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존 교구와 학습 형태 (영화 교구의 부재와 고민)학교를 포함하여 학습자와 교수자가 존재하는 교육기관에서는 교과별 목적을 두고 교육과 정이 진행되기 마련이다.1) 특히 그러한 교육기관들 중에서 학교라는 틀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면 어떤 형태의 수업이라 하여도 일정한 교육적 목표가 있기 마련인 것이다.그러나 영화교육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초, 중학교에서 정규과목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 는 영화 교육의 대부분은 학교문화예술교육으로 주로 일반 초, 중, 고등학교를 기반으로 동 아리활동, 특별활동, 자유학기제, 방과 후 수업 등으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영화강사들은 대 부분 인원수가 유동적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업하게 되고, 강사 재량에 따라 편차가 크며, 수업 준비와 연구에 충실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과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교육이 시행되며 가르쳐야 하는 학습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또한 교수법 연 구와 교과서 연구 그리고 교구개발 등의 연구도 정체될 수 밖에 없다.이번 교구개발을 위해서 사전조사를 하였고, 해외사이트와 국내 영화교육 관련 논문 등을 참조하였지만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더불어 지금까지 영화를 전공하면서도, 영화 과목 교직이수를 하면서도 제대로된 영화 교구를 목격한 바가 없었다.인터넷에서 영화교구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것들을 살펴보면 1)영화의 전사인 움직이는 그림, ‘모션픽처’를 적용한 장난감, 2)사진교구에 가까운 스마트폰 초점거리기 등의 상품화 된 교구가 있다. 그나마도 영화교육을 적용하기에는 단점뿐이다. 교구가 설정하는 학습자 범위는 초등학생 수준에 머물러있고, 실제로 전공하고 있는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이나 중학 생들이 배우는 영화 교과서와 프로그램에 효율성이 떨어진다. 또, 이 교구들은 만들기와 준 비물에 가까워서 적용가능성이 떨어진다. 어쩌면 일정한 교육적 목표와 교육적 대상의 존 재가 공고히 되지 않는 환경에서 영화를 가르친다는 일은 아직까지 미지의 영역인 것만 같다.
영화 『바람의 검 - 신선조』 리뷰1) 전체적인 줄거리『바람의 검 - 신선조』는 아사다 지로의 장편소설 『미부의사전』을 타키타 요지로 감독이 영화한 작품으로, 막부시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신선조’, 히라가나의 음을 따라 읽자면 ‘신센구미’는 일본의 에도 시대 말기에 조직된 무사조직이다. 본래 교토로 가는 쇼군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었으나 이후교토의 치안 유지를 담당하면서 막부에 반대하는 세력과 싸우는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영화는 이러한 신선조에서 활동한 인물에 주목하여 서사를 진행한다.이사 준비를 하고 있는 작은 병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픈 손자를 등에 업고 병원을 찾아간 사이토는 과거 신선조에서 활동하던 암살자였다. 그는 다행이도 문을 열어준 병원 안에서 하나의 액자를 발견하는데, 그 액자의 주인공은 신선조에 같이 소속되어 있던 칸이치로였다. 칸이치로는 작은 번의 가난한 하급무사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신선조에 지원한 인물로, 뛰어난 실력 덕분에 바로 신선조의 검술사범으로 임명된다. 병원을 운영하던 의사는 이 칸이치로의 제자이자 그가 모시던 번주의 아들이었는데, 칸이치로의 인자하고 헌신적인 모습을 존경하고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사이토는 돈 앞에 자존심도 챙기지 않는 칸이치로를 보면서 처음에는 그를 싫어하고 죽이려는 시도도 하지만 점차 칸이치로가 보여주는 무사적 면모에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칸이치로가 신선조에 들어가게 된 영화상의 시기는 1860년대 중후반이다. 신선조가 충성을 바치던 막부가 불평등조약 이후 메이지 유신의 물결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고, 1867년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대정봉환을 실행하면서 권력은 천황에게로 이양되었다. 영화 안에서 나타나는 전투장면은 막부세력과 반막부세력 사이의 전투인 보신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칸이치로는 막대한 금액과 함께 반막부 세력의 권유를 받았으나 이를 뿌리치고 끝까지 신선조에 충성을 다하며 실패할 것이 뻔한 전쟁을 치른다. 사이토는 신선조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이러한 칸이치로의 모습에 감명받는다. 사이토와 칸이치로는 함께 반대파와 싸우지만 시대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고, 칸이치로의 생은 할복으로 끝을 맺는다.2) 에도 말기와 하급무사의 삶칸이치로가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을 두고 신선조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무엇보다도 경제적인이유가 크게 작용하였다. 당시의 ‘무사도’를 고려하면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주군이자 고향의 소중한 친구를 떠나는 것은 큰 명예를 버리는 일이었을 테다. 게다가 신선조의 선배 무사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도 무릅쓰고 돈을 타내기만을 기다리는 칸이치로의 모습에서는 자존심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 그가 이러한 선택을 하게끔 내몬 것은 개항기 이후의 곤궁해진 생활이다. 불평등조약을 시작으로 한 개항은 수출을 증가시켰고, 이는 국내 소비물자의 부족으로 이어졌다. 이와 더불어 금이 유출되면서 일본 내의 물가가 등귀하였고 하급무사들의 삶은 생계를 이어가기에서 버거울만큼 어려워진다. 막부 말기의 열악한 삶에서 ‘아버지’의 역할까지 수행해야 했던 칸이치로의 부담감은 수많은 불명예를 감수할 만큼 컸을 것이다. 번을 떠나기 전 가족과 제자들을 돌보는 모습, 할복 전까지 가족과의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매달리는 모습에서 그에게 가족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깊었는가를 알 수 있다.칸이치로는 자신의 번을 떠나면서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한 번 저버린다. 그러나 권력이 천황에게로 이동해가는 과정에서 신선조 내부의 분열이 일어나고 반대파로부터의 권유가 들어왔을 때 그는 도쿠가와 가의 무사로서 충성을 다한다. 탈번의 선택이 가족의 생계를 위한 것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신선조에서 나와 반대파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유신의 시대에 가족들과 평안히 살아갈 수 있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주인을 두 번 배신”할 수는 없었기에 그는 실패할 것이 뻔한 전투를 치른 것이다. 무사의 도덕은 충심임이 명징하였던 시대에 그는 자신과 가족의 명예를 다시 한 번 꺾는 선택을 하지 않았던 것이며, 이것이 칸이치로의 ‘무사도’였다.
영화 『바람의 검 - 신선조』 리뷰1) 전체적인 줄거리『바람의 검 - 신선조』는 아사다 지로의 장편소설 『미부의사전』을 타키타 요지로 감독이 영화한 작품으로, 막부시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신선조’, 히라가나의 음을 따라 읽자면 ‘신센구미’는 일본의 에도 시대 말기에 조직된 무사조직이다. 본래 교토로 가는 쇼군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었으나 이후교토의 치안 유지를 담당하면서 막부에 반대하는 세력과 싸우는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영화는 이러한 신선조에서 활동한 인물에 주목하여 서사를 진행한다.이사 준비를 하고 있는 작은 병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픈 손자를 등에 업고 병원을 찾아간 사이토는 과거 신선조에서 활동하던 암살자였다. 그는 다행이도 문을 열어준 병원 안에서 하나의 액자를 발견하는데, 그 액자의 주인공은 신선조에 같이 소속되어 있던 칸이치로였다. 칸이치로는 작은 번의 가난한 하급무사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신선조에 지원한 인물로, 뛰어난 실력 덕분에 바로 신선조의 검술사범으로 임명된다. 병원을 운영하던 의사는 이 칸이치로의 제자이자 그가 모시던 번주의 아들이었는데, 칸이치로의 인자하고 헌신적인 모습을 존경하고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사이토는 돈 앞에 자존심도 챙기지 않는 칸이치로를 보면서 처음에는 그를 싫어하고 죽이려는 시도도 하지만 점차 칸이치로가 보여주는 무사적 면모에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칸이치로가 신선조에 들어가게 된 영화상의 시기는 1860년대 중후반이다. 신선조가 충성을 바치던 막부가 불평등조약 이후 메이지 유신의 물결과 함께 흔들리고 있었고, 1867년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대정봉환을 실행하면서 권력은 천황에게로 이양되었다. 영화 안에서 나타나는 전투장면은 막부세력과 반막부세력 사이의 전투인 보신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칸이치로는 막대한 금액과 함께 반막부 세력의 권유를 받았으나 이를 뿌리치고 끝까지 신선조에 충성을 다하며 실패할 것이 뻔한 전쟁을 치른다. 사이토는 신선조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이러한 칸이치로의 모습에 감명받는다. 사이토와 칸이치로는 함께 반대파와 싸우지만 시대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것이었고, 칸이치로의 생은 할복으로 끝을 맺는다.2) 에도 말기와 하급무사의 삶칸이치로가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을 두고 신선조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무엇보다도 경제적인이유가 크게 작용하였다. 당시의 ‘무사도’를 고려하면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주군이자 고향의 소중한 친구를 떠나는 것은 큰 명예를 버리는 일이었을 테다. 게다가 신선조의 선배 무사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도 무릅쓰고 돈을 타내기만을 기다리는 칸이치로의 모습에서는 자존심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 그가 이러한 선택을 하게끔 내몬 것은 개항기 이후의 곤궁해진 생활이다. 불평등조약을 시작으로 한 개항은 수출을 증가시켰고, 이는 국내 소비물자의 부족으로 이어졌다. 이와 더불어 금이 유출되면서 일본 내의 물가가 등귀하였고 하급무사들의 삶은 생계를 이어가기에서 버거울만큼 어려워진다. 막부 말기의 열악한 삶에서 ‘아버지’의 역할까지 수행해야 했던 칸이치로의 부담감은 수많은 불명예를 감수할 만큼 컸을 것이다. 번을 떠나기 전 가족과 제자들을 돌보는 모습, 할복 전까지 가족과의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매달리는 모습에서 그에게 가족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깊었는가를 알 수 있다.칸이치로는 자신의 번을 떠나면서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한 번 저버린다. 그러나 권력이 천황에게로 이동해가는 과정에서 신선조 내부의 분열이 일어나고 반대파로부터의 권유가 들어왔을 때 그는 도쿠가와 가의 무사로서 충성을 다한다. 탈번의 선택이 가족의 생계를 위한 것이었음을 고려한다면, 신선조에서 나와 반대파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유신의 시대에 가족들과 평안히 살아갈 수 있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주인을 두 번 배신”할 수는 없었기에 그는 실패할 것이 뻔한 전투를 치른 것이다. 무사의 도덕은 충심임이 명징하였던 시대에 그는 자신과 가족의 명예를 다시 한 번 꺾는 선택을 하지 않았던 것이며, 이것이 칸이치로의 ‘무사도’였다.
(1) 성교육의 정의남성과 여성간의 정신적·육체적인 관계, 즉 성(性)에 관한 과학적인 지식을 올바르게 지도하는 교육· 인간의 성은 생물학적으로도 공통적이면서도 다른 특성을 갖고 있으며, 생물학적인 요소 이외에 많은 요소들이 포함된 종합적인(Comprehensive) 개념으로 정의된다.· 타인을 배려한 책무성이 뒤따르는 건강한 성행동이 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성행동은 본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여러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이를 지양하기 위해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학생들이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통해 바람직한 성 가치관과 성행동을 할 수 있도록 성교육이 이루어 져야 한다.· 성 가치관, 성 규범, 성 행동에 대한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통제능력을 길러 다양한 성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2000년대 이후의 한국과 국제정치『새우와 고래싸움』이 출판되었던 2004년은 국가 내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의 의결을 통과하고 밖으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해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자주 외교’를 표방한다고 하였으나 이라크 파병은 분명 한미동맹을 의식한 선택이었다. 국내적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러한 정치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것은 이른바 ‘부시 독트린’이 유지되고 있었던 국제정세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커다란 고래가 한반도 정세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역사의 시작은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근대 국가 기틀의 형성과 맥을 같이한다. 미국의 원조경제에 힘입어 해방 후 회복을 도모하고, 고도성장기 해외 자본과의 연관성이 확대되는 과정 속에서 한국은 국가가 일정 수준의 자생력을 확보하는데 있어 미국에 주요한 역할을 부여해왔다. 닉슨 독트린 이후 미국의 일방적인 주한미군 철수 선언이 있었음에도 비대칭적 한미동맹이 지금까지 계속 유지된 것은 ‘아테네와 밀로스의 대화’의 내용에 미루어보아, 특히나 분단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약소국으로서의 한국이 편승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고 한국 사회 내부에서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하고 미국과의 불평등한 관계를 지적하는 반미감정이 여러 의제들에서 빈번히 드러났다. 강성학 교수는 OECD가입과 2002년 월드컵을 거친 후 현재의 한국이 ‘강대국 신드롬’을 앓고 있다고 진단한다. 압축성장 이후 급하게 국가의 부가 늘어나면서 한국이 “마치 스스로 강대국처럼 행동하고 우리도 강대국 중의 하나라는 착각(강성학 2004, 45)”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 국내 사회에서도 이루지 못한 평등을 미국과의 관계에 요구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강대국 신드롬’과 함께 등장한 것이 ‘민족주의 감정’이다. 한국의 민족주의 감정은 사실상 반미 감정으로 확산되면서 “맹목적 평화주의와 감상적 민족공생주의의 분위기에 빠지게 되었다(강성학 2004, 47)”. 이는 핵을 보유한 북한과 견제 상태에 있음에도 한국에 통일에 대한 낙관적인 정서가 공유되게끔 하였다. 그러나 몇 차례의 북한의 도발과 실제적인 갈등상황을 겪고 난 지금,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군사력에 대한 현실적 판단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전술하였듯 한국은 계속해서 편승하는 외교정책을 수행하여 왔다. 국제관계에서의 편승이란 “국가가 중대한 외적 위협에 직면했을 때 그 위험의 근원이 되는 세력과 제휴하는 것(강성학 2004, 182)”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책을 설명하는데는 슈웰러 (Randall Schweller)의 정의처럼 “이익을 위한 기회에 의해(강석학 2004, 182)”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보다 맞을 것 같다. 해방 이후 한국의 경제적 상황이 크게 나아진 것이 단극체제 안에서 근대 전환기의 편승정책이 거두었던 성공을 입증하는 것이 었다면, 탈냉전 이후의 다극체제에서 한국은 다각화된 외부와의 관계를 구체화할 필요성을 마주하였다. 예컨대 지난 7월 결정된 사드배치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 중국의 대립에서 한국은 한중관계에 미칠 충격이나 북한의 대응을 고려하여 손익계산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저자가 우려하는 ‘미국의 밴드웨곤이 멈춘’ 상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국제체제 내에서 한국은 자국의 위상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장기적 이익을 위한 정책을 짜야 하는 유인을 갖는다.저자가 지적하였듯 한국은 과거부터 지정학적, 군사적으로 약소국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국제관계에서 합리성을 발휘하는데 장애물이 되었던 유교적 국가관의 실패로 국가의 생존이 타국의 손에 넘어간 바 있다. 세계의 강대국들이 다시금 내적 균형(Internal Balancing)에 몰두하며 교류의 문턱을 높이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의 국가적 생존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영국의 EU 탈퇴 결정 이후 강대국이라 할 수 있는 서구권 국가들이 점진적으로 고립주의로 선향하고 있음이 가시화되었다. 그들은 이민자를 거부하고, 자유무역에 회의감을 갖는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는 “미국이 지켜주는 나라들은 반드시 방위비를 내야 한다.” 라고 말했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국제적 흐름들은 UN을 중심으로 세계의 각 국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목적성을 두어왔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도덕’의 가치들이 국익의 문제, 생존의 문제에 의해 후면으로 가게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한편으로는 헤게모니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안주함에서 비롯된, 한국이 가졌던 안보적 불감증에 충격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