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 병원 이야기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22.09.13
- 최종 저작일
- 20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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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에비슨이 조선에 올 당시 사람들의 머릿속엔 유교 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에게는 파란 눈의 선교사가 마냥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자식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땅에 온 그들이지만, 당시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병을 치료해주는 것에 감사할 뿐이었고, 그들과 친구가 되려 하지는 않았다. 피부색, 얼굴 생김새가 조선인과는 확연히 다른 코쟁이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조차 부끄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에비슨과 나란히 걷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그의 한국어 선생님과의 일화는 이런 세태를 잘 반영해준다.
‘단순히 문화의 차이에서 온 이기심이었을까?’ “천 개의 생명이 주어지더라도 조선을 위해 바치겠다.”라고 하던 선교사와 “조선 땅에 코쟁이들을 묻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라고 주장하던 사람이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있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애잔함과 안타까움이 전해졌다.
에비슨이 의료선교를 시작할 당시에 진료소는 보잘것없는 건물이었고, 천한 신분을 가진 환자들은 마음 편히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곳이었다. 조선 왕실이 진료소의 경영과 관리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료소는 왕실 사람이나 양반들의 전유물이 되기 일 수였다. 또한, 그 건물을 관리하는 주사들은 나태하고, 형편없었으며, 천민들의 방문에 가차 없이 발길질을 해대며 욕설도 서슴지 않는 방자한 사람들이었다. 이 때문에 선교활동의 취지마저 흐려지는 것에 불만을 품은 에비슨은 큰 결심을 하게 되고 거듭 항의 의사를 밝혔다. 결국, 고국의 도움을 받아 조선의 왕실에서 진료소의 운영권을 넘겨받고, 선교원에서 이를 체계적으로 운영하고 관리 할 수 있도록 하며, 무엇보다 투명하게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문득, 무려 11명의 자식을 가슴속에 품고 사는 한 여인과 이를 듣고 가슴 아파하던 에비슨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당시 조선에는 천연두에 걸려 죽는 아이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에비슨은 ......<중 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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