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유신체제의 빛과 그림자Ⅰ. 서론: 문제의 제기Ⅱ. 유신의 의미Ⅲ. 유신체제의 성립배경1)국외적 상황2)정치적 요인3)사회적 요인4)경제적 요인Ⅳ. 유신헌법의 성립과정Ⅴ. 유신헌법의 이념1)평화통일2)국력의 배양과 총력안보3)한국적 민주주의4)성장주의5)주체적 민족사관의 정립과 민족문화의 창달6)사회혁신7)복지국가 건설Ⅵ. 유신체제의 실패원인1)남북관계 실패2)정권의 폭력성3)반대세력 신장Ⅶ. 유신헌법의 문제점1)통일주체 국민회의2) 유신헌법의 주요 조항Ⅷ. 유신체제의 붕괴1)부마항쟁2)10.26사건Ⅸ. 유신정권 당시 국민들의 생각은?Ⅹ. 결론Ⅰ. 서론: 문제의 제기대한민국 건국 이래 박정희만큼 평가가 상반되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반민주 독재자, 경제발전의 주역, 친일파, 민족주의자 등 오늘날까지도 그에 대한 논쟁은 뜨거운 감자이다. 6.25전쟁 직후 국가 산업기반시설이 다 무너지고 국민의 1인당 GDP가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보다 낮던 절망적인 시절에서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놀라운 성장은 ‘한강의 기적’에 비유되곤 한다. 그리고 박정희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맞물려 일부 사람들에게 박정희는 영웅으로 우상화되기도 한다.그 결과 다시 뽑고 싶은 대통령이라는 주제로 한 각종 신문과 방송사의 설문조사에서 박정희는 항상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그의 자녀가 곧 치러질 2012년 대선의 유력주자로 부상하는 등 오늘날 현대사에서 그의 잔영을 지우기란 불가능해 보인다.올해가 유신정권이 일어난 지 꼭 40년이 되는 날이다. 박정희에 대한 대부분의 평가는 유신체제를 기점으로 극명하게 갈라진다. 가령 박정희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유신체제 이전의 박정희 정권의 정책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유신체제로 박정희 정권은 한계를 노정했으며 그것은 일종의 광기였다고 말한다.영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토인비는 “인류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데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조지 오래입니다. ···”이날 다음과 같은 내용의 비상조치가 발표됐다.1. 1972년 10월 17일 19시를 기해 국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정치 활동을 금지하는 등 현행 헌법 중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킨다.2. 일부 효력이 정지된 헌법조항의 기능은 비상국무회의에 의해 수행되며, 비상국무회의 기 능은 현행 헌법의 국무회의가 수행한다.3. 비상국무회의는 1972년 10월 27일까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헌법 개정안을 공 고하며, 이를 공고한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확정시킨다.4. 헌법개정안이 확정되면 늦어도 금년 말 이전에 헌정질서를 정상화시킨다,이러한 비상조치 발표 후 열흘 뒤, 박정희는 포괄적인 사회, 정치, 경제적 개혁을 포함한 ‘10월 유신’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러한 조치는 대미 의존도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최대화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Ⅳ. 유신헌법 성립과정비상계엄이 선포된 10월 17일 상당수의 야당 정치인들은 외국에 체류 중 이었다. 김영삼은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연설하기 위해 워싱턴에 머물러 있었고 김대중은 일본에 머물러 있었다. 한국의 정치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 분위기를 감지한 야당 정치인들은 대부분 서둘러 귀국했으나 김대중은 귀국을 포기하고 일본에서 반 유신 운동을 하기로 한다. 10월 27일 비상국무회의가 헌법 개정안을 의결해 공고 했다. 개헌에 대한 반대토론은 금지됐다. 이 개헌안의 주된 내용은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수임 대의기구를 신설하고 거기서 대통령을 선출한다는 것과 대통령에게 긴급조치권, 국회해산권, 국회의원 1/3의 임명권을 준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른바 ‘영도적 대통령제’를 규정한 독재헌법안이었다. 유신헌법이 제정된 과정은 위헌이었다. 당시의 헌법에 따르면, 헌법을 개정하려면 개정안을 헌법상의 절차에 의해 공고하고, 국회에서 재적의원 2/3이상의 찬성으로 통과시키고, 그런 다음에 국민투표에 붙여야 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대통령 성명 하나로 국회5,05520,339출처: 경제기획원,『주요경제지표』(경제기획원, 1987)위의 표에 나타나듯이 1인당 실질국민소득은 1972년 318달러에서 1979년에는 1,640달러로 증가했다. 1인당 GNP에 있어서 남한이 북한을 추월하게 된 것도 바로 이 기간 동안이었다. 즉 경제성장은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 명분으로 작용했고 유신체제가 많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원인이었다.5) 주체적 민족사관의 정립과 민족문화의 창달박정희는 10월 유신은 올바른 역사관과 주체적 민족사관에 입각하여 우리 민족의 안정과 번영 그리고 통일조국을 우리 스스로의 힘과 예지로써 쟁취하고 건설하자는데 그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1973년 박정희는 연두기자회견에서 “정신적 측면에서 보면 10월 유신은 민족의 주체성을 강조한 점에서 5.16혁명과 정신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5.16혁명은 자아를 되찾고 민족중흥을 다진 민족적 르네상스였다”고 하면서, 그러나 “10월 유신은 5.16혁명보다 한 차원 높게 민족의 주체성과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는 “10월 유신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사관과 민족적 주체성을 강조해야 한다. 과거 우리의 역사를 올바로 알고 동시에 오늘의 현실과 처지를 똑바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민족의 진로를 올바로 알아야 하겠다.”고 말했다. 과거를 올바로 안다면 오늘에 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게 되는데 이것이 주체적 민족사관의 정립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따라 새로 발간된 초·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는 종래의 식민사관을 주체적 민족사관으로 바꾸는데 역점을 두었다. 가령 당쟁이 조선사회 및 정치의 구조적인 결함이지 민족성으로 파악될 성질이 아니라는 점과 단군의 민족사적 의의를 부각시키고 실학 내용을 크게 보충하였다. 이처럼 주체적 민족사관의 정립이란 올바른 역사인식의 확립을 위해 식민사관 및 사대주의 사관을 청산하고 주체적이고 독자적인 민족사의 관점에서 한국사를 재인식 하는 것권은 남북한이 유엔에 각각 따로 가입하기를 원했지만 북한은 그것이 한반도의 영구 분단을 위한 술책이라고 비난하면서 남북한이 단일 국가로 유엔에 가입할 것을 주장하였다. 나아가 북한은 ‘고려연방공화국’이라는 이름 아래 남북 연방제를 수립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남북한의 상반된 입장은 양측 간의 뿌리 깊은 상호 불신에 어떠한 변화도 없음을 보여 주었으며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염원은 정권에 대한 실망감으로 바뀌었다.2) 정권의 폭력성국가비상사태가 처음 선포된 1971년 말에는 반대세력은 침묵하였다. 그 이유는 정권의 강제력 수준이 대폭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유언비어 날조 및 유포가 금지 되었으며 유신 선포를 비판한 사람들은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되어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언론의 보도는 정부의 엄격한 검열 하에 있었고 정권반대자들에 대해서는 혹독한 고문 등 물리적 탄압이 가해졌다. 특히 1974년 4월 군사독재에 맞서 대학생들이 궐기하자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23명을 구속기소하고 이 중 8명에게는 사형, 15명에게는 무기징역 및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하였다. 그리고 사형이 선고된 8명에게 대법원 상고가 기각된 지 20여 시간 만에 형이 집행한 인혁당 사건은 ‘사법살인’이라는 오명을 남기며 당시 국민들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여론이 악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 밖에도 김대중 납치사건, 민청학련 사건, 장준하 사건 등 유신기간 내내 인권탄압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면서 국민들은 점차 정부로부터 등을 돌리게 되었다.3) 반대세력야당, 재야, 학생, 종교단체 등의 세력들이 유신체제의 부조리를 알리고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 나가면서 유신체제는 점차 붕괴를 겪게 된다. 1974년에는 그동안 박정희 정권에서 가장 많은 탄압을 받아왔던 언론인 들이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1974년 10월 동아일보에 소속된 약 200명의 기자들이 ‘언론자유실천선언문’을 발표하였다. 기자들은 그 선언문에서 “민주 사회를 유지하고 자유 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한 기은 자를 대통령당선자로 한다.3항, 제2항의 득표자가 없는 때에는 2차 투표를 하고, 2차 투표에도 제2항의 득표자 없는 때에는 최고득표자가 1인이면 최고득표자와 차점자에 대하여,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이면 최고득표자에 대하여, 결선투표를 함으로써 다수득표자를 대통령당선자로 한다.이 조항은 박정희가 영구집권을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로 체육관에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대통령 선거를 하도록 헌법에 명시하였다. 이 헌법으로 박정희와 최규하, 전두환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중임, 연임에 대한 제한조항을 폐지함으로써 장기 집권이 가능한 사실상 종신형이 가능하도록 했다.제40조1항, 통일주체국민회의는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의 국회의원을 선거한다.2항, 제1항의 국회의원의 후보자는 대통령이 일괄 추천하며, 후보자 전체에 대한 찬반을 투표에 붙여 재적대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대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당선을 결정한다.3항, 제2항의 찬성을 얻지 못한 때에는 대통령은 당선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계속하여 후보자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변경한 후보자명부를 다시 작성하여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제출하고 그 선거를 요구하여야 한다.4항, 대통령이 제2항의 후보자를 추천하는 경우에,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거할 국회의원 정수의 5분의 1의 범위 안에서 순위를 정한 예비후보자명부를 제출하여 제2항의 의결을 얻으면, 예비후보자는 명부에 기재된 순위에 따라 궐위된 통일주체국민회의선출 국회의원의 직을 승계한다.당시 국회위원 선거법에 의하면 한 선거구당 2명을 선출하였다. 그래서 보통 박정회의 민주공화당과 야당이 한명씩 각각 선출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다가 박정희가 국회의원 전체 의석 중 1/3을 추천하게하고 통일주체가 이를 선출함으로써 박정희가 어렵지 않게 국회의 2/3 이상을 차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국회는 박정희 정권이 상정한 법안 등을 손쉽게 통과 시킬 수 있었다.제41조1항, 통일주체국민회의는 국회가 발의?의결한 헌법개정안을 최종적으로 의결?확정한.
Where does success come from?-책 ‘아웃라이어’와 ‘인라이어’를 읽고-Ⅰ. 서론Ⅱ. 성공의 의미Ⅲ. 성공의 거름: 교육Ⅳ. 아웃라이어Ⅴ. 인라이어Ⅵ. 결론Ⅶ. 과제를 하면서 느낀점Ⅷ. 참고문헌Ⅰ. 서론“사람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하기 위해 태어난다.” 미국의 사상가이자 문학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한 말이다. 그렇다. 비록 사람마다 성공의 기준과 목표는 다를지라도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성공을 열렬히 갈망한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 결과 오늘날 현대인의 주위에는 성공에 관한 자기계발서와 강의가 넘쳐난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누구나 간절히 원하고 그 방법 또한 무수히 많이 제시되어 있지만 정작 그것을 성취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성공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가.Ⅱ. 성공의 의미성공을 의미하는 영어 ‘Success’의 어원은 라틴어 Successus에서 왔으며 Suc(다음에)와 cedere(생긴다)가 조합되어 생긴 말로 성공이란 ‘노력한 다음에 생기는 결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반면 동양에서 성공(成功)은 사마천의《사기(史記)》의 ‘성공지하 불가구처’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로 ‘자신이 원한 것을 이룬 상태’을 의미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성공’의 의미는 동양의 의미와 더 유사하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자신이 원하는 상태를 이루기 위해서 어떠한 요소가 필요할까?Ⅲ. 성공의 거름: 교육교육은 크게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자신들의 삶의 양식을 보존하여 후대에 전수 할 수 있게 하는 기능이고 나머지 하나는 개개인의 잠재능력을 발휘하게 하여 자아실현을 가능케 하는 기능이다. 성공은 인간이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성숙’과는 다르며 지속적인 교육을 바탕으로 한 ‘학습’ 작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때문에 성공의 비밀을 아는 것은 교육적 성취는 어디서부터 오는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몇 년 전 출간되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책 ‘아웃라이어’와 ‘인라는 사소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차이로 이어 질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러한 연구 결과는 하키에만 한정되지 않고 축구, 야구 등 타 종목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연구는 운동에만 적용될까?나는 3월 18일에 태어났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3월 1일생부터 다음해 2월 29일까지 학교 입학이 가능했기 때문에 나는 생일이 매우 빠른 편이었고, 3월에 태어난 것에 대해 아주 만족하고 있다. 가령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또래 아이들보다 의젓하고 철이 많이 들었다고 칭찬 해주셨고 다양한 방면에서 친구들 보다 경험이 많아 학업에 더 뛰어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보다 운동신경이 빨리 발달해서 학급 대표로 운동경기에 나가 상도 많이 탔었다. 이러한 경험은 유년시절 자신감 있게 학교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원천이 되었던 것 같다.2) 교육적 성취: 노력과 끈기아웃라이어 책 이후 한동안 우리사회에서는 1만 시간 열풍이 불었다. 어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려면 1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대표적인 예로 모차르트나 비틀스가 있다. 모차르트는 어릴 때부터 작곡, 작사를 했지만 그때 작곡한 노래들은 유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10년간 꾸준히 정진한 결과 명곡이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비틀스도 영국 있는 조그만 pub에서 노래를 시작해 콘서트를 1,200번 정도를 경험한 이후 미국으로 가서 성공했다. 그들은 짧은 시간에 성공한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과 어려움을 겪은 후에 그런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다. 성공적인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더라도 꾸준히 10년이라는 세월을 경험한 후 성공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그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다. 옛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재능과 조건이 뒷받침되어 있더라도 부단한 노력과 끈기가 뒷받침 되어야만 높은 교육적 성취를 이룰 수 있다.3) 교육적 성취: 환경일반적으로 학습에 관한 황금률 중 하나로 ‘환경을 탓하지 마라’는 말이 있다높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책에서 주장하며 대표적인 예로 크리스토퍼 랭건과 오펜하이머를 들고 있다. 크리스토퍼 랭건은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최고의 지능을 갖고 태어났지만 후천적 환경은 누구보다 열악했다. 집은 찢어질 정도로 가난했고, 알콜 중독자인 그의 의붓아버지는 채찍으로 그를 때리기도 했다. 그의 천재성을 알아주는 사람은 동생 말고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고교를 졸업했을 때 그는 SAT에서 만점을 받았지만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는 대학은 두 곳뿐이었다. 그는 오리건주에 있는 리드 대학을 선택했으나 얼마 뒤 그만둬야 했다. 학교 측이 랭건 집에서 사소한 서류 하나가 오지 않았다며 장학금을 줄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매우 불행히도 그의 가족들은 그의 교육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뒤 몬태나 대학에 다시 등록했지만 이번에는 고물자동차가 고장 나 원거리 통학이 어려워졌다. 대학 측에 “오전에 듣던 수업을 오후에 옮겨 들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그 길로 대학을 때려치운 그는 먹고 살기 위해 막노동에 나섰다. 건설현장을 떠돌거나 고기잡이배를 탔으며, 카우보이, 삼림소방관, 나이트클럽 경비원 등으로 일하며 그의 지능이나 배움에 대한 열정에 걸맞지 않은 생활을 반평생 지속하고 있다. 빈곤에 의해 자신의 능력을 펼 기회조차 박탈당한 것이다.그와 대조적으로 오펜하이머는 예술가이자 성공적인 의류 생산 업자를 아버지로 둔 덕분에 맨해튼에서 부유하게 성장했고 주말마다 교외로 드라이브를 하고 문화적 요소들을 충분히 누렸다. 또한 세계 최고의 교육 여건을 갖춘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유럽에 유학하며 자신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부모들의 능력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고 오펜하이머의 부모들도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은 비슷했으나 한명은 미국 촌구석의 이름 없는 농부로 또 한명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과학자로 완전히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4) 교육적 성취: 운일반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운이 도 ‘나는 운이 매우 좋은 사람이다.’라고 말했듯이 교육적 성취에 있어서 운은 아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5) 교육적 성취: 기회포착앞에서 교육적 성취를 이루는 요소로서 사소한 차이, 노력과 끈기, 환경, 운 등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다가온 기회를 단번에 포착 할 수 있는 능력은 교육적 성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탈리아의 토리노 박물관에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의 조각상이 있다. 조각상을 앞에서 살펴보면 우람한 근육질에 머리숱도 많지만 뒤에서 바라보면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대머리이다. 또한 손에는 칼과 저울을 들고 있으며 발에는 날개가 달려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데 조각상 밑에는 “내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쉽게 붙잡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면 다시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어깨와 발뒤꿈치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다”라고 적혀 있다. 앞의 사례에서 교육적으로 성취를 이룬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기회를 파악하고 그것을 잡을 수 있도록 교육되어 있었으나 크리스토퍼 랭건과 같이 실패한 사람들은 환경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기회를 잡지는 못했다.Ⅴ. 인라이어책 ‘인라이어’는 제목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모로 ‘아웃라이어’와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가령 ‘아웃라이어’에서는 외국의 사례가 많았던 반면 ‘인라이어’에서는 국내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로 제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아웃라이어에서는 개인을 둘러싼 환경에 초점을 맞춘 반면 ‘인라이어’에서는 개인의 역량을 강조하고 있다.1) 교육적 성취: Grit up최근 IQ(지능지수), EQ(감정지수) 이어 AQ(역경지수)가 우리사회에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즉 과거에는 머리가 좋거나 혹은 다른 사람과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 하는 것이 교육적 성취 달성에 효과적인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현재는 역경을 얼마나 잘 이겨내느냐에 교육적 성취가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 로 평생 열정을 바쳐 일할 수 있는 분야를 찾도록 교육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창의성으로 높은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특징으로서 자신의 신념을 믿고 과감히 결단할 것, 어린 시절부터 부단히 노력할 것, 정보를 빠르게 처리해 장기 기억의 영역에 저장해 놓고 필요할 때 재빨리 꺼내 쓸 수 있는 스킬을 익히는 것이 있다. 이러한 창의성 증진 교육을 통해 더욱 높은 교육적 성취를 달성할 수 있다.4) 교육적 성취: 몰입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과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흥미롭다. 인간은 자기가 지닌 능력의 10퍼센트도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잠재력의 한 예로 7층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경찰이 받아낸 사건이 있었고 또 자신의 딸이 트럭바퀴 아래에 깔리자 1톤짜리 트럭을 들어버린 주부의 사례도 있다. 학습에서 이러한 잠재력을 이끌어 내는 방법으로 몰입이 있다. 몰입이란 어떤 행위에 깊이 집중하여 시감의 흐름이나 공간 더 나아가 자신에 대한 생각까지도 잊어버리는 심리상태를 의미한다. 성공을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몰입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들은 몰입을 했을 때 내 운명의 주인은 나라는 느낌을 받으며 마냥 기분이 고양되고 행복감을 맛본다고 한다. 또한 몰입이 끝난 뒤에는 자아감이 더욱 강해지고 새로운 능력과 성취에 따라 풍요로워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몰입 상태에 빠져 들기 위해서는 문제에 대처하는 기술과 당면한 도전의 수준을 적절하게 고려해야 하며 자신의 인생에 대해 명확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5) 교육적 성취: 목표설정만약 인간이 영원불멸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어떨까? 아마 목표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한번뿐인 인생을 후회 없이 살고자 한다. 목표 설정의 중요성을 증명한 인물이 바로 미국의 기부왕 폴 마이어라는 사람이다. 그는 젊은 시절 취업 면접에 무려 57번이나 떨어지는 등 좌절을 겪지만 자기가 이루고 싶은있다.
정부불신의 이유, 역사적 사례 및 경제이론을 중심으로 분석몇 해 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되었다는 미국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2008년 이미 한 차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로 홍역을 치른 정부는 난처한 기색이 역력하다.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잇달아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즉각 중지하라며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미국에서 발생한 광우병이 30개월 이상 된 젖소에서 발생했고 비정형 광우병이란 점을 들어 별 문제 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한 여론조사에서는 전 국민의 약 72%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중단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도대체 왜 국민들은 정부의 해명을 믿지 못하고 정부는 왜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가 그리고 정부에 대한 불신은 언제부터 시작 되었는가정부 불신의 사례들을 역사적(근˙현대)으로 고찰해 보면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 해방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한 국민들은 저마다 새로운 사회가 도래 할 것이라는 부푼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38선을 경계로 남쪽에는 미군정이 들어오고 북쪽에는 소련군이 진주하였다. 특히 남한의 미군정은 사회를 안정시킨다는 명목으로 일제하의 친일파들을 재 등용하였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도 전 국민들의 염원이었던 일제 친일파 청산을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도리어 친일 지주계급들은 반공 애국지사로 변모하며 민중들을 수탈하는데 앞장섰다.특히 6.25 전쟁은 국민이 정부를 불신하게 만드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은 남측을 해방시킨다는 명분하에 기습적으로 전쟁을 일으킨다. 시민들은 멀리서 대포 소리가 들려 불안에 떨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을 통하여 “우리 국군이 38선에서 적군을 섬멸하고 있으며 서울은 절대 사수한다. 시민들은 동요하지 말고 자리를 지키라”는 연설을 하고 자신은 피난하였다. 뿐만 아니라 피난 도중 한강다리를 폭파함으로써 미쳐 피난길에 나서지 못한 많은 서울 시민들과 곳곳에서 남쪽으로 떠나려는 수많은 피난민들은 극도의 혼란과 무질서 속에서 무수히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겪어야 했다.시간적으로 멀리 거슬러 올라갈 필요 없더라도 각종 비리, 특혜 등 정부의 불신 제공은 꾸준히 있어 왔으며 정부를 신뢰하면 바보가 되고 손해를 보는 이상한 사회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정부 불신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 먼저 정보의 비대칭성을 들 수 있다. 정부의 조직은 규모가 매우 크고 복잡하다. 때문에 뉴스나 언론을 통해 우리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아주 편향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정보를 제공할 어떠한 유인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국민들도 집단행동의 딜레마에 빠져 적극적인 정보 획득 노력을 등한시한 채 타인에게 무임승차하려 한다. 물론 정부의 입장에서는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 경우 국론이 분열되고 갈등이 증가 하는 등 능률성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능률성은 행정의 수단적 가치일 뿐이다. 반면 민주성은 행정의 목표 가치이다. 따라서 정부는 능률성 이전에 민주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목표 전환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류의 미래, 도시에 있다.- 조엘 코트킨의 를 읽고 -인류의 역사를 도시를 빼놓고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그만큼 도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기 때문이다. 어떤 도시는 인류의 역사와 호흡하는 과정 속에서 한때는 찬란하고 세계 제일의 문명을 자랑했지만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힘들며 또 어떤 도시는 아직까지도 번성하며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아주 먼 과거에서부터 지금 현재까지, 도시의 변천과정을 통해 앞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도시는 어떠한 모습과 기능을 가질까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조금이라도 얻고자 조엘 코트킨의 ‘도시의 역사’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이 책의 저자 조엘 코트킨은 도시 생성과 발전 키워드를 종교, 정치, 경제, 개방성으로 보았으며 책의 내용을 도시의 기원과 유럽과 동양의 도시, 르네상스 시기 도시, 산업혁명으로 나타난 도시, 현대의 메트로폴리스 등 시간순서로 구성하였다. 특히 책에 비록 많은 페이지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도시화에 대한 내용도 소개되어 있어 흥미로웠다.지금 현재 세계에는 200개가 넘는 국가와 그보다 훨씬 많은 도시들이 형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도시의 시조는 어디일까? 저자는 신석기 시대에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도시가 처음 탄생 했을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원을 오늘날 이라크에 해당되는 메소포타미아로 보고 있다. 이 시기를 전후해 가장 주목할 점은 그 당시 최상위 지배계층이 성직자라는 점이다. 그로 인해 당시 사람들의 생활은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으며 남아 있는 대규모 종교 건축물이나, 사원은 이러한 설명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현상이 특정지역에 한정되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집트, 중국, 미국 등 전 세계에 나타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사학자 T.R 페렌바흐는 이것을 보고 “세계 전역의 초창기 도시 건설자 사이에는 심리적 통일감이 존재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초창기 도시는 성직자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에서 성스러운 장소라는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점차 잉여생산물이 늘어나고 무기가 발달 되면서 정복전쟁이 활발해지고 도시는 또 한 번 변모한다. 이 시기의 도시는 제국의 중심지 기능을 가지는데 사르곤을 비롯한 정복자들은 성직자들에게서 경제적 지배권을 빼앗고 이전까지는 신의 부속물에 불과했던 토지를 사유재산으로 삼을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그 결과 개인의 생산 동기가 더욱 높아져 생산성이 증대되고 교역이 발달되었다. 또 다양한 인종과 씨족이 교역을 통해 나타나고 도시의 기능이 복잡해지면서 보편적이고 체계적인 법률체계가 필요해졌는데 이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법인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이 탄생하게 된다. 이처럼 도시는 인간의 생활과 발맞추어 진화해 갔다. 정복전쟁은 도시의 형성과 발전을 가속화 했으며 고대 로마 시대에 이르러 그 정점을 찍는다. 로마인들은 끊임없는 정복을 바탕으로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도시를 뜻하는 메가시티를 탄생 시켰다. 이 시기 지구 반대편 동양에서는 서양과 달리 전혀 다른 도시 형태가 나타난다. 동양의 도시들은 유럽의 상업 발달과 통상과는 달리 농경사회의 도시 전통을 기반과 정치를 원동력으로 발달해 나간 것이다. 그리고 유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물품과 고도의 발달된 관개시설과 수로체계를 바탕으로 한 농경생산을 통해 동양의 도시들은 번영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절대 권력 지배의 한계와 지배 계층의 탄압으로 상인들의 생산 의욕을 떨어뜨림으로써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14세기 서양에서는 르네상스를 맞이한다. 전통의 강조와 가톨릭교회를 특징으로 한 르네상스 시기 유럽의 상업은 동양과 달리 크게 발달한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서서히 뿌리를 내리면서 산업 혁명의 단계로 나아간다. 18세기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산업 혁명은 지금까지의 도시 환경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영국의 대표적인 빈곤 지역에 속했던 랭커셔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19세기 초 가장 역동적인 경제 지역으로 떠올랐으며 인구도 5배 이상 증가하는 등 지금까지 그 어떤 도시도 경험하지 못한 급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환경, 위생문제, 어린 노등 착취 등 수많은 부작용도 노출했다. 그러나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영국식 도시화는 유럽, 미국, 일본으로 급속하게 전파되었다. 특히 미국 맨하탄의 스카이라인은 자본주의 산업사회 도시를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현대 도시국가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는 새로운 도시화 바람이 불고 있다. 사람들이 도시의 외곽으로 살기 시작하는 ‘교외화’가 바로 그것이다 것이다. 범죄와 쓰레기가 넘쳐나는 도심에서 벗어나 같은 가격에 더 넓은 집, 쾌적한 주변 환경을 누릴 수 있다는 장점에 사람들은 점차 교외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도시의 범위는 점차 넓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도시화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과거 일본의 식민지, 한국전쟁 등의 어려움을 딛고 도시화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도시화 수준은 도쿄나 현대적인 서구의 도시들과 비슷하다고 평가하였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대기업 본사와 정부 기관이 서울에 압도적으로 밀집해 있는 현상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영화 속의 상징물 ‘물’을 통해 분석한 영화 1. 인공연못의 물이 영화는 새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잃어버린 돈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한 오누이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7살 소녀 라지에는 어느 날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하얀 금붕어를 보게 된다. 마치 춤을 추듯 하늘하늘하게 펄럭이는 금붕어의 지느러미 모습에 매료된 라지에는 엄마에게 금붕어를 사달라고 떼를 쓴다. 하지만 엄마는 집 안에도 금붕어가 많이 있지 않냐며 거절한다.영화 초반 라지에의 집에 있는 인공연못이 등장한다. 인공연못은 자연적으로 조성된 일반 연못과 다르다. 때문에 인공연못 속의 물고기는 자유롭게 헤엄치지 못하고 움직임도 거의 없다. 그리고 라지에 집의 금붕어를 얻기 위해 방문한 이웃집 소년의 고기잡이 채에 금붕어들은 무기력하게 잡히고 만다. 금붕어가 이 시대의 억압된 현대인들을 표상하는 것이라면 금붕어가 갇혀있는 인공연못은 오늘날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제도와 도시화 산업화된 사회를 상징한다.2. 어항속의 물오빠 알리의 도움으로 엄마로부터 500토만을 받은 라지에는 금붕어를 사러 가지만 도중에 돈을 잃어버리고 만다. 라지에는 금붕어를 파는 아저씨에게 잃어버린 돈을 찾을 때까지 절대 다른 사람에게 금붕어를 팔지 말라고 신신 당부한다. 아저씨는 돈을 잃어버린 라지에가 안쓰러워 다른 사람에게 금붕어를 팔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라지에의 어항 속에 금붕어를 넣어 둔다. 어항위에서 금붕어를 내려다 본 라지에는 금붕어가 기대했던 것보다 작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저씨가 어항의 옆쪽에서 금붕어를 보라고 하자 어린 라디에의 눈에는 금붕어가 다시 크게 보인다.어항속의 물에 빛이 굴절하는 현상으로 인해 금붕어가 원래의 크기보다 크게 보이는 물의 성질을 우리는 흔히 목욕탕이나 개울가 등에서 경험 할 수 있다. 물은 실재 존재하는 사물을 다르게 나타낼 수 있다는 면에서 속임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어항속의 물을 통해 이 세계가 완전한 진실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