분리로 인해 개인적 성격이 증대되고 집단적 경향을 띠게 되었다. 대표할 만 한 서사시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딧세이아 등 그리고 당시에 구전되었을 여러 노랫말들, 이상은 후대에 문자로 옮겨진 것이고, 로마는 문학이 그리 발달하지 못해서 이야기가 있는 글은 역사서가 대부분이다.기원전 700년경 동방과 서방 예술의 종합인 ‘아케이즘’ 양식이라는 것이 생겨났다. 농, 축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그리스 본토 예술의 종합으로써 생겨났는데, 그 이전의 미케네 시대가 끝나고 아케이즘 시대가 시작될 때까지 그리스에는 신전도 궁전도 존재하지 않았고 여하한 종류의 기념비적 예술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케이즘과 더불어 새로운 기념비적 건축과 조형예술의 시대가 열렸다.도시적인 생활양식과 상업이 발달하고 경쟁적인 사고방식이 지배적으로 됨에 따라 정신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개인주의적 세계관이 표면에 떠오르게 되었다. 자유시민들 사이에는 경제적인 경쟁의 자유가 있었다, 기원전 700년을 전후한 이 시대에 와서 조형예술 분야에서도 작자의 서명이 있는 최초의 작품이 나왔고, 개인적인 성격을 강조한 예술가라는 존재가 처음 나왔다.참주정치는 기원전 7세기 말엽부터 혈연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개인주의의 결정적 승리를 뜻하며 귀족정치에서 민지중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역할을 했다. 참주정치는 그 본질적인 반민주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면에서 민주제의 성과를 앞질러 구현하고 있다. 지주층에 대한 상인층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세 시기의 경계선을 긋는 여러 가지 변동들, 즉 공로에 따라 귀족이 될 수 있었던 기사계급의 탄생이라든가 봉건적 자연경제에서 도시적 화폐경제로의 전환, 서정적 감수성의 탄생과 고딕 자연주의의 발달, 시민계급의 해방과 근세 자본주의의 맹아는 근대적 생활감정의 발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르네상스가 가져온 정신적 업적을 오히려 능가할 만큼 중요한 것이다.그리스 로마의 사실주의에서 멀어져간 초기 그리스도교 예술은 두 방향을 취하게 되었다. 하나는 상징주의적 방향으로, 거기서는 모사보다는 오히려 그려야 할 신성한 대상의 정신을 화면에 떠오르게 하는 것이 문제였고, 따라서 세부적인 묘사 하나하나가 중요하게 되었다. 그리스도교 예술관의 가장 현저한 특색은 예술을 교리의 주입수단이나 도덕교육의 수간으로 보는 사고방식이었다. 로마시대 후기의 표현주의는 이때에 비로소 이른바 초월적 표현양식 으로 바뀐다. 그리하여 이제 예술은 현실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예술적인 목적은 절대적 권위, 초인간적 위대함, 신비적인 위엄 등을 표현하려는 것이었다. 존경과 외경을 요구하는 인물을 인상 깊게 그리려는 경향은 제정시대 후기 이해 점차 높아져서, 이제 비잔틴 예술에 와서 그 정점에 이르렀다.우상파괴운동의 영향으로 봉건제도가 발생되고, 예술 활동이 중단되었다기보다 단지 그 방향이 새로이 조정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세속적인 양식 시기의 자연주의적인 성과를 계승하면서 그것을 교회 그림의 영역에 확대시킨 9,10세기에 걸친 비잔틴 예술의 제2의 전성기도 우상파괴운동의 결과의 하나로 보는 주장은 옳은 것이다.문화와 경제부문에서는 게르만족의 침입 후 서방에서는 새로운 귀족과 새로운 문화 담당층을 지닌 새로운 사회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 사회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 동안 문화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그 어느 때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고 경제도 로마시대의 경제체제가 그대로 존속하고 있었다. 게르만족의 서구 정복은 절대 군주제가 출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11세스 초기의 고대문화 수용은 단지 하나의 징후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르네상스 초기에 고대문화 수용이 가능했던 것은 기독교 초기에 고대문화가 거부 되었을때와 마찬가지로 그럴만한 사회적 전제조건이 이미 주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르네상스와 중세는 경제적 사회적 발전의 연속성에 바탕을 두고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르네상스의 예술 감상자층을 구성하고 있는 도시의 시민계급과 왕후들이 살고 있는 궁정사회이다. 이 두 그룹이 대표하는 예술적 취향은 서로 다르긴 하나 많은 공통점이 있다. 한편 고딕의 궁정적 요소들이 부르주아 예술에 아직도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고, 신분이 낮은 계급에게도 기사적 생활양식이 다시 부활하게 되자 시민계급은 궁정적 취향을 가진 예술형식을 새로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가하면 궁정의 귀족들도 시민계급의 사실주위와 합리주의의 담을 쌓을 수 없었으므로, 그들 역시 도시생활의 근원을 두고 발전하기 시작하는 새로운 세계관과 예술관을 정립하는 데 하나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는 도시적 민주주의에서 군주적 절대주의로 나아가는 정치적 과정을 말해주는 것이다.15세기 초반부터 이러한 평화와 안정 속에서 피렌체는 새로운 번영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 번영은 순조롭게 지속되었다. 이때 피렌체는 경제적 잠재력이 최대한도로 개발 되어 경제 번영의 정점에 도달한다. 피렌체 시민들은 그들의 도시를 제2의 아테네로 만들려고 하였다. 자급자족적인 경제체제 즉 증가하는 생산에 맞게 국내수요를 확대하는 경제 정책을 수립하려고 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13세기와 14세기를 경과하면서 자본주의의 근본구조가 하나의 본질적인 변화를 겪었다. 원시적인 영리 추구 대신에 합목적성, 계획성, 타산성이 더 지배적으로 되었고 처음에는 영리 경제의 근간을 이루었던 합리주의정신은 이제 철저한 합리주의로 변하고 말았다. 르네상스 경제의 새로운 점은 재래의 전통까지도 주저 없이 희생시키는 철저함과 일체의 경제생활의 요인을 수적으로 계량화 하여 장부에 기입하는 비정할 정도의 객관성에 있다. 로는 조각가, 화가인 동시에 건축가였다는 사실은, 다면성이라는 르네상스의 이상보다는 오히려 조형예술이 지니고 있던 기술적 수공업적 성격과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아무래도 르네상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예술가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일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활동을 시작했던 16세기 후반 영국은 한마디로 전환기였다. 어느 시대인들 전환기가 아닌 시대는 없겠지만, 이 기간은 겉으로 드러나는 사실에 남을 만큼 중요한 여러 사건에서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흐르는 이념의 작동에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던 분명한 전환기였다. 봉건 체제에서 근대국가 체제로 전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와 유럽 열강으로서 편입, 상업주의의 부상, 다양한 문화 산업의 번연이 주목할 만한 변화라면, 그 저변에 성별을 대상으로 한 인식상 변화, 인종 문제의 부상, 사회의 유동화에 따른 계층이 와해할 조짐 등 이념상 변동 양상이 흐르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이런 사회변동 양상을 선구자처럼 재현하는 위대한 작가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지배하던 영국의 르네상스 시기인 16세기 후반은 문예부흥기일 뿐 아니라 국가상 부흥기였다. 동시에 사회의 모든 양상이 요동치고 변화하는 전환기이자 변혁기이기도 했다. 문학상, 문화상 분위기, 이러한 역동하는 사회가 던져주는 풍부한 여러 소재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곳곳에 스며들어 그의 여러 작품은 문학작품 이상으로 사회와 역사를 다루는 참고서로서 역할까지 한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그 내용이나 경향은 물론 형식까지도 당시의 정치적, 경제적 구조에 의해 규정되었다. 셰익스피어 연극의형식은 현실정치의 기본 체험에서, 곧 순수한 이념은 이 지상에서 실현될 수 없고 따라서 이념의 순수셩은 현실에 희생되거나 아니면 현실의 이념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경험에서 생겨났다.[4. 바로크]바로크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16,17세기에 전 유럽에 퍼졌다. 격정적 역동적, 반고전주의적 색채가 나타나고 대립성과 장식성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다섯 쌍의 대립개념을 바탕으로 체계를 발전시인 했던 것은 아니며 격정적 바로끄로부터 멀어지면서 일어난 결과였다.또 음악분야애서는 이태리의 corelli와 비발디, 영국의 헨델, 독일의 바하, 프랑스의 륄리, 라모 등이 있다. 특징으로는 다른 것에 겹쳐 나오는 부 주제를 표현한 대위법을 사용하였고, 점진적으로 풍부해지는 조화와 증강되는 표현력, 장식을 중요시 여겼다.[5. 고전주의]고전주의는 17~18세기에 르네상스의 성과물을 바탕으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여 성립된 문예 운동이다. 프랑스 앙리 4세, 우리 13세 시대에 태동하였으며 루이 14세 시대 때 절정을 이룬다. 중용, 조화, 질서 옹호, 안정을 바라는 국민들의 여망이 고전주의의 밑바탕이다. 결국 모든 분야가 국가의 통제를 받던 절대주의 시대 문학의 원리이며 중심 미학은 절도와 조화이다. 고전주의 발흥의 계기로 먼저 과학혁명을 들 수 있다. 뒤이어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을 통해 중세시대의 종교적 통일성이 해체되었다. 이에 따라 사회 질서를 확보해줄 절대 왕정의 군주국가 성립되었다. 이로 인해 절대 왕정의 대표적 전제 군주인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가 국민의 강력한 정치에 대한 희망을 충족하면서 고전주의가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고전주의 철학의 배경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토마스 모아의 유토피아이다. 지동설은 중세 기독교 신학의 속박으로부터 과학을 해방시킨 과학혁명이다. 군주론과 유토피아는 경험과 이성에 의지한 지식을 추구를 보여준다. 또한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를 판매하는 행동을 비판하는 95조항 반박문을 만들어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것도 고전주의 시대 철학을 확립하게 된 배경이다. 대표적인 철학으로 베이컨의 귀납법과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가 있다. 먼저 베이컨의 귀납법은 개별적인 특수한 사실을 전제로 하여 일반적인 사실로서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연구방법을 말한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는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고 철학이 개인의 자의식에 기초한 관찰적 진리에서 출발해야 함을 의미한다. 데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