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저자 : 사이토 다카시출판사 : 걷는나무(2015)제목이 정말 원색적이다.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저자가 그 정도로 독서의 효과를 자신하기 때문일 것이다.사이토 다카시는 교육심리학자이면서 공부 전문가로 잘 알려진 일본 메이지대 교수로 우리나라에도 다수의 책들이 소개되어 있다.이 분은 공부 방법이나 독서에 대해 많이 저술했는데, 읽기 쉽고 바로 실천 가능한 책들을 쓰시는 특징이 있다. 때로는 ‘이런 것도 책의 소재가 될까?’ 싶기도 하지만 그 단순함과 유용성에서는 무릎을 치게 하는 효과가 있는데 ‘삼색 볼펜 초학습법’ 같은 경우가 그렇다.이 분의 책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뽑으라면 삼색 볼펜 사용법이라고 할 만큼 삼색 볼펜 사랑이 유별나다. 책에서 읽을 때는 황당할 정도로 단순하지만 실제로 적용해 보면 꽤나 효과적인 방법이다.독서에 대한 이 책도 너무 당연한 것 같지만 다시금 독서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는 책이다.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몇 구절들을 뽑아서 본인의 생각을 적어 보았다.“인생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책을 읽는 습관을 만들어라.책을 읽는 만큼 인생도 바뀌고 있음을 실감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본문 중 인용)하루에 단 10분, 너무나 쉽게 흘려 보내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에 읽는 책도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말, 사실 실감이 나지 않는다.지금까지 너무 바쁘게만 살아왔기 때문일까..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이 시간의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사실은 그렇게 쉽게 읽히지도 않는다.책 읽는다고 앉으면 떠오르는 갖가지 할 일들, 그런 바쁜 현실을 생각해서인지 저자는 많은 시간이 아닌 단 10분을 이야기한다.사실 바쁘다고 말만 하지 하루에 그냥 흘려보내는 10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시간이 없어서 독서를 못 한다는 말은 그야말로 핑계일 뿐이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게 독서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어쩌면 어릴 때부터 공부에 대한 압박으로 지금까지 재미없는 학업을 위한 독서만 해 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다시 한 번 도전해 보려고 한다. 하루 10분 독서.근데 정말 인생이 바뀔까? 하루 10분의 변화가 앞으로 올 5년, 10년을 바꿀 수 있을까? 이제 그 실험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이 책 중에 흥미로운 말이 있었다.“대부분의 경영학 서적들은 답을 제시한다. 반면에 대부분의 소설들은 위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것이 내가 가르침을 얻기 위해 소설을 즐겨 읽는 이유다.” (본문 중 인용)고등학교에선 이과, 대학도 자연계열로 선택했기 때문에 나의 독서는 대부분 전공에 치우쳐 있었고,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자기계발서나 경제 관련 서적들에 머물러 있었다.가끔 소설이나 문학 작품을 읽기도 했지만 바로 어떤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었는데, 저자의 이 말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직장이 생활의 중심이 되다 보니 내 자신이 너무 고갈되고 힘이 들어서, 지난 1년간 시간 나는 대로 연극, 뮤지컬 관람에 푹 빠져 지냈었다.처음엔 그냥 재미로 보았었는데 차차로 대사 하나, 노래 가사 하나 하나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철저한 이과 출신인 내겐 색다른 경험이었다.특히 연극은 2~3명의 배우들이 나와서 미디어의 도움 없이 여러 정보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대사 하나 하나가 정제되고 압축된 느낌이다.연극이 끝난 후, 마음에 남은 몇 대사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때론 뮤지컬 넘버를 적어 놓고 몇날 며칠 고민해 보면서 ‘문학 작품을 이렇게 읽어야 하나?’ 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는데 위에 인용한 저자의 말은 내게 해답과도 같았다.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국어 시간에 문학작품을 대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는 거 같다.시든 소설이든 ‘밑줄 쫙!’이라 외치던 유명 강사의 말처럼 단어 하나하나에 밑줄 긋고 선생님이 불러 주시는 내용을 적어 놓기에 여념이 없었던 생각이 난다.내가 그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아무 필요도 없었고 영향력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참 우스운 공부 방법이었다.작품의 작가가 사망한 경우도 있어서 어쩌면 선생님들이 가르치신 내용이 그 작가의 의도가 아닐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아직도 실용적인 서적들 외에 문학작품을 드는 것이 낯설다.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단어들, 시, 이런 작품들은 가만히 생각해 보는 즐거움이 있다.이 소설 속 사람들은 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했을까?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왜 이런 단어를 썼을까? 등등때로는 한 단어에, 때로는 한 문장에 사로잡히는 즐거움이 있다.아직은 위대한 질문, 가르침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소설(문학작품) 읽기는 충분한 즐거움이 있는 독서이다.지금도 학교에서 ‘밑줄 쫙’을 가르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그렇다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깊이 읽고 생각하는 즐거움은 꽤나 크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시간들이 쌓이다 보면 저자의 말처럼 인생이 바뀌는 것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언어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기본적인 업무 수행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이며, 사소하지만 기본적인 부분에서 완성도가 높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생각이 곧 언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생각’은 머릿속에서 언어로 치환된다. 언어로 표현되지 못하는 생각은 아무 의미가 없다.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즉 개개인의 생각의 깊이를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어휘와 문장 구성 능력에 달렸다. 어휘가 부족하면 생각을 풍부하게 할 수 없고 앞뒤 논리가 맞게 구성할 수 없으면 맥락을 잃고 깊게 생각할 수 없다.”(어휘와 문장 구성 능력) (본문 중 인용)정말 그렇다. 생각의 깊이를 결정하는 것이 그 사람의 어휘와 문장 구성 능력에 달렸다는 것, 앞뒤 논리가 맞지 않으면 맥락을 잃고 깊게 생각할 수 없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조지 오웰의 ‘1984’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당이 신어(新語)를 만들어 언어를 단순화 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책의 마지막 ‘부록, 신어의 원리’ 장에서 작가는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다. 인용해 보겠다. (1984 / 조지 오웰 지음 / 정영수 옮김 / 더 클래식 출판)“신어를 고안한 목적은 영사 신봉자들에게 걸맞은 세계관과 사고 습성에 대한 표현 수단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영사 이외의 다른 사상을 아예 갖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신어에는 아직도 ‘free(자유로운)’라는 단어가 남아 있다. 하지만 이 말은 ‘This dog is free from lice.(이 개는 이가 없다.)’, ‘This field is free from weeds.(이 들판에는 잡초가 없다.)’ 라는 식의 문장에만 사용될 수 있다. ‘politically free(정치적으로 자유로운)’나 ‘intellectually free(지적으로 자유로운)’라는 이전 시대, 바로 구어의 의미로는 사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정치적, 지적 자유란 이제 더 이상 그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념이 없으면 단어도 존재할 필요가 없다....신어는 사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줄이기’ 위해서 만들어진 만큼 어휘 선택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도 신어의 고안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간접적으로나마 도움이 되었다....어휘 선택의 범위가 좁으면 좁을수록 사고하려는 유혹도 그만큼 적어지기 때문에 해마다 어휘 수가 감소하는 것은 당의 입장에서 볼 때 이득이다.당은 궁극적으로 뇌신경을 전혀 쓰지 않고 목구멍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기를 바란다....명칭이 없으므로 상상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와우, 어쩜 이렇게 설명을 잘 해 놨는지, 국민들을 개, 돼지에 비유했던 몇 정치인들은 우리 국민들이 이러길 바라서 생각하는 교육을 못하게 하고 문화 예술을 그렇게 탄압했나 보다. 개인적인 생각이다.)사이토 다카시의 ‘어휘와 문장 구성 능력이 생각의 깊이를 결정한다’는 주장에 대해 조지 오웰은 위와 같이 아주 명확하게 설명해 준 것이다.요새 우리 언어 사용에 과도한 단어 축약이나 신조어가 많아서 때론 무슨 말인지 파악조차 어려운 경우도 많고 생각하고 말하기 보다는 그저 떠오르는 대로 즉각적으로 말하고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방송의 실시간 채팅창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조지 오웰의 말처럼 “뇌신경을 전혀 쓰지 않고 목구멍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기”이다.) 무엇인가 물건을 사러 와서도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해 힘들어 하는 경우도 보았다.그런 언어 속에 자신의 생각을 담을 수 있을까?최근 화제의 책 ‘언어의 온도’(이기주 저)를 보면서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놓고 글을 써 내려간 저자의 따뜻한 책에 감동하며 언어가 사람을 얼마나 풍성하게 하는 지 깨닫게 되었다.우리의 단어 선택 하나 경우에 따라선 조사 선택 하나가 한 사람을 격려하고 살릴 수도 있고 때론 깊은 골을 만들어 큰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겠다.결국 사이토 다카시 교수가 말한 것처럼 어휘력이 그 사람의 생각의 깊이이고 일반적으로 어휘력과 문장 구성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 일상 업무에서도 잘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휘력과 문장 구성 능력은 그 사람의 사고력과 조직력이 되기 때문이다.이 모든 성숙을 위한 가장 기본이 독서이기 때문에 독서는 힘이 있는 것이다.책은 온전히 단어와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인터넷 콘텐츠나 강의로도 메꿀 수 없는 것이 책이다.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굳이 다독이나 속독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독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생각하는 힘을 키우고 자신을 성장시키고 나아가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1일 1책읽기 등이 유행이긴 하지만 굳이 이런 것에 흔들려서 조급해 할 이유도 없다. 결국은 자신의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천천히 한 걸음씩 나가면 될 것이다.(하지만 책을 계속 읽어 가다 보면 빠르게 읽기와 다독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 같다.)
제목 : 옥수수의 습격지은이 : 유진규(SBS 다큐멘터리 PD)출판사 : 황금물고기(2011년)지난 2010년 SBS스페셜로 ‘옥수수의 습격’ 이라는 다큐를 방영했을 때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저 맛있게 먹었던 간식 옥수수에 대해 ‘습격’이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써가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정도인가에 놀랐고 우리 일상에 옥수수가 이렇게나 밀접하게 다가온 줄 미처 몰랐었기에 또 한번 놀라게 되었다.그래서 조금 더 알고 싶은 호기심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옥수수의 습격,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방과 오메가3를 이해해야 한다.최근에는 고지방 저탄수화물 식이가 유행하면서 지방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이 책의 첫 장(다큐멘터리의 첫 장면)에서 지미 무어라는 미국인이 엄청난 양의 버터와 계란으로 오믈렛을 만들어 먹는 장면은 심혈관질환과 콜레스테롤을 걱정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장면이었다.모두의 우려가 달리 지미 무어를 포함해 비슷한 식이를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런 음식이 자신들을 구했다고 이야기했다.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심혈관질환(고혈압, 심장질환 등), 고지혈증이 환자에게 의사들은 버터나 고기와 같은 동물성 지방이 많은 식품의 섭취를 피하도록 주의를 주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여기서 이 책은 2가지 전제를 가지고 출발한다.첫째 사람은 동물성 식품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육식을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들도 많이 있지만 인간의 몸은 대부분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제대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물성 식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두 번째는 동물이 먹는 먹이의 성분에 따라 그 동물의 조직 성분이 결정되고 그것을 먹는 인간의 조직 성분도 결정된다는 것이다.그들이 먹는 식품들은 모두 방목된 소나 닭, 돼지에서 생산된 것들이었다. 방목의 의미는 풀을 먹고 자랐다는 의미이다.여기서 의문, 그러면 소나 닭이 풀을 먹지 않고 다른 것을 먹나?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소나 닭이 풀을 먹는 게 맞는데 현실은 다른가? 바로 여기서 옥수수가 나온다. 풀을 먹는 것이 정상이지만 가축들을 빠르게 성장시키기 위해 곡물 사료, 즉 옥수수 사료를 먹이게 된 것이다.(옥수수는 그 자체로도 빠르게 성장하는 곡물이지만 그것을 먹는 동물을 빠르게 살찌운다. 최근에는 죽은 동물의 사체, 뼈 등을 갈아서 사료에 섞기 때문에 광우병 문제도 발생하게 되었다.)특히 미국은 피드롯이라는 시설을 이용해서 대량의 옥수수 사료를 저장하고 소들에게 먹이게 된다. 닭도 마찬가지로 작은 닭장에 갇혀 옥수수 사료를 먹으며 성장하게 된다.그렇다면 옥수수 사료의 문제점은 무엇인가?그 이유는 옥수수에는 오메가3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풀은 광합성을 하며 오메가3와 오메가6를 적절히 만들어 내고 그것을 섭취하는 동물에게도 오메가 지방산의 균형을 맞추어 건강하게 자라게 해주는데 옥수수는 오메가3가 거의 없고 주로 오메가6로 구성된 식품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그렇다면 오메가3와 오메가6는 무엇인가? 이것은 불포화지방산이라고 불리며 주로 우리 몸의 세포막(우리 몸은 60~100조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세포는 세포막으로 둘러싸여 보호되고 있다.)에 많이 존재한다. 우리 몸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음식으로만 섭취해야 하는 영양소이다.오메가3는 세포막을 유연하게 하고 유동성을 주어 산소와 영양소 공급이 원활히 되도록 하며 세포막에서 일어나는 각종 호르몬, 효소의 작용들이 잘 일어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결국 세포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그리고 혈액 순환을 도와주고 몸 안에 좋은 지방의 비율을 늘려 주는 역할을 한다. 반면에 오메가6는 세포막을 단단하게 하며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세포를 방어하고 영양소를 비축하는 역할을 한다. 둘 다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들이다. 일반적인 자연생태계에서 오메가3와 오메가6는 1:1 내지는 1:4의 비율을 유지하며 건강의 균형을 지키게 된다.하지만 지금처럼 오메가3가 거의 없는 옥수수 사료를 주로 먹는 동물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앞의 두 번째 전제에서 다루었듯이 옥수수 곡물 사료를 먹은 동물들의 세포막은 대부분 오메가6 지방산으로 구성된다.사실 소나 닭 모두 풀을 먹어야 하는 동물들이고 이들에게 옥수수 곡물 사료를 먹이면서 일어나는 각종 병리증상(고창증, 각종 감염 증상, 면역 저하 등)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이유로 가축들에게 항생제를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어쨌든 대부분 오메가6로 구성된 동물성 식품을 먹는 사람도 자연스러운 오메가 지방산의 균형이 깨져서 그로 인한 여러 질환들(비만, 만성염증, 알레르기, 심혈관질환 등)을 겪게 되는 것이다.달걀도 마찬가지로 풀을 뜯어먹고 자란 닭이 생산한 달걀은 자연의 균형과 건강함을 담고 있어 그것을 먹는 사람을 건강하게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균형을 깨뜨려 질병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문제는 우리 현실의 동물성 먹거리들의 대부분이 옥수수 사료를 통해서 생산된다는 것이다.실제 이 책에서는 두 가지 재미있는 실험이 나온다.첫째는 우리나라의 한 가정을 정해서 그 구성원들 체내의 탄소성분을 분석해서 체성분 중에 옥수수 유래 성분이 얼마나 있는가를 보는 실험이었는데 오히려 어른들보다 어린아이에게서 많은 옥수수 유래 성분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 현대의 식품들이 오메가6로 많이 치우쳐 있다는 증거이다.두 번째는 피험자들에게 일반 사료를 먹인 소의 고기와 오메가3가 풍부한 사료를 먹인 소의 고기를 먹게 한 후, 혈액검사를 통해 콜레스테롤의 증감을 보도록 한 실험이었다.일반적으로 동물성 식품은 혈액 내 콜레스테롤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어서 이 실험의 결과가 궁금했는데 역시나 오메가3가 풍부한 사료를 먹은 소의 고기를 먹은 피험자들의 혈액 지질 구성은 나쁜 콜레스테롤은 낮아지고 좋은 콜레스테롤은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다.이 책에서는 이것 뿐 아니라 풀을 먹고 자란 소에서 짜 낸 가공하지 않은 생우유, 로밀크(Raw Milk)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만날 수 없는 우유인지라 어떨지 궁금하다. 아주 어릴 때, 동네 젖소를 키우시는 집에서 막 짠 우유라고 몇 번 주신 적이 있었는데, 진하고 맛이 아주 고소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에서도 로밀크가 허용된 주가 몇 개 없는데 풀을 먹고 자란 소의 로밀크를 먹고 알레르기를 비롯해 여러 질환들이 좋아졌다는 내용이 있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상식을 뒤집는 내용들이었다.우리는 지금 무었을 먹고 있나?비용 대비 최대 효과를 얻기 위해 가축에게 옥수수 사료를 먹였고 값비싼 버터 대신 식물성 지방을 비틀어 마가린(트랜스지방)을 만들었고 자연스러운 기름대신 화학물질로 정제한 식물성 기름이 우리 식단을 채웠다. 본성을 거스른 사료를 먹은 가축들은 각종 질환에 시달리기 때문에 항생제와 살균제 등을 억지로 투약하게 되었고(이번 살충제 달걀 파문도 같은 이유이다.) 결국 이 모든 일의 결과는 먹이사슬의 최종 단계에 있는 인간이 다 떠맡게 되었다. 오히려 어른들은 그래도 괜찮다. 하지만 우리의 아이들, 그리고 그 다음 후손들에게까지 이런 잘못된 식이의 영향은 계속되게 된다.