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비슨이 조선에 올 당시 사람들의 머릿속엔 유교 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에게는 파란 눈의 선교사가 마냥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자식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땅에 온 그들이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병을 치료해주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고, 그들과 친구가 되려 하지는 않았다. 피부색, 얼굴 생김새가 조선인과는 확연히 다른 코쟁이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조차 부끄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에비슨과 나란히 걷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그의 한국어 선생님과의 일화는 이런 세태를 잘 반영해준다.‘단순히 문화의 차이에서 온 이기심이었을까?’ “천 개의 생명이 주어지더라도 조선을 위해 바치겠다.”라고 하던 선교사와 “조선 땅에 코쟁이들을 묻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라고 주장하던 사람이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있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애잔함과 안타까움이 전해졌다.에비슨이 의료선교를 시작할 당시에 진료소는 보잘것없는 건물이었고, 천한 신분을 가진 환자들은 마음 편히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곳이었다. 조선 왕실이 진료소의 경영과 관리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료소는 왕실 사람이나 양반들의 전유물이 되기 일 수였다. 또한, 그 건물을 관리하는 주사들은 나태하고, 형편없었으며, 천민들의 방문에 가차 없이 발길질을 해대며 욕설도 서슴지 않는 방자한 사람들이었다. 이 때문에 선교활동의 취지마저 흐려지는 것에 불만을 품은 에비슨은 큰 결심을 하게 되고 거듭 항의 의사를 밝혔다. 결국, 고국의 도움을 받아 조선의 왕실에서 진료소의 운영권을 넘겨받고, 선교원에서 이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관리 할 수 있도록 하며, 무엇보다 투명하게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문득, 무려 11명의 자식을 가슴속에 품고 사는 한 여인과 이를 듣고 가슴 아파하던 에비슨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당시 조선에는 천연두에 걸려 죽는 아이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에비슨은 예방접종을 시행하여 부모와 아이들을 이런 비극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였고, 전염병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개선하고 개인위생을 청결하게 하는 등 조선인의 의식 변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무엇보다도 감명 깊었던 이야기는 신분의 벽을 극복한 박 씨네 가족 이야기였다. 당시 조선은 신분에 따른 차별, 남녀 불평등 문제 등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 관습들이 팽배해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과 선교사들에게는 모두가 소중한 생명을 가진 백성들이었기 때문에 에비슨은 환자를 치료할 때나 자신과 뜻을 함께할 의과대학생들을 뽑을 때도 신분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들은 에비슨이 그랬던 것처럼 성실하게 일하던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열심히 학업에 임했으며 대를 거쳐 의료계에 발자취를 남겼다.13C 유럽의 귀족들은 환자들의 피고름을 직접 만지는 것을 천한 것으로 여기고 꺼렸기 때문에, 이발사가 그들을 대신하여 외과 의사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들의 모습과 긴 손톱을 자랑거리인 양 꺼내 보이며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던 조선 시대 양반들의 모습이 교차하며, 그 시대를 살았던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했을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었다.사회적으로 여자의 역할이 가정에 국한되었던 시대기 때문에 간호사 교육생을 구하는 문제 또한 만만치 않았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격동의 시대 우연한 사건으로 오랜 기간 금기되어있던 남녀 사이의 장벽을 깰 수 있었으며, 쉴즈와 에드먼즈의 영향으로 체계적인 간호 교육이 시작되었고, 이로써 한국 간호의 기틀이 마련되었다.당시 사람들은 서양 의사를 죽은 생명도 소생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런 무지한 사람들에게 선교사들은 배움의 기쁨을 주었고, 먹고 사는 일이 시급했던 조선인에게 잘 먹고 잘사는 법을 알려주었다. 또한, 그들이 떠난 후에도 조선인 스스로 그들이 남기고 간 것들을 지속할 수 있도록 의료, 교육, 계몽을 통한, 선교활동을 펼쳤고, 사회 각계 각 층에 후진 양성을 통한 영속성을 이룰 수 있게 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고 살아가던 그들의 사상을 깨우쳐 켜켜이 묵은 신분제를 허물고, 하나님 아래 모두 하나가 되는 세상을 이뤄낼 수 있게 한 것이다.에비슨 가족은 건강안식년을 맞아 캐나다로 돌아갔다. 가족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돌아왔지만, 에비슨은 그곳에서도 끊임없이 한국인들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방법을 궁리했다. 한국에서의 의료사역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던 차에 현대식 병원을 짓기로 계획했다. ‘그 또한 하나님의 계획이셨을까…….’ 에비슨이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왔지만, 서울에 있는 선교지부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현대식 병원을 짓기 위한 계획은 점차 현실로 다가왔다.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많은 돈, 사람, 노력이 필요하다. 건물을 지을 부지를 마련해야 하고, 생각을 실현할 설계도를 작성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자재구매와 인건비로 지출될 상당한 자금이 있어야 한다. 에비슨은 아무것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과 친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부터 해나가기 시작했다. 고든씨를 만나서 병원의 필요성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설계도를 받을 수 있었다. 적지만 무엇보다 값진 기부금을 모으기 시작했고, 병원설립을 위한 노력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니 그에게는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되돌아 왔다.한국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획하며 진정으로 그들을 살리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중, 만국선교대회에 참석해서 협동 선교의 필요성을 주제로 연설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연설은 카네기홀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진심 어린 연설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고, 병원을 짓기 위한 방법을 모색 중이던 세브란스의 마음을 움직였다. 세브란스씨는 에비슨의 계획에 결론을 짓게 도와주며, 거액의 기부를 약속했다. 베푸는 기쁨을 아는 세브란스를 에비슨의 동역자로 붙여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을 것이다.한국에 돌아온 에비슨은 과로로 앓아누웠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선교회에서 기부금 사용 문제로 인해 의견충돌이 일어났다. 평양선교회의 입심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에비슨을 설득하기 위해 브라운 박사가 찾아왔다. 그러나 그는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의료사역이 한국 실정에 맞는 선교활동이라 생각하고 에비슨의 뜻에 동참하여 병원 설립에 찬성하게 되었다.병원을 건축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는데, 당시에는 하수도가 분리되지 않아 비가 오면 거리에 고약한 냄새로 가득했다. 현대식 병원을 짓는 일이기 때문에 하수도를 분리하고 난방과 배관설비를 해야 하는 등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기부자의 이름을 딴 한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세브란스 병원이 완성되었다. 몇 년 전 우일선 선교사 사택에 다녀온 적이 있다. 사정상 외관밖에 볼 수 없었지만, 지금 보아도 100년이 다 되어가는 건물치고는 상당히 세련되고 견고해 보였고, 당시 양림동 사람들에게 2층 벽돌집은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선교사들이 한국인들을 살리는 동안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의 숨통을 조여 왔다. 국내 외로 어지러운 정세가 지속되었고 선교사들의 자리조차 날로 위태로워졌다. 어떤 방법으로든 위기를 극복할 힘이 필요했다. 평양을 중심으로 대부흥 운동이 일어나서 선교가 확장되었고. 선교부는 한국 YMCA를 중심으로 한 농촌운동을 벌이는 쪽으로 선교 방향을 잡아가고 있었다. 에비슨은 아들 고든이 한국의 식량난 해결을 위한 농촌전문가가 되기를 바랐고, 고든은 에비슨의 말에 순응했다. 그는 각 지역의 기후와 토질에 따른 벼 품종을 개량하여 보급하고, 농촌지도자를 교육함으로써 쌀 생산량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당시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질병 퇴치를 위해서는 영양을 먼저 보충시켜야 했다. 고든의 부인이자 간호사였던 프란시스는 구하기 힘든 우유를 대체하기 위해 염소젖을 생각해 냈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기 때문에 콩으로 우유를 만들어서 보급함으로써 유아의 사망률을 줄이는데 기여했다.
매듭짓기를 읽고1. 사생의 매듭이 책에서는 매듭의 의미를 다양한 끝맺음에 두고 있는데, 끝이 있어야 시작도 할 수 있으므로 매듭의 중요성을 여러 각도에서 강조하고 있다. 얼마 전 중간고사를 치렀다. 입학 후 첫 중간고사여서 그런지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매우 컸는데, 결과야 어찌 됐건 그렇게 시험을 매듭짓고, 리포트와 과제물을 시작하면서 다시금 대학생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인간이라면 누구나 죽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살아있는 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에노스’ 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왜 사는가?’ 라는 질문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뀌게 하는 것은 죽음의 매듭이 있기 때문이다.죽음의 매듭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게 되면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좀 더 뜻깊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지인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들었다. 그분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지만, 저녁 무렵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조문하기 위해 장례식장을 방문했을 때, 나는 조금 놀랐다. 화원 하나도 없이 가족들만이 지키고 있는 썰렁한 장례식장 분위기 때문이다.그는 평소에 가족밖에 모르고 열심히 살았지만, 그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도 초라해 보였다. 그는 무엇을 위해 쉬지도 않고 이토록 열심히 살아왔을까? 그의 생은 단지 공동묘지를 향한 질주였던 것인가? 그 후로도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미루어 짐작건대 그는 자신이 에노스적 존재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아담의 범죄 이후 인간은 죄의 삯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죽음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써 생명의 힘으로 죽음의 수레를 분해하실 수 있고, 인간에게 자신이 에노스임을 스스로 깨닫게 하시어 예수님께서 에노스의 구원자심을 알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자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나아가 자신을 내려놓고 예수님께 의탁하며, 늘 말씀에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하루하루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삶의 방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어떤 프로젝트를 계획 한다고 할 때, 목표와 세부적인 계획을 분명하게 세우는 사람과 즉흥적으로 진행하는 사람의 경우를 놓고 봤을 때, 그 결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전자는 매일 그 날의 목표치를 정하고 실천하여 결국은 그 목표치에 근접하기라도 하지만 후자는 프로젝트의 성공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된다.나 또한 그동안의 생활을 돌이켜 보니 후자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므로 이제라도 하루의 매듭을 잘 짓고 내일을 맞이하는 습관을 지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2. 수준의 매듭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에서는 제복을 입은 군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사람들은 주인공의 군인 말투를 따라 했고, 인기가 급상승한 그는 뉴스에도 등장하여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제복은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주기도 하고, 본인에게는 그 신분에 맞는 행동과 수준을 요구하기도 한다. 신분에 맞는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어려운지 그리스도의 자녀 된 자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하나님은 그의 은혜로 우리에게 제복을 입혀 주셨다. 허망하게 끝나버렸을 에노스였던 우리를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안에서 그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신 것이다. 그의 말씀 안에서 추구해야 할 최종 목표는 ‘사람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균형 있게 매듭지어지는 것인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감사하게도 그분께서는 십계명의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하셨고 신앙의 양심을 주셔서, 늘 우리를 고백하게 하시고 균형 있는 삶에서 비켜나지 않게 하셨다.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기복주의에 기인하여 하나님을 자신만의 하나님으로 섬기며 ‘사람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있다. 제복을 입었으나, 그에 맞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또한 ‘사람 사랑’을 실천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바탕이 되지 않아서 그저 박애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남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모두 인간의 종교심일 뿐 성경이 요구하는 참된 믿음이 아니다.하나님은 늘 우리를 지켜보시고 최선의 것을 향해 전진하게 하신다. 며칠 전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퇴근 시간에 비가 많이 와서 번잡한 버스를 피하고자 평소보다 조금 늦게 퇴근을 하는 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길모퉁이에서 아주 고가의 명품지갑을 주운 것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것을 들고 집으로 와서는 인터넷으로 가격을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너무 후회스럽다고 했다. 나는 서둘러 경찰서에 갖다 주라고 재촉했고, 그녀도 그럴 생각이라고 했다. 결국, 주인이 나타났고 그녀는 사례금을 거절하는 것으로 잠시나마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반성했다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바로 돌려주고도 남았을 것인데, 무엇이 그녀를 주저하게 하였을까? 우리 모두가 한번은 생각해 보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 같다.사람들은 곳곳에 있는 유혹에 빠져 넘어지기도 하고 스스로 노력하여 이겨내기도 한다. 유혹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우선은 신앙이 바로 서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주께서 주신 제복에 걸맞은 수준을 갖추고, 자신과 더불어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또 일부는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참되게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단단한 매듭이 있으므로, 보통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자신을 헌신하는 삶을 살곤 한다. 온몸으로 선교와 의료사역을 펼쳤던 슈바이처와 조선에 온 선교사들....그들 모두 확고한 매듭을 가진 하나님의 전도사들이었을 것이다. ‘나의 매듭은 어떤 형태로 존재하며, 나는 X의 삶을 살고 있는가?’ 한번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3. 경영의 매듭요즘은 일명 ‘먹는 방송’이 방송 패러다임의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인기 있는 음식점을 소재로 하여 다양한 구성으로 방송하고, 이를 통해 거대한 광고효과를 얻어 해당 업체는 엄청난 수익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가서 음식을 먹게 되면 생각 외로 맛이 별로이거나 서비스나 위생 상태가 형편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광고 효과를 조장하기 위해 댓글을 조작하거나 블로그를 이용해 맛집으로 둔갑시킨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하지만 경영의 매듭을 튼튼히 하고 이윤추구의 목적을 ‘사람 사랑’으로 하여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반 기업은 많은 돈을 버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 사람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로 이루어진 기독기업의 경영 철학은 이들과 반대로 ‘사람 사랑’을 실천하려는 방법으로 돈을 이용하는 것이므로 이 두 가지 경우를 비교해 보면 경영 철학의 차이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크리스천 기업의 경영 목표는 ‘사람 사랑’을 통한 X의 구현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윤리적인 관행들로 기업들은 막대한 이윤을 취하고 있고, 그에 따른 수단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그들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다. 결국 ‘사람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이런 기업들은 그 뿌리가 깊지 못해 한순간에 쓰러져 공중분해 되어버리는 경우를, 우리는 그동안 사라져 간 수많은 기업을 통해 알 수 있다.그렇다면 ‘사람 사랑’의 방법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경영의 동반자이자 공생관계가 성립되는 거래처, 끊임없이 기업을 변화를 요구하는 고객, 기업경영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섬김과 사랑의 차원에서 이끌어나가야 할 동료와의 관계에 있다. 이들을 섬기기 위해 자기 몫이 감소하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 기독경영자가 실천해야 할 나눔이고, 이 자체가 곧 선교이다.돈을 잘못 다루는 인간은 동물보다 못하다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참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돈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반대로 죽게 할 수도 있다. 돈이 가진 힘은 참으로 대단하지만,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돈의 힘을 자신의 유익만을 채우는 것에 낭비하지 않고 타인을 위해 쓰며, 나아가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등의 생산적인 일에 활용하는 것이다. 결국, 이를 통해 인간이 바른 삶을 살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내가 기독기업의 경영인이라면 수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기업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가져보며 내가 그동안 ‘사람 사랑’의 마음을 제대로 실천한 적이 있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4. 인생의 매듭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준비하게 하시어 우리를 적재적소에 사용하실 계획을 세우고 계신다. 또한, 우리가 인생의 매듭을 지어나가는 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시고, 고난 속에서 우리가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를 격려하고 위로하게 하시는 바나바를 준비해 두신다.우리가 가까이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목회자는 우리에게는 ‘바나바’ 적 존재인 동시에,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해 주시는 통로 역할을 하는 분이다. 이를 기쁨으로 여기고 우리는 실로 우리를 위해 다양한 바나바를 곳곳에 준비해 두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여기서 그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비추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바나바를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이것이 인생의 매듭을 확고히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존 파이퍼의 생각하라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육체가 살아있을지라도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정신이 잠들어 버린 시간에는 결코, 주님의 진리와 가르침을 마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다시 말해서 목사님께서 훌륭하신 설교를 하셔도 듣는 사람이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시간 보내기 식으로 주님의 말씀을 대한다면, 진정한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진리와 마주하는 시간, 즉 끊임없이 생각하고 올곧이 깨어있는 시간을 통해 영적인 침체를 겪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워런 버핏, 빌 게이츠, 이건희 이들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각 나라에서 혹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인과 재벌로 불리 운다. 또 하나의 공통점으로 이들은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인데, 단순한 생각이 아닌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몰입하여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꾸준히 의도적으로 갖는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회사에 삼성 본관 28층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생각에 잠겨 꼼짝을 안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한다.작가는 앎에 대한 열망을 이끄는 힘인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성경의 강력한 메시지가 진리를 아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진리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생각이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조나단 에드워즈 생각과 느낌의 관계. 즉, 하나님의 삼위일체 본성을 토대로 인간의 생각과 느낌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작가는 지성과 감성의 적절한 조화를 말하고 있다.하나님을 진정으로 아는 데 지성을 사용하고 그분을 합당하게 사랑하는 데 감성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어떤 의미일까?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수긍하지 못하는 마음을 꾸짖기 위함처럼 보인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지성과 감성이 하나 될 때의 생각이야말로 진정한 의미로 받아들여지며, 이는 진리에 이르게 하는 지름길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3장에서 작가는 생각의 의미 좀 더 세부적으로 좁혀가고 있다. 애들러의 저서를 예로 들며, 작가는 읽기가 캐내지 길 기다리는 산더미 같은 보화라고 했고, 읽기는 곧 생각하기라고 했다. 우리가 글을 읽을 때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일하고 지성을 활용하여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고 한다.작가는 글을 쓰는 목적을 책 안에 고스란히 녹여내기 때문에 독자는 글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작가와 소통하기 위해 생각한다. 하지만 이를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하는 훈련을 통해 작가의 목적이 독자에게 옮겨져 서로 통하면 읽기의 황금률이 성립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또한, 작가는 질문이 이해의 열쇠라고 했다. 질문하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성을 열심히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했고, 마리아와 사가라의 예시를 통해 질문할 때 겸손한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에 대한 중요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이 책에서는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소개한다. 마태복음을 예로 들어 문장 속에서 접속사의 역할과 효과적인 질문법, 그리고 크리스천이 되는 과정에서의 믿음을 통한 지성의 역할 등을 소개하고 있다.5장에서는 영적 시력을 필요성에 대해 제시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의 영광과 아름다움과 가치를 볼 줄 아는 영적 시력이, 구원하는 믿음의 근거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영적으로 교류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내 작은 소견으로 그리스도와 영적인 교류를 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분이 항상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우리 스스로 행동 변화를 끌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작가는 하나님을 가장 소중히 여길 때 느낄 수 있는, 충만을 일깨우고 표현하는 데 우리의 생각이 전적으로 참여한다고 하고 있다. 이를 네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지성을 사용해 생각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이며, 둘째는 지성을 다하여, 라는 말을 전적으로 참여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데 주목하라고 했으며, 셋째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소중히 여긴다는 뜻으로 정의하고 있고, 네 번째로 생각과 사랑이 다름을 설명하고 있다.작가는 6장에서 하나님 사랑과 기쁨의 즐거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크리스천은 기쁨의 종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때나, 찬양할 때,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새기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얼굴은 밝고 기쁨에 차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불만과 혼란한 마음이 그대로 얼굴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지켜보시고 함께 하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의 행동과 생각, 마음가짐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다르며, 결코 나태함과 불손함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존 파이퍼는 생각이 풀어진 사람, 즉 깨어 있지 않고 영적으로 생각의 성장이 멈춘 사람들을 향해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생각하고 깨어나라고…. 말씀을 접할 때, 설교를 듣거나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성을 주신 목적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7장에서는 예수님이 만난 상대주의자들이란 내용으로 상대주의의 해로움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상대주의는 참과 거짓을 판가름하는 객관적인 외적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설령 모호하게나마 기준이 있다 하더라도 그 기준은 보편타당한 것이 되지 못한다. 즉 모두에게 타당한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예수님이 상대하신 상대주의적 사람들은 실질적 상대주의자들이라고 한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진리를 섬기는 방식과 우리가 진리를 섬기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장로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의 물음에 진실하게 대답하는 데 지성을 사용하지 않았고 표리부동한 태도로 부패한 지성을 사용했다.현재를 사는 사람 중에도 분명히 제사장과 장로들과 같은 방식으로 지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자기 체면과 육체의 안전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이들에게 만연한 자기 과시야말로 상대주의의 가장 깊은 뿌리라고 작가는 설명하고 있다.작가는 하나님을 알려고 힘쓰는 과정에서 정성을 다해 생각하도록 응원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8장에서 상대주의의 일곱 가지 폐해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첫 번째로 상대주의는 거역한다는 것이다. 앞 장에서도 나온 내용이지만 참과 거짓을 가늠하는 보편타당한 기준이란 없다고 주장하며, 상대주의는 하나님을 거역한다.두 번째는 상대주의는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것이다. 누구나 상대주의가 모순됨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상대주의자들은 보편적 기준이 없다고 말하면서 또 하나의 보편적 법칙을 전제하는 비모순율을 사용한다. 다시 말해 상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은 상대주의로 이끈다는 주장에 대해 전제와 결론을 제시조차 못 한다.세 번째로 상대주의는 교리적 이탈을 자주 숨긴다고 말하고 있다. 상대주의는 언어에 아주 비극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객관적 진리가 상대주의의 안개에 묻히면 언어의 역할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작가는 바울의 언어 사용방식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네 번째로는 상대주의는 아첨으로 탐욕을 숨긴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데살로니가에서의 예시를 통해 아첨과 탐욕의 관계를 보여주었다. 상대주의의 부추김에 맞서, 바울은 우리에게 태도를 분명히 밝히고 자신을 따르라고 요구한다. 우리에게는 객관적 실재인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므로 아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그들의 부추김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다섯 번째 상대주의는 교만을 겸손으로 가장해 숨긴다고 말한다. 상대주의는 자신은 더없이 미천해 진리를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해도 되는지 판단하는 최고 결정권자로 자신을 추켜세운다. 이는 진리에 복종하지 않으려는 욕망에 뿌리를 둔 것이며 교만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여섯 번째로 상대주의는 사람들을 노예로 만든다. 상대주의는 진리가 끝내 이르지 못할 대상이며 결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해 내내 사슬에 매여 살게 된다. 하지만 진리는 분명 존재한다. 이 사실을 명심하고 상대주의의 안개 속에서 헤매지 않도록 진리를 사랑하고, 말하며, 진리를 향한 열정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일곱 번째로 상대주의는 결국 전체주의로 이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상대주의가 오랫동안 횡포를 부리면, 사람들은 진리에 복종하려고 생각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행하기 시작하여, 겉모양만 그럴듯한 통치자라면 가리지 않고 넙죽 반기게 된다. 이 또한 잘못된 것이며 상대주의로 인한 폐해로 작가는 주장하고 있다.
내면세계의 치유를 읽고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자의적으로 또는 타인에 의해 상처받기도 하고 또 치유 받으며 살아간다. 요즘처럼 치유라는 단어가 간절한 적이 있었을까... 인간의 이기심과 무지, 방관하는 태도가 오늘날 이 현실을 초래 했다고 생각한다. 하루속히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심리학에 대해 공부하면서 ‘마음’의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은 우리 몸의 장기처럼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면적으로 경험되는 무언가 의미 있는 경험으로써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과 육체가 이것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우스갯소리지만 어렸을 적 심적 갈등이 있을 때마다 마음속의 악마와 천사가 싸운다고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나 자신은 저 멀리에 두고 천사와 악마 중 싸움의 승자가 누가되느냐에 따라 무언가가 결정되고 거기에 따라 행동한다고 치부해 버린 것이다.물론, 성인이 된 지금도 이 다툼은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도 명확한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냥 마음을 잘 다스리는 척 하며 상처를 덮어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뿐이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을 배우지만, 정작 나 자신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머리말을 읽는 동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제목만 보고 종교적인 내용이 주를 이룰 것이리라 생각했던 나의 편견은 한순간에 묘한 호기심과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받으며 살아간다.” 나 또한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으로 상처와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누구나” 라는 말은 나에게 적지 않은 위안을 주었다.작가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마음을 운전하는 운전사가 있다고 한다. 마음이 심약한 사람은 인생이라는 차를 운전하는 운전사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수동적인 삶이 될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정작 본인도 상처를 서는 ‘응어리’가 쌓여 정신을 지배하게 되면 영도 건강할 수 없고 육체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고 얘기한다.한국인의 고질병인 ‘화병’은 아마도 이 ‘응어리’가 풀리지 않은 채, 상처로 만신창이가 된 상태를 말 한 것이라 짐작해 본다.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이든 상처를 치유하고 치유 받으면서 정서적으로 성장하고 영적으로도 더욱더 강건하게 된다.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뜻깊고 참된 것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내 안에 가득한 분노와 설움은 결국은 터져 나와 타인에게까지 상처를 준다. 내 안에는 어떤 운전자가 자리 잡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적인 갈망은 언젠가는 죽을 운명을 가진 존재, 의미를 추구하고 더 깊은 자각을 갈망하는 모든 인간 존재가 느끼는 것이라고 한다. 자칫 영적갈망이 강한 사람들은 현실 부정이나 죄책감을 더하는 방법으로 신자의 전인 건강을 해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알코올과 도박 폭력...내 어린 날의 가정은 공포 그 자체였고, 두 번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상처들뿐이었다. 그 시절의 생존 본능이 지금은 나의 족쇄가 되어 매일 같이 괴롭힌다. 자존감이 땅에 떨어져서 늘 바닥에서 일어서야하는 고통을 받고 있다. 심리학 강의시간에 했던 간단한 실험에서도 이런 나의 내적 갈등은 여실히 드러났다. 내가 건강한 정신으로 환자와 그 가족들을 대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의 이런 불안정한 심리상태부터 바로 잡아가야함을 절실히 깨달았다.나 또한 주위의 따뜻한 관심으로 상처가 조금씩 치유되면서 다른 사람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함께 생겼다. 내면의 치유는 사람의 표정과 마음가짐까지 변화 시키는 놀라운 것이라는 것을 요즘 들어 새삼 깨닫게 된다.작가는 치유와 건강을 위해서는 좀 더 깊은 관계에의 의지를 만족시켜야하며, 인간관계라는 방정식에서 사랑이 빠져버리면 그 관계는 균형을 이룰 수가 없다고 한다. 어떠한 관계에서도 생길 수 있는 갈등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관계 속에서 서로의 자존감과 꿈을 충분히 발전시키도록 돕는지다. 얼마 전 학교에서 자살방지 교육을 실시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그 만큼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리라...안타깝지만 현실이다.몇몇 나약한 사람들은 상처받고 쓰러질 때마다 갖은 핑계를 들어 자신을 파괴한다. 마음속에 상처를 그대로 가진 사람은 포로로 잡힌 사람이다. 스스로 만든 철창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며, 외나무다리를 질주하고 있는 것과 같은 위태로운 사람이다.이 책을 읽으면서 또 작가의 경험들과 사례들을 함께 되돌아보며,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심리학자 프로이드가 집중했던 내면의 경험, 즉 무의식에 잠재된 상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든 문제의 뿌리는 가정에서 받은 상처 때문이라고 하는데, 나는 거기에 동의한다. 나 역시 마음의 포로가 되어 헤어나지 못하고 갇혀 있던 시간이 짧지 않기 때문이다.모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만 자식에게 좋은 운전사를 물려주는 부모는 흔치 않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불행을 초래하게 하는 운전사나 살인자로 만드는 운전사를 물려주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아주 행복하고 넉넉한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운전사를 물려주는 부모도 있다는 것인데, 하나의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주위 환경조건과 밀접한 관계를 갖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신은 부모로부터 어떤 유산을 물려받았는가? 이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하는 사람이 많기를 바란다.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본의 아니게 크고 작은 상처를 많이 입으면서 살게 된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상처라면 치유가 쉽지만 마음속에 숨겨진 상처는 또 수많은 아픔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내면의 아픔과 자신에게만 집중하다보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여유가 없어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가 쉬운 것 같다.내 스스로 정신건강 상담전문가를 꿈꾸며 나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치유하고 공감하며 위로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내가 닥쳤을 때 대게의 경우 낙심하고 포기하는 경우를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자신의 내면 때문에 벌어지는 자타의 외면,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내면세계의 영적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노력이 있어야만 우리의 삶의 모습에서 균형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삶일지라도 그 하루하루는 주님께서 주신 귀중한 시간인데, 이 소중함을 외면한 채로 습관적으로 허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이 형식적이며 의미 없는 일상인가? 아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결국은 이런 안일한 삶의 흔적이 후회로 남게 될 것임을 우리는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영적으로 피폐하다고 생각이 든다면 내 곁에 주님이 항상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영을 올바르게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치유상담은 하나님을 더욱더 신뢰하고 하나님께 묻고 맡겨, 더 성장하고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긍정적이고 건강한 자아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도로써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특히 한국인의 내적치유를 시작할 때, 비기독교적 전통적인 한풀이의 방법을 기독교적 방법으로 전환시키고 있다.국론이 분열되고,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인한 생활고, 떠들썩한 정치권, 난잡한 불협화음이 존재하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막연한 두려움과 그것이 만들어 내는 불안과 염려의 악순환 속에서 또 상처받으며 살아간다. 윤리의식의 부재가 만연한 사회 풍토 내에서 터져 나오는 충격적인 사건사고들, 이런 현실을 바라보며 회개하고, 또 회개해야하지만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망각하고 살아간다. 방전된 자신의 내면을 충전하는 방법은 진심을 다해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것이리라.우리는 모두 특별한 존재이며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임무가 있다. 누구도 함부로 대하고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주님께서는 늘 우리를 그런 존재로 대하시는데, 정작 우대의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위로를 건네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내면이 건강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기도로써 실제 삶 속에서 훈련되어 강건해지고, 영성의 사람이 되기 위해 삶을 재정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말씀이 바로 서지 않은 무조건 적인 치유는 자칫 감정에 호소하는 겉치레적인 치유에 그치기 쉽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할 때 진정한 치유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아야한다.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은 마른 잎처럼 바스러져가고 있는 나에게, 하나님은 넘치는 사랑과 보살핌을 주시며 그 속에서 새로운 힘을 얻게 하고 계신다.생각 없이 분주한 삶, 남에게 보이려는 삶을 버리고 영혼의 목마름과 문제에 집중하여 살아가야할 것 같다. 어느 때 보다 바쁘고 지식도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내적인 신앙은 더 약해져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쓰러지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에게서 큰 힘과 위로를 얻고 변화된 삶을 마주하는 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내면세계가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힌다면 외적으로 어떤 어려움과 좌절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극복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내안에서 잘못되고 그릇된 점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하나하나 고쳐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어떤 계기로 인해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늘 주어진 내 삶을 최선을 다해서 살고 그 삶을 더 충만하게 하기 위해 되돌아보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습관화되길 바란다. 우리의 키가 자라고 몸이 자라듯 우리의 영적인 성숙함도 함께 자라서 굳건하고 잘 정돈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교만한 삶 속에 살면서 자신뿐 아니라 타인까지도 상처 입히는 삶에서 벗어나서 말로만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지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으로 성장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다운 삶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내면세계의 아름다움이 흘어 넘침으로써 우리의 외면세계까지도 아름답게 꽃 피우게 할 수 있다.틈틈이 나를 엄습하는 삶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